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발행인승부차기는 잔혹하다. 반면에 보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통쾌한 승리감을 느낄 수 있어 순간적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팀은 지난 5일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 영국 웨일스 카디프 시티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7만 관중이 영국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가운데 열린 8강전에서 양 팀은 연장전을 합쳐 120분간의 혈투에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자 승부차기에 들어가 5-4로 이겼다. 영국 선수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영국은 1~4번까지의 선수는 차례로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 선수들도 구자철, 백성동, 황석호, 박종우가 골을 넣으며 장군 멍군을 불렀다.7만 관중이 자국 선수가 골을 성공시킬 때마다 함성을 질렀지만 운명의 승부는 다섯 번째 키커에서 갈렸다. 영국 축구 전설이 된 첼시의 대니얼 스터리지의 슈팅이 우리 골키퍼 이범영의 선방에 막힌 반면 기성용의 발끝을 떠난 볼은 영국 골네트를 가른 것이다. 영국 팀은 1대1 경기를 역전시킬 패널티킥을 전반에도 얻었지만 키커로 나선 램지의 슈팅을 정성룡 골키퍼가 막았다. 이후 양 팀의 골문은 굳게 닫혔다.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실축을 하고난 뒤의 대니얼 슈터리지의 모습은 인생을 모두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 정도로 참담했다.축구 선수들의 발끝을 떠난 볼이 10.97m가 떨어진 골라인에 도착하는 시간은 0.4~5초. 시속 120km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속도다. 골키퍼가 공을 보고 어느 한쪽으로 몸을 날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0.6초라 하니 이론적으로는 막을 수 없고, 순간적으로 골키퍼는 어느 한 쪽을 운명적으로 선택 할 수밖에 없다.축구 역사를 보면 1960년대부터 승부차기가 양 팀의 승부를 가르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월드컵에서는 1982년에 처음 도입,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여러 번 승부차기가 나왔었다.승부차기 잔혹사는 심리적 부담이 의외로 크다. 1969년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멕시코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다. 이날 호주와의 경기에서 대표 팀 임국찬 선수는 월드컵 진출 승부가 걸린 패널티 킥을 넣지 못했다. 어느 한 순간에 역적이 되다시피 한 이 선수는 결국 미국으로 가는 이민 길에 올라야 했다. 어린 선수가 잔디밭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축구전문가들은 승부차기 성공률을 대체적으로 77%로 보고 있다. 먼저 차는 쪽이 6%로 승률이 높은 반면 원정경기보다 홈경기 승률이 낮다. 그 의미는 응원전을 펴는 관중을 의식하는 심리적부담일 것이다.축구는 세계적 인기 스포츠다. 지난 1967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지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3년을 끌었던 내전에서 200만 명이 학살당하거나 굶어 죽었던 시기에도 딱 사흘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다. 1969년 1월에 있었던 사흘간의 휴전이다. 나이지리아 축구 대표 팀과 친선경기를 갖기 위해 자국에 온 브라질 팀 펠레를 보기 위해서 사흘간 휴전이 발효됐으나 축구경기가 끝나고 다시 살육전이 전개됐다고 한다.축구가 어느 새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스포츠로 등장했다.1954년 한국이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 했을 즈음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였다. 돈이 없어 대표 팀은 열흘쯤 합숙훈련을 하고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취리히 행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2진은 첫 경기가 열리던 전날 밤에야 가까스로 도착했다. 취리히 공항에서 만난 각국 기자들로부터 날짜나 알고 왔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고 한다.그때 선수단이 갖고 간 공식 경비가 200달러였으니 지금 억대 선수들의 연봉으로 치면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그 시절 선배들의 눈물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4강 신화를 만들었으며,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의 4강 신화 등 오늘의 한국축구를 있게 한 출발점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2012-08-07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발행인동양에서 침과 뜸은 인류최초의학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초부터 신체 어딘가가 아프거나 가려우면 손으로 긁거나 꼬집고 찌르고 한다. 처음엔 뾰족 한 돌로 하다 나뭇가지로 바뀌고 철을 발명한 이후로는 침으로 발전했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침 뜸, 명상 등 대체의학으로 난치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 같은 명의(名醫)얘기는 늘 들린다. 그런 재야의 고수 침쟁이들이 심심찮게 의료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침구사 면허제는 일제 때부터 있다가 1962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막혀버렸다. 지금은 침구사 면허를 받은 사람 말고는 한의사만 침 뜸을 놓을 수 있을 뿐이다. 잔인한 일제도 허용했던 것을 대한민국이 막아 버린 셈이다. 현재 면허 없이 침 뜸을 붙들고 있는 침구인은 전국적으로 3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현행의료법이 위반이라면서 침구사 면허제 부활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7월 헌법재판소가 이 의료법 조항에 대해 어렵게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지만 말기 암이나 난치병 환자들은 여전히 생명의 끈을 살리기 위해 소문난 고수들에게 기대려 한다.동아시아 문명학을 전공한 경희대학교 이만열 교수는 신문 기고문에서 한의학(韓醫學)을 가장 위대하고 숨겨진 보물이라고 평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그 요소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비법을 유지한 복합 침술 전통은 한국뿐이라고 했다. 특히 만성질병에 대한 침술 등 한국의 전통적인 한방치료는 서양에서는 방증이 없다고 평가하고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는 한국인의 기술로 극찬했다.그렇다. 우리나라는 자연의술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나라다. 대표적인 자연의술은 침 뜸 찜질 벌침 따주기 부항 사혈 단식 등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된장 청국장 고추장 젓갈 약술 등 발효식품이 있는가하면 온돌을 중심으로 한 한옥은 일상생활이 양생법이자 치료법이어서 들여다볼수록 그 깊이의 끝을 잴 수 없다.이런 위대한 자연의술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기후조건이 좋고 맑고 아름다운 기운을 가진 땅이 있었고 열과 혼을 지닌 선인들이 기 감각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의 핵심은 한의학이지만 그 원조는 한국이다.태백산맥 작가 조정래의 침 뜸의 효험얘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아리랑을 반쯤 탈고했을 때 오른쪽 어깨가 마비됐다. 그 때 단번에 해결해준 분이 한 때 의료법위반협의로 당국에 여러 차례 불려 다닌 신의(神醫) 구당 김남수 옹이다.중국 중 의학계는 구당 선생을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신침`이라고 칭송한다.통즉불통(通則不通), 불통즉통(不通則通)은 한의학에서 늘 쓰는 말이다. 혈기가 통하면 안 아프고 막히면 아프다는 뜻이다.인생은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생로병사의 길에서는 누구나 환자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려야 할 절망 앞에서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절망의 블랙홀을 앞둔 환자들은 도대체 누가 고치나. 생명은 우주로부터 온다. 우주는 한 개의 거대한 생명체여서 모든 존재는 그 일부이다.포항에서도 50년을 침 하나만을 붙들고 살아온 고수가 있다. 부항의료법, 벌침치료법, 금사주입요법을 비롯해 361혈(血)로 갈라진 인체 경혈도 등을 A4 크기에 무려 800쪽에 담은 방대한 침구전문(鍼灸專門) 및 전통한의학서(傳統韓醫學書), 동양침구(東洋鍼灸)저술에 매달려온 동양원 김상식(66, 金相植)선생이다. 한 때는 들것에 실려 온 환자를 침 한방으로 걷게 해준 명의(名醫)이라 해서 전국에서 많은 환자들이 그의 사무실로 새벽부터 몰려왔지만 10년 전부터는 환자시술은 접고 저술에만 몰두하는 한편 전국에서 고른 제자 몇 명만 키우고 있다.문민정부가 들어설 즈음에는 침 뜸 양성화를 위해서 전국 침사들의 시위를 이끌다 옥고를 치른 아픈 경력도 있다. 지금도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음을 맑히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 의사가 못 고치는 불치병을 다스릴 한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보기드문 이 시대의 이인이시다.
