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열린 국가들

예로부터 `되는 나라`들은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높았다. 통일신라는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까지 끌어안았고, 육지로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터키까지 오갔던 `초원의 길`이 있었다. 아랍사람 `처용`은 신라조정에서 벼슬을 살았고, 저 유명한 `처용가`를 남겼다. 아라비아의 고지도에는 `SILLA`가 뚜렷이 그려져 있고 `황금의 나라`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 이것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힘이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힘도 넓은 교류와 포용력에서 나왔다. 고려 개성의 벽란도는 송나라, 베트남, 태국, 요나라, 여진국, 일본 등지를 오가는 국제항만이었다. 정치에는 막대한 돈이 드는데, 고려 왕건은 광범한 국제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것이 정치권력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오지랍 넓은 포용력은 삼국을 통합하는 구심체가 되었다. KOREA란 이름도 이때 `고려`에서 나왔다. 자유연애를 묘사한 고려가요 `쌍화점`의 주인은 회회아비(아라비아 회교도)였다.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했던 국가가 당나라인데, 외국인을 등용하는 과거제도 `빈공과`가 있었다. 고려는 송나라 학자 `쌍기`를 `인재 선발 기관장`으로 임명해서 국내외적으로 인재를 모았는데, 이때 요직을 맡은 중국인이 40명 넘었고 몽골, 아랍인도 국정에 참여했으며, 귀화한 일반 외국인 수는 `고려 전체 인구의 8.5%`나 되었다. 이와같은 개방과 포용력은 고려를 `명품국가`로 만들었으니, 고려청자·팔만대장경·최초의 금속활자·고려 한지·나전칠기·고려불화(佛畵) 등이 그 물증이다.오늘날 개방과 포용으로 번영하는 나라가 독일과 싱가포르이다. 독일은 히틀러의 인종차별정책에 교훈을 얻어 `다양성 교육`에 집중했고, 시리아 난민 수용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GNP 5만3604달러인 싱가포르는 9년 연속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뽑혔다. 우리나라는 10년째 GNP 2만달러대에 묶여 있는데, 악성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발목잡기와 편가르기가 `족쇄`를 채웠기 때문이다. `개방과 관용정신`만이 족쇄를 푸는 열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3

적자 공기업의 돈잔치

과거 왕조시대에도 흉년이 들면 임금도 고통분담을 했다. 반찬 가지수를 줄여 소박한 수라상을 받았고, 가뭄이 심하면, “왕이 부덕한 소치”라며 곤룡포를 벗고 상복(喪服)을 입었다. 상복이란 죄수복이었다. 삼베로 지은 험한 옷을 입고 하늘을 가릴 삿갓을 쓰고 외출했다. 태종 이방원이 비를 기다리며 대궐 뜰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시들이 급히 우산을 씌우려 하자 왕은 “우산 걷어라. 곤룡포에 떨어지는 빗방울 자욱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박근혜 대통령이 취업난으로 신음하는 청년들과 고통을 나눈다. 7가지를 포기한 `7포 청년`을 도울`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2천만원을 낸 후 매월 월급의 20%를 기부한다. 총리, 장관, 공공기관장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 기부 분위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인데, `대기업 명의로 된 고액 기부금`은 사양하기로 했다. 다만 `기업인 개인 명의의 돈`은 받는데,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이 개인명의로 20억원을 약정했다. `기부금의 액수`보다 전 국민이 관심 있게 동참하는 `십시일반의 정신`이 더 중요하다.이 기부문화 확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기업을 적자로 경영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임·직원들과 귀족노조원들이다. 회사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경영층은 억대 연봉을 받는 공기업이 70%나 됐고, 그 중에 `김대중컨벤션센터`도 포함됐다. 직원의 평균연봉이 6천만원 안팎이 되는 지방공기업 중에 대구도시공사(6천548만원)과 대구도시철도공사(5천582만원)도 들어갔다. 그리고 울산지역 귀족노조들의 임금은 매년 임단협과 파업을 통해 계속 오르다가 지금은 생산성을 훨씬 앞질렀다.바로 이런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청년 일자리 펀드에 기부해야 한다. 나라경제야 어떻게 되든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 망국적 사고방식을 확 뜯어고치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국민혈세 도둑·국가경제 훼손자`란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2

음서(蔭敍)

