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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심에서 벗어나기

최미경동화작가석 달 만에 서울에 왔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 정도 미리 도착한 터라 홍대 근처 카페에 들어가 밀크티를 주문했다. 일요일 오전 9시, 게으른 햇살이 카페 안을 기웃거렸다.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1층과 지하 1층으로 연결된 카페 안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각자의 작업을 하는 젊은 청년층들이 대부분이었다.젊음, 그 찬란하고 불안한 시절을 건너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스쳤다. 그리고 창가 근처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은 나에게 불쑥 미련스러운 생각이 밀려든다.20년 전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혼은? 아이는? 일은?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닐까.그 짧은 물음이 나를 흔드는 사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만약’과 ‘혹시’와 ‘어쩌면’이 부스스 일어나 2020년 6월의 나를 2000년 6월의 나에게 데려다 놓았다.그해 6월, 나는 서울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선로를 타고 뜨거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부산행 열차가 막 들어오고 있었고 어린 나는 바닥에 있던 가방을 어깨에 매고 노란선 뒤로 한발 물러나고 있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 그녀가 터벅터벅 열차로 향했고 나는, 어느 틈엔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돌아보았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안 가면 안 돼?내가 먼저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스쳤고 반가움이 지나갔고 쓸쓸함이 머물렀다.-어때? 그곳은?그녀가 던진 뜻밖의 물음에 나는 혼란스러웠다.-너는 어떤데?/네가 더 잘 알잖아/잘 모르겠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어.내 말에 그녀는 푹, 하고 웃고는 작게 중얼거렸다.-그렇구나, 나는 그때도 여전히 헤매고 있구나.그녀의 말에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잠시 웃었던가. 나는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다행스러웠던 걸까. 가 보지 못하는 길을 코앞에 두고 그녀는 내가 걸었던 그 길로 들어섰다. 그녀를 실은 부산행 열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문한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주는 진동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그랬다. 서울을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중심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었다. 그 중심이라는 것이, 타인이 만들어놓은 중심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그러는 사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했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와 셋째를 키우는 동안 나도 함께 커나갔다. 그렇게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밀려나고 주변이라고 밀어냈던 것들이 내 삶을 채워나갔다.물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안다. 내가 믿었던 중심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성, 그걸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중심이 보인다는 걸. 학교를 졸업하고서 20년 만에 배운 것이다.

2020-06-09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 국민 기만행위 즉각 멈추라

송언석미래통합당 국회의원질병관리청 승격을 두고 여론이 시끄럽다. 3일 행정안전부는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독립성,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강화하여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독립시킨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함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질병관리청 승격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그런데 정부의 발표가 있은 후 전문가들과 언론이 일제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이었고, 복지부 조직만 늘어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을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로 재정립하겠다고 하면서, 핵심인 연구기능은 전문가 집단인 ‘질병관리청’이 아니라 공무원 조직인 ‘보건복지부’로 옮긴다고 한다. 또 질병관리청 신설로 복지부 업무가 줄어드는데 오히려 차관을 추가하겠다고 한다. 이로써 복지부 소속의 차관(급)은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사실상 국민 기만 행위이다.행정안전부의 발표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질병관리청 안에도 역학조사나 감염병 예방·퇴치와 관련한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조직과 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며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대통령이 나서서 “국립보건연구원 이관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차관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조직개편은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발표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가 되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문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는 정은경 본부장의 지적에 대한 책임회피, 꼬리 자르기이며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정부와 청와대에 강력히 촉구한다. 질병관리청의 무늬만 승격이 아닌, 실질적인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 또한, 자리만 늘리는 조직 개편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코로나 19로 국민들의 삶이 너무나도 고달프다. 정부와 청와대는 국민 기만 행위를 즉각 멈추고, 국민들이 감염병 불안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2020-06-09

여행 유감

여행을 하고나면 보통 몇 가지 여행의 유익함을 느낀다. 타향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됐다는 점. 또 내 고향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한다는 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인생의 묘미도 한번쯤 느껴볼 수 있다는 것 등이다.그래서 여행은 즐거움 이상의 가르침이 있다고들 한다. 인생의 맛을 느끼기에 여행만 한 것도 드물어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여행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다.그러나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여행을 즐길 기회가 점차 사라져 아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면 다시 여행의 기회가 생기겠지만 당분간 여행은 자제돼야 할 일상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특히 해외여행은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지도 몰라 이래저래 아쉬움이 커지는 모양이다.한 여행전문 리서치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앞으로 1년간 여행 지출을 대폭 줄일 것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특히 해외여행은 응답자의 59%가 향후 1년 동안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해 여행과 관련한 산업 전반이 전례 없는 불황을 겪을 전망이다.여행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유익한 경험을 안겨준다는 측면에서 날이 갈수록 각광받는 산업으로 뜨고 있다. 생활이 윤택해진 현대사회에서 여행은 대중화된 문화의 한 장르가 됐다. 웬만하면 1년에 한 두번씩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 요즘의 대세다.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도 여행업은 주목받는 산업이다. 관광산업을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부르는 것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 됐으나 마음같이 움직이지 못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09

마음껏 숨쉴 수 있다는 것

이재현동덕여대 교수6월로 접어들면서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발령되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의 기준은 섭씨 33도, 폭염경보의 기준은 섭씨 35도이라는데 6월 9일에는 올해 들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북 경산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되었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까지 있다.외출 시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는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새로운 시대풍속도이다. 그렇지만 이 더위에 마스크라니. 그냥도 더운데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가리고 활동하려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볍고 통기성이 높은 치과용 마스크 수요가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 1일 비말차단용 마스크(KF-AD)를 새로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하도록 했다. 기존 KF 공적마스크보다는 얇아 숨 쉬기가 편하고, 치과용 마스크보다 비말 입자 차단 성능이 높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기존 공적마스크의 3분의 1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가정경제에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까지 한다. 국민의 안전과 숨쉬기의 편의성, 가정경제까지 신경을 써 주는 정부의 빠른 대처에 박수를 보낸다.“I can’t breathe!” 국민들의 숨쉬기 불편함을 배려하는 나라가 있는 한편, 공권력이 국민의 숨을 틀어막은 나라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20달러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비무장 비저항 상태의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8분 46초 동안 목이 눌린 상태로 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포유동물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 쉬기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바다에서 사는 포유동물인 고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끔씩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포유동물 가운데 사람은 유독 숨을 오래 참기 힘들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현재 사람의 숨 참기 최고 기록은 23분 1초이지만 이는 특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말 그대로 세계 기록일 뿐, 보통 사람은 1분 안팎 숨을 참고 버티기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해녀들의 잠수 시간도 기껏해야 2~3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온몸을 꼼짝 못하고 숨길이 막힌 채로 고통을 받은 시간 8분 46초!용광로 국가 또는 샐러드그릇 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인종 간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은 갈등을 해소하고 줄이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의 경찰은 갈등을 증폭시켰고, 한 시민의 숨길을 틀어막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에서 마음껏 숨쉬며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할 경찰이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 활동인 숨쉬기를 강제로 멎게 한 것이다.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을 쉬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 땅에서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래저래 감사한 요즘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편히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음 또한 기억하자.

2020-06-09

저 아름다운 자유의지들… 영천 죽림사(竹林寺)

누적된 피로로 절을 찾아가는 몸과 마음이 밝지만은 않다. 결국은 네비게이션의 지시를 몇 번이나 놓치고 헤매듯 죽림사를 찾아간다. 차는 길을 잘못 들었다고 착각할 만큼 어수선한 도로를 달리다 어느 사이 산속으로 숨어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죽림사 일주문 앞에서 나는 엉클어진 내면의 길을 보고 말았다.양쪽으로 대나무 숲을 거느린 쭉 뻗은 길이 화강암으로 만든 배흘림기둥 안으로 이어진다. 절은 은해사 말사로 신라 헌덕왕 1년(809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사찰이 전소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가 또 다시 6.25 전쟁을 겪으며 폐사되고 만다. 그 뒤 1990년 성수 주지 스님이 대웅전을 지으면서 대대적인 불사가 시작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나를 반기는 건 따가운 유월의 햇살뿐이다. 언덕길을 오르는 몸이 유난히 무거운데 드디어 죽림사가 보인다. 뜻밖에 절 앞의 작은 주차장에 제법 많은 차들이 모여 있다. 가파른 돌계단 위에서 보화루가 조금은 위압적으로 내려다본다.오천관음불전이라는 또 다른 현판을 단 보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자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이 연등에 싸여 화사하다. 눈이 부실 만큼 티끌 한 점 없이 가볍게 허공에서 일렁이는 연등들, 나풀대는 저 수많은 ‘자유의지들’을 향해 나는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마당에서 담소를 나누던 주지 스님이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소탈한 말투로 먼저 인사를 건네며 맞아주신다. 낯설지 않은 편안함이 일순간 지친 시간들을 몰아내고, 태어난 지 한 달이 막 지난 강아지 두 마리의 재롱에 빠져 사찰에 온 걸 잊는다. 강아지와 노는 스님의 장난스런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하다.불자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격식과 권위의 옷은 일찌감치 벗어버린 듯하다. 순진무구한 강아지와 선지 주지 스님의 사람 좋은 웃음이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게 하는 절, 깊은 산중이 아니라서 그런지 절 일을 돕는 보살님과 처사님들도 많아 생동감이 느껴진다.극락보전 법당으로 향하는 등 뒤로 날씨만큼 쾌청한 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참배 후 꼭 공양하고 가세요.” 모처럼 절에서 들어보는 사람 반기는 소리, 인간다운 따뜻함이 살아 있는 사찰이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내 걸음에 비로소 작은 연등이 걸린다. 백팔 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잠시, 절을 하는 동안 몸은 점차 가벼워져 온다.지난 한 달간은 힘에 버거울 만큼 손님을 맞느라 기력이 쇠하여 멘탈이 붕괴되고 말았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벗어나고자 전원으로 왔는데 그 새로운 환경이 덜미가 되어 평온했던 삶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시간을 거슬러 삭막한 도시 이야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거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자고나면 피로가 풀린다는 착각은 내 몸을 함부로 평가하는 오만이었다. 육신을 보살피지 않은 탓에 모든 관계들이 부담스럽고 무의미해지기 시작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한없는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다. 전원에도 삶이 따라온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정신과 육체의 예민함을 알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고 말았던 것이다. 휘슬 소리는 늘 아픔과 함께 왔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살아 있음을 뜻하며 여유로움을 내포한다고 위안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백팔 배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던 걸가? 스스로 나약한 존재가 아니길 바라며 기운을 담아 백팔 배를 한다.조낭희 수필가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좀 더 성장하고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늘 인스턴트식 자기 위안으로 끝낸 건 아니었던가. 절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자기 점검은 간절해진다.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멀리하고 때로는 대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크고 육중한 몸을 금빛으로 숨기고 빛나는 철조여래좌상, 형상화된 부처님이지만 분명 자기만의 아트만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한동안 관계에서 벗어나 내면을 응시하라는 답을 안고 법당을 나선다. 극락보전 앞에서 눈과 귀, 입을 가린 귀여운 동자상 셋이 나를 붙든다. 겸허하게 두 눈 가리고, 두 귀를 막으며, 말을 줄이는 절제성, 그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되도록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말하며 고귀한 생각 속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다.모처럼 공양간에서 맛보는 절밥도 감사하다. 뽀드득 소리 나도록 내 그릇까지 씻어주는 불자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몸에 배인 익숙한 정성의 언어들, 나는 그녀의 오래된 기도를 읽는다. 설익은 배려와 정성은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남을 위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지쳐 있던 세포가 깨어나고 다시 아름다운 생각들로 채워진다. 눈부신 생각들이 삶에 잔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뻗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돌아오는 길에는 끊임없이 하품만 따라온다. 삶은 수많은 장애물과의 싸움인 걸 어찌하겠는가.