2012-07-31
▲ 권오신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과 함께 중국 역사 속의 2대 재상으로 불리는 관중(管仲)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다. 예와 의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틀로, 염과 치는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품격이다. 관중은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가 빠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부족하면 위험에 처하며, 셋이 무너지면 근간이 뒤집히고, 넷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권력의 창에서 말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층이 정치인이다. 정권말기가 되니 그런 사람들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언론을 통해 만난다. 그 과정은 모두가 코미디다. 비리나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 “일단 모른다”며 발뺌부터 먼저하고, 수사망이 좁혀지면 “표적수사”라고 반발한다. 뇌물정황이 드러나면 공통의 답은 “빌린 돈 등등”이다.미끼처럼 고혹적이고 매력적인 것이 없다. 미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치욕을 면할 수 있다. 미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붕어는 결국 뜨거운 불판(감옥)을 타게 된다.현 정권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대법관추천도 기가 막힌다. 현 정권이 추천한 정부 고위관료들 가운데 국회 공청회 과정에서 매끄럽게 넘어 간 사람은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마지막 만큼은 흠이 없는 사람이 추천될 줄 알았는데, 청문회과정에서 보니 범인이나 그 사람이나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집이나 부동산 매매가 익숙하지 않은 영세민들은 다운계약서란 이름조차 생소하다. 종교적 편향을 가진 인사까지 끼었다. 깨끗한 인사가 이토록 없을까.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분들의 얘기는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시중에는 버티기 삼절이라는 노래 말까지 생겼을까.물론 부패현상은 정권말기에 되풀이되는 일이어서 별반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 터지는 대통령 형과 그 주변 인사들의 부패문제를 포항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영 편치 않다.포항 출신이자 대통령의 최고위측근으로 불리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한 달 전에 구속 되었는데, 이번에는 대군으로 추앙받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구속됐다. 박영준 차관의 구속도 그렇다.정권초기 영포라인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을 때는 그래도 참아줄만 했다. 포항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국회의원은 그만두고 외국 대사라도 나갔으면”하고 걱정들을 했다. 그렇게만 했던들 감옥 가는 대통령 가족의 전철만은 밟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그동안 문민정부다.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다 MB정권에 이르기까지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참모들이 줄지어 요직에 들어섰다. 대통령들은 그 때마다 취임구호는 거창했지만 수장의 아래에는 이름만 달리한 인사들이 속속 등장해서 오늘과 같은 부패의 고리를 이어온 셈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예외 없이 직계가족과 친인척의 비리에 걸려 넘어 졌다.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결국 친인척과 측근이라는 종래의 덫을 넘지 못하고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는 모양새다. 생선머리에 해당되는 측근의 도둑질은 정권실패로 귀결된다. 우리나라는 무역, 경제규모, 인터넷 등 모든 부분에서 10위권 이내에 들지만 부패지수만은 험난하다. 현재의 부패수치에서 10%만 투명해지면 80조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일본 수준(12위)만 되어도 우리나라 경제발전지수는 1.5% 가까이 더 올라 간다는 것.대한민국 국민들은 어쨌든 올 연말에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룰 것이다. 살아서는 후손(生而無後)을, 죽어서는 유골(死不留灰)을 남기지 않았던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의 6무(無)는 고사(古事)일 뿐이다. 저우언라이는 외빈과 만찬이 있는 날은 먼저 주방을 찾아 국수 한 그릇을 말아먹곤 했다. 자신의 배가 고프면 손님을 챙기는 데 소홀할까 우려했던 청빈한 리더였다.
2012-07-24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발행인16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수세식 화장실은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훌륭한 이기이나 물을 너무 많이 쓴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설거지물이나 빗물을 모아두고 사용했지만 편리함을 쫓는 인간 심리로 인해 지금은 수돗물을 쏟아 붓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의 물 사용량은 엄청나서 벽돌(2ℓ)을 넣어도 한번에 10ℓ를 쓰지만 편리함이 우선이다. 수세식 화장실의 진화는 눈부시다. 일본 효고현에 만들어진 바다 속 화장실은 그 자체가 명소가 됐다. 수세식 변기를 둘러 싼 해초류와 고기가 노는 바다 속 광경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곳이다. 런던은 밤이 되면 남자 변기가 갖춰진 화장실이 노면에서 솟는다. 점잖은 영국신사들의 노상 방뇨를 방지하는 편의 시설이 됐다.우리나라 변소는 원래 거름으로 쓰는 농경민족의 영향을 받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산업사회의 발달과 가구 형태의 변화로 가장 빠르게 발전했다. 화장실을 오가는 계단을 피아노 건반 효과를 내어서 명소가 된 곳이 있을 만큼 발전을 거듭, 지금은 견학을 오는 국가로 바뀌었다.그동안 화장실 문화를 이끌었던 고속도로 휴게소나 여행객들이 갈수록 불어나는 전국의 KTX역사는 사랑방 놀이터와 연결된 듯하다. 신경주역은 유일하게 우수를 정수해서 쓰는 곳이다.이런 고민 끝에 당국이 올해 내놓은 수세식 화장실 물 절약 방법은 좀 엉성하다. 2012년부터 대형 건축물에는 수세식 화장실의 경우 소변은 4ℓ, 대변은 5ℓ절수형 설치, 물 절약을 시도 한다지만 사실 기존가구들은 절약방법이 난감하다.지금 유럽은 냄새 없이 태우거나 냉각을 시켜 거름으로 사용하는 방법 등 기발한 절수방법을 찾는 반면 우리나라는 허드렛물 재사용조차 피하는 가구들로 인해 이 부분에서의 절수 단계는 지극히 초보 단계다.머리 몸을 따로 씻는 등 물 부족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는 국민수준이어서 더 어려운 실정이다.우리국민이 독일인들처럼 목욕만 하는 습관을 기르면 진주시민이 하루 사용할 물을 절약 할 수 있다고 한다.5년째 가뭄이 휩쓸고 있는 아프리카 사헬지역은 지금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며칠 전까지 가뭄을 겪었지만 저수지 바닥이 마를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곡식은 모두 말라버렸고 물을 마시지 못한 가축들은 집 앞에서 쓰러진다. 하루 한 끼 죽 한 그릇을 온전히 목에 넘기지 못하는 가구가 늘어난다고 한다. 당장 곡기를 넘겨야만 치료가 가능한 어린이가 100만 명이나 된다.아프리카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가까운 나라에도 딱한 사정이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국제로타리에서 아프리카·아시아 어린이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그런 현장을 쉽게 본다.심장병을 앓는 몽골 어린이를 보살피러 갔을 때에 유목민들을 따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봤다. 겨울을 나는 소년들이 얼굴을 씻는 모습을 보고 물의 귀중함을 가슴 저리게 느꼈던 현장이었다. 몇 명의 소년이 주전자에 담아온 물을 한 모금씩 입안에 넣고 온기가 느껴지면 조금씩 손바닥에 흘러내어서 두 뺨부터 씻는다.비누세수는 더 기가 막혔다. 손바닥에 고인 물에 비누를 풀어 마치 선크림을 바르듯 얼굴에 가볍게 펴서 때를 걷어 냈다. 물이 그만큼 귀했기 때문이다.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가는 에베레스트 산동네에도 물이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물은 있지만 정수가 되지 않은 구정물을 마셔야하는 마을도 아시아에서만 여러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우린 지금 물 낭비국가로 분류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2012-07-17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발행인음식이 도시의 운명을 좌우한다. 육류에 특별히 입맛이 더 끌리는 것은 인간이 갖는 동물적 본성 때문일까. 칠면조·닭 요리를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은 매년 3천500만 마리의 칠면조와 8억2천만 마리의 닭을 먹는다. 80%의 영국인들이 도시에서 살고 있으니 도시인들이 대부분을 먹어치우는 셈이다. 영국인들은 1세기 전만해도 국민 한사람이 연간 25kg정도의 육류를 먹었지만 21세기 들어서는 80kg으로 상향됐다.중국의 경우는 훨씬 더 심각하다. 1960년 대 초까지 중국인들은 연간 4kg의 육류를 먹었지만 2005년 이후엔 무려 60kg으로 섭취량이 늘어났다. 도시인구가 늘어나면 육류 소비량은 세계의 모든 도시가 정비례한다. 상대적으로 육류 섭취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도 전 세계 농작물의 3분의1은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먹을 동물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프리카·아시아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것이다. 적어도 세계에는 지금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20억 명이 넘는다. 아프리카·아시아 오지마을 봉사를 나가보면 우리나라 50~60년대에 봤던 배불뚝이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배불뚝이는 병이 아니고 빵을 채워주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온다. 지금 오랜 가뭄으로 아프리카 사헬지역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그런데 쇠고기 1kg을 얻는 데 필요한 물은 보리 1kg을 재배하는 데 드는 물 양의 1천배쯤 든다고 한다. 또 소 한 마리가 뿜어대는 가스는 사람의 20배에 달해 공기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도시인들이 버리는 쓰레기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많은 도시인들의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공급하려면 우주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비닐하우스나 가축을 사육하는 공장 규모의 농장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식재료가 인간이 넘나들기 힘든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전 세계 땅과 바다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들은 항공기와 선박 열차를 타고 각국의 도시로 분배된다.우리가 먹는 음식은 지구를 또 얼마나 철저하게 괴롭히고 있나. 한국인들이 한 해에 버리는 음식물쓰레기는 돈으로 환산하면 203조원 어치에 이른다고 한다. 이걸 아프리카에 풀어놓으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7억 명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터전을 새롭게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우리가 버리는 음식물은 음식물쓰레기로서도 문제지만 앞서도 지적했듯이 먹을수록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더 큰 문제다. 생명유지를 위해서 먹지 않을 수는 없지만 저탄소 식생활을 통해 이것을 가능한 줄여 보자는 게 `푸드 마일리지 운동`이다.푸드 마일리지는 영국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세상에 처음 나왔다. 현지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운송수단을 통해 가정까지 걸리는 거리를 말한다. 푸드 마일리지가 길수록 탄소배출량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비닐하우스보다는 밭에서 그냥 기른 야채를 먹는 것도 이치가 같다.인간이 소·돼지고기를 지금보다 반으로 줄여 먹는다면 엄청나게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소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통상 인간보다 10~20배나 된다니 그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다.채식을 즐겨보라. 채식으로 몸이 단단해지면 매일 한번씩 보는 변도 튼실한 황금색이 된다. 채식만 하는 코끼리와 황소가 이 지구상에서 힘이 가장 센 동물인 것을 보면 채식의 위력을 단번에 알 수 있다.그렇게 절약하고 남은 돈으로 아프리카·아시아 오지지역 어린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오랜 가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헬지역 어린이는 한 끼 죽조차 넘기지 못하는데 우린 너무 과식하고 있다.
