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반포지효(反哺之孝)

등록일 2012-05-22 21:10 게재일 2012-05-22 18면
스크랩버튼
▲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국제로터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요즘 효를 얘기하면 마치 우화처럼 듣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독거청년· 독거처자 등 홀로가구가 급속하게 팽창하는 뒤안길에는 원룸· 오피스텔이 그 실체다. 문을 닫아걸면 세상과는 단절이다.

이러니 홀로 보내는 노인사정은 더 참혹하고 가족관계를 벗어난 아이들을 제어할 가정교육이 무너지니 버릇없는 아이가 늘어날 뿐이다.

고려장에 얽힌 얘기를 다시 써보자. 고려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관리가 늙은 어머니를 산속 움막에 내려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직 인사로 큰절을 올리자 노모는 “얘야, 네가 내려갈 때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잘 살피면서 내려가라”고 일렀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마음을 가슴깊이 새긴 그 관리는 노모를 다시 집으로 모셔와 법을 어기면서 평생 봉양을 했다고 한다.

노모는 어느 날 아들이 송나라 사신이 구별이 전혀 되지 않은 노새 두 마리를 끌고 와서는 “어미 노새를 찾아내라. 어미 노새를 맞추지 못하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는 으름장으로 곤욕스러움을 겪는 조정 관리들을 보고 “얘야 두 노새를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게 새끼다”고 당부했다.

노모의 지혜가 어려웠던 조정을 구해 냈다.

러시아에선 동네 노인이 돌아가시면 박물관이 하나 사라 졌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덮친 쓰나미 사태 때도 바닷가 노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사했다. 노인의 지혜와 경륜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얘기들이다.

우리나 일본처럼 노인을 홀로 보내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독립 가구의 증가는 가정을 빠른 속도로 해체시켜 이미 조부모는 가족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흔히들 도가 넘는 패악을 저지르고 천륜을 어길 때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한다. 반포지효는 자식이 잘 자라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단연 으뜸이지만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하는 동물도 더러 있다.

제주도 윗세오름 어간에서 반포지효를 하는 까마귀 기사가 실린 글(문화읽기 최선옥 시인)을 우연찮게 본 사실이 있다. 한라산 등산을 하던 일행들이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데 까마귀 20여 마리가 무리지어 주변을 돌면서 무리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적당히 흩어두고 현장과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살펴 보았더니 먼저 온 까마귀가 현장을 한 바퀴 돌고는 다른 무리를 끌어 들여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면서 일행이 남긴 음식을 주워 먹었다고 한다.

까마귀는 보기에도 흉하지만 울음소리도 소름끼치게 한다. 그렇지만 까마귀 만큼 어미를 살피는 새는 없다는 게 조류학자들의 증언이다. 일행이 모두 까마귀의 효성을 확인하고 감탄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도 있다. 한가롭게 봄을 즐기고 앉은 사슴들을 바라보다가 그들 곁을 분주히 오가는 까치 두 마리를 발견했다. 수상쩍은 행동을 눈여겨보는데 부리에는 뭔가 가득 물려 있었다.

“저게 뭐지?” 궁금해 살펴보니 그것은 사슴의 털이었다. 까치들은 기술 좋게 사슴의 털을 뽑아 부리 안쪽에 모았다가 더 이상 물고 있을 수 없으면 한쪽에 내려놓고 다시 다가가는 것이었다.

마침 가려운 곳을 긁어줘 기분이 괜찮다는 듯 사슴들은 아예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가끔 보기에도 아플 정도로 쪼는 강도가 세지면 “야, 살살해.”하고 말하는 듯 사슴은 몸을 움찔거렸고 행동이 잰 까치는 뒤로 물러났다가 이내 다시 다가갔다. `모은 털로 뭘 하려는 거지?` 잠시 궁금했지만 해답은 쉽게 풀렸다. 까치부부가 보금자리를 새로 꾸미려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그렇게 함께 봄을 맞고 있었다.

홀로가구는 농어촌 사정도 비슷하다. 어디가나 노인세상이다. 더욱이 3대가 같이 사는 가정은 흔하지 않다. 3대가 같이 살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신의 존재처럼 느꼈던 대가족제도의 아름다운 시절이 아주 멀게 느껴지는 게 세월의 한 모습이다.

권오신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