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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라지는 인디아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10년 전 인도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인도의 발전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 있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길거리는 고물차와 사람, 돼지, 소가 뒤엉켜 악취가 나고 걸인들로 넘쳐났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델리는 고물차대신 한국의 현대차 등 고급스러운 새 차들로 홍수를 이뤘으며 길거리 낡은 건물이 헐린 자리에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지하철 공사와 도로를 넓히는 중장비 굉음으로 소란스러웠다.인도를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인도는 여전히 거리는 더럽고 헐벗은 나라로 비친다. 아직도 많은 걸인이 거리를 누비고 음식점은 불결하지만 인도는 분명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1991년 이후 폭풍의 개혁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대대적 경제개혁을 시도한 인도는 지금 `21세기 슈퍼 파워`를 꿈꿀 정도로 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국민 개인 소득은 1천달러에 불과한 후진국이지만 억만장자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델리·뭄바이 등 대도시에선 부동산 값이 한해 몇 배씩 뛰는 곳이 많아 몇몇 개발 예상지역과 대도시 인도의 부동산 열기는 우리의 지난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상품개발이 가장 잘된 곳도 인도다.6년 전 골드만삭스는 인도가 앞으로 5~6%의 고성장을 이어갈 경우 2030년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할 만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고 있다.인도는 현재(2007년 9%성장) 8~9%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으나 가난한 인구가 너무 많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요소다. 도로·전기· 항만 같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하고 신 성장에 따른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가하면 높은 문맹률이나 부패, 관료주의에다 이슬람과의 종교적 갈등 등 인구가 많은 만큼 사회적 갈등요소도 많은 게 가장 큰 흠이다.인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도시 뭄바이는 1995년 봄베이(Bombay)에서 바뀌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유럽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무역활동이 왕성해 졌다. 또 인도의 철도 교통이 한번은 거처 가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경제중심도시로 성장했는가하면 영국 통치시절 100년간에 걸쳐지어진 영국식건물이 잘 보존돼 관광지로도 유명하다.흔히 인도를 두고 “7일을 여행하면 한 권의 책을 쓰고, 7개월을 지내고 나면 한 편의 글을 쓰고, 7년을 살고나면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겪으면 겪을수록 어려운 나라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인도에는 왜 군사 쿠데타가 없을까” “인도에는 왜 수많은 종교, 신이 공존할까” “종교의 나라이지만 수학과 과학이 발달한 나라일까”실제 인도인은 말이 많다. 지난여름 국제로타리가 주관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회의에서 인도 대표가 마이크를 독차지 했다. 유엔에서 9시간동안 가장 긴 연설을 한 인도인 크리슈나 메논의 토픽이 생각났을 정도였다.인도는 북인도의 8대 불교 성지를 비롯해 볼 곳이 너무 많다. 지상의 낙원인 남인도 케랄라는 44개의 크고 작은 강이 아라비아 해로 흘러드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샛강과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코코넛의 땅`이란 지명이 가리키는 것처럼 어디에서나 야자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내륙을 잇는 수로에선 갈대와 대나무로 만들어진 수상선박에서 하루 밤을 지내보는 것이나 은하수를 바라볼 수 있는 낭만과 경이로움은 남인도의 특별한 체험이다. 남인도 전통음식도 먹어볼 만했다.상대적으로 북인도는 어려운 곳이다. 2500년 전 부처가 태어났을 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불교 성지 순례자들이 가끔은 곤욕을 겪는 곳이기도 하지만 북인도역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곳곳에서 감지된다.지금도 인도는 힌두교의 수행자(사두)가 아니라도 생사문제에 대해서는 철학가 수준이다. 그래서 갠지스는 씻는 곳이다. 행복지수 상위권에 들어 있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인도가 주는 평온함을 앞설 수는 없다. 적빈(寂貧)하고 지극히 고결한 삶에 대한 인식이 인도인의 삶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11-10-25

아이가 없다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농어촌학교 입학식은 눈물겹다. 학교에 올 아이가 없어 나홀로 입학식을 보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입학생이 없으니 폐교는 시간문제며 이들 학교의 학년 간 혼합수업은 흔하게 보는 현장이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어렵긴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국부(國富)가 넘치는 나라다. 개인은 가난하지만 국가가 가진 경제력은 가히 세계 최고로 쳐준다. 그런 일본도 고령화 저출산 문제만큼은 풀지 못하고 한 20년 흘러가니 인구·매출·일자리가 줄고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겹치게 됐다.한국은 일본보다 저출산·고령화의 기세가 더 매섭다.이미 산부인과·소아과 병의원은 지고 노인 요양병원이나 전문장례식장이 뜨는 슬픈 호황이 대세다. 2015년엔 1인 가구(2010 11월 기준, 414만 2천)가 가장 주된 가구유형이 된다고 하며 고령화·만혼이 5년 전보다 31%나 증가 됐다는 조사 보고가 아무렇지 않게 들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농어촌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은 1970년대 초부터 나왔다. 저출산 고령화는 한번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그 맹렬한 기세를 되돌려 놓기가 어렵다.일본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온갖 몸부림을 쳤지만 그 흐름을 바로 잡지 못했다. 우린 일본의 심각한 현실을 보고도 어린이들의 기차놀이를 하듯 따라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당장에 다리가 무너지는 재해도 아니고 방사능에 노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까.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를 잃을 염려도 없고 정책을 잘못 펴고 있다는 질책도 크게 받을 일이 아니고 파업을 않는다.하늘을 찌를 것 같은 대국(大國)굴기(屈起)의 정신으로 중국이 거들먹거리면 한국이 불안해 진다. 이 말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그렇지만 중국의 급속한 고령화를 보는 학자들의 시각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사상 인구의 번영 없이 나라의 번영을 누렸던 국가는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일본에서 홀로 살다 직장(直葬)이 된 노인의 모습은 멀리 볼 것 없이 도시의 쪽방에서 죽어가는 우리노인들의 모습이다. 중국에 갇히고 히말라야에 갇혀 절절히 외롭게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은 그래도 정신적 부는 꼭 지닌다. 티베트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노인을 독방에서 혼자 보내지 않는다. 외롭게 지치지 않으니 치매를 앓는 노인은 더더구나 없다. 티베트 보다 훨씬 잘사는 우리나라는 무엇인가.현재 우리나라는 GDP의 0.7% 쯤을 저출산을 막는데 쓰고 있다. OECD평균 예산이 2.3%이니 3분의 1이 안 되는 형편없이 적은 돈이다. 한국의 신생아는 지난 10년 사이 30%가 줄어 낙태 건수나 큰 차가 나지 않는다.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떨어지니 인구 대 재앙은 이미 예고돼 있다. 그런데도 너도나도 낳지 않고 결혼은 늦추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의 두려움을 모르고 태평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중소도시에서마저 젊은 산부인과 의사 보기가 힘들고 아이 낳을 곳이 없는 군지역이 느는 추세다. 20명 반편성이 이채롭지 않다.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은 중국학생들을 끌어와야만 유지가 되니 5대 1 경쟁은 “아 옛말이여”가 됐다.일본은 20년간 어린이 600만명이 줄었다. 노인인구는 지난 20년간 두 배나 늘고 생산인구는 줄어드니 지방의 소규모 초콜릿, 맥주 공장이 문닫는가하면 수도 사용량도 줄어들었다. 동경에만 빈집이 75만채나 된다고 한다. 한국 주택시장에도 1인 가구 추세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8천 가구씩 줄어든다고 한다. 모든 것이 줄이는 게 능사가 돼 버렸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만들었거나 휴양시설로 바꾼 초등학교의 흉한 모습이나 경작을 포기한 잡초 밭을 너무 쉽게 보는 게 현실이다.요즘 아이를 낳으면 예방 접종비만 15만원이 훨씬 넘는다. 이런 것도 해결 못하는데 아이하나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2억원이 넘는 살인적 교육물가를 두고 결혼과 임신을 조를 수 있을까. 인구대재앙이 출발되는 시점이다.

2011-10-18

귀향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이맘때 쯤 가장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흰 구름 따라 고향 길을 시간보따리를 풀어 놓고 걷는 것이다. 육신의 아름다움은 찰나다. 꼿꼿하던 등이 굽어지는 것도, 탄력으로 넘치던 우유 색 피부에 버짐이 붙고 잡티가 피는 것도 찰나다. `어제 온 고깃배가/고향으로 간다기에/ 소식 전하고파 갯가로 나갔더니/그 배는 멀리 떠나고/물만 출렁이내/고개를 떨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배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때 묻은 소매 보니 고향이 더욱 그립소`(노산 이은상 `고향생각`)밤 바다가 나이만큼이나 무거운 듯하다.새벽이슬같이 흩어 졌다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젖어드는 고향생각….버리고 온이도 못 잊을 고향인데 두고 온 마음이야 오죽하리까.서울 탑골공원에서 멍하니 앉은 두 노인이 무척 낯이 익어 가까이가 보니 이전까지만 해도 경주 쪽샘 부근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친구였다. 이들은 경주시가 황남· 황오동 일원에서 펼친 팔우정과 신라고분군 정비계획에 밀려 자신들이 살았던 집들을 정부에 내주고 서울의 자식 집에 떠밀려간 이주자들이었다.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고향을 떠난 60대 신노인이었다.경주시의 인구는 지난 10년 사이 크게 줄었다.지금 한국 농어촌은 어딜 가나 빈집 들이고 사람행적이 끊긴 담 모퉁이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로 넘친다.영덕군 노물리 등 얘기 울음소리가 끊어진지가 20년이 넘은 마을이 수두룩하다. 눈물겨운 나홀로 입학식이나 입학생을 업어주는 선배학생들의 모습, 폐교되는 학교는 뉴스 꺼리 조차 되지 않는다.물론 나라가 부강해지고 취미 생활이 다양해져 종가집이나 파종손이 물려받은 한옥들은 이런 현실에서는 예외다. 그런 집이 전국에 몇 집이나 될까. 청태낀 고옥은 정부가 보존을 위해 보수 예산을 지원해주고 한옥 체험 관광객들로 인해 인기를 얻으면서 사는 형편들이 조금씩 나아지지만 대다수 농촌은 갈수록 피폐화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정부가 퍼붓고 있는 지금의 농촌 살리기는 너무 생산과 직결돼 있다.어느 한쪽만 물어뜯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일마을 한가지 특산품`에 매달려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나 고유 `술`도 개발하고 귀향을 희망하는 노인세대에게는 살 곳과 텃밭 등 소일꺼리를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면 노인 정책과 맛물려 이족저쪽이 모두 살아날 것이다.유럽은 그런 정책을 쓰서 이미 성공하고 있다.독일 등 복지제도가 뛰어난 유럽 국가들의 농촌 살리기는 바로 귀향을 돕는 정책이다. 독일정부는 농촌의 버려진 땅이나 헐값농토를 사서 200~300평 크기로 다듬고 적당한 크기의 집을 지어 임대를 주는 정책을 펴서 성공하고 있다.지금의 60대는 과거와는 달리 젊게 살고 그 정도 농사는 자경할 여유 힘이 있다. 장기 임대 소형 아파트를 지어 주는 것도 귀향을 돕는 방안이다.국가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인구 쏠림 현상을 막고 예산을 골고루 쓸 균형 있는 국토개발안이어서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시·군으로 불러들인 젊은 층의 귀향은 신문에 날만큼 환영을 받지만 실패율도 높고 다시 떠나는 현상이 짙지만 갈 곳이 마땅찮은 60대는 그 반대다. 노후 30년을 노인으로 자식에게 얹혀살기보다는 자립을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시· 군, 중앙정부는 돌아오기를 꺼리는 젊은 층에게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젊은 노인을 겨냥하는 신 이주 정책을 쓰면 성공률을 장담할 수 있다. 텅텅비고 잡초 밭 흉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성공 분명 복지 정책이 될 것이다.