2012-07-10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고전의 끝은 어디인가. 읽을수록 새 맛이 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그린 학문의 깊이에 끝없이 빨려 들어간다. 송나라 제 1시인으로 꼽히며 당송시대 8대가에 이름을 올린 소동파(蘇東坡·본명 蘇軾·1036~1101)의 출생지(四川省)와 문학적 고향을 몇 차례 여행한 적이 있었다. 20대 초에 지금으로 말하면 문과고시에 패스한 공의 문장은 대를 이어 전해진다. 44살 때에 독서가 만권에 이르러도 율(律)서는 읽지 않는다고 말했던 필화(筆禍)사건은 중국역사에 올랐을 정도로 유명하다.극한을 오가는 굴곡과 부침의 운명, 삶과 관운의 허망함을 눈밭에 찍힌 기러기 발자국에 비유했던 소동파는 미식가로도 별호가 붙었다.중국에서조차 대표작이 된 적벽부(赤壁賦)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고 `동파육`이 더 유명하게 비칠 만큼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소동파는 차(茶)에 대한 미각도 뛰어나 그의 시(詩)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차가`보이차`다 라고 예찬했다. “자고로 좋은 차는 가인(미인)과 같다!”고 보이차를 한없이 치켜세웠다.적벽부는 역사를 얘기하는 듯 보이지만 자연에 더 감복하고 무위 사상에 닿은 시(詩)로도 해석된다. 비탄조로 끝나는 시가 유독 많은 것은 그가 처한 환경 때문이다.요즘 항저우나 쓰찬성 시골 음식점에서 나온 동파육은 솔직히 말해서 삼겹살을 그냥 쩌 낸 것이어서 특별한 음식은 아니었다.`돼지비계 맛을 알면 비로소 중국의 맛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푹 삶아서 입에 한입 가득 넣으면 바로 녹을 정도로 부드럽게 묘사 되었지만 이방인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쫄깃쫄깃한 그 껍질 맛을 제대로 느끼도록 하고 비계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가득 느껴지되 소홍주를 흩뿌려 느끼하지 않게 하는 맛을 내야만 일품 동파육이라고 중국인 가이드가 덧붙였다.사실 중국에서는 `고기`는 무조건 `돼지고기`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육(肉)으로 쓰고 쇠고기(牛肉) 양고기(羊肉)는 따로 쓸 정도다. BC 6000년경부터 중국은 돼지를 가축으로 키웠다. 중국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무려 37.5kg(2006년 식육편람)이지만 쇠고기는 5.4kg에 불과하다.한국은 소 19.6kg, 돼지 17.4kg이다. 일본 19.2kg과 6.6kg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소비격차가 나타난다.중국에서는 오죽하면 돼지고기와 곡식이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猪糧安天下)고 했을 까. 야사에서 나온 말일 것 같다. 당시 생겨난 맹목이라는 말의 어원은 소동파가 기산(箕山)에 살 때에 하양의 돼지고기가 맛좋다는 소문을 듣고 하인에게 몇 마리 가져오게 했는데 하인이 도중에 잃어버렸다. 하인이 다른 돼지로 요리를 했지만 그 이름에 눈멀어 모든 사람들이 맛이 너무 좋다고 극찬했으나 곧 사실이 밝혀졌다. 맹목의 어원이다.소동파는 1079년 43살이던 해 왕안석(1021~1086·실용주의 학자)에 맞서다 어사대의 감옥에 갇혀 무서운 체형을 받았을 때다. 아들 소매와 암호를 정하고 바깥이 평온하면 야채와 고기 요리, 죽을 시기가 되면 물고기 요리를 들여보내기로 했다.어느 날 심부름하는 친척이 실수로 물고기 요리가 들여보내지자 소동파는 저 유명한 절명시를 남겼다. 그는 136일간의 옥살이를 끝내고 나와서는 “세상의 일은 한바탕 큰 꿈이니 인생은 얼마나 처량하던가”라는 말을 남기고 낙천주의자의 삶을 시작했다. 시련이 소동파를 변화시켰다.36세 이후부터는 자의 타의로 귀양살이를 자주 하는 등 삶은 평탄치 않았고 오히려 불행했다. 동파거사는 필화로 귀양살이까지 했으나 여전히 책을 사랑했다.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종일 써도 닳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게 오직 하나있으니 바로 책이다”라고 했다. 사실 보석은 보기엔 즐거우나 실생활엔 쓸데가 별로 없고 집·음식은 긴요하게 쓰는 물건이지만 닳고 없어진다.
2012-07-03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경주의 신라 왕릉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늘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천년 고도의 능은 늘 따뜻했다. 몸은 비록 잿빛 현대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들은 늘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편안한 고도를 그린다. 경주 도심의 부드러운 능선(線)은 물론이고 부처님의 땅 남산은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마음을 풀 수 있는 곳이다.바미안 석불이나 간다라 불상은 크기만 했을 뿐 엉성하다. 돌 색깔도 불상에 맞지 않다. 사람이 갖는 신체적 대비나 구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보는 영감을 살리지 못했다.불교 예술은 결국 발생지 인도에서부터 가장 먼 곳인 경주에서 꽃피었다.질박한 돌 색깔이 그렇다. 담박하고 소박하고 불상이 짓는 미소는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만큼 예술성을 지녔다. 그 대표적인 불상이 석굴암 본존불이다.국보 무영탑(석가탑)을 지은 아사달은 백제 사람이었다. 백제 사람이 지었다 해서 석가탑을 파내 버리지 않았다. 그 때 신라 사람들의 생각 폭은 넓었다. 석가탑 다보탑이 불국사에 남아 있어 지금 경주는 물론 한국이 그걸 얼마나 잘 팔아먹고 있나.불국사 가람배치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연결시켜놓았다. 안양(安養)문을 지나면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극락(極)전이다. 자하문 밖 해탈문(解脫門)을 들어서면 8억4천만 명에게 법공양을 하고도 지칠 줄 몰랐던 석가여래가 중생들을 맞는 대웅전이다.경주는 지난 천년 것을 같고 이만큼 살아 왔다. 새 천년을 살려면 신라 사람들처럼 백제· 고구려· 당나라 것도 수용, 자기 것을 만드는 폭넓은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원래예술은 광대무변한 세계를 갖고 있다.경주개발은 지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땜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주발전이 한국관광의 간판으로 보고 단기간에 많은 예산을 투입, 밀려드는 중국· 일본 관광객 등 세계에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내놓을 수 있도록 신라 천년 유적과 휴양시설을 잇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경주에 중심거리가 있는가.경주의 중심이었던 황오, 황남은 이미 사라졌다. 새로운 중심이 필요하다. 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질 곳은 동남산보다는 서남산이 좋을 것 같다. 경주세계문화 엑스포가 열리는 보문에서 어느 땐가 복원될 황용사-서남산을 잇고 KTX역을 배경으로 하는 관광벨트를 형성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서남산 일대 500만평쯤을 표본크기로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옥체험단지도 들어가고 경주 고유 음식거리, 전통 소목장, 유기공예품, 고서점 등 경주에 가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단지를 새롭게 조성, 실제 신라인들이 생활하는 대형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곳에 가면 사람이 어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지구촌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자. 경주보불로 변 경주민속공예촌 전통 소목장이나 유기 공방 등이 KTX개통이후로 미미하긴 하지만 변화가 감지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알은 시작을 알리는 첫 순서다. 알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성장은 삼국을 통일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할 단초가 되는 출발점이었다. 경주는 알의 신화로 출발해서 삼국을 통일시켰다. 예술의 가치는 더 크다. 우리 역사에 신라와 신라 예술을 빼고 어떤 말도 할 수도 자랑거리도 없다.우리나라하면 신라와 경주를 가장 상징적으로 내놓을 수 있고 다음이 서울이다. 경주는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라 천년의 걸작 예술 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도 가장 한국적인 예술을 이만큼 간직된 역사도시는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천년을 시작할 청신한 아이디어가 요청되는 시기다.
