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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무시당하는 한국

전범(戰犯)기업 미쓰비시는 최근 중국인 피해자 3천700여 명에 대해 1인당 10만 위안씩을 지급하고,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를 했으며, 기념비 건립비 1억엔과 실종자 조사비 2억엔도 내기로 했다. 미쓰비시는 지난해 7월 미국 LA에서 “미군·영국군·호주군 포로들을 강제노동에 내몬데 대해 사죄한다”면서 유족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데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한국은 무시한다.미쓰비시는 10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을 탄광과 조선소에 끌고가 짐승같이 강제노동을 시켰고, 약속한 임금은 한푼도 주지 않았다. 너무 지쳐서 잠시만 쉬어도 욕설과 채찍이 날아왔고, 고통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다가 잡혀 맞아죽기도 했다. 그렇게 사망·실종된 한국인이 수천명이라 한다. 미쓰비시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므로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일본 법원도 “미쓰비시는 강제노역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면서 자발적 해결을 권고했다.그러나 미쓰비시가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은 한국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제 나라를 제대로 지킬 능력조차 없어서 남의 속국이 된 `반도인 조센찐` 주제에 무슨 큰소리냐 하는 오만이 그들의 심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과거의 노예`인 2등 국민에게 무슨 사죄며 보상이냐 하는 자만의 심리가 아직 남아 있음이다. 일본의 한 기업이 망할 지경이 돼 매물로 내놓았는데, 한국 기업인이 매입하려 하자 “조센찐에게는 팔 수 없다”며 거부한 적이 있었다.폴크스바겐의 연비조작이 들통나 전 세계적으로 판매부진에 직면해 있고, 미국과는 소비자 보상문제 등을 협의해 21일쯤 보상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배출가스 조작`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리콜계획도 없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 차가 잘 팔리고 있고, 정부도 미온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자존심도 없나. 조센찐 소리 들어 싸다”이런 평가를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16

편가르기 버릇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은 우선 통이 넓어야 한다. 나라 안에는 별의별 성격의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기 마련인데, 이를 어떻게 하든 끌어안고 함께 가려는 국량(局量)과 `품`을 가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아직 편가르기 습성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은 무엇이든 정부·여당 탓으로 돌린다. 우리나라에는 예전부터 `정권을 비판해야 정의로운 사람이고 지지하면 사꾸라`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물론 정부·여당이 국민을 실망시킨 탓도 있지만, 덮어놓고 비판만 하는 것도 협량(狹量)이다.문재인 전 대표는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도 정부여당 탓으로 돌렸다. “새누리당 정권이 추구하고 방치한 이윤 중심의 사회, 탐욕의 나라가 만든 사고인 점에서 구의역은 지상의 세월호였다”고 하니,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새누리당 소속으로 착각하고 계신 것 아닌가”비아냥거렸다. 구의역 사고의 직접 책임은 서울메트로와 이를 관리감독하는 박원순 시장에 있다는 것은 아이들도 아는데, 문 전 대표만 모르고, 잘못된 것은 뭣이든 정부여당의 실정으로 몰아가는 편가르기가 가관이란 것.지난달 서울 강남역 여성 화장실의 `묻지마 살인`에서도 그는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그는 아직 남존여비사상에 붙잡혀 있구나”란 비판을 자초했다. 또 최근에는 신공항 입지문제에 끼어들었다. “정치판은 신공항에 간여하지 말라” “신공항 입지는 경제논리만으로 결정하라”란 국민의 외침을 외면하는 처사다. 그는 부산시민의 뜻만 존중하고 전국민의 여망은 안중에 없는 편향성을 보여주고 말았다. 지난 대선 출마때 현충원을 찾은 그는 `이승만·박정희 묘소`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이념의 편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는데, 그동안 전혀 국량이 넓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국론분열적 행보만 이어갈 뿐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좌파정권은 안 된다”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15

직접민주주의

스위스는 유난히 직접민주주의를 좋아한다. 툭하면 국민투표를 하니, 행정부나 입법부가 하는 일이 별로 없고, 그러니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국민도 극히 적다. 스위스 국립대학 정치학과 학생들에게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사람 손 들어” 했더니 손 든 사람은 둘 뿐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대는 이름은 현직이 아니라 직전 대통령이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스위스인들은 시민회관 하나 짓는 것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가결보다 부결이 더 많다. 시민회관도 두 번 부결됐다가 세번째 가결됐다. 행정부나 입법부가 갑질할 여지가 없으니, 국민이 허파 뒤집어질 일도 없다.우리나라는 간접민주주의(대의정치)에 길들여졌는데, 그 뜻이야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 하지만 국회가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을 터이다. `법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 국회라, 자기들 이익되는 법만 자꾸 만들어서 온갖 특권을 누린다. 이것은 절대 `국민의 뜻`이 아니다. 선거때가 되면 `특권내려놓기`를 외치지만, 선거 끝나면 싹 입을 씻는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권한을 정하는 국민투표를 하자”하는 소리도 나오지만, 그것도 국회가 호응을 해야 한다.우리 헌법 제72조에 “대통령은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국민투표는 돈이 엄청 들고 찬반논쟁이 벌어져서 나라가 한 동안 마비되는 지경이 될 것이니 그것도 거북하다. 그러니 5년마다 대통령 선거,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정도만 직접민주주의식으로 할 뿐이다.스위스가 최근 `기본소득 300만원 제도`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77%가 반대해서 부결시켰다. 일을 안 해도 매월 300만원씩 주면 누가 힘들게 노동을 하겠으며, 그 재원을 누가 댈 것인가? 그 생각을 하면서 “이것은 나라 망칠 제도”란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불공평이 문제”란 논어의 말씀도 일리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스위스 국민의 민도(民度)가 우리와 다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14

