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를 인연으로 세 사람이 만났다. 20년도 더 전이었다. 영남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지역 특화수업을 개설한다며 ‘경북의 여성문학인 내방가사’강의 요청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위덕대에 국문학과가 없어 교양국어와 작문강의만 하였던 터라 전공강의에 목말라하던 때였다. 그때 그렇게 만나 여태껏 인연을 이어온 귀한 분들이다.
유복혜 선생님은 청도에서 오셨다. 한복을 단정하게 입고 오실 때가 많았다. 강의를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히 들으시는지 강의하는 내가 송구할 지경이었다. 하회가 친정이라 어릴 적 듣고 자란 내방가사가 낯설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신 듯했다. 집안의 안어른들 암송하신 가사를 이제야 이론으로 배우게 되었으니 남다른 감회가 있으신가 보였다. 기억력도 뛰어나 녹음해 들려드린 가사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시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배가 나보다도 십수 년이나 윗길이신데도 여리여리한 소녀감성이 있어 별호가 흰머리 소녀라 했다. 유 선생님의 학구열은 훗날 위덕대 2014학번 성인학습자로 입학하여 졸업하신 걸로 증명되었다. 무려 공로상까지 받으셨다.
이솔희 선생은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조시인이었다. 수강자 중에선 나이가 어렸지만 나와는 오륙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선지 이해도가 빨랐다. 시작 활동을 하면서도 전공공부 계속할 뜻을 비치더니 결국 경북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유 선생님은 나를 스승이라며 꼬박꼬박 대접하시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고, 한없이 배려적이지만 무례는 용서하지 않으시는 심성은 닮지 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스승이시다. 이솔희 선생은 대학 강의와 다양한 문화기관의 사회 강좌도 열심이다. 줌으로 문학치료 강의를 하길래 유 선생님과 함께 신청해 배운 적도 있다. 최근 유튜브로 멀티단장시조를 매일 올리는 부지런함을 보면서 이 분 재능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한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그 중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기꺼이 따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습을 통해 바꿔라’는 말이 이어진다. 논어 속 공자님 말씀이다. 우리는 셋 중 어느 한 사람이 스승이 아니라 셋이 서로 스승이다. 처음엔 내방가사에 대한 내 알량한 지식으로 두 분의 선생으로 만났지만 20년을 동행하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 서로를 스승으로 삼아 기꺼이 따르는 사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고 했으니 셋은 완성의 숫자다. 우리는 셋이어서 부족함이 없고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해가 바뀌면 만나고 싶고 계절이 바뀌면 그리워진다. 만나면 고담준론에 행복하고 즐거움에 웃음소리도 맑고 높다. 이보다 더 좋은 동행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 모두 우아하게 늙되 마음만은 소녀같이 사시는 유 선생님을 닮자며 선생님의 별호를 우리 모임의 이름으로 삼았다. 흰머리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