2012-06-26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대구의 한 고교생이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본적이 있다. 자신이 처한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그런 참담한 고민을 했을까. 그 때 그 현장을 주변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그 학생은 여전히 해맑은 소년으로 남았을 것 같다. 막판까지 몰린 고민은 어른이나 아이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나의 가치가 무(無)라고 느껴질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가장 많다고 한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명예는 치명적이다. 소득은 2만 달러가 넘고 국격도 날로 향상되는데 국민은 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 우리나라 국민 행복지수는 소득 수준과는 거리가 먼 25위다. 소득수준으로 보면 5천 달러 수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맞먹는다.일본은 1998년 이후 해마다 3만 명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자살률을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 2위 경쟁을 하는 나라가 한국이며 노인 자살률은 이미 일본을 제쳤다.학생이나 대중인기를 누리는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의 분위기는 10여 년 전에 아픔을 겪었던 일본과 비슷하다. 얼굴 없는 누리꾼이 내뱉은 험담이 인간을 노란선 밖 철로나 강으로 떠미는 잔인한 집단성도 일본을 베꼈는가 하면 한꺼번에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흡사하다.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확률이 200분의 1이라고 한다.우울증 환자를 보고도 지독하게 무심한 사회적 의식수준을 먼저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하고 꾸준한 상담을 통해 인간적 끈을 놓지 않을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티베트는 히말라야에 갇히고 중국에 갇혀 절절이 외롭게 살아가는 척박한 삶을 살지만 노인을 학대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 만난 낮선 영혼에게도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해 주고 늘 베푸는 삶을 살다보니 정신건강은 뛰어나서 주변에 치매를 앓는 노인을 볼 수 없다고 한다.인간이 가장 희망하는 삶은 산 능선을 타는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삶의 번뇌란 시장의 콩나물 장사나 재벌그룹회장이 다를 바 없다. 길거리 청소원도, 채소장사도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더 안타까운 것은 꽃다운 청소년의 일이다. 연초에도 열여섯 꽃다운 영혼이 스러진 일이 있다. 서울 강남의 중심으로 통하는 대치동 아파트에서 수학을 잘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내향적 성격, 말수가 적은 한 고교생이 몸을 던졌다. 그 전날 “공부가 힘들다”는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글을 누가한번 미리 챙겼으면 소년의 유서가 되지는 않았을 것.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 지방학생들까지 몰려들어 400~500곳이나 되는 학원을 선택하기조차 만만치 않은 곳이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수업을 한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맞는 학원을 골라주는 컨설팅회사까지 등장한 기막힌 현장의 뒤안길에는 청소년들의 고민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7~2008년 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10대 청소년 수를 집계한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가 9.6%로 가장 많았으며 송파·노원·양천·서초구 순으로 나타났다. 모두 사교육 특구들이자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지역 일뿐 지방이라서 마음을 놓을 처지는 아니다.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빚어낸 비극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통 받는 바탕에는 뿌리 깊은 학벌, 학력, 경쟁 지상주의를 으뜸으로 치는 사회 풍토가 극단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이미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이 선택한 평일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하는 조례에서 더 나아가 초·중·고교생의 주말과 휴일 학원출입을 막아 버리면 어떨까./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2012-06-19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터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연령 인구가 증가하면 실질 GDP도 늘어난다. 생산연령인구가 피부양인구보다 빨리 증가하는 기간을 `인구 보너스기'라고 한다.아시아에선 우리나라와 싱가포르·홍콩·대만·태국·중국 등 비교적 소득이 높았던 6개국이 인구보너스 기간이 곧 끝난다. 일본은 이미 1990년에 끝나버린 인구구조의 변화다. 물론 경제위기가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쏟아졌다.2007년을 기준으로 볼 때 6개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인구의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옮겨가는 현상이 일본 속도와 비슷하거나 앞서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2000년의 고령화 사회로부터 `초고령화사회'로 까지 18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예상수치다.인구비관론으로 보면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은 단연 최고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에 허덕이는 한국으로서는 이노베이션(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시킬 인구 정책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러나 저출산을 푸는 데는 동감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게 바로 이 문제라 할 수 있다.이웃 일본은 이미 노노()간병시대로 접어들었다. 저출산, 핵가족, 고령화로 인해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간병인의 25%는 75세 이상이어서 그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부모의 간병을 위해 결혼·직업을 포기한 간병 싱글족(族)이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정도다. 일본같이 사회제도가 완성된 국가에서도 간병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근무환경· 임금수준이 좋지 못하다보니 80%가 3년 내 전직하는 것으로 알려 졌다.더욱이 일본의 간병인 가운데는 우울증을 보이거나 65세 이상 간병자의 30%는 자살충동을 느낀다. 일본역시 부모나 아내를 보호시설에 보내는 것이 동양적 정서에 맞지 않아 집에서 보호하는 가정도 있다.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초고령화 시대로 질주하지만 부패· 권력형 비리· 국내 정치문제· 남북문제 등에 매달려 아직도 저출산 문제를 푸는 데는 미흡한 정책을 펴고 있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이대로 가면 2050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40%를 차지, 인구재앙시대에 살게 된다. 얼마 전 창간 20주년을 맞은 교수신문이 향후 1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할 키워드에 대해서 전국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탐문에서 `복지'가 47.9% `사회통합'이 44.9%, `양극화'가 36.8%, `저출산·고령화'가 36.0%로 31.8%의 `통일문제' 앞에 간신이 서게 됐다.몰론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진보나 중도로 보는 교수들은 `복지'를 가장 중시했고, 보수라고 생각하는 교수들은 `사회통합'을 강조한 것 같다. 흥미로운 사실은 복수응답으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에서 1순위로 선택된 키워드는 `사회통합'이었고, 2순위가 `복지'였으나 3년 전에는 `저출산·고령화'였다.결론은 한국사회가 지역, 계층, 세대, 이념 등 갈등이 깊어져 `사회통합' `복지'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은 노동력 고갈이 예상되는 가운데 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베트남·필리핀 등 외국으로부터의 노동 인구 및 결혼인구의 유입으로 꽃다발 사회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다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독거청년· 독거처자 등 나홀로 가구가 400만 시대에 진입했다. 나홀로 가구는 2010년 415만3000가구(23.9%)에서 35년엔 762만8000가구(34.4%)로 늘어나는 반면 1인가구가 선호하는 반려동물산업도 15%정도 커졌으며 나홀로의 뒤안길에선 가정이라는 최대 교육공간까지 무너져 버린 게 현실이다./권오신 객원 논설위원국제로터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2012-06-12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고문진보(古文眞寶) 스승 얘기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얻는 복(福) 가운데 인연 복을 으뜸으로 치고 인연 복 가운데서도 눈 밝은 명사(明師)를 만나는 복이 가장 크다. 스승은 긴 인생을 항해하는데 나침반(針盤)이기 때문이다.지난 봄날 늦은 시간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대학진학 상담을 하러 들렸다가 눈에 들어온 광경이다. 절반이상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아닌가.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고 3 수험생들은 하루 평균 5시간 24분을 자고 11시간 공부하는 것으로 나왔다. 잠은 선생님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다.우리아이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주로 밤을 새우지만 미국 청소년들은 대학에 다닐 시기 밤을 새운다. 어느 쪽이 성공을 먼저 할까.“요즘 학교는 배움터라기보다 서비스기관처럼 보인다. 입시 공부 말고는 다 면제다. 청소 체육 서클활동도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입시생은 예전의 귀족보다 호사스럽다. 육체노동 면제는 물론이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각종 제도적 서비스들을 받는다. 하지만 이게 과연 특권일까. (`문화읽기' 최선옥 시인)”196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아이들을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아버지 어머니의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줄이 촘촘하게 처진 노트위에 글을 쓰는 만년필 촉감은 산뜻하기도 했으나 당시로서는 부잣집 아이의 표시였다.검정 교복을 맞추고 명찰가게로 달려가 대개는 직사각형 검은 천에 흰색 실로 이름표를 새겨 달았다. 옷핀을 달아 떼었다 붙이는 아크릴형까지 다양했다. 