2011-10-11

삼국지 인물론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국회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돈 문제에 얽히지 않고 깨끗하게 성장한 인물이 이토록 없었던가 하는 절망감에 빠질 때가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인사 청문회에 등장한 인사들을 보면 더 한심하다. 연초 가졌던 장관 인사 청문회를 두고 신문가십은 `처갓집 청문회`라고 꼬집었다. 낳고 길러주고 공부시켜준 친가 부모는 쏙 빼고 처갓집 식구들하고만 부동산과 돈거래를 어떻게 했는지 놀랍다.정권 말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처벌을 받는 대통령 측근 인사 등 부패 공직자들은 고혹적인 미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불판에 오른 붕어무리와 견줄만하다.유비·관우·장비·조자룡·제갈공명 등 주요 인물들의 처세를 보면 살아가는 길이 보인다는 한 중국인의 얘기가 화제가 된 것도 이런 공직자들 때문일 것이다.제갈량을 닮은 머리라면 행시, 사시, 외시는 물론이고 언론고시도 무난히 돌파 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제갈공명의 머리만 닮는 것을 원했을 뿐 공명의 청렴도는 꺼내놓지도 않는다. “성도에는 뽕나무 800 그루, 메마른 밭 15경(傾)이 있으니 자식들의 의식(衣食)은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 나가 있을 때도 특별히 보살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 따르는 의식은 모두 관에서 받고 있으니 다른 생업이 필요 없으며 신이 죽는 날 여분의 비단이나 재산을 남겨 폐하의 은총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갈공명이 중원정벌에 앞서 후주에게 올린 출사표이다. 유비가 죽자 촉의 모든 권력은 공명의 손에 있었지만 그는 정권을 뒤엎고 재산이나 모으는 천박한 리더는 아니었다. 그가 죽고 난 훗날 자녀에게 남긴 재산은 출사표에 적힌 내용과 같았다. 제갈공명의 청렴도는 당연히 본받아야 할 사표다.공명의 뒤를 이은 강유도 후주의 다음가는 자리에 있었지만 집은 낡은 초가 였으며 나라에서 주는 옷만 입어 공명 못지않은 청렴성을 지켰다.현대인들의 약삭빠른 처세술에 이들의 행로를 재미나게 가져다 붙인 것이지만 유비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큰 귀를 가졌고,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면서도 지적인면에서는 항상 앞서는 관운장을, 의리는 장비를 닮아야 하는 것으로 그렸다.임기응변과 처세술로는 조조만한 인재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관계만을 따져보면 의리 덩어리이고 전장에 나서는 지덕을 고루 갖춘 조자룡만한 인물은 없다. 이런 사람은 한국사회는 물론 중국에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처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를 다 생각하다보면 복잡한 사회생활로 치면 머리에 쉴 공간이 없다.말술을 들이키는 장비는 폭탄주의 시원이다. 장비 같은 공무원이 지금 한국사회에 수두룩하다.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받는 공무원들을 보자. 룸살롱에서 술 접대만 받고 2차까지 나가면 더 큰 문제꺼리다. 결국 밀실에 이뤄진 뒷일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선악에 대비됐기 때문에 재미있었을 뿐이다. 우선 유비는 우유부단하다. 그걸 닮으면 세상사를 다 놓치게 되며 관우는 결백해서사람이 잘 따르지 않고 불같이 화를 잘 내는 장비하고는 깊은 말을 나눌 수 없다.관우 장비 같은 처세술을 한국으로 옮겨왔다가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저항정신의 노조원이 인기투표를 했을 경우 당장 퇴출 대상이다. 자리가 곧 돈일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처 간 숱한 인사들 가운데 청렴인사로 거명된 사람이 여태껏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공직자들의 처신을 명료하게 말해 주는 것이다.

2011-10-04

커피에 빠진 대한민국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커피 농장에서 죽자고 커피 열매를 따도 우리 돈 천 원 벌이도 안되지만 그런 일자리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지금 세계인들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인들의 눈물 젖은 커피를 하루 20억 잔 이상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역시 시장 규모 2조3천억이 넘는 세계 10위권 커피 소비대국이다. 국민 한사람이 연간 300잔(2008년 통계 228잔)가까운 커피를 마신다. 다국적 기업이나 패스트푸드 업계, 심지어 의류업계들이 커피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시장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커피소비가 줄어드는 미국과는 정 반대다.우리나라 도시 곳곳에는 새로운 형태의 커피하우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맛볼 수 있어 질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커피 마니아들은 커피를 두고 `악마의 유혹`이라고 한다. 암갈색의 묽은 액체에서 나는 커피 향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혀 깊숙이 찌르는 부드러운 맛은 혀를 유혹하는 악마의 미소를 연상해서다.커피의 유행은 유럽사회를 바꾼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 유럽에 커피하우스·커피살롱으로 불리는 동양적 다방(茶房)문화가 탄생하면서 왕정에 비판적이었던 정·예술인들의 토론장이 됐다. 여론 형성의 기초 터전이 되면서 판매량이 꾸준히 늘게 된 것.청교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을 했다 돌아온 영국의 찰스 2세는 왕정을 복고하고는 비판여론을 만드는 커피집 폐쇄를 명령했다가 거센 반발에 밀려 물러서고 말았다.서양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이야기가 나오면 프랑스의 사실주의 거장 발자크와 얽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날은 24시간 내내 글을 쓰면서 평균 30잔 이상의 커피를 마서댔다.발자크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49세에 생을 놓아 버린 것은 단순히 커피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커피는 하루 4잔 이상 마시면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도스토예프스키는 속기사였던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했다. 안나는 커피대신 최음제로 알려진 진미 캐비어를 구해와 남편이 `죄와 벌`의 단원을 탈고할 때마다 캐비어와 섹스를 제공 했다고 한다.지금 세계인들은 하루 20억 잔의 커피를 마신다. 한국역시 커피 소비 10위국답게 거리마다 커피 파는 집이 즐비한 반면 우리찻집은 한적한 호숫가나 산방부근으로 밀려 난지가 오래됐다.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로 추정된다.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서부터 널리 퍼져 나간 것은 커피 맛에 빠져든 메카 순례자들 덕분이다. 16세기 이후 메카의 신전을 찾은 순례자들이 고향으로 가지고 가면서 카이로, 이스탄불, 다마스쿠스 등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커피가 세계적 기호품으로 세계화의 길을 걷게 된 또 다른 설은 1600년대 초 네델란드 상인이 인도인 순례자로부터 생 원두를 받아 인도네시아에서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시작 되었다 한다.세계의 유명 음식이 모두 그렇듯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소년 염소치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질뿐 정확한 근거가 될 사료는 없다. 소년이 들판으로 데리고 나간 염소가 이상하게 생긴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은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봤다.이 열매를 갖고 무엇이든지 척척 아는 수도원장을 찾아갔다. 쓸데없는 얘기라면서 불속에 던진 열매에서 향이 진동하자 열매를 갈아 마셔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한밤중까지 정신집중이 잘 되었다고 한다.수도원이 커피의 진원지가 됐다.커피 원두 값은 2000년 대 들어 kg당 1달러대로 떨어질 때도 있었다. 냉전시대가 해체되는 시기부터 폭락, 아프리카와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의 주요 원두 생산국 농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갔다.단순한 음료를 넘어 생활의 큰 공간으로 자리 잡은 커피는 세계 3대 기호 식품(코코아· 녹차) 가운데 으뜸이 됐다.

