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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광복을 기다린 대구·경북 독립운동 지사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대구·경북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곳이다. 2021년 7월 현재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전국 독립운동 유공자 1만6천685명 중 대구·경북 출신은 2천292명(13.74%)으로 서울·경기 출신 1천400명(8.39%)보다 월등히 많다. 또한 1910년 한일 합방을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정 순국자 70여 명 중 18명이 이 지역 출신이다. 왕산 허위나 육사처럼 옥중에서 순국한 사람도 여러 명에 이른다.대구·경북에는 한일합방 전후 여러 갈래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 지역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은 1894년 안동의 갑오의병에서 시작되었고 달성의 문석봉은 을미의병 시 의병장이 되었다. 1907년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일제 강점 이듬해 1911년 안동의 이상룡과 김동삼, 구미의 왕산 허위는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일제 강점 하에도 대구 달성공원에서는 1915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밀 무장 단체인 광복회가 창설되었고 박상진, 우재룡, 권영만은 이 조직을 이끌었다.대구의 3·1 운동인 3·8 만세 시위운동은 대구의 이갑성, 이만집, 김태련 등이 주도하고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경북도내 전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다. 성주의 혁신 유림 김창숙, 대구의 이봉로 등은 독립청원서를 파리에 보낸 장서 운동을 주도하였다. 대구 출신 이종암은 망명하여 의열단의 부단장이 되고 의열 단원 10명 중 5명이 이 지역출신이다. 상해 임정에서도 이상정, 현정건 등 여러 명이 중책을 맡고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백기만 등 대구 문인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대구 달성공원과 두류공원, 앞산공원에는 독립운동가의 기념비가 즐비하고, 안동, 문경, 의성, 성주 등 여러 지역에도 독립운동 기념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성주의 백세각 항일 의적비, 영주의 광복 탑, 영천의 산남의진 기념비 등이다. 대구의 국립 신암 선열공원은 전국 유일의 독립 유공자 묘지로 조성되었다. 대구 망우당공원에는 광복의 아침을 맞게한 조양회관이 이전 복원되었고, 대구·경북 항일 독립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대구의 상화 형제 기념관, 희움 박물관, 구미의 왕산 기념관, 안동 독립기념관은 이 지역의 소중한 기념관이다.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위대한 항일 독립 정신을 계승할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항일 유적을 찾아 잘 보존하고 그들의 항일 독립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지난 2019년 이 지역에서도 3·1 운동과 상해 임정 100주년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렸으나 모두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대구·경북의 관련 단체는 이 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하고 이들의 정신계승 사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그것이 극일(克日)의 길이고 이 지역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2021-08-17

윤석열과 최재형의 정치실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 핵심 사정기관 책임자였던 두 분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개혁과 조국 교수 일가 수사 과정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탈 원전관련 감사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두 사람 모두 임기 중 공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들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후보 중 1, 2위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 초년생이며 정치 신인인 셈이다. 과거 정치 경험이 없는 이회창, 고건, 반기문 등도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은 과연 대권 도전의 정치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이 두 분의 정치 행보에는 우선 유사점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료 출신이면서도 몸 담았던 문 정권을 강력히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점이다. 이들의 대권 도전을 열렬히 환영하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공직자의 책임을 버린 배신자라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대체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불만이 누적된 야당 지지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에 대한 지지는 기존 야당 후보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지지율은 계속 유지될 것인가 일부의 관측처럼 폭락할 것인가.두 후보의 출신 배경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윤 후보의 부친은 대학 교수, 최재형 후보는 전쟁 영웅 대령 가정 출신이다. 두 사람 다 남이 부러워하는 소위 금수저 출신이다. 이들은 검사와 판사 시절부터 원칙과 소신이라는 강직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출신 배경은 앞으로 상대할 여권 유력 후보들과는 대조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화전민에다 소년공 출신으로 독학하여 성공했고, 이낙연 후보 역시 빈농의 언론인 출신이다.정치 신인인 두 후보는 정부에 대립각을 세워 비판하고, 정권 교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정치 신인인 이들은 기성 야당 정치인들에 비해 신선감은 준다. 그러나 자신들이 구상하는 확고한 정책비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최근 잦은 말실수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20시간 노동시간 발언에서부터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발언까지 연일 구설수에 올라 있다. 최재형 후보 역시 출마 기자회견에서 산업 규제법이나 대북 정책 현안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하고 사과만 했다. 대선후보의 잦은 말실수나 무지는 후보의 이미지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후보 자질이 하루아침에 개선될 수 있을까.현재 국민의힘 경선에는 13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경선이 시작되면 두 분은 초반부터 후발 후보들의 공격 타깃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가 현재처럼 현저할 때는 갈등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정치 초년생인 이들이 후보 검증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할 지는 의문이다. 당내에서부터 후보들 간의 송곳 검증이 예상되고 있다. 대선 후보 윤석열과 최재형은 이제 오월동주 신세가 되었다. 윤석열의 ‘타이슨 식’ 정치와 최재형의 ‘선비 형’ 정치는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2021-08-11

