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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옥이 앉는 곳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은 돌담위로 누렇고 세월 먹은 누렁호박을 매달았고 새끼줄이 흘러내리는 지붕 한곳에는 흰 박꽃이 저물고 있다. 여산여수(如山如水)의 삶이다. 한옥은 산을 닮고 물을 닮듯 느긋하고 담담하게 살아갈 정겨운 집이다.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경주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집성촌과는 달리 두 가문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 온 것이 특이하다. 양반은 다른 성씨들과 섞여 살지 못한다는 관례를 깬 마을이다. 월성 손씨(月城孫氏)와 려강이씨(驪江李氏)는 대대로 한 마을에 살긴 했었지만 날아갈 듯 뽐내는 고옥들이 평화롭게 보이는 겉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대립과 경쟁이 끊이지 않았다.가문간의 경쟁의식은 모든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 했다. 두 가문이 벌인 건축 경쟁의 백미는 관가정(보물 442호)과 향단(香壇· 보물 412호)이다. 관가정이 단손하고 명쾌하게 보이는 반면 향단은 개성적이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법을 선택했다.양동에는 손씨 종택 서백당(書百堂· 중요민속자료 23호)이 가장 먼저 지어지고 그 후에 지어진 이씨 종가집 무첨당(無?堂· 보물 413호)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양동은 성주봉에 오르면 주산이 될 설창산에서 흘러내린 물(勿)자 형의 능선이 뻗어 난 곳에 지금도 1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숲과 어울려있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고도 경주는 양동과 하회마을이 국내에서 10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앞서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그리고 2000년엔 경주 역사유적지구 가 지정 됐다. 경주는 우리나라에 지정된 열 곳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곳이나 되니 자긍심을 가질만하다.1700년대에 지어진 경주 교동 최부자집도 이채롭다. 원래 99칸이었으나 1970년 사랑채와 별당은 불탔다. 안채는 口자형, 대문채는 一자형, 그리고 사당은 사랑채와 서당으로 이용된 별당 사이에 배치해서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한 특징을 지녔다.얼마 전 1928년 일본 건축화보에 실린 최부자집 배치 평면도가 발견되어서 이 고택의 화재 이전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이 평면대로라면 지금 남아있는 고옥들은 원래 규모의 반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몇 년 전에 복원이 된 사랑채를 중심으로 서편에 별당을 두었고 안채 동편과 솟을 대문 바깥에 큼지막한 곳간을 배치했다. 안채 쪽 곳간은 과객 치송에 바쁜 부녀자들의 도방 살림을 배려한 위치에 세워졌다.최부자집은 이 집터의 안산이라 할 도당산이 풍수상 창고자리다. 남산 주봉에서 흘러내려 교동 앞에서 멈춘 도당산은 바로 산허리가 곳간형세다. 북쪽으로는 집 기운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 쌍으로 심은 나무가 집 분위기를 더 살려준다.조선시대 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고향 안동에서 손수 설계도까지 그리면서 지산와사(芝山蝸舍) 도산서당 등 다섯 채를 지었다. 도산서당은 고졸하다.반면 회재 이언적은 도덕산 등 주변 4개의 산을 독락당과 양동으로 끌어들여 천년미래를 설계 했다. 독락당의 빼어난 미는 주인의 성품 같다. 보길도에서 시가(詩歌) 생활로 말년을 보낸 고산 윤선도는 세연정 녹우당 낙서재를 짓고 길을 내어서 수레를 타고 섬 곳곳을 누비는 자연 속의 호사를 누린 은둔자 였다. 이들이 지은 고옥들은 학문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듯하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서양의 논리와는 달리 자연에 들어간다는 동양인의 정신이 고고하게 녹아있다.영덕 괴시리 한옥도 볼만하다. 한옥에서 담을 허물거나 낮추는 것은 서로 소통하고자 함이다. 돌담이나 토담에서 사진을 담으면 더 편안한 모습으로 나온다.“효율성이 높은 온돌 난방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 개발모델”이다. 전통한옥과 마을의 구조는 자연과 한껏 어울리는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옥에서 숨 쉴 나무 치장과 목가구의 배치는 미래 공간에서 한국을 드러낼 문화적 소재이다.

2012-03-20

덕향만리(德香萬里)

▲ 김유복 포항항도초교총동창회 명예회장입춘이 지나고 봄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과 함께 새 봄의 기운이 제법 감돈다.어둡고 추운 겨울을 지나면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오듯 우리사회에도 훈훈한 감동의 향기가 일고 있어 기분이 좋다.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시작한 `감사나눔운동`이 지역사회에 번지며 불어오는 훈풍탓 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포항제철소장이 도입한 `감사나눔운동`은 지역과 함께하는 포스코가 상생을 넘어 동반성장을 위한 `사랑받은 기업 만들기`의 일환으로 전개한 사내운동으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직원들로부터 사랑받는 회사가 되고 직원이 행복을 느끼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감사와 웃음, 선행을 나누며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운동이 감사나눔운동의 실체라 한다. `감사나눔`, 얼마나 정답고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말인가.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오늘날 서로에게 감사하고 배려하며 함께 나누자는 운동이야말로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며칠 전 지면에 소개된 바도 있는 `감사나눔운동 사례발표`에서 보듯이 부서 내 동료간 `감사나눔`을 넘어 거대한 제철공장 설비 하나하나에도 감사를 나눔으로써 사람과 기계가 하나 되는 신기원(新紀元)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포스코 패밀리의 `감사나눔운동`이 공장 울타리를 넘어 가정과 지역사회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음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감사나눔운동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던 포항시장께서도 `행복나눔운동`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포스코ICT 허남석 사장을 초청해 시청공직자들에게 특강을 듣도록 하는 등 발 빠른 동행소식이 지역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좋은 일은 늦출 이유가 없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서로를 감사히 여기고 배려하며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감사나눔운동`의 단초(端初)가 되었다는 손 욱 교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의 `행복나눔1·2·5운동`, 한 주에 한 가지 이상 선행을 하고, 한 달에 좋은 책 두 권 이상을 읽고, 하루에 다섯 가지 이상 감사를 나누는 운동이야 말로 진정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아닐까.얼마 전 지면을 통해 알려진 `염소할머니`의 선행이 주는 감동 또한 우리사회를 뭉클하게 한다. 또한 요즘 신문, 방송을 뜨겁게 달군 `탈북자 북송반대운동`에 앞장 선 연예인들의 모습에 감사하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일에 묵묵히 나서는 수많은 기부천사들의 나눔에 감사할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 하나, 나눔의 실천으로 변모해가는 현장이 있다.포스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을 위해 포항철강공단을 대한민국 제조현장 혁신허브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포스코의 성공적인 현장중심 혁신 QSS활동을 전파하여 원가절감과 생산력 제고 등 실질적인 이익환원으로 실천하고 있음은 `감사나눔`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반 성장으로 지역 경제가 더욱 발전되면 지역민의 삶 또한 윤택해 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포항시장과 포항제철소장이 앞장서는 `감사나눔운동`이 더욱 확산되어 우리 지역사회가 화합하고 밝아지는 모습이 정말 보고 싶어진다.`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 가진 자의 베품이 더욱 절실한 오늘날에 `감사나눔운동`의 향기가 온 세상에 퍼져 밝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이 운동이 범시민운동으로 승화되었으면 한다.더불어 커다란 사회문제화로 다가선 학교폭력 문제에도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좋은 운동이 교육 현장까지 확산되어 올바른 정신문화 정착에 기여 하였으면 좋겠다. `덕향만리(德香萬里)`, 옛 선비들의 말처럼 덕(德)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듯 감사나눔의 덕향(德香)이 오롯이 묻어나는 행복의 도시, 포항에 취하고 싶다.

