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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의 어려움

모택동이 죽자 등소평은 “공산주의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면서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 북한 김일성은 “난장이 똥자루 만한 것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공산주의를 망친다”며 등(鄧)의 생김새를 빗대 욕을 퍼부었다. 김정일은 평소 김정은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중국놈들 말 듣지 마라. 개혁 개방하고, 핵무기 포기해라, 꼬드긴다. 지도자 생활은 참 어렵다”황장엽씨와 함께 1997년 망명한 김덕홍씨가 최근 회고록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김일성은 늘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연막을 쳤지만 사실상 1955년에 원자 및 핵물리학 연구소를 설립, 핵개발에 착수했다”면서 김정일은 1987년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핵탄두를 탑재할 인공위성 개발을 명령했다고 증언했다. “위성만 개발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미국놈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죽기 살기로 해야할 일이다”라고 했다는 것.김일성이 “난장이 똥자루….”운운했던 `시장경제와 수정주의` 도입은 현재 북한의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경제와 핵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면 `등소평 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중국 단동(丹東)에 북·중 호시(互市)를 열었다. 북한 상인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관세 없는 자유무역을 시작했다는 것은 `장마당의 번성`과 함께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북한이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란 것이 생활필수품이나 미술품·공예품이 고작이지만 “얼음은 일단 녹기 시작하면 금방 다 녹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개혁 개방이란 처음 결단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시장경제 도입으로 재미 본 선배들이다.이병호 국정원장은 국감에서 “10월 현재 한국에 귀순한 북한 외교관 등이 20명이고, 상당한 엘리트도 있다”고 했다. `지도자 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면 `핵위성의 짐`을 내려놓으면 될 것인데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가야할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3

친구도, 적도 없는…

19세기 중엽 청나라와 영국은 교역을 시작했다. 청은 영국에 차와 목화를 팔고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아 무역균형을 유지했다. 중국이 마약중독에 빠져들자 청은 단속을 강화하고 영국 마약상을 추방하니 영국은 우수한 무기로 난징(南京)을 점령하고 `난징조약`을 체결, 무역항을 5곳으로 늘렸다. 이것이 1839년부터 1842년까지의 제1차 아편전쟁이다. 그후 중국의 개항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영국은 다시 프랑스와 함께 청을 공격했고 청진을 공략하면서 `아편무역 합법화와 기독교 공인`을 조건으로 `청진조약`을 체결했지만 후속조치가 미진하자 다시 전쟁을 일으켜 `베이징조약`을 맺었다.이것이 1856년에서 1860년까지 이어진 제2차 아편전쟁이다. 이 두 차례 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됐다.중국과 영국은 170년이나 적이었으나 국제정치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영국을 국빈방문했고 10년이 지난 올해 시진핑 주석이 다시 영국에 갔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친필초청장에 의해 이뤄진 우호관계이다. 2012년 캐머런 총리가 달라이라마를 초청했다가 잠시 영·중관계가 냉각됐으나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영국이 제일 먼저 가입해서 갚았다.중국이 영국에 풀어놓은 선물보따리는 120조원이나 된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고속철도 건설사업 등 150가지의 경제협력 합의서를 체결하게 된다. 중국도 아무런 정치적 목적 없이 돈봇따리를 풀지 않는다. 영국을 이용해 미국을 견재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의도가 숨어 있다. 영국은 시 주석에 `최고의 예우`를 했다.보통 정상 방문에는 21발의 예포를 쏘지만, 시 주석에게는 무려 103발이나 쐈다. `여왕전용 마차`를 타고 여왕 주최 만찬을 받았으며 캐머런 총리는 자신의 별장에 모셨다.175년 전 아편전쟁의 `빚`을 갚고 G2 중국의 투자를 얻어내려는 영국에 대해 `아첨외교`라 비하하는 소리도 있지만 국제정치란 본래 그런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2

역사전쟁

단국대 사학과 김원모(81) 명예교수가 `자유꽃이 피리라`를 펴냈다. 춘원 이광수 연구서이다. 춘원은 `민족개조론`에서 “한민족은 민족성을 바꿔서라도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938년 `사상전향서`를 일본법원에 제출하면서 친일파가 됐다. 그러나 김 명예교수는 “춘원을 친일파로 모는 것은 `모략사관`이다”라며 그 근거를 이 책에 담았다.1944년 `청년정신대 사건`이 발각됐다. 이 비밀조직은 청년 혁명 결사로 “결정적인 순간에 거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그 지휘자가 춘원이었다. 그가 사상전향서를 낸 것은 `위장`이었고, 사실상 `정신대 획책안`을 썼으며, 조직내에서도 일본식 이름 `가야마 미쓰로`를 사용했다. 일제의 감시와 의심을 피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는 말이다.한일합방후 일제가 처음 한 일이 `조선사 왜곡`인데, 그 편찬위원회에 최남선이 들어갔다. 만해 한용운 등은 종로 한복판에서 `육당 장례식`을 거행했다. “조선 민족을 죽이는 역사를 만드는 일에 최남선이 들어갔으니,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며 “애고 애고” 곡을 하며 위패 실은 상여(喪輿)를 메고 행진했다. 그러나 육당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조선사 편찬위원회가 무슨 짓을 할지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라도 나가서 비록 다 막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쾌히 욕을 먹을 것이네.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를 잡겠는가” `위장 친일파`가 이렇게 많았다.지금 `역사전쟁`이 치열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 한국 국사학자 90%가 좌파로 전환돼 부정적 사관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다”고 했고, 새정련 문재인 대표는 “두 분(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선대가 친일, 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 했다.`청년실업 7포시대`에 역사전쟁이나 하며 세월을 보낸다. 정치인들은 당장 화급한 과제를 미뤄두고 `싸움닭 기질`만 과시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1

