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시대는 북미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 조짐이 보였다. 그것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전술인지 북한 비핵화 집념인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트럼프는 방한 시 판문점에서도 김정은을 잠깐 만났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수시로 서신을 통해 상호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결국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북한의 통치자를 최초로 인정한 대통령이 되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는 낙선했으며 북미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운 대북 정책이 5개월 만에 발표됐다. 그 골자는 과거 오바마 시대 대북정책기조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접근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식 탑다운 방식보다는 실무적 단계적 대북 접근방식을 통해 실효를 거둔다는 내용이다. 바이든은 대북 특사로 한국계 미국 외교관 성김을 임명하여 북핵문제를 외교적 방식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은 대북 제재는 유지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에는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협상의 공은 북한으로 넘어가고 그들의 응답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북한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면 선대선(善對善)의 원칙으로 미국과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대미 협상의 최종 목적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데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하나 미국이 이를 인정치 않는다. 북한 당국은 대북 제재의 해제를 통한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북한 당국은 당면한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의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비핵화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북미 관계는 상호 요구 조건과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풀기 어려운 퍼즐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북한의 대미 정책 구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과거 외교 행태로 미루어 그들의 북미 협상의 선택 시나리오는 제한되어 있다. 그 하나는 현상 유지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대미 협상의 전단계로 대미 강경책을 펼칠 가능성이다. 전자는 북한이 처한 대내외 위기 앞에서 대내 결속을 다지면서 대미 협상에는 응하지 않는 전술이다. 후자는 대미 강경책으로 그들의 탄도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대미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적 카드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운전자 론이나 중재론도 작동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대미 협상 외에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방책을 견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대북 정책은 불행히도 한반도 문제의 종속변수일 뿐 독립 변수가 아니다. 우리가 북에 매달릴수록 북한은 남한 배제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도 대북 무관심이나 무시 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때로는 통중봉북(通中封北)도 필요할 것이다. 북한의 ‘우리 끼리 정신’이나 ‘민족 공조’는 그들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