양보의 정치학

구약성서 창세기에 `이삭의 양보`가 나온다. 사막지대에 우물이란 `생명샘`이고 `권력`이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 블레셋 사람들이 방해를 한다. 뜨내기가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면서 우물을 파면 메우고 파면 메웠다. “우물을 파서 줄 것이니, 그러지 말라” 하고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양보한 우물이 3개에 이르자 블레셋인들은 이삭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어릴때 주일학교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양보`를 평생 실천한 사람이 있었다.`외과의사 장기려 박사`는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6·25때 국군을 따라 월남, 부산에서 의사로 살면서 재혼도 하지 않고, 의사월급을 고아원·장학금·환자 치료비 대납에 썼다. 가난한 환자에게는 “밤에 도망가라” 했고, 며느리가 준 혼수이불까지 남에게 줘버렸다. 그는 청십자병원을 열어 `민간의료보험`의 효시가 됐다.과거 동독 사람들은 쓰레기를 트럭에 실어 서독쪽에 버렸다. 서독인들은 같은 방식으로 보복을 하는 대신 통조림, 마른 음식 등 잘 변질되지 않는 식품을 한 트럭 실어 동독에 가져다 내려놓고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버린다”란 팻말을 세워놓았다. 속에 쓰레기가 든 사람은 쓰레기를 버리고 음식이 든 사람은 음식을 버린다는 뜻이었다. 동독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고, 민간에서부터 “통일하자!”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통독의 힘은 양보와 배려의 미덕에서 나왔다.총선이 끝나면 바로 원구성에 들어가는데, 이기심 때문에 이것이 잘 합의되지 않고 법정기일을 항상 어겼다. 심지어 88일을 끈 경우도 있었다.이번에도 최소 2개월은 갈 것이라 했다. `의장·부의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부터 난관이었다. 새누리당은 “집권당이 의장을 해야한다” 더민주당은 “제1당이 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자유투표로 정하자” 팽팽히 맞서 있을 그때 극적인 반전(反轉)이 나타났다. 8선으로 가장 유력한 의장 후보였던 서청원 의원이 “내가 양보하겠다” 하자 순식간에 의장단 선출문제가 풀려버렸다. 양보의 정치학이 모든 문제의 열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13

천연효모 누룩

위대한 지혜를 가진 조상 덕분에 우리는 누룩을 만들었고, 누룩에서 나온 천연효모로 술을 빚었고, 세상에 둘도 없는 막걸리를 제조했다. 누룩과 고두밥과 물을 섞어 일정한 온도에 5일간 놓아두면 노란 청주가 생기고, 청주를 뜨내고 남은 것에 물을 부어 걸러내면 막걸리가 되고, 솥에 넣고 열을 가해 나온 증기를 식히면 소주가 된다. 청주, 소주, 막걸리를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는 가축사료가 됐고, 흉년에는 끼니였다. 콩으로 만든 메주로 된장을 담그고, 보리 엿기름으로 감주를 제조하고, 통밀을 간 누룩으로 술을 빚었는데, 이것이 모두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얻어낸 천연발효식품이다. 껍질 째 간 밀을 물로 반죽해서 일정한 온도에 발효시켜 말리면 거기서 천연효모 `술아제비`가 생겼다. 이것은 소화제로 쓰이기도 하는데, 한약명은 `신곡`이다. 다른 나라들은 화학제품 이스트를 사용하지만, 누룩은 부드럽고 달고 구수한 맛의 천연효모이다.누룩의 사용범위는 막걸리에서 빵으로 넘어간다. SPC그룹과 서울대는 누룩에서 찾아낸 천연효모를 이용해 서양 이스트를 쓰지 않고 빵을 대량생산하게 됐다. 천연의 맛과 깊은 풍미를 가진 `한국빵`을 제조하기까지 연구진은 11년의 세월과 160억원이란 연구비를 투자했다. 이 기술은 현재 국제 특허등록을 진행중이다. 천연효모로 만든 빵은 더 쫄깃하고 수분 보존율이 높아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막걸리에서 빵으로, 누룩은 또 한번의 역사를 기록했다.부산 금정산성 누룩을 최고로 친다. 고지대 산성에서 수확한 밀로 빚은 누룩이라 풍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황금주 같은 고급술은 반드시 이 곳의 누룩으로 빚는다. 근래에 들어 북유럽 산타클로스의 나라 핀란드 식당들이 한국누룩과 한국쌀을 수입해서 막걸리를 제조한다. 이 나라 출신의 따루 살미넨씨가 다리를 놓아 기술을 전수한 것이다. 그녀는 한국어에 능통하고, 작가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막걸리 전도사`다. 발효식품이 발달한 나라는 음식선진국이다. 한국식품이 세계를 지배할 날도 멀지 않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10