2011-09-27

쑹화강(松花江)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쑹화강(松花江)은 우리민족의 한이 깊게 서린 젖줄 같은 강이다. 해란강 일송정 용정 청산 연길 등 강물을 따라 붙는 이름들은 내 피붙이처럼 살갑게 다가서는 지명들이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나 안수길의 `북간도`를 통해서 더 친숙해진 간도(間島)와 만주 땅은 우리민족에겐 아련히 떠오르는 정신적 고향이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끼여 바다의 섬처럼 보이는 곳이라 해서 간도라 했다.백두산에서 발원한 길이 2천여km의 쑹화강(松花江)은 간도를 가로질러 만주땅 동북평원을 돌고 돌아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을 적시고 러시아 아무르강을 만나 동해로 들어가면 끝이다.연변이 함경도에서 건너온 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라면 지린성 통탄구에는 경상도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최근까지(지린성 아라디촌) 집단 마을이 존재한다는 신문(조선일보 8월4일)보도는 더 흥미롭다.쑹화강을 바라보는 언덕 빼기에는 유난히 무덤이 많다. 일본 강점기 일제의 수탈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살았던 선조들이 영면하는 땅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말(1945년)까지 만주에 살았던 우리 동포는 170만 명이 넘었다. 아직도 해란강 용정 훈춘시 헤이룽장성 일대에는 볏짚 지붕을 얹고 새끼줄로 가로세로를 두른 초가집이 남한 땅 어느 곳보다 더 잘 보존된 곳이 많다.간도는 고조선에서 발해까지 우리민족이 3천300년간이나 지배했던 땅이어서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남는 영원한 고토(古土)다. 더욱이 쑹화강은 하천의 신 `하백`이 살았던 강이자 주몽은 쑹화강의 천년 영물 거북의 등을 타고 강을 빠져나와 고구려를 창건했다.중국은 이런 땅을 1712년 조선과 청은`압록강과 토문(土門)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다. 여진은 이 간도땅을 민족 발상지라면서 한 때는 주민이 사는 것을 막기도 했지만 어림없는 우리 땅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보다 훨씬 먼저 부여가 자리 잡은 땅이었고 고구려를 세우기전 주몽이 소년기를 보낸 땅이어서 우리에겐 더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쑹화강은 지금도 살아있는 영토여서 불씨를 안고 있다. 그 상류의 가느다란 하천 이름을 놓고 한국과 중국의 엇갈린 입장이 명료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토문강이 두만강이냐, 쑹화강 상류의 지류냐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종 22년(1885) 토문감계사 이중하는 청나라 관리들과의 협상에서 토문강은 숭화강의 지류가 명백하니 간도는 우리 영토라고 주장했다. 티베트는 물론 위구르까지 자국 영토로 집어넣은 중국의 대욕으로 인해 이웃들이 피해를 입는 극명한 사례다.1995년 9월4일은 간도협약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간도 국경협상 대표 이중하는 청나라 측이 간도를 넘기라는 말에 “내 목을 쳐라. 국경선은 한치도 변경할 수 없다”고 불호령을 내리고 지킨 땅이다.고인이 되신 박경리 선생은 이중하를 두고 “구한말 자칫 청의 위세에 눌려 빼앗길 뻔 했던 간도를 지켜 낸 역사적 의인이다”라고 했다. 이중하는 일제가 훈장과 3천원의 은사금을 내렸지만 불같이 화를 내며 돌려보냈다.일제는 훗날 내린 작위(후작)까지 거절한 이중하를 잡아다 눈에 송충이를 집어넣고 못된 고문을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던 의인이시다.쑹화강은 이런 저런 우리민족의 애환을 품고 오늘도 유장하게 흐른다.시인 파인 김동환이 남긴 `송화강 뱃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움이 가득 묻어 있다.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돌아보면 고국이 천리런가….이런 쑹화강이 지난 2005년 중국이 열을 올리는 화학공업단지 건설로 인해 벤젠 오염 파동을 겪는 등 여전히 오염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나 그곳의 추석명절만은 한국에서는 사라진 민속놀이를 통해 며칠씩을 즐긴다고 하니 외로울 때 기댈 어깨가 없는 한국사회와는 다르다.

2011-09-20

가을 말똥 성게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전 세계에 900여종이 퍼져있는 성게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중 하나다. 경주 감포와 호미곶 일대에서 잡히는 말똥 성게가 가장 귀하다. 동해안에는 보라성게가 주로 서식하고 말똥 성게는 간혹 잡힌다. 성게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고 이동하는 수단이다. 외모는 가시로 감싸 성질이 있어 보이지만 몸속에는 그윽한 향과 약간 쓴맛에 간을 함께 품는 고소한 성게알(巢)이 일품이다.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성게를 관찰하다 입가에서 저작기(咀嚼器, 씹는 기관)을 발견해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린다.성게 알은 단백질과 비타민 A, B2 및 철분이 많아 바다에서 나는 강장제이며 한방에서도 해담(海膽:바다의 쓸개)이라고 부른다.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바다 향을 가진 특별한 맛으로 인해 미역국·비빔밥·초밥에 궁합이 잘 맞아 사용 범위가 넓다.5~7월 사이에 잡힌 성게가 가장 맛있고 어획량도 많다.그러나 말똥성게만은 가을바람이 내리는 지금부터 잡힌다. 말똥성게는 성정이 급하고 큰 놈도 알을 얼마품지 않아서 현지에서도 초특급 대접을 받다보니 안장구, 은갱이 등 그 이름도 몇 가지나 된다.색깔은 주황색에 가깝고 맛은 일반 성게보다 더 고소하고 약간은 비릿한 맛을 품지만 담백하기 그지없다.말똥성게 10마리 속을 파도 밥 비벼 먹을 양이 나오지 않아 현지에서도 금값 대우다. 30ppm 이상 여름 날씨에는 쉽게 상해 산지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맛을 잃지 않는 방법이 된 것 같다.귀한 손님이 오면 미역을 넣고 끓여낸 국이 `성게국`이다.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지은 자산어보(1814년 순조 15년)에도 보라성게를 율구합(栗毬蛤)이라 하고 날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강렬한 “절정”을 향해 달리는 어류 요리와는 달리 성게는 시종일관 부드럽다. 몸속에 숨긴`간`때문이다.일본인들이 이 맛을 최고로 여겨 1970년 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 시기에는 성게를 끼고 사는 동해안 바닷가 주민들도 마음 놓고 먹지 못했다.그날 잡은 성게 알은 모두 바다건너 일본으로 공수 됐다.동해안에는 성게 맛을 초월하는 맛이 하나 더 있다. 속을 파낸 전복껍질을 적당한 크기로 부수고 한 냄비 가득히 넣어 한두 시간을 옅은 불로 끓이면 해조음이 그대로 살아나는 극미의 맛이다. 이런 다시 물은 사라진지 오래 됐다. 신선한 전복껍질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시간을 물쓰듯 해야하는 손작업이 쉽지 않아서다.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시원하다”는 비음을 연신 토해내면서 머릿살을 빠는 것이 대구탕의 백미다. 이런 시원한 뒷맛이 지지난해 일본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제5의 맛으로도 볼 수 있다.미각은 혀끝에서 거의 이뤄진다. 인간은 대체로 최대 200여 가지의 맛을 구별할 수 있으나 혀가 순수하게 느끼는 맛은 단맛·짠맛·신맛·쓴맛까지 4가지 정도다.이 4가지 맛 외에 감미롭고 시원스런 맛이 `감칠맛`이다. 지지난해 일본 요리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제5의 맛은 단맛·짠맛 신맛·쓴맛의 어느 맛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인정된 셈이다.동해안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제 5의 맛을 “아 그 맛” 정도로 받아들인다. 맛깔스럽고 미식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식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어서다.춘추시대 노자는 “식탐도 욕망중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동양인의 마음에는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귀를 멀게 하고 오미는 입을 상하게 한다 해서 경계를 하지만 시절음식을 때맞춰 먹는 게 살아있는 즐거움이다.

2011-09-06

조계종의 아소카 선언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석가모니 부처는 북인도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맨발로 걸어서 1천km도 더 떨어진 중인도, 지금도 유장하게 흐르는 갠지스 강 허리를 낀 바리나시(사르나트)에서 첫 법을 설 하시고 불국의 세계를 열었다. 2500년 전 세상을 떠난 부처는 지금도 허름하기 짝이 없는 1.5km의 농로 길을 따라 천문대처럼 둥근 창을 두른 인도 쿠시나가리 열반당에서 황금색 법의를 덮고 누워 계신다.아난다 등 몇 제자들과 열반 여행길에 나선 부처는 고향 카필라를 100km쯤을 앞두고 대장장이가 올린 공양을 들었다. 상한 음식임을 미리 알은 부처는 다른 비구를 줄 것 없이 모두 가져오라고 욕심을 부렸다.부처는 심한 식중독으로 고향 히말라야의 흰 눈이 보이는 열반당 언덕까지를 25번이나 걷고 쉬고를 되풀이해서 올라서는 마지막 숨을 놓으셨다. 고향을 지척에 둔 길이었다.덧없는 세월을 버리시고 여전히 미소를 뛰고 계시는 부처는 5세기쯤에 조성된 키 6.5m의 열반상이시다. 서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례자들의 가슴은 마치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한다.부처의 맨발을 붙들고 눈물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부처의 법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 있던 마하가섭이 스승의 부음을 듣고 달려와 관을 붙들고 울었을 그 모습들이다.수미산에서 발원한 갠지스는 더 넓은 인도 내륙을 관통, 인도양으로 흘러든다. 강물은 바다로 가는 것이 본성이라면 인간은 죽음이 끝이다. 막히면 넘고 독극물에 먹혀 사경을 헤매면서도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는 것이 강의 생명이다.생사를 넘나들고 선악을 품고 애증을 포용하고 기다리면서 흐르는 것이 인생살이와 흡사하다. 갠지스 허리를 낀 바리나시(사르나트)를 초전지로 선택한 부처의 마음도 같았으리라.길고도 먼 수행 길을 떠난 수도승의 마음은 이 보다 더했을 터. 강물의 마지막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바닷물은 억겁의 세월을 머물러도 신통하게도 썩지 않는다. 저 하늘처럼 늘 푸르다. 다시 긴 여정을 가고 싶어 하는 강물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생명체다. 그 생명체는 질 푸른 바다이고 여기서 윤회가 태동되고….불교 공부는 어렵긴 하지만 깨치면 바로 대성인이 된다. 그 깨치는 수단이라는 것이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언어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곳까지 마음이 다가서야 뭔가 보인다고 한다.4세기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 온 시기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부족 공동체 수준이었다. 나라간 경계선으로 인해 싸움도 없었으니 영토를 넓히기 위한 싸움은 더욱 없었다.더욱이 황하 등 4대 문명 발상지에서는 4세기 이전부터 찬란한 왕국문명이 꽃피었던데 비해 한반도는 크게 뒤쳐져 있었다.그런 한반도에 4세기 말 무렵 중국을 통해 불교가 들어왔다. 이 때 들어온 불교 경전과 문헌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세계관을 갖출 수 있었고 왕국다운 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불교문화는 통일신라와 고려로 이어졌으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유교에 밀렸지만 민중의 가슴에 남는 종교로, 왜란 등 국가위기 때는 승병으로 거듭나서 호국불교의 위치를 이어왔다.한국불교는 늘 민중의 가까이에 서 있었다. 조선시대 500년간의 숭유억불억압에도 불교는 민중의 삶속에 살아 있었고 많은 문화 예술품을 남겨 민족의 긍지를 살렸다.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대종교·이슬람교 등이 각자의 교세를 자랑, 세계적으로 보기드믄 다종교 사회가 됐다. 심지어 국민의 것으로 해석되는 전파마저 다종교 방송으로 인해 하늘에서도 격렬한 포교 정쟁을 벌이는 국가다. 이러다보니 포교와 교세확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졌다. 정장식 전 포항시장 등 개신교 정치지도자가 내뱉은 성시화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고있다.정부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워왔던 이런 시기에 천만 불자를 이끄는 조계종에서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들고 종교간 이해와 평화를 다짐하는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21세기 아소카 선언`을내놨다.아소카는 기원전 3세기 인도를 통일시키고도 전쟁에 대한 회의에 빠져 불가에 귀의, 불법을 전하는데 앞장서 룸비니 등 곳곳에 다른 종교를 같이 알리는 석주를 세웠다. 한국의 절에서 말하는 법륜성왕이 곧 아소카다.