인도에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같이 우리나라에도 `계층구조`가 있었다. 신라때는 골품제도가 있었고, 고려·조선때는 양반계급과 음서가 있었다. 신라의 골품은 태어날때 부터 결정됐다. 6두품이었던 최치원은 소년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해 신분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려와 조선의 음서제도는 `법전`에 그 규정이 상세히 적혀 있다. “매년 1월에 음서를 뽑고, 20세 이상이 대상이며, 종실이나 공신 중 5품 이상 관리의 아들·손자·사위·동생 중 단 1명만 음서 대상이며, 음서로 등용된 자의 임명장에는 반드시 蔭(그늘 음)자를 써서 그 표시가 평생 따라다녔으며, 음서로 등용된 자는 당상관 이상 올라갈 수 없고, 홍문관·예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청요직에는 갈 수 없다”는 내용이다.생원과와 진사과에 급제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대과(大科)에 자꾸 낙방한 자들이 주로 음서를 선택했는데, 양반의 자식들 중에도 `글읽기를 몹시 싫어한 자`들은 애당초 음서로 출사(出仕)해서 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월급을 받았다. 음서 중에는 “인사기록카드에 蔭자가 붙어 다니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계속 과거를 봐서 결국 그 음자를 뗀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 제도도 조선 초기에는 경국대전의 규정대로 잘 지켜졌으나 후기에 오면서 각종 부정부패가 들끓는 와중에 음서제도 또한 탁류에 휩쓸렸고, 장사해서 돈 번 부자들이 실권자들에게 돈을 주고 벼슬을 사거나 천민신분을 벗었다.2013년 국감때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179개 공공기관의 단체협약 내용을 분석했는데, 그 중 33개 기관이 고용세습을 허용했으며, 그 중 19곳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뿐 아니라 자살·정년퇴직자의 가족도 `우선채용`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그때 `현대판 음서`라며 많이 시끄러웠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의 국감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다.`힘센자`의 자식들은 좋은 자리에 `전화 한 통`으로 들어가고, 인사기록카드에 蔭자가 붙지도 않는다. 조선이 망할 무렵의 인사난맥상이 오늘날에도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1

노사정 대타협?

영화 `연평해전`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애국심을 고취한 효과를 냈다면, `베테랑`은 악덕재벌과 그 2세의 `정신병적 악행`에 맞서 싸우는 베테랑 형사의 집념을 그려`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그리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관객들은 “돈이 자식을 버리는구나” “재물이 재앙이구나” “재벌이 아니라 죄벌이구먼” 그런 생각을 굴리며 영화관을 나선다.`노사정 대타협`이란 활자가 신문에 크게 찍혔다. 우리나라 만큼 기업에 대한 반감이 많은 나라도 드물고, 귀족노조에 대한 혐오감이 심한 나라도 드물고, 정치·행정에 대한 불신이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삐걱거리는 나라가 이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실로 기적이라 할만한데, 그것은 `세계1류기업`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재벌을 크게 밀어준 덕분이다. 재벌개혁이니, 경제민주화니, 법인세 현실화니 하는 야권쪽의 아우성을 외면한 채 외길 질주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그리고 이번에 `노동개혁`이라는 묵은 숙제를 놓고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이 `서명`을 하게 됐고, `대타협`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게 과연 완전한 타협일까? 정부·여당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쾌거!”라 하고, 야당은 “노조 팔만 비튼 엉터리 노사정 합의안”이라 하고, 경제5단체는 “매우 부족하다. 별도의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노동개혁을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하겠다”고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합의안을 수용키로 최종 결정한 것은 분명 `대타협`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입법`을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국회가 법을 매끈하게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험난한 악산`이다.야당은 “줄어든 임금, 쉬운 해고, 기업측에만 유리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타협안”이라 비난하는데, 기업측은 “청년일자리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기에 부족하다”며 입법청원을 들고 나온다. 국민은 정부·여당에 국정 책임을 맡겼다. “발목잡기 때문에….”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가는 후세에 맡기고, 지금은 책임과 임무를 완수할 때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8

국감 무용론

1948년 제정헌법 제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에 의해서 국정감사는 비롯됐다. 영국과 미국은 `상시청문회 제도`여서 매일 국정을 감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일년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기형적인 변종이다. 그런데 검찰이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검사의 기소권 행사에 대한 국회의 간섭은 사법권의 침해로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5·16 이후 “다만 재판과 진행중인 범죄수사·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란 단서조항을 붙였다.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국감이 폐지됐다. 감사원의 감사권만 남고, 국회의 국정 감사·조사권은 “실효도 없으면서 너무나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없앴다. 당시 국감이 요구한 서류는 7만3천695건으로, 서류 한 건 검토에 5분씩 잡는다 해도 280시간이나 걸리니, 20일 정도의 국감 기간에 다 읽을 수도 없다. 그래서 불거진 것이 `국감무용론`이었고, 유신정권은 이 여론을 받아들였다.그후 16년만인 1987년 노태우정권이 국감을 부활시켰다.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인 6·29선언에 의해서였는데, 지금도 국감무용론은 꾸준히 고개를 든다. 13시간 기다리게 해놓고 13초 질문하고, 종일 기다리게 해놓고 그냥 돌려보내고, 국회의원 갑질용으로 “증인채택하겠다” 협박한다. 이번 국감에서는 경찰총수를 불러놓고 모형권총을 주면서 “조준 격발을 시연해보라”고 요구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아이들 골목대장놀이도 아니고, 경찰청장 망신주기도 아니고, 시정잡배나 마피아 행동대원 훈련도 아닌 일이 자행됐고, 전국 경찰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국가기밀이 마구 폭로됐다. 비공개로 해야 할 말을 공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수준·자질미달 국회의원들 때문에 국감때 마다 무용론이 불거진다. 국회의원이 엉뚱한 짓을 하면 뽑아준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 `말 없는 다수`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7