성공한 탈북자와 실패한 탈북자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런 저런 사유로 탈북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이들 탈북자들은 북한 이탈주민, 새터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통합 과정은 통일 국가의 미래라 볼 수 있다. 이들의 남한 사회 정착이나 사회 적응 문제도 주요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탈북자들은 입국 후 12주간 하나원 교육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우선 교육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배우게 하려는 목적이다. 교육 수료 후 이들은 전국 각지에 배정되어 첫 출발을 한다. 이들도 대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배치를 희망하지만 지방에도 많다.내가 만난 새터민 중에는 남한 사회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대부분 남한의 자유 경쟁체제에 빨리 적응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엔 북한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토대로 남한에서도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직접 만나 대화까지 나눈 황장엽 선생은 상당한 예우를 받다 돌아가셨다. 식사를 같이한 조명철 의원은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현 국회에도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과 지성호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한 정치인 이상의 정치 감각을 보인 점이다.일전에 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탈북민 출신 두 명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남한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북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도 교수 재직 시 북한의 교수 출신 C의 멘토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 역시 식당 알바 등 고난을 거쳐 학위취득 후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주식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북한 음식으로 서민 갑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이 3만5천명 중 남한 사회 정착의 성공적인 모델인데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탈북자 중에는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도 방황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들 중엔 임대 아파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기초 생활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남쪽의 지나친 경쟁체제에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 중 20여명이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북한의 일류 김책공대 출신이면서 단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미국 이민계획이 성공했는지 알 길이 없다. 평양 출신 여성 K는 중국에서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왔다면서 재입북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모두 남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서독은 과거부터 동독 탈출자의 경력을 인정하여 서독 취업을 적극 알선해 주었다. 600여만 명의 동독 출신의 서독 탈출 행렬이 독일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토로한다.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더욱 괴롭다고 호소한다. 그들 중엔 외국인 노동자 보다 대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조선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와 시민 단체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2021-08-04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등락 변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은 20% 후반 박스 권을 형성한 지 오래다. 그의 지지율은 한때 윤석열 후보에게 밀리기도 했지만 현재 여당 후보 중 단연 1위이다.지난 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를 다소 앞서는 결과도 있었지만 이낙연 후보에 쫓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집권 여당의 6명의 당내 경선 주자 중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오는 10월 초 당내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수 있을까. 여야 후보를 포함한 지지율에서 그는 20% 대의 박스 권을 탈피할 수 있을까. 그의 지지율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점검해 본다.대선에서 대결구도, 인물, 정책비전은 지지율의 등락을 좌우하는 기본 변수이다. 이재명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의 추격을 받고 있다. 당내 경선 구도에서 그는 친문이 아닌 비문이다. 민주당 적통성 시비는 당내 경선에서 그가 다소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말기의 친문 후보가 경선에서 반드시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다. 당내 의원들의 확보는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만 아직도 그 세력 분포가 분명치 않다. 호남 지지율은 경선 뿐 아니라 결선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낙연 후보의 지지율은 호남에서 반등하는데 이재명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유지될 것인가.인물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평가이며 지지율 변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재명 후보의 ‘흙 수저’, 비주류의 저항적 이미지는 지지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경북 안동의 화전민 출신, 국졸 후 여러 공장의 소년공 신세, 검정고시와 사법 시험 합격은 그의 입지전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삶은 개천에서 용 나는 세대의 마지막 성공 신화이다. 그러나 그의 삶의 궤적이 지나친 자신감과 독선적 리더십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의 여성 스캔들과 형수 욕설 등 도덕성 문제를 그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대선후보의 정책적 비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선거판이 혼탁하고 과열될수록 정책은 뒤로 밀릴 수 있지만 선거전의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담보하기 위해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구호를 전면에 걸었다. 그의 ‘기본 소득’ 공약은 앞으로도 정책의 쟁점이 될 소지가 커서 지켜볼 사안이다. 그의 시원한 사이다 발언은 상당한 호응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바지 발언’이나 ‘백제 관련 발언’은 그의 사이다 발언을 상쇄시킨다.후보의 지지율은 수시로 변한다. 그는 10월의 당내 경선의 관문을 통과하고, 내년 3월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는 앞서 제시된 변수들만 잘 대처한다면 일차 관문인 당내 경선은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급변하는 이 나라 선거판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돌발 변수는 판세 분석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호남 표심의 향배, 정부 정책 실패에 정책적 대안제시, 야권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따라 그의 정치적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선거전의 대결 구도를 지켜볼 뿐이다.

2021-07-28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하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모두 대선 예비 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여당은 경선 컷오프에서 후보 6명만 확정했다.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한때 고공 행진한 적이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퇴임 전에도 이미 대선 후보로 확정된 셈이다. 그에 대한 지지율이나 적합 도는 50%를 넘어 타 후보를 압도했다. 그는 지난 3월 3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6월 29일 정치 선언 후 예비후보로 등록까지 했다. 대선 후보 지지도 부동의 1위였던 윤석열의 지지율은 지난주 처음으로 20%대 후반으로 내려앉았다. 어느 조사에서는 이재명, 이낙연 양자 대결구도에서도 밀리기도 했다.여론은 수시로 변하지만 그의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사실이다. 고공행진을 하던 그의 지지율이 급락한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윤 후보의 어정쩡한 정치적 행보가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후보는 아직도 자신의 확고한 둥지를 선택하지 못했다. 그는 국민의 힘 입당을 미루고 당 밖 제3지대에서 외곽전을 벌이고 있다. 여전히 ‘나의 길’을 고집하다 최재형에게 입당의 선수마저 빼앗겨 버렸다. 한국 정치처럼 진영 간의 깊은 골에서 좌고우면하다 입당 기회를 실기한 듯하다. 선택의 딜레마 상황은 양측으로부터 동시 비난 가능성이 높다.둘째, 그가 문재인 정부의 독단성만 강조하다 정작 그 자신의 정책 비전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 노출을 위해 정부 정책의 대척점을 찾아다녔다. 탈 원전에 반감을 가진 서울대 원자력 교수실 방문에 이어 카이스트 대학원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전 국립묘지 천안함 희생자 묘역을 찾아 안보의 맹점을 부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그늘지고 응어리진 취약 지점은 찾았지만 그 자신의 정책 비전은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 신인 윤석열 다운 정책 비전이 분명하지 않을 때 그에 대한 지지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셋째, 그의 지지율 하락에는 가족의 비리 의혹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장모 최씨는 요양병원 부당 지원금 수령 의혹으로 3년 구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처에 대한 줄리 의혹과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은 윤 후보의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켰다. 물론 법리적으로는 결혼 전 일이라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가족 관련 6개의 의혹 사건이 남은 상황은 그의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흑색선전과 네거티브가 판치는 한국 대선 풍토에서 가족의 비리 의혹은 치명적인 악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의 야당 입당 유보, 정책비전의 부재, 가족 비리 의혹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선거에서 대결 구도, 정책, 인물이라는 3요소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 구도 면에서 그는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립각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도 확고한 둥지는 마련치 못했다. 유권자의 표심을 끌기 위한 정권교체는 강조하지만 정책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인물은 결국 후보의 이미지인데 그의 공정한 포청천 이미지는 가족비리 의혹으로 상쇄되고 있다. 그는 산토끼 여러 마리를 잡으려다 확보한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2021-07-21

