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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가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2월 2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주최한 ‘무학과 무전공’ 반대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은 전국교수연대회의에 참여한 각 교수 단체 대표들의 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교수 단체 대표의 발언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시위 진압 차량이 나타나고 경찰의 불법 집회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기자회견으로 신고된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구호 제창은 불법이라는 사실과 삼십여 명 규모의 구호 제창은 보통 그냥 넘어가지만, 중간에 울려 퍼진 ‘퇴진하라!’는 구호가 문제가 됐다는 점을 말이다.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외치는 구호에 놀라 시위 진압 차량까지 등장하는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정부의 의대 정원 이천 명 증원 발표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주가 지났다. 정부와 의사들이 각자의 논리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맞선 의사들의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서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어느 쪽의 시각이 옳은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사에서 읽게 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이번 사태에 대한 시각은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관계자 발언의 요지는 의대 정원 증원의 결정은 지역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법적 절차에 따른 합리적 발언일 것이다.그렇다면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의 구조에서 국가란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말한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을 시행하며 시스템을 만든다. ‘무학과 무전공’, ‘의대 정원 증원’은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정책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하지만 지금은 협의와 토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국가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잔소리 말고 따르라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려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호실 직원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쫓겨난 사건이나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장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원생이 강제로 쫓겨난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면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는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다.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3월이 되었다.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을 품은 2024학번 새내기가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학생들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토의 과정을 익히지 말고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2024-03-04

누구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진주에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편도 3시간 45분이 걸린다. 최종 목적지의 위치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진주 집에서부터 목적지까지는 어림잡아 5시간이 소요된다.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당일치기 일정은 피로감을 동반하지만 1박2일 일정은 잘 잡지 않는 편이다. 다음 날까지 허비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5년 전 진주에 처음 내려오고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학술대회 발표·토론, 각종 회의 참석을 위해 한 달에 평균 1회는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의 만남은 학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난 학계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토론 제안도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하고 상경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찾아온 회의감이 서울에 가는 횟수를 줄이게 했다. 서울에서의 몇 시간 일정을 위해 10시간을 왕복하는 내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고는 생각이 바뀐 것이다.나에게는 2022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북토크 팀이 있다. 격월로 도서를 1권 선정하여 저자를 초청하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혹은 오프라인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야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서울 가는 것이 버거워졌지만 힘듦을 말하기 어려웠다. 제주도에서 상경하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은 오프라인 북토크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2023년 초에는 우리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이 북토크 도서로 선정되어서 팀원들 일부가 진주에 내려왔다. 제주도에서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진주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여름방학에는 제주도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주도 북토크를 위해 더 많은 선생님이 바다를 건너왔다.나는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선생님께 진주와 제주를 거부감 없이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한 2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선정된 도서에서 배운 점 이상으로 이 분들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뒤늦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주에서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과 물리적 시간, 그리고 육체적 힘듦에 대한 어떤 보상을 생각했다. 학술대회 발표를 위해서는 서울에 가고, 단순한 회의를 위해서는 가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기회비용을 따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사고라 할 수도 있겠지만, ‘관계’를 결정짓는 이러한 정상성이 만든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 정상성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행사의 성격을 따져 상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이제 설 연휴가 지나고 개강이 눈앞에 다가왔다. 새 학기부터는 익숙한 관계 맺기의 방식을 벗어나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자주 만나야겠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24-02-19

침묵의 방관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가 개최됐다.이번 대회는 단순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각자도생의 삶을 넘어서 새로운 학술제도 및 문화를 수립하겠다는 공동선언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일반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도 이번 대회에 작은 힘이나마 함께 하며 2주에 한 번씩 온라인 회의를 하는 강행군에 동참했다. 처음 줌 회의에 참석했을 때 참여자의 다수가 나보다 어린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대회 첫째 날 논평자로 대회장을 찾았다. 내가 논평을 맡은 세션이 되어 앞쪽 무대로 나가서 대회장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자, 객석의 2/3 이상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때야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느 학문 공동체나 직급과 성별, 지역에 따른 위계가 존재한다. 그 위계란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50대 중반 이상의 남성 전임교수가 만든 것이다. 나는 경험적으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이번 대회에 참석한 나보다 어린 후속세대를 눈앞에서 바라보니 ‘50대 이상’ ‘남성 교수’라는 대상을 여전히 겨냥하는 것은, 동조자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후속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라는 현실을 잊고 있었던 탓이다. 수많은 후속세대가 보기엔 나도 지금의 위계를 만들어 낸 사람일 뿐이다.2월 7일 우리 대학의 총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마다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교수, 직원 등 투표 당사자의 마음을 사는 정책이 가득하다. 신임 교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빠지지 않는다. 4년 전 총장 선거 당시에도 신임 교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뭐 하나 바뀐 것은 없다. 의사결정을 하는 당사자는 신임 교수가 아니고 보좌진은 결정권자의 심기를 건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한편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분주하다. 양당 정치를 끝장내겠다는 제3지대가 얼마나 정치적 파급력을 갖게 될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올드보이’의 귀환이 속속 발표되는 가운데 젊은 초선 의원들은 연달아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예비후보 가운데 20~30대는 4.2%, 40대는 13.5%에 불과하다. 젊은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를 비판하며, 기성 정치인의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증명하듯 불가능한 일이다.결국 필요한 것은 기존 공동체의 문법을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의 연대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현대문학자대회를 개최했다. 나를 포함한 40대는 중간 세대로서 기성 문법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새로운 공동체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권자 탓만 하는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2024-02-05

