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전설이자 한 시대의 청춘을 상징했던 배우 신성일의 기념관이 21일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얼굴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장면처럼 펼쳐졌다. 흑백 사진 속 날렵한 눈빛, 1970년대 포스터에서 드러난 청춘의 활력, 말년의 단단한 미소가 이어지는 전시 앞에서 관람객들은 저마다 발걸음을 늦추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신성일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온몸으로 견딘 배우였다. 멜로드라마에서는 낭만적인 청춘으로, 액션영화에서는 강인한 남성으로, 시대극에서는 지성과 품격을 갖춘 인물로 관객을 만났다.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반세기 동안 남긴 538편의 필모그래피는 영화만을 향해 나아간 한 인간의 치열한 발자취였다.
이번에 개관한 기념관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던 신성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1층 ‘뉴스타리움’에서는 스타의 상징성과 영화사적 유산을 모티프로 제작된 실감 영상과 미디어아트가 연속적으로 상영됐다.
2층 상설전시관 1부 ‘별의 찬란’에는 그의 58년 영화 인생을 압축한 디지털 아카이브 월과 실제 서재가 재현돼 있다. 작품 목록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정리된 아트월 앞에서 관람객들은 각자 기억 속 작품을 떠올리며 발길을 멈췄다. 바로 옆 ‘신성일의 서재’에는 배우가 아닌 ‘인간 신성일’의 고요한 내면을 보여주는 책과 포스터, 손때 묻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화 포스터를 전시한 곳에서 만난 김혜옥 씨(70·영천시 채신동)는 “연기도 잘하고 잘생기고 멋있어서 신성일 팬이었다. 독보적인 스타였다”며 “예전에 데이트하러 가서 본 ‘맨발의 청춘’ 포스터를 다시 보니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2부 ‘스타스토리지’는 그가 생애 동안 받은 각종 트로피와 상패, 결혼 당시의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스타이자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 3부 ‘성일 시네마’에서는 배우에서 감독·제작자로 확장된 그의 예술적 여정을 정리해 한국 영화가 성장해온 과정과 신성일의 역할을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다시 맨발의 청춘’ 체험존에서는 영화 속 음악다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트에서 직접 연기를 하거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시상식 레드카펫을 연출한 ‘뉴스타 페스티벌’ 포토존에서는 360도 촬영 체험이 가능하며, 마지막 공간 ‘별을 회고하다’에서는 AR 디지털 방명록에 기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신성일 기념관은 5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빛낸 신성일의 예술과 삶을 보존하고자 그가 생전에 살던 영천시 괴연동 9946㎡ 부지에 건립됐다.
이날 개관식에는 이만희 국회의원, 최기문 영천시장, 김선태 영천시의장, 이춘우·윤승호 경북도의원 등 주요 인사와 김동호·정지영 공동고문,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김병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등 영화계 원로들이 참석했다.
유가족 대표로는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와 신성일의 아들인 강석현 씨가 함께 했다. 배우 엄앵란 씨는 축하 영상을 보냈다.
개관식 현장에는 오랜 세월 신성일을 기억해온 팬들도 눈에 띄었다.
변인자 씨(81·영천 중앙동)는 “영화배우일 때도 멋있었지만 영천에 와서도 멋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영화배우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며 “집 근처에 기념관이 들어서서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유가족 대표인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작은아버님은 이곳에 문화·영화 예술의 성지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늘 이야기하셨다”며 “오늘 그 뜻이 결실을 맺게 돼 감회가 깊다. 기념관이 영천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