2012-03-13

부부 싸움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여보” “당신”은 가장 부르기 편한 순 우리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한번 비껴가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피해는 아버지 몫이다.부부가 살면서 싸움을 피해갈 수는 없다. 기백이 넘치고 경제사정이 여유가 넘쳤던 경제연령 시기를 보내고 서로를 보살펴 주어야 할 시기(백년해로)까지 가려면 부부싸움도 현명한 지략이 필요하다.`60대 아줌마는 딸과 건강 돈 친구 찜질방`만 있으면 재미나게 노후를 산다고 한다.우스갯소리겠지만 시대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틀린다. 아내 처 여보 당신하면서 늙을수록 아내를 떠받들며 산다.황혼이별을 피해가려면 권태기 극복이 주요하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하듯이 노후인생도 가부장적 위치를 추구하면 실패확률이 높다. 지내온 생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잡아 나가는 것이다.부부싸움을 할 때도 상대의 마음을 심하게 찌르지 말 것. “은혜는 물에 새기고 한은 돌에 새긴다”는 옛말은 살아볼수록 가슴에 닿았다. 가슴에 서린 한 마디는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니 말빚은 부부사이일수록 지지 말아야 할 것을 명심해두면 노후가 더 원만해 진다.부부싸움에 따라붙는 냉전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는 비난과 담쌓기를 허물어 버리고 남편이 먼저 사과와 용서하는 습관이다.화해로 부부문제를 잘 푸는 어느 가장의 얘기다. 50대로 접어든 어느 봄날 아침, 집을 나가버린 진돗개 관리 문제로 아내와 원수처럼 싸워서 사흘간 말도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이 싸움은 나흘 만에 끝났다.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진돗개를 보고 “설기(진도 개 이름)가 돌아왔어요”하고 소리치며 뜰로 내려선 아내를 뒤따라 말문이 터져 일상으로 돌아갔다.아이들과 대부분 떨어져 생활하니 예전처럼 중간 매개체로 이용할 수 없으니 밥 얻어먹는 것에서부터 손수건 가는 것까지 거의 손수 찾아 헤매었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방 3개짜리 집인데 왜 그렇게 넓고 낯선 곳이 많았던지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이상하게도 서른 살 부부 때는 싸움을 해도 금방 화해가 되고 하루를 넘기는 일은 거의 드물었는데 나이가 오 육십 대로 넘어갈수록 가구를 부수거나 집어 던지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 싸움이 줄어지는 대신 침묵을 무기로 삼는 기(氣) 싸움 횟수가 늘어 일 년에 한 두 번씩이나 곧 풀어진다.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불편스럽기 때문이다.늘 그렇지만 아내에게 향한 원망하는 마음 보다는 그만 화해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고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게 화해하는 대표적 사연이다.육신의 아름다움은 찰나다. 꼿꼿하던 등이 굽어지는 것도, 탄력으로 넘치던 우유 색 피부에 버짐이 붙고 잡티가 피는 것도 찰나이다.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50대 직장을 떠난 아버지의 처지는 갈수록 더 난감해 진다. 아버지는 점점 갈 곳이 없어지는 걸까. 평생을 밖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만 살았던 아버지는 은퇴 이후를 대비하지 못했으니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처지가 부인에게는 답답한 인생살이의 표본이 되었을 것.적은 것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은 큰 것은 더더욱 내놓지 못한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세상 밖으로 나가 시간보따리 풀어놓고 걷는 것도 시름을 잊는 길이다.

2012-03-06

무역 1조 달러시대의 명암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지금 한국인의 70%는 부패를 걱정하고 있다. 올라가야 하는데 39위(2010년)에서 43위로 무려 4단계나 뛰었다. 현재의 부패수치에서 10%만 투명해지면 80조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수난의 역사를 이겨내고 경제선진국 반열에 올라 헐벗고 배고픈 가난을 물리쳤지만 홍수처럼 닥친 금전만능주의는 부패라는 큰 병리현상을 키운 셈이다. 지금 터지는 우리사회의 부패는 국가기강까지 흔들 만큼 커졌다.역사 속의 헐벗고 굶주림이 극에 달했던 시절은 이외로 길었다. 일제 식민정권의 수탈 속에서도 처참했던 6·25 전란을 겪으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인정만은 강해서 적은 것도 나눠먹고 서로를 아끼고 도울 줄 아는 부조 정신이 강했던 세월이 불과 반세기전 일이다.부패는 짧은 시간에 성취한 풍요의 그늘이다. 무역규모가 지난해 말로써 1조 달러를 넘었고 굳이 무역서열로 따지면 전 세계 9위다. 유년시절을 보리떡 나물밥으로 배를 채웠던 지금 장년 세대들에게는 놀랄만한 일이다. 인구는 많고 땅 덩어리는 작지만 날로 강해지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무역순위에서 보는 것처럼 IT산업은 물론 전자, 조선, 자동차 등 모든 부분에서 10위권을 넘나드는 강한국가이다. 경제력뿐이 아니다. K-팝은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가하면 추신수, 박찬호, 박세리, 최경주, 신지애, 김연아, 조수미, 신경숙 등이 우리민족의 우수한 자질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30년 만에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했는가하면 평창동계 올림픽과 여수 세계 엑스포를 준비하는 그 유례를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나라다.더욱이 88올림픽을 끝내고 두해 뒤인 1990년까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주로 나라로 바뀌어 아직 그 원조액수가 앞서가는 선진국에 비해 적긴 하지만 체면치레는 하는 나라다.그렇지만 부패가 이같은 자랑거리를 덮어버린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는 우리시대의 가장 암울한 사회현상이다. 비정규직, 이태백이 너무 많고 노동운동은 여전히 강성으로 가고 있다. 남북시대, 좌우 대립 양상, 지역갈등 현상도 쉽게 봉합될 것 같지 않고 총선을 앞둔 정치판은 여전히 비생산적이고 죽기 살기 싸움판이다.삶의 질을 나타내는 행복지수는 여전히 낙제점이어서 주요 39개국 가운데 29위다. 인터넷 수출 경제규모 K- 팝 등 모든 부분에서 10위권이내에 들지만 부패지수 43위, 국가 브랜드 33위다. 부패 공화국이고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수다.우리사회는 장관, 여야 노사 부자들이 더 법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사면을 잘 받는 재벌은 없을 것이며 높은 사람, 부자일수록 법을 가볍게 보고 쉽게 빠져 나오니 경찰을 겁내지 않는다.스티브 잡스는 그의 저서에서 “바르게 생각하라”고 적었다. 선진국형 21세기 국가로 가려면 모두가 공정해져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1월까지 정치지망생과 국회의원 등 1200명이 펴 낸 자서전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시절엔 으레 책머리에 1등을 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 가다로 신비감을 조장하는 글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공부는 끝으로 돌고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소통을 통해 공감을 얻기 위해서다. 1등을 하는 수재로 그렸다가는 소통은 물론 주변으로부터 마음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하면 우리도 밝아질 수 있다고 본다.회남자(淮南子)는 “천지의 길은 그 끝에 도달하면 반드시 돌아와야 하니 가득 차는 것은 손해다”라고 했다. 사기 동이(東夷)에는 우리민족을 두고 “어질고 선하다”고 했다. “동이의 풍속이 예(禮)를 숭상하고 무(武)를 천하게 여기는 군자의 나라”라고 적었다. 그렇다. 정직한 부는 만인을 살리고 따뜻한 자본주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도 남는다.

2012-02-28

아이만 낳으라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이모가 사라진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엄마 이상으로 정겨운 이모라는 호칭이 존재했었다. 이모는 사실 또 다른 살가움이 숨어있다. 저출산 사회 현상이 이모라는 살갑고 정겨운 단어를 내 쫓아 버렸다. 고모도 그렇고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외삼촌 외숙모도 사라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친족을 부르는 호칭의 존재가 모두 그렇다. 저출산 때문이다.여성이 평생 아기를 낳는 출산율(1.15~1.23명)이 흔들리지 않고 1위(OECD)를 고수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222개국 가운데 217위다.도시국가 홍콩과 최저 출산율을 두고 경쟁하는 꼴이 됐으니 민족의 미래가 단연 보장될 수 없다. 이번 세기 내내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아야 할지모르며 이미 익숙하게 들리는 처지가 돼 버렸다. 이 고개가 넘어가면 둔감해 질 수도 있다.가까운 일본을 보라. 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사라진 것이 20년이 넘었다. 대신 아이 한 둘을 키우기에는 부족함이 없고 유지비가 적게 드는 소형면적을 찾는다고 하며 고물가에 시달린 정부 관료와 대신들마저 합류했다.기둥뿌리를 뽑는 혼수비용이나 오를 대로 오른 주택가격이 문제다. 비정규직이 많다보니 여성일수록 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돌파, 결혼은 했지만 살인적인 교육물가가 태산처럼 버티고 있다.학벌주의는 아이를 키우는 데 부부가 일생을 투자하고도 모자랄 만큼 많이 든다. 안심하고 맡길만한 육아 지원 인프라역시 미흡하다. 결혼과 출산을 배려하는 직장 문화도 아직 미미하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다섯 명의 워킹 맘 가운데 한명의 비율(19%)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통계는 참담하다.이런 걸 해결해야 할 문화가 뒤따라주지 않는 한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없다. 양성(兩性)이 공평한 가족(家族)과 사회문화, 미혼모, 다문화 가정 등 어떤 유형의 가족도 차별받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다리 몇 개를 놓는 것 보다 중요하다.이주여성은 4년 새 두 배로 늘어나 지난해 9월까지 12만3천866명에 이르렀다. 2006년 이후 해마다 2만5천명이 넘는 외국여성들이 들어오고 있는 데 이 가운데 절반(52.9%) 이상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이다.국제로타리 3630지구 동해로타리클럽(회장 장종운)은 지난 17일 베트남에서 시집온 누엔티만(24세)등 5명의 합동결혼식을 주선하고 자녀 5명과 보름간 친정을 다녀오도록 했다. 이들 다문화가정의 잔치비용과 친정 나들이 예산 2천500만원은 동해로타리클럽 회원들이, 그리고 신부들이 입은 한복은 은하수로타리클럽에서 부담하는 등 다문화가정의 정착을 도왔다.이처럼 섞여서 성공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선진국으로서는 유일하게 2.0명 이상 출산국인 미국은 지금도 돈과 젊음 기술을 갖고 들어오는 이민 보따리를 여전히 환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한 예도 크게 작용되었고 골프 황제 타이거우즈 몸에도 5가지 피가 흐른다.갤럽이 지난해 155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도 조사에서 덴마크가 1위였고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4위까지 휩쓸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나라는 덴마크· 핀란드다.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라는 팸플릿을 산모에게 주는 나라다. 국가는 물론 사회 전체가 보살피고 키워갈 아이라는 뜻을 담는다.세금을 내는 국민인 만큼 국가가 무슨 일이든 해결해 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나라이니 국민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GDP는 1970년대에 비해 300배 쯤은 늘었을 것이지만 국민만족도는 여전히 남아프리카 수준(50~100)에 맴돈다. 인구문제가 효과를 거두려면 적어도 30년인데 재앙수준으로 다가서는 인구문제에 대해 정부가 너무 무관심하다.

