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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2023년 대한민국 인구포럼에 참여했던 미국 위스콘신대 카렌 보겐슈나이더 교수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절망적이다’라 하였다.그가 희망이 섞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인구위기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속속 나타난다.이대로 가다가는 20년쯤 후는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가 총체적으로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 인구문제는 나라의 문제이면서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는 얼핏 머리 숫자 문제처럼 보이지만, 보다 넓은 영역의 생활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살기 힘든 곳에 아이들까지 낳아 고생시킬 부모는 없다. 살기 좋은 환경이 살아나려면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할까.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거의 모두 서울로 달려갈 꿈을 꾼다. 몇 년을 머물러 살면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지역에는 왜 관심이 없을까. 청년들이 말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는 일자리와 문화다. 경제력을 이어갈 일터가 부족하고 재미있고 신나게 즐길 문화텃밭이 척박하다는 것.일자리가 서울이라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진짜 문제는 문화인 셈이다. 돈도 필요하지만 즐길 거리가 필수라는 것. 살기 좋은 도시를 공표하는 해외 자료들에도 문화적 배경이 경제적 여건보다 우선순위 앞자리를 차지한다.마을과 지역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 자랑거리. 외지 사람들마저 마력처럼 끌어들이는 흥미와 매력.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그 무엇. 평범해 보여도 스토리텔링의 힘이 번득이는 홍보와 마케팅. 지역이 가진 문화의 힘 덕에 살아나는 지역시민의 자긍심. 솟아오른 긍지는 지역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내고야 만다.문화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발굴하여 나누면서도 오늘의 감각에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문화콘텐츠를 멋지게 ‘현재화’할 때 어른들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들도 함께 즐기며 누리게 될 터이다. 담긴 의미를 그대로 두면서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새롭게 만드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세상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도록 ‘글로벌화’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이 가진 소중하고 풍성한 이야기 소재들을 다시 돌아보아 오늘의 문화, 세계의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옛것’으로서 문화를 넘어 오늘의 ‘일상’을 풍성하고 즐거우며 재미있게 만드는 문화의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문화가 살아나 지역민의 일상이 되면 지역의 자긍심이 올라가고 주변으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 터이다.지역의 품격과 매력에 끌려 찾아올 관광객의 발걸음과 함께 경제적 발전은 지역의 안정적인 인구정책과 관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지역소멸을 두려워하기 보다 문화와 이야기의 힘에 승부를 걸었으면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를 살펴 발굴하고 오늘의 트렌드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하여 문화와 예술이 넘실대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12-20

신품종 과일 전성시대

홍석봉 대구지사장 신품종 과일 전성시대다. 다양한 모양과 맛, 색깔을 자랑하는 신품종 과일이 국민 식탁에 오르고 있다.샤인머스캣은 최근 몇 년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과일 시장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상표등록을 않아 로열티가 필요 없자 국내 재배 열풍이 불었다. 샤인머스캣은 캠벨, 머루포도 등을 대체하고 거봉포도 마저 제쳤다. 저장성이 좋아 겨울에도 제철 과일인양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검은 색의 스윗사파이어 종이 등장, 인기를 끌고 있다.국산 신품종 수박 블랙위너수박은 까맣고 얇은 과피와 아삭한 식감, 높은 당도를 지니고 있다. 순수 국산 품종으로 재배농가가 늘고 있다. 2020년 시중에 첫 출시돼 높은 관심을 모았다. 국내 신품종 감귤 윈터프린스도 달콤하고 청량한 맛, 부드러운 식감과 더불어 껍질이 쉽게 벗겨져 먹기 편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수출 및 온라인 쇼핑몰 판매가 많다.방울토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당도가 높고 한입 크기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대추토마토, 짭짤이 토마토, 노란색 토마토 등 종류가 다양하다. 상대적으로 가격도 싸고 과일 대용 채소로 상종가다.최근 상주에서 재배한 희귀 품종의 흰색딸기(신데렐라)가 수출길에 올랐다. 남상주농협 딸기수출단지에서 재배, 홍콩으로 첫 수출했다. 흰색딸기는 경도가 단단하고 맛과 향이 독특하며 붉은색이 아닌 흰색으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신품종 과일은 맛과 색깔, 모양 등에서 기존 과일을 뛰어넘는다. 눈부신 농업 기술 발전의 결과다. 국민 영양 및 식단에 일조한다. 윈터프린스 감귤과 흰색딸기 등은 수출에도 일조한다. 농가소득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20

언니가 되고 싶어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어머니 이제 다 고쳤습니다.” 컴퓨터를 고치러온 AS기사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들들은 엄마 혹은 어무이라 하고 며느리들은 어머님이라 부르니 나는 어머니라 불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꽤나 지긋해 보이는 생판 남이 나에게 어머니라니. 얼마전까지는 남자에겐 ‘사장님’, 여자에겐 무조건 ‘사모님’이던 고객응대 매뉴얼이 바뀌었나? 그조차도 거북했었는데 ‘어머니’는 정말 너무하다.우리나라에선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무례라는 통념이 있었다. 이름 대신 자(字)나 호(號)를 지어 호칭하고 지칭했다. 현대의 조직 내 호칭으로 성에 직함을 붙여 쓰는 것도 그 예이다. 그럼에도 내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엔 이성간의 호칭은 성과 이름을 함께 붙인 OOO씨였다. 누군가가 성을 떼고 OO씨라고 칭하면 그들 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다고 짐작했고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어김없이 훗날 결혼하는 사이가 되곤 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후배대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들 간의 호칭의 변화상을 목격했다. 80년대엔 남녀 동기간에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걸 봤다. 당시 대학가에 번졌던 소위 페니미즘이 성별 구분없는 중성적 호칭을 선택한 거라 짐작했지만 마뜩찮아했던 기억이 있다.사회적 관계에서 친족 호칭을 대놓고 사용한 것은 아마도 90년대 후반부터인 것 같다. 대표적인 게 ‘오빠’다. 손아래 여동생이 손위 남자 형제를 부르는 이 아름다운 호칭이 어느 순간 남남인 남녀 간에 통상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호칭이 되어버렸다. ‘오빠’라 부르던 남자와 결혼한 후에도 ‘오빠’라 칭하다 아이들이 생겨도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찌 되나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다. 사회적 관계에 친족호칭을 쓰는 게 온당찮다며 신문 칼럼으로 신랄하게 비판한 적도 있었다. 아랑곳없이 ‘오빠’의 기세는 매우 강력하여 이젠 당당한 사회적 범칭이 되었다. 심지어 나이와 상관없는 ‘오빠부대’도 있잖은가. 어떤 외국인 교수는 한국의 이런 호칭법이 사회적 관계를 가족 관계로 치환하는 아름다운 관습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글쎄다.‘언니’는 ‘오빠’와는 좀 다르다. 같은 항렬의 손위 여형제는 물론, 남남끼리의 손위 여자를 이르는 정다운 말로 친족 호칭이자 사회적 호칭이기도 하다. 예전엔 남자형제들 간에도 형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난 오빠와 남동생만 있어 날 언니라 불러 줄 여형제가 없다. 물론 이종과 고종사촌이 있긴 하나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질 못한다. 어쩌다 그들이 불러주는 ‘언니’는 언제나 정답다. 누가 날 ‘언니’라 더 자주 불러주면 얼마나 흐뭇하고 좋을까. 최근 내방가사 일로 자주 만나 친해진 세 여자가 있었다. 서로를 회장님, 연구원님, 교수님이라 깍듯하게 불렀다. 호칭만 달라지면 더욱 다정한 사이가 될 듯싶었다. 아니, 언니가 되고 싶었다. 언니라 불리고 싶었다. 내가 제일 연장자라며 호칭정리를 제안했다. 나를 언니라고 불러줘요.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언니, 오랜만이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줄까?

2023-12-20

고관절 골반통증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요추 천골 장골(골반) 고관절은 인체 하단을 서로 꽉 묶어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유기적으로 요추 천골 장골 고관절이 연결되고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인체의 안정상태와 움직임 상태를 무리 없이 유지한다. 이 중 하나라도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부분의 유기적인 연결이 약해지고 기능이상과 관절의 퇴행을 동반한다.허리가 아파서 내원한 사람 중 일부는 고관절과 장골 쪽이 아픈 경우가 있다. 허리 쪽 통증은 요추 천골 장골 고관절로 갈수록 심해진다고 보면 된다. 요추 주위가 삐거나 아픈 환자는 디스크가 아닌 경우는 통증이 심하다고 해도 빨리 낫지만 고관절과 골반 부위가 아픈 환자는 통증이 심하지 않아도 치료가 오래 걸린다. 고관절 쪽으로 내려갈수록 오랜 시간에 걸쳐 피로가 누적되었다고 보고 또 구조적으로도 위에서 밑으로 갈수록 더 안 좋아진다고 본다.고관절은 아주 커다란 대퇴부 쪽의 관절로 문제가 생기면 사타구니 부위나 골반 쪽 즉 엉덩이 깊숙이 아프다고 표현을 많이 한다. 직립보행으로 인간은 허리 쪽 부담이 갈 수밖에 없으며 장골의 균형은 틀어져 있어 양쪽 대둔근이 약해진다. 이에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의 긴장이 심해지고 걸을 때마다 고관절에 무리가 가 고관절의 전방 활주가 일어난다. 이렇게 고관절 문제는 골반과 연관되어 있고 엉덩이 깊숙이 아프기 때문에 환자는 통증이 사타구니 쪽에서 들어가는지 엉덩이 쪽에서 들어가는지 구별을 못할 때도 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살펴보면 고관절 통증인 경우가 있는 것이다. 허리 치료를 같이 해줘야 하지만 주 치료를 고관절과 골반 쪽으로 해야 하며 치료 기간은 2~4주 이상 길게 잡아야 한다. 약침 치료나 추나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관절쪽 통증은 걸음을 걸을 때 아프다가 걷기 힘들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걸을 때마다 고관절쪽에 부하가 실려 그쪽 인대나 힘줄 혹은 관절 쪽의 자극으로 걷기가 힘든 것이다. 사타구니쪽이 많이 아픈 경우는 압진으로 그 부위 통증이 심한지 확인 후 습부와 침치료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엉덩이 쪽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 쪽 통증을 확인 후 그쪽 근육을 풀면 된다. 햄스트링 긴장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햄스트링 쪽 긴장을 확인해 풀어 주는 것도 좋다.추나 치료는 긴장된 고관절의 이완과 후방회전된 장골을 전방으로 교정하는 치료를 한다. 고관절을 살짝 당긴 후 긴장된 햄스트링을 신전시키면 전방활주 된 고관절이 천천히 자기 자리로 들어간다. 후방회전된 장골은 추나 테이블을 이용해 전방회전 시킨다. 최소 5회 이상 치료가 들어가야 하고 엉덩이쪽은 중둔근 소둔근의 긴장이상을 같이 해결해줘야 한다. 치료가 잘 되면 엉덩이 쪽 통증이 줄어 들면서 허리쪽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부의 고관절이 좋아지면서 틀어진 허리가 자연스레 교정되면서 생기는 통증이라 상태를 확인 후 그대로 치료를 하면 된다. 잘 나아도 최소 2주 이상은 치료를 해주는 것이 좋다. 앉아 있는 자세는 허리쪽의 부정렬을 유발하니 피해주고 일이 없으면 무조건 누워 있는 게 좋다. 앉아 있는 모임이나 술자리 그리고 걷는 운동은 고관절에 무리를 주니 금해야 한다.

