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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말똥 성게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06 23:47 게재일 2011-09-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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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전 세계에 900여종이 퍼져있는 성게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중 하나다. 경주 감포와 호미곶 일대에서 잡히는 말똥 성게가 가장 귀하다.

동해안에는 보라성게가 주로 서식하고 말똥 성게는 간혹 잡힌다. 성게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고 이동하는 수단이다. 외모는 가시로 감싸 성질이 있어 보이지만 몸속에는 그윽한 향과 약간 쓴맛에 간을 함께 품는 고소한 성게알(巢)이 일품이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성게를 관찰하다 입가에서 저작기(咀嚼器, 씹는 기관)을 발견해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린다.

성게 알은 단백질과 비타민 A, B2 및 철분이 많아 바다에서 나는 강장제이며 한방에서도 해담(海膽:바다의 쓸개)이라고 부른다.

기름지면서도 고소하고 바다 향을 가진 특별한 맛으로 인해 미역국·비빔밥·초밥에 궁합이 잘 맞아 사용 범위가 넓다.

5~7월 사이에 잡힌 성게가 가장 맛있고 어획량도 많다.

그러나 말똥성게만은 가을바람이 내리는 지금부터 잡힌다. 말똥성게는 성정이 급하고 큰 놈도 알을 얼마품지 않아서 현지에서도 초특급 대접을 받다보니 안장구, 은갱이 등 그 이름도 몇 가지나 된다.

색깔은 주황색에 가깝고 맛은 일반 성게보다 더 고소하고 약간은 비릿한 맛을 품지만 담백하기 그지없다.

말똥성게 10마리 속을 파도 밥 비벼 먹을 양이 나오지 않아 현지에서도 금값 대우다. 30ppm 이상 여름 날씨에는 쉽게 상해 산지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맛을 잃지 않는 방법이 된 것 같다.

귀한 손님이 오면 미역을 넣고 끓여낸 국이 `성게국`이다.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지은 자산어보(1814년 순조 15년)에도 보라성게를 율구합(栗毬蛤)이라 하고 날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강렬한 “절정”을 향해 달리는 어류 요리와는 달리 성게는 시종일관 부드럽다. 몸속에 숨긴`간`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이 맛을 최고로 여겨 1970년 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 시기에는 성게를 끼고 사는 동해안 바닷가 주민들도 마음 놓고 먹지 못했다.

그날 잡은 성게 알은 모두 바다건너 일본으로 공수 됐다.

동해안에는 성게 맛을 초월하는 맛이 하나 더 있다. 속을 파낸 전복껍질을 적당한 크기로 부수고 한 냄비 가득히 넣어 한두 시간을 옅은 불로 끓이면 해조음이 그대로 살아나는 극미의 맛이다. 이런 다시 물은 사라진지 오래 됐다. 신선한 전복껍질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시간을 물쓰듯 해야하는 손작업이 쉽지 않아서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시원하다”는 비음을 연신 토해내면서 머릿살을 빠는 것이 대구탕의 백미다. 이런 시원한 뒷맛이 지지난해 일본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제5의 맛으로도 볼 수 있다.

미각은 혀끝에서 거의 이뤄진다. 인간은 대체로 최대 200여 가지의 맛을 구별할 수 있으나 혀가 순수하게 느끼는 맛은 단맛·짠맛·신맛·쓴맛까지 4가지 정도다.

이 4가지 맛 외에 감미롭고 시원스런 맛이 `감칠맛`이다. 지지난해 일본 요리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제5의 맛은 단맛·짠맛 신맛·쓴맛의 어느 맛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인정된 셈이다.

동해안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제 5의 맛을 “아 그 맛” 정도로 받아들인다. 맛깔스럽고 미식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식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어서다.

춘추시대 노자는 “식탐도 욕망중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동양인의 마음에는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귀를 멀게 하고 오미는 입을 상하게 한다 해서 경계를 하지만 시절음식을 때맞춰 먹는 게 살아있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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