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조선시대 조보(朝報)

우정구(객원논설위원)
등록일 2017-04-21 02:01 게재일 2017-04-21 19면
스크랩버튼
독일인이며 재력가였던 오스카 폰 포르켄백(1822-1898)이 유럽 등지에서 수집한 여러 형태의 신문을 모은 것이 세계 최초 신문박물관의 시발이 됐다고 한다. 독일의 아헨시는 그가 남긴 신문들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설립해 지금은 세계적 박물관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곳에는 각국의 언어로 된 4천여 개 신문 20여 만부가 소장돼 있다. 담뱃갑 크기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신문과 1.5m 크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신문, 손으로 쓴 신문 등 희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이러한 신문들은 발행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활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신문은 1660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발행된 `라이프 치거 자이퉁`을 손꼽는다. 최초의 신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신문의 개념과 요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기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공화정 시대에도 관보적 성격의 필사(筆寫)신문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도 중앙과 지방의 군신 간 소통의 수단으로 저보(邸報)라는 신문이 있었다.

17~18세기 들어오면서 우편제도가 발달되고 신문기업이 성장하면서 마침내 일간신문이 나오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근대 신문은 이렇게 탄생된다.

우리나라도 인쇄된 근대 신문이 발간되기 전부터 관보 성격의 필사신문이 조보(朝報)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 신문으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창간한 한성순보를 두고 말한다.

경북 영천에서 조선시대 조보가 발견됐다는 뉴스다. 영천의 어느 스님이 경매 사이트를 통해 입수했다고 한다. 1577년 11월에 발행된 5일치의 조보다. 만약에 신문의 성격으로 본다면 독일의 최초 신문보다 80년 앞선다. 공의전의 안부와 건강, 소가 전염병에 걸려 수 백마리가 죽었다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고 한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조보는 조정의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과의 소통 수단으로는 신문이 가장 적합했던 모양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