북한 당국은 ‘한류’ 막을 수 있을까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류(韓流)란 한국을 상징하는 음악, 영화, 춤 등 문화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우리의 한류가 아시아 뿐아니라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어 자랑스럽다. 여러 해 전 필리핀 어느 섬 마을을 찾았을 때 어린이까지 우리 일행을 알아보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숨어 버렸다. 월드컵의 ‘붉은 악마’를 연상했던 모양이다. 베트남에서 한국 인기 드라마가 방영될 때 거리가 조용하단다.얼마전 BTS의 K팝이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중국에서 인기 있던 한국 드라마가 압록강을 넘어 북한 땅에 보급된 지 오래다. 한류라는 문화는 국경의 장벽까지 허물고 있다.종편의 ‘이만갑’프로를 즐겨 본다. 구사일생으로 남쪽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흥미롭다. 탈북 출연자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국경선을 지키던 군인에서부터 평양의 기자, 당 고급 관료, 외교관, 무역 일꾼, 운동선수, 철도 안내원, 가수, 한의사, 협동 농장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 출연자 대부분은 탈북 전 남한 드라마를 접했던 사람들이다. 북한에서 한류를 포함한 남한 문화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 정착 탈북민들은 생존의 본능으로 남한 문화에 대한 흡수력이 대단히 빠른 듯하다.북한에의 한류는 장마당을 타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김정은 정권 하에서도 북한 젊은이들은 남한의 한류를 통한 문화에 매료되고 있단다. 이를 적발해야 할 공안원들까지 남한 CD를 돌려 본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북한의 MZ세대들은 남한의 의상, 화장은 물론 말투까지 따라하는 경향이 증대한다. 북한의 시장 경제와 600만대의 휴대 전화는 한류의 전달매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압록강 두만강 주변 북한 주민들도 중국을 경유한 남한 텔레비전까지 비밀리 시청한단다. 탈북자 중 일부는 북에 있는 가족에게 돈까지 보내고 확인 통화까지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북한 당국은 정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북한 주민들의 말투까지 단속에 나섰다. 그들은 2020년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만들어 한류를 차단하려고 한다. 동법 27조에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동단련형 또는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편을 ‘오빠’, 남자 친구를 ‘남친’이라 부르는 사람은 단속 대상이다. 노상에서의 남녀의 애정행각은 ‘혁명의 원수’로 간주된다. 오스트리아에 유학해 서구 자본주의 문화 폐해를 체감한 김정은이 주민들의 비사회주의적 요소를 막겠다는 취지이다.그러나 북한 땅에서 한류의 원천 차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의 본능에 따르는 자본주의적 욕구는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해방 전후 우리 남한에도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서양 문화를 엄격히 배격하였다. 여인들의 립스틱 사용도 서양 춤도 한동안 금기시 되었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됐다. 북한 땅에 코카콜라가 상륙한 지 오래다. 내가 들러본 금강산 북한 노래방에는 남한의 트로트까지 부를 수 있었다. 평양에는 영업용 택시가 즐비하고, 오렌지 족까지 등장했다. 호기심 많은 북한 청소년의 문화적 취향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21-07-14

대선후보의 ‘공정 사회’ 담론 평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 대선 후보 20여 명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졌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출마 선언은 ‘공정 사회’ 건설에 집약되고 있다. 대체로 대선 후보의 공약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해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여당 이재명 후보는 ‘공정과 성장’을 통한 ‘희망민국’ 건설을 약속했으며 야권의 윤석열 후보는 ‘공정과 상식’을 전면에 걸고 있다.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는 공정의 가치실현을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도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사람 우선의 사회’가 공정의 가치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반증한다.10여 년 전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사회 철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당시 ‘정의란 무엇인가’란 저서로 일약 유명해진 그는 한국 방문길에 우리 대학 초청 특강에도 응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의 ‘공정 사회’ 공약도 결국 정의 문제에 귀결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의 그늘 아래 아직도 ‘불공정’ 관행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내가 하면 공정이고 네가 하면 불공정’ 인 ‘내로 남불’ 사회이다. 아직도 가진 자의 횡포가 계속되는 곳에 공정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정의사회, 공정사회의 담론은 철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롤즈는 자유의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기회 균등과 차등의 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는 입장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중과하여 해결한다는 것이다.반대로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는 국가가 개입하여 적극 지원한다는 보상 평등주의적 입장이다. 여기에 더하여 왈저는 공정사회는 경제적 가치와 다른 가치도 존중하는 복합 평등주의를 주창한다. 그는 경제적 가치인 돈이 정치, 문화, 교육, 종교까지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노직은 공정사회는 ‘완전한 자유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롤즈를 비판한다. 개인의 소유권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경쟁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성장을 보장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부자에 대한 과중한 세금을 반대하고 국가의 역할은 시장에 관여하지 않고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적극 옹호하는 미국 보수 우파의 정신적 토양이 된다. 미국 공화당 트럼프 같은 미국 우선주의, 극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선출케 하는 배경이다.이 같은 석학들의 공정 담론은 각기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이재명의 억강부약(抑强扶弱)은 평등을 강조하는 롤즈의 복지론에 가깝고, 윤석열의 약탈 정권의 자유 회복은 노직의 보수론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라는 퇴행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있다. 우리 공정 담론은 이제 형식적 정치적 담론을 넘어 절차를 중시하는 민생 담론으로 넘어가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공정사회 담론이 공약(空約)이 아닌 실질적 담론이 되길 바란다. 유권자들은 이재명과 윤석열의 공정담론의 진정성과 이행 가능성을 엄밀히 살펴야 할 시점이다.