황성 옛터

경주에는 신라 천년 왕궁터 월성(반월성)이 있고, 개성에는 고려 500년 왕궁터 만월대가 있다. 왕이 항상 거주하는 정궁(正宮)이 있고, 유사시에 왕이 잠시 이주하는 행궁(行宮)이 있는데, 월성과 만월대는 `정궁`이고, 건축기법도 같다. 흙과 돌로 높은 대(臺)를 쌓고 그 위에 덩그러니 전각을 지었다. 다만 월성은 남천 강가에 지었으나, 만월대는 산기슭에 지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고, 두 곳 다 `천성대`가 잘 보존돼 있다는 점도 같다. 왕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천문을 잘 관측해서 농사를 지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경주 월성에 관한 시조 중에는 그리 유명한 시가 없는데, 만월대에 관한 시조는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른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석양을 지나는 나그네 눈물겨워하노라” 포은의 스승 이색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어저브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두 `고려충신`의 시조는 많은 이들이 외울 정도로 유명하고, 영천 출신의 시인 왕평이 글을 짓고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주노라….”는 나라 잃은 지식인의 심회를 폐허에 빗대었다.만월대 발굴작업이 지난 8년간 이어졌는데, 남과 북의 고고학자들이 함께 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통일징검다리`구실을 한 것이다. 개성출신의 고유섭(1905~44) 선생은 `개성박물관장`도 지냈고 `경주박물관장`도 지낸 고고학자인데 그는 개성시절 만월대를 자세히 실측한 자료를 남겨 이번 발굴에 큰 도움이 됐다. 공교롭게도, 만월대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반월성 발굴작업도 진행되고 있으니 두 궁성은 아무래도 `깊은 인연`의 끈이 맺어져 있음이 분명하다.만월대에서 발굴된 유물 전시회와 학술토론회가 서울과 개성에서 열리고 있다. 비정치적 문화행사와 분단 이전의 역사는 남북을 이어주는 끈끈이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0

교사의 사상

`블루유니온`은 선동·좌편향 수업을 신고 받는 보수단체다. 최근 경악할 사례가 들어왔다. 한홍구(56) 성공회대 교수가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 현대사`란 제목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체포됐을 때 당시 수사본부장이던 김창룡이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정작 죽여도 될 사람 하나를 살려줬다. 박정희가 그때 죽어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죠. 우리 언니(박근혜)는 태어나기 전이라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자였는데 살려줬다”고 저주하고, “반민특위가 깨진 날, 이승만이 돌아와 폼 잡은 날, 그때부터 세월호 죽음의 항로가 시작된게 아닌가”라고 했다. 이 동영상을 서울 강남구의 한 고교 영어교사가 교실에서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다. 그것을 본 학생들의 머리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가 박혔을까. 제 나라 대통령들에 대한 저주를 학생들 뇌리에 심어주는 교사가 교단에 서 있다. 한홍구 교수는 미국 위싱톤대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 독립 투쟁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도서출판 일조각의 창업자인 한만년씨의 아들이고,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고려대 총장의 외손자다. 명문가·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생각 한 번 잘못하면 이런 인간이 돼버린다.`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6·25를 소재로 한 피카소의 작품이다. 프랑스 공산당이 반미(反美) 선동을 위해 당시 공산당원이던 피카소에게 부탁한 것이고, 피난민들을 줄세워 놓고 미군들이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좌파들이 만든 교과서에 이 그림이 들어갔고, 시험에 “이것이 무슨 사건인가”하고 묻는 문제를 출제했다.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우매한 사람은 실제로 해봐야 알고,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보고 배운다”고 했다. 좌파들이 역사교과서 국정을 사생결단 저지하는 것은 `유력한 투쟁무기`를 뺏기지 않으려는 악다구니다.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교사의 사상`이다. 마음대로 지껄이고 멋대로 시험문제를 내는 교사가 교단에 서 있는 한 우리 학생들은 안전하지 못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9