원래 한복이었던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복은 1920년대부터 서구식 양복형태의 일본 것을 받아들여 배지와 명찰을 달았다. 1983년부터 교복과 머리 자유화가 되고서도 명찰만은 계속 다는 학교가 여전하다.지난해부터는 전자 칩이 들어간 초등학생 전자 명찰이 나와 학부모들이 집에 앉아서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체크할 수 있도록 발전됐으나 스승과 학생간의 관계는 발전하는 시대문명과는 반비례해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더욱이 언어모델의 두 축인 학교·가정교육이 무너지니 갈수록 난폭해지고 남녀학생 구분 없이 욕을 달고 사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우리학생들이 욕설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을 두고 “유난히 상처와 스트레스가 많은 청소년기의 가정교육· 공교육이 모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라는 진단을 내놨다.이들 학생들의 일상생활로 들어가 보면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표현이 맞다. 나홀로가구· 핵가족으로 가정이 좁혀지니 조손가정은 이미 없다. 간혹 있어도 신화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녀의 잘잘못을 나무랄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예의염치를 모르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하다.버릇없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거친 행동을 빼닮은 아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는 증거이기도하고 입시·능력위주로 가는 공교육의 잔해인 것 같아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세상이 정나미 없이 변하긴하지만 스승의 현장은 여전히 학교라는 현장이다. 선생님이 제자를 보살피는 크기만큼 그 학교는 학생들 간에 일으킨 사고가 없고 성적이 올라간다.작가 김영하는 그의 소설 `퀴즈쇼'에서 1980년 이후에 태어난 20대를 두고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고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우리세대'라고 표현했다.아홉 가지 몸가짐과 아홉 가지 마음가짐(九容 九思)을 제시한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없어진지가 오래다./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2012-06-05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이다. 해발 6천m가 넘는 구름층을 통과하면서 부운기(浮雲起)와 부운멸(浮雲滅)을 읊조려 보았으나 생사(生死)가 말처럼 환원(還元)되지 않을 뿐 아니라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산대사는 생과 사를 그렇게 읊었다. “삶이라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死也一片浮雲滅)” 허망하고 무상하다.세상일은 다 그렇게 허망하고 무상한 것만은 아니다. 봄에 지천으로 피는 꽃이 그렇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이 그렇다. 꿈같은 사랑인들 흘러가지 않고 남을 수 있는가.부귀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상일 어느 것 하나 허망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여산여수(如山如水)의 삶이 가장 빼어나다. 산을 닮고 물을 닮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나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살기 때문에 허망하고 무상하다고 서글퍼한다.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고대사회에선 윤회정신이 강했다. 당나라 때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수서(隋書)엔 고대 한반도의 장례풍습은 `북치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운구 했다`고 적혀 있다.다시 돌아오는 삶을 약속하기 때문에 슬퍼 할 일이 없다. 금강경에 적힌 짤막한 법구는 세상잡사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무릇 큰 가르침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무릇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허망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만일 이런 모든 현상들이 거짓임을 깨우친다면 그 때가되면 부처를 만나리라.” 부처가 말한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도 마찬가지다. 이 법칙을 피해가는 생명체는 이 지구상에서 아무도 없다.가끔씩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르면 무조건 에밀레종 앞에 선다. “일승원음(一乘圓音)으로 뭇 생명들은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극락을 가지며 부처의 진리 바다에 들어 생령이 구원받기를 발원합니다.”에밀레종 가장 육중한 몸체에 돋을새김을 한 이 법구가 천둥처럼 들리니 내 지낸 생이 너무 허망(虛妄)해서인가. 이래도 부질없는 욕망의 끈에 매달릴 건가. 삶의 번뇌는 시장 채소장사에게도 있다.석가모니는 가장 위대한 상속을 포기했다. 8억4천만 명에게 공양을 하고도 지칠 줄 몰랐으며 평생 동안 남에게 한 차례도 화를 내지 않았다. 석가모니가 화를 내었을 경우는 제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했을 때였다.극락에 이르면 다시 하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사실 중생으로서는 인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지옥을 통과하는 기쁨이 으뜸일 것이다. 석가모니부처가 태어나신 인도는 종교의 나라다. 힌두의 진리는 하나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만큼 다양하다는 얘기다. 3대신 가운데 죽음의 신 `시바`가 으뜸이듯 인도인들의 말년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2천500년 전에 크게 깨달음을 얻으신 석가부처님도 그 진리가 텃밭이 되었을 것이다.우리나라 불교는 원효가 일으켰다. 1세기 윈난성· 미얀마와 히말라야 설산을 넘는 두 길을 통해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4세기쯤 해동으로 넘어 왔다. 출가해서 공부가 익어갈 무렵 원효는 한 때 화엄사상을 용궁에서 가져 왔다고 생각했다. 철이 들어서 보니 겨자씨보다 적은 내면의 세계에서 가져온 것을 알았다.원효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기 마음을 꺼내 오기까지 밑바닥에서 피 땀을 흘리면서 내공을 쌓는 치열한 삶을 통해 화엄학이란 큰 깨달음을 세상에 내놓은 해동 성자다.원효는 삼한시대에 들어온 불교를 해동불교로 만들었다. 그 불교 정신을 고려에 들어서는 보조국사가,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 진묵대사로 이었다. 근대불교는 경봉스님이 선맥(禪脈)을 잇는 등 뛰어난 수행자들이 여전히 이 땅을 단단히 지키고 있다.
2012-05-29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터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요즘 효를 얘기하면 마치 우화처럼 듣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독거청년· 독거처자 등 홀로가구가 급속하게 팽창하는 뒤안길에는 원룸· 오피스텔이 그 실체다. 문을 닫아걸면 세상과는 단절이다. 이러니 홀로 보내는 노인사정은 더 참혹하고 가족관계를 벗어난 아이들을 제어할 가정교육이 무너지니 버릇없는 아이가 늘어날 뿐이다.고려장에 얽힌 얘기를 다시 써보자. 고려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관리가 늙은 어머니를 산속 움막에 내려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직 인사로 큰절을 올리자 노모는 “얘야, 네가 내려갈 때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잘 살피면서 내려가라”고 일렀다.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을 가슴깊이 새긴 그 관리는 노모를 다시 집으로 모셔와 법을 어기면서 평생 봉양을 했다고 한다.노모는 어느 날 아들이 송나라 사신이 구별이 전혀 되지 않은 노새 두 마리를 끌고 와서는 “어미 노새를 찾아내라. 어미 노새를 맞추지 못하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는 으름장으로 곤욕스러움을 겪는 조정 관리들을 보고 “얘야 두 노새를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게 새끼다”고 당부했다.노모의 지혜가 어려웠던 조정을 구해 냈다.러시아에선 동네 노인이 돌아가시면 박물관이 하나 사라 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 사태 때도 바닷가 노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사했다. 노인의 지혜와 경륜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얘기들이다.우리나 일본처럼 노인을 홀로 보내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독립 가구의 증가는 가정을 빠른 속도로 해체시켜 이미 조부모는 가족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흔히들 도가 넘는 패악을 저지르고 천륜을 어길 때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한다. 반포지효는 자식이 잘 자라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단연 으뜸이지만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하는 동물도 더러 있다.제주도 윗세오름 어간에서 반포지효를 하는 까마귀 기사가 실린 글(문화읽기 최선옥 시인)을 우연찮게 본 사실이 있다. 한라산 등산을 하던 일행들이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데 까마귀 20여 마리가 무리지어 주변을 돌면서 무리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적당히 흩어두고 현장과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살펴 보았더니 먼저 온 까마귀가 현장을 한 바퀴 돌고는 다른 무리를 끌어 들여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면서 일행이 남긴 음식을 주워 먹었다고 한다.까마귀는 보기에도 흉하지만 울음소리도 소름끼치게 한다. 그렇지만 까마귀 만큼 어미를 살피는 새는 없다는 게 조류학자들의 증언이다. 일행이 모두 까마귀의 효성을 확인하고 감탄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이런 얘기도 있다. 한가롭게 봄을 즐기고 앉은 사슴들을 바라보다가 그들 곁을 분주히 오가는 까치 두 마리를 발견했다. 수상쩍은 행동을 눈여겨보는데 부리에는 뭔가 가득 물려 있었다.“저게 뭐지?” 궁금해 살펴보니 그것은 사슴의 털이었다. 까치들은 기술 좋게 사슴의 털을 뽑아 부리 안쪽에 모았다가 더 이상 물고 있을 수 없으면 한쪽에 내려놓고 다시 다가가는 것이었다.마침 가려운 곳을 긁어줘 기분이 괜찮다는 듯 사슴들은 아예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가끔 보기에도 아플 정도로 쪼는 강도가 세지면 “야, 살살해.”하고 말하는 듯 사슴은 몸을 움찔거렸고 행동이 잰 까치는 뒤로 물러났다가 이내 다시 다가갔다. `모은 털로 뭘 하려는 거지?` 잠시 궁금했지만 해답은 쉽게 풀렸다. 까치부부가 보금자리를 새로 꾸미려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그렇게 함께 봄을 맞고 있었다.홀로가구는 농어촌 사정도 비슷하다. 어디가나 노인세상이다. 더욱이 3대가 같이 사는 가정은 흔하지 않다. 3대가 같이 살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신의 존재처럼 느꼈던 대가족제도의 아름다운 시절이 아주 멀게 느껴지는 게 세월의 한 모습이다.
