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사상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두고 빚어진 윤상현 의원과 권영진 당선인(대구 달서병) 간의 설전은 국민의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의원은 여당의 험지인 인천 출신이며 이번에 5선고지에 올랐고, 권 당선인은 재선 대구시장 출신에다 이번에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둘 다 당의 미래를 이끌고 갈 중진이다.
설전은 윤 의원이 지난주 “영남 중심당의 한계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들이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권 당선인은 “선거 때만 되면 영남에 와서 표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 참 경우도 없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했다. 권 당선인은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윤 의원이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TK(대구경북)는 25석 전석을 석권하고 PK(부산울산경남)는 6석을 제외한 34석을 획득해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다. 영남권 여당 정치인들은 윤 의원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데 대해 충분해 섭섭해할 수 있다. TK지역에서는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소리도 실제 나온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 내분이 생겨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윤 의원이 던진 메시지에 공감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인요한 혁신위’를 꾸려 다양한 혁신과제를 내놨지만, 당 주류인 영남권 중진들이 혁신 흐름을 끊어 놓은 건 사실이다. 혁신위가 ‘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공식 제안했지만, 영남중진들 중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당내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여권 지지자들은 다들 걱정이 많다. 야권이 정치권력을 입맛대로 행사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의 ‘영남 자민련화’는 당연히 TK와 PK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이나 소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현실적인 지역현안 해결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역구 전체를 석권하면서 TK지역은 수많은 현안을 직접 받아줄 입법창구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할 경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10개월 여의 간격으로 잇달아 치러지는 지방선거·대선·총선에서도 승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의 ‘영남 자민련화’를 막기 위해 ‘영남보수당’과 ‘수도권보수당’을 따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도권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루빨리 ‘중수청’ 위주의 지도부 체제를 구성해서 당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재기할 동력을 아예 상실하게 된다.
늘 강조하지만, TK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이제 보수정당의 건강성과 외연 확장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