2020-06-08

예술과 콘텐츠 사이

누구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콘텐츠’ 삼아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고, 작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에 자신의 예술적 생산물이 화폐로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말의 거리낌조차 느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신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규정하는 정신의 발현으로 중요한 대상이었던 시기는 이미 우리에게 멀리 떠나버렸다. 지금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한껏 경멸의 의미를 담아 불렀던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지금 우리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 된 셈이다.예술의 가치는 가늠하기 어려운 복잡한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화폐의 가치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예술가의 생계 때문에, 비싼 예술품에 대한 환호 때문에, 예술작품을 점유한 화폐 가치는 그것 외에 예술 속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가치를 축소시킨다.작가 이상이 1936년에 쓴 소설 ‘날개’는 사실, 그가 화폐의 가치에 의해 예술이 전도되는 당시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두고 쓴 작품이다. 우리는 작가 이상이라고 하면 골방에 유폐된 천재라는 이미지만을 기억하지만, 이 무렵 그의 글들 속에는 당시의 사회 현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의 결과들이 들어 있었다.이상은 폐병을 치료하고자 갔던 온천에서 우리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물에도 값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세상에 빈 땅이 없음을 한탄하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자신의 책상에 있는 화분만이 유일한 빈 땅임을 깨닫고 한탄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이상이 살았던 시대는 모든 것에 화폐가치가 붙어 본래의 가치를 소외시키는 자본주의사회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시대에는 화폐로 교환되지 못할 것은 없다. 시간이나 공간, 취미나 기호, 심지어 인간의 노동력과 성(性)까지도 화폐로 환산되는 것이 바로 그가 목도한 시대상이었다.이상의 ‘날개’속에는 소설의 주인공과 아내가 살고 있는 33번가가 등장한다. 모두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 33번가에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페(당시의 카페는 술을 파는 곳이었다)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나’의 아내와 이웃들은 모두 술과 ‘웃음’을 팔면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존재들이다.작가 이상.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가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가 화폐가치에 전혀 무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가치에 무지하다는 것은 사회적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인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작가 이상 자신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안된 인물이다. 이 소설은 결국 화폐가치를 알지 못하던 주인공이 그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에는 파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화폐가치에 무지한 ‘나’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인물은 그와 유일한 관계인 아내이다. 어느 날 외출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외출해서 쓰라고 준 돈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그랬더니 아내는 자신의 방에서 하룻밤을 재워준다. 이때 ‘나’는 시간과 공간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점점 현대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어 어느덧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에 있는 티룸에서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우리가 카페에서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커피 한 잔이라는 실물인가. 아니면 그 장소의 시간을 사는 것인가. ‘날개’를 통해 이상은 바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비록 ‘날개’의 후반부에서 ‘나’는 완연한 현대의 인간이 되어 나중에는 ‘돈’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것을 파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달콤한 즐김이라고 해야 할까.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6-08

군자와 소인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지방 모 대학에 늦깎이로 교수 임용 막차에 오른 친한 동생 하나가 전화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사연인즉슨, 얼마 전, 학과 회의를 했는데, 글쎄, 실컷 잘하고 헤어진 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업무분장 정리 톡을 받으니, 동생한테 은근슬쩍 까다로운 업무 하나가 끼워져 있더라는 것이다. 동생은 그래, 실수겠거니 하고서 단톡방에 이야기를 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일은 당신이 맡기로 했다며 벌떼같이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일을 더 하고 덜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심지어 기억 및 상황까지 조작하며 몰아붙이는 게 너무 황당해 조목조목 얘기하니 그제야 다들 ‘그럼, 말고’하는 식으로 수그러들더라는 것이다.일을 맡기고 싶으면 차라리 면전에다 부탁을 하든지 할 것이지, 배운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잔머리를 굴릴 수 있는가 하고 장탄식하는 동생을 보며, 문득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평생 고민했던 춘추시대 공자가 떠올랐다.공자는 세상의 인간을 크게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한다. ‘군자’는 논어에 66번이나 나오는 만큼, 공자의 인간학을 이해하는 핵심 중 하나다. 논어 첫 편인 ‘학이 1장’과 마지막 ‘요왈’ 편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라 할 수 있고(人不知而不614D 不亦君子乎), 그렇더라도 천명을 알지 못하면 또한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군자는 논어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중요한 개념이다.보통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화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군자는 그런 데 개의치 않는다. 묵묵히 제 할 일 하면서, ‘천명’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 뿐이다, 여기서 ‘천명’은 주어진 사명, 곧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는 것은 군자의 기본이자 사실 인간의 기본이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칸트도 ‘인격이란 바로 책임 능력’이라 했고, 청말 사상가 양계초 또한 ‘음빙실(飮氷室)’에서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시작이요,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인간의 끝”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그런데 소인은 책임감이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잔머리를 굴려 책임을 피할까만 생각하고, 통수, 꼼수를 쓰며 이익을 챙길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소인은 도량이 좁고 간사한 것이다. 공자가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으며(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남과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소인은 남과 부화뇌동하지만 화합하지는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이처럼 소인은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편 가르기나 하면서도 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착각하곤 한다. 남의 고통·아픔을 이용해 수년간 사리사욕 채워 본들 뭐할까? 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인데.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6월이다.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마무리되는 올 상반기, 이럴 때일수록 더욱 책임 전가, 통수, 꼼수로 무장한 소인 대신, 진정한 군자 되기 프로젝트에 한번 동참해 보면 어떨까. 아마도 삶이 이전보다 몇백 배나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2020-06-08

우국지사의 선비정신

강희룡 서예가한말의 의병장 유인석은 국권이 강탈당하는 것처럼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겼을 때 처신하는 방법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내놓았다.첫째는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우는 일이요, 둘째는 해외로 망명하여 옛 정신을 지키는 일이요, 셋째는 자결을 하여 뜻을 이루는 것이다.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만주와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에 투신한 유인석은 첫째와 두 번째 방법을 함께 사용한 셈이다. 구한말 3대 시인이면서 우국지사였던 김택영, 이건창은 과거 보러 상경한 구례의 선비 황현을 만나 서울에서 교분을 쌓으며 의기투합했다. 황현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당시의 과거시험에 환멸을 느끼고 곧 낙향하였지만, 지역을 달리하면서도 세 사람의 교유는 지속되었다.융희 4년(1910) 7월 일본이 마침내 대한제국을 병합했다. 8월에 황현이 그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여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절명시 4수’를 짓고 자제들에게 유서를 남겼다.‘사람이 죽는 일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독약을 마실 때 세 번이나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내가 이처럼 어리석었단 말인가.’ 하였다. 얼마 있다 운명하니 향년 56세였다. 이 글은 김택영 선생의 ‘소호당집, 황현 전기(韶濩堂集,黃玹傳)’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강화도에 내려가 살던 이건창이 먼저 세상을 떴다. 그즈음 열강의 침략이 거세지면서 개화나 척사 등 지식인들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다했다고 판단한 김택영은 망명을 택하였다. 김택영이 황현의 순국 소식을 들은 것은 중국 상해 인근의 남통에 있을 때였다. 동생 황원으로부터 매천의 자결상황을 자세히 전해들은 김택영은 친구를 기리며 ‘황현의 전기’를 썼다. 매천은 아편을 술에 타서 마셨다. 약효가 발휘되어 숨을 거두기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다. 김택영은 황현의 전기를 작성하면서 특히 그의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궁벽한 시골에 사는 선비가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택영은 여기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유인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매천도 유인석의 세 가지 상황에 직면했다. 김택영은 매천에게 망명을 제안하였으나 가난한 시골 선비가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에는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매천은 승산이 적고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라는 그의 판단으로 의병항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매천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는 일이었다. 죽어야 할 의리가 없는 매천이 자결한 것은 선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끊은 매천은 자기를 성찰하며 역사와 현실을 읽어낸 110년 전의 지식인이었다. 오늘날 여의도에서 도금된 금배지를 달고 도나 개나 민주주의를 외치며 패거리지어 희희낙락하는 위정자들의 머리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을까? 직에 주어진 과한 특권을 자신의 범죄행위 방어에 이용한다거나, 일신의 영욕만 가득 차 국민을 기만한다면, 이 나라는 곧 110년 전과 같은 국가우환을 맞을 것이다.