2021-07-07

이준석 현상, 새로운 리더십의 과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6세의 이준석이 보수 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준석은 나경원, 주호영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대표로 취임하였다. 개혁과 진보를 앞세운 민주당에서도 볼 수 없던 돌발 사태가 보수 야당에서 발생한 것이다.30대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이 나라 정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국회의원 한 번 하지 않은 이준석 대표는 과연 보수 야당의 개혁을 잘 이끌 것인가. 그는 과연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 교체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안철수 현상처럼 거품으로 흐지부지 끝날 것인가.우선 이준석 현상이 등장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준석의 당선은 돌출현상이 아닌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결과이다. 이 나라의 고질적인 서열의 정치, 진영의 정치, 구태의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불러온 불가피한 현상이다. 특히 보수 야당은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여당 역시 폐쇄정치, 내로남불 정치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여야 공히 계파 정치, 꼰대 정치는 정치의 효능감을 상실케 하고 그 누적된 불신, 불만이 30대 정치인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이준석의 당 대표 취임 후의 행보는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그의 첫 출근시의 자전거 이용은 당대표의 전통적 격식마저 파괴해 버렸다. 그는 박근혜의 키즈임을 자임하면서도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하여 야당의 난제였던 탄핵의 강을 건너뛰었다. 그는 광주를 찾아 5·18의 원혼을 달래고, 노무현의 묘소를 찾아 그의 정치적 업적까지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공약대로 당 대변인 선발을 토론 배틀 방식으로 채택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당직인선도 무사히 마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러한 30대 이준석의 정치 행태는 정치권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제 1야당은 그간 당의 위기 시마다 비대위 체제를 가동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박근혜 탄핵 후에도 계파 정치는 겉으로 희석되었으나 내부 분란은 잠재되어 있었다.이준석 등장은 야당의 수구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당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이준석의 당대표 취임은 야당뿐 아니라 집권 여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 내 초선의원들의 입지는 강화되고, 청와대도 20대 비서관을 임명하였다. 결국 이준석의 당대표 취임은 한국정치의 ‘세대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를 견인케 하고 있다.이준석의 새로운 리더십은 지속될 것인가. 과거 안철수 현상처럼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란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준석은 우선 당 대표 경선에 나타난 민심과 당심의 이반 공간을 잘 메꾸어야 한다. 후보 경선과정을 공정 관리하여 그의 리더십을 보다 확충해야 한다. 결국 그는 내년 대선에 승리해야 한다.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그 역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격변하는 이 나라 정치에서 30대 당대표의 리더십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2021-06-30

어느 프랑스 신부가 체험한 한말 사회 풍경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해 ‘플로리앙 드망주 주교의 서한집’(정진주 역)이 발간되어 재미있게 읽고 있다. 1875년 프랑스 솔쉬르에서 태어난 신부는 4년제 신학교 졸업 후 바로 한반도 선교사로 파견됐다.그는 부산지역 본당신부, 신학교 교수를 거쳐 1911년부터 1938년 선종 시 27년간 대구에서 가톨릭 주교로서 봉사하신 분이다. 그는 23세에 프랑스의 부모를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소상히 편지로 보냈다. 프랑스의 부모님께 보낸 이 편지에는 100여 년 전 한말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담겨 있다.이 서간집에는 당시 주민들의 삶이 잘 드러나 있다. 부산 초량에서 시작한 그의 사목은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조선인이 대상이다. 1900년 초엽 도로도 없던 시절 그는 조랑말을 타고 대구까지 원거리 사목 활동을 한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오솔길을 하루 16시간 강행군하여 3일 만에 겨우 대구에 도착한 이야기도 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대구-부산은 당시는 무척 먼 거리였다. 그가 여행길 주막이나 여관에서 받은 밥상은 된장과 김치가 전부였으니 프랑스인인 그의 입맛에 맞을 리 없다. 당시의 시골 여관에는 호롱불만 있었고 그는 매캐한 골방의 돗자리 위에 지친 몸을 눕혀야 했단다.당시 조선에는 장티푸스와 이질이 대유행했고 치료약이 없어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선교 신부도 여러 명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도 자주 등장한다. 신부는 대구에 왔다 돌아가는 도중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단다. 며칠 걸려 대구에서 조달된 키리네 몇 방울이 늦었다면 그는 살아나지 못할 뻔했다. 당시의 한국식구들이 놓인 초라한 여관방 이부자리에는 빈대와 이기 득실거렸다.요즘의 젊은이들이 본적도 없는 이 해충을 잡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는 사연도 있다. 세계적 의료 선진국이 된 오늘의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인 당시의 사회상이다.이 서간에는 쇄국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대한제국 말기의 흔들리는 국가 운명이 잘 드러나 있다. 조선조 말기의 관료 부패는 다반사였고 양반과 관료는 주민들의 삶을 속박했다. 신부는 가난한 신자를 돕기 위해 양반관료에게 그의 취업을 부탁한 적이 있다. 오히려 그 신자가 관청에 밉보여 불려가 고초를 당한 장면도 있다.당시 관료들은 ‘네 죄는 네가 알렸다’고 곤장을 치면서 상민을 괴롭혔던 것이다. 이제 이 나라는 한말의 호위호식하는 양반 관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시아에서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으니 신이 도운 것일까.신부가 체험한 어지러운 대한제국은 결국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버렸다. 선교 목적으로 파견된 많은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대원군에 의해 땅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35년의 탄압에서 해방되고 분단된 형태지만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해방 후 우리는 세계사에 보기 드문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을 압축적으로 이룩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은 GDP 규모 세계 10위권이며, 우리 대통령은 G7회의에도 초대됐다. 이제 우리는 어려울 때 우리나라를 도운 우방들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2021-06-23

민주당은 ‘조국의 시간’과 결별해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해 조국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검찰이 조국 장관의 자택을 압색하는 희대의 장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결국 검찰 개혁을 선도했던 조국 장관은 자녀입시와 주변 비리 의혹으로 사퇴하였다. 후임 추미애 법무장관의 기용과 윤 총장의 불편한 동거는 또 다시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 윤석열 총장도 임기 몇 개월을 앞두고 ‘정의와 상식’이 사라진 정권을 비판하면서 사퇴하고 말았다. 박범계 법무장관 취임 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검찰과 개혁을 서두르는 정권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지난 주 조국 교수는 ‘조국의 시간’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가족의 피에 펜으로 써 내려간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소개했다. 이 책은 조국의 공직시절, 자신과 관련된 억울했던 사연을 소상히 담고 있다. 이 책에 대해 야당은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전 법무장관이 자신의 입장을 변명만 한다고 비판적이다. 특히 자신과 가족의 재판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저서 출간은 매우 적절치 않는 처사라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조국의 책은 ‘악성 자아도취’형 고백서이며,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조국의 입장만 확대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집권 여당의 입장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송영길 대표는 지난주 ‘조국 문제’에 관하여 고민 끝에 사과했다. 이 나라의 권력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스펙 쌓기는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상처로 남음을 사과했다. 일부 여권 대선 주자 중에는 친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조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다. 송 대표는 회견에서 조국 가족의 수사와 똑같은 잣대로 윤석열 가족을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권의 비문 측에서는 조국문제를 재론치 않고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 당이 전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결국 조국의 저서가 집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치 않고 오히려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된 시점에서 그의 저서 출간은 당내의 친문과 비문의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친문 강경세력은 조국에 대한 비판은 반개혁적이라는 프레임에 젖어 있다. 그에 비해 비문 측은 조국과 결별해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작심한 조국 비판은 경고장 수령 후 사라져 버렸다.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살려면 조국과는 결별해야 한다.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조국은 민주당이 자신을 밟고 전진하라고 요구하지만 당이 그와 연계할수록 대선구도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조국은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면서도 이제는 정권의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조국의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욕구는 그 가족관련 비리로 여지없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친문 핵심 양정철 원장까지 ‘조국을 털어내고, 문 대통령을 넘어야 재집권 할 수 있다’고 까지 했겠는가. 아무래도 조국은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 출간보다 ‘인내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을 것이다.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든 학자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2021-06-16