2023-12-20

한국이 어쩌다 마약조직의 거점이 됐나

심충택 논설위원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마약치유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수차례 마약 투약을 한 혐의로 자식이 법정에 서야 하는 가슴아픈 일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 전 지사는 “국가 도움 없이 가족의 마약중독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면서 “정부가 부처급 기관인 마약 컨트롤타워(마약청)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마약 예방·방지와 수사·처벌, 재활 경로를 통합해 관리하는 국가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윤석열 정부가 출범당시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마약사범 적발 건수만 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올 1월부터 11월까지 검거된 누적 마약사범 수는 1만7천152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검거 인원(1만2천387명)과 비교해서도 38.5%나 증가했다.특히 올 하반기 검거된 10대 마약류 사범이 전년 동기보다 5배 넘게 급증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올봄에는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필로폰이 들어 있는 ‘마약음료’를 청소년들에게 나눠 주고 그 부모를 협박한 사건도 발생했다. SNS와 다크웹, 해외직구 같은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된 것이 원인이다. 10대 마약류 사범들은 투약뿐만 아니라 밀반입·유통 범죄에까지 가담하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한국이 갑자기 해외 마약조직의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섬뜩한 분석도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나라 마약조직이 속속 국내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고, 최근에는 싱가포르 마약조직이 서울에 합숙소를 차려 2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팔다가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최근 5년간 해외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다 적발된 마약류가 시가 3조원(약 1억명 동시 투약 분량)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한국의 마약범죄가 이처럼 심각한 것은 ‘약한 처벌’과 ‘쉬운 판매’가 주원인이다. 싱가포르와 중국 등은 최근까지 마약사범을 사형 집행했다.미국도 종신형을 집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마약류관리법 위반 1심 사건 중 실형 선고는 2020년 53%였지만, 지난해부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국제 조직이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마약시장의 판매 여건이 좋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마약단가가 수익성이 높아 해외 마약상들이 한국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인터넷과 SNS 등 온라인 익명 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마약범죄 전문가들은 “혁신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이 마약거래의 국제적 거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현재의 수사체제(검찰, 경찰, 세관 합동)로는 마약범죄를 발본색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마약시장은 제조와 유통 전 과정이 철저히 ‘점조직화’ 돼 있다. 남 전 지사가 말한 것처럼 정부부처수준의 컨트롤타워가 마련되지 않으면, 예방과 재활은 물론이고 장기수사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제 마약청 신설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2023-12-19

낙서 테러

우정구 논설위원 낙서(落書)란 아무 곳이든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무작위로 글을 남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뜻한다. 주로 문화재나 유명 장소의 건물 등에 낙서를 남기는 경우가 많아 낙서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그러나 유명 예술가 등은 낙서장을 가지고 다닐만큼 낙서를 통해 습작을 해 창작활동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2013년 일이다. 중국의 한 소년 관광객이 3천년 전 람세스 2세 때 세워진 이집트 룩소르 신전을 관광하면서 그곳에 “△△가 왔다 갔다”는 낙서를 남긴 사실이 알려져 이집트 당국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또 2015년 북경에서는 한 청년이 고궁박물관에 있던 300년 된 구리 항아리에 칼로 연인의 이름을 쓰고 하트 표시를 한 사건이 벌어져 소동이 벌어졌다.지금은 뜸하지만 우리나라도 한 때는 명승지 바위 등에 자신이 다녀간 기념으로 이름을 새기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1970년대 대학가 화장실은 불온낙서가 유행해 학교당국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낙서를 지우고 나면 다음날 또 다른 낙서가 생겨나 곳곳에 낙서금지 문안을 붙일 정도였다.심리학자들은 낙서는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이나 욕구 등이 표출된 표현물로 본다고 했다. 사회적 제도나 규범상으로 용인되지 못하는 일들을 낙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한다는 말이다.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 담벼락이 지난 주말 사이 두 차례 걸쳐 낙서테러를 당해 경찰이 용의자를 쫓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보는 문화재에 대한 낙서테러란 점에서 범행 동기가 자못 궁금하다. 이유야 어쨌든 문화재 훼손과 복구비 등을 생각하면 엄벌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9

포항탈북민들을 위한 온정의 불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매서운 기세로 동장군이 엄습한다. 주춤하던 추위가 동지(冬至)에 즈음해 본때를 보이기라도 하듯 바짝 수은주를 내리고 있다. 옷깃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온몸을 두텁게 감싸게 하고, 표연히 잎새를 떨군 겨울나무들은 간간이 바람피리 소리를 내며 파리해는 듯하다. 연말이 다가오고 날씨마저 추워지니 움츠러드는 건 나무들뿐만 아니다. 홀몸 어르신들이나 저소득 취약계층, 불우한 이웃 등이 맞이하는 세모의 한파는 해마다 을씨년스럽고 가슴저리기만 할 것이다.그러나 12월이 시작되면서 이웃사랑의 자선냄비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취약계층을 위한 ‘천사표’ 연탄 배달이나 사랑의 김장 나눔 등의 행사가 줄을 이으며 연말의 스산함을 따뜻한 온기로 녹여주고 있다. 또한 사랑의 쌀이나 생필품 전달, 후원금 기부 등의 연례적인 나눔행사가 지역별로 열려서 어려운 이웃들을 챙기고 베풀어 주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부분적으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이 의외로 많고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밀착형 지원책이나 골고루 도움과 혜택을 주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한 차제에 최근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체의 몇몇 봉사단이 힘겨움에 처한 한 단체를 자발적으로 돕고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어서 참으로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사진봉사단·벽화봉사단 등 5개 재능봉사단이,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 환경조성공사에 내 일처럼 발벗고나서 힘을 보태 영하의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이들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주말과 휴일의 개인일정을 뒤로하고 공사가 진행 중인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실내 대청소와 잔재물 정리, 벽체 거미줄 제거 및 콘크리트 파손부를 보수하고, 천장·벽체·바닥·베란다 등의 개소에 전면적인 도색작업을 합동으로 실시한 것이다. 특히 이날 봉사활동에는 3명의 자녀와 함께 참여한 직원이 있어서 봉사의 의미를 더했으며, 포항탈북민연합회 임원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활동에 전념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북한식 강냉이죽과 감자만두 등을 새참으로 준비해 봉사단원들은 별미로 먹으며 잠시 추위를 잊기도 했다.순수 북한이탈주민들로 구성된 포항탈북민연합회는 도내 첫 자생적인 비영리민간단체로,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을 지원하고 회원간 유대강화와 화합을 다지기 위해 지난 2월초에 결성됐다.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일자리·교육정보 등 지역 탈북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고 도와주는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여태껏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근근이 지내오다가, 최근 어렵사리 마련한 보금자리의 쾌적한 정주환경 조성에 포스코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니 연말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적선(積善) 사례가 아닐 수 없다.이와 같이 지역사회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포스코의 지역상생활동이 꾸준하고 다양하게 이어져, 춥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따스한 온정과 희망의 불씨로 되살아나길 기대해본다. 손잡고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

2023-12-19

보통 사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또,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별 감정이 없는 연말이 반복되고 있다. 새해가 되어도 뭐 하나 달라진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평상시와 비슷하게 닥친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에 익숙해진 까닭이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지난 주말 넷플릭스에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파가 몰아닥치고 황궁 아파트로 외부 생존자들이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영탁’을 대표로 선임하고 입주민들만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외부 생존자를 모두 바깥으로 내쫓는다. 영화의 서사는 영탁을 중심으로 한 입주민의 단결과 이에 동의할 수 있는 ‘명화’라는 인물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간 아파트 입주민을 대표했던 영탁이 입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아파트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영탁은 아파트 입주를 위해 돈을 보냈지만 사기를 당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아파트에 왔다가 지진을 겪게 된 것이다.영화의 마지막에 외부 생존자의 습격으로 황궁 아파트를 간신히 탈출한 명화는 낯선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들의 거주 구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냥 살아도 되는 거냐는 명화의 물음에 그걸 왜 자신들에게 묻냐며 살고 싶으면 살라고 답한다. 그때 다른 사람이 명화에게 황궁 아파트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는다. 잠시 생각하던 명화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고 말한다.마지막 장면은 나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배척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는 복도식 구조를 가진 낡은 아파트로 묘사된다. 주변의 아파트로부터 차별 받아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입주민들도 이 점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차별을 받아온 사람이 위계의 기준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되돌려 주는 장면은 그들에게 차별과 위계의 정서가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바로 이러한 마음이 문제라는 사실을 전한다.2023년 새해 첫 칼럼에서 나는 조세희 작가를 애도하며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을 새해에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라고 썼다. 1년이 지난 지금, 2023년 새해 다짐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말해야겠다. 노력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며 나의 이익을 취했다.새해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다시 소망한다. 그래서 1년 뒤 오늘, 지난 한 해를 특별한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2023-12-19

