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전 검찰총장 윤석열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 3월 4일 임기 5개월을 남기고 전격 총장직을 사퇴하였다. 그는 사퇴 전날 한국정치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반문재인 정서가 강한 대구에서 문재인 정부를 신랄히 비판하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라며 법치주의 파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하였다. 지난 국회 법사위 답변에서‘임기 마친 후 국민에게 봉사’하는 문제를 고려하겠다던 약속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사퇴 직후의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은 지지율 32%로 선두에 나섰다. 여당의 이재명 지사를 앞서고 이낙연 후보도 멀리 따돌렸다. 검찰개혁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그에 대한 탄압이 윤석열 대망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국 교수 가족에 대한 거침없는 수사, 원전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이 그를 정치에 입문시켰다. 윤석열은 과연 정치적 ‘별의 순간’이라는 행운을 잡았을까. 그가 내년 유력한 대선 후보로 등극할 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기에 그는 이제 정당 가입 등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윤석열이 선택할 첫 번째 시나리오는 그가 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다. 김종인은 이미 윤석열을 야당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그의 국민의힘 입당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국민의힘 내의 보수 강경세력은 그의 입당을 결코 환영치 않을 것이다. 당내에는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의 책임을 그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 당내의 대선후보들도 그의 입당을 탐탁해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이 보수 1당의 입당의 전제로 당 개혁을 요구할 경우 이로 인한 당의 분열은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는 제3지대에 머물면서 그가 새로운 신당을 창당하는 시나리오이다. 그가 안철수 등 중도 보수 인사나 윤사모를 중심으로 제3의 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우선 제3의 텐트는 칠 수 있지만 신당 창당은 결코 쉽지 않다. 신당의 이념이나 조직에는 많은 갈등과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선에서 제3의 신당 후보가 당선된 적도 없다. 1987년 민중항쟁 이후 대선에서는 결국 제 1, 2당 후보만 당선되었다. 현재 제3당 신당 창당에 여론은 호의적이지만 정치적 성공과는 별개 문제이다. 정치 신인 윤석열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볼 수 밖에 없다.윤석열은 아무런 준비 없이 반정부 여론에만 의존하여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분간 메시지를 통한 이미지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과거의 대쪽 판사 이회창이나 안철수와는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열은 정당 선택에 앞서 이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이 지금껏 살아온 개혁적인 삶의 궤적이 보수 야권 대선후보에 합치하는가. 그가 당면한 장모와 가족의 재판 등 그에 대한 철저한 검증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는 검찰 조직 이기주의가 아닌 국민 공복의 민주적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윤석열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2021-03-2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체제 하의 노동당 8차 대회는 1월 평양에서 끝났다. 연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새로운 각료를 인준했다.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경제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自力更生)’원칙을 선포했다. 이 원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북한 선대 지도자들도 외쳤던 구호일 뿐이다. 김일성도 주체사상에서 경제의 ‘자립’을 강조했고, 김정일 역시 경제 강국 건설을 인민들의 자주적 역량에 두었다. 북한 경제가 외세에 의존치 않고 자력으로 살아나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그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우선 북한 경제는 자력으로 소생하기 힘들 정도로 침체해 있다. 과거 어느 시기 북한 여러 곳곳을 돌아본 본 적이 있다. 경제의 토대인 사회 간접자본(SOC)은 어느 곳이나 보잘 것 없었다.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고 비포장 도로에는 소달구지가 다녔다. 집단 농장의 옥수수는 메말라 버렸고, 공장 굴뚝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20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지속되는 것 만해도 이상한 일이다. 북한에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때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어렵다.북한 당국은 이를 타파하려 대외 개방을 시도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19개의 국가 경제 특구가 설치됐다. 함경도에서부터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해안을 따라 경제특구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 특구에는 외국의 투자가 있어야 개발이 보장된다. 그러나 외국의 투자는 성사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투자할 여유가 없고 소수의 중국 자본이 라진 선봉에 투입되었을 뿐이다. 북한이 선포한 항금평 특구에도 중국의 투자는 없다. 한국 등 서방의 투자가 없는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그렇다고 북한이 자력으로 내수 경제를 일으킬 수도 없다. 북한 폐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경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김정은은 취임 후 집단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의 가족 영농까지 허용하고 소토지의 개인 불하도 단행했다. 불 꺼진 국영 공장을 개인에게 임대하기도 했다. 북한의 농공업의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 땅에서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관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 자연 재해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북한 당국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개방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의 중앙 집권적 통제경제만으로 현상유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로부터의 개혁·개방에는 성장과 체제 붕괴라는 모순적인 딜레마가 따른다. 한편 북한은 시장 경제의 확대에 따라 주민들의 의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북 주민 3만5천여명은 이미 남한에 정착해 있다. 북한 당국은 소련의 개방·개혁 과정의 체제 붕괴 현상을 여실히 보았다. 이것이 김정은이 과감히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자력갱생은 하나의 선전 구호일 뿐이다.
2021-03-17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1960년대를 전후하여 신생 독립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빈발했다. 1952년 이집트 자유 장교단 소속 나세르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는 쿠데타의 모델이 되었다. 그 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의 군부 쿠데타는 유행처럼 번져 갔다.우리나라에서도 4·19혁명 이후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에 이은 전두환의 12·12 쿠데타가 있었다. 쿠데타(coupd’Etat)는 군부가 물리력으로 정상적인 정권을 전복 탈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쿠데타나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패 청산, 정치혁명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미얀마 쿠데타의 참극은 우리의 두 차례 쿠데타를 회상케 한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의원 선거 결과에 불만을 갖고 정권을 전복하였다. 미얀마 독립영웅의 딸 아웅산 수지는 감금되었고 관련자 1천700여명이 구금되었다. 5·16 쿠데타 세력이 민주당 정부의 장면 총리를 연금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구금한 사실과 대동소이하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민간 정권을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5·16 쿠데타 세력이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양심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공약과 거의 같다.미얀마 군경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하고 있다. 미얀마의 평화적인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과 교사들이 파업에 동참하고 승려 200여명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요일 38명의 시위자들이 거리에서 조준 총탄에 희생되었다. 19세 소녀 치알 신은 ‘다 잘 될 거야’라는 조끼를 입은 채 사살 되었다. 그녀는 미얀마 민중 항쟁의 상징이 되고 있다. 쿠데타의 부당성을 폭로한 UN 미얀마 대사는 군부정권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미얀마 쿠데타 정권은 스스로 탈취한 권력을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가락 세 개를 편 시민들의 극한적인 반대시위는 계속될 전망이 우세하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얀마의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희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극한적인 대치 상황에서 ‘국민 대학살’을 자행할 지도 모른다. 곧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많은 시위자가 체포 구금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러한 쿠데타가 미얀마에서 재발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후진성을 노출한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 될 수 없지만 이를 저지할 처방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미얀마의 민주화 세력은 국제적인 연대와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 암울했던 시절 국제 앰네스티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 같다. 그러나 유엔도 미국도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은 꺼리고 있다. 불행히도 인접 중국은 미얀마 군부의 정치 개입을 묵인하고 오히려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얀마 무역의 40%, 투자의 38%를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도 과거 미국의 국익에 반하지 않으면 후진국의 쿠데타를 승인한 전력이 있다. 미얀마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유엔 인권 위원회는 미얀마의 인명피해를 막는 긴급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후진국의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할 방도는 없을까.