2020-06-08

선택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앞자리에 6자를 달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때 무엇을 선택하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고3 가을에 문과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대학원 때 전공을 바꾼 것, 논문 쓰기보다 생협 활동에 더 열을 올린 일들이 꼬리를 문다.되돌아보면, 그 전환들은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조건에 떠밀려 감정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정과 선택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니모도 자신의 지난날이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영화의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니모는 6개의 시간 차원으로 이루어진 평행 우주를 경험한다. 평행우주는 니모가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한 우주에서는 엄마를 따라가고, 다른 우주에서는 아빠 곁에 남는다. 각각의 우주마다 결혼하는 여자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러나 니모가 자신을 ‘노바디’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우주에서도 행복하지는 않다. 니모는 사고로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꿈에서 깨는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간다. 그런 이동은 니모의 삶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영화는 상당히 극적인 설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결정이 선택이 아닐 수 있음을 깨우쳐준다. ‘믿음의 배신’에서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는 메뉴를 고르고 여행지를 선택하고 자유의지로 선택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기억이나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자극을 고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니모가 안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그동안 니모는 사고나 꿈 깨기 등 비자발적 방식으로 다른 우주로 이동했지만, 2092년 117세의 니모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세포재생술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니모는 부모님이 이혼하던 9살로 다시 돌아가서 엄마와 아빠의 요구를 거부하고 제3의 길로 달려간다. 니모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삶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죽음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렇다고 이후 펼쳐질 니모의 삶이 장밋빛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니모가 지난 여러 번의 삶보다 행복할 가능성은 더 많다. 무엇보다 니모는 자신을 더 이상 ‘노바디’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은 확실하다.한 연구에 의하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왜’를 질문하라고 한다. ‘왜’를 질문하다 보면,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비합리적 믿음을 발견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3 가을이 다시 떠오른다. 왜 문과여야 하는지 조금 더 질문했더라면 그것이 결정인지 선택인지 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찾아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에 떨고 싶지 않다면, ‘왜’라는 질문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2020-06-08

자동차 온라인 판매시대

화려한 쇼윈도에 자동차를 전시해놓고 팔던 시대가 지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시대가 다가왔다.일론 머스크가 2003년 창립한 테슬라가 비대면(언택트) 자동차 판매 선두주자다. 테슬라코리아는 온라인 판매만 고수하고 있는데도 올해 1분기 총 4천70대의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며 전년 동기 대비 231% 성장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9월 기존 오프라인 영업을 대거 감축하고 온라인에서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국내에서 100% 온라인 판매만 하고 있다.테슬라가 온라인 판매를 강화한 것은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판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대비용을 절감해 차량 가격이 평균 6% 가량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최초 예약하고 나서 출고까지 철저한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 외 모든 서류작성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자동차 데이터 연구소 카이즈유에 따르면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는 지난 3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제치고 전기차로서 국내 최초로 월간 신차등록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해외 시장에서는 자동차 온라인 판매 활성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중국 길리자동차는 코로나19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지난 2월부터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이외에도 중국 내 BMW, 벤츠 등 많은 수입차가 중국에서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현대·기아자동차도 올해 들어 해외시장에서 온라인 판매망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판매노조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온라인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국산차 소비자만 독박을 쓰고 있는 꼴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08

고령자 친화 도시로 거듭나자

포항시 총인구가 조금씩 줄어드는 가운데 75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인 2015년 5월 2만4천458명에서 2020년 5월 3만2천740명으로 8천282명이 늘어났다. 우연히도 5년간 늘어난 숫자(8282)처럼 고령자가 빨리빨리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보고 있다. 포항시 주민등록인구는 2020년 5월 말 현재 50만4천829명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인구감소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나이별 인구구성에서 유소년과 청장년층이 빠르게 줄어드는 게 더 큰 문제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학업에 묶여 있을 24세 이하 인구는 지난 5년간(2015년 5월 ~ 2020년 5월) 2만1천704명이 줄었고, 지역에서 노동력 제공과 소비력을 책임지는 이른바 현역인 25세부터 59세까지는 무려 2만3천775명이 줄었다. 지역경제의 핵심인 철강산업의 부진 때문이다. 그나마 포항에서 청춘을 보냈던 정년퇴임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남아 자연스럽게 60세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심각한 인구감소 현상을 완화해주고 있어 다행인 셈이다. 6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인 2015년 5월보다 3만2천122명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60세 미만 인구가 거의 5만 명가량 감소하였는데도 포항의 겉모습은 2015년 5월 51만 8천186명에서 2020년 5월 50만4천829명으로 1만3천여 명만 줄어든 일종의 착시현상을 보이는 것이다.문제는 지난 5년 사이 포항시 인구사회구조가 큰 전환점을 맞이하였다는 점이다. 유엔(UN)에서는 1956년 보고서에서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인구사회구조를 분류한 바 있다. 유엔은 총인구에서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차지하는 고령화율이 7% 이상 14% 미만이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 이상 20% 미만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그리고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 또는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로 정의하였다. 포항시 고령화율은 2012년 10.7%에서 2016년 13.2%로 늘었지만 아직은 ‘고령화 사회’에 속했었다. 그러나 포항시는 2017년 말 고령화율이 14.2%를 기록함으로써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정확하게는 2017년 8월 13.9%에서 9월 14.0%를 기록하였으므로 2017년 9월이 포항시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기점이 된다. 그리고 2020년 5월 현재 포항시 고령화율은 16.8%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빠른 속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불과 4년 정도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사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큰 변화를 느끼기는 힘들다. 그저 수치상 총인구의 14%라면 포항시민 100명 가운데 14명이 65세 이상이니까, 만나는 사람 열 가운데 한두 명 정도는 고령자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도시의 활발한 경제 활동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 활동을 결정하는 것은 총인구가 아니다. 대낮의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시내 가게들이 통상적인 영업시간(오전 9시부터 저녁 6시)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유동인구다. 그렇다면 포항 도심지 유동인구는 과연 어느 정도가 될지 생각해보자. 외부 방문객은 전혀 없다는 가정이다. 포항시 총인구를 50만 명이라 보면 그중 24세 이하 인구는 주말이나 특별한 공휴일이 아닌 한 유동인구에 넣을 수는 없다. 모두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25세부터 59세까지의 현역인구들도 직장에서 생활할 것이기에 대낮의 도심 상권과는 무관하다.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포항시 총인구가 50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중 20만 명 정도는 도심 경제권을 이루는 동(洞)지역이 아닌 외곽의 읍면지역에 있다. 때문에, 포항 시내 상권과 관련된 순인구는 30만 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에서 유동인구를 산출해보자. 일단 2020년 5월 현재 23.4%에 이르는 24세 이하 인구와 현역(25세 이상 59세 이하) 인구(51.1%)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역 비율에서 모두 맞벌이는 아닐 것이므로 부부중 한 사람만 직장생활을 한다고 보면 이 현역인구의 절반 정도는 유동인구에 넣어야 한다. 반면 언제든지 외출이 가능한 65세 이상 고령자는 16.8%이므로 시내 기준 30만 명에 이 비율을 대입하면 약 5만 명이다. 결국, 포항 도심지를 대낮에 활보할 수 있는 유동인구의 최대치는 30만 명에서 각 비율을 적용한 24세 이하 7만 명, 현역에 해당하는 25세 이상 59세 이하 약 7만 명을 뺀 16만 명 정도인 셈이다. 여기에 고령자 5만 명이 포함되었다고 본다면 시내에서 활동하는 유동인구 가운데 고령자 비율은 16.8%가 아닌 31.3% 정도가 현실에 가까운 시내의 고령자 비율이 되는 셈이다. 시내 유동인구 100명 중 14명이 아니라 31명 정도가 고령자라는 뜻이며, 포항 인구 절반이 여성이고, 핵심 업종이 철강산업인 점을 고려하면 시내 곳곳에서 주도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유동인구 가운데 대부분이 여성이고, 또 열에 셋은 65세 이상의 어르신일 확률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낮 시내 커피숍 고객 대부분이 주부들인 것도, 죽도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이 점차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달서비스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력이 예년 같지 않은 여성 고령자가 과연 과거처럼 시장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필자도 사실 국내법상으로는 고령자에 해당하나 포항 시내 어느 장소, 어느 행사에 참여하더라도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다. 함부로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즉각 ‘어린 녀석이 버릇도 없이’라는 이야기 듣기 십상이다.앞으로 포항은 도시의 이미지메이킹을 미세 조정해 나가야만 한다. 당연히 늦었다. 도시 곳곳에는 아직도 과거 고도성장기 열혈남아의 관습이 남아있다. 특히 도로교통 분야가 그렇다. 대체로 도로교통 시설들은 자동차 운전자 관점에서 설계되곤 한다. 최근에는 고령자 운전 부주의가 문제시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반사 속도나 판단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고령의 운전자가 확실하게 신호를 발견할 수 있는 적정 위치에 충분한 숫자의 신호가 배치되었는지도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지금도 각종 표지안내판을 보며 운전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노화되는 시력이라도 표지판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글자 크기 자체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체계도 재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필자조차 어떤 때는 파란 디지털 숫자가 줄어들며 깜박일 때마다 심리적 압박감이 커져 빠른 걸음으로 건너지만 미처 다 건너기도 전에 영(0)이 될 때도 있다. 분명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건널 때 적지 않은 심력을 소모할 것이다. 이러한 신호시스템도 점차 ‘고령사회 포항’에 걸맞게 바꿔나갔으면 한다. 이밖에도 과속, 난폭, 보복, 불법 유턴 등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를 불안하게 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자동차문화도 바뀔 때가 되었다.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두둑한 지갑을 가진 다른 지역에 있는 은퇴고령자들이 포항 시내를 편하게 걷고 운전하는 데 불안함을 느낀다면 점차 그들이 선택하는 여행지에 ‘포항’은 빠질 수밖에 없다. 포항시 나이도 벌써 71세다. 나이만큼 여유와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고령자 친화 도시라는 소문이 났으면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6-07