2012-05-22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한반도의 봄이 짧아지긴 했으나 그래도 5월을 일러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큼 싱그럽고 아름답다. 찻잎을 따는 우리나라 5월은 더 아름답다. 첫물 차를 마시면 여운이 오래가며 마지막 한 모금이 넘어가지 않은 것 같다. 동다송(東茶頌)으로 유명한 초의선사와 신분의 벽을 허물고 차 벗이 되었던 추사와는 차에 얽힌 별난 얘기가 많다. 추사는 차가 바닥나는 겨울· 초봄을 아이들처럼 간졸증을 낸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차가 늦게 도착하면 초의에게 스님은 보고 싶지도 않으니 차만 보내달라는 서찰을 보내기도 했었다.추사는 언제부터 차 맛을 입에 담기 시작했을까. 그 역사는 20대 중반 북경에 갔을 시기로 추정될 뿐이다. 추사의 북경행장을 살펴보면 옹방강의 서재에서 10만권이 넘는 서적과 금석문(碑拓)을 볼 수 있었고 완원(阮元)으로부터는 서체를 익혔다.이런 자리에서 용단승설(龍團勝雪)같은 고차(古茶)를 대접받았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오래된 차를 마셔보면 차 맛을 당장에 알 수 있었던 추사의 입맛은 유명했다.추사는 제주유배가 풀리고 금석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차에 더 빠져 중국에서 건너온 차로 입맛을 달래야 했던 시기 즉 이른 봄(곡우)을 지내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경주 옥용암 현판 일로향각도 이시기에 써졌다.차 맛은 5월초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나는 녹차의 맛이 가장 뛰어나다.법정 스님이 생전에 하신 법문 가운데 일기일회라는 말을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스님은 “언제 어디서 살던 한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다도(茶道)에서도 일기일회는 중요하다.팽주(烹主)와 손님은 일생을 사는 동안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다관에서 우려낸 차의 맛은 오직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기에 다객(茶客)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모두가 정성을 쏟는 다고 한다.차는 세계 음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육우(陸羽· 당나라 727~803)가 지은 다경(茶經)의 기록대로라면 기원전 2700년 경 중국의 신화시대의 인물 신농(神農)이 마셨으니 그 역사가 무려 5천년에 이른다. 처음부터 기호품으로 마신 것은 아니지만 점차 약용에서 경험적의 차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널리 이용됐다.북송 시대의 제1시인이자 대표적 문인이었던 소동파의 시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차가 보이차다. “자고로 좋은 차는 가인(미인)과 같다!”고 보이차를 한없이 치켜세웠다.소동파의 시심(詩心)대로 중국에서 나오는 차를 비유해보면 철관음, 봉황단총, 대홍포, 동방미인을 아우르는 오룡은 차마다 서로 다른 품격과 개성을 지녔다. 우전차(녹차)는 아름답고 청순한 봄 처녀다. 보이차에 오면 적당한 비유 찾기가 어렵다. 소동파가 말한 가인을 떠올린다면 혹은 여우가 되고 선녀가 되었다가 다시 요괴와 귀신이다.(고차수로 떠나는 보이차 여행)봄이 왔는데도 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도시 생활이다. 봄의 기운을 마음 껏 느끼고 그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 삶의 도리이지만 그게 그만 세속의 틀 속에 허다하게 묶여 버리고 마니….황홀한 봄을 가장 풍성하게 느끼려면 하동 보성 등 남쪽 땅 연녹색의 차밭이 가장 좋고 그곳이 지리산 야생차 밭이면 더 좋다.사람이 차씨를 받아 심으면 차나무의 밑 둥은 여러 갈라지는 데 비해 새나 산짐승이 옮겨 놓은 씨앗이 발아 되었을 경우는 밑 둥이 크게 하나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다.차도 흙 밭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돌산 틈바구니에서 자란 차는 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돌산에서 무림고수가 출현하듯이 차도 돌산에서 나오면 깊이가 더 있을 까. 지금 세계인들이 25억 잔씩 마시는 커피 인기로 인해 동양의 찻집은 한적한 호숫가나 뒷길로 밀려 난지가 오래지만 차가 갖는 생명력은 여전하다.
2012-05-15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흔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민과 걷는 시민의 생각은 충돌한다. 운전자는 보행자가 빨리 걷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짜증이 나고, 보행자는 자동차가 좀 여유 있게 기다려주지 않고 성급하게 통과하려 하면 화가 치밀기 일쑤다. 같은 장소를 걷는 시민이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와 보행할 때의 생각은 이처럼 엇갈리기 쉽다. 간사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만큼 보행권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낮다는 얘기다.오랫동안 한국의 도로교통정책이 보행자가 아니라 자동차 위주로 시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숨진 사람은 2천29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9%에 이른다. 그래도 2000년대 들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행자를 배려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그래도 앞서가는 곳이 서울시다. 서울시의 정책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뀐 것을 실감한 `사건`은 2005년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 설치가 아닐까 싶다.2009년 16차로인 세종로를 10차로로 줄이면서 중앙에 광장을 조성한 것도 마찬가지다. 훨씬 전인 1980년대부터 이런 아이디어가 여러 번 제시되고 실제 추진된 적도 있지만, 차량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행보다 차량 통행이 우선시되는 시절이었다. 보행권이란 시민이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공간에서 걸을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헌법상 인간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과 관련된다. 보행권은 헌법적 의미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유럽에서는 1960~1970년대 보행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고, 유럽연합(EU) 의회는 1989년 보행자 권리헌장을 제정했다.그러나 한국에서 보행권 확보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나 도심일수록 그렇다. 횡단보도에서는 차량에 위협받고 길거리 보도에서는 이런저런 장애물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곳이 수두룩하다. 보행자의 권리 신장과 보행 환경의 체계적 정비를 목적으로 하는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된다고 한다.그러나 이런 법 제정이 전부일 수는 없다. 현행 도로교통법 등에도 보행자 안전과 편의를 위한 규정이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실천정신이다.기초양식을 무시하는 차량 흐름이 바로 잡히지 않는 한 이 법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지금처럼 보행자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도 좌 우회전이 예사로운가하면 횡단보도를 걷는 시민을 보고 오히려 휴대폰까지 통화하는 운전자가 눈을 홀기는 시민양식이 있는 한 요원하다.포항은 더 거칠다. 기초질서만은 과거 관선시대가 낳지 않았느냐하는 느낌이다. 보행자가 걸어야 할 인도에 차량이 가로막고 있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가로막는 차가 있을 정도다.남빈로나 새벽, 주말 시장이 열리는 곳 등 기초질서가 실종된 곳이 부지기수이나 쉽게 단속이 되지 않는다. 관선시대의 정돈된 모습들이 향수로 남아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래 표에 대한 문제만큼은 어느 자치단체이건 서로 뱃속이 잘 들어맞는 것 같다.국토가 좁은 반면 차와 사람이 많은 실정을 무시하고 기초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적어도 길가는 시민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게끔 보행전용구간만이라도 100%화보를 해달라는 뜻이다.
2012-05-08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삶은 원래 한바탕 꿈이다. 세속 잡사를 놓아버리면 죽음을 극복 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생사일여(生死一如) 이치를 깨닫는 일이 명상수행이다. 마음의 평온은 어디서 오는가. 세상사를 다가지려는 탐욕 때문이다. 엉덩이를 한곳에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오지랖 넓은 사람도, 나 없으면 세상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편치 못하다.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으로 들어 왔다가는 이내 다른 생각에 밀려 흔적 없이 사라진다.마음은 원래 티끌만큼도 잘못된 것이 없다. 본래부터 깨끗하고 고요하다.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라면 마음이 세사의 감정을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절 마당에 켜진 불을 꺼야 하늘의 별이 잘 보이듯 마음구석 여기저기 담아 놓은 허상의 사진을 치워야 잘 보인다. 밤잠을 자면서도 생각의 불들을 켜두고 허상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고 있기 에 세상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이게 더 짙어지면 마음감기로 간다.최근 몇 년 사이 신체적 건강을 넘어 마음으로 이어지는 명상수련이 세상 밖으로 본격 출현하고 있다. 명상수행은 한 때 동양의 신비주의로 폄하되었지만 서양에서 나온 현대과학에 의해서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대단 한 것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선불교에서 출발된 전래 명상수행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현대사회가 관심을 끄는 명상법은 두 종류다. 바른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단전까지 호흡을 내리면서 온갖 번뇌와 근심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집중명상` 법이다. 다른 하나는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생각이나 느낌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내 보내는 `지각명상`법이다.2010년 1월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이 신년기획으로 제작한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 `비우며 살자`편에서도 계룡산자락 논산 마음 수련원에서 일주일 과정을 거친 4명을 인제대 서울 백병원에서 가진 스트레스 검사결과 우울지수가 “0”로 나타나는 과학적 검증 등 참가자들의 변화가 확인된 것은 놀랍다.인도 뿌나에 자리 잡은 오쇼 라즈니쉬(1931~1990) 아쉬람(명상센터)에는 이런 글이 걸려 있다. “나는 결코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이 세상을 다녀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왜 집착하는가. 인간은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하다.옆길로 샌 정신을 바로 잡는 데는 명상이 가장 좋은 수단이다. 사찰에서 갖는 참선과정도 있지만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고 접근하기가 수월한 명상센터도 많이 생겼다.연중무휴인 계룡산 마음수련원(8과정) 수련생은 연인원 2만 여명이다. 계룡산 마음수련원 강사는 처음부터 나오는 날까지 마음을 놓아 버리고 비울 것을 고집스럽게 주문한다. 심지어 마음을 빼는 방법으로 노트도 사진도 더는 찍지 말라고 한다. 필기기구를 가진 수강생은 없다. 가끔은 숙소에서 적막을 깨뜨리는 울음소리가 나지만 이를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수련생은 없다. 가짜 사진 속에서 살았던 삶이 보여 지는 순간이 울음으로 폭발했다.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마음감기를 고쳤다고 보면 된다.이런 수련이 좀 더 발전하면 인간의 마음을 우주의 마음으로 반전시키는 본격 명상 훈련이 시작된다. 우주는 만물 만상이 살아있는 본바닥이다. 8단계를 통한 공부로 망상 망념, 헛것에 놀아나는 마음을 빼고 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돼 대 자유인이 된다.허상에 갇혀 살았던 세상은 죽은 세상에 살았다는 이치다. 지구는 은하계를 밝히는 행성가운데 하나이고 인간은 그 지구에서 살아가는 70억 가운데 한 점이다. 쩨쩨하고 지저분하게만 살 것인가는 중요한 화두다. 살아서 본 바닥으로 가기위해서는 마음 빼기를 하는 8단계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된다고 한다. 지역 마음수련원을 통하면 쉽게 갈 수 있다.국내에는 명상 붐을 타고 도심 명상수련센터도 많이 생겼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지금이 딱 알맞은 계절이지만 수련비용이 부담이 되는 게 흠이다.