여풍(女風)당당

2차대전 당시 독일은 여성인력을 산업체와 전장에서 요긴하게 써먹었다. 전쟁이 끝나자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여자들은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 쫓아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도 비슷하다. 최근 어느 여성회관 준공식에서 “여자라면 최소한 아이 셋은 낳아야 하고, 아이 없는 여자는 결함투성이고, 엄마가 못 되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보수 이슬람주의자다.세계적으로 여성의 약진이 눈부시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날이 갈수록 당당하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거대 중국과 맞서 독립을 외친다. 미국 일본 한국 등은 그동안 대만을 `무관심 영역`에 두었으나 지금은 우호관계로 돌아선다. 중국의 돌진과 기고만장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견제심리 때문이다. 페루에서는 일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여러 나라들의 대도시 시장선거에서 여성 후보들이 맹렬히 진군한다. 여성 대통령·총리에 이어 중요도시 시장 자리도 여성이 속속 점령한다.스페인 마드리드는 지난해 여성판사 출신 카르메나(72)를 시장으로 뽑았고, 스페인의 관광도시 바르셀로나시장도 아다 콜라우(42) 여사고, 2014년에는 프랑스 파리 시장에 안 이달고(57)가 선출됐고, 독일 쾰른시도 레커(59) 여성시장이 이끌고 있다. 올해의 지방선거에서도 여성이 두각을 나타낸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시장에는 라지(37) 후보가 유력하고,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시장도 언론인 출신 피레아(43)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정지은(26) 육군 중위는 철녀로 통한다. 지난해에는 `최정예 전투원 자격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더니, 올해는 한·미 연합사단이 시행하는 `우수보병 휘장` 자격시험에 붙었다. 체력검정, 사격, 주·야간 독도법, 20㎞를 3시간내에 완주하는 급속행군을 남자와 똑같이 수행한다. 합격률은 13~15%에 불과하다. 정 중위는 유일한 여성합격자. 철녀들의 진군은 `인공지능`보다 무섭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9

이중섭의 가족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된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그는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 시절 미술을 접했다. 미국 예일대 미술학과 출신의 임용린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930년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았고, 일본의 전위그룹인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던 중 1943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이자 귀국하고, 1945년 문화학원 후배인 야마모토 미사코와 결혼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자유로운 영혼`들이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당시 평안도에는 구상 시인 등이 `응시`라는 동인지를 펴냈는데, 이중섭은 표지화를 그렸다. `응시`에 실린 작품들은 “문학예술은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란 공산당의 강령에 전혀 부합되지 않았고, 그래서 일부 동인들이 문학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는데, 이중섭은 시인 구상과 동행했다.그들은 1950년 6·25를 만나 피난살이를 하게 되고, 칠곡군 왜관읍 베네딕토 수도원 근처에 잠시 머물다가 전선이 남하하자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가게된다.생활수단이 없던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그는 외로움과 절망감과 생활고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행려병자 수용소에서 40세의 나이로 숨져간다.빈센트 반 고흐를 세상에 알린 것은 제수가 쓴 `고흐 평전`이었고, 이중섭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구상 시인이 쓴 `이중섭 평전`이었다. 이 평전이 없었다면 두 천재화가는 영영 묻혀버린 무명화가가 됐을 지 모른다.세상이 이중섭에 열광하는 것은 `가족`이 주제이기 때문이다. 소수레에 가족을 싣고 자신은 소고삐를 잡은 `길떠나는 가족`, 싸우는 닭이 아니라 입맞춤하는 암탉과 수탉을 그린 `부부`, 닭 한쌍이 만나는 `환희`, `닭과 가족`, `복숭아밭에서 노는 가족`, `아버지와 장난치는 두 아들`,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시인 구상의 가족`, 일본 식구들에게 보낸 수많은 그림편지들, 이중섭은 `가족의 소중함`을 피 토하듯 외치다가 한 줌의 재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8

칠곡 할매 시인들

조선시대에는 “여자가 시를 지으면 팔자가 드세다”해서 꺼렸다. 황진이, 이매창, 이옥봉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난설헌도 시를 짓는다는 이유로 혼인줄이 막힐 뻔하다가 `시를 버리겠다는 조건`으로 시집을 갔지만, 타고난 시재(詩才)를 억누를 수는 없는 일. 그녀는 몰래 시를 짓다가 발각돼서 엄청 구박을 당했다. 이옥봉도 소박맞고 친정에서도 쫓겨나자 “이 넓은 천지간에/ 이 작은 몸 하나 의탁할 곳 없으니/고기밥이나 되련다”란 절명시를 남기고 연못에 몸을 던졌다.지금은 참 좋은 세월이다. 칠곡군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시인으로 만든다. 지난해에는 `시가 뭐고`란 시집을 펴내 6천500부나 팔렸다. 84명의 할머니들이 쓴 시 89편을 묶은 시집인데 당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올 연말께 또 한 권이 나올 예정이다. 포도농사를 짓는 도필선 할매는 “포도알에서 ㅇ이 보이고, 이파리에서 ㅍ이 보인다”라 썼다. 조선시대 5살짜리가 오리를 보고 “물위에 누가 새乙자를 써두었나”라 읊었던 일이 연상된다. 강금연 할매는 “내 아들 나가 시끈 물도 안 내삐릴라 캐다/얼마나 좋아는데….”라 읊었다. 맞춤법 틀린 것이 무슨 상관, “아들 낳았다고 너무 좋아서 아이 씻은 물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그 절창이 가슴을 울린다.박후불 할매는 “마을회관 한글 공부/내 눈을 뜨게 하고/흐리게 보였던 간판이/환하게 보인다”라 썼다. 글을 모를때는 본척만척 지나갔던 간판이 이제 자세히 보인다는 뜻이니, “나는 이제 까막눈이 아니다”란 자부심이 행간에 묻어 있다. 남편을 일찍 보낸 곽두조 할머니는 “내 혼자 당신 새끼 다 키우고/내 혼자 눈물 반 콧물 반 그래 살았다/4남매 데리고/ 내 할 일 다 하고/ 인자는 나는 백만장자구나…” 갖은 풍상 골몰 다 잊고 이제 백만장자라는 긍정적 세계관, “곧 갈 것이니 쪼매만 기다리소” 죽음조차 `저승 남편 만나는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생사 경계 없는 해탈`이 눈물겹다.긴 세월 쌓아온 깨달음과 진심이 만나면 `감동`이 탄생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7

