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암기’가 아니라 ‘사고(Thinking)’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편이기에,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생각을 알고 싶은 까닭이다. 2010년대 초반 초보 강사 시절에는 엉뚱한 답이라도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학생이 많았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는 모르겠다거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에는 질문을 하면 시선을 피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나와 눈이 마주치면 혹시라도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거나, 질문을 받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는 학생들을 혼내기도 달래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더 이상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학기가 학생들에게 질문하지 않기로 한 첫 학기였다. 처음에는 괜한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정해진 시간만큼 강의만 하고 나오니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선생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깊어진 까닭이다.지난주 수업 시간에 소설 분석이란 줄거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로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란 설명을 했다. 지난주 소설의 서사를 잘 보여주는 ‘침묵의 카르텔’을 소개하다가, 문득 강의실 상황이 적절한 예시인 것을 알았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으면서 누군가의 말하기를 막고 있는 상황을 ‘침묵의 카르텔’로 설명하자, 순간 학생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학생들이 왜 웃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모두가 알면서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선생이 말했기 때문에 터진 웃음이라고 짐작할 뿐이다.흥미롭게도 그 잠깐의 웃음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많은 학생이 입을 열지 않았지만, 평상시 주위의 눈치를 보던 몇 명의 학생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발언하는 학생이 하나, 둘 더 늘었다. 그들은 다소 서툴렀지만, 천천히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 소극적인 학생이 늘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눈에 보인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고등학교 시절 좋지 못한 성적은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만든 단절은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어느 학생의 말처럼, 이제 대학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지도 모른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르치는 일은 이전부터 대학 교육의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다르다.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이전에 억눌려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들도 자기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싶다. 다만 어떤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서 말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작은 웃음이 반복되고, 조급하지 않게 학생들의 말을 기다려 줄 때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