2012-02-21

거대한 지식의 호수 공공도서관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인구 7만 명에 하나 꼴로 748군데에 불과하다. 인구 51만인 포항에는 다섯 곳, 경주도 두 세 곳에 불과하다. 미국·일본·독일에 비하면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며 공공도서관의 장소나 인원 예산지원 등을 살피면 그 수준은 더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시군이 중점적으로 펴는 상하수도·교통시설·공공지역 청소·민원 행정 분야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꽃다발 사회(다인종 도시)로, 인구가 많기로 이름난 뉴욕에 가면 공공도서관부터 먼저 가보라는 말이 이민자 사회에 굳어져 있을 정도다. 4개 연구센터와 85개 도서실에는 5천200만 권의 알찬 장서가 있는가하면 이주민 언어 교육을 비롯 문화강좌, 생활강좌 등이 정기적으로 열려 뉴욕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 되었다.카네기는 1901년 뉴욕도서관에 500만 달러를 넘게 기부를 했으며 미국 내 5천만 달러를 지원, 3000개의 공공도서관을 짓게 한 기부천사이기도 하다.가난한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앤드루 카네기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이 공장 저 공장에서 돈벌이를 하느라 항상 배움에 목말라했던 그는 이웃에 사는 예비역대령이 공개한 서재에서 공부, 지식을 쌓았다.필자역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경주시립도서관 독서회에서 활동했을 무렵이다. 모교교사가 된 친구와 1년에 책 100권 읽기내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기를 걸은 100권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 저절로 책 읽는 습관이 붙고 재미도 있었다.거대한 호수에 빨대를 꽂고 과거 현재 미래세상의 지혜와 지식, 인생살이의 폭을 시간보따리를 풀어놓고 마음껏 빨아들였던 시기는 그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베스트셀러를 고르고 읽는 것도 사회적 트렌드를 아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필요한 책을 읽게 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지난해 베스트셀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엄마를 부탁해` 등이다. 1위에서 50위 판매누계가 153만 권이여서 2001년 29만 권에 비해서 그래도 많이 팔렸다. 독서 인구는 줄지만 잘 팔리는 책들의 판매성적이 좋은 게 특별하다.이런 경험으로 인해서 필자는 가난한 나라에 가게 되면 먼저 도서관 실태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국제로타리에서 가난한 나라에 도움을 주는 일들은 물론 여러 가지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흑인마을(일리샤)에 국제로타리 3630지구 북포항로타리클럽 등 5개클럽이 학사를 지어주고 네팔 히말라야 산마을에는 간이상수도(여명 로터리클럽)를, 카투만두 거리를 배회하는 가출 여성들에게는 이 미용 기술을 배울 학원을 북포항, 동해, 청운, 은하수, 울릉 로타리 클럽 등 포항지역 5개 클럽이 지원했었다.인도 첸나이 초등학교 화장실건립지원을 위해서 권종호(북포항RC) 회장이 지금 열심히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컵으로 임산부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몽골의 병원에는 최신 초음파탐지기도 넣어주는 자리에서도 책은 언제나 덤으로 얹었다.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여성들에게 이 미용 기술 교육을 여는 등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지구촌의 극 빈곤층을 위해 인도주의 프로젝트를 펴고 있다.이런 인도주의 프로젝트 가운데 유독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부와 관련된 사업들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책을 많이 보낼 수 있게 유도하는 것도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어릴 때의 고통 때문이었을 것.국제로타리의 인도주의 실천 방향은 고기를 잡아 주는 것 보다는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기 때문이다.새해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키다리 아저씨들이 사는 분단국 아프리카 남 수단에 포항지역 로타리 클럽 회원들의 힘으로 학교를 짓고 책을 가득 넣어주고 싶다.

2012-02-14

도를 넘는 막말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막말이 도를 넘었다면 시정잡배 수준이다. 그것도 언어흐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방송과 학교 선생님, 법조계, 정치권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니 단연 사회적 문제다. 막말은 거치고 함부로 내뱉고 마지막까지 간 말이다. 우리사회의 언어지표가 될 방송언어는 한문장, 한마디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원론은 예전에 먼 곳으로 가버렸다.거칠고 괴이하고 폭력적이고 도를 넘는 선정적인 말들로 인해 언어의 방향타를 잃어버렸다.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방송언어가 안방극장에서 내 몰린지는 10년이 훨씬 넘었다.“싸가지다” “쪽팔리다” 정도의 잡어(雜魚)는 이젠 신사어가 됐을 뿐 아니라 이런 언어를 개그맨이 구사해서는 인기반열에서 멀어진다고 하니 우리사회에 유통되는 언어의 품위수준을 알만하다.강력한 사전심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일정한 언어교육을 받은 다음 출연시키거나 `삼진아웃제`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이상론일 뿐이다. 오히려 2, 3초의 시간공간도 두지 않고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막말을 잘 내뱉는 연예인이 인기가 높다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폰의 문자 공간에서 주고받을 때 ㄲ, ㅆ 등을 ㄱ, ㅅ으로 쓰거나 “넵, 넹, 앱”·“사랑해욥 사랑해염”·“앱 알겠씀다” “…임다”로 써보니 즐겁게 소통이 되긴 했다. 이럴 경우도 아이들에게 맞는 말이 따로 있고 가끔 그렇게 말한다고 일일이 알려줘야 할까도 고민스럽긴 하다.문제는 여론몰이를 할 수 있는 지도층의 말이 우리 사회에 퍼질 경우 오염도의 파장은 크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감탱이 꼴통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은 막말이다. “가카새끼 짬뽕”같은 말은 심하기도 하지만 조롱이지 표현의 자유는 더더욱 아니며 법관으로서 품위와 절제를 놓친 형편없는 언어다.한 고교교사는 “헌법재판소의 영감탱이oo들은 시대적으로 볼 때 꼴통 짓을 하고 있다”와 같은 막말을 서슴없이 토해냈다. 일부 교사들의 말도 이처럼 점점 거칠어져 전교조, 비교조가 따로 없다고 한다.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튀어 나온 대통령 조롱 발언을 시험문제로 냈던 중학교 교사가 시민단체가 검찰에 고발(2012,1월2일)한 것을 보면 학교 교육 현장에도 막말, 비속어가 어지간히 온 모양이다.학생은 교사의 한마디가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정호승 시인은 “글 잘 쓴다”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유명한 시인이 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정신이 이토록 짓밟히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염려스럽다.정치권의 막말이나 행동은 이미 수준급에 도달해 있다. 막말 수준을 넘어 욕설은 예사고 추악한 몸싸움, 깡충 뛰어 오르기, 던지기, 문부수기를 뛰어넘어 최루탄이 터지는 국회다. 도가 넘다보니 난장판 국회라는 말조차 면역이 생겨 버렸다.이런 정치판은 예전에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비변사(備邊司)는 나라의 중요한(實事)일을 결정하는 최고의결기관인데 허구한 날 실사보다 허사를 다루며 세월을 보내다 임진왜란을 맞았다.어느 날 백사 이항복(李恒福)이 유난히 늦게 등청하면서 그 이유가 “환관이 스님의 머리채를, 스님은 환관의 생식기를 잡고 싸우질 않겠소”그래서 싸움 구경하느라고 늦었다는 것.비변사에 모인 당상 당하 관리들이 배를 잡고 웃었지만 스님의 머리칼이 나 환관은 생식기가 없는 것을 빗대어 막말 당쟁을 일삼던 회의를 우회적 언어 포장으로 질책했다.정치권은 물론이다.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통제가 쉽지 않은 인터넷방에서부터 더러워진 말을 품격 있는 말로 가꾸지 않는 한 우리언어는 점점 더 거칠어 질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거친 인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수단이다. 그런 사람들로 우리사회가 채워지면 국격도 거칠게 보일 것이다.