압상트 모함

19세기 후반 50년 간 프랑스 예술가들은 압상트에 절어 살았다. 이 녹색의 술은 `예술의 여신`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약쑥과 박하 등을 넣어 발효시킨 40도 안팎의 증류주에 허브를 넣고 우려냈다. 당시 프랑스는 포도 흉년을 만났다. 진드기가 포도밭을 초토화시켰으니, 포도주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가난한 예술인들은 향기롭고 값이 싼 술을 찾았다. 또 당시 아프리카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최대 강적은 모기와 말라리아였고, 병사들은 압상트에 취해 두려움을 이겼다. 전후 병사들은 `전장의 추억`을 되새기며 압상트를 찾았다. 유럽의 예술인들은 `사상의 자유`를 찾아 파리로 몰려왔고, 압상트는 대량생산됐다. 그러나 종교계와 지식인들은 “이러다가 프랑스 사람 전부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겠다”며 `압상트 금지운동`에 돌입했다. 또 포도밭 진드기를 퇴치한 와인 양조장들이 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압상트에는 환각제가 들어 있다” “중독성은 담배보다 강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압상트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드`들이 외치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마침내 `압상트 제조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이 1888년 12월 23일이다. 그 날은 동생 테오의 편지가 도착한 날이다. “제가 결혼하게 됐습니다”란 내용이었다. “아하, 이제 나를 도와줄 수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고흐는 절망감에 빠져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귀를 자르는 고통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붕대로 귀를 싸맨 자화상을 그렸고, `양파가 있는 정물화`를 그렸다. 정물화에는 테오에게서 온 편지와 술병이 등장한다.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기 가슴을 쏘아 종일 피를 흘리다가 사망한 그 원인에 대해 종교인·학자들은 “압상트가 그의 정신을 환각상태에 몰아넣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후에 과학자들이 술을 분석해봤더니 환각성분은 전혀 없었다. 인기 있는 술도 이렇게 모함을 당하는데, `정치꾼들의 모함`이야 말해 뭣하겠는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3

호박구덩이 입

2012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보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박근혜, 그년이 서슬이 퍼렇게 돼가지고….” 이때 이정현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에게 말했다. “미친개에 물렸다고 그 미친개를 따라가서 물 수는 없습니다” 미친개 짖는 소리를 아예 무시하시라는 조언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난의 소리가 터져나오자, 이종걸은 이렇게 변명했다.`그년`이란 말은`그녀는`의 준말이니 상소리가 아니라는 것. 그러자 “당신 어머니를 보고 그년이라 해도 욕이 아니겠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같잖은 변명을 하는 그 입이 더 더럽다” 비난이 더 쏟아졌다.이명박정권의 장·차관들을 두고`이명박 졸개들`이란 막말을 해대고, 국회법 개정을 박대통령이 비판하자 “너무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했다. 입만 열면 시정잡배 같은 소리가 튀어나오니,“상소리가 배냇병 수준이다” “막말조절장애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입원 가료가 필요하다” “험담 악담은 정청래와 막상막하다”란 비판이 나오고,“호박구덩이 입을 가진 인간”이라 했다. 호박을 심을 곳에는 구덩이를 파고 겨울부터 봄까지 온갖 음식찌꺼기를 쏟아붓는다. 그래서 입이 험한 사람을 보고 `호박구덩이 입`이라 한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대표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을 때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얼굴도 잘 생기셨는데, 그때 왜 그년이라 하셨어요” 하자,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황하면서 “아이구, 죄송합니다” 했다.그후에도 그의 험구는 개선되지 않았다. 반기문 총장이 야당으로 가지 않고 새누리당에 기울자 그는 “대통령이 될지 안 될 지 모르지만, 된다면, 국민이 시궁창에 버리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당신이야 말로 시궁창에 버릴 이름을 가졌다”“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가… 할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한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사촌 동생이…. 정말 배냇병 수준이다”란 비난이 쏟아졌다.그의 선거구는 경기도 안양이고, 정청래는 서울 마포구. 선거구민과 조상을 욕보일 악담이 병적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2