2021-03-10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존 마크 램지어(J.M.Lamseyer)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18세까지 일본에서 자랐고 현재는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일본 미쓰비시 연구 기금 교수이다.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 시 조선 노동자를 강제 징용시킨 대표적 기업이다. 그의 ‘태평양 전쟁 시의 성 계약’이라는 논문의 골자는 일본 종군 위안부제는 자발적 매춘 행위이며 일본 정부와는 관련 없는 민간의 계약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편파적 망언이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게재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램지어의 이 같은 주장은 종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양식 있는 내외의 학자들까지 비판하고 있다. 대구에 생존해 있는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미국의 한국사와 일본사를 전공한 학자들까지 반론을 제기하고, 일본의 학계와 시민 단체들까지 그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버드 대학의 총장은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했지만 논문에 대한 계속되는 반발 앞에 그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급기야 미 하원에서도 램지어의 주장은 보편적인 인권에 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사회과학 논문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할 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램지어는 당시의 지원자와 민간 운영 업자 간 계약서를 통해 자발적 매춘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종군위안부는 일본 정부나 군 당국과는 무관한 자유 계약이라는 게임이론으로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 하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계약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 증거도 없다. 그의 주장은 일본 관방장관 고노의 1993년 위안부모집에 군 개입을 인정한 담화에도 배치된다. 그는 조선에서의 위안부 계약서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다. 그는 ‘실수’는 인정했지만 불행히도 논문의 철회의사는 없는 듯하다. 특히 특정이념이나 단체의 입장을 옹호하는 그의 논문은 일종의 정치 선전물이다. 더욱이 미쓰비시 기금을 받고 일본 극우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의 논문은 진실성(integrity)을 상실했다. 그는 일본 간토 대지진 시 조선인 대학살 사건도 조선인의 책임이란 취지의 글을 쓴 적도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그의 주장은 논문으로서 생명이 없다. 서방 선진 자유 국가의 논문은 언제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그의 입장을 옹호 지지하는 학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편향된 이번 논문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사적 이익 목적의 논문은 비판을 통해 폐기되었다. 과거 유신체제를 옹호한 H, G 교수의 입장은 당대뿐 아니라 아직도 법학계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모 대학 토목과 교수의 북한 금강산댐의 서울 수공작전에 대비한 평화댐 건설 프로젝트는 사실을 부풀린 허위임이 드러나 폐기된 적도 있다. 공익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학자의 논문은 반드시 검증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일본 극우 입장을 대변하고 아시아 여성 인권을 유린한 램지어의 논문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 학계도 지혜를 모아 총력 대응할 시점이다.
2021-03-0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안철수가 또다시 서울 시장선거에 도전했다. 그는 2011년 서울 시장 보선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유력한 대선 후보였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막판 양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안철수는 결정적인 시기에 후보직을 왜 사퇴할까.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그는 제3당의 후보로 끝까지 완주했지만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는 그의 국민의당은 정의당에도 밀리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제일 먼저 서울 시장선거 입후보를 선언했다.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어느 선거에서나 조직, 인물, 구도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한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그는 야권 어느 후보보다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그에게는 어려운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우선 그는 선거의 지지기반인 정당의 뒷받침이 너무 약하다. 그는 대선 실패 후 해외에 너무 오래 체류하면서 당 조직을 관리하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 그의 국민의당은 지역후보를 공천치 못하고 비례 대표 3석을 건졌을 뿐이다. 총선 시기 그는 선거 전술로 장거리 마라톤에 몰두하였다. 정당의 뒷받침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의 승리는 보장할 수 없다.선거의 주요 변수인 인물과 정책 면에서 안철수는 이제 참신성이 보이지 않는다. 의사 출신의 성공한 벤처기업인, 컴퓨터 백신의 전문가, 대학교수, 당 대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경력이 없다. 과거 한 때 극한적 여야 대결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안철수의 제3의 생활 정치를 선호한 적이 있다. 그런 그는 결정적인 순간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안철수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러 공약을 발표했지만 참신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과거의 ‘안철수 신드롬’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는 ‘철새 정치인’으로 비판받고 있다.선거의 구도는 선거 승리의 주요 변수이다. 안철수는 제1야당 국민의힘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김종인 위원장은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선거 두 달을 앞둔 시점이지만 그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금태섭 전 의원과 후보 단일화 문제는 유권자의 관심 밖이다.그는 제1야당 후보 나경원이나 오세훈과 최종 경선을 거쳐야 한다. 설령 그가 최종 야권 후보 단일화가 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를 적극적으로 밀지도 의문이다. 야권 단일화의 전제인 그의 입당문제와 정책연합이나 지방연립정부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안철수는 결국 조직, 인물과 정책, 선거의 구도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보이지 않는다. 최종 결선에서 안철수와 박영선이 만나는 가상 대결구도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서 박영선이 앞선다는 조사도 있다. 3자 대결 구도가 된다면 그의 승리는 물 건너가 버린다. 어느 보결선거에서나 투표율이 낮은데 이도 그에게 유리하지 않다. 코로나 장기화와 집권 여당의 선거 이슈 선점과 결속력도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키는 형국이다. 정책 토론에서 실수를 자주하는 안철수가 이번에는 어떤 선거 전략을 펼칠 지 주시할 뿐이다.
