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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고민

등록일 2012-06-26 20:21 게재일 2012-06-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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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경주의 신라 왕릉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늘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천년 고도의 능은 늘 따뜻했다. 몸은 비록 잿빛 현대도시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들은 늘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편안한 고도를 그린다.

경주 도심의 부드러운 능선(線)은 물론이고 부처님의 땅 남산은 정신적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마음을 풀 수 있는 곳이다.

바미안 석불이나 간다라 불상은 크기만 했을 뿐 엉성하다. 돌 색깔도 불상에 맞지 않다. 사람이 갖는 신체적 대비나 구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해 보는 영감을 살리지 못했다.

불교 예술은 결국 발생지 인도에서부터 가장 먼 곳인 경주에서 꽃피었다.

질박한 돌 색깔이 그렇다. 담박하고 소박하고 불상이 짓는 미소는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만큼 예술성을 지녔다. 그 대표적인 불상이 석굴암 본존불이다.

국보 무영탑(석가탑)을 지은 아사달은 백제 사람이었다. 백제 사람이 지었다 해서 석가탑을 파내 버리지 않았다. 그 때 신라 사람들의 생각 폭은 넓었다. 석가탑 다보탑이 불국사에 남아 있어 지금 경주는 물론 한국이 그걸 얼마나 잘 팔아먹고 있나.

불국사 가람배치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연결시켜놓았다. 안양(安養)문을 지나면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극락(極)전이다. 자하문 밖 해탈문(解脫門)을 들어서면 8억4천만 명에게 법공양을 하고도 지칠 줄 몰랐던 석가여래가 중생들을 맞는 대웅전이다.

경주는 지난 천년 것을 같고 이만큼 살아 왔다. 새 천년을 살려면 신라 사람들처럼 백제· 고구려· 당나라 것도 수용, 자기 것을 만드는 폭넓은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원래예술은 광대무변한 세계를 갖고 있다.

경주개발은 지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땜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주발전이 한국관광의 간판으로 보고 단기간에 많은 예산을 투입, 밀려드는 중국· 일본 관광객 등 세계에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내놓을 수 있도록 신라 천년 유적과 휴양시설을 잇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경주에 중심거리가 있는가.

경주의 중심이었던 황오, 황남은 이미 사라졌다. 새로운 중심이 필요하다. 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질 곳은 동남산보다는 서남산이 좋을 것 같다. 경주세계문화 엑스포가 열리는 보문에서 어느 땐가 복원될 황용사-서남산을 잇고 KTX역을 배경으로 하는 관광벨트를 형성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서남산 일대 500만평쯤을 표본크기로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옥체험단지도 들어가고 경주 고유 음식거리, 전통 소목장, 유기공예품, 고서점 등 경주에 가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단지를 새롭게 조성, 실제 신라인들이 생활하는 대형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곳에 가면 사람이 어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지구촌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보자. 경주보불로 변 경주민속공예촌 전통 소목장이나 유기 공방 등이 KTX개통이후로 미미하긴 하지만 변화가 감지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알은 시작을 알리는 첫 순서다. 알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성장은 삼국을 통일시키고 세계를 놀라게 할 단초가 되는 출발점이었다. 경주는 알의 신화로 출발해서 삼국을 통일시켰다. 예술의 가치는 더 크다. 우리 역사에 신라와 신라 예술을 빼고 어떤 말도 할 수도 자랑거리도 없다.

우리나라하면 신라와 경주를 가장 상징적으로 내놓을 수 있고 다음이 서울이다. 경주는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라 천년의 걸작 예술 체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도 가장 한국적인 예술을 이만큼 간직된 역사도시는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천년을 시작할 청신한 아이디어가 요청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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