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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을 따는 5월의 아름다움

등록일 2012-05-15 21:28 게재일 2012-05-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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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한반도의 봄이 짧아지긴 했으나 그래도 5월을 일러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큼 싱그럽고 아름답다. 찻잎을 따는 우리나라 5월은 더 아름답다. 첫물 차를 마시면 여운이 오래가며 마지막 한 모금이 넘어가지 않은 것 같다.

동다송(東茶頌)으로 유명한 초의선사와 신분의 벽을 허물고 차 벗이 되었던 추사와는 차에 얽힌 별난 얘기가 많다. 추사는 차가 바닥나는 겨울· 초봄을 아이들처럼 간졸증을 낸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차가 늦게 도착하면 초의에게 스님은 보고 싶지도 않으니 차만 보내달라는 서찰을 보내기도 했었다.

추사는 언제부터 차 맛을 입에 담기 시작했을까. 그 역사는 20대 중반 북경에 갔을 시기로 추정될 뿐이다. 추사의 북경행장을 살펴보면 옹방강의 서재에서 10만권이 넘는 서적과 금석문(碑拓)을 볼 수 있었고 완원(阮元)으로부터는 서체를 익혔다.

이런 자리에서 용단승설(龍團勝雪)같은 고차(古茶)를 대접받았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오래된 차를 마셔보면 차 맛을 당장에 알 수 있었던 추사의 입맛은 유명했다.

추사는 제주유배가 풀리고 금석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차에 더 빠져 중국에서 건너온 차로 입맛을 달래야 했던 시기 즉 이른 봄(곡우)을 지내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경주 옥용암 현판 일로향각도 이시기에 써졌다.

차 맛은 5월초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나는 녹차의 맛이 가장 뛰어나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하신 법문 가운데 일기일회라는 말을 보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스님은 “언제 어디서 살던 한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다도(茶道)에서도 일기일회는 중요하다.

팽주(烹主)와 손님은 일생을 사는 동안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다관에서 우려낸 차의 맛은 오직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기에 다객(茶客)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모두가 정성을 쏟는 다고 한다.

차는 세계 음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육우(陸羽· 당나라 727~803)가 지은 다경(茶經)의 기록대로라면 기원전 2700년 경 중국의 신화시대의 인물 신농(神農)이 마셨으니 그 역사가 무려 5천년에 이른다. 처음부터 기호품으로 마신 것은 아니지만 점차 약용에서 경험적의 차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널리 이용됐다.

북송 시대의 제1시인이자 대표적 문인이었던 소동파의 시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차가 보이차다. “자고로 좋은 차는 가인(미인)과 같다!”고 보이차를 한없이 치켜세웠다.

소동파의 시심(詩心)대로 중국에서 나오는 차를 비유해보면 철관음, 봉황단총, 대홍포, 동방미인을 아우르는 오룡은 차마다 서로 다른 품격과 개성을 지녔다. 우전차(녹차)는 아름답고 청순한 봄 처녀다. 보이차에 오면 적당한 비유 찾기가 어렵다. 소동파가 말한 가인을 떠올린다면 혹은 여우가 되고 선녀가 되었다가 다시 요괴와 귀신이다.(고차수로 떠나는 보이차 여행)

봄이 왔는데도 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도시 생활이다. 봄의 기운을 마음 껏 느끼고 그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 삶의 도리이지만 그게 그만 세속의 틀 속에 허다하게 묶여 버리고 마니….

황홀한 봄을 가장 풍성하게 느끼려면 하동 보성 등 남쪽 땅 연녹색의 차밭이 가장 좋고 그곳이 지리산 야생차 밭이면 더 좋다.

사람이 차씨를 받아 심으면 차나무의 밑 둥은 여러 갈라지는 데 비해 새나 산짐승이 옮겨 놓은 씨앗이 발아 되었을 경우는 밑 둥이 크게 하나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차도 흙 밭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돌산 틈바구니에서 자란 차는 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돌산에서 무림고수가 출현하듯이 차도 돌산에서 나오면 깊이가 더 있을 까. 지금 세계인들이 25억 잔씩 마시는 커피 인기로 인해 동양의 찻집은 한적한 호숫가나 뒷길로 밀려 난지가 오래지만 차가 갖는 생명력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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