2021-02-24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실향민(失鄕民)은 분단된 북쪽 고향을 잃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쪽에도 고향을 잃은 사람이 많다. 코로나의 광풍이 고향길까지 막는 서글픈 시절이다. 고향도 일가 친지도 가족도 찾지 못하는 설 명절이 되어 버렸다.‘거리는 멀어도 마음만은’이라 하지만 거리가 멀면 마음도 자연히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동요 ‘까치의 설날은 어제께 지만 우리들의 설날’은 오늘이 아닌 기약 없는 내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비대면의 암울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그 옛날 고향, 설, 친구들이 그립다.달포 전 고향 마을을 다녀왔다. 어느 시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산천도 어릴 때의 그 산천이 아니었다. 물이 콸콸 넘치던 개천도 사라져 버리고, 가파르던 산에도 도로가 나 있었다. 소먹이 가서 동무들과 놀았던 큰 바위는 무척 작아져 버렸다. 어릴 때 첫 새벽부터 동네 사람들의 육성으로 외치던 동장어른, 스피커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 그 어른의 걸직한 목소리만 귀에 맴돌고 있다. 한학 공부를 많이 하여 우리가 무척 따랐던 그 어른도 세상 뜬 지 오래되었다. 당시 대학 진학한 자랑을 입버릇처럼 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어릴 때 집성촌의 어른, 친지, 친구들마저 사라진 고향은 내 고향은 아니었다.설 명절이 오면 고향의 세시풍습이 무척 그립다. 섣달그믐 저녁부터 준비한 합동 세배도 없어진 지 오래다. 어릴 때 나는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는 풍설을 믿었다. 밤 새워 동서로 나누어 윷놀이를 했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합창도 하였다. 당시 동지섣달 긴긴 겨울 밤 우리는 매일 친구 집 사랑방에 모였다. 관솔불을 밝히면서 메주 냄새 쾌쾌한 친구집을 찾았다. 쌀밥에 김치 한쪽뿐인 밤참이 그렇게도 맛있었다. 호롱불 기름 닳는다는 친구 어머니의 성화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운 풍경이다.드디어 눈이 소복이 내린 명절 아침이다. 달포동안 장만한 음식들이 차례상에 올랐다. 우리 마을 제사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함께 지내니 제관은 20여 명이 훨씬 넘었다. 명절 제사는 단잔을 올렸지만 음복과 떡국을 나누다 보면 정오쯤 제사가 모두 끝난다. 함께 했던 고향 설날 제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설날 아침부터 오랜만의 기름진 고기와 막걸리에 취해 다투던 어른들의 모습도 자주 보았다. 설날 오후부터는 동네 어른들을 찾아 빠짐없이 세배했던 일이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아름답던 그 정월의 고향 풍습은 어디로 갔을까.이제 고향마을 어딜 가나 전기불이 들어와 있다. 어느 집 마구간에도 경운기가 버티고 있고 마당에는 자동차가 서 있다. 우물가의 두레박도,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도 더욱 찾아 볼 수 없다. 가재 잡던 도랑도 없어지고 물맛 좋던 옹달샘마저 없어져 버렸다. 허리 굽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동네 어귀 그네를 매던 키 큰 참나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의 팽이 놀이, 썰매 타기는 동네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사람도 풍습도 사라져 버린 고향은 어릴 때 내 고향이 아니다. 고향 잃은 자들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닐 것이다.
2021-02-17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식이 우려 속에서도 무사히 끝났다.지난 미국 대선에서 80세 고령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현직 트럼프의 공격적인 선거 캠페인에 대응해 최후의 승자가 됐다. 트럼프는 아직도 대통령 바이든을 인정치 않고 취임식에도 참석치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연방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 당했음에도 측근 43명을 사면하고 플로리다 집으로 떠났다.지지자들에게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인들의 관심은 새 대통령 바이든에게 쏠리고 있다.변호사 출신 대통령 바이든의 삶의 궤적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은 20대 후반부터 의회 정치 경력을 꾸준히 쌓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델라웨어 대학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학교 성적은 최하위 정도이다. 우리의 지방의원격인 카운티 의원에 이어 상원의원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6선의 상원의원(1973∼2009년) 시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했고, 오바마 하에서 8년간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1942년생 79세인 그는 3수만에 꿈에 그리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바이든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 경력 뒤에는 굴곡된 그의 삶이 점철되어 있다. 그는 젊은 날부터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말을 더듬어 고생했다. 그는 1972년 아내와 딸까지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그의 장남 보 바이든 마저 뇌종양으로 잃었다. 자식과 아내를 먼저 보낸 그의 가슴은 멍이 들어 있다. 1988년 그는 뇌동맥 파열로 사망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러한 비극 앞에 보통 사람은 정치를 포기했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미국 최고령 대통령 바이든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 승리이다.바이든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미국을 건설할 책무가 놓여 있다. 분열된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의 위상을 되찾는 과업이 급선무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치는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미국을 완전히 분열시켜 놓았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했다. 바이든은 벌써 통합의 상징으로 최초의 흑인 부통령 해리스뿐 아니라 오스틴 국방장관도 흑인으로 임명했다. 그의 경호 책임자 데이비드 조는 한국계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식 압제와 배제의 정치 대신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려고 한다.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에서도 국제 평화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 마저 파기하고, 파리 기후 변화 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도 탈퇴했다. 그는 전통적인 우방에 대한 동맹 외교도 무시하고 방위비 협상마저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 회담 마저 대선용으로 던져 보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 마저 트럼프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린 상태이다. 세계 인권과 평화를 중창하던 미국의 위상은 추락된 지 오래다. 바이든은 추락된 미국 외교부터 복원해야 한다. 바이든에게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
2021-01-27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8일간의 북한 8차 노동당 대회(1월 5∼12일)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2천8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한 4·25회관의 8일간의 당 대회는 폐회되었다. 김일성의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일 시대는 당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6년 7차 당 대회를 개최해 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8차 당 대회는 대의원 인준 절차에 이어 분야별 사업보고와 당 규약의 개정이 있었다. 김정은 집권 후 두 번째 개최된 이번 대회는 종래와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여주었다. 이번 당 대회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이번 8차 당 대회는 5년 마다 열리는 당 대회를 정례화 시켰다는 점이다. 김정일 시대 개최되지 않았던 전국 당 대회를 김정은이 정상화 시킨 것이다. 과거 통치자의 뜻에 따라 자의적으로 개최여부를 결정했던 당 대회가 정례화된 점은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당 대회에서 김정은 자신의 위상도 당위원장에서 ‘총비서’라는 직함을 되찾았다. 김정일은 유훈통치를 앞세워 총비서 대신 국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김정은이 열병식에서 할아버지의 소련식 털모자 착용뿐 아니라 총비서라는 직함까지 정식으로 승계 받게 된 것이다.김정은은 이번 대회에서 북한의 5개년 경제 개발 전략이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통치자가 실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어느 사회주의 국가나 최고 통치자의 행위는 언제나 정당화되고 미화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작년 우리 경비선 피살사건에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김정은은 코로나로 인한 국경통제, 대북 제재 등으로 경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종래의 모든 책임을 미국과 남조선에 돌리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이번 당 대회에서는 각 산업별 보고와 토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당 중앙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번 대회의 당직 인선에서도 당 핵심 간부 39명 중 29명이 교체되었다. 군 출신 간부는 약 50%가 감소하고, 행정 경제 전문 관료가 대폭 증원됐다. 원로들이 대폭 물러나고 신진들이 약진했다. 북한 체제도 이제 과거 항일 빨치산의 이념형보다는 전문 테크노크라트 형으로 교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교체가 북한의 위기 극복과 개혁·개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북한의 대미, 대남 태도도 미세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미 제국주의의 타도 등 미국에 대한 거친 비난은 감추어 버렸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强)대강 선(善)대선’의 정책을 강조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라고 수위를 낮추었다. 지난번 등장했던 신형 ICBM은 보이지 않고, 신형 SLBM은 사열에 등장했다. 대남 발언도 남북의 합의를 잘 지키면 2019년의 봄을 열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한미 군사 훈련과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중지 요구는 종래 주장의 반복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예의 주시할 뿐이다.