2012-02-07

인디아, 소아마비 없는 천국이 된다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인도를 여행하다보면 팔 다리가 자유스럽지 못한 어린이들이 여행자들에게 매달리는 모습들을 어디서나 많이 본다. 어릴 때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해 팔 다리가 굳어버린 아이들이다.그동안 지구상에서 소아마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나라는 땅이 넓고 인구가 10억이 넘는 나라 인디아였다. 그 인디아에 지난 1년간 단 1건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병하지 않았다는 인도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2012년 1월13일)로 지난 30여 년간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기부금을 모으고 직접 현장에서 자원봉사에 나셨던 미국 질병 통제 센터, 유니세프, 122만 국제로타리 회원들에게는 벅찬 감동을 주는 뉴스였다.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3일까지 계속된 테스트 결과가 `네가티브`로 밝혀짐에 따라 인도를 `야생 소아마비 바이러스` 이동이 완전 차단된 국가로 인정했다.3년이란 완충기간이 있긴 하지만 인도는 소아마비 발병 국에서 제외될 기반을 구축했다. 10억이 넘는 인도에서 야생 바이러스 이동이 차단이 되면 이웃 파키스탄과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인접국의 소아마비 예방 활동이 쉬워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인도 바피 출신인 국제로타리 칼리얀 베너지 회장은 “전 세계에서 도와준 형제자매들의 후원에 힘입어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을 사지에서 구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이것으로 소아마비 박멸 프로그램이 완결이 아닌 만큼 지구상에서 전멸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활동을 멈추지 말자”고 호소했다.매년 1억7천400명의 인디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국 미국 영국 독일 타이완 등 전 세계 로타리 회원들이 11만 명의 인디아 로타리 회원들과 함께 어린들의 입에 백신 두 방울씩을 떨어뜨리는 봉사 활동을 벌인 결과이다.1985년부터 `소아마비 박멸 글로벌 이니셔티브(GPEI)`의 파트너로 소아마비 봉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국제로타리는 지난 27년간 국제로타리 회원들이 8억 달러에 이르는 기부금을 내고 인도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폴리오 발병국 어린이 20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 500만명을 폴리오에서 구해 냈다.2년 전부터는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보내온 3억5천500만 달러와 회원들이 상응한 2억 달러까지 투입, 소아마비 바이러스와 마지막 박멸 전쟁을 벌였었다.`빌게이츠`는 2012년 국제 협의회에서 5천만 달러 추가기부를 발표했다. 국제로타리는 이번에는 상응 하지 않기로 했다.소아마비는 이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1985년에는 38만 건이 발생했다가 차츰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인도를 제외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콩고 등에서 604건이, 지난 2010년에는 42건이 발생했을 뿐이다.이 같은 발병 건수로 보면 처음 국제로타리가 이 운동에 뛰어들었던 1985년에 비해 99%의 감소율을 기록,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3개국에서 1% “요만큼”만 남게 되어서 “프리선언” 이라는 기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한국은 1983년 6명의 발병 사례가 보고된 이후로는 프리 국가가 되었지만 이웃 중국에서 지난해 1명이 발생, 보건당국이 경계 주의보를 내린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60년까지 소아마비를 앓은 청소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소아마비는 걸렸다하면 약으로 치유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어서 예방접종으로만 차단할 수 있다.폴리오로부터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과 인력이 들어간다. 국가 별 지원 예산규모는 역시 당사국인 인도가 12억 달러로 가장 많다. 미국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많은 4억1천800만 달러를 지원한 일본보다 배를 더 냈으며 영국과 독일 호주가 5천만 달러씩을, 그리고 한국 정부는 부끄럽게도 38만 달러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

2012-01-31

부패 물결에 떠내려가는 한국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인간이 가지는 탐욕의 본성은 신도 다스리기 힘이 든다고 했다.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라는 말이 구약성경에 있는 것을 보면 뇌물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삼국지에도 첫 쪽부터 뇌물 얘기가 등장한다.우리사회의 부패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큼 널리 퍼져 국제투명성 기구에서 본 우리나라 투명도는 43위(2011), 그 전해보다 무려 4단계나 뛰었다.무역, 경제규모, 인터넷 등 모든 부분에서 10위권 이내에 들지만 부패지수만은 험난하다. 현재의 부패수치에서 10%만 투명해지면 80조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일본 수준(12위)만 돼도 우리나라 경제발전지수는 1.5%가까이 더 올라 간다는 것.0.5%를 더 올리기 위해서 국가의 모든 행정력을 쏟는다고 볼 때 이 수치가 갖는 힘은 엄청나다. 결과적으로 그 만큼 더 투명해지면 약자가 잘 살게 되고 정의롭고 행복스런 사회가 될 것이다. 부패가 지금보다 더 두터워지면 사회병리 현상은 심각수준에 이르게 된다.OECD 국가 가운데 사회 갈등 지수 4위(폴란드, 터키 다음 순위)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부패순위라면 3천조 원의 낭비요소가 된다는 학설도 있다.한때 차떼기 정당으로 몰렸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300만원이 돈 봉투파장에서 혜여나지 못한다. 국민들의 가슴을 때리는 일은 정치권문제만은 아니며 저축은행 사태도 그렇고 대통령 주변 권력 비리도 마찬가지다.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보는 고향사람들의 느낌은 더할 것이다. MB정권 출범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영포라인 얘기로 인해 포항을 바라보는 일상감정은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불편한 마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이상득 의원의 박보좌관이 SLS그룹으로부터 서민이 평생모아도 만질 수 없는 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박보좌관은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도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향응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다 진정사실에서 벗어난 인사도 이의원의 보좌관출신이고 포항 땅을 숱하게 밟은 인사다.한국사회의 부패는 이제 거침없이 흐르는 물결이 됐다. `떡값`이라고 우기는 정치인에게는 그 만큼의 떡을 안기고 뇌물을 받고서도 `담배값`정도라고 우기는 관리에겐 그 만큼의 담배를 사서 피우게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세상이 돼 버렸다.역사 속의 헐벗고 굶주림이 극에 달했던 일제 수난시대의 수탈 속에서도, 처참했던 6·25 전란을 겪으면서도 적은 것을 나눠먹고 아끼고 도울 줄 아는 부조 정신이 강했던 세월이 불과 반세기전이다. 수난의 역사를 이겨내고 경제규모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부패로 인해 나라가 떠내려간다.스폰서문화나 청탁문화는 악습의 최대고리이자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끼리문화`이기도 하다. 스폰서 문화, 폭탄주 문화역시 한 시대(군사문화)가 낳은 대표적 언어 잔재다. 검찰의 스폰서 문화에서도 폭탄주는 핵심이었을 것이다. 폭탄주가 돌면 술자리 상사로부터 들어야 할 언어폭력을 넘길 수 있고 돌아가는 잔에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넘쳐 좋았을 것이다.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악습이지만 악습(惡習)에 문화란 고상한 단어를 붙인 것이다. 개를 견공(犬公)이라하고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부르는 우리민족 고유의 미화법(美化法)으로 보면 된다.붕어가 낚시 바늘에 걸려 죽는 것은 미끼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이다. 미끼에 초연한 붕어는 절대로 뜨거운 냄비에 올라타는 일이 없으니 미끼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공직자 사익추구 및 청탁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을 제안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를 낮추는 결정적인 이유는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를 계속 풀어주는 사면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국민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부패 공직자, 부자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 돼 버리긴 했으나 사실 그 원죄는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시킨 어른들에게 있다.

2012-01-17

참혹한 슬픔

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자식을 앞세운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했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부모의 가슴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먼지가 앉지 않는다. 어제일 같았던 일본의 사회 현상이 우리 학교 곳곳에 몰려들어 요즘 우리사회의 최대 고통이 됐다. 왕따로 몰려 자식을 품에 묻은 대구와 광주에 사는 부모의 마음은 참척이다. 그래서 먼 훗날 한쪽 부모가 먼저 세상을 뜨면 꼭 앞세운 자식 이름을 부르며 데리고 가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물론 죽지 않을 만큼 맞고 들어온 어린자식을 보는 것도 큰 고통이다.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려져 있는 신발들/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유홍준 시 `상가에 모인 구두들`이다. 서로 다른 구두의 표정에서 인생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산자의 구두는 뒤엉키지만 망자의 구두는 그날부터 평온하다.벽하나를 사이에 둔 아파트에서의 죽음도 참혹하다.“옆집 남자가 죽었다/ 벽하나 사이에 두고 그는 죽어있고/ 나는 살아있다/ 그는 죽어서 1305호 관 속에 누워 있고/ 나는 살아서 1306호 관 속에 누워 있다” 김혜순은 인심이 끊어져 버린 아파트를 통째로 관으로 비유했을 만큼 도시는 처절하리만큼 메마르다. 그 지경이 되면 사람 사는 세상이라기보다는 관이나 마찬가지다.천안함에 탄 46명의 해군병사들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생목숨을 잃은 참사도, 연평도를 지키던 해병과 민간인 4명이 북에서 날린 포탄에 또 목숨을 잃은 일도 참척의 아픔이다.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목숨을 끊는 일도 너무 잦다. 대한민국에는 가치 있게 살만한 사람들이 더 목숨을 끊는다. 소득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의 자살시도가 지난 3년간 10%씩이나 늘어난다는 것. 이것은 급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살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다. 그래서 잘사는 국가들의 모임인 OECD에도 들어갔는데 대체 무엇에 쫓기기에 자살률 1위 국가, 살기가 힘든 국가로 내몰리고 있는 가.한국인은 1년 새 1만5천40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루 42명, 이 가운데 노인이 1/3을 차지한다. 고독한 노인사가 많긴 하지만 10대와 20대도 만만치 않다. 한해 교통사고로 숨지는 인원은 5천800명이다.일본은 한해 3만5천명에서 지금은 많이 줄었다. 5년여 만에 3만1천명까지 내려가기까지는 일본 정부가 1천800억이 넘는 예산을 쓰는 예방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인구를 따져보면 우리가 훨씬 심하다. 일본은 외부노출을 꺼리는 심리를 최대한 살려 방문 상담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알선해 주는 등 다양한 관리가 성공한 셈이다.우리도 일본을 뒤따라 고독사 시대까지 맞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 해 3만2천여명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직장으로 세상을 이별한다. 직장이 우리에게도 곧 낯설지만은 않다. 여기에다 청·장년 실업 및 1인가구의 급속한 증가에 맞물려 비노인층의 고독사 징후마저 두드러져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카뮈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은 어머니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가 사회 부적응자로 몰린다. 프랑스도 우리처럼 장례의식이 존엄해서 갈수록 가볍게 보내는 장례의식을 보고 언론마다 `노인들이 품위 없이 생의 종말을 맞는 것은 비극`이라는 사설을 종종 내보낸다.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삶이지만 허망하게 가는 빈손인가. 홀가분하게 가는 빈손인가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게 현세의 삶이다.

