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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사원(飮水思源)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9-08 02:01 게재일 2016-09-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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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 `유신`은 망한 조국 양나라를 생각하며 “과일을 먹을 때 그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실 때 그 우물 판 사람을 생각한다”란 시를 지었다. 후세인들이 남의 은공을 기릴 때 잘 인용하는 귀절이다. 이번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시진핑 주석이 이 말을 꺼냈다. 항저우는 김구 임시정부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 반 피신했던 곳이고, 당시 국민당 장개석 총통은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1930년대에는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폭탄 저항이 이어졌다. 윤 의사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 전승 기념식 `때 도시락에 숨긴 폭탄을 던져 일본 군부 요인 수십명을 사상케한 의거 이후 일본은 본격적인 독립운동 탄압에 들어갔고, 우리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중국 내륙지방을 떠돌게 된다. 당시 장개석 총통은 “중국인 100만명도 못 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해냈다” 칭송했고, 이 말에 일본이 발끈했다.

이번 `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이 미국과 더 가까우냐, 중국과 더 가까우냐” 물으면서 `항주의 은공`을 생각하라는 시 주석의 의중이 들어 있다.

당시는 모택동의 중공(中共)시대가 아니고 국민당 장개석 시절이다. 공산당이 아닌 `손문의 3민주의`를 채택한 `민주주의 중국`이었다는 말이다.

“중공이었다면 우리 임시정부를 그렇게 보호해 주었겠는가” 묻고 싶은 대목이다. 또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따진다면, 은공보다 굴욕이 훨씬 많았다.

신라 삼국통일 때는 중국이 아예 한반도를 먹어치울 생각을 하다가 문무대왕에 쫓겨갔고,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 군대가 원군으로 와서 온갖 행패를 다 부렸다. 심지어 영의정 서애 유성룡 총사령관의 뺨을 치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는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다. `약소국의 서러움`을 처절하게 안겨준 중국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실수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따져 미국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선`은 `속국의 비애`를 지겹도록 겪었지만`한국`은 이제 `신하의 나라`가 아니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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