돈과 정의와 진실

UN의 모든 기구들은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유네스코 운영비도 미국이 3천여억 달러로 전체의 4분의 1을 내고, 일본이 그 절반 정도, 중국은 여섯 번째이고, 한국은 13위로 2천790여 억 달러를 낸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14일에 처음 유네스코 회원국이 됐지만, 열흘 뒤 6·25가 터졌다. 그러나 우리는 혜택을 입었다. 유네스코 본부건물 1층 로비에는 `초등학교 4학년 자연교과서` 한 권이 전시돼 있는데, “유네스코가 인쇄기계와 용지를 지원해주어 3천권을 찍을 수 있었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미국은 4년째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어서 총회에서의 투표권도 잃고,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란 소리를 듣는다. 2011년 10월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면서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내법에 “미국에 적대하는 국가가 가입된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은 금지된다”란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계와 언론계를 쥐락펴락하는 세력이 유대인이라 그런 법률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때문에 유네스코는 지금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 구조조정을 하는 중이다.중국이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기록유산에 등재하자, 치부가 노출된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협박한다. 비판은 국내 언론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책임 있는 정치가의 언동이 아니다. 졸렬하고, 난폭한 처사다” 마이니치는 “도를 넘었다. 반론방식에도 절도가 필요하다”고 했고, 한 교수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가 손상됐다. 치졸하고 품위를 잃었다”란 칼럼을 신문에 기고했다.일본의 치졸한 태도에 중국은 오히려 쾌재를 올린다. 묵직한 돈봇따리를 끼고 G2국이 된 중국은 UN에 영향력을 더 많이 행사할 기회를 잡게 됐다. 그리고 한국 등 신흥 `BRICKs` 국가들이 분담금을 올려 낼 기세다.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일본인의 잔인성`에 많은 나라들이 격분하면서, “돈으로 정의와 진실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6

동의학(東醫學)의 미래

중국 전설의 제왕 신농(神農)은 한의학의 조상이다. 그후 의성(醫聖) `편작`과 `화타`가 나오고 `신농본초경`과 `황제내경`같은 고전들이 저술된다. 큰 전쟁이 나면 많은 사체들이 생기고 그때 마다 의학이 발전해서 새로운 의서(醫書)가 발간되는데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조선조에는 `임진왜란과 한 천재의 만남`이 천하명저를 탄생시켰다. 광해군 시절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전쟁과 사체`가 허준의 해부학을 이뤘다.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 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을 찾아낸 85세의 할머니다.개똥쑥은 강력한 향내가 나는 야생초인데 “꺾어다가 집에 두면 모기가 덤비지 않는다”는 옛의서에서 힌트를 얻어 꾸준히 연구한 결과이다. 중국인들은 굴기(屈起)란 말을 잘 쓰는데 “개구리는 멀리 가기 위해 몸을 움추렸다가 뛴다”란 뜻이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받지도 못할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이번에 처음 한의학자를 골랐다. 중국인들은 “굴기를 상징하는 경사”라며 반긴다.`동의보감`의 유산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한의학 노벨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서양의학은 동양의학 폄훼에 바쁘다. 밥그릇싸움에 한의는 늘 밀린다. `천연물의학`이라는 한의학의 한 분야가 있는데 최근 감사원과 한 국회의원이`과잉투자`라며 딴지를 걸었다.`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기`를 잘 하는 공무원들이 이 분야 예산을 깎을 것이니 기초의학 연구는 동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 치료와 돈 벌이`만 생각하고 `연구`에는 관심이 없으니 `굴기`란 싹수조차 없고 그나마 생긴 것마저 서리를 맞는다.`기초의학 연구자 양성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희망펀드`도 조성하는데 그만한 투자를 못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전통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수천억원씩을 투자한다. `한의학 깎아내리기`는 결국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5

고종황제의 꿈

고종은 서양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1885년 9월 `한성전보총국`을 개설하고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신선(電信線)을 가설하고 1896년 왕실에 자석식 전화를 놓았다. 왕은 이를 `전화`라 부르지 않고 굳이 영어이름 `텔레폰`을 따서 덕률풍(德律風)이라 했다. 3밀사를 헤이그에 밀파한 일이 발각나 고종이 강제퇴위된 후 즉위한 순종은 매일 덕률풍으로 부왕에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1919년 고종이 독살되자 순종은 덕수궁 빈소와 홍릉 사이에 전화선을 가설, 상식(上食)때 마다 덕률풍에 대고 “애고 애고”곡(哭)을 했고, 능참봉은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1960년대에는 `백색전화`와 `청색전화`가 있었는데, 백색전화 5대면 30평짜리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있었고, 복덕방들은 `백색전화 취급`이라 써붙였다. 당시 공중전화가 유행이었는데, 100원 동전을 넣고 통화하다가 몇십원 남기고 끊으면 그 남은 돈을 전화통이 먹어버렸다. 이것을 낙전(錢)이라 했는데, 우리나라 통신산업발전의 밑천이 된 것이 바로 이 `낙전`이었다. 오늘날 스마트폰 시대에 생각하면 실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사진기술을 처음 도입해서 첫 어진(御眞)사진을 찍은 이도 고종이었다. 1884년 미국 사진사 노엘이 찍은 것으로 그 원본은 지금 보스턴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한국인 사진사가 찍은 최초의 고종 사진은 1905년 `왕실 사진사 김규진이 덕수궁에서 찍은 고종황제 어진`이다. 본래는 흑백사진이지만 황제 곤룡포의 색깔 황색을 옷에 입히고 익선관을 보라색으로 칠했다. 이 `천연색 사진`을 고종은 미국 사절단에 선물로 주었고, 사절단은 이를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최근 `국외소재문화재단`이 뉴어크박물관 소장품을 조사하다가 발견했다.선진문물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힘을 길러 망국의 한을 씻겠다는 의지를 가진고종의 모습은 `어리석은 왕`이란 평가 뒤에 가려져 있었다. 친일파와 국론분열과 일본의 교활한 침략근성을 고종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4

