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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빠진 대한민국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27 23:57 게재일 2011-09-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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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커피 농장에서 죽자고 커피 열매를 따도 우리 돈 천 원 벌이도 안되지만 그런 일자리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지금 세계인들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인들의 눈물 젖은 커피를 하루 20억 잔 이상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역시 시장 규모 2조3천억이 넘는 세계 10위권 커피 소비대국이다. 국민 한사람이 연간 300잔(2008년 통계 228잔)가까운 커피를 마신다. 다국적 기업이나 패스트푸드 업계, 심지어 의류업계들이 커피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시장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커피소비가 줄어드는 미국과는 정 반대다.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는 새로운 형태의 커피하우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맛볼 수 있어 질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커피 마니아들은 커피를 두고 `악마의 유혹`이라고 한다. 암갈색의 묽은 액체에서 나는 커피 향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혀 깊숙이 찌르는 부드러운 맛은 혀를 유혹하는 악마의 미소를 연상해서다.

커피의 유행은 유럽사회를 바꾼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 유럽에 커피하우스·커피살롱으로 불리는 동양적 다방(茶房)문화가 탄생하면서 왕정에 비판적이었던 정·예술인들의 토론장이 됐다. 여론 형성의 기초 터전이 되면서 판매량이 꾸준히 늘게 된 것.

청교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을 했다 돌아온 영국의 찰스 2세는 왕정을 복고하고는 비판여론을 만드는 커피집 폐쇄를 명령했다가 거센 반발에 밀려 물러서고 말았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이야기가 나오면 프랑스의 사실주의 거장 발자크와 얽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날은 24시간 내내 글을 쓰면서 평균 30잔 이상의 커피를 마서댔다.

발자크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49세에 생을 놓아 버린 것은 단순히 커피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커피는 하루 4잔 이상 마시면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속기사였던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했다. 안나는 커피대신 최음제로 알려진 진미 캐비어를 구해와 남편이 `죄와 벌`의 단원을 탈고할 때마다 캐비어와 섹스를 제공 했다고 한다.

지금 세계인들은 하루 20억 잔의 커피를 마신다. 한국역시 커피 소비 10위국답게 거리마다 커피 파는 집이 즐비한 반면 우리찻집은 한적한 호숫가나 산방부근으로 밀려 난지가 오래됐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로 추정된다.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서부터 널리 퍼져 나간 것은 커피 맛에 빠져든 메카 순례자들 덕분이다. 16세기 이후 메카의 신전을 찾은 순례자들이 고향으로 가지고 가면서 카이로, 이스탄불, 다마스쿠스 등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가 세계적 기호품으로 세계화의 길을 걷게 된 또 다른 설은 1600년대 초 네델란드 상인이 인도인 순례자로부터 생 원두를 받아 인도네시아에서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시작 되었다 한다.

세계의 유명 음식이 모두 그렇듯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소년 염소치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질뿐 정확한 근거가 될 사료는 없다. 소년이 들판으로 데리고 나간 염소가 이상하게 생긴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은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봤다.

이 열매를 갖고 무엇이든지 척척 아는 수도원장을 찾아갔다. 쓸데없는 얘기라면서 불속에 던진 열매에서 향이 진동하자 열매를 갈아 마셔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한밤중까지 정신집중이 잘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이 커피의 진원지가 됐다.

커피 원두 값은 2000년 대 들어 kg당 1달러대로 떨어질 때도 있었다. 냉전시대가 해체되는 시기부터 폭락, 아프리카와 브라질, 콜롬비아 등 남미의 주요 원두 생산국 농민들을 가난으로 몰아갔다.

단순한 음료를 넘어 생활의 큰 공간으로 자리 잡은 커피는 세계 3대 기호 식품(코코아· 녹차) 가운데 으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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