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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한시 출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2-01-03 23:30 게재일 2012-0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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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객원 논설위원국제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세월이 도공의 물레처럼 너무 쉽게 돌아가 버리는 것 같다. 호미곶과 간절곶은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스위스 알프스 산장은 해질 무렵에 도착하는 관광열차가 더 인기다. 지는 해를 즐기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해맞이에 늘 그렇듯이 기세 좋게 몰린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러서/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 했다. 손택수 시에서…

달리면 꼴찌가 나오기 마련이다. 시인이 보는 경주에는 바위까지 당당하게 출전, 한날한시에 당당하게 도착시켰다. 바위가 경주를 하다니… 바위는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달리기를 했을 뿐이다. 황새나 말처럼 날고뛰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 할 이유도 없고 달팽이나 굼뱅이처럼 느리다고 한탄할 이유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 숱한 사람들이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새해의 첫날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이 설렌다. 누구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우리말 설날을 한자어로는 원단(元旦)·연시(年始)·연두(年頭)·세수(歲首) 등으로 부른다. 같은 해가 솟아도 새해는 늘 새롭기만 하다.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김남조 `새해아침의 기도`)

대문호 괴테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자립 생활,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노력하는 인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희망, 이웃을 돕는 나눔 정신 등 다섯 가지를 출발하는 마음을 행복조건으로 들었다.

중국시인 도연맹도 새해 아침을 맞는 젊은이들을 향해 이런 시를 남겼다. 성년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새벽은 없으니/ 때를 따라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하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계해년(1803) 첫날 두 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 번 새롭게 해야 한다”고 적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유배로 벼슬길이 막힌 자식에게 `폐족(廢族)`의 후손도 성인(聖人)·문장가(文章家)·참선비로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으니 학문 정진을 권하고 새해 첫날 새로운 다짐을 당부했다.

시간은 지나고 보면 별 것이 아닌 것도 가슴 저리는 추억으로 남긴다. 지금의 50대 샐러리맨은 중학생 시절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통학했던 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는 행복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 시절 여학생들은 귀지를 파주던 엄마의 무릎 감촉을 들었다. 채근담엔 혹서와 혹한의 날씨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게 차고 더운 세간 인심의 이라 했고 그 인간세상의 염량(炎凉)보다 벗어나기 힘든 것이 내 마음에 서린 빙탄(氷炭)이라고 적었다. 과거나 현재나 물질문명이 풍요롭던 그러지 않던 숯덩이, 얼음덩이를 가슴에 품고 몸부림치며 사는 게 세상이다.

영어로 1월을 뜻하는 재뉴어리(January)의 어원은 로마신화에서 두 얼굴을 가진 신(神) 야누스(Janus)에서 비롯됐다. 한 얼굴은 방금 지나간 해를 바라보고 다른 한 얼굴은 앞으로 닥칠 해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2012년은 정치변화가 극심하고 남북관계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고 청년백수에다 하층민들의 낙오감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일신(日新) 일신 우(又) 일신,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저마다 승리하는 임진년, 성공의 한해, 영광의 한해, 보람의 한해를 만들어야 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내가 나의 마음과 정신을 어떻게 쓸 것이냐가 가장 긴요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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