일본어 찌꺼기

일제가 한국을 식민통치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역사 뺏기`였고, 그 다음이 `언어뺏기`였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고대사 서적을 모조리 거두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고,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역사를 제 멋대로 썼다. 물론 조선인의 자존심·자부심·자긍심을 죽이는 방향이었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이 `조선언어 말살`인데,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가르쳤다. 1942년 한 일본인 교사가 초등학생이 쓴 일기를 보게 됐다. “국어(일본어) 한 마디를 말했다가 정태진 선생에게 야단맞았다”란 귀절이었다. 조선어 말살정책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을 무렵에 일어난 일이라 일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곧 수사가 시작됐고, 한글학자 수십명이 잡혀갔다. 그때 한글학회 회원들은 조선어사전 원고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원고의 행방을 대라”는 심문에 한글학자들은 굳게 입을 닫았고, 무참한 고문과 굶주림으로 여러 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원고는 후에 용산역 화물창고에서 발견됐고, 해방후 `조선어큰사전`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일제의 `언어교육과 조선어 말살정책`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지금도 곳곳에 일본어찌꺼기들이 남아 있고, 우리는 무심히 사용한다. 법률에서의 일본식 용어는 고질적 수준이고, 병영에서도 구보(驅步), 수입(手入), 잔반(殘飯), 나라시, 시마이 등이 통용되고 있다. 수산용어에는 유난히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다. 사시미, 스시, 마구로, 아나고, 세꼬시, 오도리, 사요리, 대하, 다시, 쓰키다시, 하모 등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많다. 일제가 수산자원 수탈에 광분했던 영향이다.스포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프로야구는 엄청 심하다. 그 날 경기의 성적표인 `기록지`는 일본식 한문 일색으로 돼 있다. 야구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탓인데, 용어는 아직 안방 차지를 하고 있다. 프로축구나 프로농구 등 다른 분야 기록지와 선수 이름 등을 대부분 한글로 적는데, 유독 프로야구만 왜색(倭色)이다. 일본어찌꺼기부터 벗겨내는 일이 극일의 길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3

노벨문학상의 변신

노벨문학상과 도박사들 사이의 숨바꼭질은 `전통적`이다. `알아맞히기 게임`은 늘 빗나갔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힌 도박사이트는 오직 영국의 래드브록스 하나 뿐이었다. `벨라루스`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나라도 아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기생하는 분쟁국가도 아니고, 해적이 날뛰거나 내란이 벌어지는 국가도 아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국가다. 동쪽에 러시아, 서쪽에 폴란드, 남쪽에 우크라이나가 있고, 폴란드, 러시아, 독일의 지배를 거쳐 소련의 속국이 됐다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됐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흰 피부를 가졌고, 흰 옷을 즐겨 입고 가옥의 벽도 하얗게 칠하는 족속이라 해서 `백러시아`라 불린다.이 나라의 67세 된 할머니 기자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가 아닌 언론인인 알렉시예비치인데, 소설을 쓴 것이 아니고, 전쟁에 내몰린 여성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정리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상을 받았다. 논픽션 다큐멘터리가 문학 취급을 받은 것이다. 영국 수상 처칠이 쓴 역사서 `제2차세계대전`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과 닮았다. 문장이 너무나 문학적이란 이유였다.`전쟁은 여자의… `는 여성 전쟁영웅을 만들지 않고, 다만 전쟁을 겪은 여자들의 고통과 고뇌만을 기록했다는 `결함` 때문에 출판사들은 “검열에 걸릴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고, 탈고 후 2년이나 묵혀 있다가 1983년 간신히 출간됐는데, 소련 연방이 해체돼 많은 주변국들이 독립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200만부 이상 팔리는 이변을 낳았다. 그녀는 러시아 통치하에 있을 때 체제비판적 책을 써서 재판을 받기도 했지만, 자유진영으로부터는 평화상 등 몇가지 상을 받았다. 한림원은 늘 저항적·비판적 작가를 주목한다.`상상력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상황`도 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처칠 이후 다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소재도 노벨문학상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2