2021-01-20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워싱턴의 미국 의회당을 폭도들이 점령했다.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극우 보수 세력이 점령한 의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시위자들은 경찰의 저지를 무시하고 높은 담벼락을 넘어 의사당 회의실을 점령해 버렸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의자에는 미국 총기 소지자협회장이 걸터 앉았다.현장에서 4명이 사망했다. 한국 국회는 여야 몸싸움의 ‘동물 국회’로 비판받았는데 미국 의회는 완전 ‘탈법 국회’가 되어 버렸다. 미국 의회 민주주의가 점령당한 모습에 세계인들은 모두가 놀라고 있다. 어쩌다 미국의 의회 정치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을까. 여태껏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모델이었고,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미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분명 트럼프에게 책임이 있다.스스로 대선 패배를 인정치 않고 선거가 도난당했다던 트럼프가 초래한 비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47.7%의 표를 얻고도 낙선했다. 그는 내심으로 원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군중 앞에서 의회로 행진을 하자고 선동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그의 처신이다. 그는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인격의 졸렬함이 드러난 최악의 비극이다.몇 해 전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이상한 것은 태극기 사이에서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이었다. 미국 성조기까지 동원한 것은 한미 동맹을 과시하거나 보수성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번 미국 집회에서도 성조기와 함께 “USA”를 외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한국의 축구 경기 시 붉은 악마들의 “대-한-민-국”과는 비슷한 소리였다. 그러나 시위자들의 USA는 미국 의회 난입의 파열음이라면 우리의 대한민국은 한국인의 저력이었다. 이번 의사당 난입은 성조기와 미국의 국호마저 동시에 모독했다.사실 대통령 트럼프의 그간 정치행적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의 아메리카 우선주의는 인종차별주의로 귀결됐다. 그는 우방과의 방위비 협상에서도 철저히 돈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는 기후 협정에도 탈퇴하고 이란과의 핵 협정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모두가 부동산 재벌다운 그의 정치 행각이다.본란을 통해서도 필자는 트럼프 식 정치를 여러 번 경고한 적이 있다. 그의 선거 결과 승복은 빠를수록 좋다고 제안했다. 그는 링컨 대통령이 주창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트럼프만을 위한 정치’로 변질시켜 버렸다.20일 취임할 바이든 대통령이 해결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미국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튼튼한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주의적 정책은 철저히 폐기해야 한다. 힘을 앞세운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해야 미국의 위상은 회복될 수 있다. 동맹국까지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한 트럼프 식 외교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 바이든은 실추된 미국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미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정치 행각은 정치 지도자의 품성과 자격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2021-01-13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가 바뀌어도 이 나라 정치는 시끄럽기 그지없다. 여야 갈등은 더욱 첨예하고 진영 간의 편 가르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정쟁을 멈추었다는 소식은 언제 들을지 의문이다. 이러다가 나라가 거들난다고 불안해 하면서 서로 그 책임은 상대방에 미루고 있다. 모두 교수신문이 말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요 ‘내로남불’이다. 서로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이다. 그러다가 나를 뺀 한국인은 모두 안 된다는 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외국인들은 우리를 인정하는 대 정작 우리는 자긍심을 잃은 사람이 주변에는 너무 많다.30여 년 전 외국 여행길에 코리아하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 어딜 가나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한류가 코리아의 이미지를 살린 결과이다. 한국의 GDP는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하에서도 지난달 우리의 수출 물량이 증가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반도체 수출은 일본을 제친지 오래다. 선박 수주량도 다시 세계 일등국이 됐다. 이러한데도 이를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인이 많으니 안타까울 뿐이다.근년 한국은 스포츠, 예술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이 많다. 차범근, 박지성 뒤를 잇는 축구 스타 손흥민은 우리시간 2일 대망의 100골을 달성했다. 박찬호에 이은 야구 투수 류현진의 활약이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다. 박인비 등 한국 출신 골프 여제들도 LPGA를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는 예상을 뒤엎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차트 1위를 점령한 지 오래다. 한류의 불을 지핀 이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이쯤 되면 우리도 문화적인 자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세계 선진국민의 추한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20여 년 전 일본의 어느 해수욕장 화장실 문화를 보고 와서 우리도 벤치마킹하자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무런 감시 없는 화장실 선반의 화장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의 고속도로 화장실 문화는 세계적 수준이 됐다. 우리의 사통팔달의 고속도로는 일본, 미국, 독일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었다. 코로나 방역에 역행하는 서구인들의 무질서, 사재기까지 하는 추악한 미국인들, 선거 패배를 승복치 못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아직도 반한의식에 젖은 일본인들 모두가 후진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정황에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어쩌다 우리가 자긍심을 잃은 국민들이 되었을까. 국민들의 자만심과 우월의식도 문제지만 자기비하나 자긍심 상실은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리는 일제 시부터 ‘조센징’은 안된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당화라는 그들의 조작된 논리를 우리가 수용한 결과이다.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동조하는 학자까지 있다. 강대국을 향한 사대의 논리는 아직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긍심 가진 당당한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한다.
