영어의 표현은 오토만, 이슬람 언어인 아랍어로 오스만이다. 우마이야 왕조 이후 750년부터 1258년에 걸쳐 이슬람을 지배한 압바시야 제국이 막을 내리고 이슬람 주도권은 튀르크인 중심의 오스만제국으로 이동된다.
13세기 말, 소아시아와 그 주변은 튀르크족의 소부족 군웅할거 시대를 맞는다. 셀주크 튀르크는 당시 이즈니크(니케아)에서 남쪽 소아시아 작은 도시 수구트 등 하나의 공국을 거느리고 있던 오스만 베이(Osman Bey)로부터 시작된다. 1299년부터 비잔틴 영토 잠식으로 시작된 정복 사업은 아들 오르한 시대에 와서 유럽의 발칸반도까지 진출했다. 1361년 발칸의 아드리아노플의 정복,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발칸반도의 공략이 마무리된다.
이들은 지리적 여건상 아나톨리아 부르사와 마르마라해로 진출할 수 있었고, 과거 유목민 피를 이어받은 튀르크 전사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셀주크 시대 술탄의 기병으로 활약할 만큼 강한 기동력을 보유했던 이들이다. 정확하게 623년이란 역사를 자랑할 수 있었던 오스만제국은 우연이 아니다. 튀르크족이 몽골군의 침탈을 피해 아나톨리아로 밀려들던 때다. 이때 오스만은 피난민을 성심으로 품어 튀르크족을 규합해 세력을 불리기 시작하면서 영토를 서쪽으로 넓히는 데 성공하자, 응당 유럽의 관문 비잔티움과의 한판 대결을 가져왔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은 제4차 십자군에 의해 풍비박산 나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채였다. 더구나 제국의 말기적 현상인 민심 이반이 심각했다. 허리를 졸라야 맞출 수 있는 세금과 부역은 늘 하층민을 괴롭혔다. 이때 오스만이 나타나 세금을 대폭 줄여주었고, 점령지 주민에게도 이슬람의 형제로 취급해 똑같이 대접했다.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종교의 자유는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했고, 언어와 문화 역시 관대했다. 오스만을 지지하는 소리가 하늘에 퍼졌고 백성의 찬사가 이어지며 더 광대한 영토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민족이 혼재된 상태에서 무리한 포교와 강요는 역효과를 낼 수 있었다. 믿음을 인정함으로써 세수 확보와 징병 등 제국의 안정을 꾀했다. 즉 파괴와 살육보다 회유와 평화 정책을 펼치면서 민심을 얻었다.
물론 타 종교에 관대했다곤 하나 세금은 더 내야 했고, 교회도 화려하게 짓지 못하게 했다. 출입구도 지상에서 1m를 넘지 못했다. 개처럼 기어서 드나들게 한 것은 이들 최소한 폭력의 도출이었다. 그리스 아테네의 초라한 정교회 건물이 지면에서 1m 아래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어서 드나들 수 없어서 땅을 아래로 낮춰 교회를 올렸던 까닭이다. 오스만제국을 본 주변 토후국들은 스스로 오스만 깃발 아래 몰려들었다. 여기에 죽음을 두려워 않는 튀르크 전사들의 집결도 이어졌다. 급작스레 소아시아 세력균형이 무너지면서 튀르크족은 자신들의 이상인 무슬림의 의무 ‘지하드’를 성취할 조건을 갖춘 나라를 선호했다. 물질적 보상은 덤이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제국은 1인 지배체제보다 가족 지배체제에 의존했다. 남을 믿기보다 형제간의 믿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래로 이어온 체제 방식이다. 단점도 있었다. 왕이 죽으면 아들들에게 똑같은 영토를 분배했는데, 이는 가족 간 내분으로 이어져 형제간 피 흘리는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나 오스만 1세는 유언으로 장자상속을 정해버렸고, 남은 아들들은 죽거나 혹은 감금 상태로 살아야 했으며, 일체 정치에 관여할 수 없었다. 태생적 불행은 어린 시절부터 포기라는 절망의 멍에를 짊어진 채 살아야 했다. 이나마도 대부분 죽음을 면치 못했다. 비정한 선택, 이슬람의 교리 뒤에 감추어진 번영을 위한 살기(殺氣)를 보는 듯하다.
오스만 1세는 장자상속과 함께 미래를 위한 나름 지혜로운 유언을 남겼다.
“종교를 가장 중심에 두고 조심해 다루라. 지혜롭지 못한 자에게 권력을 나누지 말라. 학자와 기술자, 예술가, 문필가들이 힘의 원천이니 명예롭게 대하라!”
20대 초반의 나이에 부족장이 된 이래 30여 년을 정복 전쟁으로 날밤을 지새웠던 인물다운 유언이다. 학자와 기술자, 예술가들이 힘의 원천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제국을 존재케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지스(Ghazis)’, 즉 튀르크 말로 전사의 원정대이자 약탈원정대가 발전해 주군을 모시는 구성원으로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했다. 전쟁이 곧 생업인 이들에게 종교적 동기가 작용하면서 더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가지스는 비잔티움 제국은 물론 발칸반도와 지중해 기독교도와 곳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종교적 의무를 다한다는 초기 정신으로 무장해 흔들림이 없이 전쟁을 수행했다. ‘성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 생계와 생활공간이 따로 없었다. 밥 먹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잠들곤 했던 당시의 청춘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2대 오르한(Orhan) 1세(1281~1362)에 이르러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그의 발아래 두고, 발칸반도를 침략해 유럽으로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세력을 완성한다. /스토리텔링 작가 박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