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디트로이트와 포항의 차이

등록일 2012-04-02 21:57 게재일 2012-04-02 22면
스크랩버튼
▲ 박승호 포항시장

`디트로이트의 종말(The End of Detroit)`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04년 봄쯤이다. 그리고 최근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이번이 3번째다. 뉴욕타임즈 미쉐린 메이너드 자동차 담당 기자가 쓴 `디트로이트…`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관해 기술한 다큐멘터리성 특집기사 형식이다. 하지만 행간(行間)에 들어 있는 저자의 진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경영학 원론에 가깝고, 행정가들에게는 지방자치학 원론이며, 일반 시민들에게는 지역기업과 지역 시민사회 간 바람직한 관계정립의 길을 암시한 보고서에 가깝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북동부 최고의 요지인 5대호의 심장부에 위치해 1800년대 후반 일찌감치 미국 최대의 공업도시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제너럴모터스(GE), 포드,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세계 자동차업계 `빅3`의 주력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영화(榮華)를 싹틔운 곳이기도 하다. 5대호 주변 중소도시에서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의 패권을 잡은 미국의 심장으로 성장한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다. 형산강과 영일만이 만나는 흔한 포구에서 한국 산업화의 전진기지가 된 포항과 이런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미쉐린 메이너드 기자가 책 제목에서 밝힌 대로 불과 100년 만에 `종말`을 언급해야 할 정도로 쇠퇴했다. GE와 포드, 크라이슬러는 처음에 소비자들로부터 멀어져갔고 다음에는 디트로이트 시민들로부터 배척받았고 급기야 전 세계 수요가들로부터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이 종말의 기운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빅3는 각 사(社)별로 서로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고, 디트로이트 지방정부 또한 불황기에 대한 연습이나 학습이 없었던 탓에 위기대응에 무감각했으며, 시민들 또한 영원한 강자 디트로이트라는 근거 없는 자만에 빠져 경쟁사들에 텃새만 부리며 유유자적했다. 그러나 이 빅3와 디트로이트는 도요타, 혼다, 닛산, BMW, 현대 등 신흥강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지 불과 10년만에 와르르 무너져 미국 본토의 빅3는 동양의 빅4로 대체됐다.

현대를 비롯해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신흥 강자들은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동양에서 날아든 이식(移植)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직접 구매고객은 물론이고 잠재적 수요가인 전체 미국민들에게 철저한 신뢰(信賴)를 심어주는 것으로 출발했다. 상품과 메이커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지역민 자치정부에 대한 모든 약속을 무조건적으로 지켜나갔다.

`디트로이트의 종말`을 읽는 내내 나는 디트로이트에 포항을, 미국 본토 자동차 빅3에 포스코를 대입시켜 가상 상황을 만들어 보고 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디트로이트와 포항이 다르듯 GE, 포드, 크라이슬러와 포스코는 근본적 토양과 인식이 완전히 다른 기업이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의 빅3는 근로자와 퇴직자들을 제작 현장에서 사용하는 공구와 같은 정도로 생각해 내구성이 다하면 버리는 소모품 정도로 봤다. 도시도 자신들의 소모품(근로자) 조달창구 정도로만 여겼지 동반자로 보지는 않았다는 게 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포항의 포스코는 국민기업이면서 향토기업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44년 동안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해준 포항에 대한 무한 관심과 신뢰를 보내고 표시하는 것이 디트로이트의 빅3와 다르고, 퇴직자에 대한 처우까지 세심하게 보살피는 점에서 디트로이트의 빅3와 다르며, 무엇보다 지역민들과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정서의 교류와 의사의 소통면에서 디트로이트의 빅3와 너무나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포항과 포스코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라고. 이 말이 디트로이트와 포항의 차이를 웅변하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 1일로 창립 44주년을 맞았다. 포항시는 지난 44년간 다져온 포스코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4월 첫 한 주간을 포스코 주간으로 선포했다. 지난달 30일 그 첫 행사를 마치고 나서는데 행사장에 참석했던 많은 시민들의 말 속에서 한마디가 유독 크게 내 귀에 들어왔다. “포항에 포스코가 있어서 참 좋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디트로이트의 종말`이라는 책 한 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요즘이다.

특별기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