2021-01-06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어느 신부님을 알고지낸지는 꽤 오래되었다. 1980년께, 40년 지났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연히 성당 옆 어느 포장마차에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포장마차에는 술안주로 참새구이까지 나오는 낭만적인 시절이었다.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격식 없는 태도가 무척 좋았다. 그 날 포장마차에서는 그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날 밤 신부님과 함께한 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 그 신부님은 다른 성당으로 떠나버렸다. 몇 년 후 그 신부님이 선교 목적으로 러시아 오지로 떠났다는 소문만 들렸다.오늘 이야기는 그 신부님의 러시아 체험 이야기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사회주의 소련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한국서 온 자그마한 신부님에 무척 호기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종교행사조차 보기 힘든 그들은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매우 수상했던 모양이다. 어떤 러시아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묻더란다. 그는 엉겁결에 선교 사업은 감추고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당신은 사기꾼이 아니냐고 의심했단다. 당과 혁명, 지도자를 위해 살아온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다시 러시아인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더란다. 그는 (예수님처럼) 남을 사랑하기 위해 산다고 대답했단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랑하느냐 묻기에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했단다. 여성들도 포함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당신은 바람쟁이구먼’하고 웃더란다.무신론적 가르침에 따라 살아온 그들이 종교적 사랑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공산당이 인정한 러시아 정교는 남아 있었지만 신앙인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였다. 더욱이 종교의 자유가 금지된 땅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얼마 후 친밀감이 생긴 러시아인은 신부님께 무엇으로 생활하느냐고 묻더란다. 한국에서 보내온 신자들의 헌금으로 생활한다고 대답했단다. 그들은 이 대답에는 더욱 눈이 휘둥그레지더란다. 그들은 자신이 노동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당신은 ‘흡혈귀’라고 핀잔까지 주었단다. 노동 가치에 따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그들로서는 남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제의 생활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해 살아간다고 교육을 받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일는지 모른다.종교를 부정하던 소련은 벌써 30여 년 전 붕괴됐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배척하던 러시아인들은 오늘날 공산주의까지 배척해 버렸다. 그들은 빵문제도 해결치 못하는 사회주의를 포기해 버리고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내가 자주 찾은 러시아는 시장경제로 넘어온지 오래지만 관료적 독점과 독재라는 사회주의 구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선전하던 땅에 러시아 정교회는 소리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때 러시아 선교를 위해 고생했던 신부님은 귀국했지만 아직도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20-12-30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종인 위원장은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잠시 울먹이는 장면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광주를 찾아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광주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솔직히 사과했다. 사실 직전 대통령이 두 명이나 수형생활을 하는 것은 세계 어느 정치사에도 드문 일일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 역시 수감된 적이 있으나 오래지 않아 풀려났다. 김 위원장은 당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공개사과 했다. 그는 위원장직 사직이라는 배수진을 치면서 이를 강행했다.김 위원장의 공개 사과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한 사과 없이는 내년 보선도 당의 개혁도 어렵다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취임 초부터 사과할 뜻을 비쳤으나 당내 반발이 여의치 않아 이를 미룬 것이다. 내년 서울·부산 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 이미지 개선 없이는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이다.그는 당 뿌리부터 개혁 없이는 당의 외연 확대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당 인적쇄신의 걸림돌인 수구 보수 세력의 제거를 당 개혁의 당면과제로 인식한 듯하다.이에 대한 당내의 반응은 입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58명의 초선의원과 당내 중도 개혁파는 대체로 그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보수 강경세력들은 여전히 그의 행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구속에 항의해온 석방을 요구해온 조원진, 김진태, 민경욱 등 친박세력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야당 입당문제가 여의치 않는 홍준표는 ‘얻어터진 사람이 가해자에게 사과하니 배알도 없느냐.’고 김종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침묵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이번 김종인의 사과는 당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의 대국민 사과는 당 개혁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그의 과거 사과는 당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당의 인적 쇄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실망한 일부 보수층을 회귀시키고, 중도 층의 외연 확장에는 기여할 것이다. 지구당 개편 시 정치신인 확보등 인적 쇄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좌 클릭 정책이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상처만 준다는 반론도 있다. 그 결과 내년 4월 보선과 대선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80대 고령 김종인의 정치는 피아의 전선이 분명한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무척 이해하기 힘든 행보이다. 그는 정치의 달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변신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비례 대표 한 번도 어려운 정치 풍토에서 5선 의원이라는 그의 처신은 누구도 모방하기 어렵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2명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후 불화가 있자 흔쾌히 결별했다. 그렇다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 받지는 못한다. 그의 ‘경제민주화’정책은 개발 독재 시대용이며 유효기간은 끝나 버렸다. 그의 정치 행보를 노탐(老貪)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정치 행보를 주시할 뿐이다.