2011-08-30

춤과 뮤지컬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춤은 원래 신에게 바치는 몸동작이었다. 21세기의 춤은 세대마다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로 변화했다. 앞가슴을 내밀고 살랑살랑 흔드는 원더걸스의 전성기 춤은 사뭇 남자를 유혹하는 고혹적인 동작이다.“소녀시대 일본 침공완료”라는 어느 신문 연예면 제목만큼이나 K-팝이 일본 열도는 물론 유럽까지 진동시켜 한류 열풍을 잇고 있다. 태국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만난 인디아 여인들이 한국인 관광객을 잡고 K-팝을 가르쳐 달란다.지금 한국에는 걸그룹이 범람한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 선발주자를 바짝 뒤쫓는 그룹에다 데뷔의 기회를 노리고 밤낮없이 연습하는 팀도 숱하다고 한다. 독특한 안무와 개성 넘치는 노래, 고혹적인 의상으로 무장하고 경쟁에 뛰어들다보니 10대가 추기에는 민망스런 `쩍벌`춤이 나오기도 했다.가히 한국사회는 지금 춤 세상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춤을 못 추면 행세를 못 할 정도다. 어느 행사이던 학교 댄싱 팀이 등장하고 벨리댄스(배꼽춤)가 꼭 낀다. `재즈댄스부터 벨리댄스`라는 댄스학원 광고 현수막이 아파트단지를 점령한지는 오래 됐고.입장료를 받는 동네 `춤방`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붐비는가하면 임신부들도 라틴댄스를 즐기는 세상이다. 춤은 세대마다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됐다. K-팝이 하루 10시간이 넘는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했다면 2002년 한국 월드컵 때에 등장한 꼭짓점 댄스는 분위기로 한 시대를 제압했다.맨 앞 꼭짓점에서 선 리더의 춤사위를 따라 동작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꼭짓점 댄스의 춤사위는 1990년대 세계를 휩쓴 `마카레나`와 흡사하다. 양팔을 접었다 펴고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머리에 올리고, 엉덩이를 한 바퀴 돌리는 마카레나는 당시 세계 모든 경기장 응원 춤이었다.1970년대 춤은 `허슬`이다. 한 줄로 길게 서서 추는 `허슬`은 따라 하기가 쉬워 중 장년을 사로잡았다.춤에다 노래를 입히면 뮤지컬이다.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진 뮤지컬이 한국에 소개되기는 1962년 서울 드라마 센터에 오른 `포기와 베스`였다.1966년 예그린 악단이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가 만 5천 명 관객을 끌어 들였을 때부터 뮤지컬이 본격 알려졌다. 그해 10월26일 `살짜기 옵서예`를 처음 무대에 올린 초연(初演)날이 후일 `한국 뮤지컬의 날`이 됐다. 그로부터 40년 후 한국뮤지컬은 춤과 노래로 타고난 재능으로 인해 공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2007년부터는 한해 통상 정통뮤지컬만 100편쯤 무대에 오르고 100만 명 이상이 공연장을 찾아 매출도 2천억을 넘겼다. 2006년의 최고 히트작이었던 `맘마미아`와 `미스 사이공`은 20만 관객을 끌어 들였으며 지금도 지방에서는 흥행이 순조로운 뮤지컬이다.삼성경제연구소가 2008년 뮤지컬이 `신(新)문화산업`으로 족보에 올리고 매출 역시 3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했을 만큼 성장했다.우리나라 서울은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으로까지 꼽힐 정도다. 이러니 유럽과 일본 뮤지컬까지 서울무대를 두드리고 있다.`노트르담 드 파리`의 성공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간판 뮤지컬 `십계`나 `로미오 앤 줄리엣`으로 이어지고 `라이온 킹`이 장기 공연을 했을 정도다.문화유배지가 되는 지방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서울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세계의 명작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곳이 됐다.한국에는 춤과 뮤지컬 마니아층(層)이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K-팝이건 뮤지컬이건 신 문화산업으로 성장을 하기위해서는 질적 소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세계인들이 흥얼거리는 응원구호가 되듯이 K-팝, 한국 뮤지컬이 세계를 지배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11일 개막한 경주세계문화 엑스포도 어김없이 세계의 춤과 뮤지컬로 시작 됐다.

2011-08-16

속독신공(速讀神功)을 배우게 한 무협지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무협지의 권· 검법은 모두 동물의 형태에서 따왔다. 소림사 승려들의 멋진 권법은 원숭이· 학· 뱀의 동작을 인간이 익혀 완성시켰다. 무림 고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강호이고, 강호(장강과 동정호를 일컫는 말)라는 낱말을 등장시킨 중국에서도 설이 분분하다.불가에서는 법력이 높았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장시(江西)에 머물렀던 시기로 추정할 뿐이다. 중국무협은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2천년 역사를 지녔다. 협객의 역사로 그려 단순한 대중적 오락물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문화코드로 그린 것이 허풍이 심하긴 하나 여름밤 속독신공의 독서로는 단연 으뜸이다.우리나라 무협지는 1961년에 가장 많이 읽힌 최인훈의 `광장`과 무협지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할 `정협지`다. 그해는 군사정변으로 불안하고 모두가 막연했던 시절이어서 잠시 시름을 놓고 강호의 고수들이 대결하는 절대무공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정협지`를 통해 마음껏 펼쳤다.경향신문에 2년간 연재(1961~63)된 `정협지`는 대만작가가 쓴 `검해고홍(劍海孤鴻)`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가져와 새롭게 쓰다시피 한 작품이었다. 회양방과 숭양파라는 두 무림방의 노영탄, 악중악 형제와 절세가인 연자심이 강호를 사이에 두고 긴 세월 펼치는 사랑과 배신, 복수로 이어지는 드라마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나오면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남경의대에서 면학, 정치가와 소설가를 꿈꾸었던 작가 김광주의 상해 생활은 백범을 돕는 측근이자 지사였다. 말년 무협소설을 받아 적었던 아들이 훗날 `칼의 노래`로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이다. 근세 무협지의 대가는 역시 김용(83)이다. 신필 김용은 일생을 통해 수많은 소설을 남겼지만 유독 `사조영웅전`은 대만에서만 천권, 중국에서는 1억 권이 팔렸고 그 후로도 영화, TV 드라마, 만화, 게임을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갔다.송·금·원의 교체기를 택한 역사적배경도 흥미를 보탰지만 구음진경 `비무초진` 악비유서를 통해 신비감을 키웠고 성장기 소년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마음그릇을 키우는 인고(忍苦)를 우회적으로 배우게 했다.금나라 왕에게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은 편협한 복수보다는 고수들과의 만남과 대결을 통해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했지만 부귀공명을 쫓지 않고 오직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그렸다.중국 오악(五嶽)가운데 산세는 가장 험하지만 바위산이 아름답고 도교의 성지여서 더 신비스러워진 화산(華山)이 주요 무대다. 한자문화권이 수 천년동안 지녔던 신선과 도교의 설화가 저변과 맛 닿아 있는 점도 특이하고 소설 군데군데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나 전진교 도사 구처기(丘處機)같은 실존 인물이 남긴 역사적 사실을 끼워 넣은 것이 흥미를 보탰는가하면 강호의 다양한 음식을 통해 식선(食仙)의 세계도 엿볼 수 있어 지금도 읽히고 있다.연초 케이블 TV에서 장편 시리즈로 방영한 무협(40회) 드라마 `소호강호`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 무협드라마의 호감은 우리나라 안방극장에 등장하는 인물고운 사극배우와는 달리 개성이 다른 다양한 캐릭터가 진경산수를 무대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최근 28편이 나온 `묵향`도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와 무협지가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소설 초반에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책에 올랐던 전동조 지음 `묵향`도 속독신공이면 이 삼일이면 읽을 수 있다.여러 무림 방파가 등장,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는 강호의 인심을 배경으로 깔고 정파와 사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강호의 규범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음(知音)의 관계를 맺는 등 허풍이 심한 중국다운 이해관계를 잘 그려 자칫 상실하기 쉬운 판타지의 무게를 잡아 주었다.이런 무협지들은 속독신공에 빠져들면 무더운 여름밤이 언제 지나 간지도 모른다. 삼류 소설이 아닌 험난한 세파의 인간드라마를 보는 재미에다 속독신공의 묘미 또한 크다.