정의롭지 못한 희생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Pixabay 그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납치당했다. 납치범들은 인질을 무사히 돌려받고 싶다면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당신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만큼 수치스러운 내용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을 요구한다. 제한 시간은 앞으로 12시간. 당신은 순순히 납치범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이와 같은 상상이 너무 손쉽다고 느껴진다면, 몇 가지의 가정을 더 덧붙여보자. 당신은 영국의 총리이며, 인질로 잡힌 사람은 공주이다. 납치범이 협박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버린 탓에 전 세계의 시민들마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왕가에서는 ‘총리가 공주를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 믿는다’는 언질이 전해온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당신은 영원히 당신의 치부가 될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을까?어쩌면 당신은 ‘사람을 살린다’는 명제로 인해 이와 같은 순간에 대해 손쉬운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영상’인가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민들 또한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므로, 시민들 또한 당신에게 그리 심한 인격모독을 저지르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사실 이와 같은 가정은 실제 상황이 결코 아니다. 이건 그저 영국의 TV쇼인 ‘블랙 미러’의 한 장면일 뿐이다. 하지만 이 TV쇼는 우리에게 흥미롭고 불쾌한 통찰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다. 그건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가정 속에서,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옳은 결정을 하고자 시도하리라 생각하지만, 그건 당신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잠시 TV쇼의 내용을 살펴보자. 물론 총리는 현명한 사람이므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총리는 최후의 순간에 영원토록 자신의 치부가 될 영상을 촬영해 대중에게 공개하길 선택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그의 선택이 결코 사람을 살린다는 대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실업률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로 인해 하락하는 국민들의 지지도와 왕가의 압력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문제들이 대의보다 더 큰 압력이 되어 총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부끄러운 영상을 찍기에 앞서 국민들을 향해 ‘하지만 저는 아내를 정말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결함이 아니다. 거기에서 엿보이는 것은 압력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는 선택을 해버린 순진한 희생양의 모습만이 화면을 가득 채울 뿐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단지 불쾌할 따름인 이 TV쇼가 현실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강력하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다이버즘(Godivaism)과 같은 정치 역학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사람들은 모두 대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 어쩌면 이러한 수사들마저 철지난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 현재라는 시대라는 것이다.하지만 과연 이게 다일까? 어쩌면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은 한 걸음을 디뎌야 하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대의가 타자의 논리를 수용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해져버린 시대에서, 우리는 다시금 삶의 이유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 예컨대 주류 언론과 인터넷에 넘쳐나는 ‘주류 의견’에 대한 지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의 논리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 대가로 선택의 자유를 지불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희생양들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물론 이 말은 결코 반지성주의·반계몽주의적 입장에 서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라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의 사유는 정녕 우리의 것일까? 우리는 단지 ‘주류 의견’에 스스로의 사유마저 내맡겨버린 껍데기에 불과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삶을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그로부터 선택을 감행하며 결과마저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예컨대, 자기에 대한 책임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2023-12-19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요? 이따금 받는 질문만큼 난감한 것은 없다. 백과사전식 답을 구한다기보다 문학에 관한 생각을 묻는다는 걸 알기에 괜히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쓰는 사람이면서 읽는 사람이고 소설은 오랜 시간 내 옆에서 특별한 의미로 존재했다. 사적인 감상을 넘어 소설이라는 거대한 장르가 쌓아온 역사와 의미가 여타의 장르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대체 소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 것일까?문학은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장르다. 영상이나 이미지로는 구현해 낼 수 없는 언어적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 문학 작품의 묘미다. 소설은 언어로 ‘이야기’를 쓴다. 소설에는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내어놓는 사람, 즉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로 어떤 사건이나 생각 등을 내어놓는다. 독자는 화자를 따라가며 소설의 세계를 이해한다. 일련의 흐름 끝에 작품은 결론에 닿고 독자는 당연하게 누군가(등장인물 혹은, 작가)의 이야기를 읽었다고 생각하게 된다.그러나 소설을 이야기라고만 규정한다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줄거리만 두고 보자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공존하는 무수한 서사 장르는 소설보다 더욱 명확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야기’ 앞에 ‘시의성을 가진’ 혹은 ‘징후를 짚어내는’ 정도의 수식어를 붙이면 어떨까? 물론 그런 것들이 좋은 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순 없으나 소설의 본질을 설명하기에 완벽한 것 같진 않다.여기 소설은 ‘사고’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 등의 작품을 썼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작가, 밀란 쿤데라다. 그의 작품을 따라가노라면 어째서 소설을 ‘사고’라고 말하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한 편의 이야기를 감상한다기보다 철학적 논고 혹은 독특한 형태의 에세이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응당, 소설이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쓰는 사람, 그러니까 작가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전통적인 방식의 소설에서 작가는 완벽하게 숨어야 하는 존재다. 작가가 보이는 순간 독자는 그 이야기가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쿤데라는 소설 속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건 어리석다고 말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등장인물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몇몇 문장, 혹은 핵심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직접 기술한다. 이들은 실존하지 않는다. 테레자는 꾸르륵 소리로부터 탄생했으며 토마시는 “한 번은 중요치 않다”는 문장에서부터 시작됐을 뿐이다.이제 소설은 모두 가짜이며, 이야기는 작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인물을 통제하지 않으며, 단지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모두 각자의 독특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이 충돌하며 벌이는 사건과 그에 따른 결과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롭다. 거기서 작가는 또다시 인물과 세계의 해설자 역할을 자처한다. 작가가 만든 등장인물과 등장인물이 만드는 이야기, 다시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훌륭한 소설임에는 이러한 내막이 자리하고 있다. 기존의 소설과 다른 낯선 형식을 통해 도리어 소설이 가진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설이 ‘사고’라는 쿤데라의 선언은 다만 형식적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작품에는 작가 고유의 논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임을 이해할 수 있다.그런 면에서 독자가 한 작가를 사랑하고 그의 작품을 따라 읽는 행위는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그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작품이 나아갈수록 작가의 발화가 영글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독자는 작품 내부의 서사와 더불어 또 하나의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순간 소설의 이야기는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로 확장된다.소설이 무엇인지 묻는 것. 이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이 왜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답을 내린다. 그것을 읽어내는 것 또한 문학이 주는 모종의 재미다. 끝나지 않는 질문과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는 답이 섞여 매력적인 소설의 세계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2023-12-19

정부는 포항지진특별법상 소멸시효 기간 연장해야

금태환 변호사 정부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모든 국민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정부는 집단 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모든 피해자가 균등하고 완전한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눈을 돌려 작금의 포항을 한번 살펴 보자. 지난달 16일 포항지원이 포항지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가 포항시민 4만 7천여명에게 지진 당시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직후 나머지 45만 시민이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허겁지겁 갈팡지팡하며 변호사 사무실이나 길거리에서 사건을 접수하고 있다.왜 이리 동분서주하고 있는가. 포항지진특별법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일응 2024년 3월 20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석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석달 안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자신의 권리를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정부는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45만 포항시민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 영하의 날씨에 대기번호를 받고 변호사와의 관계도 불분명한 사무실 앞에서 6시간을 기다리는 사태를 계속 방치할 것인가. 이것은 놀림꺼리로 해외 토픽감이다. 어린아이, 돌아가신 분을 포함한 포항시민 전부가 한사람도 빠짐없이 소송을 제기해야만 포항지진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히 넌센스다.포항지진의 발생원인이 정부의 잘못에 기인한다는 것은 정부조사연구단 발표, 감사원 감사결과, 진상조사위원회 보고, 그리고 이번 포항지원의 판결로써 명백해졌다. 이번 포항지원의 판결은 이때까지의 지진 발생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고 포항시민에 대한 위자료 금액을 제시한데에 큰 의미가 있다. 이번 포항지원의 판결은 포항시민 각각에게 최대 3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하였는데 대체적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더 고통을 받은 사람, 사망자의 유족, 병원치료를 받은 사람, 증세가 심하거나 계속 중인 사람, 이재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물론 정부에서도 할 말이 있으리라. 정부도 할 만큼 했고, 포항지진 특별법에 따른 지원도 하지 않았느냐.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가 위 판결에 항소한 것도 이해가 된다.그러나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석달 안에 45만명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45만명 속에는 농어촌 거주 노인, 문맹자, 지체 장애자, 요양원, 장애시설 입주자, 지진 당시 미성년이었다가 이제 전국 각지에 나가 활동하는 사람, 지진 당시 해병사단에 근무하다가 이제 생업으로 복귀한 사람, 당시에는 포항 시민이었다가 이제는 각지로 흩어진 사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도 포항 지진 피해자이고 이 중 어느 누구도 위자료를 받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들 모두가 위와 같은 판결이 있은 줄 알아야 되고, 자신이 소송을 제기해야만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위자료 청구권이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포항지진특별상의 소멸시효기간은 5년이다. 포항지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의 1차 판결이 나는데 5년 가까이 걸렸다. 1차 판결을 지켜보다 보니 시효가 이제 석달밖에 남지 않았다. 시효가 임박해 권리행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국가가 만들었다. 포항시민의 책임이 아니다. 또한 누구 책임을 떠나 석달안에 45만명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그러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3달 남은 시효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적어도 1년, 하다 못해 6달이라도 시효를 연장하여 지진피해자 모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즉각 포항지진 특별법 상의 시효기간 연장 원 포인트 개정을 하여야 한다. 이후 조금 여유를 가지면서 포항시민 45만명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도 배상을 받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2023-12-18

