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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권 기초질서

등록일 2012-05-08 21:46 게재일 2012-05-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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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흔히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민과 걷는 시민의 생각은 충돌한다. 운전자는 보행자가 빨리 걷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짜증이 나고, 보행자는 자동차가 좀 여유 있게 기다려주지 않고 성급하게 통과하려 하면 화가 치밀기 일쑤다.

같은 장소를 걷는 시민이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와 보행할 때의 생각은 이처럼 엇갈리기 쉽다. 간사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만큼 보행권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낮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한국의 도로교통정책이 보행자가 아니라 자동차 위주로 시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숨진 사람은 2천29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9%에 이른다. 그래도 2000년대 들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행자를 배려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그래도 앞서가는 곳이 서울시다. 서울시의 정책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뀐 것을 실감한 `사건`은 2005년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 설치가 아닐까 싶다.

2009년 16차로인 세종로를 10차로로 줄이면서 중앙에 광장을 조성한 것도 마찬가지다. 훨씬 전인 1980년대부터 이런 아이디어가 여러 번 제시되고 실제 추진된 적도 있지만, 차량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행보다 차량 통행이 우선시되는 시절이었다. 보행권이란 시민이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공간에서 걸을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헌법상 인간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과 관련된다. 보행권은 헌법적 의미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1960~1970년대 보행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고, 유럽연합(EU) 의회는 1989년 보행자 권리헌장을 제정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행권 확보는 아직 요원한 상태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나 도심일수록 그렇다. 횡단보도에서는 차량에 위협받고 길거리 보도에서는 이런저런 장애물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곳이 수두룩하다. 보행자의 권리 신장과 보행 환경의 체계적 정비를 목적으로 하는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법 제정이 전부일 수는 없다. 현행 도로교통법 등에도 보행자 안전과 편의를 위한 규정이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실천정신이다.

기초양식을 무시하는 차량 흐름이 바로 잡히지 않는 한 이 법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지금처럼 보행자 신호등이 켜져 있는데도 좌 우회전이 예사로운가하면 횡단보도를 걷는 시민을 보고 오히려 휴대폰까지 통화하는 운전자가 눈을 홀기는 시민양식이 있는 한 요원하다.

포항은 더 거칠다. 기초질서만은 과거 관선시대가 낳지 않았느냐하는 느낌이다. 보행자가 걸어야 할 인도에 차량이 가로막고 있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가로막는 차가 있을 정도다.

남빈로나 새벽, 주말 시장이 열리는 곳 등 기초질서가 실종된 곳이 부지기수이나 쉽게 단속이 되지 않는다. 관선시대의 정돈된 모습들이 향수로 남아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래 표에 대한 문제만큼은 어느 자치단체이건 서로 뱃속이 잘 들어맞는 것 같다.

국토가 좁은 반면 차와 사람이 많은 실정을 무시하고 기초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적어도 길가는 시민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게끔 보행전용구간만이라도 100%화보를 해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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