서애를 찾은 반기문

역대 외교·안보분야 인물이라면 신라 김춘추, 고려 서희, 조선 유성룡, 그리고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을 든다. 김춘추는 당의 힘을 이용해 삼한일통을 이뤄냈고, 서희는 거란족의 위협을 외교력으로 방어하며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을 몰아내 강동6주를 얻어냈고, 서애(西厓) 유성룡은 임진왜란때 영의정 겸 국군총사령관으로서 내치(內治)와 외치(外治)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이 인물들은 한결같이 `명석한 국제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정세에 밝은 인물`들이 역사를 만들었다.서애는 퇴계의 `성학십도` 정신을 내치에 사용했고,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외치에 활용했다. 이순신과 권율의 능력을 미리 알아보고 파격적인 승진을 시켰는데, 정읍 현감(지금의 면장)이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형조좌랑이던 권율을 의주 목사로 올렸다. 그 덕분에 한산대첩과 행주대첩을 이룰 수 있었다. 서애는 16세기 말의 동남아 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고, 일본의 야심을 꿰뚫고 있었다. 서애는 임진왜란때 두 개의 적과 싸워야 했다. 암군(暗君) 선조는 내부의 적이었고, 왜군은 외부의 적이었다.시기 질투심 많은 선조의 협량(狹量)을 알아챈 왜군은 끝없이 밀정을 보내 선조를 조정했고, 왕은 첩자들의 농간에 휘둘렸다. 임금의 진군명령을 거역한 죄로 이순신이 삭탈관직 당해 권율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했고, “전쟁 끝나면 이순신을 반드시 죽이겠다” 선조가 이를 갈았으나, 원균의 무모한 공격으로 수군이 거의 전멸되다 시피한 것도 왜군의 `이순신 제거작전`이 성공한 경우지만, 서애는 이순신의 목숨을 살려 재기용함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전후 관직에서 물러난 서애는 선조의 부름을 사양하고 `징비록` 집필에 몰두했다.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 입구에 주목(朱木)을 기념식수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나무의 제왕`인데, 엘리자베스 2세가 심은 구상나무와 나란히 서 있다. 반 총장이 서애의 발자취를 찾은 뜻을 알만하다. 북핵문제와 통일문제를 풀 열쇠가 되기를…./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6-01

더러운 권력의 세계

도널드 트럼프가 막말을 쏟아내고 고립주의로 나갈때 공화당원들은 “저것 틀렸다”했고, 우방들도 “저 사람 대통령 됐다가는 큰일”이라 했다. 그러나 그의 막말이 이상하게 먹혀들어갔다. 미국 국민들의 귀에는 그의 말이 복음처럼 들렸고, 그가 공화당 후보로 낙점될 기미를 보이자, 비로소 민심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트럼프를 비난하던 공화당의 중요 인사들이 속속 말을 바꾸기 시작하더니, 그가 후보자로 굳어지자 비난의 소리는 `주례사`나 `찬송가`로 바뀌었다. 지난해 7월 트럼프는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을 향해 “바보같은 그레이엄!”이라 비난하며 그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해 버렸다. 그레이엄은 이에 맞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준비가 제일 안 된 인간!”이라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최근 “트럼프는 뛰어난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하고 “분명 한 방을 날릴 인물”이라 했다. “트럼프는 반드시 저지해야 할 미친 사람”이라 비난했던 보비 진달 전 루이지애나주 지사는 “힐러리와 트럼프라는 두 가지 나쁜 선택 중 트럼프가 좀 덜 나쁜 쪽임은 분명하다” 했다. “트럼프는 보수진영의 암적 존재”라 했던 릭 페리 전 택사스주 지사는 “나는 그의 러닝메이트가 될 수도 있다” 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메시아 같은 존재였다. 여당과 야당 모두 “그는 우리편이다. 우리 당에 올 것이다”며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이하려 했다. “그는 대선후보로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 “정치를 한다면 우리와 하자” 열렬한 구애를 했다.그러나 반총장이 새누리당으로 갈 조짐이 보이자 말은 뒤집어졌다. 짝사랑이 원망으로 바뀐 것이다. “외교 관료인 그는 정치경험이 없다” “반짝 스타일 뿐이다” “검증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솝우화 `썩은 포도`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잘 익은 포도가 주룽주룽 달려 있는데, 너무 높아서 따먹을 수가 없자, 여우는 “저 포도는 썩었어”하고 돌아섰다. 권력의 세계는 멀쩡한 사람을 추물로 만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31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란 말은 `햇볕에 그을려 거무튀튀한 사람`이란 뜻이고, 아프리카의 최동단에 있으며, 매우 로맨틱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솔로몬과 시바`는 다윗왕이 무인 기질의 장남 아도니아를 제치고 지혜로운 차남 솔로몬에 왕위를 넘겨주자, 장남이 시바의 미모를 이용, 솔로몬을 유혹해 실각을 시도한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은 다르다. 어느날 솔로몬왕이 시바여왕에게 협박편지를 쓴다. “듣자하니, 당신은 태양신을 숭배한다는데, 잘못이오. 이제 여호와를 믿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킬 것이오” 시바여왕은 답장을 쓴다. “전쟁은 좋은 방법이 아니오. 듣자하니, 대왕께서는 매우 지혜롭다 하니, 지혜를 겨루어 이기는 쪽이 마음대로 하도록 합시다”이렇게 돼서 시바왕국의 여왕이 먼길을 걸어 지중해 동쪽 이스라엘까지 간다. 몇 달을 두고 지혜를 겨루는 동안 둘은 서로 존경하게 되고 애정이 싹튼다.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는 `솔로몬의 재판`, 다윗왕의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글을 새겨 자만심을 경계하게 한 솔로몬이 지혜겨루기에 질 리 없고, 이미 둘 사이에 깊은 정분이 났으니 경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결국 솔로몬왕이 이겨 마음대로 하게 됐고, 둘은 결혼을 해서 아들 메넬리크1세를 낳았고, 솔로몬의 DNA를 물려받은 그는 에티오피아의 왕이 된다.아프리카에서 유럽 제국들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는 에티오피아 뿐이다. 그래서 로마의 유리우스달력을 본받지 않고 1년이 13개월인 독특한 달력을 사용한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에티오피아는 고유언어와 영어를 쓴다. 이스라엘을 본받아 그리스도교를 주로 믿고 일부 무슬림도 있다. 고원지대라 최고의 커피가 생산되는데, 이것이 산업의 전부일 정도로 나라가 가난하다.에티오피아에는 아프리카연합(AU) 본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G7회의에 빠지면서 굳이 AU 특별연설을 택한 것은 그만큼 이 대륙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친한(親韓)의 뿌리가 심어졌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30