파부침주(破釜沈舟)할 사람 어디 있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파부침주(破釜沈舟)는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항우본기’에 나온다.진(秦)나라 시황제 말기 폭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시황제의 죽음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진나라를 치기 위해 옛 초나라 땅에서 군사를 일으킨 항우는 거록 전투에서 강을 건넌 후 타고 왔던 배를 침몰시키고 싣고 온 솥을 깨뜨리도록 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3일 분의 식량만 나누어 주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도 없는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항우는 진나라 주력부대를 궤멸시키고 유방과 패권을 다투는 맹주가 됐다. 이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 파부침주다. ‘파부침선(破釜沈船)’, ‘기량침선(棄糧沈船)’이라고도 한다.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의 정치권 혼란 상황에 대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며 ‘파부침주할 백마탄 기사는 어디에 있나’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때아닌 겨울비에 감상에 젖어 쓴 글이지만 항우와 같이 결사항전의 각오로 나라를 구하는 인물이 왜 나오지 않는지 묻는 시국한탄이다.지금 정치권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장 선임과 중진 사퇴 압박 등으로 어수선하다. 더불어민주당도 ‘친명계’와 ‘비명계’로 나뉘어 당이 쪼개지기 일보 직전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코앞이다. 국민들은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가 선정됐다. 견리망의 대신 의를 생각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가 절실하다. 백마탄 기사는 정녕 보이지 않는가.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8

명분 없는 정치는 가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는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이 있어야 한다. 대의 없는 권력 추구는 야만이며, 명분 없는 권력 행사는 폭력이다. 정치의 이상이 대의를 구현하는데 있음에도 현실의 정치는 권력투쟁뿐이다. 대의도 명분도 없이 오직 권력에만 혈안이 된 ‘야만의 정치’ 때문에 국민의 고통이 크다.총선이 코앞인데 아직도 ‘게임의 룰’이 확정되지 않았다. 여야가 ‘명분 없는 실리’를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손해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니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여야는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제에 관심이 있을 뿐,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의는 외면하고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견리망의(見利忘義)’하고 있으니 국민의 불행이요 국가의 위기다.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행태도 명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임명하여 분란을 자초했던 대통령이 그의 후임으로 또 다시 검찰 선배, 김홍일을 지명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물론 친여 언론들까지 나서서 방송통신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내 편만을 생각한 명분 없는 인사’라고 비판했다.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이라는 대의는 없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내 편만 집착하고 있으니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엑스포 유치경쟁 참패로 화난 ‘부산 민심’을 달래려고 ‘대통령의 국제시장 먹방’에 기업 총수들을 동원한 것도 명분 없는 권력의 횡포였다. 치열한 세계경제전쟁에 촌음을 아껴 써야 할 바쁜 총수들이 불려나와 떡볶이 접시를 들고 대통령 주변에 들러리서있는 모습은 안타깝고 한심하다.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정치쇼가 총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리석다.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윤핵관·지도부·중진 등의 희생 요구에 장재원 의원은 세력을 과시하며 반발하다가 마지못해 불출마선언을 했고, 진즉 물러났어야 할 김기현 대표는 용산의 눈치를 보다가 벼랑 끝에 몰리자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중진의원보다 더 노회(老獪)한 초선의원들이 대표 호위무사 노릇을 하다가 이제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으니 측은하다.총선을 앞두고 분출하는 정치인들의 탈당과 창당 및 그들 간의 연대도 분명한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물론 제3지대가 극단적 대결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고 중도의 민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명분은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권력을 목적으로 정치공학적 계산 아래 이루어지는 합종연횡은 공익을 명분으로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공하기 어렵다.정치는 대의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면 대부분 실리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실리, 즉 권력은 명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더욱이 그 실리가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해서 얻은 것이라면 불신을 자초함으로써 결국 권력도 잃게 된다. 정치지도자는 명분과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야 한다.

2023-12-18

다시 희망을 말한다

김규인 수필가 벌써 12월이 반을 지났다. 새해가 되면 잔뜩 기대를 품고 시작했건만 연말이 지나도 달라진 건 찾기 힘들다.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연일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바닥을 기고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경제 패권 다툼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세계 경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내년도 전망을 보아도 속 시원하게 나아진다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 이렇게 경제가 휘청이는데 퇴로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경제가 움츠려 많은 공장이 멈추어도 지구는 덥다고 몸살을 앓는다. 몇 달간 산불이 지속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물난리로 집과 농작물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목숨을 잃는다. 지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사람들은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고개를 안으로 돌리면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 경제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 수출은 어렵고 생산이 줄고 양질의 일거리도 줄어든다. 내년에는 회복되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동안에도 물가는 계속 오르고 가격을 올리는 기업도 사 먹는 소비자도 신경이 곤두선다.내수 진작으로 경제를 떠받혀야 할 인구는 자꾸 줄어든다. 줄어드는 인구를 정부는 안간힘을 다하여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줄면 몇 년 뒤 지방 대학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는데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가야만 하는지.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은 많기만 하고 자신들의 권한은 해마다 늘려나간다. 심지어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다는 권한까지 법으로 챙긴다. 남의 말을 듣는 그들의 귀는 점점 작아지고 자기의 말만 하는 입은 커져만 간다. 자신을 위해 움켜쥐는 손은 크고 국민을 위한 생각은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말끝마다 하는 말은 ‘국민을 위해서’다.시간이 지나도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의 짙은 먹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가 안 보인다. 이제는 물가도 이율도 고공 행진을 하느라 사람이 딛고 사는 땅을 잊은 것 같다. 한국은행은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조심스레 제시한다. 이제 살얼음판을 걷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기술이 된다.나라의 살림살이가 이러한데, 거기에 얽매인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그렇게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그래도 돌아보면 힘내어 살아야 할 이유는 많고 문제가 어려울수록 풀고 난 다음 손맛의 남다름을 우리는 안다.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차근히 풀다 보면 문제는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해결하라고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이겨낸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이듯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밝은 얼굴로 살면 삶도 나아질 것이니 웃으며 기다릴밖에. 그렇게 다시 희망을 말한다. 2024년은 다시 일어서는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은다.

2023-12-18

세상에 나쁜 옷은 없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경제가 어렵지 않은 시대를 찾기가 더 어렵겠지만 요즘 한국 경제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수입이 줄어든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이에 따라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이 피부로 체감된다. 상업지구에는 공실이 넘쳐난다. 취업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노동 가치가 하락하다 보니, 성실히 일해서 돈을 벌기보단 부동산 ‘영끌’과 가상화폐 ‘존버’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잘 팔리는 상품도 있다. 이른바 ‘가성비’ 상품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지난 2010년, 롯데마트가 오천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했던 ‘통큰치킨’이 대표적이다. ‘통큰치킨’은 시중 치킨 프랜차이즈 치킨 대비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항의 또한 만만하지 않았고 결국 출시 일 주일 만에 사라지고 만다.‘통큰치킨’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 경제가 휘청이던 2010년의 풍경을 대표한다면, 2023년의 경제위기를 상징하는 상품은 ‘오천 원 후리스’일 것이다. ‘후리스’란 양털처럼 보송보송하게 처리한 합성섬유와 그것으로 만든 의류를 가리키는 ‘플리스(fleece)’의 일본식 발음이다.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 수 년 전부터 겨울 의류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오천 원 후리스’는 기성 의류 브랜드가 아닌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다.필자도 두 벌의 플리스 재킷을 가지고 있는데, 둘 중 최근에 산 것은 한 스파(SPA) 브랜드에서 2만 원에 구입했다. 2만 원짜리라고 해서 결코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 네 배 더 저렴한 다이소의 ‘오천 원 후리스’ 또한 원단은 조금 얇을지언정 일상복으로 입기에 충분해 보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이소에서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오천 원 후리스’를 필두로 ‘가성비’ 의류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가는 모양새다.‘통큰치킨’ 때와는 달리 ‘오천 원 후리스’가 패션산업의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비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가성비’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다른 논리들이 힘을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2010년보다도 2023년의 경제 상황이 더더욱 어려운 것일까? 걱정이 크다.‘오천 원 후리스’의 품질이나 ‘가성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너무 짧아진 옷의 수명’이다. 대형 패션 브랜드들이 매년 유행시키는 옷들이 너무 쉽게 버려지고, 이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스파 브랜드 의류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한두 번 입고 더러워지면 세탁하는 대신 버려버리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자랑스럽게 온라인에 게시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렴한 물건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필요에 따라 구입해서 필요에 맞게 입는다면 세상에 싸서 나쁜 옷은 없다. 저렴한 옷을 쓰레기로 만드는 유행과 소비가 있을 뿐이다.

