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① 영양제와 매미 애벌레

등록일 2024-05-07 18:34 게재일 2024-05-08 17면
스크랩버튼

◆연재를 시작하며=스토리가 아닌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말한다. “한정된 짤막한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소설이란 문학 장르 중 가장 짧은 형식인 ‘엽편소설’ 역시 그렇다. 원고지 25매 안팎의 문장으로 세상과 사람,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꿈과 환멸을 드러내기 위해선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긴장’과 ‘에너지’가 필수. 문학을 통한 세계 해석과 심미적 위안이 사라진 21세기. 경북 포항에서 내과의사로 일하며 괜찮은 소설을 쓰기 위해 악전고투 중인 작가 김강(52)이 ‘엽편소설 연재’라는 간단찮은 도전을 본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향후 격주로 게재될 김강의 엽편소설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아직 문학과 소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신뢰하는 독자들의 관심과 질책을 더불어 기대한다. - 편집자 주

저 흙 아래에서 매미 애벌레는 7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땅속에서 나왔겠지. 망설임 없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겠지. 드디어 짝을 만나고, 길어야 2주 남짓한 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맥주캔 꺼내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이번에는 찻장을 열었다.

“자. 이거.”

영양제다. 25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의 과학적 처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어드밴스’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영양제. 살색 영양제 한 알은 25가지의 비타민과 미네랄의 단순한 복합체가 아니다. 이것은 격려와 칭찬이다. 그녀가 순신에게 영양제를 챙겨주는 날은 순신이 하는 짓이 그녀의 마음에 든 날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양제는 없다. 처음에는 그녀가 영양제를 주지 않으면 오늘은 왜 안 주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에게서 영양제를 받지 못한 날이면 순신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이 있는지 먼저 생각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영양제는 순신에게 평화와 안도의 상징이다. 긍정과 부정의 되먹임 기전의 매개다. 예외적으로 영양제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녀가 순신에게 최후의 부탁을 하는 경우다. 이번에도 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없다.

순신의 손바닥에 영양제를 올려놓으며 그녀가 말했다.

“내일 별일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매미를 잡아줘. 아니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 애들이 매미 잡고 싶다고 말한 게 언제야? 저번 주부터 매미, 매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데 어째 그렇게 꼼짝을 안 해? 부탁이야.”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미경은 이미 몇 번의 선과 연애를 해 본 뒤였다. 학창 시절 몇몇의 연애를 제외한다면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은 제법 그럴싸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거나, 집안의 재산이 대단하거나, 둘 다였다. 그럼에도 미경이 그들 중 하나와 결혼 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들에게 기댈 이유가 없어서였다. 이미 많은 것을 갖춘 그들에게 미경은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무언가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인은?’ 이라는 질문에 ‘네, 약사인데, 집에서 쉬고 있어요. 굳이 와이프까지 밖에서 일하는 것 원치 않거든요.’라고 대답하며, ‘멋져요.’라는 반응을 기다리는 그들의 허영에 보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달랐다. 어렴풋이 속이 비치는 번데기 같았다. 껍데기 속에서는 뭔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미경은 그를 만날 때마다 껍데기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떤 때는 찰랑거리는 동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호령하듯, 가다듬듯 ‘아, 아’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와 일곱 번째 만나던 날 미경은 카페의 조명에 비친 껍데기 속에서 날개 같은 것을 보았다. 형광의 푸른색, 곧 껍질을 찢고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 오늘 것 같은. 어릴 적 보았던 청띠제비나비의 날개.

“미경 씨, 나는 말이지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글도 쓰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을 것 같아요. 나무와 꽃을 기르는 일도 해야겠어요. 물론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인생이 길지 않으니 그 중 어느 하나만 정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라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요. 길지 않은 인생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능력만 된다면. 함께.”

‘능력만 된다면’ 이라는 전제에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미경 씨랑 함께.’라는 말에 가슴이 흔들렸다. 청띠제비나비의 날개를 붙잡아 곁에 두고 싶었다.

번데기에서 나오면 나비가 될 줄 알았는데, 매미였던 건가. 아니면 아직 번데기 속에 있는 걸까. 영양제를 받아먹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기를 정리하는 그를 보며 미경은 생각했다.

영양제는 정확히 오 년 전 등장했다. 그 해 순신은 회사를 그만뒀다. 순신은 작은 책방을 열고 싶었다.

“정치와 철학, 예술에 관한 책들만 취급하는 책방. 아이들 문제집이나 입시 혹은 수험서들, 처세에 관한 책, 사전 등은 취급하지 않는 ‘말 그대로’ 책방을 가지고 싶어. 한편에는 작은 강의실을 두고 매주 작은 강의를 열거야. 벽에는 스크린을 달아놓고 매일 저녁 혹은 정해진 시간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거야.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찰리 채플린 주간입니다. 이렇게 미리 공지하는 거지. EBS 다큐 프라임 중에서 좋은 것들을 다시 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그 시간에 맞춰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드는 거지.”