2012-05-01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우리아이들 67만명이 학교 폭력에 운다고 한다. 교실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이런 참혹한 일이 되풀이 되는 걸까. 대구 중학생 왕따 자살 사건이 일어 난지가 얼마나 됐는데 지난 17일 영주의 한 중학생이 같은 반 친구들의 괴롭힘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생명의 끈을 놓았다. 정부가 학교 폭력 대책을 만들고 부산을 떨었지만 교실에선 여전히 학생을 괴롭히는 폭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놀라운 사건들이다. 소통은 되지 않고 교실은 능력위주의 수업만 강행되니 우리아이들은 고민을 풀길이 없다. 감동 없는 교육 환경 때문이다.이해와 나눔 배려(修己爲人)를 건학이념으로 하는 포항 영일 고등학교(교장 최상하)가 이 시대의 아픔에서 탈출할 방향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지난해 5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창의·인성교육모델학교로 지정된 영일고등학교에는 학교폭력은 물론 왕따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 없다. 제주 남녕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지난 2월 18일 예절 교실수업을 참관하는 등 전국 32개 학교 400명의 선생님들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해 졌다.영일고등학교는 2004년부터 모든 신입생은 `영일비전캠프`에서 자신의 비전과 꿈을 구체화시키고 뚜렷한 목표를 갖도록 유도, 자기 주도적 수업을 이루어지게 한다.학교생활이 시작되면 가야금 등 1인1악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운영, 학생들의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했는가하면 학급 별로 해마다 10시간씩 전통 예절과 다도를 통해 참는 마음을 배우고 어른을 모시는 예절을 익힌다. 이 학교 댄싱 팀은 아이돌 수준이다.서정윤 교감은 “포항시립극단이 10월에 갖는 3일간의 정기공연 때는 영일고등학교 날로 정할만큼 연극관람을 통해 공부에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한편 영일 월드컵축제 기간에는 학급별로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발야구를 통해 체력을 끌어 올린다”고 말했다.국제로타리 3630지구 총재(2005~06)를 지내신 이 학교 최상하 교장 선생님 교육철학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철저한 데가 있다. 학생들에게 봉사를 통해 감동을 느끼게 하는 교육 방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나눔은 행복입니다` `나눔은 사랑입니다` `나눔은 꿈 입니다`이런 슬로건을 갖고 600명 전교생들은 음성 꽃동네, 예티쉼터를 비롯해 안동 시온마을, 한 사랑의 집, 하늘마음 양로원 등 사회시설이 있는 곳이면 전국어디이던 길이 멀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봉사를 하니 아무리 사춘기의 학생이라 하드라도 마음이 달아날 곳이 없다.지난여름 사회복지 시설에 봉사를 나갔던 2학년 7반 조서연 학생은 “처음엔 다가가서 말도 못 거는 나였는데 까칠한 할머니 손을 잡고 말문을 여는 순간부터 내가 변하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고 적었다.영일고등학교는 어린 학생들의 봉사현장 체험담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까지 발행했다. 이 정도면 주 5일제 수업시대가 열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미 준비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학교다.입학허가를 기다리는 학생이 줄을 서고 있다. 선생님들의 애정 크기만큼 학교 폭력은 줄어든다. 예전 세대에게는 도저히 열릴 수 없었던 주 5일제 수업이 2012학년부터 현실이 되었지만 5일제 수업을 잘못되면 지금 일고 있는 학생 폭력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정부가 서둘러 내놓는 학생들의 인권조례나 체벌금지로 인해 교육현장이 위축받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의 인생항로를 책임지는 선장역할을 맡고 있다.정신적 반항이 가장 심한 사춘기 연령의 중학교 학생들의 지도는 더 어렵다고 한다. `지구 밖으로 행군 하라` 저자 한비야는 영일고등학교의 건학이념 `수기위인`처럼 “봉사를 통해 감동을 느껴라”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당부했다.
2012-04-24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섬진강 3월은 매화꽃이 구름처럼 피어나고 4월엔 벚꽃이 도로 양편으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섬진강은 봄꽃이 천지를 휘날리는 강이 됐다. 이른 봄에 피어 사람들의 가슴을 환희로 채워주는 벚꽃은 나무 중에 가장 사랑스럽다.고도경주는 이즈음 벚 꽃잎이 시가를 덮고 있다. 보문관광단지가 준공되었던 1979년부터 벚나무가 엄청 심어져 벚꽃의 대명사처럼 불리어진 일본 동경 우에노 공원보다 꽃잎이 더 흩날린다고 한다.초봄의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는 지금 가자마다 꽃을 달고 있고 활짝 핀 꽃을 볼 때마다 보는 순간이 너무 짧다는 표현으로 세월의 빠르기를 견주기도 한다.벚꽃을 지독스럽게 좋아하는 국가와 국민은 일본이다 보니 벚꽃과 얽힌 얘기가 많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벚꽃이 얕은 바람조차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집단전사를 부추겼다고 슬퍼했다.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 일본의 남자로 태어난 제군들은 육탄전의 영웅이 되라는 노래가사로도 인용됐다. 일본의 무사도란 책에도 “꽃은 벚꽃” 벚꽃과 무사의 비장한 죽음을 대칭시켰다.벚꽃은 생명에 집착하는 다른 꽃과는 달리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속깊이 환희를 심어주며 덧없이 돌아가고 바람에 흩날리는 비장함의 멋이 길게 이어진다. 필 때보다 지는 시기가 길다는 의미다.은은한 난 향기는 더 명품이어서 세계인들로부터 귀한 사랑을 받는다.여름에 피는 연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게 하는 향이다. 초여름 담벼락에 걸친 라일락 향은 감미롭고 싱그럽고 낭만적이다.장미는 마음을 뺏는 꽃 아래로 내려가면 숨긴 가시에 찔리나 청춘남녀의 연정을 불러 오는 향이어서 더 가깝다.채송화도 봉숭아도 담장을 기는 나팔꽃도 하나같이 정겨운 봄꽃들이다. 언제 이 땅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킨 꽃들이다. 나팔꽃과 맨드라미의 고향은 인도, 접시꽃은 중국, 채송화는 남미, 봉숭아는 동남아시아가 고향이지만 이미 정이 짙은 한국인들의 정서가 베인 꽃들이다.늦봄에 피는 밤꽃만큼 독특한 향은 없을 것 같다. 해질 무렵 바람에 실려 육신의 유혹을 실은 것 같은 비릿한 밤 꽃 향은 잠을 설치게 하는 향이라고들 한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은 지는 꽃 들을 보면 청춘도 덧없이 가고 마는 세상무상을 노래했다.봄을 가장 쉽게 풍성하게 느끼려면 남쪽 땅 지리산 하동 보성 일대의 연녹색 차밭이 가장 좋다. 그곳이 지리산 야생차 밭이면 더 좋다.사람이 차씨를 받아 심으면 차나무의 밑 둥은 여러 갈래로 인데 비해 새나 산짐승이 옮겨 놓은 씨앗이 발아 되었을 경우는 밑 둥이 크게 하나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다.차도 흙 밭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돌산 틈바구니에서 자란 우전 차는 기운이 강하고 여섯 잎 차 꽃 모양도 더 청아하다. 돌산에서 무림고수가 출현하듯이 차도 돌산에서 나오면 차 맛의 깊이 가 더 있을 까.다섯 잎 차(茶)꽃의 꽃말은 영원한 삶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꽃말처럼 노란 꽃술을 감싸는 꽃잎색깔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수수하다.“살아가는 길이 너무 편안하게도 인색하게도 어렵게살지도 말라”는 해석이 붙어 있으니 고요함(靜)과 화경청적(化敬淸寂)으로 이끄는 데는 차 마시는 것이 단연 으뜸이다.중국 8대 명차가운데 무이산(武夷山)에서 나는 명차를 무이암차(武夷岩茶)로 부르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모양이다.봄이 왔는데도 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도시 생활이다. 봄의 기운을 마음 껏 느끼고 그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 삶의 도리이지만 그게 그만 세속의 틀 속에 허다하게 묶여 버리고 마니….