투자 권하는 사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주식 투자자다. 시작은 2016년 여름 아내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무게감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봉에 주식 공부를 했다. 학업을 이어가는 와중에 틈틈이 공부하며 소소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불었고, 내가 다시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각 국가가 돈 푸는 장면을 목격하며 ‘양적완화’ 개념을 알게 된 것이다.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경기를 살리는 정책을 말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미국은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도 금리를 낮추고 코로나 지원금을 국민에게 주었다. 실물경기는 죽어가는데 주식시장이 활활 타오르는 현상에 일부는 의구심을 표했지만, 사실 이것은 경제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자산가치의 상승이란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2년 통화량의 증가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금리는 급등했고 자산가치는 하락했다. 최근 20년 통화량 그래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금방 알게 되는 진실. 현금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깨닫자, 결국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지난 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거래소를 찾아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거래세 완화 등을 발표했다. 과도한 세금을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주범으로 지적하고 자본 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 형성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공매도 폐지, 대주주 양도세 상향 등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다는 정책까지 고려하면, 서민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말에 담긴 진심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른다. 대통령은 증권시장이 국민과 기업이 상생하는 장이며 금융을 통해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다는 말도 그럴듯하다.그런데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날에 한국 시장은 2% 넘게 하락했다. 새해 들어 일본 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한국 시장은 급락했다. 대통령의 주가 부양 정책에도 한국 시장이 오히려 역행하는 것은, 뒤집어 말해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무엇이 문제일까?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기획재정부에 있는 경제 전문가들이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나는 선생으로서 삶에 충실해도 두 아이를 키우는 것에 별 무리가 없다면, 굳이 투자자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투자를 권하는 대통령의 말을 듣건대 그런 삶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모든 국민을 투자자로 만드는 지금 이 길이, 아니 근본적으로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다.

2024-01-22

새해에는 ‘시각’을 전환하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새해 목표를 꾹꾹 눌러쓰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한 살을 더 먹는 행위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다. 달력이 바뀌는 차이보다는 어제와 내일의 연속성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하지만 5년 전,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수도권·지역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지역 대학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지역은 삶의 터전이다. 거의 모든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기에 왕복 8시간을 들여서 힘겹게 다녀오는 기간이 5년을 넘었다. 그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이제는 서울의 높은 건물과 복잡함에 머리가 아파서 학술대회가 끝나고 집에 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나의 힘겨운 상경을 알지 못하는 수도권 연구자의 말에서 받은 상처도 포함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벗어난 공간에서 살아가며 공간의 위계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가 최근 몇 년 새해 목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 놓인다.새해에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이 ‘글로컬 대학 30’이다. 이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혁신 의지가 있는 지역 대학 30개 학교를 지원한다. 지방 정부와 지역 대학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혁신과 자율, 지역 중심이라는 멋진 말에 지역 대학 소멸론, 출생률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었고 1차로 10개 대학이 선정되었다. 이 대학들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지역의 미래에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내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웹진의 글로컬 대학 특집을 기획하고 원고를 받았다. 그중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글에 감탄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1980년대 거제는 조선소가 본격적인 가동을 하며 지-산-학이 일치되는 도시가 되었지만, 조선업의 몰락이 곧 도시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거제에서 산업은 발전했지만, 문화는 삭제되었고 이것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산-학을 내세우며 시작한 ‘글로컬 대학 30’의 미래는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진정한 ‘글로컬 대학’을 위해서 ‘인서울’의 ‘학벌순’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이 지역으로 옮겨야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그저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학벌주의와 지역 대학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새해지만, 특별함이란 반복되는 일상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뒤집어 볼 때 생긴다. 자조나 냉소가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할 때 특별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어느 연구자의 상상력이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4-01-08