2020-12-2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해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다. 지난해에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떠들썩하게 펼쳤다.대부분 행사 위주로 끝나고 애국 독립지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실질적인 현창사업은 여전히 부족했다. 사전 준비도 부족했고 시행착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의 역사 왜곡으로 초래된 한일 갈등의 고삐는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반일과 항일을 넘어 극일(克日)을 위해서 일제치하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바르게 계승해야 한다. 우선 항일 투사들이 방치된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해야 한다.다행히 독립 운동가 전국 유일의 묘지인 신암선열 공원 승격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일제 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안식처가 이곳인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동대구역 북쪽,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국립선열공원이 있다. 대구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구 만세시위에 앞장선 김태련 부자가 앞뒤로 누워있고, 중국 광복군 출신 지사들과 항일 독립을 외치던 문인들도 같이 묻혀 있다. 이러한데도 정작 대구 시민들은 국립공원 묘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몇 해 전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를 창설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대구의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대구는 의외로 여러 갈래의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지역임이 분명했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구 앞산 안일사는 1915년 조선 국권회복단 결성지이고, 달성 공원에서는 이 나라 최초의 항일 비밀 결사조직 광복회가 탄생했다. 대구의 3·1운동은 서문시장에서 출발해 연인원 2천여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했다. 대구 삼덕동 대구 형무소는 독립 운동가 156명이 억울하게 순국한 성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대구 사람은 점점 드물다.지난해 대구의 독립 운동가들의 거사 장소와 생가를 찾은 적이 있다. 장진홍 의사가 분을 참지 못해 폭탄을 던진 장소에는 표지석 하나 없다. 달성 공원 광복회 창설지에도 안내판 하나 없다. 대구 항일운동 유공자의 생가는 대부분 방치되어 씁쓰레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을미사변 후 최초의 의병장 문석봉, 광복군가의 작사 작곡가 달성군의 이현수, 독립운동을 하다 20세에 순국한 무태의 구찬회, 이육사의 고가마저 방치돼 있었다.시인 상화의 형 이상정의 생가는 바보주막이라는 엉뚱한 영업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루 빨리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 장소와 생가에는 표지석이라도 부착해야 한다.후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가를 떠나고 애국지사들의 유물 유적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항일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을 눈으로 확인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대구시는 ‘3·1 운동 거리’와 망우공원의 ‘역사의 길’을 조성했다. 이러한 사업도 중요하지만 대구 독립 운동가들의 유물 유적이나 생가 보존 사업부터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2020-12-16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촛불혁명 이후에도 무소불위의 검찰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민주화 과정의 어려운 고개를 넘었음에도 검찰의 권력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한 치의 양보 없는 갈등 구도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나라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요구는 검찰개혁의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고,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수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입장이 강하다. 검찰개혁이라는 문제 본질은 묻혀버리고 정쟁으로만 치닫는 상황이 불편하다.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합의된 해법은 찾을 수 없을까.10여년도 훨씬 넘은 오래된 일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느 경찰서장 한 분을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도 그 식당에 어느 부장검사와 업무협의로 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터였다. 그 서장은 내가 이 식당에 온 이유를 알고는 얼른 자리를 피해 나가 버렸다. 당시만 해도 검사는 언제나 갑이고 경찰은 을의 신세였다. 검찰의 수사 기소 독점구조는 경찰에 대한 상하 수직적 구조를 강화시켰다. 학교 대선배였던 그 서장의 불편한 심기를 뒤 늦게 알게 되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검경간의 조정이 이제 겨우 방향만 잡힌 상태이다.검찰 권력의 비대화 배경에는 지방 토호 세력의 자기 보호 본능도 한 몫 하였다. 과거 유력 기업인, 재력가는 사전 보험 식으로 검찰에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 검사인 어느 선배 부친의 시골 상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집 찾기를 우려 했는데 마을 앞 십리 길은 조화가 늘어서고 경찰이 친절히 안내까지 해주었다. 당시 초임 검사도 ‘영감’으로 호칭되고 어느 자리나 상석에 배정되었다. 몇 해 전 유림 향사에서 젊은 검사가 초헌관이 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왜곡된 문화가 검찰 독점 권력의 온상이 되었다.과거 재직 시 잠시 학생관련 보직을 맡아 공안 검사들과 수차례 만난 적이 있다. 검찰의 조직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장 검사 옆의 젊은 검사는 항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았다. 회식에서도 부장 옆 자리의 젊은 검사들의 순종하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상관이 건배사로 ‘좌익 척결’하면 아랫사람이 ‘우익보강’하던 시절 이야기다. 검사 동일체 원리는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문화의 온상이 되었다. 윤 총장의 징계 회부에 전 검찰 조직이 들썩이는 이유도 결코 이러한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이러한 검찰 조직문화는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 문화와 융합하여 검찰 개혁을 어렵게 한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당연한 귀결이고 여론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관행이나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까스로 입법화된 공수처는 하루 빨리 가동되어 살아 있는 권력인 검찰도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검경간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원칙은 엄격히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내부의 조직적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은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20-12-08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코로나 비상사태 하에서도 트로트 열풍은 종편을 강타했다. 남녀 트로트 가수 경연 이후 트로트는 여전히 방송가를 달구고 있다. 무명 가수의 가수왕 등극도 재미있었지만 나훈아의 방송 복귀는 더욱 재미있었다. 그의 신곡 ‘테스 형’은 엄청난 조회 수를 자랑하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나훈아는 부모님 무덤 앞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시상이 ‘테스 형’의 작곡배경임을 털어놓았다. 세상을 풍자하는 (소크라)‘테스 형’은 코로나 시대 답답한 사람들에게 흩어진 자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테스 형’은 첫 소절에서 ‘턱 빠지게 웃다가 찾아온 슬픔을 웃음 속에 묻는다’고 출발한다.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재미있게 빗대고 있다. 그는 뒤이어 ‘세상이 왜 이래’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어지럽기 때문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 TV만 켜면 정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싸움만 계속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유례없는 격투는 점입가경이다. 국회는 열기만 하면 패싸움이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코로나 보다 무서운 것이 불신과 혼돈이다. 세상이 왜 이래 하는 노랫말이 공감을 얻는 이유이다.노래의 둘째 소절은 아버지 산소를 찾은 이야기이다. 무덤가에 ‘거저 피는’ 제비꽃과 들국화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본다. 꽃들마저 자주오지 못하는 아들을 꾸짖는다. 모두가 세상 살기에 바빠 무덤도 찾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부모님 산소를 찾아 불효를 후회하는 모습이 노랫말에 잘 담겨있다. 어느 늦가을 묘소 앞에 술 한 잔 올리고 회한을 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노래는 코스모스 핀 ‘고향 역’에서부터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영영’과 ‘누가 울어’에 이어 엄마를 그리는 ‘홍시’로 연결된다. 기성세대 누구나 공감하는 유행가가 되었다.마지막 절은 저 세상에 먼저 간 테스 형에게 ‘천국이 있던가요?’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세상의 구원 문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고 있다. 일전에 어느 모임에서 신부님은 이 노래를 ‘스도 형’으로 개사해 부른다고 했다. 물론 ‘스도’는 그리스도를 줄인 말이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 그래도 종교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탈선된 종교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종교인이 정치하고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천국에 대한 그의 도발적인 질문은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가수 나훈아는 그의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좋은 가수라고 평가받는다. 이번 공연에서 그도 이제 나이를 속일 수 없었지만 그의 예술혼만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칭송받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으로 등장시킨 그의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비례 대표 의원직 제의도 단 칼에 잘라버렸다. 그는 가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가슴에는 민족적인 애국심과 정서가 흐르고 있다. 일본 초청 공연에서도 그는 무대에서 할 말을 다해 버렸다. 흔해 빠진 CF 출연도 그만은 하지 않는다. 나훈아에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이다.