통제와 자유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약소국 외교`는 지칠 줄을 모른다. `미국의 턱 밑을 지키는 사마귀` 같던 쿠바를 구워삶아 친구로 만들더니, 중남미 제3세계와의 광폭외교를 이어간다. 또 아시아권으로 날아와 최근에는 베트남과 `쌀국수 정상회담`을 벌였다. 베트남이 어떤 나라인가. 처음에는 중국의 속국이었고, 후에는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월남전`때는 미국 프랑스와 맞서 싸워 승전했던`원수 관계`였지만, 이제 묵은 원한을 씻고 친구가 되려는 것이다.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매우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큰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그리고 “적대관계의 국가에는 미국의 첨단무기를 팔지 않는다”란 미국 국내법 적용 대상에서 베트남을 빼기로 했다. 작은 나라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는 14개국이나 된다. 그 나라들이 대부분 작은 나라들이고, 티베트는 이미 `서북공정`에 의해 정복된 신세. 작은 나라들은 중국이 무서워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도 못한다.사회주의 1당 독재국가는 좋지 않은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사사건건 국민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린다. 백성은 무지하기 때문에 일일이 가르치고 지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18세기 전제군주 적 생각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통제·지도습성`은 제 나라 국민뿐 아니고 이웃 나라에까지 뻗힌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대만을 수중에 넣은 `92공식(共識·합의)`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한일합방`과 같다. 그리고 중국은 우리나라의 국방문제에도 간섭하려든다. SAAD 한반도 배치를 극력 반대한다.`자유중국(대만)` 국민이 독립을 염원하며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을 뽑자 “교류를 중단할 수 있다”고 협박한다. 오바마의 “작은 나라 괴롭히지 말라”란 발언도 이를 겨냥한 것이다.중국은 `통제악습`으로 친구를 잃어가는데, 오바마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자유`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세상은 지금 `우방 더 만들기 경쟁`을 벌이는 중인데, 북한은 핵무기때문에 친구를 자꾸 잃어간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7

정치로봇 시대

`로스`라는 이름의 `AI변호사`가 뉴욕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 변호사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이제 용이하게 법률지원을 받게 됐다. 변호사들은 전체 시간의 30% 가량을 자료조사에 들이는데 이 일을 로스는 순식간에 뚝딱 해버린다. 로스는 주로 파산 관련 판례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 하는데, 로봇은 초 당 10억장의 법률문서를 분석해 최적의 답변을 도출해내고, 새로운 판례와 법률을 계속 학습하기 때문에 갈수록 똑똑해진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사 대상 강연에서 “4차 산업혁명이 오면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이 법조인이다. 그때를 대비해 사법부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으로 진화해야 한다”했다. 국내에서도 아이리스(i-Lis)가 개발돼 있어서 가난한 서민들도 법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개발자는 “법적 윤리적 문제만 해결되면 5~10년 사이에 AI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하고 로봇재판장이 판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했다. 법조뿐 아니라 의학·언론분야에서도 이미 로봇의사와 로봇기자가 등장했다.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인공지능시대에는 그 새로 생긴 직업까지 로봇이 차지해버리는 것이 문제다. `사람이 할 일이 사라지는 시대`에 사람은 대체 뭘 하면서 소일하나? 무직자만 득실거리는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사나? 무직자들은 무슨 돈으로 먹고 사나? 이 문제를 고민하던 전문가들이 `기본소득`이란 대안을 내놓았다. 일자리가 없어도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한 월급을 주자는 것이다.사람은 경마 같은 도박게임을 즐기면 되겠지만, 그것도 뜻대로 안 된다. `UNU`라는 경마AI가 1등부터 4등까지 다 맞혀버리니, 경마사업도 곧 사라질 운명이다. 이세돌을 연구한 AI가 4승1패를 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게임`을 즐기는 여유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로봇이 국회의원을 하는 세상이 된다면 그것 하나는 쾌재를 올릴 일이다. 정치로봇은 적어도 발목은 잡지 않을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6