보통 사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또,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별 감정이 없는 연말이 반복되고 있다. 새해가 되어도 뭐 하나 달라진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평상시와 비슷하게 닥친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지난 주말 넷플릭스에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파가 몰아닥치고 황궁 아파트로 외부 생존자들이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영탁’을 대표로 선임하고 입주민들만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외부 생존자를 모두 바깥으로 내쫓는다. 영화의 서사는 영탁을 중심으로 한 입주민의 단결과 이에 동의할 수 있는 ‘명화’라는 인물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간 아파트 입주민을 대표했던 영탁이 입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아파트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영탁은 아파트 입주를 위해 돈을 보냈지만 사기를 당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아파트에 왔다가 지진을 겪게 된 것이다.영화의 마지막에 외부 생존자의 습격으로 황궁 아파트를 간신히 탈출한 명화는 낯선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들의 거주 구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냥 살아도 되는 거냐는 명화의 물음에 그걸 왜 자신들에게 묻냐며 살고 싶으면 살라고 답한다. 그때 다른 사람이 명화에게 황궁 아파트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는다. 잠시 생각하던 명화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고 말한다.마지막 장면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배척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는 복도식 구조를 가진 낡은 아파트로 묘사된다. 주변의 아파트로부터 차별 받아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입주민들도 이 점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차별을 받아온 사람이 위계의 기준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되돌려 주는 장면은 그들에게 차별과 위계의 정서가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 문제라는 사실을 전한다.2023년 새해 첫 칼럼에서 나는 조세희 작가를 애도하며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을 새해에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라고 썼다. 1년이 지난 지금, 2023년 새해 다짐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말해야겠다. 노력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며 나의 이익을 취했다.새해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다시 소망한다. 그래서 1년 뒤 오늘, 지난 한 해를 특별한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23-12-19

기다림의 시간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암기’가 아니라 ‘사고(Thinking)’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편이기에,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까닭이다. 2010년대 초반 초보 강사 시절에는 엉뚱한 답이라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학생이 많았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는 모르겠다거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에는 질문을 하면 시선을 피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나와 눈이 마주치면 혹시라도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거나, 질문을 받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는 학생들을 혼내기도 달래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학기가 학생들에게 질문하지 않기로 한 첫 학기였다. 처음에는 괜한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정해진 시간만큼 강의만 하고 나오니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선생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깊어진 까닭이다.지난주 수업 시간에 소설 분석이란 줄거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로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란 설명을 했다. 지난주 소설의 서사를 잘 보여주는 ‘침묵의 카르텔’을 소개하다가, 문득 강의실 상황이 적절한 예시인 것을 알았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으면서 누군가의 말하기를 막고 있는 상황을 ‘침묵의 카르텔’로 설명하자, 순간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학생들이 왜 웃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모두가 알면서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선생이 말했기 때문에 터진 웃음이라고 짐작할 뿐이다.흥미롭게도 그 잠깐의 웃음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많은 학생이 입을 열지 않았지만, 평상시 주위의 눈치를 보던 몇 명의 학생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발언하는 학생이 하나, 둘 더 늘었다. 그들은 다소 서툴렀지만, 천천히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 소극적인 학생이 늘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눈에 보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고등학교 시절 좋지 못한 성적은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만든 단절은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어느 학생의 말처럼, 이제 대학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지도 모른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르치는 일은 이전부터 대학 교육의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다르다.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이전에 억눌려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들도 자기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싶다. 다만 어떤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서 말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작은 웃음이 반복되고, 조급하지 않게 학생들의 말을 기다려 줄 때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2023-12-05

글로컬 시대,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문학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의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읽고 쓰는 능력이란 정의가 보여주듯 리터러시는 ‘문자문화’ 시대의 산물이며, 그런 만큼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는 그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전국적으로 ‘국어국문학과’의 간판이 사라지고 쇼츠(Shots) 문화가 대세가 된 지금, 리터러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리터러시는 텍스트를 깊이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문학과 영화, 더 나아가 ‘삶’이란 텍스트의 현상이 아니라 그 이면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현상의 이면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 필요성은 무엇일까. 잊을 만하면 화제가 되는 20대 문해력 논란을 생각해 보자. ‘심심한 사과’ ‘사흘’ 등 한자어를 모르는 20대의 어휘력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그런 현상이 생겨나는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다.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다.최근 수업 시간에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큐티클’을 읽었다. 이 소설은 이제 막 취업을 한 20대 여성 주인공이 그간 사치로 여겼던 소비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그녀의 소비는 네일아트를 받거나 유기농 음식을 구매하는 등 평범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일 뿐이다.이 소설을 읽은 학생들의 반응은 좀 더 비싼 제품을 향한 욕망을 표현하는 주인공에 대한 적당한 비판과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주인공 여성과 나를 분리하는 시각도 굳건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소비 행위를 통해서 자기 위안을 삼고자 했던 이유를 질문하는 것이 어려웠던 까닭이다.여기서 핵심은 학생들이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구조를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다. 소비 자본주의가 일상이 된 시대에 그 구조를 질문할 여력이 되지 않는 현실과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논의는 문학이란 범위를 넘어서는 간학제적인 일이 된다.‘글로컬 대학 30’ 사업의 지원을 받는 10개 대학이 발표되었다. ‘글로컬 대학 30’ 사업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대학과 지방 정부, 그리고 지역의 산업체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지역에 밀착한 인재 양성을 추구한다. 우리 대학은 ‘우주항공 방산분야 선도대학’을 비전으로 제시하여 10개 대학에 포함되었다. 이제까지 지적된 많은 문제점을 넘어서 지역에 정주하는 20대를 만드는 사업이 되길 기원한다.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역 산업의 육성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계화된 구조를 상대할 수 있는 인식력을 갖춘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 끝난 5년 뒤에 지역은 더욱 황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의 위기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2023-11-21