역사해석의 다양성

국사교과서는 광복 직후 검정으로 출발했다가 박정희 대통령때부터 30여년간 국정으로 했고, 노무현정권시절인 2007년 이후 검정으로 바뀌면서, 좌파 사가들이 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편찬하게 됐다. 박근혜정부는 다시 국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새누리당 이정우 대변인은 최근 “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과 反대한민국 정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좌파 사가들의 역사관이 계속 교과서에 반영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 했다.지금 많은 논자들이 국정을 반대한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토론하는 것은 문명국의 보편적 상식이고, 그래야 다원적 가치와 창조성, 상상력이 확대되는데, 역사 해석의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이 모든 장점을 포기하자는 얘기라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은 `원론적으로`만 맞다.`실제`로는 정반대로 나타난다.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국사교과서가 처음 나왔을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몇몇 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 학교들은`집중공격의 대상`이 됐다. 일부 학부모들까지 부화뇌동해서 “교학사 국사책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겠다”고 압박했고, 학교에는 쉴새 없이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심지어 “죽여버리겠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이같은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해 “교학사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고 항복을 했고, 결국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게 됐다. “검인정으로 해야 다양성과 개방성과 창의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는 완전 허구임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것이다.좌파 입맛에 맞는 국사교과서만 살아남는 것이`검정 교과서의 현실`이다. 노무현정권때 검정으로 돌아선 이유가 있다. 국사교과서 만큼 좋은 `혁명 투쟁의 무기`가 없다. 그래서 사생결단하고 국정을 반대한다. 그러나 국정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사항들을 분단극복을 위해 부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6

불신 합병증

1957년 모택동은 `반우파 투쟁`을 벌인다. “공산당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 사회주의의 나쁜점을 말해달라”했다. 지식인 55만명이 바른말을 했다. “그래, 그것이 너희들 본심이지? 네놈들은 우파야”그들은 탄압당하고 숙청됐다. 毛는 이것을 `인사출동(引蛇出洞: 뱀을 유인해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의 묘수라 했지만, 그 후 지식인들은 입을 닫아버렸다. 지식인의 의무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중국인들은 지금도 `속에 있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게 됐다. “나무는 겉껍질이 벗겨질까 두려워하고, 사람은 속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한다”란 중국속담도 여기서 생겼다. 공자는 “국가경제, 국방, 신뢰, 이 셋 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신뢰”라 가르쳤지만, 毛는 문화대혁명 당시 공자를 비판하면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그 결과 중국의 발전을 30년 이상 발목잡았고, 그 거대한 대륙이 작은 섬나라 일본에 먹히는 비운의 제국이 되기도 했었다. 나라가 불신받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不信不立)란 말은 영원한 진리다.의심 많고 시기심 가득한 선조(宣祖)는 툭하면 `선위파동`을 일으켰다. “임금자리를 내려놓겠다”선언해놓고는 “어떤 놈이 찬성하나”하고 살핀다. 대놓고 동조는 안 해도 `적극 반대하지 않는 자`도 찍힌다. 이순신 장군도 그런 대상이 됐고, 명량대첩 후 전사함으로써 `전쟁후의 더러운 꼴`을 피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선조를 조선조의 대표적 암군(暗君)으로 꼽는다. 임진왜란도 불신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불신으로 가득한 나라는 허약해지기 마련이다.1949년 4월 오제도 검사의 제안으로 `보도연맹`이 만들어졌다. 좌익활동을 한 사람이라도 이 연맹에 가입해 재교육받으면 보호하고 선도하겠다는 취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가입했다. 그러나 다음해 6·25가 터지자,“이런 자들이 북한에 동조할 것”이라 의심해서 상당수의 연맹원들을 죽였다. 최근 대법원은 포항 유족 143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불신의 골`을 메우는 일이라 다행스럽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5

국가기밀 유출죄

어떤 독재국가에서 한 남자가 재판소에 잡혀왔다. “우리 수령님은 바보다”그 한 마디 한 죄였다. 판사는 15년형을 선고했다. 국가원수 모독죄로 5년, 10년은 `국가기밀 유출죄`였다. 유머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나라를 거덜내는 바보를 `신`으로 만드는 정치쇼를 통박한 풍자가 재미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씨가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종북 세력을 두더지 잡듯 분쇄하는 일은 중단없이 계속돼야 한다”는 취임사를 한 것이 이번 국감에 걸렸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김일성 주석과 감격적인 포옹을 하고, `통일의 꽃`으로 국빈대우를 받았던 임수경 새정련 의원이 그 취임사를 걸고 넘어진 것.“종북의 개념이 뭡니까. 저도 종북입니까” “문재인 대표는 종북입니까”라고 따지는데,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뱉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 지 알 수 없는 일. 문 대표에 대해서는 “그런분이 아니다”라고 했고, 임 의원에 대해서는 “연구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경륜과 관록이 쌓인 허 회장이라 `가장 무난한 피난길`을 찾은 것. 당시 임 대표는`김일성 선물`인 여우목도리를 호텔방에 그냥 두고 왔고, 첨단 공산품 전시장에서 안내원이 `계산기`를 자랑하자 “이런것 우리집에도 있어요”해서 머쓱하게 만든 일이나, 북한의 어느 대학생이 남한의 학생대회에 무단으로 참석했다가 돌아갔다면 그 당장 총살당할 일이지만, 임씨는 지금 국회의원이 돼 있으니, “역시 한국은 자유국가”란 인식을 북에 심어준 `공로`는 있다.그런데 새정련 진성준 의원은 국감 자리에서 국가기밀을 마구 폭로했다. `900연구소``다물부대``3·1센터` 등등 존재 자체가 기밀인 정보기관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렸다. 지난해 진 의원은 사이버사령부 산하 모 부대를 공개하는 바람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직을 바꿔야 했다. 이번에도 교체 비용을 낭비하게 생겼다. 이런 이적행위조차 국회의원의 특권이라면, 이는 자유과잉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4

