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새해 목표를 꾹꾹 눌러쓰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한 살을 더 먹는 행위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다. 달력이 바뀌는 차이보다는 어제와 내일의 연속성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5년 전,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수도권·지역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지역 대학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지역은 삶의 터전이다. 거의 모든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기에 왕복 8시간을 들여서 힘겹게 다녀오는 기간이 5년을 넘었다. 그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이제는 서울의 높은 건물과 복잡함에 머리가 아파서 학술대회가 끝나고 집에 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나의 힘겨운 상경을 알지 못하는 수도권 연구자의 말에서 받은 상처도 포함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벗어난 공간에서 살아가며 공간의 위계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가 최근 몇 년 새해 목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 놓인다.
새해에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이 ‘글로컬 대학 30’이다. 이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혁신 의지가 있는 지역 대학 30개 학교를 지원한다. 지방 정부와 지역 대학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혁신과 자율, 지역 중심이라는 멋진 말에 지역 대학 소멸론, 출생률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었고 1차로 10개 대학이 선정되었다. 이 대학들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지역의 미래에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내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웹진의 글로컬 대학 특집을 기획하고 원고를 받았다. 그중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글에 감탄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1980년대 거제는 조선소가 본격적인 가동을 하며 지-산-학이 일치되는 도시가 되었지만, 조선업의 몰락이 곧 도시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거제에서 산업은 발전했지만, 문화는 삭제되었고 이것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산-학을 내세우며 시작한 ‘글로컬 대학 30’의 미래는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진정한 ‘글로컬 대학’을 위해서 ‘인서울’의 ‘학벌순’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이 지역으로 옮겨야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그저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학벌주의와 지역 대학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새해지만, 특별함이란 반복되는 일상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뒤집어 볼 때 생긴다. 자조나 냉소가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할 때 특별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어느 연구자의 상상력이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