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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가 정치인에게

등록일 2024-09-09 20:05 게재일 2024-09-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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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제주올레 바닷길을 걷다가 ‘물질’하는 해녀들을 만났다. 제주해녀는 ‘강인한 제주 어머니의 상징’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처럼, 해녀들은 목숨 건 물질을 하면서도 늘 이웃과 함께했다. 옥빛 제주바다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공존과 상생,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몸에 밴 그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는 권력싸움에 찌든 정치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제주해녀문화의 핵심가치’인 ‘공존’이다. ‘사람과 사람의 공존’, 그리고 ‘사람과 자연(바다)의 공존’이 바로 ‘제주해녀정신’이다. 잠수 능력이 탁월한 상군 해녀는 하군 해녀가 작업하는 ‘할망바당(할머니바다)’에 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할망바당은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고령의 해녀들과 애기(초보)해녀들을 위한 ‘배려와 공존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해녀들은 ‘자연과의 공존’을 위하여 ‘지속가능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수산자원의 보호를 위해서 자율적으로 ‘금채기(禁採期)’를 두는가 하면, 환경오염과 수온상승으로 인한 백화현상을 치료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갯닦이’ 작업을 한다. 작은 해산물 채취금지, 종폐 살포, 바다 숲 조성 등 해양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공동체 차원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제주해녀들의 ‘배려와 공존’이라는 ‘공동체정신’을 배워야 한다. ‘공멸의 정치’를 끝내려면 ‘공존의 정신’이 필수다. 정부와 국회를 각각 장악하고 서로 힘자랑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상대적 약자를 배려하는 제주해녀들의 삶을 배워야 한다. 여야의 협치는 ‘입에 발린 소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처럼 배려와 공존의 민주주의 가치관이 내면화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제주해녀문화의 상징인 ‘불턱 민주주의’도 정치인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불턱’(현재는 해녀탈의장)은 해녀들이 물질을 준비하고, ‘물숨’과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동시에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는 곳이다. 민회 성격의 자조모임인 ‘해녀회’는 개인을 존중하면서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 공동체의 리더인 ‘대상군’은 ‘나이가 아니라 인격과 능력’을 기준으로 추대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헌신의 리더이다. 하지만 대상군도 체력과 판단력이 떨어지면 리더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음으로써 해녀공동체의 안전과 성과를 지킨다.

이러한 자제와 절제의 미덕이 정치인에게 주는 함의가 크다. 해녀들은 ‘금지된 욕망’인 ‘물숨’이 생사를 가르는 마지막 호흡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듯이, 정치인도 ‘권력이 마약’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해서 성찰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대상군 해녀가 때가 되면 리더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듯이, 정치인도 자신의 능력 한계를 깨달을 때 비로소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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