안젤리나 졸리

이슬람근본주의가 준동하는 나라 치고 조용한 곳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박멸되자, 시리아에서 IS가 나타났다. 그들은 인질을 잡아 돈으로 흥정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일본이 `IS 박멸 자금` 20억 달러를 내겠다고 하자, 일본인 기자를 잡아 “그 20억 달러를 주면 이 인질을 풀어주겠다”고 하다가 일본이 듣지 않자 목을 쳐 죽였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다. 친부 존 잔달리는 1931년 시리아 홈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위스콘신대학에 다니던 중 동급생 캐럴 심슨을 만나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낳지만, 심슨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자, 그 아들을 `잡스씨 가정`에 입양시켰고, 아이는 `잡스`라는 성을 갖게 된다. 그 후 생부와 아들은 `남`으로 지냈는데, 스티브 잡스가 유명해지자 친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양 보낸 것은 실수였다. 지금이라도 만나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고 했지만, 잡스는 생부를 못 만나보고 암으로 세상을 떴다.`3살 배기 아일린`이 시리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피난가다가 배가 뒤집혀 숨지자 갑자기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 스티브 잡스가 입방아에 오른다. “아일린이 무사히 자랐다면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도 있었겠지”라고 한다. 시리아 난민 중에 `천재`도 있을 것이니, 난민을 단순한 `짐 덩어리`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전설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밥 얻어 먹이는 일로 여생을 살다 갔는데,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세계난민기구 특별대사로 활동하다가, 최근 영국 일간지 `타임스`에 글을 실었다. “종교 문화 인종을 초월해서 보편적 인권 측면에서 난민들을 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북한의 억압정치를 비판해왔는데, 최근에는 시리아 난민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다. `IS의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IS를 비판하는 그녀의 용기가 놀랍다. 우리나라도 난민문제에 관심을 가질때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1

솔거미술관과 박대성

신라 35대 경덕왕은 어느날 황룡사를 돌아보고 금당(堂)이 너무 소박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중신회의를 열었다. “금당 벽에 소나무 하나 그렸으면 좋겠는데…” “솔거라는 환쟁이가 있습니다” “이름이 좀 특별하구려” “어릴때부터 늘 솔숲에 들어가 살다 시피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 화공에 시켜서 소나무를 그리시오” 이렇게 돼서 금당 벽화 노송도가 그려졌고, 새들이 실제 소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솔거`라는 이름과 새들 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삼국유사`. 고려 말 일연스님은 운문사 인근 암자에서 책을 쓰고 있었고, 황룡사 건립에 관한 일화를 자세히 적었다. 몽고군이 경주 시내 사찰들을 불태우고 파괴할 무렵에도 일연은 운문사에 있었고, 경주의 참상을 직접 봤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9층목탑`과 `노송도`가 무참히 불탄 사실을 삼국유사에 기록하지 않았다. `신라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재앙을 차마 책에 써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광복 무렵,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서 박대성이 태어났다. 한의원집 아들로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랐으나, 빨치산의 총격을 받아 부모는 사망하고, 박대성 자신은 팔 하나를 잃었다. 당시 운문산은 빨치산의 은거지였고, 인근 마을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면장 이장 부자는 총을 맞거나 죽창에 찔려 죽고, 집이 불타고 소를 뺏겼다. 한밤중에 불바다가 된 마을이 많았다.박대성은 친척집에 얹혀 살면서 솔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둘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그는 소나무를 열심히 그리게 되었고, 16년전부터 경주 서남산 삼릉계곡 아랫마을에 터 잡고 앉아 소나무를 그린다. 그는 자신의 작품 435점과 그림도구 등 총 830점을 솔거미술관에 기증했다. 전시실은 모두 8실인데, 그중 5개실은 그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솔거는 눈 밝은 새들도 속을 만큼의 극사실화를 그렸으나, 박대성의 그림은 사실성과 추상성이 융화하고, 상징성과 은유가 조화롭게 어울린다. 그를 일러 `21세기의 솔거`라 부르는 이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10