2023-12-18

양립할 수 없는 이미지의 공존 라벤나 ‘아리안 세례당 모자이크’

이탈리아 라벤나에는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재위 488∼526) 통치시절인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지어진 ‘아리안 세례당(Arian Baptistery)’이 있다. 세례당 천장은 의례 이 시기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색 입힌 작은 돌이나 유리조각을 배열해 이미지를 만드는 모자이크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빛을 반사시켜 실내공간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장 전체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반원형의 둥근 천장 가운데 부분에 크기가 작은 또 다른 원형 하나가 더 들어간 구조를 보인다. 가장 중심의 원에는 세례당에 잘 어울리도록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바깥 원에는 고대 로마 남성들이 입었던 토가를 두른 열 두 명의 사도들이 왕관을 손에 들고 등장한다.그런데 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가 표현한 세례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렇다. 미술가는 물 속에 들어 간 사람을 실감나게 그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미숙하지만 순수함이 느껴진다. 유기적인 선들의 흐름이 강조된 훈데르트바서의 평면적이지만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한다. 예수는 수염 없는 매끈한 얼굴의 젊은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동물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덮수룩한 수염의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머리에 손을 올려 세례를 준다.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예수의 머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그려진 예수, 세례자요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는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곳 천장 모자이크에는 흰 머리와 흰 수염을 한 나이든 남성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이교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피해야할 강의 신이다. 교회미술에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기독교 도상이 확립되지 않았던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종종 관찰되는 현상이다.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는 어떤 이유에서 예수의 세례 장면을 묘사하면서 성서가 전하고 있는 장면과 전혀 무관한 강의 신을 구태여 그려넣었던 것일까? 오히려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인물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설명이 가능할까?기독교적 내용과 이교적 이미지가 혼영되어 나타나는 이런 미술현상은 기독교 교리나 기독교 도상이 아직 정립되고 확립되지 않았던 이 시기, 로마미술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결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술자나 노동자에 가까웠던 당시 미술가들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미술은 고대 로마가 남긴 유산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아온 것들은 인물이나 건물 혹은 자연을 묘사할 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고대 로마미술에서 기독교 미술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자주 관찰된다.라벤나의 아리안 세례당 모자이크 보다 100년 앞서 제작된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을 장식하는 부조(359년경)나 비슷한 시기 제작된 라벤나의 갈라플라치디아 영묘당(425∼450년경) 벽면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나 로마 산타푸덴치아나 교회 앱스 모자이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작품이 묘사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로부터 온 것이거나 기독교적 상징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로마미술을 따랐다. 그래서 로마 미술에서 익히 등장하는 태양신 아폴론의 모습이 예수의 모습에 입혀졌고, 기적을 행하거나 제자를 가르치는 예수의 모습은 토가를 입은 로마 철학자와 매우 유사하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12-18

다양한 박제와 표본, 경북대학교자연사박물관

경북대학교자연사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국립대학에서 개관한 곳으로 보유한 자료에 비해 전시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자연사박물관이 15개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알차게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주로 지구에 존재하는 자료 및 표본을 수집하고, 수집된 자원을 보존·복제·복원·대여 등을 통해 지구의 다양한 자원자료센터로 기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관련 연구를 지원함을 물론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인문처럼 ‘우리 곁의 지구’를 이해할 수 있게 호기심을 유도한다. 이는 지구라는 주제를 큰 틀에서 이해하고, 자연 속의 인간을 인식하게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를 알게 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표본들은 생태환경 연구에 필수적인 연수자료다. 종의 식생활이나 번식 방법·성장 속도·수명·진화의 형태 등 연구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며, 생물 산업과 연구가 중요해지는 미래산업 발전의 측면에도 국가의 중요한 경쟁력으로서 든든한 발판이 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분야는 인문과 예술에 비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지, 현재 국내 자연사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일반 박물관에 비해 높지 않게 조사되었다.경북대학교 자연사박물관은 작은 공간에 많고 다양한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상설 전시로 물속생물관, 공룡화석관, 지질암석관, 곤충관, 식물자원관, 체험영상실, 조류생태관, 야생동물관을 운영한다. 물속생물관에서는 연체동물과 어류·파충류·포유류의 액침표본과 고래 뼈 등과 같은 골격표본과 일부 박제표본을 볼 수 있다. 특히 은은한 불빛 아래의 액침표본은 하교가 끝난 학교 과학실을 떠올리게 해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공룡화석관은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과 공룡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재현된 발자국을 보고 나서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등과 같은 실제 화석을 본다면 좀 더 명확하게 무엇이 발자국인지 알화석은 어떤 형태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질암석관은 화강암·퇴적암·변성암 등 주요 암석과 지질 변화의 형태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신기한 암석은 지구상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에서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아노박테리아(청녹조류)가 성장하고 죽는 과정에서 퇴적물이 줄무늬 층으로 드러난다. 이 암석은 지구 초기 생명이 탄생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박테리아나 미세조류의 진화 과정까지도 연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월·인천·경산에서 이 암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곤충관은 국내산 나비와 다양한 곤충들 그리고 외국의 화려한 곤충들의 모식표본이 전시되어 있고, 채집 관련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식물자원관은 양치식물·겉씨식물·속씨식물 등 식물에 대한 분류 설명과 식물표본 그리고 종자를 관찰하는 현미경이 마련되어 있다. 체험영상실은 자연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거나 체험학습 및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강의를 한다. 조류생태관과 야생동물관은 다양하고 많은 박제가 있다. 철새·텃새·물새·맹금류·황새·느시·수리부엉이·큰고니 등 새와 호랑이·반달가슴곰·고라니·족제비 등 동물이나 멸종위기종의 박제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두 전시관은 온라인 전시 ‘더브-살다’와 ‘한반도 최고 포식자’와 연계되어 있는데, 쓰레기로 죽어가는 지구와 환경보존 그리고 박제된 동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코트나 가방이 된 동물들을 보면서 환경보호에 관해 이해하고, 먹이 사슬의 강자인 호랑이와 그 먹이 사슬 아래에 놓인 동물들을 통해 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호랑이는 앞발 펀치가 장점이라서 들소의 목을 한 방에 꺾을 수 있으며, 38킬로미터로 달리는 우사인볼트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속력을 낼 수 있다. 호랑이와 땅의 소유권을 경쟁하던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발톱으로 액운을 방지하는 노리개를 제작하여 차고 다녔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호랑이의 사자후와 같은 초저주파를 활용해서 적의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유발하고, 기지를 방어하기도 했다.인간의 문명과 과학기술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코끼리·여우·고래·벌·거북이·나무 등을 사라지게도 살아가게도 할 수 있다. 500년 동안 없어지지 않는 플라스틱·동물의 올무가 되는 빨대나 비닐·동물을 죽이고 뺏은 옷과 가방 등은 지구 온난화·해수면 상승·긴 장마·가뭄·물부족·미세 플라스틱 축적 등 현재 닥친 환경문제와도 직결된다. 과학 전시는 이러한 것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국내 자연사박물관이 많은 편이 아니고, 규모 또한 크지 않으며, 체험이나 메타버스를 활용한 현재 박물관과 전시관의 전시 형태나 쌍방형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프로그램이 부족한 편이라는 점이 아쉽다. 전시물에 대한 적극적인 해설과 다양한 실험과 같은 프로그램도 부족해 보였다. 미래는 융합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자연사박물관은 과학융합적 사고에 도움이 될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과학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2-18

다시 ‘이인제’를 만들 건가

신당 얘기가 계속 나온다. 집권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분당(分黨)과 신당(新黨)이 유행병처럼 퍼진다. 넉 달도 안 남은 국회의원 선거가 실감 난다. 선거를 앞두고는 정해진 순서처럼 신당 바람이 분다. 정당이 공천할 자리가 한정돼 있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떳다방’처럼 창당 바람이 분다.요즘 신당은 그보다 심각하다. 공천장을 받기 위한 대안 정당 정도가 아니다. 내부 갈등으로 양대 정당을 쪼개려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했지만, 선거판이 그렇다. 득표 비율로 의석을 나누는 정당 비례투표나, 연동형 선거라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대 정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다.피부에 확 와닿는 사례가 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출마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다. 이 전 지사는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그는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김대중 후보가 40.27%를 얻어 38.74%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이인제 후보는 19.20%, 492만여 표를 얻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이인제 전 지사가 경선에 승복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 표를 가져갔다.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들 김영삼·김대중, 양 김 씨가 단일화했으면 정권 교체했다고 믿는다. 또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를 0.73%(24만7천77 표) 차이로 눌렀다. 이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0.83%)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회의원 선거는 더 하다. 특히 수도권은 1천표 이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쪼개나가면 당선은 안 돼도, 떨어지게는 할 수 있다.민주당에서도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 창당, 진짜로 할 거냐’라고 묻자, “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방향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을 1인 체제로 굳혔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이낙연 전 대표의 기반을 깡그리 없애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쪽 사람은 총선에서 공천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죽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당이 몰아낸다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도 탈당은 주저하고 있다. 탈당하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일부 호남 의원들이 새천년민주당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사라졌다.호남 유권자들은 영남과 다르다. 전략적 투표에 익숙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이듬해 19대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를 더 밀어 당선시켰다. 2022년 대통령선거 때도 막판까지 안철수 후보에 미련을 가졌지만 결국 이재명 후보로 몰아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줄곧 영남 출신 후보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영남 정치인을 ‘호남 후보’로 만들었다.영남 유권자들은 직선적이다. 인구가 더 많다. 선거구도 더 많다. 그러나 아주 적은 표 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은 다르다. 대체로 보수정당이 열세다. 그런데 여기에 전체 의석의 절반이 걸려 있다. 자기 지역에서처럼 기분대로 하려면 정권을 넘겨야 한다. 집권하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처럼 전략투표까지는 아니라도 세력을 넓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비주류, 중도 세력을 끌어안는 건 기본이다.이준석 전 대표도 연말에는 신당을 만들 듯이 바람을 잡고 있다. ‘싸가지없다’고 진저리치는 사람이 많다. 대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집권당의 업보다. 선거가 코앞이다. 거저먹을 순 없다. 또다시 ‘이인제’를 보지 않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7