나무와 숲을 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어느새 신록이 짙어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이른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낫다는 때다. 온통 푸르름으로 일렁이는 산과 들에는 싱싱한 기운과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세상이 코로나19의 난마로 어수선해도 계절은 차분하고 왕성하게 풀과 줄기, 잎사귀를 흔들며 초여름을 노래하고 있다.벌써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데, 세상만사는 희대의 요지경처럼 여전히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이 또한 멀지 않아 가닥이 잡히고 순순히 지나가겠지만, 여파와 상흔은 좀처럼 가시지 않을 듯하다. 자연현상의 경외함과 세상살이가 만만찮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유연해지고, 각자도생의 방편을 꾸준한 각도로 추스려 나가야 하는 지혜를 얻었다고나 할까?햇볕이 뜨거워지는 여름날이 다가오면 시원한 그늘을 찾기 마련이다. 커다란 느티나무나 굴참나무 아래면 더 좋을 것 같고 간간이 잎새 흔드는 바람마저 불어온다면 한결 낫다. 그러한 곳에서 여유롭게 쉼을 누리거나 한가롭게 낮잠을 즐긴다면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을 정도다. 여름날에 흔하게 느끼거나 접할 수 있는 풍경, 그러한 쉼과 여유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찌든 때를 털고 마음을 정리하며 보다 평온함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쉼이란 무엇일까? 한자를 풀이해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 옆에 있는 모습(休)으로, 글자 그대로 나무 옆에 머물며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이다. 예컨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지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집을 떠나 나무 그늘 아래서 그냥 쉬거나 몸과 마음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두는 것이다. 굳이 나무 그늘이 아니더라도 숲길이나 들길을 거닐다 보면 번잡했던 일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쉼이란 그런 것, 마음과 정신의 각박함을 접어두고 잠시나마 영혼의 안식처를 찾으며 일탈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그러나 나무와 함께 즐기는 것이 쉼이라면, 숲이나 산, 강과 바다와 함께 하는 누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디테일도 맛보고 숲이나 물에서 풍기는 그윽함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각기 다른 맛과 느낌이 있겠지만, 세밀하게 느끼는 멋과 유장하게 젖어드는 울림이 보다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아무리 일상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코로나19의 엄습이 있을지라도 나무와 숲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즉각적이고 근시적, 장기적인 대응과 원시적인 방안을 유효 적절하게 입안하고 운용해야 한다. 이미 신속한 초기 대처와 효과적인 방역, 검사체계로 세계의 정평이 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나무와 숲은 결코 단기간에 자라거나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 속에 나름의 생리와 섭리로 지금까지 존속해왔고 영속해 나갈 것이다.

2020-06-07

케렌시아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치열한 경쟁을 살아가는 이 땅의 중년 가장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50대. 앞만 보고 살다가 잠시 되돌아보게 되는 나이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 모든 걸 버리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살아온 날에 대한 회환과 남은 생의 변곡점을 어떻게 통과해야할까 하는 고뇌에 이르면 불쑥 짊어진 짐을 모두 내려놓고 싶어진다. 물론 짐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안다. 대책 없는 푸념과 넋두리일 수밖에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어떻게 받을 것인가?이제 지난날 자신감에 찬 질주는 숨도 차고 힘겨워 후진의 추격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친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항구에 정박 중인 자식들의 인생항로를 위한 선장으로서 역할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절대적 지지자로 생각했던 부부간극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틈을 메우기 힘들 정도로 벌어져 있다. 바쁜 일상으로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언제나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 줬던 몸뚱이가 어느 날 매몰차게 나를 외면하면 어쩌지 하는 건강염려증도 뇌리 한쪽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불안정과 불안감을 술로 잊으려 해보지만 건강 하향곡선 탓에 능사가 아님을 안다. 주말이면 골프모임, 등산모임으로 구심력 잃은 공처럼 이쪽저쪽 튀어나가 기웃기웃 해보지만 이것 역시 허한 가슴을 채우지 못한다. 그러다 어쩔수 없이 또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50대의 중년이다. ‘무소유’, ‘내려놓아야 한다’는 법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니 아직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은 자전거 삶이다. 질주본능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힘들게 페달을 밟게 된다. 하지만 탄력 좋은 고무줄도 당기고 놓기를 반복하면 결국은 끊어진다. 중년의 삶, 속도를 늦추고 마디마디 휴식이 필요하다.케렌시아(Querencia)란 스페인어가 있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말이다. 투우장의 투우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중년위기의 탈출, 나만의 케렌시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이 땅의 대부분 50대 가장들은 어린 시절 여러 형제들이 방 하나의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병영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았다. ‘함께’, ‘단체’, ‘집단’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라 전체가 압축 성장 과정이었기에 개인에겐 잠깐의 휴식과 여유도 터부시된 것 같다. 100미터 달리기 같은 삶을 살아왔다. 심리적·공간적 나만의 케렌시아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나만의 케렌시아를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곳이 꼭 조용한 산사이거나 물리적 휴식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바쁜 일상 속에 복잡한 관계를 끊고 잠시라도 오롯이 자신의 시간만을 가질 수 있는 장소나 꺼리라면 어떤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휴대폰은 꺼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혹시 그동안 급한 카톡 오면 어쩌지?” 좀 무시해 보자.

2020-06-07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저주

안재휘 논설위원“국민 여러분. 뭐든지 말해 보세요. 다 들어보고 결국은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문재인 정부의 소통(疏通) 방식을 놓고 시중에 나도는 눈물 나는 패러디다. 여야 수뇌부가 청와대에 모여서 ‘협치’ 합창을 부른지 불과 며칠만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펼치기 시작한 뒤끝 작렬, 일방통행, 승자독식 행태가 가관이다. 총선에서 대패한 미래통합당은 꽤 오래도록 힘을 쓰기 어렵게 생겼다.‘법대로’에 대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현란한 마술부터 시작됐다. 민주당은 ‘총선 후 첫 임시회를 의원 임기 개시 후 7일 이내에 개최한다’는 국회법 5조 3항의 개원 규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53년 만에 단독개원을 강행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본회의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에게 뒤늦게 ‘경고’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의원이 소속당의 의사에 귀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국회법 114조 2항은 존중되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앞으로 민주당을 일사불란, 만장일치, 단일대오 형태의 독재정당으로 운영하겠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이다.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을 반박한 이해찬 대표의 논리는 해괴하다. 그의 궤변을 요약하면 “당 대표가 먼저 말하지 않고 의견 다 들어본 다음 마지막에 마음대로 정리해 얘기하면 그게 민주주의” 정도로 된다.177석 민주당의 의기양양은 무시무시하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자신에게 실력이 없다고 폭로한 법관에게 “탄핵하겠다”며 복수의 칼을 내밀었다. 재판과 옥살이까지 다 끝난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뒤집겠다고 나섰다. ‘예술·학술·보도 등의 목적’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까지 말살할 수 있도록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왜곡행위 처벌법도 결국 통과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친일’ 목록에 들어간 유공자들은 국립묘지에서 파묘(破墓)를 당해 부관참시의 횡액을 당하게 생겼다.30년간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앵벌이 수단으로 악용했다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위기에 몰린 윤미향 의원도 민주당 대표의 강력한 비호 아래 당분간 무사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지금 또 하나의 잔혹한 ‘승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이다.통합당의 최연소 남성 당선인 김병욱(포항남구·울릉)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불과 8%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의석수는 177대 103이 돼버린 소선거구제의 모순을 지적한 발언이다. 그러나 거대 여당 민주당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중대선거구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 다양성 수렴,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였다. 미래통합당은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꿀단지에 빠져 살던 긴 세월의 모순을 반성해야 한다. 지금 초라한 제1야당이 되어 당하고 있는 능멸은 그 어리석은 권력 놀음의 쓰디쓴 업보다. ‘견제와 균형’의 미덕이 사라져가는 여의도 국회는 지금 승자독식의 저주에 휩싸인, 이 나라 민주주의의 쓸쓸한 무덤이 돼가고 있다.