천생연분론

일본에서는 한때 `젖은 낙엽`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은퇴한 남편이 `비 내리는 날 길바닥의 낙엽` 처럼 마누라한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다. 오갈데 없는 남편이 마누라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는데, 한국에서도 “남편이란 요강 같은 존재”란 말이 있었다. 보기는 싫은데 필요하기는 하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은퇴 후에는 “집에 두면 걱정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덩어리, 혼자 두면 사고뭉치”란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일본에서는 “남편 은퇴하는 날이 마누라가 이혼을 생각하는 날”이라 했다. 일본법에는 이혼하면 재산의 절반을 배우자가 갖게 돼 있기 때문에 “퇴직금 반으로 나눠 독립하자”는 것.일본에서는 졸혼(卒婚·소츠콘)이란 풍속이 새로 생겼다. 은퇴한 남편은 귀농하겠다 하고 아내는 도시에 직업을 갖고 있으니 “그렇다면 결혼생활을 졸업하고 각자 헤어져 살다가 한달에 한번꼴로 만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혼도 아니고 별거와도 다르다. 정(情)을 두고 몸만 가니 잠시 눈물이 날 수도 있지만 결혼생활이라는 `제도`에 묶이지 않아서 홀가분하다. 2004년 스기야마 유미코씨가 `소츠콘을 권함`이란 책을 냈고, 2013년 한 유명 개그맨이 “노년에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졸혼선언을 한 후 확산됐다.과거 한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란 말이 주례사의 단골메뉴였지만 지금 그런 소리하는 주례는 없다. 자유롭게 바람 피우고 싶어서 `성격상의 이유`로 이혼하는 연예인·재벌들은 옛날부터 많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법원도 어지간하면 이혼을 허락했다. “결혼을 해보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아보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란 말도 있지만 이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천생연분론`과 결혼을 결합시킨 동양의 지혜는 참 대단하다.한 여론조사 기관이 3년간의 자료를 모아 내놓은 결론이 “가장 믿지 못할 사람이 남편”이었다. 의처증·의부증에 걸리면 도리 없지만 `불신 가정`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졸혼이 낫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5

자유의 맛

대만 원주민 중심의 `민진당`과 중국대륙에서 넘어온 `국민당`이 번갈아 대만을 다스려 왔다. 민진당의 천수이벤이 총통을 할 때는 너무 `대만 독립`을 강조하다가 역풍을 맞았고,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때는 너무 `친중국`으로 기울다가 국민의 반감을 샀다.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이 최근 총통 취임식을 가졌다. 대만 총통은 `하나의 중국`을 취임사에 반드시 넣었다.`두 국가`란 말대신 양안(兩岸)이라 불렀다. 1992년 “나라 이름은 두 가지로 부르되 국가는 하나다”란 이른바 `1국 양 체제`를 선언한 이래 대만은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 후`대한제국`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고종이 외국어에 능통한 세사람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냈지만 “조선은 나라가 아니므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며 쫓겨났다. 대만이 지금 그런 신세다.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국가들은 대만과의 외교를 끊는다. 한국과 아프리카 몇 나라들이 그렇다. 중국시장이 대만시장보다 낫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당 통제 사회주의체제에 살던 사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 살 수 있지만, `자유의 맛`을 본 국민은 결코 독재체제에서 살지 못 한다. 영국 치하에 살던 홍콩은 끝없이 `독립`을 요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대만국민들은 중국의 사회주의 통제체제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총통선거에서 독립지향의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蔡총통 취임식때 `하나의 중국`이란 말은 입밖에도 내지 않았고, 대신 `아름다운 섬(美麗島)`이라는 대만 고유의 민족가요를 애국가처럼 불렀다. 중국의 언론 단 하나도 대만총통 취임식 기사를 싣지 않았다.대만이 독립을 주장하면 중국은 `경제보복`으로 대응한다. 수출입도 줄이고 관광객도 줄인다. 그래서 지금 대만은`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외교전을 벌인다. 한국과 대만, 매우 닮은 국가운명이다. 작은 나라들 끼리 힘을 모아 큰 나라들에 맞서야 할 시대적 운명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4

정말 얼굴 두껍네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 쟁점 법안은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한 발목잡기 국회, 이념과 불신의 벽만 쌓은 국회,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란 게 실종됐던 국회, 막말논란으로 39건의 의원징계안이 제출됐지만 단 한 건도 의결하지 못한 부도덕 국회, `유종의 미`는커녕 유종의 추(醜)만 남긴 국회, 의리는 사라지고 분열과 배신만 남긴 국회, 특권 내려놓기는 없고 특권 더 갖기만 있었던 국회, “영구 없다! 국회 없다!”란 탄식만 남겼고, 국민의 염원을 철저히 거역했고, 일하면서 싸우는 국회가 아니라 놀면서 싸운 국회란 오명을 남기면서 19대 국회가 막을 내렸다.“일에는 배돌이, 먹는데는 묵돌이”란 경상도 속담이 있다. 할 일은 배배 돌면서 하지 않고 먹는데는 쇠파리처럼 달려드는 저질 인간을 험담하는 말이다.국회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속담이다. 지난 19일 19대 마지막 국회가 열렸는데, 지각생이 너무 많아 개회시간을 늦춰야 했고, 본회의 표결때 의원 다수가 자리를 비웠고, 회의 끝나기도 전에 한정식집에 모여 술을 마셨고, `19대 국회의원 초청 만찬`에 참석해야 한다면서 일찍 자리를 뜬 야당의원도 많았고, 경제를 살릴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안`도 제출된지 46개월만에 자동 폐기되는 등 1만188건이 휴지통에 던져졌다.배배 돌면서 일은 하지 않고 `상시 청문회법`이라는 특권 하나를 더 먹은 19대국회였다. 복잡한 절차 없이 상임위가 행정부 공무원과 기업인들을 불러 족칠 수 있는 법이다. 국정감사·국정조사·인사청문회·특검 등 국회의 권세놀음에 상시청문회법이라는 권세를 더 챙겼다. 이득되는 일에는 여야가 없어서 상당수 여당 의원도 찬성해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평소에도 행정부와 기업은 국회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였는데, 이제는 `호랑이 앞의 개`가 됐다. 두 야당은 양손에 떡을 쥐고 희색이 만면하다. 여당은 표정관리를 한다. 미국도 상시청문회제도가 있지만, 목적과 범위를 엄격히 명문화했다. 그런데 한국 국회의 청문회가 어떠했던가. 참 낯 두껍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3