2011-08-09

잘 먹자

대서(大暑)의 노기(怒氣)가 이글거린 7월이 어느 사이 물러가고 8월이다.올 여름은 장마 뒤 폭우가 중부지방을 휩쓰는 등 날씨 변화의 기세가 매섭긴 했으나 입추(8일) 말복(13일) 처서(23일)가 이 달에 다 들어있으니 올 여름 더위도 이 며칠이 고비일 것 같다.땀을 많이 흘리고 피로 누적도가 짙은 삼복은 사계절 가운데 양기(陽氣)를 가장 손상시키는 시기다. 이럴 땐 잘 먹는 것이 체력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양기를 소진시키는 염천을 잘 건너려면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배불리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패스트푸드보다는 되도록 영양가 높은 자연식을 먹어 체력안배에 소홀함이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한세대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즐겼던 삼복 보양(補陽)음식은 보신탕, 삼계탕, 민어회, 장어국 등이다. 서울` 북한 지역 요리법과는 큰 차이가 난 경상도 전통 보신탕은 여름철 영양보충을 위해 즐겨 먹던 이름난 보양식이다.마땅히 우리 손으로 이어 받아야할 탕(개장)은 거의 사라졌다. 조리방법이 많이 변질되긴 했었지만 여름 삼복을 나는 음식으로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껍질을 불에 태워 화근 내가 살짝 풍기게 한 이 요리는 1970년대 중반까지 경주, 안동, 예천 등 향토음식이 끈질기게 버틴 지역에서는 간혹 맛볼 수 있었다.이런 집은 삼복에도 하루 한 마리만 장만하기 때문에 늦게 가면 자리 차지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반나절 넘게 달려온 미식가들은 점심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갔을 만큼 유별난 맛 집이자 가장 한국적인 보양식이었다.개는 주인을 구한 의견(義犬)이다. 경주 내남면 개무덤 등 개무덤의 사연으로 보면 인간과 가장 가까우며 살아서도 인간을 지키고 죽어서도 인간을 지키는 고마운 순환(循環)체다.다음은 삼계탕이다. 전국에서 꼭 같은 조리법으로 만든 지금의 삼계탕과는 달리 보신탕에 익숙하지 않았던 여성과 어린이가 즐겨 찾았던 닭 국수가 있었다. 토막을 친 닭고기를 푹 고아 낸 국물에다 면발이 씹히는 국수를 말은 닭 국수는 별미중의 별미였으나 경상도 어느 지방에서도 지금은 맛볼 수 없다.학교공부로 더위에 지친 손자 손녀의 체력보충을 위해서 찹쌀 죽이나 닭 옹밥을 만들어주는 할머니를 간간이 볼 수 있을 뿐이다. 닭 국수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릴 만큼 여름 보양식으로 명성을 떨친 보양식이자 별미였다. 장어국은 남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보양식이어서 경상도 지방에는 조금 생소하다. 비린내를 동반한 물 냄새로 인해 거부감이 있지만 얼마 전 통영에서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빈민 돕기 기부 권유 강연을 마치고 한 음식점에서 먹은 장어국은 뼈를 푹 고아 만든 국물에다 장어를 통째로 넣어 끓였지만 양념을 잘해서인지 처음 먹어도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민어회는 더위에도 탈이 나지 않는 고급 회다. 목포 여수 등 서남해안에서 잘 잡히니까 그쪽 사람들이 즐겨 먹을 수밖에 없다.문화읽기에 기고한 최선옥시인의 글을 보면 직장인이 하지 말아야 할 습관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술 마시면서 담배피우기,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폭식하기, 원푸드 다이어트하기, 점심 때 라면 먹기, 스트레스 쌓일 때 먹는 것으로 풀기 등을 들었다.이런 습관은 자칫 평생 따라 다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체력소모가 극심한 여름이 그만큼 더 위험하다. 정의든 출세 지향적 삶이든 사회생활자체가 먹고 살기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삼복의 무더위도 피해나가는 방법을 알면 인생살이가 더 즐겁지 않을까. 삶의 질을 올리는 식습관 갖기는 매사가 복잡하고 고통스런 현대를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2011-08-02

깨달음이란?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부처는 맨발로 걸었다. 길 떠나는 부처가 제자들에게 남긴 하직 인사는 “나무를 심어라”는 짤막한 말뿐이다. 태어난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암시일 것이다. 석가모니는 평생 동안 8억4천만 명에게 법공양을 하고도 지칠 줄 몰랐다고 한다. 부처가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치는 깨달음을 여는 길이다. 깨달음은 언어이전의 세계다. 8만4천이란 엄청난 양의 법문을 설파하신 부처도 열반을 앞두시고는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버린다. 그동안 부처를 온몸으로 따랐던 중생 입장에서 보면 환장할 노릇이다. 세상과 중생을 위해서 그 숱한 법문을 말씀하셨지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은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근본에 이르는 길과 그 방편은 말과 글에 담을 수 있어도, 근본 그 자체는 말과 글이 끊어진 불립문자(不立文字)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하안거를 끝낸 어느 해 이 문제에 대해 도반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법정스님은 도저히 필설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유언은 부처의 마음이자 화두 `무(無)`자의 경지에서 나온 선불교 정신으로 이해하고 싶다.해탈한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진리의 피안에 이르거든 거기까지 타고 온 뗏목까지 버리라는(捨筏登岸)이란 말은 듣긴 했었지만 지금까지 들은 얘기를 어찌 무 자르듯 싹둑 잘라 내 버린다는 말인가.마음공부는 머리로 깨닫는 “해오(解悟)”가 있는가하면 육신으로도 깨닫는다. 해오보다 증득을 중요시 여길 수도 있다. 생각을 감추고 속이는 게 능사가 되어버린 세속이긴 하지만 작은 손가락에라도 가시가 박히면 “아야”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듯 그냥 깨달음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수행자는 내 안의 세계에서 소용돌이치고 맴도는 망상 집착을 비워내기 위해서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삶이 당대에서 끊기면 다행이고 다음 생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또 다음 생을 살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깨달음의 끝을 보기가 힘이 든다고 한다.결국 깨달음이란 언어이전의 세계라 해서 개구즉착(開口卽錯:말하는 순간부터 틀린다)이라고도 했지만 수행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걸림이 없다고들 한다.근세를 살은 당대의 두 선승이었던 향곡(香谷)스님이 어느 해 해인사 성철(性徹)스님의 처소인 암자에 머물렀다. 두 선승은 서로 `성철아`, `향곡아` 부르는 도반이었다. 깜깜한 밤 암자의 숲 한쪽에서 숨어 있다가 튀어 나와 “까꿍”하고 장난을 걸면 “아 깜짝이야”하고 서로 걸림이 없는 말을 주고 받았다고 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법상(法床)에 앉아 법문을 하실 때는 사자후로 서릿발 같았지만 일상생활에서 보면 번뇌가 끼지 않은 소년들과 흡사 했다. 인간은 열 서너 살부터 정신에 번뇌가 끼기 시작한다.1980년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으나 “그 자리는 내가 가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고 하신 말씀은 자리만 보면 아귀처럼 달라 붙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됐다.바다보다 더 큰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도 있다. 그 이름처럼 세상을 보고 듣는다고 해서 천수천안(千手千眼, 1천개의 손과 1천개의 눈)보살로도 불린다. 언제나 아미타여래의 왼쪽에 자리하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연꽃은 관세음보살이 처음으로 흘린 눈물에서 태어난 아내 타라(Tara)보살을 의미한다고 한다. 광세음(光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음(觀世音)등으로도 불리는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 부처와 같이 인도에서 전 세계로 퍼져 대중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을 더럽히는 인간의 오욕으로 식(食)·색(色)·재물(財物)·수면(睡眠)· 명예(名譽)를 꼽는다. 세속인의 입장에서 보면 욕심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삶의 고비마다 다르고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네 가지 욕심은 사라지는데 명예욕만은 유일하게 남아 죽어서까지 갈만큼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있다. 운형수제(雲形水弟)의 삶이 아닐까. 세속에 묶이다보니 몸은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정신은 여유를 부릴 만하다.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불가의 법은 마음이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 마음을 떠나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2011-07-26