탈출할 자유

탈레반이 거의 박멸돼가니 또 IS가 분탕질이다. 지중해 동쪽 시리아를 점령한 IS가 고대유적지 팔미라시에 있는 신전을 연이어 파괴한다. 바알 샤만 신전을 폭파한지 일주일만에 또 벨신전에 폭약 30톤을 터트렸다. 200m 높이의 돌기둥으로 이뤄진 벨신전은 팔미라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고, 그리스 양식과 로마 양식을 혼합한 그레코로만과 고대 중동의 건축술이 어우러진 세계문화유산이다. 2011년 IS가 시리아를 점령한 후 피난민들이 줄을 잇는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이 준동하는 지역마다 그렇다. 시리아에서 조각배를 타고 지중해를 넘어 서쪽으로 가다가 풍랑에 뒤집혀 수장되는 어린 생명이 1만명이 넘는다. 그 중에서`파도에 떠밀려 나와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숨져 있는 3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참상을 찍은 터키 해변의 사진 한 장 앞에 세계는 통분하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전에는`매우 골치아픈 일`이라 여겨 난민들에게 문을 닫아 걸었고, IS박멸에도 소극적이었다.독일은 “오는 난민을 다 받겠다”고 하고, 영국 캐머런 총리는 “난민 1만8천명을 데려오겠다”고 하고, 아일랜드는 당초 600명으로 제한하다가 지금은 1천800명으로 늘렸다. 부자들도 난민수용에 앞장섰다. 핀란드의 IT기업인 출신의 백만장자 시필레 총리는 자신의 거대한 저택을 난민수용소로 쓰겠다 하고, 이집트 통신재벌 나구이브는 지중해에 있는 섬 하나를 사들여서 `난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 섬에 주택과 공장 등을 지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주기반을 조성할 생각이다. 3살배기 어린 생명이 인간의 `4단7정`을 불러일으켰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탈북난민들을 생각한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 그 멀고먼 중국 대륙을 횡단해 인도차이나반도 제3국까지 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조각배를 타고 내려온 북한 주민들을 우리는 따뜻이 맞고 있지만, 북에서는 “2명 이상 탈북한 가구 전원을 정치범수용소에….”라는 법을 만들었다. 시리아 사람들은 `탈출할 자유`라도 가지는데…./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9

국감 암시장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 헌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 시대에나 힘을 쓰는 헌법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독일로서는 그런 `완벽한 민주주의 헌법`이 오히려 독이었다.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을 걸고, 정부 여당은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없었다. 이때 독일국민들은 `독재자`를 기다렸고, 히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강력한 정부·여당을 만들었고, 야당을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패전국 중에서 가장 먼저 악성 인플레를 잡아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인종청소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아마 `독일의 성군(聖君)`으로 남았을 것이다.“9월이 되면 여의도에 거대한 암시장이 선다” 대기업에서 대관(對官)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내뱉는 탄식이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나 임원들을 국회에 불러내려 하면, 기업측에서는 사생결단으로 이를 막기 위해 `장마당`을 열어 뒷거래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나오는 장관 후보자나, 국감장에 불려나오는 증인들은 “국회의원이 염라대왕”이다.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는 `망신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로서는 국감장에 불려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업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는 미국의 경우 의회와 경제계의 관계는 甲乙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상시국감을 통해 기업에 해명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항상 甲이라, 기업총수나 임원을 불러 호통도 치고 망신 주는 것으로 끝이다. “의원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다시는 같은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정답`이라, 근본적 문제해결과는 아무 상관 없다.`국감 암시장`에서는 “의원님의 선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의원님이 가입된 시민단체와 함께 사회공헌재단을 만들겠다” “의원님이 추천하는 인물을 채용하는 등 무슨 요구든 수용하겠다” 등등의 `거래물품`이 등장한다. 재래식 장마당 암거래는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8

패션 외교

동양문화권에는 오방색(五方色) 개념이 있다. 동쪽은 푸른색, 남쪽은 붉은색,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각 방향에 색깔을 부여한 것이다. 관리가 처음 등용되면 푸른 관복을, 높이 올라가면 붉은색 관복을 입고, 초상이 나면 흰색의 상복과 관모를 착용했고, 질병이 돌거나 전쟁이 나면 관리들은 검은색 관복을 입었다. 그리고 중앙은 노란색인데, “우리는 세상의 중심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 황제들은 노란색 곤룡포를 입었다. 그래서 오직 중국 황제만 노란색을 입을 수 있었고, 변방의 왕들은 다만 붉은색 계통의 곤룡포를 착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노란옷을 입고 참석했다. 옛 황제시절 같았으면 `무엄한 행위`였다. 중국인들은 홍복(洪福)과 발음이 같아서 홍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은 황금색이고 황제의 색이라 해서 역시 선호하는 색깔이다. 그래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는 황색과 홍색으로 돼 있다. 큰 별 하나를 작은별 4개가 둘러싸고 있는데, 별은 황색이고, 바탕색은 붉은색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만찬 리셉션에는 붉은옷을, 열병식에는 노란옷을 입은 것은 외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한 `외교적 색깔 선택`이었다. 미술심리학적으로 황색은 평화의 상징색이다.노동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영국은 `늙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고, 이런 나라를 되살려낸 수상이 대처 여사였다. `대처의 패션 협상`은 유명하다. 노조와의 싸움으로 임기 대부분을 채운 그녀는 진한 색 자켓과 바지 차림에 날카로운 모양의 블로우치를 달고 회의에 나갔다. “나는 당신들과 피터지게 싸우러 왔으니, 알아서 하라”는 경고였는데, 상대방은 대처의 패션만 보고 지레 주녹이 들었다.남자 정상들이 할 수 없는 패션외교를 여성 정상은 할 수 있다. 이번 천안문 행사에서 제일 눈에 확 띄는 옷차림이 박대통령의 노란색 자켓이었는데, 그것은 `황제시대의 곤룡포`를 연상시켰다. 여성 대통령의 옷색깔 하나가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는 순간이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7

