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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독신공(速讀神功)을 배우게 한 무협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8-09 23:31 게재일 2011-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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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무협지의 권· 검법은 모두 동물의 형태에서 따왔다.

소림사 승려들의 멋진 권법은 원숭이· 학· 뱀의 동작을 인간이 익혀 완성시켰다. 무림 고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강호이고, 강호(장강과 동정호를 일컫는 말)라는 낱말을 등장시킨 중국에서도 설이 분분하다.

불가에서는 법력이 높았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장시(江西)에 머물렀던 시기로 추정할 뿐이다. 중국무협은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2천년 역사를 지녔다. 협객의 역사로 그려 단순한 대중적 오락물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문화코드로 그린 것이 허풍이 심하긴 하나 여름밤 속독신공의 독서로는 단연 으뜸이다.

우리나라 무협지는 1961년에 가장 많이 읽힌 최인훈의 `광장`과 무협지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할 `정협지`다. 그해는 군사정변으로 불안하고 모두가 막연했던 시절이어서 잠시 시름을 놓고 강호의 고수들이 대결하는 절대무공의 세계로 상상의 나래를 `정협지`를 통해 마음껏 펼쳤다.

경향신문에 2년간 연재(1961~63)된 `정협지`는 대만작가가 쓴 `검해고홍(劍海孤鴻)`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가져와 새롭게 쓰다시피 한 작품이었다. 회양방과 숭양파라는 두 무림방의 노영탄, 악중악 형제와 절세가인 연자심이 강호를 사이에 두고 긴 세월 펼치는 사랑과 배신, 복수로 이어지는 드라마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나오면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남경의대에서 면학, 정치가와 소설가를 꿈꾸었던 작가 김광주의 상해 생활은 백범을 돕는 측근이자 지사였다. 말년 무협소설을 받아 적었던 아들이 훗날 `칼의 노래`로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이다. 근세 무협지의 대가는 역시 김용(83)이다. 신필 김용은 일생을 통해 수많은 소설을 남겼지만 유독 `사조영웅전`은 대만에서만 천권, 중국에서는 1억 권이 팔렸고 그 후로도 영화, TV 드라마, 만화, 게임을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갔다.

송·금·원의 교체기를 택한 역사적배경도 흥미를 보탰지만 구음진경 `비무초진` 악비유서를 통해 신비감을 키웠고 성장기 소년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마음그릇을 키우는 인고(忍苦)를 우회적으로 배우게 했다.

금나라 왕에게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은 편협한 복수보다는 고수들과의 만남과 대결을 통해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했지만 부귀공명을 쫓지 않고 오직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중국 오악(五嶽)가운데 산세는 가장 험하지만 바위산이 아름답고 도교의 성지여서 더 신비스러워진 화산(華山)이 주요 무대다. 한자문화권이 수 천년동안 지녔던 신선과 도교의 설화가 저변과 맛 닿아 있는 점도 특이하고 소설 군데군데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나 전진교 도사 구처기(丘處機)같은 실존 인물이 남긴 역사적 사실을 끼워 넣은 것이 흥미를 보탰는가하면 강호의 다양한 음식을 통해 식선(食仙)의 세계도 엿볼 수 있어 지금도 읽히고 있다.

연초 케이블 TV에서 장편 시리즈로 방영한 무협(40회) 드라마 `소호강호`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 무협드라마의 호감은 우리나라 안방극장에 등장하는 인물고운 사극배우와는 달리 개성이 다른 다양한 캐릭터가 진경산수를 무대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28편이 나온 `묵향`도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와 무협지가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긴 했지만 소설 초반에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책에 올랐던 전동조 지음 `묵향`도 속독신공이면 이 삼일이면 읽을 수 있다.

여러 무림 방파가 등장,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는 강호의 인심을 배경으로 깔고 정파와 사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강호의 규범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음(知音)의 관계를 맺는 등 허풍이 심한 중국다운 이해관계를 잘 그려 자칫 상실하기 쉬운 판타지의 무게를 잡아 주었다.

이런 무협지들은 속독신공에 빠져들면 무더운 여름밤이 언제 지나 간지도 모른다. 삼류 소설이 아닌 험난한 세파의 인간드라마를 보는 재미에다 속독신공의 묘미 또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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