2012-01-10

한날한시 출발

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세월이 도공의 물레처럼 너무 쉽게 돌아가 버리는 것 같다. 호미곶과 간절곶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 산장은 해질 무렵에 도착하는 관광열차가 더 인기다. 지는 해를 즐기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해맞이에 늘 그렇듯이 기세 좋게 몰린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러서/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 했다. 손택수 시에서…달리면 꼴찌가 나오기 마련이다. 시인이 보는 경주에는 바위까지 당당하게 출전, 한날한시에 당당하게 도착시켰다. 바위가 경주를 하다니… 바위는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달리기를 했을 뿐이다. 황새나 말처럼 날고뛰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 할 이유도 없고 달팽이나 굼뱅이처럼 느리다고 한탄할 이유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 숱한 사람들이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새해의 첫날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이 설렌다. 누구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우리말 설날을 한자어로는 원단(元旦)·연시(年始)·연두(年頭)·세수(歲首) 등으로 부른다. 같은 해가 솟아도 새해는 늘 새롭기만 하다.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김남조 `새해아침의 기도`)대문호 괴테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자립 생활,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노력하는 인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희망, 이웃을 돕는 나눔 정신 등 다섯 가지를 출발하는 마음을 행복조건으로 들었다.중국시인 도연맹도 새해 아침을 맞는 젊은이들을 향해 이런 시를 남겼다. 성년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새벽은 없으니/ 때를 따라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하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계해년(1803) 첫날 두 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 번 새롭게 해야 한다”고 적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유배로 벼슬길이 막힌 자식에게 `폐족(廢族)`의 후손도 성인(聖人)·문장가(文章家)·참선비로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으니 학문 정진을 권하고 새해 첫날 새로운 다짐을 당부했다.시간은 지나고 보면 별 것이 아닌 것도 가슴 저리는 추억으로 남긴다. 지금의 50대 샐러리맨은 중학생 시절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통학했던 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는 행복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 시절 여학생들은 귀지를 파주던 엄마의 무릎 감촉을 들었다. 채근담엔 혹서와 혹한의 날씨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게 차고 더운 세간 인심의 이라 했고 그 인간세상의 염량(炎凉)보다 벗어나기 힘든 것이 내 마음에 서린 빙탄(氷炭)이라고 적었다. 과거나 현재나 물질문명이 풍요롭던 그러지 않던 숯덩이, 얼음덩이를 가슴에 품고 몸부림치며 사는 게 세상이다.영어로 1월을 뜻하는 재뉴어리(January)의 어원은 로마신화에서 두 얼굴을 가진 신(神) 야누스(Janus)에서 비롯됐다. 한 얼굴은 방금 지나간 해를 바라보고 다른 한 얼굴은 앞으로 닥칠 해를 바라본다는 것이다.2012년은 정치변화가 극심하고 남북관계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고 청년백수에다 하층민들의 낙오감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일신(日新) 일신 우(又) 일신,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길이다.저마다 승리하는 임진년, 성공의 한해, 영광의 한해, 보람의 한해를 만들어야 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내가 나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쓸 것이냐가 가장 긴요한 길이다.

2012-01-03

세월

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젊음이 가졌던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 완전아미(宛轉蛾眉)도 세월은 이기지 못한다. 이제 며칠 있으면 한 해가 저문다. 모두 다 보람 있는 한 해를 보냈을 까. 그러나… “새해에는 뭔가 의미 있고 큰일을 하리라, 하고 결심했는데, 벌 써 일 년이 다 됐다 말인가?” “한해가 이렇게 빠른가?” 하고 세월의 빠름을 통감하는 분도 많을 것이다.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세월의 빠르기를 부싯돌에서 번쩍 이는 불꽃같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인연에 묶인다. 출생신고하면 법이라는 사회 제도에 묶이고… 묶이는 게 싫다. 그런데도 인간은 뭔가 묶이면서 살아간다. 사람 간에 얽히고 떠받치고 그렇게 밀물 썰물이 돼가면서 살아간다.경주 동 남산 불곡, 천년 비바람을 한달음에 보내듯 하세월을 지킨 감실 여래가 그렇다. 천년침묵(千年沈默), 만년명상(萬年冥想)으로 정토(淨土)를 꿈꾸는 게 신라인들의 마음이었던가. 대자연은 법계(法界)요. 법계가 태어난 곳이 부처라 했던가. 보지 않는 이는 고요와 정적이 숨 막히는 곳이라고 탓할만한 곳이 경주이기도 하다.만법귀일(萬法歸一)이 뭐며 일귀하처(一歸下處)는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뜨거운 화두(話頭)이다. 그렇지만 하세월을 이기고 불국(佛國)으로 통하는 문이 널려 있는 곳이 경주다.고려 말 문신 우탁(禹倬 1263~1342)은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깨달음을 “오는 백발을 막대로 치렸드니 백발이 먼저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시조로 남겼다.얼마 전 정부 발표를 보니 우리나라는 무역 9위국,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다. 그렇다면 행복지수는 어디쯤일까. 국민 1인당 소득은 2만 달러를 오락가락하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5천 달러 수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남미 페루 등과 비슷하다.이런 현실은 국가경제가 세월을 업고 숨 가쁘게 성장하는 동안 우리의 정신건강이 신음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마음 감기를 앓는 환자도,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이혼 건수가 늘어나는 사회 환경에 대한 해답은 뭘까. 사랑이 부족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다섯 남매가 쪽방에서 칼잠을 청하던 잠자리, 킥킥~ 까르르~ 베개가 날아다니고 형 누나 옷을 물려 입었던 시절만큼은 배는 채우지 못했으나 모두가 건강하게 자라주고 웃음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몸도 늘 가볍고 마음감기를 앓는 일은 아예 없었다. 지금처럼 잘 사는 데 그런 건강한 시절이 왜 없을 까. 마음이 갖는 차이일 것이다.독수리는 결코 파리를 잡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은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운명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니 성공의 요소도 항상 담고 있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이자 경험이 된다.산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찾는 길이다. 가끔씩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라. 거울 앞에 선 자신을 향해 이름도 한번 불러보고 지금 잘 살고 있는가를 물어보라.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미운사람,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따듯한 인사말을 건네 보고 2012년 연하장이라도 보내보자.잘못 살아온 인생일랑은 낙엽을 버리듯 청산하고 이듬해 새 옷으로 마음 단속하는 새 삶을 살아보며 후회가 덜 할 것 같다. 내 말과 내 행동만 옳다고 고집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내 울타리에 갇혀 사려분별을 잃기 쉽다.입은 되도록 적게 열고 눈과 귀는 크게 열어 내 마음 속에 쌓여있는 소인배를 몰아내 보자.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이 때로 내게 귀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다짐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로 2011년을 보내면 어떨까.시호시호(時乎時乎)로다. 백사여일(百事如一)로다.

2011-12-27

고려청자 그 비색의 수난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신안 앞바다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고려도자기는 얼마나 될까. 1976년 초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 주꾸미가 물고나온 청자로 인해 고려 도기사의 역사는 새로 쓰게 됐다.지금도 신안앞바다에서 몰래 고려도자기를 건져 올린 어부들이 자주 경찰 출입을 한다고 보도된다. 신안 앞바다는 고려도자기의 보고다. 얼마나 더 깔려있는지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고려도자기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고려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윤택하게 빛내준 도공과 배, 사람의 생명, 눈물, 혼이 그만큼 쌓인 곳이기도 하다.고려청자는 비색이다. 그 비색은 지평선 가까이 펼쳐진 연두 빛 하늘 색깔이다. 도자기를 굽는 기술을 전한 중국 도공들마저 상감청자엔 찬사를 보냈다. 일본에 들어가서는 고향땅에서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았지만 또 다른 비극이 잉태된다.11세기 무렵 일본 불교의 교과서가 된 고려대장경 인쇄본은 주로 승려를 통해서 넘어가 지금까지 일본 국보로 모셔져 있다. 당시 고려의 앞서가는 인쇄기술과 청자의 비색은 일본상류사회가 두고두고 탐하는 귀한 물건이 되면서 도공들이 엉뚱한 피해자가 됐고. 인류는 신석기시대부터 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만들기 시작, 지금부터 1만년 전 도자기의 선조로 볼 수 있을 토기가 `비옥한 초승달지역`으로 불리는 이라크 북부지역 등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서 만들어졌다.우리나라와 북방 유라시아 지역에서도 이들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같이 칠이 전혀 입혀지지 않은 빗살문양 토기가 여러 차례 발굴됐으며 이 다음 시대부터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채색토기와 유약을 바른 도기 제작법이 인근 나라로 퍼져 나갔다.비슷한 시기 중국 한(漢)나라에서는 도기보다 더 높은 온도로 굽어내는 자기를 만들어 냈다. 당(唐) 송(宋) 시대를 거치면서 더 좋은 도자기들이 만들어 졌고 여기서 유래된 `차이나(China)`라는 국명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려자기는 사실 중국에서 들어왔다. 우리선조들은 가져온 그릇을 그대로 답습해낸 것이 아니다. 재창조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우리 것으로 탄생시켰다. 지금 유럽과 미주대륙을 K-팝으로 승화시켜 세계를 들끓게 하는 이치와 같다.고려 청자하면 표지 인물로 등장하는 청자삼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이나 참외모양병(국보 94호)청자는 고려도공만 갖는 예술적·창조적인 아름다음을 뿜어내고 있다.참외모양병은 술병보다는 꽃병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고려 인종(1123~46)이 묻힌 장릉(신증동국여지승람:개성서쪽 추정)에서 출토된 것으로 구전되는 이 청자 참외형병은 1916년 총독부 박물관이 한 골동상으로 부터 구입했었다.송(경덕진가마)과 고려(강진 사당리 가마 등에서 출토)에서 비슷한 시기에 크게 유행했던 목이 짧고 굽이 낮아 조형미를 갖추지 못했던 병과는 달리 여덟 골이 밑으로 흘러 안정감과 볼륨이 살려져 목은 길게, 입술은 활짝 핀 꽃잎 형태를 갖추고 있다.굽은 주름치마를 받쳐 입은 것처럼 조화를 부려 안정감을 살렸고 부드러운 질감과 비색이 천하의 명작을 만들었다. 잠시 상상을 해보면 인종이 서안에 두고 매일같이 어루만지다 못해 사후세계까지 끼고 간 천하의 명작이다.청자상감 운학문 매병(국보 68호, 간송미술관)은 그 형태는 송나라에서 유행했던 술병을 따왔지만 그 빛깔과 구름을 나는 학의 문양, 비색은 고려청자만이 갖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이다.너무나 아름다운 이 매병을 세상에 남긴 고려도공들의 예술혼과 기교를 지금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니 놀라고 놀라울 뿐이다. 신안 앞바다와 강진 땅은 영원한 청자의 고향이다.

