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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의 몰락

등록일 2023-09-12 18:08 게재일 2023-09-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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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종종 누구는 어디를 가서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의아했다. 방학을 이용해서 갈 수도 있을 텐데, 학기 중에 결석까지 하며 갈 이유가 무엇일까? 이 주제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개근 거지’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단어의 어감에서 짐작하듯 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니는 학생을, 가난해서 학교만 다닌다고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옛날 개근상이 근면 성실의 상징이었다면 이제 개근상은 가난한 집안 환경을 드러낼 뿐이다.

물론 부모 책임하에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체험활동의 교육적 의미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것이 현실에서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 차별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집도 학기 중에 어디를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스템은 개인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결과 학부모들에게 공교육은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용하는 대상이 되었다. 현장학습 제도가 오롯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매개가 된 것은 분명하다.

서이초 선생님의 극단적 선택 이후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연이은 비극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각기 조금씩 구체적 사연은 다르지만,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으며 학교 당국의 무관심이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특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이 보도되고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기사를 통해 보건대, 언론의 보도가 도화선이 되어서 그간 잠재되어 있던 분노 혹은 억울함의 감정이 폭발된 것이다. 지금의 공교육은 좋은 선생님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어느 교사의 인터뷰가 가슴에 꽂힌다.

우리 사회는 공교육의 붕괴라는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 해결을 위한 첫 단계인 원인 분석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에 연가 혹은 병가를 쓰는 선생님을 징계하겠다는 교육부의 태도나 선생님의 자살이 정신력 문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 사회가 공교육의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공교육의 권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는데, 선생님들에게는 이전 시대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지금의 공교육은 교육 서비스업의 하나가 되었다. 이미 대학은 오래전부터 ‘소비자 만족도 조사 1위’를 홍보문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초등·중등교육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대학 입시에 영향을 주는 생활기록부 작성이 끝나자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정상적인 학사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는 현실은 또 다른 사례이다. 이제 선생님은 월급을 받고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대상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현장을 지키라는 교육부의 외침은 공소하게 들려올 뿐이다. 교권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교육을 대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습화된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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