‘서울공화국’의 민낯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단어로 ‘서울공화국’이 있다.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이 말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인구를 풍자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지만,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 국토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서울공화국이 만든 숱한 문제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며, 이에 따라 오래전부터 행정수도 이전을 비롯한 많은 해결책이 제시된 바 있다.지난 10월 30일. 여당의 대표가 시민의 대다수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이유로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특별시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해서 큰 혼란을 일으켰다. 당장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서울로 편입해달라는 의견이 쏟아지고 한편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내년 총선을 앞둔 선거용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단 그 발언은 우리 사회의 두 가지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 일조했다.첫 번째는 우리는 수도권·지방이란 구도에 익숙하지만,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다시, 또 구별 짓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억눌린 욕망은 적절한 계기를 만나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포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서울 편입이 추진된다는 정부 여당의 발언을 도화선으로 고양, 하남, 안양 등 인접 지역의 욕망이 터진 사실 말이다. 서울에 편입됨으로써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제외하고 어떤 이득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이번 사태는 그간 우리의 마음에 존재하던 욕망의 민낯이 위계적이고 경제적이란 점을 새삼 알려주는 것이다. 위계 서열화된 시스템의 가장 높은 것에 올라가야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명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본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는 최소한의 브레이크 장치가 정치권의 한 마디에 파열된 셈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무엇보다 역대 정부가 지방균형발전이랑 명분으로 시행한 수많은 정책과 이번 정부의 ‘글로컬 사업’ 등과 같은 서울-지역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 극단의 시각이 불쑥 튀어나온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당의 대표는 그 발언이 지닌 모순과 갈등의 지점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총선을 앞둔 발언일까? 전자라면 그 무식함에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후자라면 역풍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수도권’이 다 같은 수도권이 아니라는 현실을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위계화의 법칙이 엄혹한 현실에서 지역의 학생들에게 정주하며 꿈을 펼치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뭐 하나 선뜻 답하기 어렵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좀 더 명확해졌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꽤 오랫동안 반등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 사회에 잠재된 혐오의 감정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약 내가 김포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여당 대표의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것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섭다.