2011-12-20

사경(寫經)하는 마음

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비지 코디네이터우리나라 사람들은 글을 잘 썼다. 손재주가 좋기 때문이다. 사경은 삼국시대나 신라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부처님말씀이신 불경의 긴 내용들을 종이에 정성스럽게 베껴 쓴 것들이다. 이런 사경정신으로 인해 우리나라 불교는 1세기경 히말라야와 미얀마·윈난성을 넘는 두 길로 들어온 중국보다 상당히 늦게 4세기부터 시작됐지만 불교가 갖는 정신세계는 더 화려하게 꽃 피었다.`국보 196호 대방광불화엄경` 등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만 40건이 넘는다. 화엄경을 필사하는 데 쏟는 정성과 기술은 우리나라 불교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도, 우리불교를 가져간 일본도 못 따라올 경지까지 갔다.금이나 은을 아주 얕은 가루로 만들고 닥나무로 만든 최고 품질의 종이에다 적당하게 녹인 아교를 두 서너 차례 바르고 말린 다음에야 글을 썼다. 한자를 쓸 때마다 절을 했다.일자삼배(一字三拜)는 한자 한자를 쓸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는 최상의 방법이다.관음보살 보문품을 세수 70에 쓴 경주의 서예가 심천 한영구 선생도 보문품을 쓰기 전 경주 백률사로 오르는 사면석불에서 천배씩 절을 올리고 마음을 가다듬고서야 붓을 잡았다고 한다.한국 개신교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정착, 성장한데도 우리의 전통 사경이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신앙공동체인 황해도 소래교회는 의주에서 무역상을 하던 서상륜이 만주에서 들여온 한글 번역 복음서에서 출발했다.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이다. 이들은 이 복음서를 베껴 서로 돌아가며 읽고 교회를 만들었다. 소래교회 사람들은 누군가가 요한복음·누가복음 필사본을 빌려오면 내 것과 함께 다른 한권을 더 베껴 나눠주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으로 채웠다.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이 땅에 도착한지 사반세기도 안 돼 성경전체가 한국인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인들의 애착과 집념을 두고 한 말이다.불경이나 종교의 경전을 베끼는 사경의 목적은 경전에 담긴 진리를 남에게 전화고 그 믿음의 세계로 자신이 들어가려 했을 것이다.불경을 사경하고 외우고 지니는 것이 구법(求法)이나 수도의 오롯한 과정으로 여기다 보니 한자 한자 정신을 집중해서 쓰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해 짐을 체험하고 빠져들었을 것이다.사경(寫經)은 원래 서예의 한 영역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사경은 주로 해서체를 중심으로 발전돼 왔다. 사경은 신라보다 고려에 들어 불교 지식층과 예술인들이 합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같은 걸작 품이 후세에 전해지게 됐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찰에 남아 있는 걸작들은 대부분 고려 사경으로 보면 된다.불심이 남달리 깊었던 고려인들은 다양한 서체와 부처의 법구(法句)가 갖는 의미를 고스란히 담긴 사경을 만들어 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는가하면 “느림의 미학”이 골수까지 전달되는 사경의 장엄미로 인해 필사를 쉽게 놓지 못했다.중생의 마음은 백지위에 떨어진 먹물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삶의 번뇌는 시장 채소장사에게도 있는 것처럼 고려인들은 한자 한자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는 것으로 번뇌를 잡고 마음의 불국을 세웠던 것 같다.1천700년을 이어온 한국의 전통사경은 장구한 역사적 사실이자 세계에 내놓을 만한 문화유산이지만 지금은 컴퓨터자판을 두들기는 현대이기에 밀려 사리질 위기에 놓였다.

2011-12-12

독도 비자

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코디네이터8월에 출렁거렸던 독도 얘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10월로 접어들어서는 1900년 10월25일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이름을 바꾸고 석도(독도)를 관할한다고 고시,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재확인하는 기념일과 독도패션, 음악회 등으로 뜸해졌다.가수 김장훈이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 `투루스 독도`가 이채롭긴 하다.독도비자시대가 있었다. 1970년대 이전부터 독도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시기까지 언론사 기자치고 한두 번씩은 다 겪었다.정치나 시사문제를 떠나 단순히 독도의 자연 환경이나 생태계를 취재하기위해서 낸 입도 신청서마저 번번이 거절되었던 시기를 그 때 기자들은 “독도 비자시대”라고 불렀다.당시 독도문제를 다루던 고위관리에게 “우리 땅에 그것도 언론사 기자가 들어가는데 굳이 입도절차까지 밟게 하는 것은 군사문화가 낳은 관습적 통제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설날까지 기다리는 게 방법이라”는 답변을 들은 기억이 난다.스스로 몸을 낮추는 외교정책이 일본에게 빌미를 더 제공한 것 같다.1965년에 체결된 한일 어업협정에는 독도가 한국 측 경제수역 안에 들어 있어 누가 봐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이 당시 약삭빠른 일본이 미국대통령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 존슨대통령이 방미중인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설득을 했으나 박대통령은 일본과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완강하게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문제는 1999년 1월22일 김대중 정권 때 발효된 신한일 어업협정에 따른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이다. 어업자원이 보호되는 이점도 있었지만 우리영토독도가 한일중간수역에 표기되자, 제3국에 그 분쟁상태를 더욱 드러내는 꼴이 됐다. 한국은 금융위기사태를 겪던 시기였다.당시 동해안에 선적을 둔 3천여척의 어선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어업제한조치로 피해를 입었고 특히 저인망 어선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동해안 선박 및 어구 제조업체들이 날벼락을 맞았던 시기도 그 때였다.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항상 우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못된 속셈을 가진 게 일본이다.반면 우리 쪽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한 때나마 방송에서 사라지기도 했었다. 2000년에 들어서도 TV방송사가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독도 일출을 새해 첫날 특집으로 내보내기위해 입도 절차를 밟았으나 번번이 허가가 나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이런 정책들과는 달리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시마네 현 죽도로 편입시키는 등 안하무인격으로 맞서 왔다.그런데도 독도의 모섬인 울릉도는 여전히 어렵다. 지금도 울릉군의 재정 자립도는 놀랍게도 11% 수준이다. 하늘 길을 여는 등 편리시설이 육지보다 앞서는 울릉도 개발계획이 절실하다.40년 넘게 걸려도 끝나지 않은 섬 일주도로를 보면 정부가 독도의 모섬인 울릉도를 얼마나 푸대접했나를 당장에 안다. 관리숙소 뿐 아니다. 여행자들이 쉴 최소한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다.갈수록 지능화되는 일본의 독도침탈야욕과 역사왜곡·망언은 해를 거듭할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뭘 더 망설여야 하는가.경제가 나쁠 때마다 극우로 고개를 돌리는 게 정치인 성향이다.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독도문제에 집착, 울릉도를 찾으려는 소란도 그 때문이다. 이들이 어떤 돌출행동을 하든 영토를 소유한 국가답게 처신하면 그만이다. 언론도 일본 극우의원이나 관료가 어떤 행동을 하던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소낙비처럼 쏟아졌다가 사흘만 흘러가면 잊어버리는 냄비근성에서 국민모두가 벗어나는 것이 독도를 지키는 최상의 방안이라 여겨진다.