2020-12-02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2017년 2월 말레이시아공항에서 김정남은 독침에 의해 사망하였다. 북한 공작원 소행이 분명하지만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며칠 전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에는 그간 궁금했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에 관한 기사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김한솔은 마카오에 살면서 프랑스 국제학교에 유학할 정도로 형편이 좋았다. 갑작스런 김정남 사망 후 그에 대한 소재는 오리무중이었다. 이번 ‘자유 조선’ 대표 에이드리언 홍창(36)의 증언으로 그의 최후 행적이 드러났다. 북한 백두혈통의 장손 김한솔은 유랑자 신세가 되어 있었다.북한 세습체제에서 권력보위에 방해되는 사람은 누구나 처벌된다. 집권 초기 2012년 12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공개적으로 처형되었다. 북한 언론은 장성택이 반혁명 부패분자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파리에서 자살했고, 고모 김경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행적이 수상했던 이복형 김정남도 결국 말레이시아공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김정은의 이복 삼촌 김평일은 외국 대사직을 하면서 떠돌다 평양으로 복귀하였다. 평양의 친형 김정철은 소식이 없고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 권력의 최측근이 되었다.이번 뉴요커지는 김한솔의 마지막 행적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미국 시민권자 홍창은 예일대 시절부터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책으로 반북단체인 ‘천리마 민방위’를 조직하였다. 미 해병대 출신 한국계 크리스 안이 이 조직을 돕고 있다. 이 조직이 미 CIA에 연관된다는 추측은 분분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홍이 이끄는 이 단체는 ‘자유조선’으로 개명하고 지난해 스페인의 북한 대사관도 습격하였다. 2017년 2월 김정남 사망 후 김한솔은 파리 유학 시부터 알고 지내던 홍창에게 긴급 구호를 요청했다. 홍창은 김한솔을 타이페이공항으로 탈출시키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으로 이동시키는 수속을 도와주었다.이번 기사에 김한솔의 소재는 분명치 않지만 그가 건재한 것만은 확실하다. 미 CIA가 그를 보호하고 그가 북유럽 아니면 미국에 거주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백두 혈통 김한솔이 매우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홍창은 공항에서 본 김한솔은 178cm 키에 잘 생긴 외모였으며, 미모의 어머니와 영어를 잘하고 쾌활한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한솔은 아버지 김정남의 유산으로 많은 현금을 가졌으며, 북한에서 할아버지 김정일과 낚시하던 일도 토로했다고 한다.북한의 탈북자는 현재 3만5천명을 넘고 있다. 탈북민 중에는 서유럽에 정착한 사람도 더러 있다. 최고 통치자 김정은의 조카 김한솔도 이제 탈북자 신세가 되었다. 그가 남한 행을 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마카오 국제학교와 파리에서 유학한 그는 안전을 보장 받는 서방 어디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모습은 과거의 해맑은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핸섬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김한솔의 운명에서 또 다시 분단의 비극을 실감한다. 김일성 가계의 장손 김한솔이 과연 언제쯤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을까.
2020-11-2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바이든의 당선은 사실상 확실하다. 바이든은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당선 후 첫 과제로 코로나 태스크 포스까지 구성하였다. 300명의 정권 인수 위원회가 구성되고, 주요 외국 정상들로부터 축하 전화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선거 패배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대선 결과는 사기라고 소송까지 제기하였다. 트럼프는 아직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엄지척을 하면서 편 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처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박한 행보이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트럼프의 자업자득이며 스스로 자초한 부메랑이다.트럼프는 대선 초반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누른 선거 슬로건이다. 강한 미국을 지향하는 그의 주장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백인 우월주의적 정책은 곳곳에서 부딪쳤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잉대응 등 차별적 조치는 선거의 결정적 감표요인이 되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정책 역시 트럼프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국경을 통제하고 외국인 이주를 막은 반(反)이민정책은 라틴계 미국인의 감표요인이 되었다. 그의 정책은 백인 중산층의 지지로 이어졌지만 그것이 선거의 결정적 부메랑이 되었다.트럼프의 코로나 방역 대책은 너무 안이하고 문제의 본질도 파악치 못한 정책이다. 그는 코로나를 감기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마스크 착용까지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혈기를 앞세우고 고집을 부리다 미국이 코로나의 최대 피해국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미국 대통령의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었다. 투표일 직전 긴박한 유세기간에 5일이나 입원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의 측근 말도 듣지도 않는 독선적인 팬덤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선언했지만 이미 때늦은 선택이다.트럼프는 해외 동맹 정책의 실패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이란과 맺은 국가간의 핵 협정도 트럼프는 기업 간의 계약처럼 파기하였다. 독일, 한국, 일본 등 미군 주둔 동맹국에도 전례없는 방위비 5배 인상을 압박하였다. 동맹국간의 신뢰를 무시하고 미군 철수까지 언급하면서 방위비 협상을 추진했던 것이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다운 후려치기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바이든이 협박과 회유의 그의 대외 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이처럼 트럼프는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존경받는 미국 재건’은 트럼프가 자초한 바이든의 선거 슬로건이다.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독선적 행적이 이번 대선의 결과이다. 트럼프는 예상보다 오히려 많이 득표한 셈이다. 선거의 결과가 306대 232로 끝난 시점에서 트럼프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이든에게 축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적 결단의 때를 놓치면 패가망신한다. 민주정치는 결코 그가 좋아하는 ‘화염과 분노’가 아니다. 전 대통령 오바마까지 트럼프의 불복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평하지 않는가. 그는 미국 대통령의 실추된 명예를 되살려야 살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그는 하루 빨리 승복해야 할 것이다.