이쾌대의 `군상`

극적인 일생을 산 화가들이 많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선교사의 가정에 태어나 자신도 목회자가 되려 했지만,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화가가 됐다. 라틴어 시험에서 번번이 낙제했기 때문.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죄로 천덕꾸러기에 거지로 살 수밖에 없었다. 동생 테오가 생활비와 물감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테오의 아내가 시숙의 평전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림 한 점에 아파트 몇 채 값`이 나가는 고흐는 없었을 것이다.금융회사 중견 사원으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던 고갱은 어느날 갑자기 그림도구 챙겨들고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들어갔다. 문명에 때묻지 않은 `원시의 순수`가 그를 매혹시켰던 것. 그러나 고갱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전시회를 열었지만 “외설적이다. 얼굴 뜨거워서 볼 수 없다” “왜 벌거벗은 사람들만 그렸냐” “그림실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혹평만 쏟아졌다. 그는 성병을 치료할 돈조차 없었고, 굶어죽다시피 생을 마쳤다.한일합방 3년후인 1913년 1월에 칠곡에서 이쾌대가 태어났다. 부친은 고위 지방관을 지낸 대지주였다. 형 이여성은 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역사화가였고, 이쾌대도 자연스럽게 화가가 됐다. 6·25때 노모는 병환중이었고, 부인은 만삭이어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공 치하에서 조선미술동맹에 가입했다. 어쩔 수 없이 `부역자`가 됐다가 유엔군의 인천상륙 후 서울이 수복되면서 그는 체포돼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몸이 됐다. 53년 남북 포로교환때 이쾌대는 북을 선택했다. 형이 월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형제는 북에서 숙청됐고,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이쾌대 전시회`를 열고 있다. 32세때 광복을 맞아 그 기쁨과 희망을 표현한 대작 `군상`연작은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나신과 건강한 남성들의 육체, 자신감 넘치는 밝은 표정, 서로 어울려 꿈틀거리는 움직임 등 `해방 한국의 힘`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분단극복의 동력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4

보물인지, 재앙인지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해역은 예로부터 난행랑(難行浪·지나기 어려운 뱃길)이라 불렸다. 중국-조선-일본-페르시아 등지를 다니는 무역선과 나라에 바칠 물품을 실어 나르는 조운선이 숱하게 침몰된 해역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보물 건져올리기`가 빈번해지고 `수중고고학`이라는 분야가 새로 생겼다. 경주시를 `야외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같이 태안해역을 `바다박물관`이라 한다. 침몰한 배에서 고려 청자가 무더기로 발굴됐는데, 최근에 건져올린 `마도4호`에는 조선 백자가 잔뜩 실려 있었다. 이 마도4호선은 조선 태종과 세종시대에 세금으로 받은 쌀과 보리를 실어나르고, 남해안 지역에서 구워진 분청사기를 중앙정부에 공납(貢納)하는 일을 하다가 침몰한 조운선이었다.도자기와 먹글씨로 씌어진 죽간(竹簡)물목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고스란히 `보물`이 됐다. 지금까지 인양된 선박은 모두 14척인데, 고려시대의 것이 10척이고, 2척은 중국 선박이었다. 당시 중국은 도자기가 발달해서 사기그릇을 실은 무역선이 남해에 왔다가 많이 침몰됐다.최근 폴란드에서 `황금열차`가 발견됐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와 러시아, 그리고 유대인들로부터 약탈한 미술품과 황금 300t을 이 열차에 실어 독일로 반출하려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산악지대 터널에 기차를 몰아넣고는 양쪽 입구를 막았던 것인데 이 일에 참여했던 한 노인이 생을 마치는 순간에 그 비밀장소를 알려주었다. 폴란드정부는 땅속을 투시하는 레이더로 현장을 조사했고, 약 100m 길이의 화물차를 발견했다.그런데 이 보물이 재앙이 될 조짐이 보인다. “약탈 문화재는 본국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국제규약이 있으니, 러시아와 유대인단체가 “내것 내놓아라”하고, 폴란드는 “어림 없다”고 한다. 당시 독일이 러시아 왕궁에서 약탈한 호박(琥珀)장식품은 약 4천500억원 어치나 되고, 유대인들에게서 뺏은 미술품들은 그 이상의 값이 나가니, 이 보물들을 두고 국제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보물이 재앙으로 돌변하는 것은 잠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3