연말 결산에 추가해야 할 항목

유영희 작가 뉴스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 때도 많고, 폭력, 사기, 산업 재해 등 사회면 기사에도 울분이 치밀어 오를 때도 많다. 뉴스에 딸린 댓글도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사이다 같은 댓글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 댓글의 내용도 분노나 조롱인 경우가 많으니, 내 마음 역시 그들처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상태일 것이다.그러나 잠시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면, 이런 분노나 울분이 문제 해결에 도움되기는커녕 갈등만 증폭시킨다. 무엇보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를 입는 것이 내 신체이다. 분노에 휩싸이면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 신체의 반응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공격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많다. 증오심에 가득차서 악플 달기를 계속하거나 대놓고 물리력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신체 감각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쾌감으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하면서도 그것을 쾌락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알콜 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은 자신의 신체가 망가지는 일인데도 감행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게임을 하며 몸을 한껏 긴장 상태에 몰아넣고 즐겁다고 착각한다. 도파민 중독은 더 미묘해서 신체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드물다.‘소통하는 신체’를 쓴 우치다 타츠루는, 우리가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뇌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는 감각을 차단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몸에게 명령하며 신체를 침묵시킨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둔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둔감해져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뎌지게 되고, 가해하기도 한다. 우치다는 무뎌진 신체 감각을 민감하게 하려면, 지금 나의 신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얼마만큼 먹고 싶어 하는지, 얼마만큼 자고 싶은지, 어떤 목소리를 듣고 싶은지 몸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 역시 느낌은 몸과 뇌와 마음을 연결하는 항상성의 기초라고 하면서 느낌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내 신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신체가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나의 신체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에게 묻지 않는다. 경쟁 사회의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다 보면 몸에게 물을 겨를이 없고, 내 편만 옳다고 고집하며 상대편 공격에 몰두해도 내 몸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12월은 연말 결산하는 때다. 결산이라고 하면 일의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나의 신체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점검하는 것도 연말 결산 항목에 추가하면 좋겠다. 요즘 침대 옆에 화이트보드를 세워놓고 아침에 깨자마자 내 몸이 더 누워있고 싶은지 물어보거나, 느낌을 점검하여 아주 짧게 기록하고 있는데, 항상성 유지에 도움 되고 있다. 민감한 신체 감각을 갖는 것은 소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데도 유익하다. 자기 신체에 좀 더 자주 경의를 표하자.

2023-12-17

관점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현재 내 주위의 모든 물건은 생각의 산물이다. 지금의 삶의 내 모습도 생각의 결과물이다. 생각과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생각을 가공하면 관점이 되고 관점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느껴지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비결은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다. 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문제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바로 관점이다.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능력의 차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느냐?’에서 기인한다.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자가 P사의 말레이시아 해외법인 첫 컨설팅을 갔을 때 일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시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이슬람교 큰 사원이었다. 호텔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사원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40여 분 걸어가니 큰 사원이 나왔다. 손을 씻고 대웅전에 들어가보니 코란이 있고 벽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웠고 짧은 영어로 담소를 나눴다.현지 주재원과 첫 인터뷰를 했을 때 말레이계 직원은 내성적이고 적극성이 부족하고 부지런하지 않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말레이계 직원과 대화를 했을 때 첫마디가 공장 내 기도실에 거울과 손 씻을 수도를 설치해달라는 평범한 얘기였고 그들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하루 5번의 기도를 하는 이슬람교의 직원들을 바라보는 주재원의 관점이 관리운영 방식에 오류가 생기고 소통의 벽을 만드는 형국이었다. 이런 관점을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세번째 방문 때 250명의 직원들이 28개 활동팀으로 나누어 개선활동의 시작인 ‘즉실천 경진대회’를 실내체육관에서 실시했다. 비슷한 내용이라 지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올림픽경기처럼 입장하는 것부터 다양한 모습을 꾸며 재미를 더했고 28개팀 발표자는 250명 청중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밝고 재치가 넘쳐 흘러 모든 주재원들의 말라이계 직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일순간 바뀌었다. 주재원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소통이 원활해졌고 밝은 분위기 속에 개선활동도 잘 되어 연말에 혁신활동 해외 부문 큰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그 비결은 인식의 오류를 해결하고 상대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회문화, 종교, 생활습관 등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우리가 보는 많은 것 중에는 그 이면까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왔다는 이유로 ‘당연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보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고 똑똑한 사람이 지식의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위험한 일이 된다. P사 말레이시아 법인처럼 종교의 특징과 사회문화를 이해하면서 하나가 되듯 고정관념을 버리고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미래가 보인다.

2023-12-17

경북 시·도민이 염원하는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시 인구의 6배에 육박하는 146만 3874명이 2025년 한국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이 같은 숫자는 지난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불과 석 달도 안 되는 기간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 서명운동’에 참여한 인원이다.인구 300만 명의 경쟁도시 인천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 간 111만 여명의 서명을 이끌어 내는데 그친 것과 비교해도 과히 놀랄만한 성과다.이는 APEC 정상회의 유치를 향한 경주시민, 경북도민의 간절한 염원을 넘어 전 국민적 관심이 경주를 향하고 있다는 것 뿐 아니라, APEC 위상 또한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APEC 회원국들은 전 세계 인구의 40%, GDP의 52%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전 세계 교역량의 절반을 점유하는 세계 최대 협력체로 자리매김했다.한국은 APEC이 출범할 당시 12개 창설 회원국으로 참가하면서 현재는 회원국들과 최대 무역 및 투자 파트너로 삼아 한반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이처럼 국민들이 APEC 정상회의 국내 개최를 반가워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대한민국은 앞서 18년 전, 부산에서 열린 2005 APEC 정상회의를 통해 그 효과를 맛 본 적이 있다.국가의 위상을 몇 단계 높였을 뿐 만 아니라, 부산 APEC의 결과물이었던 ‘부산선언’과 ‘부산로드맵’은 전 세계인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당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은 부산 APEC 정상회의 모습과 함께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와 아름다운 모습을 세계 전역에 보도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부산이 유치 도전에 나섰던 ‘2030 세계박람회’ 또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도시였기에 가능했다.이처럼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도시는 ‘한강의 기적’과 맞먹는 상전벽해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의 반열에 오르게 됨은 물론 수 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놓고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한 건 당연지사다. 물론 경주와 경쟁 관계인 인천과 제주, 거기다 두 번째 유치를 노리는 부산까지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인천과 제주는 공항과 회의시설 등 이미 구축한 기반을 내세우며 일찌감치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한 부산은 뒤늦게 조직을 재정비하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이에 발맞춰 정부는 이달 중 공모 절차를 시작해 내년 4월께 개최 도시를 결정한다는 입장인데, 앞으로 지자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경주는 2015 세계물포럼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하우와 APEC 미래 비전인 ‘포용적 성장(소규모 도시개최)’에 가장 적합한 도시임을 내세우며 유치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국가적으로 최적의 선택지가 경주임을 어필하는 차별화 전략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라는 상징성을 부각하는 건이 개최지 선정의 최대 관건이다.혹자들은 유치 경쟁에 있어 정치 논리를 꺼내곤 한다.앞서 경주는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태권도의 발상지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에 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절대 이런 일이 절대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 경주가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을 총선 이후로 미뤄 달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유치서명 운동에서 보여준 시·도민들의 뜨거운 의지와 열망을 바탕으로 경주는 경북도와 함께 APEC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남은 기간 총력을 다 할 것이다.

2023-12-17

망개떡

전화기 벨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 받기로 하고 전화기를 가방 속으로 넣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칠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청각 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어지간히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통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잠시 아버지와의 통화를 미뤘다.나는 막내딸이다. 아버지 나이 사십에 얻은 막내딸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죽음을 선고 받았다. 지금까지 살아 계신 이유는 내가 아버지의 살아야 할 이유였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런 절박한 사랑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많은 아버지가 그렇듯 표현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내 옆엔 항상 무서움과 외로움이 나란히 했다.대학교 2학년 때다. 음악 연주회로 외국을 나갔다 며칠 만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친 몸을 끌고 어두운 길을 터벅터벅 걸어 왔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 다리는 내게 외로움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다리 위 가로등 밑에 너무나 익숙한 걸음걸이가 보였다. 내 쪽으로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학교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 낮아지고 작아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이유였는지 나를 기다려준 아버지가 기쁘기보다 오히려 어색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옆에서 같이 걸어 주니 내가 높아지고 커진 것 같아 무섭지도 않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아버지와 나는 참 어색했다.그저 집으로 가는 것이 목표인 양 열심히 걸었다. 외국인과 걷는다 한들 이렇게 부자연스러울까.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망개떡 한 개씩을 먹으며 나란히 걸었다. 집에 도착 할 즈음 아버지는 겨우 한 마디 하셨다. ‘차 조심 하고 다녀’ 라고.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이 망개떡 냄새와 함께 코를 스쳐갔다.3년 전의 일이다. 학부모가 학원을 하는 내게 망개떡을 가져 왔다. 나뭇잎에 새 색시처럼 하얀 살을 감추고 있는 망개떡이었다. 처음 보는 그 떡이 예쁘기도 했지만 맛이 좋아 아버지께 갖다드렸다. 아버지는 떡을 드시면서 옛일을 떠올리셨다. 전시에는 항상 군인들의 식량이 문제인데 상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했다. 망개이파리는 부패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다고 했다. 일본에도 비슷한 떡이 있지만 우리나라 망개떡과는 의미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며 추억에 젖어 행복하게 드셨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하신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길고 여운이 있다.“갱…. 아….”“망개뗙 먹고 싶다” 김경아 작가 항상 맨 뒤의 단어가 길다. 할 말만 하시곤 내 대답은 상관없이 전화를 뚝 끊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식이 나 혼잔가 하며 투덜대지만 외면할 수 없다. 망개떡을 샀다. 친정으로 향했다. 저 멀리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인다. 자전거 뒷좌석에는 직접 키운 상추랑 고추랑 파가 가득 실려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신다. 순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처진 어깨와 페달을 밟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셨다. 귀가 잘 안 들려 엄마랑 소통이 잘 안 된다. 늘상 소리 지르는 엄마에게 섭섭한지 그때부터 아버지는 무표정으로 살았다. 그러나 나를 보면 말 대신 활짝 웃으신다.그것은 또 다른 언어였다. 20년 전, 다리 위에서 평생에 한 번 나를 기다리셨던 아버지. 망개떡을 함께 먹으며 차 조심 하라고 하신 아버지. 그 한 마디는 딸에 대한 아버지만의 사랑이었다. 또, 망개떡이 먹고 싶다는 말은 딸이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또 다른 언어였다. 망개떡은 아버지와 나만의 소통이었고 사랑이었다. 나뭇잎에 싸여 있을 땐 망개떡의 맛도 모습도 알 수 없다. 아버지의 겉모습은 망개 이파리처럼 뻣뻣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망개떡처럼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했다.