순신이 미경에게 말했을 때, 사업자금은 충분한지, 퇴직금으로 가능한 것인지, 운영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미경이 물었고 순신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 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을게. 이유가 있겠지.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돈 벌어오라고 말하지도 않을게. 내가 벌고 있으니 그 정도면 우리 가족이 사는데, 풍족하지는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대신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어. 빠른 시간 내에 말해줘. 가능하면 문서로.”

다음 날 저녁, 자기 전 미경은 순신에게 영양제 한 알을 건넸다.

“뭐야?”

“영양제.”

“무슨 뜻이냐고?”

“뜻은 무슨 뜻. 이제 우리도 몸을 챙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퇴근할 때 하나 가지고 나왔어. 사람들은 열심히 사 먹는데, 정작 약사인 나는 영양제 한 알도 못 먹고 있네 싶어서 들고 나왔지. 하루 한 알씩 챙겨 먹자.”

이후로 오 년이 지났고, 순신은 아직 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미경은 재촉하지 않았고, 순신은 전업주부 역할을 맡았다. 순신은 어쩌면 가사노동이 자신의 찾던 직업일 수 있다 여기기 시작했고 미경 또한 순신이 많지 않은 월급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것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집안일을 해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오전 10시 아이 둘을 데리고 순신은 아파트 뒤 소운동장으로 향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잡고 돌아와야 했다. 느티나무, 감나무, 벚나무들에 둘러싸인 소운동장 사방에서 ‘메엠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과 실눈을 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보며 매미를 찾았다.

“저기요, 저쪽 매미 소리가 제일 커요.”

제법 밑동이 굵은 감나무를 가리키며 아이들이 달려갔다. 순신은 느린 걸음으로 따라가 나무 아래에 섰다. 아이들은 감나무 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에 눈부셔하면서도 매미를 찾아 감나무를 빙빙 돌았다. 순신은 아이들을 따라 나무를 올려보다 눈이 부셔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땅이다. 저 흙 아래에서 매미 애벌레는 7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땅속에서 나왔겠지. 망설임 없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겠지. 드디어 짝을 만나고, 길어야 2주 남짓한 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아빠. 찾았어요. 저기. 저기 있어요.”

잠시 아래를 보고 있는 사이에 큰 아이가 매미를 찾아냈다. 아래에서 2.5m정도 높이에 감나무에 바짝 붙어있었다.

“빨리요. 아빠. 날아가기 전에 빨리 잡아요.”

그러고 보니 매미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저 녀석들은 날 수 있기는 하는 걸까. 날개는 멋으로 혹은 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해놓고, 사실은 나무에 기어올라 바짝 붙은 채 그저 소리만, 소리만 우렁차게 울어대는 것은 아닐까.

감나무는 두 팔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나무를 감싸 안았다. 아기가 배밀이를 하듯 팔로 한 번 당겨 오르고 다리로 한 번 밀어서 오르고, 반복하면서 나무를 올랐다. 쉽지 않았다. 해 본 적 없었으니. 아이들은 ‘아빠, 빨리요.’를 재촉했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많이 올라가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매미도 아니고 이게 뭐람. 이럴 줄 알았으면 긴소매 옷을 입고 오는 건데, 바지마저 반바지에 이게, 이게 뭐야. 팔과 다리에 묻은 땀이 더 힘들게 만들었고 아팠다. 지면에서 2m 정도 올라갔을까. 나무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는 겁니까?”

경비 아저씨였다.

“매미 잡으려고요.”

작은 아이가 대답했다.

“매미를 잡는다고?”

“네.”

“그 불쌍한 것을 잡아서 뭐하려고. 이 동네 매미는 다 똑같아. 참매미야. 참매미. 잘 들어봐. ‘매엠 매엠 매엠 매에에에에’ 이렇게 울잖아. 이렇게 우는 것은 백 프로 참매미야. 확인할 것도 없어,”

순신은 난감했다.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오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다. 이대로 내려간다면 실망할 텐데. 오늘 저녁, 아니 내일까지 영양제를 못 얻어먹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는 거다. 순신은 경비 아저씨의 말을 못들은 채 하며 두 다리로 몸을 밀어 올렸다. 눈앞에 매미가 있다. 이제 손만. 손만 뻗으면 된다. 그때 경비 아저씨가 소리를 쳤다.

“거기 아저씨 내려오소. 불쌍한 아이들 괴롭히지 말고 내려오소. 빨리.”

매미가 울음을 멈췄다. 왼손의 힘이 빠졌고, 하필이면 불어온 바람에 잎이 흔들려 햇살이 눈으로 들어왔다.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매미의 울음이 멈춘 것과 바람이 불어온 것과 눈부신 햇살과 이리 내려오라는 주문 같은 경비 아저씨의 말이.

본지에 엽편소설을 격주 연재할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끝>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