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석으로 만들어지면 단계연이다. 석질이 좋은 단계연은 벼루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사흘간 마르지 않아서 선비들로부터 애절한 사랑을 받았다. 운월연은 구름사이를 비집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며 장생연은 십장생이 부조돼 있다.
참외연은 줄기와 잎 새 사이로 참외 형태의 벼루 바닥이 만들어졌으니 실제 참외를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벼루에 부조된 조각은 그 시대 최고 경지에 오른 조각가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작품이어서 작품가치로서도 단연 으뜸이다.
옛 선비들은 좋은 벼루를 보면 집을 팔아서라도 내 것으로 만든다. 햇빛이 밝은 창 아래서 벼루에 먹을 갈면 방안에 퍼진 먹 향의 황홀감을 최고의 멋으로 여겼고 인격을 수양하는 길로 여겼다.
끼니걱정을 놓지 못하는 선비들마저 이런 명품 벼루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낮밤을 가슴에 품었지만 부인으로부터는 갖은 구박을 받는다.
조선시대를 살은 선비들이 애지중지 했던 벼루는 자신의 학문이 집대성된 마지막 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벼루를 선택한다고 하니 학문의 깊이와 명품 벼루를 탐하는 정신적 사유가 같다고나 할까. 여기에다 글씨에 대해서만 한수 위라고 뽐내는 중국인들조차 천하의 보배로 여기는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조선의 낭미필을 가지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이순을 넘기면서 부터 유독 흰 구름 따라 고향 길을 유독 걷고 싶어졌다. 60대 중반을 넘어 서니 또 하나 그리워지는 것이 있어서니 먹(墨)향이었다. 어떤 때는 글씨를 써는 것보다 먹 향을 맞는 것이 더 좋아 서실에 머무르고. 먹물에다가 코를 갖다 대면 머릿속을 들락거렸던 삶의 번뇌를 찰나 간에 녹여 주었던 게 먹 향이다.
1970년대 초 해외여행이 힘들었던 단수여권 시절 우연찮게 들린 일본 나라 동대사 부근 필방에서 400년, 14대를 잇고 있다는 고혹적인 문구에 이끌려 고매원(古梅園)먹을 당시로서는 큰돈이라 할 10만원을 주고 몇 개를 샀다.
이 먹을 고희(古稀)에도 붓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 서안(書案)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효도한번 제대로 못한 내 마음이 들킬 것 같아서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까지 그 먹을 아끼신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고매원 먹에는 사향(麝香)뿐 아니라 용뇌향(龍腦香)을 넣었다는 설이 있었다. 두 향 모두 정신을 맑게 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기(氣)가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하고 먹색이 곱다.
용뇌향은 먹잇감을 너무 많이 들이마셔 속이 거북해진 고래가 반쯤 소화되다 말은 음식물을 토해버리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물이 미네랄을 머금고 응어리져 수 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 졌다.
이런 재료로 만들어지면 묵향은 일품이 된다. 고매원 등 일본에서는 글씨가 오육십 년이 지나도 먹 향이 날만큼 먹을 잘 만든다.
마음의 평온은 어디서 오는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너오는 경박한 대답은 피곤하다. 세상사 다가지려는 탐욕은 뭇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엉덩이를 한곳에 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오지랖 넓은 사람도, 나 없으면 세상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편치 못하다.
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다. 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먹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 본다.
먹색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죽간도 썩고 천년을 간다는 한지도 공기 속으로 산화되나 오직 먹 글씨만은 남는다. 먹의 원 밑천은 소나무나 오동씨앗으로 짠 기름, 옻나무를 태울 때 나온 그을음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