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가운데 일곱 번째가 입하(立夏)다. 태양의 황경이 4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어린이날인 5월 5일(음력 3월 27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입하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해당한다.
명리학에서는 동지(冬至)를 새해로 보지 않고, 입춘(立春)을 새해로 본다. 하늘은 이미 새해가 되었지만, 땅은 입춘이 되어서야 새해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만큼 시차가 필요한 것이다. 입하(立夏)의 입(入)은 계절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를 표현한다. 실제로 이전 기운인 봄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지구에서 여름이 되려면 한 달 반의 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 태양열이 지구를 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복사열 때문이다.
입하(立夏)를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涼), 맥추(麥秋)라고 한다. 초여름으로 진입하는 시기이기에 맹하(孟夏), 초하(初夏)라고도 부른다. 입하가 되면 봄은 서서히 물러나고, 산과 들은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청개구리가 여름을 알리면서 울고, 땅에 숨어있던 지렁이가 바깥으로 나오는 때다. 못자리에는 벼 싹이 터져 자라고, 보리 이삭이 추수를 기다리기에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시기다.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맹하(孟夏)인 입하는 음력 4월 진월(辰月)이다. 이 시기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진(辰) 방향을 가리킨다. 이달의 방위는 남쪽이며, 수는 7이다. 맛은 쓴맛, 냄새는 그을린 내다.
입하(立夏)는 불(火)의 덕이 왕성하며, 색깔은 붉은색이다. 이달의 생물은 깃털 달린 것이고, 양기가 왕성하게 작용하면 비늘 달린 것이 사라진다. 깃털 달린 것 중에는 봉황이 으뜸이다. 하늘타리가 돋아나고, 씀바귀가 무성하게 자란다.
천자는 삼공, 구경, 대부들을 이끌고 몸소 남쪽 교외로 나아가 여름을 맞이한다. 궁궐로 돌아와서는 상을 내리고, 제후를 봉하고, 예악을 정리하고, 좌우 신하들을 대접한다. 태위에게 명령하여 국가의 준걸을 천거하게 하고, 벼슬과 녹을 내린다. 토목공사를 하지 않고, 큰 나무는 벌목하지 않고, 전답과 산림을 관리하는 관원에게 명령하여 농토와 들판을 순시하면서 농사일을 권장하게 한다. 또 야생 짐승이나 가축을 멀리 쫓아내 짐승들이 곡식을 상하지 못하게 한다. 냉이가 죽고 보리가 익으면 가벼운 죄를 판결하여 경범죄로 처리한다. 때에 맞는 정령을 시행함으로써 백성의 살림살이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하 때 하는 우리의 세시풍습은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쪄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먹기도 한다. 마을에 따라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 농사꾼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속담으로는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가 대표적이다. 입하 때 못자리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바람이 불어 볍씨가 한쪽으로 몰리게 되면 못자리의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이다.
입하는 사월(巳月)의 시작에 해당하는 절기이며, 여름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나무(木) 기운을 받아 뻗어 나가던 줄기는 성장을 멈추고 화려하게 잎을 펼친다. 본격적인 불(火)의 기운이 펼쳐지기에 천지만물이 충만한 양기를 받아 성장한다. 사주에서 사(巳)가 강한 사람은 맹렬한 에너지가 돋보인다. 물러날 곳도 물러날 이유도 없어 물러서지 않는 기운이 있다. 즉,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는 기운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 많다. 두려움과 거침이 없는 편이다.
사화(巳火)의 상징 동물은 뱀이다. 뱀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서 대체로 눈에 잘 띈다. 양기가 너무 지나쳐 발이 없이도 잘 다니고 날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매우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외골수의 측면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은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다.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색동회를 발족하였다.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아동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색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문화 운동단체다.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시작했다.
이 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어린이들을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그만큼 당시에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힘든 일을 시키거나, 때리고 욕하는 것이 다반사인 처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전에는 어린이를 ‘아동’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인식은 그 당시로는 시대를 앞서간 대단히 선구적인 생각이었다. 일종의 어린이 권리선언이다. 1946년에 5월 5일로 바뀌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의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봄은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며, 동물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는 계절이다. 하지만 길고 긴 동토에서 새싹을 피우려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자라난 것이다. 모든 동식물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연에 적응한 것만 생존한다. 자연의 섭리만 있을 뿐이다.
입하는 생존한 것을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해 수분, 영양소와 함께 따뜻한 온기와 햇볕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도 이해, 배려, 보살핌,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