2011-12-06

글은 사람이다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일본엔 첫 시간 수업이 있기 전 10분간 책읽기를 하는 초·중·고교가 2만 6천여 곳, 전체학교의 70%에 이른다. 아침독서운동을 20년 넘게 펼친 결과이다. 1988년 지바현의 한 고교에서 시작한 이래 전국으로 퍼졌다. 아침독서운동 10분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흘만 모이면 책 한권을 뗄 수가 있다. 독서를 하게 되면 많은 지식을 책에서 얻을 수도 있지만 생활태도를 학구적으로 바꾼다.책을 멀리하고 1년에 책 한권 사보지 않는 어른들이 수두룩한 지금의 한국인들을 바라보노라면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덕무나 `오거서(五車書:다섯 수레의 책)`를 얘기한 두보(杜甫)가 알까 부끄럽다.일본의 유명한 에세이스트가 19세기 유럽의 배경을 깔고 쓴 글을 한 소년이 서점 진열대에 둔 책을 유리창 밖에서 보고 있었다. 소년은 그 책을 읽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다음날도 바라만 보고 갔다.어느 날 소년은 책장이 매일 한 장씩 넘겨진 사실을 알았다. 소년은 그 토록 일고 싶었던 책을 서점 주인의 배려로 마침내 다 읽을 수 있었고 가난한 소년을 배려한 서점 주인의 마음씀씀이가 가슴에 찡하다.말과 문자는 인류의 기억이자 인간이 갖는 가장 귀한 보물이지만 이걸 우리가 모르고 살 뿐이다. 언어는 특히 인류의 소중한 기억이다. 말은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두 귀로 많이 들으며 세 번 생각하고 입을 열라지만 문자의 제어 능력은 기억보다 훌륭하다.글과 말의 진실은 또 있다. 특히 문학적 언어는 사고가 깃든 집 역할을 한다. 언어의 사유(思惟)는 모든 것을 통째로 얘기하는 것이다. 문학적 언어를 잘 구사하는 민족과 실사구시 적 언어를 주로 구사하는 민족과는 삶의 차원이 다르다.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민족은 끝없이 발전한다. 18세기 지역 언어에 불과했던 독일어가 세계적 언어로 부상하기까지는 괴테란 걸출한 문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괴테의 빛나는 문학작품은 분열된 독일을 문학적 힘으로 통합시켰다. 영국을 봐도 그렇다. 세익스피어와 워즈워스라는 시인과 극작가가 나오기 전 까지는 그저 그런 국가 대접을 받았을 뿐이다.직립 인간으로 땅을 걸어 다니긴 했었지만 인류는 오랜 세월 문자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 왔다. 세계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문자를 가지게 된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의 일이다. 수십만 년 동안을 헤맨 끝에 인류는 겨우 문자를 만들 수 있었으니 그 것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지고한 지혜의 응집력 덕분이다.이 문자가 나오기 전 희귀한 그림 한 장이 동양에서 만들어 졌으니 신비한 태극도이다. 음과 양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인간의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런 이치가 문자로 진화되지 않았을까.세계는 지금 10%가 넘는 8억의 인구가 글을 모르는 문맹자이며 아시아· 아프리카에 몰려 살고 있다. 특히 여성이 문맹인구의 64%를 차지함으로써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등 가장 많이 피해를 입고 있다.글을 모르면 빈곤에서 탈출 할 수도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다.우리나라의 비문해자는 1920년대의 90%에서 1950년대 67%, 1970년 7%로 낮아졌다. 통계청이 지난 2008년 38년만의 조사에서는 1.7%로 줄어 초선진국수준이 되었으나 10여년 사이 다문화가정이 크게 늘어나 이들 가정의 자녀 7만명이 새로운 걱정거리로 등장했을 뿐이다.연말이다. 이 해가 지기 전에 수입의 1%라도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은 해지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돈만보고 돌진하는 사람들, 책사는 데 인색한 한국 사람들에게 고문진보(古文眞寶)의 한 구절이 깨우침이 될까. “가난한 자는 책으로 부자 되고 부자는 책으로 존귀해 진다.”

2011-11-29

냉장고에 건강이 숨었다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다룬 TV프로그램이 시중 얘기꺼리로 자주 등장한다. 나이가 드니 약보따리가 늘어나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다. 당뇨증세가 있는가 했더니 고혈압이 따라 붙어 약봉지가 하나 더 늘었다.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꿈꾸던 진시황은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살았을 까.시황은 기원전 210년 불사(不死)의 약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50살 객사(客死)였다. 수은을 불사의 약으로 잘못알고 먹었다는 설이 있다. 예전 이야기는 언제나 더하고 뺄 것이 있다 하지만 장생을 꿈꾸던 황제의 최후로는 걸맞지 않다.무성생식을 하는 멍게나 불가사리, 해파리 등은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하니 진시황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얘기다.모든 질병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활방법과 환경이 반영돼 있다. 빈곤이 극심했던 50~60년대에는 결핵이, 위생상태가 불결했던 시절에는 바이러스(자궁경부암)에 의한 질병이 흔했다. 쭈그려 앉아 일했던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유독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많았던 것도 같은 흐름이다.지난 시절 짜고 절인 음식을 많이 먹었던 전통 한국인에게는 위암이 많지만 그들이 미국에 이민 가 낳은 아이들은 지나치게 먹은 지방질로 인해 대장암에 많이 걸리는 것을 보면 식생활이 중요하다.암·만성질환 동거시대, 암(癌)환자가 많기도 하지만 성인들의 고혈압 유병률이 33%쯤 되니 발생비율로 치면 별반 다를 게 없다.여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가족들이 어떤 질병에 잘 걸리는가를 대번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보는 견해는 이렇다. 냉장고 안에 절인 생선이나 젓갈 등 소금을 많이 쓴 반찬이 많이 들어 있으면 위암·고혈압으로 연결되고 고기·버터·베이컨과 같은 고지방 음식이 가득 들어있으면 대장암·심장병 냉장고다.반면 신선한 채소와 토마토 두부 검정콩 완두콩 등이 가득 차 있으면 항암 냉장고가 된다. 철분과 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한 살코기·우유·계란이 가득하면 어린이 성장 촉진 냉장고가 될 것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채소를 연간 35kg이나 더 먹지만 평균 수명에서는 처진다. 그 원인은 토마토 양에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나올 정도로 노화예방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 이탈리아인들의 토마토 요리가 세계적으로 다양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적당한 운동은 필수다. 나이가 들면 가장 피하고 싶은 게 치매다. `본인은 천국, 가족은 지옥`이라는 치매를 피하고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빠르게 걷기가 보약보다 더 좋다. 빠르게 걷기는 무서운 개가 쫓아 올 때 점잖게 내 빼는 속도라고 한다.걷기는 치매 발병 최대 요소가 되는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 즉 3고(高)를 낮추니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사색에 도움이 될 천천히 걷기는 자칫 식욕을 촉구할까 염려된다.하루 일만 걸음이상만 걸으면 당뇨발생률은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자동차 타는 것을 거부하고 평균 성인보다 하루 여섯 배를 더 걷는 공동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다고 한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의 신발은 뒷 굽 바깥쪽이 유독 더 닳아 없어진다.그렇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건강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그늘이다. 우리선조들이 그랬듯이 소식(小食)으로 풀고 입에 달라붙는 음식을 피하고 늘 운동을 하면 불로불사는 몰라도 건강한 노년을 유지할 수 있다.인간의 오랜 꿈이기도 하고 부질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이기도 한 장생이 초고령화 시대로 질주하는 현장에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울 뿐이다.

2011-11-22

활인심법(活人心法)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크기와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우주에도 검은 굴이 있다. 그 검은 동굴은 어느 순간 형상을 가진 우주의 모든 것을 휘감아 버릴지도 모른다. 동양사상의 근간이 되는 태극도는 문자가 없던 시절 음과 양이 하나로 돌고 도는 하늘과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이치를 만들어 냈다.지금도 지구를 보면 만물을 휘감아 도는 신비한 블랙홀 같은 느낌이 든다.가히 신의 영역에 까지 접근할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의 심층 의식에는 여전히 동굴 같은 죽음의 의식이 자리 잡는 것은 토템일까.한 20년쯤 더 살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상을 볼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예언하고 있다. 황우석 박사가 개발하려했던 줄기세포가 현실화돼 인간이 갖는 생로병사의 고통도 사라지는 이론이다.그렇지만 칠흑 같던 청년의 머리에 흰서리를 뿌리는 것이 세월이다. 인간은 열서너 살이 되면 마음 밭에 습기가 끼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은 조금씩 감추어지는 것이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 얻는 것보다 상실하는 것이 더 많은 과정이다.죽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큼 죽음 이후에 집착하는 동물이 없다고 했다. “배꼽에 두 손 모으고 관에 들어갈 때까지 남의 잘못 꾸짖지를 마라, 내 허물이 더 크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철리(哲理)였다.율곡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아기우는 소리, 책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라고 했다. 율곡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보면 “자녀가 자라 지식이 조금씩 생길 때부터 마땅히 선(善)으로 인도해야 한다. 어려서 가르치지 않으면 자란 후에는 옳지 못한 것이 버릇이 되어 마음이 흐트러져 바로 잡기가 매우 어렵다”고 적었다.착한 말을 하고 착한 행동을 하고서도 군자가 되지 못한 경우는 없고, 착하지 못한 말을 하고 착하지 못한 생각 행동을 하면서 소인이 되지 않은 경우는 없다.소학(小學)이나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아름다운 말을 일컫는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을 강조하는 문장이 많다. 아름다운 말이 착한 행실의 바탕이 되는 문, 철의 사고에서 나왔다.명심보감에는 후한(後漢)사람 마원(馬援)의 입을 빌려 “남의 허물이나 과실을 듣거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말라(口不可得言)”고 당부 했다. 물론 사회적 부정을 눈감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퇴계는 윤리도덕을 강조한 소학을 무릎 밑에 끼고 생활했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가슴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만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을 따른다는 뜻으로/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본받아/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는다는 말은 정신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길이다. -이황의 `퇴계집(退溪集)`에서 -퇴계의 활인심법(活人心法)이 가장 강조하는 건강법은 마음의 평안이다. 평안한 마음은 육신의 건강을 잘 유지되는 것이다.이렇게만 되면 가을 감기를 앓는 사람은 없다.머리는 자주 빚고,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이는 자주 마주치고, 침은 자주 삼켜라. 봄에는 `휴~ `하고 숨을 내 뿜으며 간이 좋아져 눈이 밝아지고 여름날의 `훠~ `는 마음속 화가 가라앉는다. `스~`하는 가을 호흡법은 폐가 윤택해지고 `취~`하는 겨울 호흡은 신장이 편안하고 사계절 내내 `후~`하는 습관을 가지면 소화를 돕는다고 했다.퇴계 이황은 공부에 너무 빠져 소화가 안되고 몸이 바짝 말라 병약했지만 칠십까지 살았다. 평생건강비법으로 명태조 주원장의 아들 주권(朱權)이 지은 이 활인심을 직접 필사(筆寫)해서는 이행했다.참을 인(忍)이 부족한 세태다. 정신·육신의 건강을 아우를 활인심법의 큰 가르침을 알면 세상은 지금처럼 요동치지 않을 것이고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쓰지 않을 것 같다.