2020-06-07

코로나와 대프리카

대프리카는 대구의 여름철 대명사다. 아프리카만큼 덥다고 해서 붙여진 대구의 별명이다.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더운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분지 지형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구는 1천m가 넘는 팔공산과 비슬산이 북쪽과 남쪽을 가로막아 서 있는 산지에 둘러싸인 분지도시다. 산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푄현상에 의해 산맥을 넘어오면서 건조하고 더운 바람으로 변한다. 대구에 들어온 더운 바람은 분지형 도시에 갇혀 대구 도심의 온도를 끌어올리게 된다는 것이 대구가 더운 이론적 설명이다.대구는 1942년 전국 최초로 여름철 온도 40도를 기록했다. 해방이후에도 더위로 명성을 떨치다 1994년 7월 39.4도로 해방 이후 또다시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아스팔트에 계란을 깨뜨려 후라이를 해도 될 만큼 대구의 여름철 한낮 더위는 덥다. 숨이 헉헉 막힐 정도다. 여름철만 되면 대구의 더위는 전국의 뉴스거리가 된다. 대프리카라 하면 이제 누구나 알 정도로 대구 더위가 유명해졌다.대구시가 이런 도시의 특징을 모티브로 해 만든 것이 대구치맥페스티벌이다. 전국 최고의 축제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해마다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 4일 대구와 포항 등 경북 일부 지역의 기온이 35도를 넘어섰다. 6월초 때이른 기상청의 폭염 특보 발령으로 전국에서는 대구의 대프리카가 시작됐다는 네티즌의 얘기가 오갔다.그러나 진작 대구시민의 걱정은 다른데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마스크 생활을 일상화하고 있는 시민에게 찾아온 대프리카는 마스크와의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민의 코로나와의 전쟁은 올 여름이 고비가 될 것 같아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07

영주시 ‘포스트 코로나’ 준비 박차

장욱현 영주시장국내에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지역에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영주시가 코로나19 대처의 모범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첫 환자 발생 후 석 달 동안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지역에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영주시는 3월 11일 5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50여 일 간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특히 영주에서 발생한 확진자 5명은 각각 개인 경로에 의한 감염으로 가족이나 이웃 등에서 2차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실내감염도, 집단감염도 없었다.아직까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지역 내 2차감염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내와 관리가 잘 이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영주시가 성공적으로 지역사회 확산을 차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체계적인 재난대책과 철저한 방역시스템, 긴밀한 민관협력,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들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며 특히 중앙정부와는 별도로 지역 상황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시는 코로나19 방역과 함께 침체된 경제살리기에 시정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특히, 방역을 소홀히 할 수도 경제 활성화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제는 타격을 입은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할 시기로 방역과 경제라는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경기침체에 따른 민생고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5월 1일 시민화합, 경제활력, 생활방역 등 총 10개 분과로 구성된 코로나19 극복 범시민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영주시장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 운영 되는 범시민 대책위는 분과별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실천과제를 발굴하고 있다.범시민대책위원회는 앞으로 201억원을 투입해 각 분과별로 총 100대 과제를 수행하면서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해 나갈 방침이다.시는 영주시민 화합 한마당 행사, 우리마을 뉴딜 일자리 사업, ICT첨단기술을 활용한 효율적 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한 치유프로그램 운영, 백두대간 유통 플랫폼 구축사업, 영주농산물 소득 1조원 달성 프로젝트, WHO국제안전도시 공인 인증 사업 등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시책을 추진할 계획이다.이달 1일에는 영주시청에서 코로나19 극복, 가치삽시다 Y세일 업무협약식과 함께 다시 뛰자 경북 영주 민생소통 간담회를 개최했다.이날 간담회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도의원, 코로나10극복 범시민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소상공인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소상공인 상권회복과 서민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가치삽시다, Y세일은 영주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펼치는 사업으로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재난지원금 사용 시 결재금액의 5%를 할인하는 이벤트다.시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사업들의 본격 추진에 나서고 있다.지난 4월 첨단베어링 클러스터의 핵심인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오는 10월 용역이 마무리되면 사업타당성 심의를 거쳐 내년부터 기본 및 실시설계 등 산업개발계획 수립에 본격 착수한다.시는 2023년 3월 국토교통부의 국가산업단지 최종 승인을 받고 2027년까지 국가산업단지를 준공한다는 계획이다.뿐만아니라 내년 9월 17일부터 10월 10일까지 개최되는 세계풍기인삼엑스포 준비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2021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는 500여년 인삼 재배 역사를 배경으로 인삼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한 행사로 인삼, 세계를 품고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전시, 이벤트, 교육, 학술, 체험행사 등을 준비할 계획이다.이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생각해야 할 때로 얼어붙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경북도와 함께 협력해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노력과 더 다양한 지원 정책을 강구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할 계획이다.

2020-06-07

26년 된 전자레인지를 버렸다. 콘센트에 꼽혔던 플러그를 뽑을 때마다 뻑뻑하니 쉽게 놓아 주지 않아 힘껏 잡아당기다보니 전선이 살짝 드러나 위험했다. 또 오래 사용하다보니 레인지 속이 데우던 음식이 끓어 넘쳐서 얼룩투성이가 되었다.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했다. 물건에도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라 그렇고 사연이 있는 물건은 더더욱 못 버린다. 이 전자레인지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주셨다. 남편과 신혼여행을 다녀와 신접살림을 날 때 필요한 게 무어냐 묻고 싶으셨는지 시동생을 보내 신혼집을 확인하게 하셨다. ‘살림이 뭐 뭐 있드노?’ 하시면서.결혼할 그 즈음 무척 가난했었다. 쥐꼬리보다 작은 월급은 엄마에게 모두 드려 집안 살림에 보태야했기에 차비조차 받아썼다. 아직 학생인 남동생이 둘이라 쪼들리는 엄마는 내 월급으로 결혼 자금 같은 이름으로 모아 둘 형편이 못 됐다. 아버지 혼자 벌어서 다섯 가족이 살아가기에 엄마의 가계부는 늘 숨이 찼다.남편과 사귀기 시작하며 그 달치 월급부터 내가 쓰겠노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엄마는 몇 달 나와 말을 섞지 않았었다. 불편한 하루하루를 버티며 모은 돈으로 겨우 기본 살림을 장만할 수 있었다.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셋 다 작은 크기로 그것도 한 시즌 지난 이월 상품으로 하니 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장농과 삼단서랍장은 번듯한 이름표도 달지 못한 채 실려와 신혼살림의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25평 아파트가 휑하니 30평으로 보였다. 그 살림에 어머님이 전자레인지를 보태신 거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가져온 지참금이 적다고 잔소리 하나 없이 부족한 구석을 채워주셨다. 그날 어머님도 똑같은 걸로 시댁에 처음 신문물을 들이셨다. 그렇게 양쪽 집에서 26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다.낡고 선이 드러나도 음식 데우기만 하면 되기에 버리지 말자고 남편을 졸랐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며 리모델링하려고 이사하는 날 과감히 종량제스티커를 붙여서 버려버렸다. 무엇을 간직하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버티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 내겐 그게 부족했다. 부족한 마음이 후회가 된 것은 며칠 후였다.잠시 머무는 아파트에 이사를 해놓고 시댁에 다니러 갔다. 아버님 댁에 새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여쭈니, 며칠 전 그냥 불이 들어오지 않더란다.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우리 집 것을 버리던 그즈음 어머님 것도 생을 마감해버렸다는 것이다. 우연일 것이다. 그래도 눈이 시큰했다. 만약에 어머니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앞섰다. 아들이 선물한 전자레인지였다면 고장이 나서 먹통이 되어 쓸모가 없어졌더라도 무엇이든 넣어두는 보관함으로 변신시켜서 살려두셨을 것이다. 집안에는 어머님이 그렇게 들였다가 붙박이가 된 물건들이 쌓여있다.김순희수필가골동품이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태어난 지 오래되어야 하고 희귀한 물건이어야 한다. 두 가지 이유가 달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흔한 물건이라도 오래 쓸고 닦아 보관하면, 시간이 희귀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남들이 다 분리수거 할 때 아끼고 살펴 보관해야 골동품이 되는 것이다. 어머님은 사람도 물건도 아끼는 분이셨다. 어머님이 내게 처음 사주신 선물을 그냥 떠나 보내버린 것이다. 내가 놓아버린 그 끈 끝에 어머니가 계셨다.한 달여 집을 고치는 동안 남편과 나는 새살림 장만에 들떴다. 장농은 붙박이장으로 맞추고, 침대와 소파를 보러 돌아다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훌쩍 지나 새집에 입주했다. 집을 새로 단장한다는 소식에 가까이 사는 경희가 전자레인지를 선물했다. 멀리 수원 사는 정원이가 에어프라이어를 보내왔다. 또 다른 끈이 내게로 와 손을 잡는다. 이 소중한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버티도록 매일 쓸고 닦을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 집의 골동품이 되도록.