대북 무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기로 돌아가 버렸다.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 비방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과 보수층으로부터 대북 ‘구걸 외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부의 대북 평화 프로세스라는 정책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임기 1년도 채 남지 않는 기간에도 남북 화해의 불씨를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냉담하면서 대통령까지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무작정 북한의 호응만 기다릴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대화 제의 거부 배경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 북한의 급박한 내부 경제 사정이 대화 재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 역시 코로나 방역에 매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는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국경선 완전 통제라는 원시적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듯하다.또한 지난해의 수재와 자연재해는 북한의 농업생산량을 감소시켰다. 여기에다 김정은의 경제 개발 5개년 개혁마저 김정은이 스스로 실토한 것처럼 실패하고 인접 중국과의 국경무역량도 현저히 줄었다. 이러한 북한 내부적 위기 상황이 대외 협상력을 억압하고 있는 형국이다.북한은 과거 내부적 주민 불만을 외교적 형식을 통해 잠재우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개발된 핵전력을 앞세워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김정은 정권은 수령의 보위를 국가의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독재자 후세인이나 카다피의 말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다. 김정은 자신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한 트럼프에 대한 향수를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선미후남, 통미봉남이라는 대미 협상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러한 입장에서 북한 당국은 우리의 대북 대화 제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들은 남북 간의 어떠한 합의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실효를 못 거둔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2018년의 역사적인 판문점선언도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라는 틀 속에서는 한 치도 진척될 수 없었다. 더욱이 북한 당국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10·4 선언이 정권이 바뀜으로써 휴지가 되어 버린 점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북한당국은 남북대화보다는 미북 대화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이런 정황에서는 정부가 대북 무시 전략이나 무관심 전략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그간의 평화프로세스로 포장된 대북 화해 포용 정책을 당분간 포기할 필요도 있다. 정부는 개성의 남북 공동 사무소 폭파, 표류 남한 공무원의 확인 사살에도 유감만 표명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 당국은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은 어떤 경우라도 유지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거부하는 대북 협상보다는 우리 스스로 선제적으로 대북 무시 전략으로 기다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매달릴수록 북한 당국은 이를 더욱 외면하기 때문이다.

2021-06-09

북미 관계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트럼프 대통령 시대는 북미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 조짐이 보였다. 그것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전술인지 북한 비핵화 집념인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트럼프는 방한 시 판문점에서도 김정은을 잠깐 만났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수시로 서신을 통해 상호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결국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북한의 통치자를 최초로 인정한 대통령이 되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는 낙선했으며 북미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대북 정책이 5개월 만에 발표됐다. 그 골자는 과거 오바마 시대 대북정책기조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접근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식 탑다운 방식보다는 실무적 단계적 대북 접근방식을 통해 실효를 거둔다는 내용이다. 바이든은 대북 특사로 한국계 미국 외교관 성김을 임명하여 북핵문제를 외교적 방식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은 대북 제재는 유지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에는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협상의 공은 북한으로 넘어가고 그들의 응답이 기대되는 시점이다.북한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면 선대선(善對善)의 원칙으로 미국과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대미 협상의 최종 목적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데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하나 미국이 이를 인정치 않는다. 북한 당국은 대북 제재의 해제를 통한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당면한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의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비핵화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이처럼 북미 관계는 상호 요구 조건과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퍼즐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북한의 대미 정책 구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과거 외교 행태로 미루어 그들의 북미 협상의 선택 시나리오는 제한되어 있다. 그 하나는 현상 유지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대미 협상의 전단계로 대미 강경책을 펼칠 가능성이다. 전자는 북한이 처한 대내외 위기 앞에서 대내 결속을 다지면서 대미 협상에는 응하지 않는 전술이다. 후자는 대미 강경책으로 그들의 탄도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적 카드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문재인 정부 초기의 운전자 론이나 중재론도 작동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대미 협상 외에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방책을 견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대북 정책은 불행히도 한반도 문제의 종속변수일 뿐 독립 변수가 아니다. 우리가 북에 매달릴수록 북한은 남한 배제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도 대북 무관심이나 무시 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때로는 통중봉북(通中封北)도 필요할 것이다. 북한의 ‘우리 끼리 정신’이나 ‘민족 공조’는 그들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1-06-02