2023-12-17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몇 일 전 한 언론이 포스텍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를 실어서 포스텍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포스텍의 구성원이 깜짝 놀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이 기사는 입시와 대학 발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국민들을 놀라케 한 사건이었다.한국대학을 걱정하는 일반 기사는 종종 접하고 그 기사에서 특정대학이 거론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 개의 특정대학을 집중적으로 난타하는 기사는 전무후무한 기사로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입시계의 SNS에서도 설왕설래가 되고 있다. 특정대학을 공격하는 기사 자체가 언론의 정도가 아니지만 그 기사에서 인용된 대부분의 데이터들이 오류 투성이라는게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포스텍의 교원 1인당 논문 실적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해외 유수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목표인 포스텍에 한국연구재단 등재지(KCI)를 기준으로 하는 ‘국내 논문 실적’을 들이대고 부진하다는 기사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포스텍, 카이스트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KCI 보다는 해외 저널 논문을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고 이러한 기준으로 교수 1인당 논문이나 인용 수는 포스텍은 한국에서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다.또한 타 대학 등과 논문숫자를 단순 비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연구력을 평가할 때는 교수 1인당 실적을 비교하는 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고 절대수를 비교 한다면 칼텍(CalTech)과 같은 세계적인 대학도 미국의 대규모 주립대보다 낮을 수 있는 것이다. 교수 1인당 논문 실적은 포스텍은 국내 타 대학, 과기대들보다 단연 앞서고 있다.기사는 포스텍의 중도탈락률에 관하여도 언급 하였는데. 중도탈락률은 의대광풍 등으로 중도탈락률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이나, 역시 타 과학기술원과 비교할 때 최저 수치이고 엘리트 대학 평균치보다 낮다. 중도탈락률의 상승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텍은 물론 전국 대다수의 대학이 처한 시대적 특수상황을 견강부회 형식으로 끌어다가 기자는 보도하였다.세계 대학 평가도 현재 새로운 지표들이 문제가 되어 QS 등도 지표를 수정한다고 선언했으며 잘못된 지표에 의해 일시적으로 하강 된 것이고, THE의 올해 소규모대학평가(재학생 5천명 이하)에서는 포스텍이 칼텍에 이어 2위로 평가되었다. 기사는 ‘서카포’는 옛말이라고 폄하했지만 인용한 김박사넷 SNS에서는 서카포, 영어로는 오히려 SPK가 일반적으로 이공계 최고의 대학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육성의 글로컬 대학의 이슈도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등은 응모할 자격이 없어서 안한 것이지 자격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했을 것이라는 게 SNS상에서 지배적인 의견이다. 포스텍이 대학 선정과 재단의 새로운 투자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려는 중요한 때에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는 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입시관련 SNS상에서는 해당 언론이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누가 보아도 특정대학을 폄하하기 위하여 허위 데이타를 끌어쓰는 방식에 대하여 그 의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학 차원에서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여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으로 알고 있다.이와 함께 대학이 계획하고 있는 포스텍의 미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외에 홍보하며, 구성원들이 더욱 대학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포스텍은 과거 세계 28위(THE 랭킹)로 단연 한국대학의 선봉장이었고, 카이스트와 홍콩과기대, 로잔공대 등을 누르고 ‘설립 50년 이하대학’ 세계 1위로 3년 연속 랭크된 대학이기에 전 세계 교육계의 관심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있다.최근 추진되고 있는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추진도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교의 위상이 의대 설립과 함께 크게 고취될 수 있고 뒤처진 한국 의과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포스텍은 그냥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포스텍은 이제 30년을 넘어 반세기를 향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그 정성과 땀을 바쳐온 교수와 구성원들에게는 포스텍은 그냥 ‘아무나의 직장’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나의 대학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은 아니었을 것이다. 먼훗날 우리는 “아무나가 아닌” 우리 한국의 과학과 경제발전, 그리고 지역과 연계한 창의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포스텍을 위해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였구나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총장의 새로운 시작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포스코의 슬로건중에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구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포스텍은 절대 흔들어서 흔들리는 대학은 아니다.37년 전 서울중심의 이땅에 지역에서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꿈은 하나씩 실현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 꿈의 실현은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2023-12-17

건강수명 연장, 나가노현에서 배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올해 우리나라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 명에 이르고 전체인구의 18.4%를 차치하고 있다. 고령인구의 비중은 2025년 20.6%를 기록한 뒤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경상북도는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경북의 고령인구는 62만 5000명으로 전체인구의 24%를 차지해 이미 2019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역별 고령인구 비중이 전남(25.1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특히 경북 의성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41% 이상을 차지해 전국 시군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머지않은 2045년에는 경북 전체인구 중 43.9%가 고령인구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오래 사는 것은 만인의 염원이자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장수 위험’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노후에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자칫 오래 사는 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아픈 상태로 오래 사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가 도래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준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아픈 기간이 오래 지속된다면 서민들에게 고액의 의료비와 간병비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보건의료정책이 치료 위주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또한 건강보건정책의 핵심을 예방과 진단, 맞춤형 건강법의 보급에 두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가 예방 중심으로 바뀌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으로 변해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 등 전반적인 각종 보건 의료정책이 계획대로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제는 국민 스스로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다. 남자가 80.5세, 여자가 86.5세로 남녀 간 6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73.1세로 10년 정도 짧다. 건강수명에서도 여자 74.7세, 남자 71.3세로 여자가 3.4년 더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도 80.5세, 70.3세로 10년 차이가 난다. 노인이 건강한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건강수명의 대명사가 된 일본 나가노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칼슘이나 비타민 D가 풍부한 우유나 유제품, 해산물, 콩류 등을 적극적으로 섭취하도록 하는 식생활 개선과 함께 노인을 대상으로 체조와 스트레칭, 근력운동 등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거기에다가 지자체의 주민센터, 보건소, 복지시설,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골다골증 등 건강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산책로, 둘레길, 체육시설 등에 ‘맞춤형 운동’을 집중적으로 보급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70대는 일생에서 신체 기능이 크게 약해지는 분기점과도 같은 시기다. 뼈와 근육 소실로 키와 힘,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노화 관련 연구 결과들을 모아 보면 40대 이후 키는 10년마다 약 1cm씩 줄어들다가 70대에 들어서면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근력은 60세 이후 연간 3% 정도 감소한다. 따라서 가벼운 낙상 사고에도 심한 부상이나 골절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의 기능도 약해져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매 등의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나이다.노년기 신체 기능 향상 및 만성질환 예방에 가장 손쉽고 이로운 방법이 운동이다. 체조와 스트레칭 운동은 몸의 구석구석을 자극시켜 신진대사 촉진에 도움이 되고, 빠르게 하면 유산소운동의 효과, 아주 천천히 하면 유연성 및 근력 향상과 재활에도 효과가 있다.규칙적인 체조 운동으로 체력이 향상되면 근력과 움직임의 향상, 심장의 수축력 증가, 당대사능력의 향상, 지방의 과다축적 방지 등의 효과뿐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 개선 등 이차적 효과도 있다. 이에 더해 체조와 스트레칭은 나이에 맞는 속도로 천천히 진행하면 골밀도 강화는 물론이고 목이나 무릎 등 관절 부위인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 게다가 심장에서 가장 먼 데서부터 하는 순서여서 심장이 약한 고령자들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그런데 기존 ‘국민체조’는 동작이 너무 단순하여 다소 운동 효과가 적으며 딱딱 끊어지기 때문에 다치기 쉽고, 또한 ‘새천년건강체조’는 국민체조에 비해 동작이 다소 복잡하여 혼자 동영상을 보고 외우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태권도에서 따온 옆차기 등은 고령자가 따라하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노년기에 자신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게 동작의 난이도 및 운동 강도를 상·중·하로 구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체조가 나가노현과 같이 우리 지역에서도 하루빨리 개발 보급됐으면 한다.

2023-12-17

‘네모난’ 나사못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사노라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들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을 가리켜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굴러들어온 행운이라고나 할까!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 덕분에 나도 청춘들처럼 유튜브와 친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천문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와 영성(靈性)과 관련된 영상 그리고 인문학이 나를 끌어당긴다.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귓전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절이 있다. “그는 동그란 구멍과 맞지 않는 네모난 나사못 같은 사람이었다.” 19세기 말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만연한 천편일률적인 사회 분위기를 ‘동그란’ 구멍으로 일반화하고,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를 ‘네모난’ 나사못으로 표현한 것이다.주지하듯이 서머셋 모옴(1874∼1965)은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자전적 요소에 기댄 ‘인간의 굴레’와 달리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와 원시주의를 대표하는 폴 고갱(1848∼1903)의 삶에서 소재를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다. 40살 나이에 다섯 아이와 아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선 낯선 사내 고갱.화가들이 대개 열여덟 살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너무 늦은 시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인간. 그는 무엇 때문에 세간(世間)의 비웃음과 의혹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 들어섰을까! 그를 인도한 등대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재능이 아니라, 그림을 하고 싶다는, 그림을 해야 한다는 내면의 강렬한 목소리였다.불과 15년의 생을 그림에 투척한 고갱의 작업은 훗날 앙리 마티스를 대표로 삼는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를 선두주자로 보는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그의 인생이 흥미로운 까닭은 머나먼 미지의 남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섬 타히티에서 열렬하게 타올랐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보면 타히티는 호주의 시드니와 칠레의 산티아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삼각형 가운데에 자리한다.서머싯 몸은 타히티의 고갱을 그저 그런 유럽인들과 확연히 다른 인간으로 그려낸다.그는 내 남 할 것 없이 누구나 ‘거기서 거기’ 가는 삶을 살아간 유럽인들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천착한 특별한 인간으로 고갱을 묘사하고 있다. 당대를 풍미한 지배적인 삶의 풍조를 비웃으며 ‘마이 웨이’를 외친 인간이 고갱이라고 몸은 주장한 것이다.소설 제목이 주는 엇박자가 낯선 독자를 위한 몸의 친절한 서한(書翰)이 있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 6펜스는 지상적(地上的)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무상한 것 그리고 지금과 여기를 의미한다. 달은 천상적(天上的)인 것, 정신적인 것, 영원한 것, 추상적인 것, 불멸하는 것과 영원무궁한 것을 뜻한다.날이면 날마다 땅만 보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천상의 달과 천체를 보며 영원을 꿈꾼 인간 폴 고갱이 ‘네모난’ 나사못이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리라. 오늘 밤에는 무슨 달이 뜨려는가?!