2011-11-15

해동인의 진취적 기질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인도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불교를 국교로 떠받들었던 신라·고려는 물론이고 지금도 한국여행객은 여전하다. 1세기 경 히말라야와 미얀마· 윈난성을 넘는 두 길로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그로부터 300년 쯤 지나 우리나라로 넘어왔다.고구려·백제·신라 가운데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해동 끄트머리나라 신라가 상대적으로 불법의 세계를 여는 데는 더 진취적이었다. 신라의 골품제가 당나라 유학을 부추겼다. 골품제 벽을 넘지 못했던 많은 청년들이나 왕권에 반발, 마을이 싹쓸이(모량부)되는 난을 피하고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당으로 건너간 젊은이들이 많았다. 모량부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현장법사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은 원칙스님이 그 대표적 예다. 원칙스님의 학문은 후일 해동 불교가 대승불교로 가닥을 잡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신라승 가운데 가장 이름을 떨친 혜초는 고향 계림을 떠나 수많은 밤을 홀로 보냈고 사막에선 먼저 걸었던 구도승의 흔적인 해골바가지를 보고 구법여행의 길 표준을 잡은 해동 최초의 세계인이었다. 그해 8월8일 혜초는 쿠시나가리 열반당에서 먼저 다녀간 당의 현장법사가 그랬던 것처럼 부처의 발치에 엎드려 퍽퍽 소리 내어 한없이 울었을 것이다.혜초는 다른 구법승 80명과 하께 당나라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동천축에 도착, 구법여행을 마무리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기록은 없지만 돌아온 도반은 14명 뿐 이었다고 한다. 장안에서 머물다 보리사에서 입적한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이란 세계 4대 여행 기서를 남긴 구법승이자 천축에서 살아 돌아온 해동 최초의 첫 신라인이다.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겨우 100년이 조금 넘는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들어오는 통로였던 중국 감숙성 둔황 막고굴은 천 년에 걸쳐 600동굴, 2천400위의 불상이 조성됐다. 17호 굴에 남았던 이 두루마리의 실체가 펠리오 손을 떠나 세상에 밝혀지기까지 숱한 세월이 흘렀다.2500년 전 열반에 들기 전 부처는 이런 말을 남겼다. “걱정말라. 항상 기억하고 찾아야 할 네 곳이 있으니 태어난 룸비니와 깨달음을 얻은 보다가야, 법을 처음 설한 바리나시(사르나트), 쿠시나가리다. 이 네 곳을 돌아보고 내 가르침을 떠 올릴 수 있으면 나를 다시 만나 것과 다름없다”했다.나는 늘 거기에 있을 것이다. 위대한 상속을 포기했고 한 번도 남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부처의 이 마지막 가르침은 열반 후 최상의 수행법이 됐다. “모든 것이 덧없다(諸行無常)” “부지런히 정진하라(不放逸 精進)”는 부처의 말대로 순례자의 행렬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이 길은 천년을 넘겨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인도 바리나시에서 본 초전 법륜상의 아름다움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 바리나시 다투크 스투파는 부처의 다섯 제자 설법을 기념, 3세기 부처의 법을 인도 전역에 떨친 아쇼카 왕이 세웠다. 석주가 이고 있는 4마리 사자상(고대 인도의 상징)도 여전히 고고하고 아름답다.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다가야 대찰 마당 50m높이 대탑 앞에서 1300년 전에 서있었던 혜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첫 걸음을 기념하기 위해 바로 그 자리에 새겨놓은 큰 발자국은 수행보다 더 힘든 고행 길을 증명하는 산 증표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몸으로 겪은 부처는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는 그 자리가 깨달음으로 가는 자리라고 말 했을 것 같다.인도불교는 7세기부터 쇠락의 길을 걷는다. 한 때 천명도 더 묵었을 `날란다` 대학은 7세 이후 문을 닫았다. 그렇지만 갠지스는 예나 지금이나 죄를 씻는 영혼의 정화의식 장소 같은 곳이다. 불교도이던 힌두교도 이던 인도인들이 생을 마감하는 최고의 장소를 비라보는 나그네의 심정도 항하사의 모래알처럼 물처럼 유장하게 흐른다.

2011-11-08

계절이 이상하다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단풍이 천지를 뒤덮는 가을은 너나할 것 없이 좋은 계절이지만 곧 떠나버린다. 기상학자들이 보는 가을은 5~20℃ 쯤의 날씨인데 그런 기간이 한반도는 통상적으로 보통 두 달 정도이나 지난해 가을이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30일쯤 머물다 갈 것 같다. 초가을은 너무 따뜻해서 길거리의 짧은 바지차림이 어색하지 않았는데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 10월 달 하순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얼음이 꽁꽁 얼어버리는 이상스런 날씨다.지난해 가을 강원도 대관령에는 눈발까지 날렸었다. 올여름은 강수량이 많다보니 단풍색은 곱기는 했다. 수분이 없으면 잎 속 화학작용이 시원치 못해 단풍이 제 색깔을 내지 못한다.나무로 보면 초겨울 넘게 까지 나무가 많은 잎을 달고 있는 것은 하릴없이 재산을 축내는 거나 마찬가지다. 초겨울로 접어들면 나무 잎은 봄여름처럼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수분만 축낸다.나무는 가지에서 잎으로 옮겨 가는 영양통로를 막기 위해 잎을 떨어버린다. 매정하지만 이게 나무가 사는 자연계의 순환이치다.“단풍은 잎들이 제 몸을 떠나기 앞서 벌이는 작별 축제다”(김준민·들풀에서 줍는 과학) 그래서 단풍잔치는 낮과 밤의 기온차이가 심한 가을밤이면 더 요란하다. 수분 공급이 좋은 동해안 단풍보다 내륙 깊숙이 자리한 내장산 단풍이 그래서 더 좋다.나른한 봄, 무더운 여름, 건조한 가을, 차가운 겨울 등 이 사계절은 계절의 특성에 따라 한국인들의 오장 육부에 건강한 자극을 주고 장기마다 새롭게 적응함으로써 제 기능을 다해 강인함을 키워 나가는 것이 순환의 이치였다.폭염이 그치면 빗줄기도 가느려 지는데 이 몇 년 사이에는 그렇지가 않다. 지난여름도 그랬지만 내렸다하면 100※가 훨씬 넘으니 “요즘 비는 미쳤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봄가을이 실종되고 어느 날 느닷없이 더웠다가 추워지니 우리 몸에도 좋지 못한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말라리아, 뎅기열 등 아열대 질병이 발생되는 등 한반도의 질병지도까지 바뀌고 있다. 어류도 환경도 바뀐다. 봄 조기, 가을 전어는 옛말이 돼 버렸다.유난히 길고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과 쏜살같이 지나쳐 버리는 짧은 봄·가을로 인해 소비패턴도 급격히 바뀌어서 제조업체들마다 상품기획에서부터 판매전략 등에서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한반도를 급습한 `2 계절 환경` 변화는 사계절에 익숙했던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재편시키는 중이다. 이를테면 2010년 가을의 경우 10월 하순 만추의 계절에 강원도로 스키 타러 휴가를 내는 직장인이 나왔으니 말 이다.반면 여름 놀이시설인 워터파크는 늦봄에 폭염이 시작되자 개장일을 앞당기는 한편 폐장일은 늦추는 이변이 생겨났다. 한반도에서 스키장과 워터파크가 동시영업이라는 이변이 생겨나게 됐는가하면 심지어 한국인의 대표적 성격까지도 “빨리빨리”에서 “더 빨리빨리”로 달려간다는 심리학자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적응력·경제성·불확실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하이브리드 키워드는 입는 옷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속속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시중에는 계절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입는 패션이 인기다.세상 사람들은 좋았던 것이 반복되기를 늘 마음속에서 염원한다. 고맙게도 자연은 비를 많이 뿌리고 봄·가을은 짧게 흘려버리지만 이 순환법칙을 그런대로 지키니 가을은 다시 올 것이다. 좋은 것은 오래오래 머물지 않기에 허전함이 더 밀려오는 모양이다.

201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