이재명과 윤석열의 운명적 대결 구도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재명과 윤석열은 수차례의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흔히 여론은 급변하기 때문에 그 결과의 예측은 어렵다지만 대체로 대선 1년 전 여론이 적중했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여야의 후보로 확정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한 치 앞을 예견하기 힘든 대선 정국이지만 이들은 결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은 민주당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윤석열 역시 그의 입당과 관계없이 압도적 선두를 지키고 있다. 대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예비 점검해 본다.인생 역정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이재명은 불우한 청년 시절 노동현장 참여와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했다. 윤석열 역시 고시의 실패와 좌절 끝에 뒤늦게 합격해 검사가 됐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시장을 거쳐 연이어 경기지사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석열 역시 검찰 인사에서 소외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공히 당직과 국회의원직을 거치지 않은 대선 후보이다. 이러한 단순한 경력 구조는 계파와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장점과 조직력의 한계라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다.두 사람이 표출하는 간결한 정치적 메시지도 공교롭게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두 사람의 국정 과제와 비전에 대한 표출 능력도 흡사하다. 이재명은 선거 캠프 격인 ‘성공 포럼’(성장과 공정)을 출범시켰다. 그의 국정 구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윤석열 역시 ‘정의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다 지난주에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민 연대를 창립시켰다. ‘공정’ 사회지향은 두 사람의 공통분모이다. 이재명은 ‘기본 소득’이라는 이슈를 선점했다면 윤석열은 엄격한 법치의 포청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여하튼 이재명과 윤석열의 메시지는 비교적 간결하고 국민적인 관심을 모으는 것이 현실이다.대선 정국에서 두 사람이 극복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이재명은 정치적 판단이 빠르고 신속한 대처 능력으로 시원한 사이다를 연상시킨다. 비상한 순발력, 결기까지 갖추어 정치 쟁점을 선점하는 능력은 인정되지만 언행이 불안하다는 비판적 평가도 따른다. 윤석열의 과묵한 표정과 뚝심, 간결한 정치 메시지 전달력은 그의 소신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검찰 수장 경력만으로 대선 후보로 적합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재명은 자신에 대한 골치 아픈 송사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윤석열은 장모의 가족 소송이 완전히 해명될지는 의문이다.현재로서는 이재명이 여권의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윤석열은 후보 선호도는 높지만 정당의 지지 지반이 어디인지 분명치 않다. 그의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국민의 힘 입당, 제 3 지대 후보, 야권 후보의 단일화 어느 것 하나 평탄한 길은 아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여야의 공천을 받아 양자 대결로 갈 것인가 아니면 3당의 후보로 다자 구도에의 선거를 치를 것인가. 앞으로의 전개 양상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대선 정국에는 돌발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9월의 민주당과 12월 국민의 힘의 경선과정을 조용히 지켜보자.

2021-05-26

북한 인권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 인권 문제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일탈성은 거론되면서도 정작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정부 당국은 북한 인권문제의 제기는 남북 화해나 협상에 지장이 된다고 금기시한 결과이다. 유엔에서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상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무관심하고 심지어 기권하는 실정이다. 경찰은 최근 북한 인권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지난 가을 북한인권 정보 센터가 ‘2020 북한인권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정보 센터의 담당자들이 탈북민들과의 개별 면접을 통해 얻은 자료이다. 여기에는 탈북자 4만8천822명에 대한 7만8천798건의 인권 실태가 누적 기록되어 있다. 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약 3만5천 명이 1건 이상의 북한 인권 문제를 폭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백서에는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 생존권, 존엄성과 자유권, 거주권 박탈 사례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탈북자들의 북한에서의 경험(40.8%), 목격(33.9%), 득문(18.9%), 확신(0.4%) 등이 증언의 근거가 되고 있다. 탈북민들의 응답이 다소의 확대나 과장은 있었지만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북한의 인권 백서에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권 박탈(60.3%)사례가 가장 많았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불법 체포와 구금, 고문과 구타에 이어 수감자에 대한 강간, 공중 매달기, 신체불구 골절, 전기충격, 열이나 추위 노출도 빈번하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주민에 대한 거주권 박탈(13.8%)은 강제 추방과 이주, 강제 송환, 여행과 이동 제한 등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생명권 박탈인데 범법자의 즉결처형, 공개, 비공개 처형, 공무원에 의한 개인적 살해, 강간살해 등(10.4%)이다. 북한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울 때는 생존권이 위협받았으나 이제 북한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생명권 박탈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북한에서 탈북자의 증가는 북한의 인권 침해가 점점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한 당국은 세습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체제에 반하는 정치범은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낸다. 북한의 소위 특별 독재구역인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침해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탈북자들 상당수가 탈북과정에 붙잡혀 노동단련소나 교화소, 심지어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대도 북한 헌법은 인민의 인권조항이 부활되어 있다.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 문제에 보다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독일은 1961년부터 1990년 통일시까지 동독의 인권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도 북한의 인권 문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 인권의 단순한 폭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대북 대화나 협상에 현실적인 장애가 된다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1-05-19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카소(1881∼1973)의 한국 전시회가 개최중이다. 천재 화가의 110여점의 작품 전시에 미술 애호가들이 모여들고 있다.오래전 유럽 여행길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찾은 적이 있다. 그 언덕 위 성당 옆 프랑스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 파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피카소도 한때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했다는 장소이다. 피카소가 자주 찾았다는 길가의 어느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했다.피카소는 스페인 출신 화가이다. 그는 파리에서 그 특유의 입체파 예술혼을 키웠다. 자유분방한 도시 파리에서 피카소는 63세인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인간 얼굴을 한 공산주의’라는 슬로건으로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을 끌어들였다. 자유분방한 피카소도 ‘계급 없고, 소외되지 않는 공산주의’이론에 현혹되어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특히 의회주의를 통한 민주적 방식의 공산 정권의 수립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 공산당은 1970년대 약 20%의 지지를 얻었으나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피카소가 그린 폭 2m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피카소는 6·25 전쟁 이듬해 1951년 이 작품을 완성했다. 프랑스 공산당이 당원인 피카소에 의뢰하여 그린 대작이다. 1950년 한국 전쟁은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파견되고 중공군이 개입되어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 그림은 총칼을 든 군인들이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4명과 어린이를 조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무장한 군인들이 약한 여성과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발가벗겨 조준하는 모습은 대단히 끔찍하다. 공산당은 그에게 미군의 전쟁 횡포를 이미지화한 그림을 요구했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피카소의 이 그림을 미군의 만행이라고 선전한바 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인민군의 양민학살은 없었다고 강변하면서 이 그림이 미군의 황해도 신천 3만명 양민 학살 사건을 상징한다고 선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미군의 학살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평가한다.오히려 스페인 출신 화가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 시 나폴레옹의 침범을 연상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피카소의 이 작품을 모작하여 소련의 폴란드 침공 비판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의 이 작품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한국 반입과 전시가 금지되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난 지 어언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6·25를 소재로 한 노래와 영화, 연극은 아직도 도처에 남아 있다. 북한당국은 선전 포스터를 통해 6·25 전쟁 시 미군의 만행을 선전하였다. 세계적인 명장의 손으로 그려진 이 그림의 작품성은 비록 낮지만 전쟁의 비극성을 표출한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명장 피카소의 그림만큼은 이 기회에 직접 볼 필요가 있다. 피소가 살아서 북한지역을 방문하였다면 어떤 그림 소재를 착상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2021-05-12

