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고교생이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본적이 있다. 자신이 처한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그런 참담한 고민을 했을까. 그 때 그 현장을 주변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그 학생은 여전히 해맑은 소년으로 남았을 것 같다.
막판까지 몰린 고민은 어른이나 아이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가치가 무(無)라고 느껴질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가장 많다고 한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명예는 치명적이다. 소득은 2만 달러가 넘고 국격도 날로 향상되는데 국민은 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까. 우리나라 국민 행복지수는 소득 수준과는 거리가 먼 25위다. 소득수준으로 보면 5천 달러 수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맞먹는다.
일본은 1998년 이후 해마다 3만 명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자살률을 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 2위 경쟁을 하는 나라가 한국이며 노인 자살률은 이미 일본을 제쳤다.
학생이나 대중인기를 누리는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의 분위기는 10여 년 전에 아픔을 겪었던 일본과 비슷하다. 얼굴 없는 누리꾼이 내뱉은 험담이 인간을 노란선 밖 철로나 강으로 떠미는 잔인한 집단성도 일본을 베꼈는가 하면 한꺼번에 여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흡사하다.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확률이 200분의 1이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를 보고도 지독하게 무심한 사회적 의식수준을 먼저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하고 꾸준한 상담을 통해 인간적 끈을 놓지 않을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
티베트는 히말라야에 갇히고 중국에 갇혀 절절이 외롭게 살아가는 척박한 삶을 살지만 노인을 학대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 만난 낮선 영혼에게도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해 주고 늘 베푸는 삶을 살다보니 정신건강은 뛰어나서 주변에 치매를 앓는 노인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가장 희망하는 삶은 산 능선을 타는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삶의 번뇌란 시장의 콩나물 장사나 재벌그룹회장이 다를 바 없다. 길거리 청소원도, 채소장사도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꽃다운 청소년의 일이다. 연초에도 열여섯 꽃다운 영혼이 스러진 일이 있다. 서울 강남의 중심으로 통하는 대치동 아파트에서 수학을 잘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던 내향적 성격, 말수가 적은 한 고교생이 몸을 던졌다. 그 전날 “공부가 힘들다”는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글을 누가한번 미리 챙겼으면 소년의 유서가 되지는 않았을 것.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 지방학생들까지 몰려들어 400~500곳이나 되는 학원을 선택하기조차 만만치 않은 곳이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수업을 한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맞는 학원을 골라주는 컨설팅회사까지 등장한 기막힌 현장의 뒤안길에는 청소년들의 고민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7~2008년 우울증으로 진료 받은 10대 청소년 수를 집계한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가 9.6%로 가장 많았으며 송파·노원·양천·서초구 순으로 나타났다. 모두 사교육 특구들이자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지역 일뿐 지방이라서 마음을 놓을 처지는 아니다.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빚어낸 비극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통 받는 바탕에는 뿌리 깊은 학벌, 학력, 경쟁 지상주의를 으뜸으로 치는 사회 풍토가 극단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이 선택한 평일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로 제한하는 조례에서 더 나아가 초·중·고교생의 주말과 휴일 학원출입을 막아 버리면 어떨까.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