2020-06-07

일본군 성노예 문제, 그리고 양국의 미래

윤미향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세상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또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진 것도 시간이 오래 가며 상하지 않기는 참 어렵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우친다. 비단 윤미향이나 정의연대만의 일이 아니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 모두가 되짚어 볼 일이요, 사람살이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과 정의연대 문제를 제시하며 말한 것 가운데 인상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증오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일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반목과 갈등보다 평화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라는 전시 성노예제의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말은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대리인에 불과하다면, 대리인이란 그 피해 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어긋남이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의미에서 그 진정성을 한 번쯤 시험대 위에 올려봄직도 하다고 할 수 있고, 또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말이라 해도 보편타당함에서 벗어나면 회의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다.그러나 결국 사람의 삶이란 투쟁과 반목에서 벗어나 평화와 공존, 다른 말로 말해서 사랑의 마음을 품고자 할 때만 평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가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수탈, 살육과 피해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미래는 과거를 딛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에 의해서만 더 나아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물론 한국과 일본에는 이 미래를 저해하는 인식과 행위들이 있다. 한국에는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하고 가해자의 입장이 자신의 입장이 된 기막힌 코미디를 진지하게 연출하는 사람들이 있어, 있는 것도 없다 하는 가해자의 거짓 논리를 한국어로 포장해 주는데 여념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즐긴다는 마타도어를 유포한다.사실, 진실을 둘러싼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일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어둡다. 그러나 평화와 공존, 사랑이 유일한 해법이라면 이제 우리는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지배자들과 그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논리를 넘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운동이 배상 요구라는 피해의 물질적 측정 문제를 넘어서 더 넓고 깊은 설계를 해나가는 문제로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결코 풀기 쉽지 않은 난제다. 그러나 과거를 딛고 미래를 여는 일은 ‘우리’가 ‘그들’보다 잘해 왔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탈식민’조차도 넘어서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04

국회의원의 도덕성

공자의 논어 학이편은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장이다. 그러나 배움이란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므로 배움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사람다움에 있다는 것이 공자의 철학이다.그래서 공자는 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로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일”이라 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적다”는 그의 말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자신을 변명하거나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뜻이다.비슷한 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있다. 가당치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대면서 자기주장의 조건에 맞추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쓴다.아전인수(我田引水)도 비슷하다. 자기에게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빗댄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은 어이가 없어 참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나 자가당착(自家撞着)도 자기의 언행이 모순될 때 하는 말이다.당선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어떨까. 앞서 열거한 견강부회나 아전인수, 자가당착 같은 말로 국민들은 그를 바라보지 않을까.끝없는 의혹과 논란으로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품격을 이미 상당히 상실했다. “그의 사퇴에 동의한다”는 국민여론 70%는 그가 법적인 자격의 국회의원 이전에 도덕적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국민의 뜻이다.윤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검찰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여당 대표와 여당의원들이 굳이 그를 감싸야 할 이유가 무얼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법적 요건보다 도덕적 기준이 더 앞서야 하는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04

의문 아닌 질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베스트셀러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 토니 로빈스는 넬슨 만델라에게 물었다. “그 오랜 감옥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습니까.”만델라는 “난 견뎌냈던 적이 없다오.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때부터 “의문하지 말고, 질문하라!”는 말로 사람들 안에서 잠들어있는 거인을 깨우라고 설파하기 시작했다.의문하는 사람은‘이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질문하는 사람은‘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만델라는 ‘나는 분명히 건강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 그러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하지?’를 질문하고 있었다. 이것이 만델라가 70이 넘어 감옥에서 나와서도 건강하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공수처법 표결 당시 당론과 달리 기권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 화두가 되고 있다. 당론에 따르지 않은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당연하다, 반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투표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논란이 더이상 확산돼선 안 된다며 입단속에 나섰지만 당내에서조차 이번 징계가 헌법과 충돌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김해영 최고위원은 이 대표 면전에서 “당론에 따르지 않은 국회의원의 직무상 투표 행위를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에 포함시켜 징계할 경우 헌법 및 국회법의 규정과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시민단체인 경실련도 “국회의원의 양심의 자유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헌법과 국회법이 부여한 권한을 위반한 것으로 철회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그 와중에 금태섭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입장문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지난 선거법 개정안이 잘못됐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정치인은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을 이끌어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지난 선거법 개정안은 위성정당을 양산하고 우리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린 악법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당론에 따라서 찬성투표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금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또 공수처법의 경우 자신이 형사소송법과 검찰 문제의 전문가로서 공수처를 다루는 사개특위에서 토론기회를 달라고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았고, 토론이 없는 결론에 무조건 따르는 것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에 어긋나기에 따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등에 대해서 당 지도부가 함구령을 내린 데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이미 총선 불출마로 국회를 떠난 금태섭, 그는 자신에 대한 징계결정과 당지도부의 함구령에 대해 “이게 과연 정상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또 묻는다. “우리 정치는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그의 건강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이미 국민들 마음속에 있다.

2020-06-04

그들의 민낯

김병래시조시인“정대협이 발족될 당시인 1990년 11월 16일. 당신들은 정대협 간판을 내걸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한일 간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정대협을 발족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역사에 묻혀 숨죽여 살아온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가슴 벅찬 구호처럼 들려왔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겹도록 흘린 눈물은 당신들의 본래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들춰지면서부터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정대협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발족의 변에서 밝힌 바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는 정반대의 길을 달려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대협 관계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빌미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좀 더 거칠게 말자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인 것입니다”2004년 1월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인 세계평화무궁화회 33인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이다. 정대협의 위선과 비리가 낱낱이 적혀있는 장문의 이 성명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당시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고도 16년이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해온 정대협은 후신인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의 이사장이었던 윤미향 씨가 지난 번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두 차례에 걸쳐 윤 씨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서 지난 1일에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해체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있었다.일제가 저지른 만행 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열 서너 살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끌고 다니며 성욕해소의 도구로 삼은 짓은 천인이 공노할 악행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해서 전쟁이 끝났지만 그 때 끌려 다녔던 소녀들은 평생을 씻지 못할 치욕과 피맺힌 원한을 안고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2015년의 일본군위안부협상 타결로 한·일 정부 간에는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일단락 지었으나, 당시 야권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논란이 계속되다가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는 원천무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담당해온 사회단체인 정의연이나 나눔의 집 관련자들은 정작 피해 할머니들의 치욕과 통한을 공감하고 위무하기는커녕 또 다른 수모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피해 할머니들의 주장이었다. 정의연의 경우, 처음의 취지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저들 단체의 이념적 목적과 수익을 위해 할머니들을 이용하고 정계진출 등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모금한 돈과 정부의 지원금을 자의로 유용하거나 착복한 혐의에 대해서는 지금 수사 중이니 그 진상이 밝혀지면 그들의 민낯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2020-06-04

보리밟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봄의 문턱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농촌에서는 보리밟기 행사가 열린다.겨울 추위로 들뜬 땅에 보리밟기를 함으로써 뿌리를 밀착시켜 주어 뿌리를 튼튼히 하고 많은 결실을 맺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겨울철의 대표적인 밭농사 작업 중 하나이다.보통 가족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월에 펼쳐지는 다양한 가족 놀이와 함께 겨울철의 대표적인 가족행사로 보리밟기는 자리잡았다. 이웃들도 함께 어울려 때론 수십명이 어깨를 잡고 보리를 밟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었다.지금은 보리농사의 축소로 보리밟기는 점점 사라져 가는 풍습이지만 가족 간의 협동과 사랑을 느끼는 대표적인 아름다운 농촌의 풍습이다.60∼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이웃의 큰 부러움을 사던 시절 ‘보리밟기’라는 TV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이민을 가기 위해 들뜬 엄마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자신도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서툰 발음으로 책을 들고 이방 저방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던 그 엄마의 모습은 자유분방한 나라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흥분과 함께 코믹하게 투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대반전이 일어난다. 드라마 말미에 보리밟기의 모습이 비추어 지면서 집의 대부격인 할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그 보리밟기 모습을 보여준다.그리고 말한다. “보리는 밟아주어야만 잘 자란다. 꼭 자유분방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다”라는 교훈이 주어진다.40여 년이 지난 요즘도 그 드라마의 감동이 잔잔히 다가온다.금년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금 전국이 어지럽다. 벌써 금년도 상반기가 지났지만 바이러스는 고개를 숙일 기세가 아니다.필자가 주관하여 매년 개최하는 대학평가 관련 포럼도 금년에는 온라인으로 전환될 위기에 있다.대학가에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입학식 등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고,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강의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상 캠퍼스는 정지 되었다.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야할 캠퍼스에는 학생이 보이지 않고 활기가 없이 적막감만 감돈다.갑자기 보리밟기가 생각난다.보리는 밟아야 더 성장한다는데 이러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통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보리밟기와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위생관념은 더 철저해졌고 근검절약을 배우는 게 몸에 밴다. 다양한 온라인 상의 새로운 경제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은 온라인 강좌 등 강의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다.긍정적 사고로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고 나면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경제를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우리는 지금 보리밟기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0-06-04

양치기 2주와 벌점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앞으로 2주 코로나 확산 고비”이 말은 최근 몇 달 동안 언론을 통해 전 국민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 말이 반복된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2주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분명 우리 사회는 2주라는 마법에 걸렸다. 그 마법을 풀 수 있는 주문은 없을까!주문을 찾기 위해 고비의 뜻부터 찾았다. 사전은 고비를 “일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나 대목. 또는 막다른 절정”이라고 정의했다.어떤 일이 완성되려면 반드시 절정의 순간을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은 설익은 밥이 되고 만다.예전에 마라톤을 한 적이 있다. 출발한 지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서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서 달리던 사람이 조금만 더 참고 달리면 숨이 터질 것이라고 했다. 그땐 너무 힘든 나머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오기가 발동하면서 어떻게든 조금만 더 참고 힘을 냈다. 그랬더니 목에 걸렸던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면서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비록 결과는 어디 내놓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필자는 완주했다. 그때의 기억은 필자의 마음에 오뚝이 심장을 심어주었다. 필자는 그 심장으로 지금까지 왔다.지금 우리 사회에 딱 필요한 말이 “숨을 트다”라는 말이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 19라는 출제자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분석해낸 듯했다. 그 결과는 세계에 모범 답안으로 제시됐다. 그래서 나온 말이 K-방역이다.그렇다면 K-방역은 세계를 공포에 빠트리고 있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근본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금 찾고 있는 해결책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동원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분명 인간의 기술력을 능가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변이(變異)이다.그런 자신들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오만 앞에 바이러스는 그저 웃을 뿐이다. 눈앞의 성과밖에 보지 못하는 인간들, 그들은 분명 2주를 양아치로 만드는 주범이다. 그런 양치기 정신으로는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양치기는 교육계에도 많다. 어느 학생이 심각하게 필자에게 말한다.“우리 학교는 마스크 벗으면 벌점 10점이래요. 점심시간 빼고는 물도 못 마신 대요.”물론 이 말을 한 교사의 의중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협박 수준의 공갈로 입학도 하기 전인 학생들에게 공포 정치를 하는 교사들, 그들은 분명 교육계의 양치기들이다.어느 교육청은 한술 더 떠서 다음과 같은 공문을 일선 학교에 뿌렸다.“등교 수업 이후에 학교 출입자에 대해 발열 검사를 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실시하여 학교 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학교를 엄중 문책할 예정이므로 (….)”어떻게 가면 갈수록 교육계에는 양치기만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양아치가 되는 날, 이 나라 교육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2020-06-03