국감장의 이변

국감장 `증인`들은 자식 뻘 의원들한테 훈계 듣고 호통당하며, 속으로야 더럽고 가소롭지만,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요, 납짝 엎드리는 것이 보통인 데, 이번에는 `반란`이 일어났다. 여당 의원들은 `증인 편`이 돼주는데, 이번 사태에서는 “저 사람 너무 한다”고 나무랄 정도다. 방송을 관리·감독하고 MBC 대주주인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 그는 사법시험 18회로, `부림사건`을 맡은 공안검사였으며, 2010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자격으로 `친북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했다. 좌파정권이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자 MB정권은 친북인명사전으로 맞선 것. 그 책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몇몇 야당 의원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한 야당 의원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방문진 이사장이 되셔서 MBC 신뢰도가 올라가겠는가”라는 힐난성 질문을 하자, 그는 “의원님들도 신뢰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맞대걸이를 한 것이 결정적이었고, 여당 의원들까지 “국회의원을 모독한 발언”으로 간주하고,`엄호사격`을 멈춰버렸다. 잘 나나 못 나나 `국민이 뽑은 의원`이 국정감사를 하는 자리인데, 참지 못 하고 속내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그리 슬기롭지 못했다.야당은 그를 고발했고, “메카시 광풍을 다시 보는 것같다” “나치시대의 괴벨스가 살아온 것같다”라 했고, “변형된 정신이상자”란 말까지 나왔으며,`방문진 이사장 해임결의안`제출과 함께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1950년 메카시 미 상원의원은 “국무부에 297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폭로했고, 그 후 4년간 205명이 해임됐다. 소련 암호를 해독한 결과 그 간첩명단은 사실이었다. 괴벨스는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유대인들을 학살했는데, 고 이사장을 괴벨스에 비유한 것은 터무니 없다. 그가 누굴 학살했나. 메카시 의원이 근거 없는 소리를 했나.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말라 했는데, 고 이사장의 `공산주의 발언`을 무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새정련이 상당히 아팠던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9

황당한 선무당들

미국 텍사스주의 한 초등학교 9학년(한국의 고교 1학년) 아흐메드 모하메드군이 과학지식을 발휘해서 시계를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학교에 가져갔는데 수업시간에 알람이 우는 바람에 들켜버렸다. 영어 교사는 시계를 보고 “폭탄같이 생겼다”면서 교장에게 보고했고, 교장은 곧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아이에게 수갑을 채워 유치장에 가두었고, 학교는 그에게 `위험물 교실 반입죄`로 정학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시계를 분해해보고 폭발물이 아님을 확인했지만 바로 풀어주지 않았다. 9·11테러 이후 이슬람계 미국인들은 `상추밭에 똥 눈 개`가 됐다. 모든 행동을 의심한다. 수단에서 이민온 모하메드의 아버지는 “과학재능을 발휘해서 좋은 물건을 만들었을 뿐인데, 이슬람 혐오증때문에 내 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억울해했다. 이 일이 신문에 보도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아흐메드야, 그 멋진 시계 백악관에 기증하지 않겠니”라는 `멋진 글`을 올렸다. 괜히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차별받는 유색인종의 통분을 한방에 날렸다.결혼식날 신부 대신 신부의 언니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대행`을 한 일이 인천에서 있었다. 결혼을 앞둔 처녀가 결혼자금을 마련하려고 보이스피싱에 들어가 `사기자금 인출·송금`을 도운 죄로 감옥에 가게 됐고 “그렇다고 결혼식을 안 할 수 없으니, 편법을 쓰자”고 양가가 합의한 것. 그러나 그 일이 무사할 수는 없었다. `축의금 수금`에는 차질이 없었으나 “사기 전과자와 살 수 없다”며 신랑은 혼인신고를 포기하고 파혼을 통고했다.사실상 `북한전문가`는 없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비밀인 폐쇄사회를 무슨 `자료와 근거`로 연구한다는 것인가.그런데도 대학들에 `북한학과`가 있다. 더 황당한 것은 `법전문 변호사`들이 TV에 나와 `남북문제 해설`을 한다. 위험한 망발이다. 남북관계는 극히 민감한 사안인데 `아무 실익 없이 북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내뱉는 바람에`파토내는`일이 없지 않았다. “선무당 생사람 잡는다”고 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8

꿩의 IQ

일본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傅義)`를 내세워 만주괴뢰국을 만들었고 1937년 12월 난징(南京)을 침공했다. 장개석 정부는 양면협공을 받는 처지였다. 모택동의 공산세력과 일본이 동시에 쳐들어오니 우왕좌왕 밀리기만 했다. 장 총통은 난징을 버렸고 일본군은 그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6주 동안 `세계역사상 가장 잔인한 살륙전`을 자행했으니 이것이 난징대학살사건이다. 난징에는 `살륙기념관`이 있다.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우르러 울부짖는 어머니상이 뜰에 커다랗게 서 있다. 전시실에는 참혹한 장면의 사진들과 조각 작품들이 있다. 목이 잘리는 순간의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 잘린 머리를 들고 웃고 있는 일본군, 갓난 아기를 공중에 던져올렸다가 떨어지는 곳에 총검을 세워 꿰 죽였고 총탄을 아끼려고 생매장했으며 기름을 끼얹어 태워죽였다.이 사진들은 당시 일본 언론들이 보도한 것들이다. 그 참혹한 장면을 `자랑스러운 전과(戰果)`로 보도한 것. 원자폭탄 두 개 맞고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내 자랑이 됐겠지만 오늘날 그것은 고스란히 `치욕의 증거`가 됐다. 중국은 이 자료들을 모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물론 일본은 갖은 교활한 수단을 써서 방해하겠지만 중국도 지금은 힘 없는 중국이 아니다.소녀들을 봉제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꼬여 성노예로 만든 것 같이 일제는“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속여 조선 청년들을 탄광에 데려갔고 돼지죽 같은 음식을 주며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 청년들은 속국의 포로였다. 굶주림과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다가 잡혀 죽도록 매를 맞았다.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죽었다. 일본 정부는 그 강제징용의 현장인 `군함도` 등 탄광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우리 정부도 그 참상들을 모아 등재신청을 준비중이다. 일본정부는 여전히 강제징용과 학대·학살을 부인한다. 꿩은 위기에 몰리면 머리를 덤불에 처박는다. 제 눈에 안 보이면 남도 못 보는 줄 아는 두뇌를 가졌다. 일본의 IQ도 꿩의 지능지수와 비슷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7