2023-11-07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성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SF(Science Fiction)를 좋아한다. 암울한 기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생각하는 순간이 무척이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20년대 한국 문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SF소설의 위상은 고무적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소수만의 전유물이었던 SF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기술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후부터 즐겨 읽는 작품 목록 중에는 미국의 SF작가 할란 엘리슨의 ‘제프티는 다섯 살’이 제일 위에 놓인다.이 소설은 스물두 살이 된 도널드의 시선에서 여전히 몸과 마음이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친구 제프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 도널드와 제프티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다. 도널드가 자신의 TV 판매점에 몰려든 손님을 상대하다 극장을 향해 출발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제프티는 공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결국 제프티는 혼자 극장으로 갔지만, 뒤늦게 도널드가 갔을 때는 동네 아이들에게 맞아서 신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도널드는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제프티를 철저히 외면하는 그의 부모님을 목격하며, 정말 ‘현재’가 ‘과거’보다 진보했는지를 절규하듯 물어본다.지난 토요일은 둘째 아이 유치원의 가족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운동회를 마치고 첫째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다. 총 여섯 명의 아이는 술래잡기, 얼음 땡 놀이 등을 했다.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힘껏 논다. 어른이 보기엔 비효율적인 놀이를 즐겁게 반복하며 아이들은 금방 땀을 흘리고 서로 잡기 위해 뛰면서 눈을 마주치면 뭐가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다. 비록 언니들의 세계에 끼어들진 못했지만, 둘째 아이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온전히 노는 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어른의 세계는 어떤가? 나는 조금 뛰어다니자 지쳐서 그늘로 들어갔다가, 아이들이 부르면 다시 놀이터로 나가길 반복했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시계를 살펴보며 집에 갈 시간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제프티는 다섯 살’을 떠올리고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본 것은 확실했다.‘제프티는 다섯 살’을 학생들에게 읽히면 흔하게 나오는 반응이 과거를 ‘복고’로 해석하며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가 ‘과거’보다 정말 진보했는가? 라는 도널드의 질문을 우리에게 되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어린이의 시간은 효율과 능률이란 어른의 논리가 아니라 자기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만든다. 어린이의 시간을 공유하며 만드는 진보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진보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23-10-24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10월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전국적으로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공유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국어문화원이 중심이 되어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와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매년 반복되는 한글날의 각종 이벤트를 무심히 넘기거나 어학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공휴일이란 편안함이 더 크게 다가왔던 탓이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글 창제 및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은 필연적으로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이 몇 년 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K-팝, K-푸드, K-콘텐츠 등 다양한 K-컬처에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BTS’가 상징하는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K-콘텐츠가 앞에서 끌고 K-푸드, K-뷰티 등이 뒤따르는 K-컬처는, 국가적 지원을 동력 삼아서 더욱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하지만 마냥 자부심을 느끼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지난 8월 140여개국 4만명의 대원이 참석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K팝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알다시피 잼버리는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등으로 일부 국가 대원이 중도에 퇴소하고, 태풍의 영향으로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를 결정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세계적 대회의 파행을 막고자 K-컬처를 대안으로 내세운 정부의 방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잼버리 정신’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랑스러워야 할 K-팝이 이렇게 소비되는 것에 찜찜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영어 중심주의는 어떤가?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 솟아있는 거의 모든 아파트의 이름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영어다. 우리나라에 유학을 온 외국인 대학원생들은 한국어를 몰라도 학위를 받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문해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심심한 사과’ ‘사흘’이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말을 몰라도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한 사과’‘사흘’과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삶의 구조에 있다.한글날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이념이 당위적으로 한글의 우수성(혹은 K-컬처)을 홍보하는 행위의 근간이라면, 문화는 대중의 정신과 사고에 미치는 한글의 중요성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행위이다. 이제라도 한글이 상징하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일회성 이벤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2023-10-10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교육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올해 들어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환경과 관련한 교육이 늘어났다. 아이는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도서 읽기, 쓰레기 재활용 마크 교육, 10분 동안 소등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한편 우리 대학은 2022년 환경부 ‘그린 캠퍼스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지속가능발전센터’를 조직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 과제를 마련했으며, 지난 9월 11일부터 22일까지 ‘그린 캠퍼스 탄소중립 실천 확산 캠페인’을 실시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교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교육계 전반의 관심이 매우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지속 가능한 발전을 환경보호 수준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2015년 제70차 유엔총회에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5개 영역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이루어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발표되었다. 17개 목표에는 ‘기후변화와 대응’ ‘에너지의 친환경적 생산과 소비’ 등과 같이 환경 문제도 있지만,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 ‘성평등 보장’ ‘빈곤층 감소와 사회안전망 강화’ 등과 같은 교육과 경제 영역의 목표도 존재한다. 요컨대 지속 가능한 발전은 환경보호라는 과거의 인식이 아니라 정치, 경제, 환경,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의 연결성을 확인하고 새롭게 재편하려는 문제의식이 담긴 것이다. 일단 이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이렇게 시야를 확대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보자. 초등학교 선생님의 연이은 극단적 선택이나 젠더 갈등을 떠올리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부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발간한 2022년 ‘국가지속가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과 ‘성평등 보장’ 항목은 모두 ‘맑음’에 해당한다. ‘취학률’‘고등학교 이수율’‘피임 실천율’ 등의 지표로 해당 목표를 평가하기 때문이다.근본적인 문제는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에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성장’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를 여전히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2023년 상반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0으로 바닥을 모르고 내려가고 있다. 모두가 출산율 위기를 말하지만, ‘NO KIDS ZONE’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가령 기후 위기와 학벌주의는 어떤 공통된 토대에서 벌어진 현상일까? 이대남·이대녀 문제와 갑질 학부모는 어떻게 연결될까? 등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17개 목표를 연결할 수 있는 인식력을 갖출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2023-09-26

