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광복 76주년을 맞이하였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대구·경북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곳이다. 2021년 7월 현재 훈장이나 포상을 받은 전국 독립운동 유공자 1만6천685명 중 대구·경북 출신은 2천292명(13.74%)으로 서울·경기 출신 1천400명(8.39%)보다 월등히 많다. 또한 1910년 한일 합방을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정 순국자 70여 명 중 18명이 이 지역 출신이다. 왕산 허위나 육사처럼 옥중에서 순국한 사람도 여러 명에 이른다.대구·경북에는 한일합방 전후 여러 갈래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 지역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은 1894년 안동의 갑오의병에서 시작되었고 달성의 문석봉은 을미의병 시 의병장이 되었다. 1907년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의 선봉장이 되었다. 일제 강점 이듬해 1911년 안동의 이상룡과 김동삼, 구미의 왕산 허위는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일제 강점 하에도 대구 달성공원에서는 1915년 우리나라 최초의 비밀 무장 단체인 광복회가 창설되었고 박상진, 우재룡, 권영만은 이 조직을 이끌었다.대구의 3·1 운동인 3·8 만세 시위운동은 대구의 이갑성, 이만집, 김태련 등이 주도하고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경북도내 전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다. 성주의 혁신 유림 김창숙, 대구의 이봉로 등은 독립청원서를 파리에 보낸 장서 운동을 주도하였다. 대구 출신 이종암은 망명하여 의열단의 부단장이 되고 의열 단원 10명 중 5명이 이 지역출신이다. 상해 임정에서도 이상정, 현정건 등 여러 명이 중책을 맡고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백기만 등 대구 문인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대구 달성공원과 두류공원, 앞산공원에는 독립운동가의 기념비가 즐비하고, 안동, 문경, 의성, 성주 등 여러 지역에도 독립운동 기념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성주의 백세각 항일 의적비, 영주의 광복 탑, 영천의 산남의진 기념비 등이다. 대구의 국립 신암 선열공원은 전국 유일의 독립 유공자 묘지로 조성되었다. 대구 망우당공원에는 광복의 아침을 맞게한 조양회관이 이전 복원되었고, 대구·경북 항일 독립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대구의 상화 형제 기념관, 희움 박물관, 구미의 왕산 기념관, 안동 독립기념관은 이 지역의 소중한 기념관이다.광복 7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위대한 항일 독립 정신을 계승할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지역민들은 선조들의 항일 유적을 찾아 잘 보존하고 그들의 항일 독립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지난 2019년 이 지역에서도 3·1 운동과 상해 임정 100주년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렸으나 모두 일회용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대구·경북의 관련 단체는 이 지역에 산재한 독립운동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하고 이들의 정신계승 사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그것이 극일(克日)의 길이고 이 지역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