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포항시 축제위원장우린 축제에 대해 상당한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 돈 벌어도 살기 빠듯한 세상에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 축제라는 편견. 소모적이고, 낭비적이며, 일회성에 그치는 행사에 지나치게 많은 인원들이 동원되고, 또 그게 그것일 뿐인, 그저 사람 구경이나 실컷 할 뿐인 것이 축제라는 오해. 한때 차별성없는 축제들의 난립이라며, 그래서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는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보도에 많은 지방자치정부들은 부랴부랴 축제를 많이 줄였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천 여 개 가까이 된다며 역시 더 많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분분하다. 그러나 일부 축제전문가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우리나라의 인구에 비례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축제들이 생겨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거침없이 한다. 몇 년전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쓴 `축제`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40대의 작가가 노모의 3일장을 치르는 이야기이다. 장례식이 축제의 장이라는 설정의, 정말 황당한 제목의 이 소설을 이 시대의 걸출한 영화감독 임권택은 1993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청준은 그의 소설 말미에서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만나 한스런 세월의 응어리를 씻어낼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나누는 화합의 향연이란 의미를 던져준다`고 썼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을 `축제`로 정했다고 했단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씻김굿`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도, 망자를 씻기는 절차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자 시끌벅적한 굿판이 벌어지면서, 상을 당한 가족과 친척들까지 불러들여 흔연한 춤과 노래로 끝매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장례식이란 죽은 자를 위한 축제이되 산 자들의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한자리에서 껴안는 일이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산 자들의 축제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이 소설에 대한 한 평자의 말도 기억난다.지금 온 천지에 봄꽃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난분분 흩어지는 계절. 심지어 죽은이를 위해 숙연해야 할 장례식장이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면, 이 축복같은 계절, 산자들의 나날이 어찌 축제가 아닐 수 있겠는가.농경시대, 마을 단위에서는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벌였던 해마다 최소한 보름 이상을 축제판을 벌였다. 집집마다 가족들의 안녕과 장수를 기원했던 통과의례들도 모두 축제였다. 백일이면 이웃 100여 집마다 떡을 돌렸고, 돌날 크게 잔치를 벌여 아이의 장수를 빌었다. 성년이 되면 엄숙한 관계례를 치른 후 어른들을 대접하고, 혼례는 인륜지대사이니 더더욱 크고도 긴 잔치를 치렀다. 이렇게 보면 농경시대 우리 조상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축제 속에 살았던 것은 아닐까. 아, 어쩌면 5일마다 열리던 장터도 축제였다.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모이고, 물건들이 오고 가면서 흥청거리던 축제. 각설이나 놀이패들은 장터마다 돌아다니며 한층 축제 분위기를 돋웠던 그 시대의 연예인들이었다.산업화,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 고유의 축제가 변질되고, 왜곡됐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고, 담당하고, 참여했던 진정한 축제인들은 사라졌고, 구경꾼들이 되어버렸다. 대학도, 지방정부도, 유명한 연예인 초청에 혈안이 되고, 그들의 몸값만 천정부지로 올려버린 축제. 이건 축제가 아니다. 이건 축제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니다.우리 축제, 이젠 우리가 만들며 즐기자. 우리가 먼저 즐기며 흥에 겨우면 될 일이다. 흥에 겨운 우리의 축제를 보려 구경꾼들이 오면 함께 즐기자. 그게 바로 진정한 축제다. 이런 축제야말로 지역판촉의 문화상품이 될 것이다.
201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