2012-04-17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순백 연적(硯滴)이다.청화나 진사, 철사로 꽃문양을 그려 넣지도 않고 그냥 우유 빛 흰옷을 입힌 연적이다. 복숭아 꼭지를 따고 앉혀 놓은 것 같은 순백의 자태에 가녀린 줄기가 양각돼 있을 뿐이지만 18세기 조선 사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시기 경기도 분원요에서 만들어 졌다.어느 사대부집 사랑채를 돌다가 지금의 주인을 만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고나 할까. 가슴에 그냥 품고 싶은 이런 연적을 서안에다 두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일필휘지 붓을 잡고 싶어진다.이 연적을 붙들고 글씨를 섰던 옛 선비들의 옷깃이나 숨결이 내 볼을 스치는 것 같기도 하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쓰임새가 물결처럼 펼쳐진다. 단순함의 극치라고 할까. 조선선비의 마음을 훔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양파껍질을 벗겨내듯 생략의 미(美)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사가 연발이다. 복사꽃이나 천도복숭아는 하늘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여름 연적의 몸체는 차갑다.우린 지금 이런 아름다움과 품격을 다 잃고 산다. 컴퓨터가 다 가져가고 외국제 가구가 주변을 포위하고 사는 사회다. 이 세태는 무얼 생각하고 사는가? 저게 우리의 얼굴인가하고 물어보고 싶다.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이 연적을 내놓고 보여 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은 시대의 속도를 모르는 이의 간절함일까.한 세기전만 하드라도 문방사우는 문인들의 필수품이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종· 붓· 벼루· 먹이다. 붓 벼루에 반드시 따르는 것이 연적(硯滴)이며 연적은 선비들의 손끝에 노는 벗이었다.그러니 자신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골랐다.고려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연적은 대개가 두부모양을 한 청화백자형 사각연적이 주류였으나 형태미를 완숙하게 노출시킨 복숭아· 다람쥐· 오리· 기린· 원숭이 같은 동물모양도 만들어 졌다.국보 74호 청자오리모양연적은 연잎 모자를 씌우고 정병주둥이로 물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고 그 앉은 자태의 생김새가 앙증맞은 걸작 가운데 걸작이다.오리는 뭍에도 물에도 사는 철새다. 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새로 여겨져 선사 시대 때부터 솟대의 머리를 타는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연적· 술잔 등 여러 쓰임새에 등장한다.조선시대 후기 여주 분원에서 만들어진 순백 연적은 색감이 있는 고려나 조선 전기 시대의 연적과는 그 맛이 완전 다르다. 우선 가공하거나 모양을 낸 흔적들을 최고로 아꼈다고 말 할 수 있다.천도복숭아의 실체크기를 닮아 쥐는 손맛이 더 일품이다. 봉긋 솟은 꼭지와 가녀린 줄기 잎사귀를 돌출시켜 한손에 들어오고 봉긋 솟은 꼭지는 글을 쓰다 지치거나 무료함에 시달렸던 선비들이 손끝으로 매만져 은근히 에로틱한 외출까지 했을 법하다.풍류도에 심취했을 까. 아니다. 백색 복숭아 연적의 주인은 내면이 더 심오하고 성품이 풀 먹인 모시 적삼처럼 처신이 꼿꼿했을 분이었을 것 이다.도공은 조선 선비들의 마음을 최대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도공역시 안빈낙도(安貧道)를 즐기는 선비들의 삶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백색은 또 조선을 살았던 선비들의 마음이다.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다.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먹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 본다.
2012-04-10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선진국에서는 외로움이 넘친다. 잘 살기는 하지만 슬플 때 기댈 어깨가 없고 함께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이웃이 드물다는 얘기다. 벽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는 뜻이다.영국 래스터 대학이 2009년 실시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GDP가 1천800달러에 불과한 부탄이 선진국 틈(8위)에 유일하게 끼여 있다. 2천m가 넘는 히말라야 설산에 갇혀 사는 불교국(입헌군주국) 부탄은 이웃을 배려하고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통계청이 발표한 `2010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2000년 조사에서 222만 4천 가구이던 1인가구가 2005년엔 317만 천 가구로 늘어나더니 2010년엔 403만 9천 가구가 됐다.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3.7%여서 4가구 중 한 가구가 홀로 사는 셈이다. 2030년에 가면 홀로 사는 가구가 23.7%가 될 것이라는 당국의 예측보다 20년이나 당겨 버렸다.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은 아니다.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 제도가 잘 갖추어진 미국·유럽은 이미 1990년에 1인가구가 20%를 넘어 섰다.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려는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린 부정적인 측면이 너무 강하다. 1인가구의 직업들이 노인을 포함한 단순노무직 등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격차도 크다.이들은 가족과도 연락이 끊기고 옆 방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실업은 가난을 낳고 가난은 소외를 낳는다. 이런 생활은 나이 들수록 처절하게 외로움에 빠져들기 쉽다.원래 인간은 6가지로 산다. 외롭고, 서럽고, 고독하고, 무능하고, 삶의 유혹이 따르고 나이 더 들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이걸 단숨에 돌파하는 방법은 나눔으로 자신의 생활패턴을 바꾸거나 종교적 명상세계다. 평생친구가 있고 나눔을 통해 외롭고 고독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은 자신의 마음 길 뿐이라는 해석이 따라 붙는다.우리사회의 세대 간 갈등도 위험수위를 향해 달리고 있다.해마다 50만 명이 넘는 청년이 대학문을 나서지만 절반이 실업자로 남는다. 물론 공식 청년 실업률은 6.7%지만 실제로는 20~30%라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이구백`이다. 이십대의 90%가 놀고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회자되게 됐다. 비정규직 900만명이 철저하게 덧칠을 하고 있으며 청년실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붐 세대의 은퇴시기까지 겹치고 있다.노동시장의 취약성이 더 이상 장년 은퇴세대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부양인구로 편입 될 경우 우리 사회가 떠 안아야할 부담은 날로 커진다.여러 선거에서 이미 이들의 심리가 잘 나타났다. 우리사회는 계층에 관계없이 불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만큼 불만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펼쳐 보기도 전에 실업의 벽에서 좌절하는 젊은 백수들은 참담 그자체이니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그들은 기득권층, 기성정치권에 대놓고 부패공화국 이상의 반감과 불신을 역사상 스펙이 가장 좋아 21세기 소통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SNS를 통해 무작정 퍼붓는 셈이다.선거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이런 청년 백수들의 심리를 노리는 것은 20~40대의 표를 노리는 꼼수에 불과하다.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찾는 데 기성세대들이 노력하고 한국의 대들보가 꿈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정책과 일자리 마련이 절실하게 기다려지는 시기다.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홀로 가구라도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거위의 꿈을 찾아 헤매는 절박한 상황들을 보라.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몸을 낮추어 볼 필요도 있다.
2012-04-03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올해(3월11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성철 스님(1912~1993)이 가야산에서 일으킨 선풍은 지금도 유명하다. 성철 큰 스님은 돈오점수가 우세했던 종래 대승불교의 선풍과는 달리 `단번에 깨친다`는 뜻의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지향한 선승(禪僧)이셨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기 마음을 꺼내 오기까지 밑바닥에서부터 피 땀을 흘리면 내공을 쌓는 치열한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세상에 내놓으신 분이시다.“깨달음을 얻는 순간에 번뇌 망상을 떨쳐내지 못했다면 깨달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 한마디로 가야산 호랑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1936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출가한 성철 스님은 승복을 입은 30년간 산문(山門)을 나서는 것을 꺼렸다. 눕지 않고 8년을 수행(長坐不臥)하는 옛 선사들의 수행방법을 고집스럽게 쫓았다.스님은 여러 차례의 바느질로 누더기가가 된 겉옷을 걸치고 “나는 못났다”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으며 “나는 장(늘)이 누비장삼을 걸친다”고 하셨다. 딱하게 여긴 제자들이 새 옷이나 질긴 양말을 올려도 “중이 기워 입고 살줄도 알아야 한다”고 호통 쳤다.그래서 우리에겐 더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성철스님은 1981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조계종을 이끄는 종정에 올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문을 내리고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후일담이긴 하지만 군부의 전횡으로 암울했던 시대상에 대한 비판을 바랐던 종도· 대중들의 희망과는 달리 불교 본질이 회복되면 이 모든 것이 바로 잡힐 것으로 보고 그 같은 법문을 낸 것으로 여겨진다.성철 스님이 열반 전 제자들에게 남김 유언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말로 “참선 잘 하그래이” 한마디뿐이었다. 마실 나가는 스님의 말 같았을 뿐 도를 구한 큰 스님이 열반을 앞두고 세상을 하직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예닐곱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면서 주고받는 작별인사 같은 친근감이 똘똘 감겼다.평상심(平常心)이 곧 보리(菩提)라던 큰 스님의 말은 곧 찐빵 한 개를 덤으로 우리 손에 꼭 쥐어주는 따뜻한 선물이었다.성철 큰스님의 법문은 나보다는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의 표본 크기와도 같았다. “남편과 아들 가족을 위해 백날을 기도해봤자 그기 까지 이고 대중을 위해야만 복락이 내린다”고 법문하셨다. 이를테면 알아듣기 쉽게 해석을 붙이면 `백화점 사장` `구멍가게` 사장자리를 놓고 비유할 수 있는 말이다. 일체중생의 풍요한 삶을 위해 기도를 하면 인연법에 따라 그 복락(福)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복락의 크기가 다르다는 뜻이다.1967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시작된 기도법도 유명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백련암과 성철 큰스님을 따르면 전국 문도 사암에서는 철마다 1천여 명의 신도들이 모여 3박 4일간 기도를 올린다. 19년 전 20만 추모인파가 모여 스님을 떠나보내셨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밤새움 기도로 자신의 공부 길을 채운다.그 유명한 `아바라` 기도는 먼저 108배로 자신을 가다듬는 참회로 시작된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향하는 진언도 염송하고 큰 스님이 산스크리트어(범어)에서 따온 진언도 수없이 염송하는 일정이다.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계종은 이달 말부터 스님이 수행한 전국 24개 사암을 돌아보는 순례 행사를 갖는다.또 스님의 일대기를 한국화로 재조명하는 대형 전시 행사도 갖는다. 전시회나 학술행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는 큰 스님에게 다가설수록 세상이 살아가는 이치는 더 밝아 질 것이다.
201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