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고문진보(古文眞寶) 스승 얘기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 얻는 복(福) 가운데 인연 복을 으뜸으로 치고 인연 복 가운데서도 눈 밝은 명사(明師)를 만나는 복이 가장 크다.
스승은 긴 인생을 항해하는데 나침반(針盤)이기 때문이다.
지난 봄날 늦은 시간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대학진학 상담을 하러 들렸다가 눈에 들어온 광경이다. 절반이상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아닌가. 통계청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고 3 수험생들은 하루 평균 5시간 24분을 자고 11시간 공부하는 것으로 나왔다. 잠은 선생님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다.
우리아이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주로 밤을 새우지만 미국 청소년들은 대학에 다닐 시기 밤을 새운다. 어느 쪽이 성공을 먼저 할까.
“요즘 학교는 배움터라기보다 서비스기관처럼 보인다. 입시 공부 말고는 다 면제다. 청소 체육 서클활동도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입시생은 예전의 귀족보다 호사스럽다. 육체노동 면제는 물론이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각종 제도적 서비스들을 받는다. 하지만 이게 과연 특권일까. (`문화읽기' 최선옥 시인)”
196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아이들을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아버지 어머니의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줄이 촘촘하게 처진 노트위에 글을 쓰는 만년필 촉감은 산뜻하기도 했으나 당시로서는 부잣집 아이의 표시였다.
검정 교복을 맞추고 명찰가게로 달려가 대개는 직사각형 검은 천에 흰색 실로 이름표를 새겨 달았다. 옷핀을 달아 떼었다 붙이는 아크릴형까지 다양했다. 원래 한복이었던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복은 1920년대부터 서구식 양복형태의 일본 것을 받아들여 배지와 명찰을 달았다. 1983년부터 교복과 머리 자유화가 되고서도 명찰만은 계속 다는 학교가 여전하다.
지난해부터는 전자 칩이 들어간 초등학생 전자 명찰이 나와 학부모들이 집에 앉아서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체크할 수 있도록 발전됐으나 스승과 학생간의 관계는 발전하는 시대문명과는 반비례해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더욱이 언어모델의 두 축인 학교·가정교육이 무너지니 갈수록 난폭해지고 남녀학생 구분 없이 욕을 달고 사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우리학생들이 욕설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을 두고 “유난히 상처와 스트레스가 많은 청소년기의 가정교육· 공교육이 모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라는 진단을 내놨다.
이들 학생들의 일상생활로 들어가 보면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표현이 맞다. 나홀로가구· 핵가족으로 가정이 좁혀지니 조손가정은 이미 없다. 간혹 있어도 신화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녀의 잘잘못을 나무랄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예의염치를 모르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버릇없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거친 행동을 빼닮은 아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가정교육이 무너지는 증거이기도하고 입시·능력위주로 가는 공교육의 잔해인 것 같아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세상이 정나미 없이 변하긴하지만 스승의 현장은 여전히 학교라는 현장이다. 선생님이 제자를 보살피는 크기만큼 그 학교는 학생들 간에 일으킨 사고가 없고 성적이 올라간다.
작가 김영하는 그의 소설 `퀴즈쇼'에서 1980년 이후에 태어난 20대를 두고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고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우리세대'라고 표현했다.
아홉 가지 몸가짐과 아홉 가지 마음가짐(九容 九思)을 제시한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없어진지가 오래다.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