2023-12-17

은둔형 외톨이 청년

우정구 논설위원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8050문제가 핫이슈가 됐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의 8050은 이제 일본선 9060문제로 넘어가는 시대 상황을 맞고 있다.일본말의 히키코모루는 ‘틀어 박히다’는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루를 명사형으로 바꾼 신조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자녀가 취직을 못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고립형 청년을 두고 일본서는 이렇게 부른다.며칠전 우리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고립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이 일부 시행되고 있으나 정부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도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실제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립·은둔 위기의 청년이 약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39세 연령층 인구의 5% 수준이다. 이들 청년은 취업할 생각도 않고 집에 박혀 동영상 시청 등 온라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5%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자다. 고립 은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등 직업관련 어려움이 24.1%, 대인관계 어려움을 꼽는 사람이 23.5%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신체건강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고, 7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고립·은둔형 자녀가 늘면서 관련 부모단체가 만들어지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 엄마입니다”라는 책도 출간됐다.만시지탄이나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7

붕어빵

우정구 논설위원 동네 버스정류장 부근 모퉁이 등에 등장하는 붕어빵 노점을 보노라면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붕어빵은 한국인에게 겨울을 알리는 대표 간식거리다.원래 일본 도쿄 어느 가게에서 시작된 타이야끼(도미) 빵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도미는 비싸고 귀한 생선이어서 도미 모양으로 된 빵이라도 만들어 먹자고 생겨난 것이 시초가 됐다고 한다. 도미빵이 붕어빵 모양으로 변경된 것이 지금 우리 동네서 파는 붕어빵이다.193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져 벌써 90년 세월이 흘렀다.미국에서 밀가루가 많이 지원되던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에서 많이 유행했다. 저렴한 가격 탓에 서민들의 점심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붕어빵 노점은 쇠퇴하는 듯했으나 IMF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붕어빵은 쇠틀에 밀가루로 만든 반죽과 단팥소를 넣어 간단히 구워먹는 풀빵이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 불황기에 잘 등장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붕어빵 장사가 없어지고 경기가 나빠 실업자가 양산되면 길거리에 붕어빵 노점이 늘어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일종의 불황을 알리는 지표로 보기도 했다.올겨울 사라졌던 붕어빵 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중심으로 붕어빵 장사에 나서는 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노점도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의 숍인숍 형식의 점포도 늘고 있다. 대구에서 붕어빵 1개 가격은 700원이 주류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10년 전 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옛 추억을 느껴 볼 붕어빵이지만 서민경제가 나빠져 불쑥 등장한 것 같아 썩 반갑지만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4

‘공천 물갈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홍석봉 대구지사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여당의 위기가 내 책임”이라며 13일 사퇴했다. 친윤석열계 핵심인 3선의 장제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여당의 공천 물갈이 물꼬가 왕창 터졌다. 정치권의 ‘물갈이’ 신호탄이 됐다. ‘물갈이’는 정당 공천의 핵심이다. 현역 의원 대신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한다. 거물급의 불출마 및 공천 탈락과 명망 있는 정치신인의 등장은 그만큼 극적이면서도 유권자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공천 물갈이’는 어느덧 총선 승리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물갈이는 유권자의 요구다. 일부 직업이 된 묵은 정치인에 대한 경고다. 각 당 지도부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수준을 고심한다. 국민이 이해할만한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 및 대통령선거 경선구도 선점과도 관계가 있다.최근 4차례 총선에서 정당의 인적 쇄신 효과는 컸다. 대부분 승리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러진 21대 총선을 제외한 3차례 총선에서 확인됐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현역 의원 물갈이율 33.3%였던 민주당이 32.8%의 새누리당에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교체율 41.7%의 새누리당이 37.1%의 민주당을 이겼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현역 교체율 38.5%의 한나라당이 19.1%의 민주당을 이겼다. 현역 물갈이 폭이 승리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물갈이는 텃밭인 TK(대구·경북)가 주 대상이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TK에는 누가 공천돼도 당선된다. 당 지도부가 초선과 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했다. 21대 총선 때 TK의원 교체율은 64%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TK의원 물갈이 비율이 52%였다.22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5월 경북매일 여론조사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줄기차게 지역 의원 절반 이상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역대 물갈이의 가장 큰 희생양은 TK다. 최근 당 지도부에 진출, 활약하는 지역 의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존재감은 떨어진다.각종 지역 현안사업을 챙기고 새로운 사업을 끌어오기엔 힘이 부친다.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매번 정치 신인으로 교체하다 보니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한다.참신한 인물로 교체하는 인적 쇄신은 국민에겐 신선감을 주고 정당엔 개혁과 변화 이미지를 준다. 선거전에 그만큼 유리하다.하지만,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물갈이 대세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의 명분만 앞세운 섣부른 물갈이는 자칫 ‘공천 학살’로 비칠 수 있다.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초선 의원은 국회에서 ‘거수기’ 취급을 받을 만큼 존재감이 떨어진다. 정치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원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국민의 요구와 정치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교한 세팅 작업이 필요하다. 물갈이 해법 찾기가 지난해 보인다.

2023-12-14

하느님이 보우하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1일,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두 달 만이다. 다수의석의 야당이 이번에도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부결시키지 않을까, 가슴 졸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부결되어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가면 내년 초의 법관 인사는 물론 총선에도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천만다행으로 조희대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될 만한 흠결이 없어 야당도 차마 부결시키지를 못 했다.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을 보면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애국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금의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70년 세월은 애국가 가사처럼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역사였다. 미국의 일본 원폭으로 극적인 해방을 맞은 것에서부터, 비록 반쪽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것,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확립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대국을 이룬 것은 천지신명의 도움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삼권분립을 기본 체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를 위한 마지막 보루다. 사법부가 부패하거나 편중되어 제구실을 못하면 정의와 법치는 무너지고 혼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 정권 시절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법독립을 포기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편파적이고 관례를 무시한 코드인사와 고의적인 재판지연 등으로 공정과 정의를 무시하는 등 사법부와 법관의 위상을 바닥까지 실추시켰다. 이제 새로운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누적된 병폐들을 일소하고 법치 확립의 근간이 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세 기둥인 입법, 사법, 행정 중 어느 하나도 건실하지 못해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지금의 거대야당 행태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국회 다수의석의 야당이 어디까지 행패를 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결과가 뻔한 데도 묻지마 식으로 탄핵을 남발하고, 정부의 국회동의안을 온갖 구실로 부결하고, 터무니없는 구실로 정부 예산안에 비토를 놓는 등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패악질은 끝이 없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은 것처럼, 조희대 대법원장이 좌경화 법관들이 장악한 사법부를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은 입법부의 정상화다. 좌파 정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좌파 정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넘지 않기를 빈다. 그래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

2023-12-14

정치가, 정치인, 정치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계묘년을 보내며 교수신문에서는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 했는데 30% 정도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택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정치인의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라 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올바른 책무를 팽개치고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생각들을 대변한 것이리라. 다음으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골랐다. 자기 또는 자기편의 언행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 즉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 탓, 언론 탓을 해댄다는 것이다.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계는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 국민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뛰어든 모양새다. 정치를 하는 사람 즉, 정치인이란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의하는 사람으로 국가원수,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이익 도모를 실천하는 나라와 국민의 일꾼이다. 우리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정치가, 정치인 또 정치꾼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로 굳이 구별한다면 정치가는 Statesman, 정치인은 Politician이다. 정치가는 ‘국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언행이 공정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자신 또는 자기편의 이익만을 쫓는 모사꾼 즉 정치꾼’으로 폄훼되고 있는 느낌이다.프랑스 조르주 퐁피두는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많은 정치인은 정치꾼들로 보여진다. 자기 당 우선이고 국민권익은 나중이라는 태도로 공약을 쉽게 뒤집고 정당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의견을 짓밟고 있다.정치가의 자질은 도덕적이며 준법의식을 갖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국가 번영을 지향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좀 낮추어 정치인이라 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이 탄로가 나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우리나라는 정치인이라면 주로 국회의원을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정치에 대한 논리적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정치외교학, 법학, 행정학, 사회과학 등을 전공한 자가 얼마나 될까? 언론인과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정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좌관을 9명씩이나 데리고 있으니 전문성을 띤 사항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쌓아 특정 분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치엘리트가 많아야 국가백년지계를 설계하는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근대사에 정치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귀에 익은 정치인 거의 모두를 정치꾼이라 불러도 될 듯하니, 과연 정치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정치꾼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로 안보와 경제가 걱정스러우니 앞으로 참다운 정치개혁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정치가들을 뽑아야 할 것이다.

202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