2020-11-17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의 대선은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박빙의 6개 경합지구 중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 선거인단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법적 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선거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 6선의 상원 의원, 부통령 8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가정적으로는 심각한 불행을 겪은 정치인이다.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고, 아들마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번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하고 78세에 4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의 대북 정책을 미리 진단해 본다.민주당 바이든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트럼프와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을 폈다.‘전략적 인내’라는 슬로건으로 북미 관계는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었고 남북관계마저 단절되었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독재자 김정은에게 유화적인 트럼프의 대북 협상자세를 비난했다. 지난달 바이든 보좌관 출신 북한 전문가는 서울을 방문하여 당시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태도가 북한에 대한 불개입, 무시 정책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그의 대북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접근 방식은 트럼프와는 다르다. 트럼프가 정상 간의 탑다운 방식을 선호했다면 그는 바텀 업(bottom up)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트럼프가 외교적으로 일을 저질러 놓고 수습했다면 그는 실무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중시할 것이다. 바이든은 선거 유세 중 북한이 핵 역량을 감소한다면 북미 정삼회담도 할 수 있다는 발언도 하였다. 그러므로 바이든은 북미간의 위로부터 일괄 타결보다는 아래로부터 단계론적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역시 주고받기 식 단계론적 원칙을 선호하여 북미회담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바이든의 대한 정책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는 그간 한국정부에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여 우리를 압박하였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 특유의 이익확보 협상 전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방위비 문제로 시간을 끌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한미 간 현안인 주한 미군 문제, 전작권 회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문제 등을 한미 동맹의 결속차원에서 해결할 것이다. 상원 외교 위원장 출신인 그는 최소한 트럼프 식 동맹국에 대한 ‘후려치기 식’협상은 지양할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은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핵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한다면 북미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핵문제에 관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자제한다면 북미간의 협상은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힘을 실을 것이다.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의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임기 말의 문재인 정부는 시간이 부족하다.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대한반도 정책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2020-11-10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수난과 고통을 겪었다. 한반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침범을 받았다. 수·당 시절부터 중국의 침범은 명장 을지문덕과 강감찬이 있어 막을 수 있었다. 임란 시에는 명의 이여송이 조선에 파견되었다. 정묘호란 기에는 청의 홍타이지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무릎을 꿇게 하였다. 조선왕조는 중국 명황제의 숭정연호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탐욕은 그 역사가 오래고 이번 ‘항미원조(抗美媛朝)’ 발언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1950년 6·25 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김일성 정권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었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전쟁임이 판명된 지 오래다. 미국의 부루스 컴잉(Bruce Cumming)은 한때 북의 남침 설을 인정치 않았으나 후일 이를 수정했다. 중국은 최근 6·25 전쟁을 한반도 내전인데 미제가 침범하여 이를 물리친 정의의 전쟁이라고 선포하였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6·25 전쟁마저 대미항전이라는 도구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이번 정의의 전쟁 발언은 중국의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그들의 오래된 역사 인식에 기인한다. 여러해 전 중국 여행 시 압록강 철교 끝 단둥에 설치된 중조우의(中朝友誼) 비를 본 적이 있다. 동북 3성의 마을 입구에는 의례 그들의 6·25 참전 기념비가 서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의용군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물론 중국의 항일 혁명 시 희생된 영웅들의 기념비도 여러 곳에 서 있다. 여기에는 중국 팔로군을 도운 조선족 영웅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보인다. 중국이 6·25 전쟁을 미제 침략에 반대한 정의의 전쟁으로 미화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중국은 겉으로 한반도 국가의 주권 존중을 강조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반도 국가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 보다는 분단된 현실을 선호하는 입장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권 창출을 갈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를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로 인식하여 북한을 두둔하려 한다. 중국 중앙 정부가 공들인 동북공정(東北工程)도 그들의 국가 헤게모니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우리의 발해사까지 자신들의 지방사에 편입시켜 버렸다. 북한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이 동북 4성에 편입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미국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도 교역의 가장 큰 파트너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의 사드 배치를 강력히 항의했으며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은 ‘일대일로’ 원칙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인도 태평양 방위전략을 극력 반대한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강화를 반대하고 대한 외교적 압력은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중미 양다리 외교의 조화는 가능할 것인가. 우리 외교의 최대 딜레마이다.
2020-11-0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아직도 이 땅에는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못했다. 과거 친일을 논할 때 한일합방에 앞장선 소위 박제순, 이완용 등 매국에 앞장선 을사오적을 혹독히 비난했다. 친일 인명사전 발표 후 친일의 범위는 대폭 확대됐다. 백선엽이 등장하고 ‘토착왜구’가 회자되는 오늘의 현실이다. 을사조약 전야의 고종의 무능과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있다. 한말 고종의 일본정부의 뇌물 수뢰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말의 고종의 친일 행적을 찬찬히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 왕의 책무를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한일합방 전후의 고종의 정세 판단 능력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임란 시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워 조선을 침공한 일본을 막지 못한 선조보다 못한 그의 처신이다.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에 이어 러일전쟁 초 일본군의 창덕궁 진입까지 허락했다. 일본의 노일 전쟁의 승리는 미일간의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이어졌다. 고종은 이 밀약대로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분할 통치하는 사실도 몰랐다. 고종은 당시 일본과 미국이 조선을 보호한다고 믿었으니 정말 무능의 극치다. 고종은 당시 밀약의 추진자 미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의 조선 방문 시 극진히 대접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고종이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 일주일 전 일본 공사로부터 뇌물 2만원을 받았다. 현재 우리 돈 25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수뢰 명목은 대사 이토오 히로부미 접대비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친일 관료 박제순 1만5천원, 이완용은 1만원, 관료들도 친일 행적에 따라 3천원에서 5천원 씩 받았다. 일본 왕실의 주한영사 기록 24권(1905년 12월11일)에 기록된 내용이다. 고종은 그해 3월 31일 일본 특사로부터 당시 경부선 철도 지분과 함께 뇌물 30만 엔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1904년 당시 영국 외무부 자료) 모두가 충격적인 사실이다. 당시 왕실의 뜻있는 관료들은 고종의 친일적 행위를 반대했다. 당시 의정 참정 한규설은 고종의 을사조약 체결을 적극 반대하다 파면됐다. 고종은 매국노 박제순을 그의 자리에 앉혔다. 당시 의정부 참찬 이상설은 박제순의 의정 서리 임명에 울분을 참지 못해 연해주 망명길을 택하였다. 원로대신 조병세는 왕에게 읍소하다 파직되고 민영환 역시 울분을 참지 못해 자결했다. 고종은 갑신개혁의 김옥균의 시신까지 찾아 응징했다. 매국관료들은 승승장구하고 이를 상소한 충신들이 파직되는 상황에서 나라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우리 역사는 을사오적은 비난하면서도 이들을 비호한 고종만은 비판하지 않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에 대한 동정의 발로였을 것이다. 해외의 애국지사들은 멀리 망명지까지 고종을 모셔오기로 결심했다. 해외 연해주에서도 상해 임정에서도 고종의 구출 작전까지 세웠다. 일본 총독부의 엄격한 감시로 모두 좌절됐다.고종 장례 일에는 한성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성통곡하는 행렬이 이어져 3·1 만세 시위로 변했다. 고종의 친일 행적을 모르는 순진한 민초들의 눈물이었다. 무정한 역사는 숨겨진 비밀만은 감추지 못하는 법이다.
2020-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