선학평화상

최근 제1회 선학평화상 시상식이 있었다. 상금은 100만 달러(약 11억원)이고, 매년 시상하며, 세계평화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2012년 타계한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초대 총재의 염원을 기려 2대 한학자 총재가 제정했다. “인류는 한 가정” “내 평생 목표는 굶주림과 가난을 줄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란 문 총재의 정신이 깃든 상이고,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이 운영위원장이다. 이번 시상식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참석했고, 성악가 조수미씨와 리틀엔젤스가 축가를 불렀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문 총재 타계 3주기를 맞아 “문선명 선생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추모메시지와 김양건 명의로 조화(弔花)를 보냈다. 문 총재는 김일성 주석 초상때 조문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때는 제2인자가 갔다. 그들은 미국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북한 입국이 자유로웠다. 이 조문메시지와 조화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을 통해 전달됐다.88서울올림픽이 열릴 무렵, 문 총재와 이건희 삼성회장은 야신 소련 선수단장을 만찬에 초대했다. 그때 문 총재는 “내가 선수들에게 자동차 2천대를 선물하겠다”고 제안하고 “단 한국 운전사가 38선을 넘어 북한을 거쳐 소련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그때 김일성 주석이 길을 빌려주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 문 총재는 “북한에 평화자동차 공장을 짓겠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김 주석이 화답하면서 둘은 평양에서 만나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자동차 2천대`와 `북한 평화자동차`는 한·소 수교의 밑거름이 됐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틔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본격 논의되다가 김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대화와 협력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었다. 정치이념과 인종과 종교와 국경을 넘어 `인류 한 가정`의 꿈이 활짝 꽃피울 때가 가까워지는 조짐인데, 선학평화상이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2

문화재의 저주

`반달리즘`이란 말은 `문화파괴자`란 뜻이다. 북방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5세기 로마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당시에는 `문화유산`이란 개념이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천재들도 당시 장인(匠인)이고 `미술재주를 팔아 생활하는 막노동자`였다. 고려 말 몽고군도 문화를 철저히 파괴했다. 경주 황룡사와 영묘사 등이 그때 사라졌다. 불가사의한 9층목탑,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솔거의 `노송도`, 에밀레종보다 몇배나 큰 대종 등이 그때 없어졌다. 황룡사 복원 계획이 있지만, 원형 복원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생겼다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주 동남산 옥룡암 옆에 있는 암벽에 9층목탑과 7층목탑이 음각돼 있어서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뿐이다. 현대기술로도 9층목탑은 태풍에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영묘사는 선덕여왕과 인연이 깊은 곳인데, 그 위치만 겨우 짐작할 뿐이다.요즘에는 이슬람극단주의 IS가 문화파괴로 악명을 떨친다. 옮겨갈 수 있는 것은 팔아서 무기를 사고, 건물은 폭파시킨다. 그들은 일체의 인물상을 `우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년전에는 아프간 간다라문화지역의 거대한 석상을 로켓포를 쏘아 부숴버리더니, 지금은 시리아의 팔미라 신전에 폭약을 잔뜩 쌓아놓고 터트려버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인류의 유산이다.고고학자 알아사드(82)는 IS가 팔미라를 점령할때도 피난가지 않고 유물 숨기는 일을 계속했다. 그는 체포돼 “유물 있는 곳을 대라”는 심문에 굳게 입을 다물다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참수됐고, 목 없는 시신은 신전 기둥에 매달렸다. 유네스코는 “IS는 2차세계대전 이래 가장 야만적으로 문화재를 파괴했다”고 비난하고 “IS가 파는 유물을 절대 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판매대금이 그들의 군자금으로 쓰이기 때문이다.인류가 공유할 문화유산을 파괴한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반달족은 사라졌고, `정복자 몽고`는 지금 없다. IS도 곧 망할 것이다. 이것이 `문화재의 저주`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01

경주예술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대학인 경주예술학교는 해방 이듬해 1946년에 설립됐다. 경주출신의 서양화가 손일봉 손동진 최현태 이기섭, 한국화가 박봉수, 공예가 김한천 김무종, 서예가 최현주 등이 `서라벌예술가협회`를 결성하면서 이들이 주축이 돼 세운 예술학원이다. 명칭은 `학교`로 돼 있지만 사실 `대학`이었다. 미술과, 음악과, 국악과로 편성됐고, 2년제 전문대학으로 출발해 이듬해 3년제로 승격했고, 장차 4년제로 갈 계획이었으나, 불행히 실현을 못 봤다. 당시 해방공간에서는 좌·우 이념대결이 치열했다. 좌익들은 이 예술학교가 순수예술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난동을 부렸다.그들은 모택동의 `문예강화(講話)`이념에 따라 “예술은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치에 도움이 안 되는 예술`은 무용하니 타도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결국 경주예술학교는 6·25동란이 한창이던 1952년 폐교됐고, 교수진들과 학생들은 홍익대학으로 옮겨갔으며, 사회주의 예술론에 공감하는 일부는 북으로 갔다. 서울대 미술학과가 개설되기 전의 일이다. 오늘날 홍대 미대가 최고 명문이 된 것은 경주예술학교가 그 밑거름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경주에서는 문화예술행사가 홍수를 이룬다. `실크로드 경주 2015`와 `솔거미술관 개관`, 그리고 `경주미술의 뿌리와 맥 7인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경주미술의 태동을 알리는 화가1세대들의 작품 2~4점씩을 모아 전시한다. 1904년 을사보호조약 당시에 태어나 36살에 요절한 황술조, 2살 적은 손일봉, 조각가 김만술, 설경과 잉어의 화가 박지홍, 서양화가 손택수, 손동진 등 7명의 작품 28점을 모은 것이다.이들은 실로 경주미술의 `아침 햇살`이었다. 황술조는 경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했고, 주로 개성 등지에서 고교 미술교사를 지내다가 32세에 경주로 돌아와 신라문화 선양에 기여했다.손일봉은 경주미술학교 초대 교장, 한국화의 박지홍은 2대 교장을 지냈다. 이 선구자들의 작품은 상설전시할만 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31