작품과 제품

올더스 헉슬리는 1894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2년 미국에서 사망한 천재였다. 그는 너무 재주가 많아 인생행로를 결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과학자?, 문명비평가?, 작가?, 결국 시인 T·S 엘리엇의 “자네는 소설가 재능이 출중하네”란 충고를 따랐다. 그는 소설외에도 다른 분야의 저서도 많이 남겨 문명(文名)이 뜨르르 했으나 `죽음의 복`은 지지리도 없었다. 하필이면 케네디 대통령이 죽는 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초상화`란 단편소설을 썼는데, 그의 소설가적 재능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한 사기꾼 화상(畵商)이 가난한 화가에게 17세기 베네치아 귀족 부인의 초상화를 모작(模作)하게 하고 25파운드를 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유대인 장사꾼에게 850 파운드에 판다. 그는 초상화에 스토리를 입히는 재주를 가졌다. 그림속 인물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값을 올리며 부자를 유혹한다. `소설 속에 소설이 있는` 2중구조를 가진 작품이지만, 그의 대표작 속에 들지는 못했다.`그림공장`이란 것이 있었다. 한국 그림꾼들이 공방에서 대량으로 그려서 일본에 보내면 일본 화상이 유명 화가의 사인만 써넣어서 파는 `제품 거래` 루트가 있었다. 한 탈북자가 북한 그림을 들여와서 솔솔한 재미를 봤는데, 그 후 무명 화가의 그림에 유명 화가의 서명을 써넣은 가짜가 넘어오는 바람에 더이상 팔리지 않았다. 골동품이나 미술의 세계에는 으레 위작과 가짜가 있기 마련이다. `예술작품`이 아니라 `공방제품`이다. 가난한 무명작가의 작품에 유명인의 서명만 넣어 비싸게 파는 일은 흔하다.강원도 속초에 사는 화가 A(61)씨는 “내 그림에 조영남씨가 조금 손을 본 후 자신의 서명을 넣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팔고 내게는 점당 10만원 정도 주었다. 지난 8년간 300여 점을 내가 그렸다”란 제보를 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쌍방의 공방이 앞으로 치열하게 벌어질 것인데, 유명 연예인이 그 유명세를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욕심이 늘 문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20

홍위병

모택동은 장개석을 몰아내고 대륙을 장악한 후 대약진운동을 벌이며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지만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그는 등소평에 정권을 맡기고 잠시 소나기를 피하고 있었다. 그 때 鄧은 毛의 공산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를 도입, 경제재건에 주력했다. 화가 난 毛는 10대 청소년들을 천안문 광장에 불러모았다. 당시만 해도 그는 구세주였고 특히 10대들에게는 신적 존재였다. 그때 천안문 광장에 모인 인원이 수백만 명이었다.毛는 그들에게 홍위병(紅衛兵)이란 이름을 붙여주며 “부르주아 반동사상을 박멸하고, 구린내 나는 지식인을 처단하고, 기존의 사상 문화 풍속 관습을 근본부터 뜯어고치자. 반항과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선동했다. 그렇게 세뇌된 홍위병 1천100만명이 전국 각처로 흩어져 분탕질을 치기 시작했다.모택동을 비난하는 어머니를 고발해서 맞아죽게 만든 자도 있고, 대학 강단에 선 교수를 끌어내려 린치를 가했다.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노학자들이 제자에게 뺨을 맞고 모욕감을 참을 수 없어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공자묘 등 문화유산을`기존의 문화`란 이유로 파괴했다.유소기는 맞아죽고, 등소평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부인은 종일 포탄을 운반했고, 맏아들은 홍위병이 3층에서 밀어떨어뜨리는 바람에 척추가 부러졌다. 홍위병의 광란이 무장투쟁으로까지 번지자 毛는 인민해방군에게 “홍위병을 진압하라” 부탁했고, 홍위병에게는“농촌에 가서 배우라”명령을 내려 해산시켰다. 이것이 이른바`문화대혁명`인데, 그 광란의 역사는 1966년부터 10년간이나 이어졌고, 중국인들은 “그 암흑의 역사는 중국의 발전을 30년 늦췄다”고 평가한다.올해는 `문혁`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홍위병에 가담했던 10대들은 지금 환갑을 훨씬 넘긴 노년이 되었고, 회한에 가슴을 뜯는다. “우리는 중국판 운동권이었다. 그때는 옳은 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미쳐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다.`미친 시대`의 산물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