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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방설비가 만드는 큰 차이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04-21 20:32 게재일 2025-04-2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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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봄은 흔히 생명의 계절이라 불린다. 하지만 소방의 입장에서는, 봄이 ‘화재의 계절’이 되기도 한다. 건조한 날씨, 환기와 야외활동 증가, 전열기기 사용량 증가로 인해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소방본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 봄철(3~5월) 화재 건수는 연평균 1200건 내외로, 계절별 통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원인은 부주의, 전기적 요인, 기계적 요인이 주를 이루며 이 가운데 ‘전기화재’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전기화재는 보이지 않는 불씨에서 시작된다. 눈에 띄지 않는 아크(Arc) 현상, 낡은 배선, 좁은 전기공간 등에서 발생하는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커다란 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화재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동확산소화기, 소공간 소화용구, 아크차단기이다. 이 작은 설비들은 그 자체로는 조용하지만,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놀라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자동확산소화기는 열을 감지해 자체적으로 소화약제를 분사하는 장비로,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보일러실이나 전기실 등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2023년 봄철, 청송군의 한 주택에서는 노후 전선에서 화염이 발생했으나 보일러실에 설치된 자동확산소화기가 즉시 작동해 불길을 초기 진압한 사례가 있다. 만약 이 장치가 없었다면, 건물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일반 소화기가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소공간 소화용구’이다. 패드형, 캔형, 로프형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분전반이나 배전반 내부에 설치하면, 일정 온도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해 화재를 진압한다. 문경시의 한 전통시장에서는 분전반 내부에서 발화된 불씨가 이 장비의 작동으로 즉시 차단되어 인접 점포로 확산하지 않았고, 화재 규모를 최소화한 사례가 있다.

아크차단기는 말 그대로 ‘전기불꽃’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장치이다. 일반 누전차단기로는 감지할 수 없는 미세 아크 신호를 포착해, 전류를 차단함으로써 화재로 이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경북 도내에서는 최근 3년간 아크로 인한 화재가 연평균 약 160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전기화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포항시 한 농가주택에서도 아크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던 덕분에 배선 불량으로 발생한 불꽃이 즉시 차단되어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이 장비들의 공통점은 ‘화재를 발생 전에 차단한다’는 점이다. 소방차가 달려오기 전에, 사람이 대응할 수 없는 그 짧은 순간에 작동함으로써 불길을 초기에 억제하는 것이다. 설비의 설치비용도 크지 않다. 자동확산소화기와 아크차단기, 소공간 소화용구 모두 일반 가정이나 소형 점포에서도 부담 없이 설치할 수 있는 가격대로, 설치 방법도 간단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막아낼 수 있는 피해의 규모이다. 수십만 원의 장비가 수억 원대의 재산과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선택이 아니라 예방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포항북부소방서에서는 현재 봄철 화재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이들 장비의 설치 확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지역 내 취약계층과 전통시장 등을 중심으로 설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간에 소방의 손길이 닿을 수는 없다. 결국에 최선이자 최고의 예방은 시민 한 분 한 분의 ‘관심’과 ‘실천’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설치하는 작은 장비 하나가, 내 이웃의 삶을 지켜주고, 내 가족의 미래를 보호할 수 있다. 작은 불씨가 번지기도 전에 끌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 ‘선제적 예방’에 동참하는 것이다.

봄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이 조용한 소방관 역할을 해주는 작은 소방설비들을 일상 속에 들여놓아 일상 속 안전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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