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F(Science Fiction)를 좋아한다. 암울한 기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생각하는 순간이 무척이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20년대 한국 문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SF소설의 위상은 고무적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소수만의 전유물이었던 SF의 인기는 우리 사회가 기술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했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후부터 즐겨 읽는 작품 목록 중에는 미국의 SF작가 할란 엘리슨의 ‘제프티는 다섯 살’이 제일 위에 놓인다.
이 소설은 스물두 살이 된 도널드의 시선에서 여전히 몸과 마음이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친구 제프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 도널드와 제프티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다. 도널드가 자신의 TV 판매점에 몰려든 손님을 상대하다 극장을 향해 출발할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제프티는 공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결국 제프티는 혼자 극장으로 갔지만, 뒤늦게 도널드가 갔을 때는 동네 아이들에게 맞아서 신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도널드는 다섯 살에 머물러 있는 제프티를 철저히 외면하는 그의 부모님을 목격하며, 정말 ‘현재’가 ‘과거’보다 진보했는지를 절규하듯 물어본다.
지난 토요일은 둘째 아이 유치원의 가족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운동회를 마치고 첫째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했다. 총 여섯 명의 아이는 술래잡기, 얼음 땡 놀이 등을 했다.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정말 힘껏 논다. 어른이 보기엔 비효율적인 놀이를 즐겁게 반복하며 아이들은 금방 땀을 흘리고 서로 잡기 위해 뛰면서 눈을 마주치면 뭐가 좋은지 큰 소리로 웃었다. 비록 언니들의 세계에 끼어들진 못했지만, 둘째 아이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온전히 노는 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른의 세계는 어떤가? 나는 조금 뛰어다니자 지쳐서 그늘로 들어갔다가, 아이들이 부르면 다시 놀이터로 나가길 반복했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시계를 살펴보며 집에 갈 시간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제프티는 다섯 살’을 떠올리고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본 것은 확실했다.
‘제프티는 다섯 살’을 학생들에게 읽히면 흔하게 나오는 반응이 과거를 ‘복고’로 해석하며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가 ‘과거’보다 정말 진보했는가? 라는 도널드의 질문을 우리에게 되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어린이의 시간은 효율과 능률이란 어른의 논리가 아니라 자기의 본능에 충실한 삶을 만든다. 어린이의 시간을 공유하며 만드는 진보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진보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