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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단상(斷想)

등록일 2016-09-08 02:01 게재일 2016-09-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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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명절의 최대 묘미는 회귀(回歸)이다. 명절은 마치 강의 발원지 같다. 그 강의 이름은 삶! 사람들은 삶의 발원지에서 태어나 그 물줄기를 따라 흐르면서 산다. 삶의 강은 결코 평탄치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안다. 폭포를 만나면 폭포의 언어로, 여울목을 만나면 또 그 언어로 산다.

그러다 어느 시간이 되면 거슬러 오른다. 거슬러 오르는 것들은 회귀하면서 힘을 얻는다. 강의 유전자가 흐르는 사람들 또한 회귀 본능이 있다. 그 본능을 깨우는 것이 명절이다.

명절을 앞둔 주말이면 뉴스들은 한결같이 벌초 행렬로 정체된 고속도로에 대해 보도한다. 최악의 경제난이라는 불황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올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필자는 그 정체 행렬을 산에서 만났다. 매년 벌초를 위해 다니는 길이지만, 올해는 차들이 유난히 많았다. 비록 국회는 그 수장부터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아무리 살기가 힘들어도 자신들의 할 일은 한다. 삶의 강을 거슬러 온 성묘객들, 그들이야 말로 이 나라의 진정한 대표들이다.

벌초 날 아침 초등학교 3학년 나경이와 고향으로 갔다. 흥이 많은 아이는 이야기를 재밌게 한다. 또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아이이지만 필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을 많이 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경이는 필자와의 이야기 시간이 허락되면 조금도 쉬지 않고 말한다. 이야깃거리도 다양하다. 필자는 아이의 이야기에서 글의 소재를 많이 얻는다.

차 안에서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담임선생님이 나이가 북한의 대표와 같다고 운을 띄운 나경이는 수업 시간에 반 친구가 북한 대표에게 쓴 엽서이야기를 한다. “아빠, 그 친구가 북한 대표에게 뭐라고 썼는지 알아?”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이가 말한다. “북한 대표님, 이제 미사일 그만 좀 보내주시면 안 돼요.” 정확하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에겐 충격이었다. 그러고는 뭔가 골똘히 생각한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이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국회의장 발언과 관련한 뉴스가 나왔다. 아이가 들을까봐 얼른 꺼버렸다.

벌초를 하는 내내 아이가 말한 엽서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엽서가 북한 대표뿐만 아니라 중국 등 세계 모든 나라에 꼭 전달되기를 기원했다. 설령 그것이 어렵다면 이 나라 국회에라도 꼭 전달되어 되어 더 이상 우리끼리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신계급주의 사회인 이 나라엔 1%와 99%가 나눠져 있으며, 1%들은 99%를 같은 부류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다니는 길이어서 그런지 산소로 가는 길은 덤불로 우거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혼돈에 빠진 이 나라 국회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덤불이야 거둬내면 되지만, 이 나라 국회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고조할머니 묘소를 벌초하고 가파른 산을 내려오는데 동생이 한마디 툭 던진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벌초는 누가 하지?” 그 말에 봉분 가운데 굵은 참나무가 자란 무연고 묘가 눈에 어른거렸다. 이래저래 심란한 필자에게 나경이가 묻는다. “아빠,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가 무슨 말이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고민 끝에 말했다. “그건 없어진 옛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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