노인과 유기견

“아기는 엄마가 못 생겼다고 외면하지 않고, 개는 주인이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노자의 말이다. `아기와 개는 본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본성(本性)이란 `자연으로부터 받은 성품 그 자체`를 말한다. 편견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말하면서 노자는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했다. 미국의 한 방송작가는 “대체로, 개는 사람보다 훨씬 품성이 좋다”고 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치료견 `치로리`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300여명의 추모객이 고견(故犬)을 애도했다. 치로리는 어느 비오는 날 강아지들과 함께 버려졌다. 주인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한쪽 다리를 절고, 막대기만 보면 온몸을 떠는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려 있었다.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시키려는 순간 새 주인이 나타났고, 환자의 벗이 돼주는 치료견 훈련을 받게 됐다. `실눈을 뜨고 입꼬리를 치켜올리며`웃는 그 모습에 환자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었다. 웃음보다 좋은 보약은 없는데, 치로리는 그 `웃음보약`을 주었다. 애견의 발에 흙이 묻을까봐 줄곧 안고 다니고, 며칠 출타할 때 개를 맡기는`애견호텔`도 있다. 3천400만원짜리`개저택`도 있는데 TV, 에어콘, 스파, 러닝머신까지 갖추었다. 지난 8월 중국의 한 도시에서는 성대한 `반려견 장례행렬`이 시가지를 지나갔다.최고급 아우디 승용차 위에 `개 영정사진`을 달고,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 작곡한 장송곡을 울리며 장지를 향해 갔으며, 추모객들의 승용차가 길게 뒤를 따랐다. 치료견이 죽자 장례비로 1천200만원을 쓴 환자도 있었다.대구시수의사회는 유기견 50마리를 모아 독거노인 반려·치료견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버려진 개들을 안락사시키는 대신 치료·반려견으로 훈련시켜 독거노인들의 벗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유기견 사료값과 치료비로 연간 드는 비용 100만원은 수의사회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유기견 건강관리와 훈련은 회원들이 재능기부하기로 했다. 시민들이 성원하고 협력할 가치가 충분한 일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6

강의료와 `뇌물`

뇌물을 주는 방법은 지능적이다. 추적이 가능한 수표를 뇌물로 받는 사람은 없다. 일본 기업인들은 공무원들과`마작판`을 벌여 돈을 잃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연회 강사로 초빙해서 강의료·원고료·거마비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방법을 잘 쓴다. 그것은 합법적이어서 사법처리를 당할 염려가 없다. 새누리당 정수성(경북 경주)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전 관련 기관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강사료를 받고, 한수원 용역을 받는 하청업체로부터 수월찮은 강사료를 챙긴 임직원이 많았다.한수원에도 `윤리행동 강령 및 외부강의 지침`이란 것이 있는데, 임원은 시간당 30만원, 2급 이상은 23만원, 3급이하는 12만원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이것은 `벽에 붙여놓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60만원에서 90만원까지 받았다.이것이 `원피아`의 온상이다. `강사료 뇌물`로 맺어진 유착관계 때문에 위조·변조된 서류가 횡행하고, 비리에 눈을 감는다. 지난 5년간 징계를 받은 한수원 임직원만 90명이고, 금액도 31억여원이었다. 이러니 원자력발전소나 방폐장 건설 등이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다. 비리는 신뢰를 허물어뜨리는 병균이다.공무원이 외부 강의를 할때 받을 수 있는 강의료에도 기준이 있다. 장관은 시간당 40만원, 차관급은 30만원, 4급이상은 23만원이다. 그러나 4급 서기관 A씨는 강의료에 원고료까지 받고 여기에 거마비 5만원을 보태 185만원을 받았다. 이러니 월급은 `껌값`이고, 한 해에 61차례의 외부강의를 나가서 수억원의 강사료를 챙긴 고위공무원도 적지 않다. 강의를 들어서 전문지식과 교양을 쌓자는 강연회가 아니라 `뇌물`로 `검은고리`를 맺기 위함이다.국민권익위가 뇌물성 강의료에 제동을 걸고 나서고, 인사혁신처는 부적격 공무원을 퇴출시킬 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어서 비리가 자란 것은 아니다. 만들어놓은 장치를 제대로 실천을 하지 않아서 비리가 비대해진 것이다. 부디 이번만은 엄포가 아니기를 바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5

