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치는 깨달음을 여는 길이다. 깨달음은 언어이전의 세계다. 8만4천이란 엄청난 양의 법문을 설파하신 부처도 열반을 앞두시고는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버린다. 그동안 부처를 온몸으로 따랐던 중생 입장에서 보면 환장할 노릇이다. 세상과 중생을 위해서 그 숱한 법문을 말씀하셨지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은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근본에 이르는 길과 그 방편은 말과 글에 담을 수 있어도, 근본 그 자체는 말과 글이 끊어진 불립문자(不立文字)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하안거를 끝낸 어느 해 이 문제에 대해 도반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법정스님은 도저히 필설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유언은 부처의 마음이자 화두 `무(無)`자의 경지에서 나온 선불교 정신으로 이해하고 싶다.
해탈한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은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진리의 피안에 이르거든 거기까지 타고 온 뗏목까지 버리라는(捨筏登岸)이란 말은 듣긴 했었지만 지금까지 들은 얘기를 어찌 무 자르듯 싹둑 잘라 내 버린다는 말인가.
마음공부는 머리로 깨닫는 “해오(解悟)”가 있는가하면 육신으로도 깨닫는다. 해오보다 증득을 중요시 여길 수도 있다. 생각을 감추고 속이는 게 능사가 되어버린 세속이긴 하지만 작은 손가락에라도 가시가 박히면 “아야”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듯 그냥 깨달음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내 안의 세계에서 소용돌이치고 맴도는 망상 집착을 비워내기 위해서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삶이 당대에서 끊기면 다행이고 다음 생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또 다음 생을 살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깨달음의 끝을 보기가 힘이 든다고 한다.
결국 깨달음이란 언어이전의 세계라 해서 개구즉착(開口卽錯:말하는 순간부터 틀린다)이라고도 했지만 수행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걸림이 없다고들 한다.
근세를 살은 당대의 두 선승이었던 향곡(香谷)스님이 어느 해 해인사 성철(性徹)스님의 처소인 암자에 머물렀다. 두 선승은 서로 `성철아`, `향곡아` 부르는 도반이었다. 깜깜한 밤 암자의 숲 한쪽에서 숨어 있다가 튀어 나와 “까꿍”하고 장난을 걸면 “아 깜짝이야”하고 서로 걸림이 없는 말을 주고 받았다고 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법상(法床)에 앉아 법문을 하실 때는 사자후로 서릿발 같았지만 일상생활에서 보면 번뇌가 끼지 않은 소년들과 흡사 했다. 인간은 열 서너 살부터 정신에 번뇌가 끼기 시작한다.
1980년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으나 “그 자리는 내가 가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고 하신 말씀은 자리만 보면 아귀처럼 달라 붙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됐다.
바다보다 더 큰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도 있다. 그 이름처럼 세상을 보고 듣는다고 해서 천수천안(千手千眼, 1천개의 손과 1천개의 눈)보살로도 불린다. 언제나 아미타여래의 왼쪽에 자리하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연꽃은 관세음보살이 처음으로 흘린 눈물에서 태어난 아내 타라(Tara)보살을 의미한다고 한다. 광세음(光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음(觀世音)등으로도 불리는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 부처와 같이 인도에서 전 세계로 퍼져 대중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을 더럽히는 인간의 오욕으로 식(食)·색(色)·재물(財物)·수면(睡眠)· 명예(名譽)를 꼽는다. 세속인의 입장에서 보면 욕심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삶의 고비마다 다르고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네 가지 욕심은 사라지는데 명예욕만은 유일하게 남아 죽어서까지 갈만큼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있다. 운형수제(雲形水弟)의 삶이 아닐까. 세속에 묶이다보니 몸은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정신은 여유를 부릴 만하다.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불가의 법은 마음이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 마음을 떠나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