트럼프와 미국의 민낯

김규종 경북대 교수1991년 12월 31일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국가 경제의 피폐, 여기에 더해진 경찰의 비무장 민간인 살해까지. 이것이 세계 최강 미국의 모습인가, 하는 의구심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 악화의 중심에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있다. 세계 대통령이라 불리던 미국 대통령의 초라해진 모습이 약여(躍如)하다.코로나19로 10만이 넘는 사망자와 4천만이 넘는 실직자가 발생한 나라 미국. 설상가상 백인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어떻게 비무장 국민을 한낮에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지난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위조지폐로 담배를 사려 한다는 연락을 받고 미니애폴리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다. 경찰관 4명은 비무장 상태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했고, 백인 경관 데릭 쇼빈은 무려 8분 46초 동안 군화 신은 무릎으로 조지의 목을 누른다. “숨을 쉴 수 없다.” 하고 조지가 애원했지만 쇼빈의 무릎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조지가 의식을 잃은 후에도, 심지어 응급 의료진이 현장에 도착한 1분 후에도 쇼빈은 조지의 목을 계속 짓눌렀다.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한 뒤 17분 만에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사망한다. 뉴욕타임스가 현지시각 5월 31일 현장 CCTV, 목격자 촬영 영상, 관련 공식문서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흑인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전모다.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백인 경찰이 합법성을 등에 업은 폭력으로 비무장 흑인을 악랄하게 학살한 사건이다.조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로 널리 유포되면서 시위가 시작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5월 29일 백악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시위대를 조롱하고 ‘군대의 무한한 힘’을 통한 무력진압을 천명한다. 아울러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대응시위를 벌이라고 제안한다. 국가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오직 재선을 위한 정략적 선택에 집중하고 있다.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코로나19 문제를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로 돌리면서 무차별적인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은 치켜세우면서, 민주당 소속 시장들에게는 악의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모든 책임이 민주당과 지지자들 때문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하는 그의 주장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다.코로나19가 가져온 세계화에 대한 불확실성과 유럽연합의 분열양상,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21세기 세계의 혼란과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제국 아메리카의 소멸 혹은 쇠락(衰落)이 목전에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시간대가 지나가고 있다.

2020-06-03

물값

윤영대수필가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면 편리한 점이 많다. 매달 우편함에 꽂혀있는 관리비 명세서를 가져와서는 거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모아 두지만 관리비는 자동이체되어서 이제는 거의 무관심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나대로의 가계부를 정리하며 생활에너지 사용에 대한 부분만 살펴보고 있다.가계부에는 아파트관리비 부분이 있고 그 항목에는 전기, 수도, 가스 및 통신료 등이 있다. 우리 집의 생활에너지 사용 추이를 알아보겠다는 것인데 전기는 전력량(KWh)과 요금, 수도는 사용량(t)과 요금, 가스료와 통신료는 금액만 적어나가고 있다.그중에서 수도료,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만 사용하는 물값을 보니 계절에 따라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1년 내내 월 1만원 내외이다. 물론 부부 둘이 사는 생활이라 해도 물값 1만원은 너무 싸다고 생각된다. 고급 커피 두 잔 값도 안 된다. 그 물값으로 한 달 동안 먹고 설거지하고 세수하고 목욕하고 화장실 쓰고 세탁도 하고 베란다 청소에다 화분까지 물 주고…, 사용량은 10톤 내외라니 그야말로 ‘물값’이다. 그렇다고 마구 풍족하게 쓰자는 것은 아니다. 생수병 1ℓ에 500원 정도이니, 만약 생수로만 생활한다면 10톤은 1ℓ의 만 배, 돈으로 500만 원… 엄청난 금액이다. 생수 물값이 금값이다.우리나라 수돗물 급수현황을 보면 지자체들의 수원지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포항시는 ‘맑은물 사업본부’에서 하루 약 230만 톤을 생산하고 1인당 450~500ℓ를 소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1인당 평균 물 사용량은 약 280ℓ로 유럽국가들의 2배 수준이라고 하고, 이 중 가정용이 약 180ℓ라고 하니 포항 시민들은 생각보다 많이 쓰는 모양이다. 그리고 요금체제는 가정용, 일반용, 대중탕용 등으로 나누지만 가정용은 20톤까지는 톤당 585원이고 이후에는 누진세가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 집의 경우 계산을 해보니 포항 평균의 반 정도밖에 쓰지 않아서 다행이다.생각해보니 먹고 마시는 식수로서의 양은 얼마 되지 않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데 많이 쓰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 수세식 변기의 경우를 보면 하루 대소변 5회를 이용한다고 봤을 때 1회 10ℓ 정도라면 1일 50ℓ, 즉 1일 사용량의 약 1/4, 참 많이 쓴다. ‘돈을 물 쓰듯이 한다.’ 더니 화장실 대소변처리에 수도요금의 1/4을 쓴다는 거다.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물 맑고 깨끗하여 어릴 적만 해도 집에 깊은 샘이 있어 두레박으로 퍼서 마셨고, 산과 들에 흐르는 물도 그냥 마셨다. 수돗물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축복을 받은 나라다. 외국에 나가 보면 수돗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나라도 많다. 그러나 중금속 검출과 공업단지의 페놀 유출 등 환경 오염사건으로 인해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수돗물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인지 정수기를 갖추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생수의 국내판매가 공식 허용되기 시작한 90년대 초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계곡의 깨끗한 샘물을 찾아다니며 마셨다. 나도 산행을 겸해서 경주 토함산, 흥해 천곡사, 안강 사방약수까지 먼 길을 큰 물통을 들고 물을 뜨러 갔었다. 물론 공짜였다.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얘기하면서 “누가 물을 돈 주고 사 먹냐?”하며 웃었는데, 요즈음은 계곡물도 팔고 바닷물도 판다. 생수 개발이 보편화 되어 암반수, 심층수 등 종류도 300여 종이 넘고 외국산 생수도 들어와 있다. 이제 물까지 수입해서 먹는 판이다.요즘 코로나 사태로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했다고 하니 1ℓ 150원 정도이고 세금 등을 제외한 순수 휘발유 가격은 1ℓ 520원 정도로 생수 값과 거의 같다. 물론 수돗물값에 비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중동지방에서는 물값이 원유가보다 엄청 비싸다는 말을 듣고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오는 대형 유조선의 일부를 수조로 개조해서 중동에 빈 배로 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맑은 물을 싣고가서 팔면 비싼 원유값 일부라도 보충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라고….우리나라는 알려진 것과 달리 ‘물부족 국가’는 아니라고 하지만 물은 언제나 아껴 써야 한다. 목욕탕에서 물을 줄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짜증이 난다. “풍족하게 쓰시되 낭비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참 좋다. 아무리 물값이 싸다 해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2020-06-03