문화재의 자격

1962년에 완공된 `연구용 원자로 1호기`가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577호`에 올랐다. 건설·제작후 50년 이상된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가치와 활용가치를 심의해 문화재로 등록하는데 과학기술 연구시설이 등록된 것은 처음이다. 원자력연구원 안에 있는 이 시설은 미국 제너럴아트믹사 제품으로 본래는 열출력 100KW짜리였으나 우리 연구진이 250KW로 개선시켰다. 이 1호기는 95년까지 33년 간 국내 원자력 연구의 모태(母胎) 였는데, 그 해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연구로(하나로)가 완성되면서 `임무교대`를 했다.이 원자로1호기도 당시 `철거위기`에 몰렸었다. `쓸모 없는 늙은이 고려장` 감이었다. 그러나 `머리 있는` 과학계 원로 50여명이 “원자로 1호기는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과기부와 산업자원부, 그리고 소유주인 한국전력을 설득했다. “한국 원전의 조상(祖上)을 없애는 것은 역사적 유물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란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방사능에 오염된 내부를 교체한 후 내년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문화유산 하나가 더 생긴 것.철로와 역사(驛舍)들이 많이 `퇴역`하고 있다. 대구선 열차가 중단되면서 `아양철교`도 퇴물이 됐다. 아양철교는 1917년에 건설돼 2008년 폐선되기까지 90여년간 일을 했다. 2010년부터 동구청은 리모델링작업을 시작해 지난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재탄생시켰다. 전망대, 디지털박물관, 명상원, 휴게공간 등이 철교위에 새로 생긴 것이다. 백명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설계를 맡았고, (주)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사업비 53억원을 들여 완공한 후 동구청에 기부채납했다. 백교수는 올해 1월 독일에서 열린 세계디자인대회에 이 `아양 기찻길`을 `모범적 폐철교 재활용 사례`로 출품했다.101년의 찬연한 역사를 가진 구 포항역이 축소돼 `역사유적`이 아닌 `기념관`으로 추락할 전망이다. 문화재의 기본조건은 `그 자리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다. `모형`은 문화재가 아니다. 아, 옛 포항역의 가련함이여!/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2

미륵반가사유상

석가세존은 “내가 간 후 56억7천만년 후에 미륵이 세상에 와서 중생을 구할 것이다. 미륵은 `도솔천`에 살 것이고 `용화수`나무밑에서 성불한 후 내가 다 못 구제한 중생을 다 제도할 것이다. 미륵을 잘 믿고 수행하면 도솔천에서 만날 것이고, 미륵이 세상에 올때까지 지장이 대신해주기 바란다”라고 수기했다 한다. 그 미륵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불상이 바로`미륵반가사유상`이다.이 미륵신앙은 인도에서 중국 티베트 일본 한국 등에 전래됐고 한반도에는 3국시대에 도입됐는데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들어왔다. 미륵신앙은 서민층들에게 희망을 주는 `미래불`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때 `하늘에 해가 둘 뜬` 이변이 일어났는데, 월명사가 꽃을 뿌리면서 “꽃들아, 도솔천에 가 미륵불을 모셔라” 노래부르자 이변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화랑 김유신은 낭도들은 `용화낭도`라 불렀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주불이 미륵불이었다. 이 미륵신앙은 통일신라 이후 원효·원측 등 학승들에 의해 체계화됐다.7세기 백제 무왕과 선화왕비는 `미륵사`를 지어 `미륵3존불`을 모셨는데, 선화의 부왕인 신라 진평왕이 장인들을 보내 미륵사 건축을 도왔다. 백제는 미륵석불과 석가석불을 일본에 보내면서 아시아 전역에 미륵신앙이 퍼졌다. 이 미륵불은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내가 세상에 온 미륵”이라 하고 `미륵관심법`으로 남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내가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사교(邪敎) 사기꾼들이 엄청 설쳤다.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7개국에서 온 불상 2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예술성 뛰어난 미륵불이 국보 83호와 국보 78호이다. 78호는 다소 무디고 도식적인데 비해 83호 금동미륵불(경주박물관에서 잠시 전시됐던)은 날렵하고 생동감 있는 최고 걸작이다. 절망하고 있는 우리 청년들이 미륵불들을 만나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되찾았으면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01