은둔(隱遁)의 난()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집무실은 물론 난 한 두 분이 없는 가정이 없다. 난은 고급 식물로 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관상의 대상에서 깨달음과 수양의 경지로까지 가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루는 마음수련 최고의 경지까지 함께 간다. 난을 두고 흔히들 은둔의 거사라고 높이 존중 할 만큼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다.포항MBC보도국 데스크로 재직할 시기이었으니 1980년대 후반 어느 봄 날로 기억된다. 같은 MBC 계열에서 근무하는 A씨가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며칠 전 경주 감포에서 춘란 세 쪽을 1억에 사서 서울에 가 감정을 받아보니 자생난이 아니고 육종에서 얻어진 돌연 변이형 난이니 사기를 당했다는 것. 그 시절 1억은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1억 짜리 난이라면 호사가의 소장품이어서 내놓고 취재하기에도 조심스러웠을 시기였다.난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난 한 분에 1억이라 놀랍기도 해서 감포 난 집을 찾았으나 서로의 주장이 경지를 넘어선 이론이어서 중재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그 시절 감포는 물론 포항 동해·대보면 일대, 바닷바람을 적당히 맞고 통풍이 잘되는 그늘진 야산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춘란이 가끔씩 출현, 횡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나왔다.제주 한란보다 동해안 춘란이 더 귀하다는 얘기를 그 때부터 들었다. 동해안에서 자생한 춘란은 비싸긴 하나 난 전문가가 아니면 눈앞에 두고서도 고가의 난이라는 것을 분별해내지 못할 만큼 볼품없었으나 향과 꽃 색깔이 독특해서 난 애호가들을 미치게 한다는 것.그래서 난애호가들은 이런 춘란을 보면 놓지 못한다고 한다.보기에 따라서는 한 분에 5만원 안팎의 잎이 싱싱한 양란의 자태가 더 아름답다. 지금 우리나라 가정에는 난 한 분 없는 집이 드물 정도로 난을 키우는 게 대중화가 됐다.물론 애호가의 사랑은 특별한데가 있고 도가 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책상이나 창가에 두고 관엽의 경지에 이른 일반인 층도 근래 더 두터워 졌다.그래서 어디가나 난 한 두 분은 볼 수 있다. 난 동호회는 지역마다 있다. 홍수가 난 강가에는 수석애호가들이, 서늘하게 그늘진 야산에는 난애호가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나 명품 자생 난을 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난은 영국 사람들이 더 애지중지한다. 난을 동양란 또는 양란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건 편의상이지 식물학적 분류는 아니라고 한다. 흔히 양란이라 하면 자생지가 유럽이나 남미로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난이 태어난 곳이 어디이든 영국을 중심으로 개발, 보급된 것을 가리킨다.영국이 난에 공을 들인 노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초 세계무역의 중심 항이었던 리버풀은 난 재배로 유명했던 곳이다. 당시 영국 부유층들은 거대한 온실을 갖고 유명 난을 닥치는 대로 수집, 이 시기 세계 최대 규모의 난 재배 역사를 만들었다.브라질이 자생지인 열대 난 `카틀레야`는 19세기 영국 부호들에게 난 수집 열기를 댕긴 일등 공신이 됐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종류의 난을 보유한 곳은 미국 하버드대 식물원(세계의 난, 윤경은·정소영 지음)이라고 밝히고 있다.반면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자생하는 난으로는 춘란, 한란, 풍란 등을 의미한다. 난의 진가는 단연 향기다. 애호가를 매료시키는 은근하고 은은한 난향은 와인 향만큼이나 다양해서 명성을 더 얻는다. 모든 난과 식물 가운데 75%쯤은 대표적 향인 바닐라, 라일락, 감귤 향 등을 갖고 있다.난의 역사는 길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관엽식물은 역시 중국이 동양 삼국에서는 가장 앞서고 역사도 오래됐다. 우리나라 난 역사는 1300년대쯤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근거가 될 자료는 없으며 일본은 300년 전부터 풍란이 신분의 부귀를 나타내는 실내 장식품으로 대접받았을 만큼 유행했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양란은 일본을 통해 양란이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2011-07-19

철밥통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철밥통하면 국가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서 평생을 누리는 임직원을 가리킨다. 평생 부도나지 않고 시간만 채우면 봉급이 꼬박 꼬박 나오고 눈길을 홀리기만 해도 밥 사는 사람이 줄을 서는 이들 사회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중국선종에서 강한 선풍을 진작시킨 6조 혜능(慧能)이 오조 홍인(弘忍)으로부터 의발을 받을 때 나눈 얘기다. “방아는 다 찧었느냐”, “방아는 찧었지만 키질을 못하고 있다”고 대꾸한다. 그날 밤 삼경(三更), 혜능은 조사(祖師)의 신표(信標)가 될 의발가운데 발우로 받은 그릇은 철발(鐵鉢)이었다.철밥통이라는 어원은 이때부터 생기지 않았을 까. 그릇은 담는 용기다. 그릇 사용처와 재질에 따라 사기로 만들면 사발이 된다. 국을 담으면 탕기, 탕기의 반쯤 크기면 조치보다. 김치를 담으면 보시기, 간장은 종지, 찬그릇은 쟁첩이다. 물을 담으면 물그릇,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다. 담기는 물건에 따라 달리 불러지는 게 그릇이다.사람에게 비유할 때는 도량을 두고 말한다. 마음 크기가 크면 국량(局量)이어서 큰 그릇이지만 협량(狹量)이면 소인으로 일컬어진다. 책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요. 덕은 천하를 품는 그릇이다. 그런 그릇 가운데 으뜸은 먹어야 사니 단연 밥그릇이다. 선종의 조사도 신표로 철발을 전했고 성경의 주기도문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천명했다. 밥이 보약이기 때문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갓 찧은 밥은 생명의 맛이다. 반찬이 필요 없을 만큼 맛있는 심(心)미(味)다. 우스개지만 이 밥을 한의사들이 가장 싫어한다. 밥이 보약이기 때문이다.인간은 밥그릇 때문에 늘 싸움을 벌인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하버드대 공부벌레가 된 것도 종내는 랍스타를 마음 놓고 먹기 위해서다.농경민족은 쌀을 하늘이 내린 귀한 음식이라는 뜻을 살리기 위해 밥그릇은 입구가 안으로 휘는 옥식기로 하고 국그릇은 밥그릇보다 키가 낮고 입이 퍼지는 것을 사용했다. 그래서 밥은 퍼먹고 국은 떠먹는다고 했다.겨울에는 보온이 뛰어난 놋그릇을, 여름에는 사기그릇을 쓰고 상위에 오르는 그릇의 이름도 종지기, 조치보, 사발, 등 다양했다.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먹는 것은 한국의 식(食)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다. 서양에서 건너온 쇠그릇과는 달리 질그릇· 사기그릇 등 도자기가 발달한 것은 온(溫)식에 필요한 보온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우리나라말에는 삶는다· 굽는다· 볶는다· 덥힌다· 찐다· 데운다 등 가열동사가 부지기수다. 이 역시 따뜻하게 먹는 우리의 음식문화 수준과 습관을 나타내는 것.기마민족은 떠돌이 생활이 습관이 돼 들고 다니는 이동식 식사여서 찬 것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농경민족은 모여서 사니 따뜻한 국물이 없이는 밥을 못 넘긴다. 임진왜란 때 왜장은 첩자를 통해 조선 병사나 의군들이 집결, 밥을 먹는 장소를 찾는데 승패를 걸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다.공무원이나 국가 공공기관의 철밥통과는 달리 고고한 이름을 얻는 그릇들이 숱하다. 지난 2008년 10월에 환국한 막사발은 우리민족의 애환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일본 교토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온 이 차 사발은 17세기 쯤 야마구치(山口) 하기(萩)에서 구워졌다. 사발 겉 부분에는 한글로 “개가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써져 있다.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던 조선 도공의 애절한 표현이다. 이 도공은 난리 중 이 곳 출신 무사들에게 잡혔거나 조선의 흙과 비슷한 곳을 찾다 야마구치에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남 남해 하동 진주 김해 등 남쪽에서 살았던 도공들이 일본에 주로 끌려 갔다. 일본 영주들은 한 시대를 앞선 기술을 가진 조선도공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고는 하지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만은 빼앗지 못했다.일본인들이 국보로 떠받들고 있는 `기자에이몬오이도(喜左衛門大井戶)`는 누리끼한 색깔을 띠고 잔금이 나 있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 초까지 우리 집 부엌에서 볼 수 있었던 막사발에 불과하다.

2011-07-12

포르노시대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비디오나 인터넷이 그랬듯 3차원 입체 영상이라는 최첨단 영상기술에 속도감 있게 달라붙은 신업종은 역시 포르노다. 3D영상은 더 야하게, 더 잔혹하게 화면을 습격하고 있다. 백남준의 예술세계처럼 아리송하고 혼란한 틈바구니에서 기품 있고 실력이 뒷받침되는 숙녀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대다수 어른들은 알고 있다.일부 케이블 텔레비전 심야 프로그램은 포르노에 가깝다. 정부간섭을 심하게 받는 다고 할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이미 노골적인 생리대광고나 풍만한 가슴을 실체로 드러내놓는 브래지어 CF는 참을만한 지경이 돼 버렸다.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노골적으로 채팅 유혹방법을 쓰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아니다. 신문 만화만 들추면 그림 같은 호텔에서 섹스를 풍자하는 만화가 널려있고 글속의 묘사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다. 이런 어지러움의 세계에서 부모나 선생님이 말하는 순결, 도덕성이 먹혀 들어갈까.대한민국은 성법죄 공화국? 이라는 신문제목이 스스럼없이 등장하는가하면 전자 발찌란 것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 됐다. 보다 못한 당국은 성범죄자가 사는 곳에는 우편편지를 보내는 초강수를 두기 시작했으나 그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바르게 성장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미국의 포르노 시장 실태를 한번 살펴보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이 시대의 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잡지를 통해서 은밀하게 접근하던 포르노가 인터넷의 발달로 생활 깊숙이 침투한지는 꾀 오래됐다.미국의 포르노 사이트는 전체 웹의 10%가 넘는 4백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성인들 가운데 4천만 명쯤이 정기적으로 포르노 사이트를 방문하니 가히 포르노 천국이 돼 버렸다. 야구장을 찾는 사람의 몇 배가 된다는 수치다.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을 숨어서 읽었던 세대들에게는 지극히 충격적이다. 바쁘고 이상적인 생활을 하는 척하면서 혼자의 공간이 되면 포르노에 빠져드는 게 미국의 현실이 됐다. 더욱이 미국의 이런 사이트는 세계로 퍼져나가 남녀 가릴 것 없이 수시로 방문, 다운로드를 받아간다는 것이 더 놀라운 사실이다. 태국의 젊은층 70%가 이런 사이트를 방문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한국·홍콩 등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인터넷 발전 속도가 빠른 국가일수록 비례한다는 것.100억 달러가 넘는 포르노 산업이 미국의 유망산업이 되었으니 규제는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추악한 실태를 품고 있는 미국 국무부가 낸 보고서에는 한국을 인신매매국으로, 또 점점 많은 한국 10대들이 성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95%이상은 인터넷을 통해 중개된다고 최근 발표했었다.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포르노를 볼 날이 올 것으로 우려했는데 우리나라 스마트 폰에도 벌써 등장했다.우리나라 인터넷의 발전은 도박과 포르노가 한몫 끼워들었다는 말이 갈수록 실감나는 세상이 됐다. 인터넷 강국, 휴대폰 강국에서 포르노 시대의 자화상은 어디쯤 갔을 까.애인대행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포르노에서 싫증이 나면 애인대행 사이트를 찾는다고 한다. 이런 물결을 타고 성매매는 우리농어민 생산력과 맞먹는 24조로 추정될 만큼 커져 버렸다. 어느 단체는 “성인용 어플의 무분별한 양산은 IT시장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라며 정부가 나서서 어플 내용을 잘 감시해야 실효성이 발휘될 것”이라며 업계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다시 노출의 계절이 왔다. 여성들이 입는 치마길이와 성범죄는 비례되는데 젊은 여성들의 치마길이는 더 짧아지는 것 같다. 거리에서 본 충동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그 다음 수순은 뭘까. 여성 옷차림 노출 도는 40%가 가장 보기 좋다는 영국 대학의 여론 조사는 음미해볼만하다. 민소매 수준이 40%, 이 수준이 넘으면 헤프게 보이고 포르노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충동 범죄의 현장이 될 수 있다.