남북 백두대간 종주한 로저 셰퍼드 씨와의 만남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며칠 경북대도서관에서 백두대간 사진전 작가 로저 셰퍼드 씨를 만났다.그는 뉴질랜드 경찰관 출신이며 총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6년경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산에 매료되어 현재도 이 땅에 살고 있다. 딱 벌어진 어깨에 탄탄한 체구, 훤칠한 키는 전문 산악인의 요건을 갖춘 듯했다. 그의 사진 개막식에는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어진 사진 설명회에는 20여 명이 남아 그의 북한 백두대간 탐험 경험을 재미있게 경청했다. 북한 소식이 궁금한 현실에서 퍽 유익한 시간이 됐다.분단 이후 세계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는 한때 대구에도 살았고 지금은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에 살고 있다. 그는 2006년 남쪽의 지리산 산행을 시작으로 2011년과 2012년 북쪽 백두대간을 등반했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개마고원을 거쳐 금강산까지 등정한 소중한 경험을 가졌다. 이번 사진전에서 백두대간 종주 시 찍은 사진 50여 장을 공개했다. 그는 한반도의 산을 영문으로 번역해 서양인들에게 소개하는 하이크 코리아(HIKE KOREA)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나는 경북대 재직 중 통일관련 강의 시 그의 백두대간 종주 MBC 다큐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와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구면인 셈이다.로저 셰퍼드 씨는 평양소재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 초청으로 북쪽의 백두대간을 등행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그의 방북 신청을 거부했지만 순수하게 산을 등산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백두대간은 북쪽의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의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장장 1천700km의 방대한 거리이다.그의 이번 사진전에는 남쪽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쪽의 두류산, 백역산, 고대산, 옥련산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힘 있게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마저 끊어 버리고 말았다.그는 사진 설명회에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북한의 산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북쪽의 산간 오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도 생생하게 소개했다. 특히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의 깊은 산골의 주민들은 자연과 풍토 때문에 많이 다르다는 증언도 했다. 북한의 험준한 산에는 항일 빨치산의 요새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도 했다. 북한 산촌에는 수십 종의 수제 소주가 있고 산천어의 맛이 좋다고 소개했다. 감자를 주식으로 북한 산촌 사람들은 부족함도 만족함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설명회는 북한의 산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산하가 황폐화된 현황을 묻는 질문에 북한의 야산은 황폐화 됐지만 백두대간의 산림은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개마고원 부근의 어느 산은 바위덩이 밑으로 강이 흐르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그는 설명회를 마치면서 남북의 교류와 협력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의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한사람들이 잘 이해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뉴질랜드인 셰퍼드 씨의 입장이 몹시 부러운 오후가 되었다.

2021-05-05

김일성이 태양으로 추앙받는 나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코로나19로 지난해에 없었던 행사가 재현된 것이다.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 당 조직비서 조용원, 군 총참모장 박정천, 당부부장 현송월, 여동생 김여정을 대동하고 태양궁전에 참배했다. 김일성 광장에서는 남녀가 춤추는 야회가 열리고, 불꽃놀이 행사도 이어졌다. 김정은 부부가 참석한 특별 공연에는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벗고 관람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태양절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대내외 위기를 감추고 인민들에게 자신감을 심기 위함일 것이다.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메워져 있다. 김일성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며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창건자로 명기되어 있다. 나아가 김일성은 항일 혁명투쟁의 영도자, 불럭불가담 운동과 세계 정치의 원로, 령도 예술의 천재,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혁명가이며 조국 통일의 길을 연 위대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영원한 주석’으로 모셔야 하며, 북한 헌법은 ‘김일성 헌법’이라고 결론지어 그에 대한 우상화 토대를 마련했다.북한은 1974년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지정했다. 1997년부터는 김일성 출생연도(1912년)를 기점으로 하여 ‘주체 연호’까지 쓰고 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도 광명성절로 지정하여 경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김 부자의 위대성을 상징 조작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이다. 북한당국은 초중등 교과서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이라는 교과목까지 개설 교육하고 있다. 김일성 부자는 이미 신적 존재로 추앙받은 지 오래다. 종교가 없는 북한 땅에서 김일성은 하느님 대접을 받고 있다. 평양 거리에는 ‘김일성 수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영생의 표어까지 등장하였다.이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사회주의 창립자 모택동,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가 레닌, 베트남의 호지명, 쿠바의 카스트로도 존경의 대상은 될지언정 김일성처럼 절대적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오래전 내가 만난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까지 북한의 세습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재산 상속까지 금지된 사회주의에서 권력 상속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 전야의 반봉건주의에도 불구하고 왕조적 3대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절 행사는 북한이 사회주의적 모순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를 위해 이데올로기까지 급조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도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의 수령론이나 ‘백두 혈통’ 역시 권력 승계를 위한 반사회주의적 이론일 뿐이다. 북한의 태양절 행사가 지속되는 한 북한의 독점체제는 존속될 것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1-04-21

분노한 민심이 폭발한 4·7 보궐 선거 결과의 함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4·7 보궐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1년 전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 몰표를 주었던 민심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가혹한 심판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18%, 부산에서는 박형준 후보가 28%라는 압도적 차이로 승리했다.서울의 집권 여당 42명의 국회의원 지역구에서도 여당 후보는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다. 진보 성향의 20·30대도 집권 여당에 등을 돌렸고, 오세훈 후보는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지지를 받았다.집권 여당은 당직자 전원이 사퇴하였다. 오만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민심은 파도처럼 하루아침에도 변할 수 있다.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그간의 독선과 오만이 선거의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민주당은 겸허히 결과를 수용하고 민심 이탈의 근원을 냉철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민주당이 당규를 개정해 보선 후보를 공천한 것이 패착의 출발점이다.이번 보선이 시장의 성추행이라는 귀책사유가 분명함에도 후보 공천을 강행해 버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낙연 당대표의 시장 후보 공천은 역풍을 몰고 온 것이다.또한 5년차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번 선거의 결정적인 패인이다. 인사가 만사인데 문재인 정부의 폭좁은 인사 정책은 국민적인 화를 더욱 키웠다. 민정 수석에 발탁된 조국 교수 일가의 비행은 불만을 가중시켰다. 자녀 입시 관련 의혹, 부인과 동생의 구속 사태는 조국 개인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됐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윤미향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루한 갈등, 부동산 정책의 거듭된 실패에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유임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러한 누적된 정책 불만이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힘을 더했고 결국 집권당 패배의 요인이 됐다.필자는 LH 부동산 투기 사건 발발 시 4·7 보궐 선거는 끝났다고 단정했다. 더욱이 경실련 출신 김상조 정책실장과 박주민 의원의 주택 임대료 인상은 대표적인 내로남불로 비난받았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관련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는 불신을 더욱 증폭시켰다. 수도권의 집값은 다락같이 오르고 청년들의 일자리 절벽은 청년들을 분노케 했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마저 세금 폭탄에 정부에 등을 돌려 버렸다. 이러함에도 당·정·청은 상호 견제 장치마저 작동치 않고, 당내 민주주의는 고사해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그러나 4·7 보궐 선거 결과는 이 나라 정치 발전의 일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선거에서 항존했던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대결구도는 훨씬 옅어져 버렸다. 진보성향의 20·30대가 실리를 챙기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변신했다. 우리 선거의 고질병인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 전술이 더 이상 먹혀 들지 않았다. 이번 선거 결과는 무엇보다도 집권당의 오만이나 독선은 언제나 시민적인 저항에 부딪친다는 교훈을 남겼다. 결국 4·7 보궐 선거는 선거 민주주의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2021-04-14