사회주의 국가의 인권

미국에 망명중인 중국 인권단체는 9개인데, 미·중 정상이 만날때면 “구속돼 있는 중국 인권운동가들을 즉각 석방하고,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요구를 유혈진압한 일을 사과하라”며 시위를 벌인다. 또 남아공 출신의 투투 명예주교와 달라이 라마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2명은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구속중인 류사오보를 석방해달라”고 했다. 류사오보는 2009년 중국의 인권을 외치다가 `국가 전복 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노르웨이 한림원은 다음해 그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시상식에 갈 수 없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사회주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었다.시진핑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인권운동가 궈위산(郭玉閃)이 전격 석방됐다. 그는 북경대 정치·경제학 석사이고, 인권변호사 등과 NGO를 설립해 사회개혁운동에 나섰으며, 가택연금 중인 시각장애인 변호사 천광청의 미국 망명을 적극 도왔다. 전제군주국의 전통을 이어오는 중국으로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생소할 뿐이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잡아들여 국가 전복 선동죄를 씌워 중형을 선고해왔는데, 이번 `귀위산의 석방`은 시진핑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에 앞선 `정지작업`이라 하겠다.유엔인권이사회가 중국인권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이 북한인권이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북한인권 토론회`가 열렸는데, 북한이 가장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핵과 인권이다. 이번에도 북은 “인권을 구실로 우리의 제도 전복을 노린 불순한 정치적 모략”이라 하고, 최근 여야가 북한인권법안에 일부 합의한 것에 대해 “국회에서 북인권법을 조작해보려고 날뛰는 것은 노골적인 도발”이라 했다.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설치됐는데 탈북자들의 증언을 수집 기록하는 일을 주로 한다. 사인 폴스 초대 소장은 “북의 반인권 범죄는 매우 조직적이고 광범하다”고 했다. 그러나 세습독재국가에서 `자유·인권`이란 매우 낯선 개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30

등대(燈臺)의 추억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충남 태안 연안에 향도선(嚮導船)을 배치해 세곡선들이 무사히 항해하도록 했다. 물론 야간에는 횃불을 밝힌 배들을 배치해 세곡선 뱃길을 안내했으니, 이것이`신라의 등대` 였다. 1903년 6월 1일 팔미도 등대가 설치됐는데 이것이 근대식 등대의 효시다. 일본인들은 일찍 유학생을 보내 서구 선진기술을 배웠는데, 등대 건축술도 이때 습득했다. 1900년대 초에 콘크리트, 철근, 철골, 벽돌을 이용해 등대를 지었다는 것은 최첨단 공법이었으니, 등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선진 기법이 총동원된`종합건축예술`이었다. 그리고 등대는 무선 기지국 구실도 했는데, 등대지기가 되려면 무선사 자격증을 따야 했다.서양에서는 그리스 신전을 본딴 등대가 당시 유행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조랑말 형상의 제주도 등대, 거북선 모양의 한산도 등대, 젖병 모양의 기장읍 등대, 흰고래와 붉은고래 모양의 두 등대를 설치해서`그 사이로 가면 안전함`을 알려준 것이 바로 울산 정자항 등대다. 이처럼 등대는 그 지역의 특징과 상징성을 보여주는 건축예술품이었다.인천 팔미도 등대는 유형문화재 40호인데, 포항 호미곶 등대는 39호이다. 1907년 일본 수산실업전문학원 실습선이 구만리 인근 해역에 조사차 나왔다가 3각파도를 만나 침몰한 것이 계기가 돼 등대건설사업이 시작됐고, 이듬해 완공했다. 프랑스人이 에펠탑을 모티브로 설계했고, 중국 기술자가 벽돌로 지었다. 팔미도 등대는 높이가 7.9m인데 호미곶등대는 26.4m나 되는 6층 구조이고, 각 층마다 대한제국의 상징인`오얏꽃`문양을 새겼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경북도는 동해안 일원에`등대 해양관광벨트`를 조성한다. 호미곶 등대박물관을 중심으로 빼어난 동해안의 절경을 이용한`등대투어`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비치며/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곡과 함께 아련한 추억을 만들 기회가 될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5

절망과 희망 사이

아부 마흐무드는 시리아 출신의 의사였다. 그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샌드위치 압박`을 받다가 탈출을 결심했다. 정부군은 “다친 반군을 치료해준 의사”라며 그를 체포하려 했고, 반군은 “너, 정부군 편이지?” 했다. 그는 쪽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했으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11시간 표류하다가 터키에 닿았다. 그는 거기서 의사를 포기하고 `난민 브로커 조직`에 들어갔고, 그리스로 가려는 난민들에게서 1인당 1천100 달러를 받았다. 이런 일은 당시 불법이므로 터키 경찰에게 적잖은 뇌물을 주었다. 마흐무드의 월 수입은 수천만원이다.그의 이름은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 체포되지 않게 되었다. 3살짜리 소년의 죽음으로 `난민보트 운영과 브로커업`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독일과 미국은 경제가 빵빵하니 난민을 대거 받을 수 있고, 난민의 입국을 `불법`으로 취급하던 유럽의 나라들도 체면상 `죄인 취급`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다만 `입국 난민의 수`를 제한할 뿐이다.반군이 점령한 아르무크시를 정부군이 봉쇄하면서 이 도시에서는 수백 명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는데, 그 도시 길거리에서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며 희망을 전하던 청년이 있었다. 알아흐마드(27)는 어린이들과 함께 `형제여, 이 도시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를 노래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 세계에 알렸는데, `음악은 이슬람율법 위반`이라며 수니파 반군이 피아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버렸다.“내 생일날 친구 이상의 친구를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그는 결국 탈출을 결심했고, 의사 출신의 브로커 마흐무드의 도움을 받아 터키로 갔고, 거기서 작은 보트를 타고 그리스의 한 섬에 정착했다. 그의 소망은 “피아노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베를린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것. 언론을 통해 유명인이 된 그를 도울 독일인은 금방 나올 터.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고 노래한 그는 바로 `희망의 빛을 쏘는 등대`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