2011-07-05

시절 음식으로 풀어보는 풍류

권오신/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어머니의 손맛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내 손이 마땅히 이어받아야 할 어머니의 손맛들은 서양식 공부에 신들리듯 흡수된 세대들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동해안 손맛, 계절 맛으로는 은어와 도다리 물회, 말똥 성게 비빔밥을 최고로 친다. 시절 맛, 제철에 난 음식을 먹는 멋은 풍류다. 영덕 오십천, 울진 왕피천, 형산강 변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면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강줄기에서 잡히는 보리 은어 맛이다.강에서 잡힌 물고기는 비린내가 당연히 나지만 보리가 익어갈 때 잡히는 보리 은어는 심심산천에서 내려온 차고 맑은 물속, 강자갈에 얽혀 붙은 초록 이끼를 먹고 자라 비린내가 없고 수박향이 난다.은어를 구워 먹으면 수박 향은 5리 길을 날아 갈만큼 진하다.은어축제가 강에서 은어를 몰아내는 축제가 되어 버렸지만 보리가 익어가는 초여름, 동해안에서 15㎝이상 크기로 자란 은어의 수박 향은 독특하다.내륙지방일수록 향이 강하고 씨알이 좋다. 낙동강 하구에서 출발한 은어가 경북 북부지역 내륙지방까지 오려면 700km를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수박향이 강하기로 이름난 안동지방 은어는 임금님 진상품이다.예전에는 낚시보다 대나무발로 잡았다.빗발이 강한 한여름에 잡힌 은어는 극상품이 아니다. 초여름에 잡힌 은어라야 통째로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먹을 수 있지만 수량이 풍부한 한여름 은어는 비린내가 나 구워 먹는 게 좋다.성질이 마른 은어는 행동이 날랜 만큼 성깔도 급해 강물이 좁은 도랑을 만나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으면 자갈밭으로 튀어 올라 파닥거리다 죽어버린다. 지금은 찾기 힘든 일급수에서 이끼만 먹고사는 은어는 신사이고 귀물이자 고결한 생을 내려놓지 않아서 언제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한 여름에 잡히는 은어는 요리법도 틀린다. 강변 토박이 들은 무쇠 솥에다 쌀뜨물을 붓고 양념은 간장 고춧가루 고사리 정도만 넣고 끌리면 알을 밴 은어에서 나오는 기름이 둥둥 뜨면 침이 절로 목구멍을 간질인다.동해안 봄철 음식으로는 이즈음 잡힌 도다리로 만든 물회 역시 명성이 높다. 물회는 동해안에서 특히 포항이 자랑하는 음식이 됐다. 물회를 잘하는 집은 낮에 앉을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물회는 손바닥 크기 가자미가 알맞고 가는 뼈가 씹혀야 제 맛이 난다 할 수 있으며 간밤 술독에 빠진 주당들은 한 사발 물회를 먹고 나면 시린 속이 저절로 풀린다.젓갈이나 홍어는 물론이고 초고추장이 들어가는 우리나라 음식은 모두가 맛, 향이 가장 강렬하다. 하지만 동해안 물회는 초고추장이 들어가지만 강렬하지 않다. 그 것은 도다리 육질이 초고추장의 매운 특성을 흡수하는 조화 때문일 것이다.신경을 많이 쓰는 책상물림이나 샐러리맨들은 흙과 물을 만지고 가까이하면 피로가 쉽게 풀린다.도시에 앉아서 천렵(川獵)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물회 한 사발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중년의 근심걱정은 세월에 너무 집착하고 놓아버려야 할 것들을 잔득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번뇌를 피하는 길로 철이 바뀔 때마다 맛있는 시절 음식을 찾는 것도 한 방안이다.의병장 곽재우는 자신의 호를 망우당(忘憂堂)이라고 지었다. 얼마나 근심걱정 많은 중년 시절을 보내어서 망우당이라고 지었을 까. 망우당이 보낸 한의 세월과는 달리 지금은 왜란(倭亂)도 없고 보리 고개도 없는 세월.하지만 세상 걱정거리를 한보따리 짊어지고 사는 고된 삶을 살아보니 짐작이 간다. 철학위에 먹는 거다. 웃자는 말이지만 먹는 것이 가장 많이 부딪치는 일상이다.

2011-06-28

담배, 공공의 적이 됐다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공공장소에선 금연표시가 없어도 금연은 기본입니다” 간접흡연까지 말리는 어느 공중파 방송사의 TV공익캠페인이다. 담배가 어느 사이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담배로 인한 사회적 손실액이 5조 6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암과 같은 치명적인 건강문제나 산불, 화재 등 사회적 손실액은 이루 말 할 수 없을뿐더러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연간 8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폐해가 크나 놓지 못하는 게 또한 담배다.담배는 17세기 초 일본을 통해 들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 문명에 접근하는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빠르기가 같았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려진 17세기 초, 담배가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저자거리 모습은 벼슬아치와 부녀자, 어린아이와 종에 이르기까지 너도 나도 담배를 피워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적었다.당시 한양거리 담배 가게는 서양의 카페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소설을 읽어주던 사교 공간이 됐다.이덕무가 지은 은애전(恩愛傳)에는 담배 가게와 얽힌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시 전기수(소설을 읽어주는 사람)가 소설속의 주인공이 좌절하는 대목을 얼마나 실감나게 몸짓하며 읽었던지 이를 듣던 사내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사내는 전기수가 읽어주는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살변을 일으켰다.대동법을 만들었던 김육이나 노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우암 송시열은 담배를 혐오했던 반면 조선시대의 문장가인 장유는 골초로 알려졌다. 귀양살이에 지친 다산 정약용은 갇혀 사는 사람에게는 술이나 차보다 담배가 좋다고도 했다.담배를 피워서 좋은 이유로 술주정은 있어도 담배주정은 없다. 분위기 잡을 때 말이 필요 없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보릿고개가 길고 길었던 시기, 누렁봉지속의 풍년초는 서민들의 최대 기호품이다.귀한 손님이오면 풍년초를 권했던 그 시절은 한국 근대사에 가장 가난했던 시기였지만 담배 한 대를 나누는 인정만은 풍성했다. 이런 담배가 설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가속도가 더 붙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아직 지방은 덜하지만 서울에선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이달부터 과태료가 10만원이다.물론 일본은 우리보다 8~9년이나 앞서 길거리 흡연을 금지시키고 있다. 길을 걷던 애연가의 담뱃불로 인해 한 어린이가 실명에 이른 사고가 난 이후부터다.미국 캘리포니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가하면 빌딩 3미터 이내(아이슬란드)에서는 금연이다. 프랑스는 훨씬 규제가 더 심하다. 우리역시 다른 선진국들처럼 규제 속도가 만만치 않다.물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폐암, 기관지염 같은 만성 폐질환을 비롯해 암에 걸릴 위험요소를 대폭 줄일 수도 있고 편안한 호흡이 되어서 기침은 물론 심장병, 심장마비, 뇌졸중을 겪을 가능성도 줄어드니 학계의 권고를 무시 할 수는 없다. 담배금지 공개 청원은 더 오래됐다.복지부가 지난해 하반기 성인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흡연율을 보면 남성의 경우 39.6%로 30%대에 첫 진입했으나 아직도 애연가가 많다. 29세 이하 여성 흡연율은 5.8%다.성인남성 흡연율은 지난 2005년 우리나라가 담배규제기본협약(FCTC)비준국이 되면서 담뱃값 인상 등 규제정책을 꾸준히 편 이후 2005년 52.3%, 2006년 44.1%, 2007년 42.0%로 하락하다 2008년 40.9%에서 2009년 하반기 43.1%로 일시적으로 상승되긴 했으나 다시 30%대로 떨어졌다.어째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이렇게 내모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시간을 주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2011-06-21