공교육의 몰락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종종 누구는 어디를 가서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의아했다. 방학을 이용해서 갈 수도 있을 텐데, 학기 중에 결석까지 하며 갈 이유가 무엇일까? 이 주제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개근 거지’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단어의 어감에서 짐작하듯 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니는 학생을, 가난해서 학교만 다닌다고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옛날 개근상이 근면 성실의 상징이었다면 이제 개근상은 가난한 집안 환경을 드러낼 뿐이다.물론 부모 책임하에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체험활동의 교육적 의미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것이 현실에서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 차별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집도 학기 중에 어디를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스템은 개인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결과 학부모들에게 공교육은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대상이 되었다. 현장학습 제도가 오롯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매개가 된 것은 분명하다.서이초 선생님의 극단적 선택 이후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연이은 비극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각기 조금씩 구체적 사연은 다르지만,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으며 학교 당국의 무관심이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특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이 보도되고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기사를 통해 보건대, 언론의 보도가 도화선이 되어서 그간 잠재되어 있던 분노 혹은 억울함의 감정이 폭발된 것이다. 지금의 공교육은 좋은 선생님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어느 교사의 인터뷰가 가슴에 꽂힌다.우리 사회는 공교육의 붕괴라는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 해결을 위한 첫 단계인 원인 분석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에 연가 혹은 병가를 쓰는 선생님을 징계하겠다는 교육부의 태도나 선생님의 자살이 정신력 문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 사회가 공교육의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공교육의 권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는데, 선생님들에게는 이전 시대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지금의 공교육은 교육 서비스업의 하나가 되었다. 이미 대학은 오래전부터 ‘소비자 만족도 조사 1위’를 홍보문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초등·중등교육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대학 입시에 영향을 주는 생활기록부 작성이 끝나자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정상적인 학사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는 현실은 또 다른 사례이다. 이제 선생님은 월급을 받고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대상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을 지키라는 교육부의 외침은 공소하게 들려올 뿐이다. 교권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교육을 대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습화된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2023-09-12

다시,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학기 ‘젠더문화론’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목적은 ‘페미니즘’을 남성·여성의 이항 대립에서 해석하지 않고, 일상에 퍼져 있는 혐오와 위계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이론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전장연)’시위에 대한 발표를 맡은 학생은 시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으며, 수업 중간에 수업의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자체 휴강을 한 학생도 있었다. 익숙한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수 학생은 끝까지 수업을 들으며 ‘일상의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은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에 학생들이 실제로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지난 대선의 쟁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반페미니즘 정서를 정면에 내세웠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반페미니즘은 2021년 ‘국민의 힘’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의 당선에서 시작되었다.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건 이준석 후보의 반페미니즘 전략에 이른바 ‘이대남’이 결집하며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나 공유되던 시각이 공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2년 이준석 전 대표는 ‘전장연’의 시위를 비판하며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는 여성 혹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이 특권(?)을 갖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전제한다.정치권의 반페미니즘 기조를 환기한 이유는 최근 서울 시내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범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맥락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남성과 여성의 대결 구도로 좁히고 인권 보호를 단지 법의 권위에 기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일은 법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한 이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일벌백계’하는 것이 인권 보호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두 번째는 신림동 성폭행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22년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3년 신림역 성폭행 사건은 대표적인 ‘페미사이드’ 범죄이다.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정신병을 문제 삼지만 문제의 핵심은 여성을 특정해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잠재적 가해자’로 남성을 지목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앞선 칼럼에도 썼듯 장갑차를 시내에 배치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공권력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20∼30대 남성 청년들이 가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타인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3-08-29

20대의 실상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대학은 학생들이 휴학이나 자퇴하는 경우 학과장과의 상담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학과장 보직을 맡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명의 자퇴생, 그리고 다수의 휴학생과 (비) 대면상담을 해야만 했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자퇴나 휴학하는 경우는 서로 기분 좋게 상담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지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분 좋은 상담보다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두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았다. 올해 초 학기가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2023학번 여학생이 찾아왔다. 어딘가 불안한 학생들이 그러하듯 눈은 나를 피해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학교에 있는 것이 불안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신과에 입원한 적도 있고 치료도 오래 받았다고 담담히 말하는 학생에게 내가 더 해줄 말은 별로 없었다.또 다른 학생은 1학기 종강을 4주 정도 남겨두고 갑자기 찾아온 경우다. 도저히 힘들어서 학교에 있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이제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힘내보자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조용히 자기의 팔목을 보여주었다. 자해 흔적이 선명한 팔목을 보고 나는 애써 당황한 표정을 지우며 이유를 물었지만, 당시 그 학생이 뭐라 답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 심신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학교에서 보자는 말을 학생에게 마지막으로 전했지만, 정말 그 학생을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2023년 3월. 정부는 최초로 청년(만 19세~34세) 삶 실태조사 통계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거의 집에만 있는 청년 비율이 2.4%, 약 24만 4천 명으로 나타났으며, 은둔의 이유로는 취업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제시되었다. 일본의 은둔형 청년이 전체의 1.8% 수준이란 점을 고려할 때 대단히 높은 수치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그냥 쉰다는 청년이 65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까지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유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2022년 대한민국 전체 실업률이 2.9%인 점을 고려한다면, 청년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현재 청년들의 이런 삶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일 것이다.최근 신림동 살인사건, 서현역 살인사건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며 경찰이 특별대책을 발표하는 등 대안 마련에 나섰다. 시내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당연히 ‘묻지마 범죄’에 대한 엄벌과 예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우기 어려운 사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않았을 뿐, 우리 주위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이 많다는 점이다. 고립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근 발생한 일련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다.