핵보다 무서운 확성기

막대한 돈을 들여 핵무기를 개발해놔봐야 별 소용이 없다. 역사적으로 원자탄이 실제 사용된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떨어진 2개 밖에 없다. 여러 나라들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지만 다`위협용`이지 `실용성`은 없다. 북한의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협박용`으로 가지고 있다가 돈이 궁할때 “내가 핵폭탄 가진 것 알지?”라며 `노상 강도행각`에나 쓰일 뿐이다. 좌파정권 시절에 “한국은 북한의 현금 자동 지급기”란 소리를 들었다. 달라는대로 고분고분 퍼주었다. 그러나 MB정권·박근혜정부에 들어서면서 그 돈줄이 끊어지자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을 자행하더니 목함지뢰 도발까지 왔고 결국 `확성기 방송 재개`를 불러왔다.북을 향해 불어대는 확성기 방송은 지난 11년간 중지됐었다. 마이크도 철거됐다. 그것이 목함지뢰 사건 이후 다시 설치되고 방송이 시작됐는데 북의 핵무기보다 무서운 남측의 고성능 방송임이 입증됐다. 폐쇄체제와 거짓말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진실의 전달`이다. `최고존엄 원수님`의 치부(恥部)와 초라한 실체가 고스란히 폭로되니 대북방송은 체제를 뒤흔들고, 세습독재체제의 허약함을 여지없이 까발기는 `가공할만한 무기`란 것이 이번에 알려졌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다.굶주리는 북한 전방 군인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알면 탈북을 결심할 수 있고 한국 K-POP 아이돌들의 자유분방한 공연에 눈이 뒤집힐 것이니 `전방 장병들의 탈북행렬` 때문에 휴전선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듯이 그래서 확성기 방송이 핵무기나 미사일보다 무섭다. 절대로 사과를 하지 않고 돈뭉태기를 주어야 유감표명 정도 하는 북한이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순순히 “확성기 방송을 중지해주면…”이란 조건으로 “북측은 유감으로 생각하며…”란 합의문에 서명했다.방송은 중지하되 마이크를 철거하지는 않았다. 북쪽을 향하여 염라대왕 처럼 버티고 서서 “도발만 해봐라. 또 불어제킬터이니” 한다. 북의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대북 전단지보다 힘이 없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8

양심과 비양심

박기춘 의원은 업자로부터 3억5천8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감됐다. 국회의원은 회기중 불체포특권이 있지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그는 며칠간 집에도 가지 않고 사무실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철야기도를 하며 3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기자에게 “내 잘못이다. 경계심이 풀렸다. 돈을 받는 것이 겁이 났는데도 뭐가 씌었는지….”라고 했다. 형님 동생하는 사이이고, 아이들도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으며, 선거때는 아무 대가 없이 성심껏 도와줬던 한 분양대행업자가 주는 금품이라 `무심코` 받은 것이 바로 `뭐가 씌었던`것이다. 수년 전 중국의 한 고위관리가 너무 많은 뇌물을 받아 사형이 선고됐는데,“내가 처음 받은 뇌물은 담배 한 갑이었다. 그것이 차츰 불어나고, 뇌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고, 마침내 억대 금품까지 받으면서도 죄의식이 없었다. 뇌물의 본성이 그런 모양이다”란 최후진술을 했었다. 뇌물은 본래`선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기춘 의원이 그것을 깨달았는 때는 이미 `교도소 담장 안쪽`을 걸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값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참여정부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한명숙 의원은 불법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려 5년1개월이나 끌었다. 정치인에 대한 재판은 늘 질질 끄는 것이 관례지만, 이것은 유례 없는 최장기여서 그는 국회의원 임기를 다 찾아먹었다. 그러고도 구치소에 수감될 때 검은 옷을 입고 “사법정의가 죽었기 때문에 그 장례식에 가기 위해 상복을 입었다”고 했다. 1심에서는“돈을 준 사람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며 무죄, 항소심에서는 유죄, 그리고 대법원 상고심은 2년 징역에 추징금 8억8천만원을 선고했다.한명숙 의원은 이것을 `야당 탄압 정치재판`이라 했다. 5년 여를 끌며 `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는 전혀 없었다. “그 사람들은 본래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 생각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