예수를 배신한 제자 두 사람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세상살이에서 배신은 큰 상처를 남긴다. 인간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원수를 만드는 배신사건은 비일비재하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랑하던 사람의 배신, 제자의 스승 배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심지어 부모 형제간에도 배신은 종종 있다. 오늘처럼 각박해지는 이익사회에서는 배신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배신의 결과는 원망과 보복, 눈물과 고통을 수반한다. 얼마 전 임영웅이라는 무명가수는 ‘배신자’라는 노래로 ‘미스터 트롯’에서 1위에 올랐다. 그의 감성적인 음색도 좋았지만 그 가사가 이 시대의 아픔을 대신했기 때문이다.코로나 상황에서도 성당과 교회는 지난주 부활 축일을 조용히 치렀다.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도 두 명의 제자로부터 배신당한다. 마르코 복음에는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한 예수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어부에서 제자로 전격 발탁된 베드로의 배신이 등장한다. 그는 예수님 곁을 지키며 착실히 예수의 구원 사업을 돕던 사람이다. 예수가 총독 빌라도 앞에 불려가 재판을 받을 때 그는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당신도 예수님과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라는 물음에 그는 극구 부정했다. 예수의 예언대로 그는 새벽닭이 두 번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를 배반했다. 권력과 죽음의 공포 앞에 나약해진 베드로의 모습이다.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대표적인 배신자이다. 그는 예수가 총애하여 돈 주머니까지 맡긴 재정 책임자이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도 유다는 예수께 비스듬히 기대고 있다. 그러나 계산에 빠른 그는 은전 30냥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겼다. 이 세상에도 권력자의 측근 중 공금을 횡령한 사람은 많지만 유다처럼 주인을 팔아넘긴 사람은 드물다. 결국 그는 스승 예수의 처형 소식에 몹시 후회하고 목을 매 자살했다. 산티아고 성지 순례 출발지 성당 벽에는 자살한 유다의 비참한 모습과 그를 어깨에 메고 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조각되어 있다.결국 배신당한 예수는 재판에 회부된다. 유태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처형을 빌라도 총독에게 촉구한다. 당시 관례에 따라 빌라도가 예수의 처형 여부를 물었을 때 광장의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다. 빌라도는 예수의 방면을 제안했지만 무지하고 성난 군중들은 그의 처형을 촉구한다. 당시 군중들로부터도 배척당하는 예수님의 수난 모습이다. 역사에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군중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중우(衆愚)정치의 비극을 자주 접한다. 오늘날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의 결과가 두렵다. 부활주일을 지났지만 제자들의 예수 배반 사건이 머리에 맴돌고 있다.혼탁한 인간 세상의 배반은 흔히 엄청난 보복으로 이어진다. 악이 악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다. 혼탁한 정치판에도 배반에 대한 앙갚음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 한국 정치 역시 상대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와 같은 방식인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치 않았다. 자신의 행위를 뉘우친 베드로에게는 천국 문의 열쇠를 안겨주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유다를 원망은 했지만 보복치 않았다. 부활절은 예수의 지극한 사랑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2021-04-07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비극을 막으려면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동산 투기 비리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공기업 직원이 업무상 취득한 정보로 개발예정지 땅을 구매해 이득을 챙긴 범죄이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친인척, 지인들의 투기 규모까지 드러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그 토지 개발 공사의 사장이 다시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번 부동산 투기에 연루된 직원은 농사를 짓거나 퇴임 후를 대비했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고 국민적 분기만 탱천하고 있다.국가 수사본부는 부동산 범죄의 수사 범위를 LH뿐아니라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 하기 위해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국회의원 여러 명이 개발예정지의 토지, 임야를 매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시장, 군수와 지방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정도 드러나고 있다.국수본에 따르면 수사 대상이 536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을 받았지만 이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곧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전모가 발표되겠지만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가히 돈만 벌겠다는 투기 공화국의 참상이다. 이러한 투기광풍은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초래한다. 그 일차적 책임은 문재인 정부가 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취임 후 최악인 3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여당에 대한 지지도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현상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부동산 투기만큼은 반드시 잡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도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거품이 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정부하의 부동산 과열은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져 버렸다.이러한 부동산 투기 현상은 일반 국민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게 했다. 진보적이던 20∼30대가 반정부적 성난 세대가 됐다. 취업도 결혼도 못하고 집값만 오른 상황에서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가령 어느 청년이 취직해 매월 100만원씩 저축한다 해도 서울의 5억원 짜리 전세를 구하려면 50년이 걸린다. 그러니 3포 세대가 늘어나고 놀고 있는 니트(Neet) 족이 늘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슴에도 불을 지폈다. 평등, 공정, 정의를 앞세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인 분노가 정부와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물론 부동산 투기를 막지 못한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정권의 누적된 과제이지만 현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에서 부동산 투기방지를 위한 전 공무원 재산등록, 부당이익 환수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방책은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보장하는 것이다. 토지는 개인이 소유하되 그 개발 이익은 국민 복지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식 토지 국유화와는 다르며 이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 등에서 이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