2023-08-15

공교육 붕괴에 얽힌 복잡성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어느 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의 충격이 지속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학부모의 ‘갑질’에 젊은 선생님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겪은 부당함을 학교에 호소했으나 적절한 해법이 마련되지 못하자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학생 인권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전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학생 인권을 강조한 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의 비상식적인 체벌이 많았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선생님에게 손찌검당한 기억이 선명하다. ‘갑’의 입장이던 선생님이 ‘을’의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용납되던 시절에 체벌과 폭력의 경계는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훈육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학생들의 인권에 주목한다는 것은, 교육의 영역에서 기존의 갑을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학생은 계발시켜야 하는 대상, 선생님은 계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전통적 관점이라면, 이제는 선생님이 학생을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며 그 잠재된 가능성을 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을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수렴시킬 것이 아니라, 학생 각각의 특성을 존중하며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생 인권과 선생님의 인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그런데 왜 다시 역전된 갑을 관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단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여전히 공고한 학벌사회는 공교육 붕괴라는 결과를 낳고 이는 다시 교사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렸다. 경쟁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의 관계를 학습하지 못한 부모의 내면은 자식 교육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자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손해 본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렵다. ‘강남’에 입성한 계급의 상대적 우월감은 이런 심리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리는 단지 초등학생의 부모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학생의 수강 신청이나 학점에 대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만나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이처럼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서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애꿎은 학생 인권조례를 탓하고 있다.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할 능력이 없거나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반복하건대 사교육 시장, 교권, 지방대학의 위기 등 올해 들어 제기된 교육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복잡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출산을 고민하던 지인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뉴스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학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문제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2023-08-01

기후 위기는 현실이다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NCEP)가 2023년 7월 4일이 1979년 위성 관측 이래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날이라고 발표했다. 불과 하루 전인 7월 3일에 17.01℃로 최고 기록을 기록했으나, 하루 만에 17.18℃로 다시 바뀐 것이다. 문제는 2023년에 더 더운 날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류는 한 번도 가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지금 인류가 만나고 있는 이례적인 기후 현상은 몇 해 전부터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2020년 초 호주의 대형 산불로 희생당한 코알라와 캥거루의 사진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2021년 서유럽, 특히 독일이 홍수로 큰 피해를 겪었으며, 2022년 방글라데시는 10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당연히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5월, 해외 IT업체의 7월 한국에 사흘을 빼고 모두 비가 내린다는 기록이 널리 공유된 바 있다. 그리고 7월이 절반 이상 지난 지금, ‘장마 괴담’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여기서 정확히 사흘을 빼고 비가 모두 왔느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이상 기후로 한국의 7월에 예년과 다르게 비가 지속되고 우박이 동반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주 전국적인 호우로 도로가 붕괴하고 제방이 유실되어 시민들이 긴급대피하고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우리는 이미 작년의 집중 호우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경험을 한 바 있다. 똑같은 일이 더 큰 규모로 올해도 반복된 것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 삶을 통째로 뒤바꾸는 사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후 문제를 피부로 실감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학이나 취업, 연봉 인상 등 경제적인 문제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론은 늘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재난 영화의 논리로 수렴된다.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고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기업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가진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ESG 대학’을 실천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SG 경영은 성장 중심의 정책을 보완하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기후 위기는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만든 결과이다. 뒤집어 말해서 기후 위기를 막아내려면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제의 방향성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탈성장은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고 다른 존재와의 근본적인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성장 중심의 경제가 만든 위계와 경쟁의 구도를 생각한다면, 탈성장이 가지는 문제의식이 가지는 함의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기후 위기는 생존을 위협한다. 더 많은 생명을 잃기 전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2023-07-18