6월의 꽃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5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5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고 한 피천득의 5월도 지나쳐 버리고 벌서 6월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한껏 무르익은 봄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었으나 꽃의 자태는 더 관능적이나 먹는 꽃, 못 먹는 꽃이 있다. 50년은 넘게 되었다. 이른 봄 진달래 꽃 방망이를 만들어 산에서 내려오는 초립동들의 입가는 붉게 물들어 진다. 먹어도먹어도 배고픈 참꽃(진달래)을 따먹었기 때문이다. 진달래가 지면 경상도 방언으로 연달래 수달래(철쭉)가 핀다. 진달래꽃과 흡사하고 꽃 색은 더 연해서 손이 가지만 먹을 수 없는 꽃이나 그 시절 진달래는 화전이나 화채, 술에 띠워 먹을 수 있어 늘 곁에 있었으나 철쭉은 독성(그레이아누톡신)이 숨어있어 보는 꽃이었을 뿐이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마을별로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었고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차, 국화 술을 먹어 꽃잎을 즐겨 먹었다. 꽃에는 향기롭고 비타민·아미노산·미네랄 같은 영양소가 들어 있고 화려한 색과 향기는 식욕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먹는 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진달래꽃과 국화 아카시아 동백 호박 매화 복숭아 살구꽃 등이 있다. 단오에 떨어지는 감꽃은 한나절 숨을 죽이면 먹기가 더 좋다. 감꽃이 한나절 시들어 흑갈색으로 변하면 쓴 맛이 줄어지는 대신 꽃잎이 연해져 씹기가 좋다. 반면 은방울꽃·삿갓나물꽃·그리고 돌 틈에서도 잘 자라고 간난 아기 변처럼 가늘게 찔끔 나와 애기똥풀꽃으로 긴 이름이 지어졌지만 이 꽃 가녀린 줄기에서 나온 노란 즙은 가벼운 아편 증세를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 있다.60대 이후 한국인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애창곡 찔레꽃은 많은 사연을 가진 꽃이다. 5월에 피고 6월에 꽃이 떨어지면 까치밥으로 영근다. 찔레는 꽃은 먹지 못하지만 이른 봄 뻗어나는 찔레순은 껍질만 벗겨내면 그 맛이 향기로워 보릿고개를 넘기던 소 먹이 아이들의 최고 간식이었다.가을에 붉게 달리는 까치밥은 달콤하고 향기롭다. 까치밥을 모아 서너 번 덖고 말리면 훌륭한 차가 된다. 찔레는 속까지 하얗다. 그래서 순수함으로 나고 순정파 여 학생으로 거듭 태어나서 민중의 꽃으로 불려졌다.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바다 내고향/언덕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이 노랫말은 빨치산 대원들이 즐겨 불렀다 해서 자유당 시절엔 마음대로 흥얼거리지 못했다.아마도 꽃피고 물 흐르는 고향생각에 눈물지우는 빨치산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반도 남쪽에 주로 자생하는 찔레는 순 토종 야생화이고 여전히 이맘때부터 지천으로 피는 꽃이다.모든 생명체에겐 먹는 것과 안식처는 중요한가보다. 노랑나비들이 물러간 초여름 들판에는 벌떼들이 이 꽃 저 꽃을 파고든다. 꽃가루와 달콤한 꿀을 물물교환하고 벌통으로 돌아오면 육각형 집을 짓는다. 벌들이 꽃에서 얻은 소재로 지은 육각형 집은 가장 작은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한 경제적 구조이자 힘을 배분하는 설계여서 많은 양의 꿀까지 저장할 수 있다. 벌들이 남긴 이런 독특한 구조는 건축구조나 심지어 고속열차의 충격흡수장치로 응용되는 등 인간이 가장 많이 활용하고있다. 하늘을 달리고 꽃을 지나 녹음을 스쳐오는 말고 향기로운 바람은 가난하고 빈한하게 살지만 꽃 속에 묻히면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녹음처럼 마음이 열린다.

2011-06-14

난행고행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부처님이 태어나신 북인도의 하늘에 뜬 별은 너무 아름답다. 마치 보석이 잔뜩 뿌려진 것처럼 총총 빛을 내뿜고 있다.인도를 여행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일주일간 인도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권 쓰고 7개월을 여행한 사람은 시를 한편 쓰지만 7년을 산 사람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한다. 인도는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지녔을 뿐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더 신비해지는 나라로 해석된다.인도에서는 평범하게 사는 시골 노인이라도 생사문제만은 철학가의 수준을 뛰어넘는 지식을 갖고 있다. 이러니 사두(힌두교 수행자)의 걸음걸이는 여유가 넘쳐서 생의 무게를 찾을 수 없다.바리나시에서 만난 사두의 형형한 눈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어제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을 살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말 한마디에는 속도감에서 헤여나지 못하는 길 위의 영혼들에게는 가슴을 망치로 치는 심금이 된다.석가모니는 29살에 출가, 고행 6년 만에 보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성자이자 천재다. 보다가야 대탑은 열반 300년 후 법륜성왕으로 추존된 아쇼카 왕이 세웠다.사르나트 박물관에는 부처님 초전 법륜 상을 가장 잘 나타낸 5~6세기에 조성된 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보일 듯 말듯이 흘러내리는 미소, 지그시 감은 눈의 부처님 상을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어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숱한 전란과 도굴로 이어진 1500년의 세월을 잘도 이겨냈다.열반 후 500년간은 불상이 없었다. 초기 간다라 불상이 명상을 표현했다면 그리스문화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불상부터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불상은 마투라 이후에 건너 왔다고 여겨진다.난행고행이다. 내가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것이 부처님 말씀 잘 따르는 것이자 이롭고 행복한 삶이다. 부처는 동방 동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생 사는 곳을 보는 눈이다. 서방정토는 결국 어디일까. 아미타여래를 바라보는 방향이 부처님이 사시는 곳이자 중생들이 뒤엉켜 사는 곳.유장한 갠지스는 어머니의 강이다. 인도는 성자의 나라, 사람의 나라다. 소와 인간, 힌두의 윤회사상이 깔려있고 모든 종교관을 품고 있다.델리에 있는 바하이 사원은 인도의 국화인 연꽃 모양을 닮아 연꽃사원이라 부른다. 27개의 거대한 연꽃잎 모양을 보고 한마디 감탄사를 내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델리시내의 종교 광고판도 이색적이다. 수많은 신들이 명함판 사진 크기로 게시돼 있었고 골목마다 신이 틀린다. 신의 생일날 거리퍼레이드는 통상 반나절 정도 걸리며 향이 무척이나 짙은 아르 꽃 목걸이로 단장한다.신은 홍수·가뭄도 막아주지만 강한 힘을 심어주는 `하누만`이나 `땅의 신` 빨간 코끼리처럼 생긴 자연의 신 `레니쉬`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주로 레슬러나 힘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들이다. 레슬러들이라 하드라도 `레니쉬`만 믿는 것이 아니라 10가지가 넘는 신을 믿고 경배하고 경기에 나간다.석가모니가 태어나신 북인도에 도착하면 그날로 추억여행이 시작된다.우리나라의 60년대 말이다. 소달구지가 한껏 여유를 부리고 거리의 이발사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가하면 운동화바닥을 기워주는 거리 행상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시가를 벗어나면 가로수 허리춤 형광페인트 칠이 도로 경계선이며 나무 전신주가 어지럽게 서있다. 맨바닥 부엌에서도 얼마든지 정결하고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진다. 밤에는 가로등조차 없는 캄캄한 거리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인도인들은 없었다.살은 사람이던 망자이던 인도는 갠지스 강 항하사(모래)를 밟으면서 불평 없이 세상을 사는 게 이채롭다.

2011-06-07

먹향과 벼루

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벼루는 재질이나 형태, 지명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단계석으로 만들어지면 단계연이다. 석질이 좋은 단계연은 벼루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사흘간 마르지 않아서 선비들로부터 애절한 사랑을 받았다. 운월연은 구름사이를 비집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며 장생연은 십장생이 부조돼 있다.참외연은 줄기와 잎 새 사이로 참외 형태의 벼루 바닥이 만들어졌으니 실제 참외를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벼루에 부조된 조각은 그 시대 최고 경지에 오른 조각가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작품이어서 작품가치로서도 단연 으뜸이다.옛 선비들은 좋은 벼루를 보면 집을 팔아서라도 내 것으로 만든다. 햇빛이 밝은 창 아래서 벼루에 먹을 갈면 방안에 퍼진 먹 향의 황홀감을 최고의 멋으로 여겼고 인격을 수양하는 길로 여겼다.끼니걱정을 놓지 못하는 선비들마저 이런 명품 벼루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낮밤을 가슴에 품었지만 부인으로부터는 갖은 구박을 받는다.조선시대를 살은 선비들이 애지중지 했던 벼루는 자신의 학문이 집대성된 마지막 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벼루를 선택한다고 하니 학문의 깊이와 명품 벼루를 탐하는 정신적 사유가 같다고나 할까. 여기에다 글씨에 대해서만 한수 위라고 뽐내는 중국인들조차 천하의 보배로 여기는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조선의 낭미필을 가지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이순을 넘기면서 부터 유독 흰 구름 따라 고향 길을 유독 걷고 싶어졌다. 60대 중반을 넘어 서니 또 하나 그리워지는 것이 있어서니 먹(墨)향이었다. 어떤 때는 글씨를 써는 것보다 먹 향을 맞는 것이 더 좋아 서실에 머무르고. 먹물에다가 코를 갖다 대면 머릿속을 들락거렸던 삶의 번뇌를 찰나 간에 녹여 주었던 게 먹 향이다.1970년대 초 해외여행이 힘들었던 단수여권 시절 우연찮게 들린 일본 나라 동대사 부근 필방에서 400년, 14대를 잇고 있다는 고혹적인 문구에 이끌려 고매원(古梅園)먹을 당시로서는 큰돈이라 할 10만원을 주고 몇 개를 샀다.이 먹을 고희(古稀)에도 붓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 서안(書案)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효도한번 제대로 못한 내 마음이 들킬 것 같아서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까지 그 먹을 아끼신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매원 먹에는 사향(麝香)뿐 아니라 용뇌향(龍腦香)을 넣었다는 설이 있었다. 두 향 모두 정신을 맑게 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기(氣)가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하고 먹색이 곱다.용뇌향은 먹잇감을 너무 많이 들이마셔 속이 거북해진 고래가 반쯤 소화되다 말은 음식물을 토해버리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물이 미네랄을 머금고 응어리져 수 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 졌다.이런 재료로 만들어지면 묵향은 일품이 된다. 고매원 등 일본에서는 글씨가 오육십 년이 지나도 먹 향이 날만큼 먹을 잘 만든다.마음의 평온은 어디서 오는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너오는 경박한 대답은 피곤하다. 세상사 다가지려는 탐욕은 뭇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엉덩이를 한곳에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오지랖 넓은 사람도, 나 없으면 세상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편치 못하다.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다. 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먹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 본다.먹색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죽간도 썩고 천년을 간다는 한지도 공기 속으로 산화되나 오직 먹 글씨만은 남는다. 먹의 원 밑천은 소나무나 오동씨앗으로 짠 기름, 옻나무를 태울 때 나온 그을음으로 만들어진다.

201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