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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의원들은 왜 해외연수에 목숨을 거는걸까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5-11-22 09:28 게재일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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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에 집착하는 지방의회… 문제는 ‘기득권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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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방송 장면.

 “The pot calling the kettle black.”(까만 냄비가 까만 주전자를 검다고 한다)

연말만 되면 지방의회는 어김없이 해외연수 준비로 분주해진다. 예산이 남았다는 이유, 이미 잡힌 일정이라는 핑계가 반복되며 해외연수 명단 꾸리기에 열을 올린다.

지역 민원 처리나 예산 심의에는 굼뜨던 의원들이, 해외연수만큼은 “목숨 걸고 챙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왜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될까.(하도 일상화 되다 보니 비판의식도 무뎌졌고 이젠 그러려니 한다.)

 먼저 중앙정치권의 해외출장 실적을 보자.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보고된 해외출장은 총 283건, 다녀온 의원은 257명에 달했다. 의원 개인 출장 횟수를 합산하면 995회로, 의원 한 명이 임기 동안 평균 약 3.9회의 해외출장을 간 셈이다. 체류 일수로 보면 평균 24.6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정부투자기관장도 예외가 아니다. 한 기관장은 3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21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고, 출장 일수만 100일이 넘었다는 보도도 있다. 업무 성과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지만, 출장 빈도만큼은 이례적이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행태도 비슷하다. 경기도의 한 자치단체장은 취임 26개월 동안 17회의 해외출장을 기록해 논란을 샀고, 부산의 한 구청장은 민선 8기 들어 벌써 11번째 해외로 나갔다. 경남에서는 최근 2년간 단체장들의 해외출장이 112회에 달해 1인당 연평균 7~11회 꼴로 추산된다.

 이런 흐름을 보면 지방의회가 왜 해외연수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된다. 지방의원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단체장도 저렇게 많이 나가는데 우리라고 못 갈 이유가 없다.” “예산이 이미 편성돼 있는데 안 쓰면 내년 예산이 깎인다.” “불법도 아닌데 왜 문제 삼나.”

 이른바 ‘기득권의 일상화’가 만든 사고방식이다.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외유성 출장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다.

 매년 반복되는 ‘관행’을 보며, 해외출장이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얻고, 심지어 “남도 하는데 나도 한다”는 집단 심리가 강화된다. 견제 기관이어야 할 의회가 특권 경쟁의 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예산 낭비가 아니다. 공직사회가 스스로에 대해 적용해야 할 기준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시민보다 높은 수준의 책임과 절제가 요구되는 자리에서, 오히려 혜택을 먼저 누리려는 풍조가 자리 잡는 순간 공공성은 흔들린다.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권한이 큰 사람일수록 더 엄격해야 하고, 기득권일수록 더 스스로를 절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공직자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기보다 특권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지고, 이를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경쟁적으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지방의회 해외연수 논란이 심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특정 의원 몇 명의 일탈이 아니라, 공직 시스템이 무게 중심을 잃고 있다는 경고다. 단체장과 기관장부터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지방의회는 견제기관 본연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해외출장이 필요한 업무라면 목적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출장 자체가 권리가 아닌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구의 한 기초의회 의원은 “국회의원 해외출장은 보도조차 안 되는데 지방의원만 동네북 취급을 받는다”며 “예산도 확보돼 있고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고 주장했다. 또 “기왕 욕먹을 바엔 유럽이나 미, 캐나다 등 장기 일정으로 잡자는 ‘몽니’까지 부리게 된다"고 말한다.

해외연수는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이를 대하는 공직사회의 태도가 문제다. 공직자 스스로 기준을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같은 논란은 해마다 반복될 것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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