울릉도 탐방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주 우리 대학 신문방송사 울릉도-독도 특별취재팀에 동행했다. 울진의 후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입도하여 다시 독도를 다녀오는 3박4일 일정이었다. 취재 일정이 전국적인 비 예보와 겹쳐 출발 전날까지도 마음을 졸였지만, 출발 당일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5시간 동안 배를 타고 힘겹게 도착한 울릉도는 쌓인 피로를 한 방에 날릴 만큼 아름다웠다. 울릉도는 화산 활동으로 조성된 섬이라 평지가 거의 없고 아찔한 도로가 많았다. 가파른 경사의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돌아 나가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숲과 바다의 자태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의 풍경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은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을 잊게 했다.그렇게 울릉도의 풍광에 취해갈 때쯤 산의 절반이 깎여 노출된 황토색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비행장 건설 현장이었다. 비행장이 건설되는 지역의 한 평당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이 울릉도를 찾기 위해 비행기가 꼭 필요한 것은 5시간 배를 타고 오면서 이미 절감한 사실이다. 공항이 완성되면 울릉도민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의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자연을 개발하여 문명을 만들어냈던 근대화의 방식이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찜찜한 마음을 거두기 어려웠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후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장되는 시기다. 경제성장=근대화의 논리로 전개된 한국의 지난 50년 역사의 결과,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빈부격차, 가족주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함축된 것으로, 그간의 성장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취재의 하이라이트 독도에 가기 위해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 수많은 태극기가 눈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와 반일 감정의 연쇄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태극기=반일=독도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눈앞에서 확인하니 찜찜했던 마음은 꽉 막혀버렸다. 우리는 왜 특정 순간에만 이렇게 애국자가 될까. 대체 애국이란 무엇일까?최근 대통령은 일본과의 불편한 과거를 정리하고 발전적 미래로 나아가자고 외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식민지 경험을 과감하게 털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정리를 위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기본이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근본은 경제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과거 일본의 조선 침략도, 대통령의 과거 청산 논리도 모두 경제성장이란 전제 위에 서 있다. 그 논리를 어떻게 넘어설지가 관건이다.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울릉도-독도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국가, 인간과 인간의 경계 짓기가 근대의 방식이라면 그 경계를 거두는 것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2023-07-05

사교육과 마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사교육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는 오후 2시에 학교를 마친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의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초점은 ‘교육’에 맞춰지게 되었다. 영어는 기본으로 배워야 하고 활동적인 아이 특성을 고려해서 체육 활동도 넣어주고, 아이들의 감수성 발달에 좋은 피아노나 미술 같은 예술 계열 교육도 빠질 수 없다. 대충 이렇게 일주일 사교육 일정을 짜게 되면 월 80여만 원 정도가 된다.당연히 아내와 나는 이게 올바른 방향인지 질문한다. 초등학교 사교육비가 이렇다면, 중·고등학교는 어떤 상황일지. 그렇지만 사교육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사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게 할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이 사교육을 끊지 못하게 한다. 수도권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특목고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따로 존재하고, 부모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끌려가게 된다고 한다.지난 3월 발표된 통계청의 ‘2022년 초중고교 사교육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사교육비는 26조로 역대 최고액을 돌파했다. 흥미로운 점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 2년 동안 전년도 대비 34%나 급격히 증가한 사실이다.아이를 낳지 않아서 학생 수는 감소하는데 사교육비는 증가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결과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거나 1명만 낳는 현실을 반영한다. 뒤집어 말해서 젊은 세대가 아이를 2명 이상 낳기 위해서는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최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시 사교육비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에서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지시한 대통령의 말을 교육부 장관이 쉬운 수능으로 이해해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 늦게나마 사교육비 문제를 대통령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발언이 문제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대한민국은 1970년대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했고 이후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팽창해서 지금에 도착했다.정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사교육 금지정책을 폈음에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분석이나 했을까?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의 말이나 정책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누적되고 얽힌 문제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마 우리 집도 사교육을 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선 서울에 가지 않고 지역에서 상대적 자유를 느끼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수도권에서 더 큰 사교육 시장의 굴레를 벗어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냐이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우리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2023-06-21

디지털 리터러시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챗 GPT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뜨겁다. 2022년 11월 처음 공개된 챗 GPT는 5일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세계인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난 지금 챗 GPT가 상징하는 생성 AI의 연구와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AI가 열어젖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지금은 잊힌 감이 있지만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당시에도 ‘인류의 위기’까지 거론될 만큼 시끄러웠다. 많은 대학에서 ‘코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며 컴퓨터 언어를 익히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일로 홍보했다. 그러자 초등학생까지 코딩 과외가 유행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AI가 뒤바꿀 인간의 미래를 질문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 y)’ 개념이 있다. 리터러시(Literacy), 즉 읽고 쓰는 능력의 디지털 버전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보를 이해하고 디지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도 2022년 신입생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 강화를 목표로 파이썬 프로그램 등을 가르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코딩을 할 수 있는 문과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의 스펙으로서 말이다.하지만 생성 AI의 등장은 프로그램 언어를 모르는 프로그래머를 만들 수 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AI의 진화는 계속되어서, 지금 이런 형태의 AI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등이 AI 개발을 6개월 중단하자는 서한에 서명했다는 뉴스는 속도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갖는 위험성을 반증한다. 비록 AI의 진화 속도를 인간의 힘으로 누르더라도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AI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 속에 들어가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질문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컴퓨터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의 빠른 진화로 변화하는 현실문화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좀 더 명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속도, 그 자체를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문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 향상에 있었다. 물론 당시는 활자 문화 시대의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텍스트를 읽고 비가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힘들을 인식하고 교직하며 글로 쓰는 행위는 디지털 시대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챗 GPT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는 고도의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이공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복잡성을 연결하여 근본을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단순하게는 챗 GPT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