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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리도록 품고 싶은 연적

등록일 2012-04-10 21:36 게재일 2012-04-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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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순백 연적(硯滴)이다.

청화나 진사, 철사로 꽃문양을 그려 넣지도 않고 그냥 우유 빛 흰옷을 입힌 연적이다. 복숭아 꼭지를 따고 앉혀 놓은 것 같은 순백의 자태에 가녀린 줄기가 양각돼 있을 뿐이지만 18세기 조선 사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시기 경기도 분원요에서 만들어 졌다.

어느 사대부집 사랑채를 돌다가 지금의 주인을 만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고나 할까. 가슴에 그냥 품고 싶은 이런 연적을 서안에다 두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일필휘지 붓을 잡고 싶어진다.

이 연적을 붙들고 글씨를 섰던 옛 선비들의 옷깃이나 숨결이 내 볼을 스치는 것 같기도 하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쓰임새가 물결처럼 펼쳐진다. 단순함의 극치라고 할까. 조선선비의 마음을 훔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생략의 미(美)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사가 연발이다. 복사꽃이나 천도복숭아는 하늘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여름 연적의 몸체는 차갑다.

우린 지금 이런 아름다움과 품격을 다 잃고 산다. 컴퓨터가 다 가져가고 외국제 가구가 주변을 포위하고 사는 사회다. 이 세태는 무얼 생각하고 사는가? 저게 우리의 얼굴인가하고 물어보고 싶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이 연적을 내놓고 보여 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은 시대의 속도를 모르는 이의 간절함일까.

한 세기전만 하드라도 문방사우는 문인들의 필수품이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종· 붓· 벼루· 먹이다. 붓 벼루에 반드시 따르는 것이 연적(硯滴)이며 연적은 선비들의 손끝에 노는 벗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는 것을 골랐다.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연적은 대개가 두부모양을 한 청화백자형 사각연적이 주류였으나 형태미를 완숙하게 노출시킨 복숭아· 다람쥐· 오리· 기린· 원숭이 같은 동물모양도 만들어 졌다.

국보 74호 청자오리모양연적은 연잎 모자를 씌우고 정병주둥이로 물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고 그 앉은 자태의 생김새가 앙증맞은 걸작 가운데 걸작이다.

오리는 뭍에도 물에도 사는 철새다. 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새로 여겨져 선사 시대 때부터 솟대의 머리를 타는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연적· 술잔 등 여러 쓰임새에 등장한다.

조선시대 후기 여주 분원에서 만들어진 순백 연적은 색감이 있는 고려나 조선 전기 시대의 연적과는 그 맛이 완전 다르다. 우선 가공하거나 모양을 낸 흔적들을 최고로 아꼈다고 말 할 수 있다.

천도복숭아의 실체크기를 닮아 쥐는 손맛이 더 일품이다. 봉긋 솟은 꼭지와 가녀린 줄기 잎사귀를 돌출시켜 한손에 들어오고 봉긋 솟은 꼭지는 글을 쓰다 지치거나 무료함에 시달렸던 선비들이 손끝으로 매만져 은근히 에로틱한 외출까지 했을 법하다.

풍류도에 심취했을 까. 아니다. 백색 복숭아 연적의 주인은 내면이 더 심오하고 성품이 풀 먹인 모시 적삼처럼 처신이 꼿꼿했을 분이었을 것 이다.

도공은 조선 선비들의 마음을 최대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도공역시 안빈낙도(安貧道)를 즐기는 선비들의 삶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백색은 또 조선을 살았던 선비들의 마음이다.

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을 사는 거나 다름없다.

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먹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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