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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隱遁)의 난()

황태진 기자
등록일 2011-07-19 23:38 게재일 2011-07-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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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집무실은 물론 난 한 두 분이 없는 가정이 없다. 난은 고급 식물로 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관상의 대상에서 깨달음과 수양의 경지로까지 가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루는 마음수련 최고의 경지까지 함께 간다. 난을 두고 흔히들 은둔의 거사라고 높이 존중 할 만큼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다.

포항MBC보도국 데스크로 재직할 시기이었으니 1980년대 후반 어느 봄 날로 기억된다. 같은 MBC 계열에서 근무하는 A씨가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며칠 전 경주 감포에서 춘란 세 쪽을 1억에 사서 서울에 가 감정을 받아보니 자생난이 아니고 육종에서 얻어진 돌연 변이형 난이니 사기를 당했다는 것. 그 시절 1억은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1억 짜리 난이라면 호사가의 소장품이어서 내놓고 취재하기에도 조심스러웠을 시기였다.

난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뿐더러 난 한 분에 1억이라 놀랍기도 해서 감포 난 집을 찾았으나 서로의 주장이 경지를 넘어선 이론이어서 중재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감포는 물론 포항 동해·대보면 일대, 바닷바람을 적당히 맞고 통풍이 잘되는 그늘진 야산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춘란이 가끔씩 출현, 횡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나왔다.

제주 한란보다 동해안 춘란이 더 귀하다는 얘기를 그 때부터 들었다. 동해안에서 자생한 춘란은 비싸긴 하나 난 전문가가 아니면 눈앞에 두고서도 고가의 난이라는 것을 분별해내지 못할 만큼 볼품없었으나 향과 꽃 색깔이 독특해서 난 애호가들을 미치게 한다는 것.

그래서 난애호가들은 이런 춘란을 보면 놓지 못한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 분에 5만원 안팎의 잎이 싱싱한 양란의 자태가 더 아름답다. 지금 우리나라 가정에는 난 한 분 없는 집이 드물 정도로 난을 키우는 게 대중화가 됐다.

물론 애호가의 사랑은 특별한데가 있고 도가 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책상이나 창가에 두고 관엽의 경지에 이른 일반인 층도 근래 더 두터워 졌다.

그래서 어디가나 난 한 두 분은 볼 수 있다. 난 동호회는 지역마다 있다. 홍수가 난 강가에는 수석애호가들이, 서늘하게 그늘진 야산에는 난애호가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나 명품 자생 난을 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난은 영국 사람들이 더 애지중지한다. 난을 동양란 또는 양란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건 편의상이지 식물학적 분류는 아니라고 한다. 흔히 양란이라 하면 자생지가 유럽이나 남미로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난이 태어난 곳이 어디이든 영국을 중심으로 개발, 보급된 것을 가리킨다.

영국이 난에 공을 들인 노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초 세계무역의 중심 항이었던 리버풀은 난 재배로 유명했던 곳이다. 당시 영국 부유층들은 거대한 온실을 갖고 유명 난을 닥치는 대로 수집, 이 시기 세계 최대 규모의 난 재배 역사를 만들었다.

브라질이 자생지인 열대 난 `카틀레야`는 19세기 영국 부호들에게 난 수집 열기를 댕긴 일등 공신이 됐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종류의 난을 보유한 곳은 미국 하버드대 식물원(세계의 난, 윤경은·정소영 지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자생하는 난으로는 춘란, 한란, 풍란 등을 의미한다. 난의 진가는 단연 향기다. 애호가를 매료시키는 은근하고 은은한 난향은 와인 향만큼이나 다양해서 명성을 더 얻는다. 모든 난과 식물 가운데 75%쯤은 대표적 향인 바닐라, 라일락, 감귤 향 등을 갖고 있다.

난의 역사는 길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관엽식물은 역시 중국이 동양 삼국에서는 가장 앞서고 역사도 오래됐다. 우리나라 난 역사는 1300년대쯤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근거가 될 자료는 없으며 일본은 300년 전부터 풍란이 신분의 부귀를 나타내는 실내 장식품으로 대접받았을 만큼 유행했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양란은 일본을 통해 양란이 들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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