아는 사람 한 분도 못 봤다

1930년 경오생 조갑규 씨는 오늘도 일기를 씁니다. 소일거리로 만지던 재봉틀을 놓아버린 뒤 생긴 습관입니다. 91세, 노동에서 해방 되면 자유를 얻을 줄 알았는데 웬 걸요. 뒤늦게야 무료함이야말로 생의 가장 무서운 적임을 알게 됐지 뭡니까. 버젓한 자식들이 둘레둘레 있으니 사전적 의미로는 독거노인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일기를 써도 홀로 사는 왕노년의 하루해는 길기만 합니다.또래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조갑규 씨 역시 평생 ‘심심하다’는 말뜻을 이해할 여가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열여섯에 시집 와, 농사일에서 장삿길까지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닳도록 노동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지금에야 일을 손에서 놓았지만 딱히 일 하지 않는 지금이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잡념 생길 겨를이 없었던 바빴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몸은 고되어도 성취감 때문에 날아갈 듯한 날도 많았으니까요.이상한 바이러스 때문에 요즘은 더 힘듭니다. 성당도, 경로당도 갈 수 없으니 심심함을 넘어 사방이 막힌 기분입니다. 무료함을 지나 적요함의 공기가 방 안을 감쌀 때면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한기가 온몸을 파고듭니다. 혼자 사는 조갑규 씨의 요즘 화두는 ‘무료함과의 전쟁’입니다. 이런 조갑규 씨의 일기장을 훔쳐봤습니다. 두어 컷을 담았습니다. 몇 구절을 원본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코리나 병 때무내 백계 안 나가고 이섯다. 이 병이 언재 끈날지 모른다. 뱅글뱅글 돌면서 하류하류 지냇단다. 아무대 안 나가고 지배 이섯다. 하이 땃히 박게 내보이 버를입피 파락캐 도다낫다. 벅꼿 명알도 불근색가료 벌서 매자간다. 점심 반찬 토란국 계랄찜 해먹다. 오늘 책일다보이 시간가는 모고 이섯다가 벌서 5시가 다대다. 저녁 가래 해먹것다. 오를언 비가 와 날새 컴컴했다. 오늘도 그럭저럭 화루해가 다각구나. 고리나 병대무내 22째 집아내마 갓채이섯다.”조갑규 씨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기약도 없습니다. 갇힌 날들을 셈하면서 조갑규 씨는 뱅글뱅글 집안을 돕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따뜻해진 밖을 내다보니 버들잎이 파랗게 돋아났습니다. 어느새 벚꽃 몽오리도 붉은 색깔로 맺어갑니다. 무료할수록 허기는 더 잘 찾아옵니다. 점심 반찬으로 토란국과 계란찜을 해먹습니다. 책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벌써 다섯 시가 되었습니다. 저녁으로는 카레를 해먹습니다. 비가 와서 날씨는 컴컴해집니다. 오늘도 그럭저럭 하루해가 다 갔습니다. 22일째 집안에만 갇혀 있습니다. 조갑규 씨 일기체의 담백한 서술 방식이 어쩐지 난중일기를 닮았습니다. 심리가 반영된 내용은 아니지만 진술과 풍경 속에 조갑규 씨의 공허한 내면이 읽히는 듯합니다. 사진에 찍힌 장면 몇 구절도 첨부합니다. ‘왕노년’을 보내는 조갑규 씨의 도돌이표 일상이 이어집니다. 읽기 편하게 맞춤법에 맞게 올려봅니다.“소설 파랑새를 두 번째 읽었다. 오늘은 37페이지까지 읽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11절까지를 읽었다. 점심은 미역국을 끓이고 조기를 구웠다. 새 밥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28일 만에 처음 밖에 나갔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망우공원을 둘러서 큰다리를 건너서 갔다. 옛날에 살던 동네인 방천에서 내려다보았다. 아는 사람 한 분도 못 봤다. 집으로 오다가 어떤 할머니가 나를 보고 손짓했다. 같이 놀다가 갑시다, 했다. 이야기도 하고 오랜만에 잘 놀다가 왔다. 큰딸이 쌀, 돼지고기, 쌀과자 등을 배달시켜줬다. 손자가 사온 파로 김치를 담갔다. 하도 여러 가지를 가져와서 숫자도 모르겠다. 오늘은 봄바람이 완연하다. 밖에 내다보니 개나리꽃, 벚꽃이 피어서 만발하다. 방천에 사람들이 벚꽃 구경한다고 얼마나 많이 다니는지. 막내 내외가 와서 점심 돼지찌개해서 먹었다. 함께 방천 꽃구경하고 공원에 갔다. 집에 와서 커피 한 잔하고 갔다. 한 달 20일 만에 망우공원에 갔더니 빵과 우유를 (봉사회에서) 주었다. 안과 병원에 갔다. 소설책 129페이지 읽었다. 요한묵시록 22장 12절에서 17절까지 읽었다.”-조갑규씨 일기 중김살로메소설가코로나 때문에 집안에서만 뱅뱅 돌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조갑규 씨. ‘아는 사람 한 분도 못 본’ 대목에선 숙연해집니다. 동네 윷놀이 친구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지요. 성경 읽고 기도하고 소설책 읽고. 그래도 심심하면 식솔들에게 차례로 전화하는 왕노년 조갑규 씨는 제 엄마입니다. 절약 세대의 모범생답게 여백마저 아까워 빽빽하게 공책을 메우시는 분입니다. 얼마 전, 줄 넓고 칸 큰 일기장을 한 더미 사다드렸습니다. 동시대 할머니들이 쓴 시집과 일기집도 곁들였지요. 비껴 간 얘기긴 하지만, 시집과 일기집은 노년이 읽기엔 활자가 너무나도 작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책인지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나저나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밴 조갑규 씨가 줄 넓은 새 일기장을 잘 활용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2020-06-03

디지털 지갑

디지털 지갑은 디지털화된 가치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모바일 기기상에 구현한 전자 지불 시스템의 한 종류로, 영어로는 ‘e-Wallet’이나 ‘Digital Wallet’이라고 한다.신용 결제뿐 아니라 멤버십·포인트· 쿠폰 등 다양한 결제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혁명이 초래한 모바일 경제 시대의 새로운 결제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한국에서도 디지털 지갑의 주도권을 놓고 카드사, 통신사, 은행, 스마트폰 제조사, 유통사 등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신한카드의 ‘신한 스마트월렛’, 삼성카드의 ‘삼성m포켓’, SK플래닛의 ‘스마트월렛’, KT의 ‘모카’ 등이 그런 경우다. 최근에는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모바일 지갑 서비스 ‘클립(Klip)’을 출시, 블록체인 서비스 대중화에 시동을 걸었다.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안에 디지털 자산 지갑 ‘클립’을 탑재한 것이다. 클립은 카카오톡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지갑 서비스다.디지털 자산이란 온라인 환경에서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정보 및 데이터를 말한다. 게임 아이템이나 가상 포인트 등이 대표적이다.특히 최근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가치를 매기거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던 온라인 활동 데이터와 개인 제작 콘텐츠 등도 자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클립은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에서 쉽게 디지털 자산을 접해 볼 수 있도록 개발됐다. 별도의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 모바일 앱 우측 하단의 ‘더 보기’탭 내 ‘전체 서비스’ 메뉴에서 이용할 수 있다. 회원가입과 로그인 역시 카카오 계정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디지털 시대의 진화가 눈부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03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코리아나

장규열 한동대 교수미국이 흔들린다. 코로나19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여 아슬아슬하였다. 방역이 시급하면서도 경제를 위한 대책에 급급하였다. 하필 이런 가운데,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폭력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미국 내 흑인단체들은 물론 유색인종 시민들이 충격 속에 항거시위에 돌입하였다. 그런 와중에 약탈과 방화까지 벌어져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거센 비난과 함께 진압에 노력하며 정치적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도 가물거린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한 것을 시작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유네스코(UNESCO)에서 벗어나더니 이제는 국제보건기구(WHO)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였다. 자국의 이익에 집중한 나머지 글로벌 환경에서 리더의 위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국제정치의 질서를 다시 만들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다시 한번 대결과 갈등의 구조를 시도하여 신냉전의 기운이 드리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차별과 혐오의 맨 앞에 미국이 서 있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낡은 생각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것도 문명국가들 가운데 가장 앞서간다는 미국에 여지껏 인종차별이 횡행한다니. 코로나19가 요청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거센 시위물결에 힘을 잃고 말았다. 안팎으로 켜켜이 쌓인 난제들을 미국과 미국 시민들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멀리서도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한때 가서 살고 싶었던 나라 미국의 영광은 이제 저무는 게 아닌가.대한민국도 어렵다. 코로나19는 떠나가지 않으면서 학교와 교회 등의 언저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선생님들은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과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집중하려 하지만 이미 어그러진 배움의 마당이 안정을 찾으려면 긴 시간이 들 모양이다. 갈 길이 아직도 멀지만 다른 나라들과 견주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헬조선’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안에서 발견하는 강점과 장점을 키워가려는 노력과 다짐이 보인다. 절망은 희망으로 바꾸고 낙담은 기대로 바꾸어 내리막을 오르막으로 만들어 낼 의지를 키워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불러내었다고 한다. 함께 하겠다는 응수를 던지기는 했지만, 편가르기에 훈수를 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제는 국격이 올라간 만큼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고 격려해 지구 상에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 첫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보았으면 한다.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묘수도 전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21세기에 인종차별이 말이나 되나. 지난 세월 겪어온 수다한 경험과 고난이 이제는 남들에게 알려줄 소중한 지혜와 자산이지 않을까.‘대한민국이 있어 다행이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팍스 코리아나’를 기대하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일까. 세상이 어려울수록, 준비된 자가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드러날 터이다. 코로나는 가라, 헬조선은 없다.

2020-06-03

김재규 재심 청구는 수용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40년이 지났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만찬에서 차지철 전 경호 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하여 군사 재판을 받았다. 그는 내란 수괴죄와 내란 목적 살인죄로 6개월 만에 전격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번 새로 입수된 재판 과정의 128시간의 녹음 테이프는 재판시의 김재규의 육성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김재규 유족들은 이 테이프를 근거로 서울 고법에 재심을 청구해 놓은 상태이다. 그의 재심이 수용되어 10·26사건과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김재규 전 부장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찍부터 있었다.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계엄 정국에서는 누구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 박정희 유신 독재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그를 ‘민주 투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란목적 살인죄로 그의 측근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번 테이프에서도 김재규는 대통령 시해 목적은 ‘자유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려는 과대망상’이라는 검찰의 주장에 ‘자유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한 혁명’이라 주장하였다. 내란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는 최후 변론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독재를 막기 위한 혁명인데 어떻게 자신이 집권하겠다는 목적이 있었겠냐고 항변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만 보았던 시해당시의 상항을 그의 육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바로 옆 자리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각하를 똑똑히 모셔라’며 툭 치고 차지철 경호 실장에게 “이 버러지 같은 자식’하며 총을 쏘고 ‘1초’ 도 안 되는 순간에 대통령을 향해 꽝꽝 했다”고 진술했다.이번 녹음에서 김재규의 유신헌법에 관한 입장은 재판장의 저지로 발언이 수차례 제지당했다. 그가 10월 유신을 권력내의 쿠데타라고 규정하여 그 부당성을 설명하려 한 것은 분명한데 그의 육성이 녹음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시 중정 부장 김재규는 10·26 사건 전야 소위 부마사태의 현지를 방문하고 시국 수습책을 제시하려 했다. 이 문제로 경호 실장 차지철과 심각하게 다투었고 당시 박 대통령은 ‘사태가 악화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고 하면서 그를 질타했다는 내용도 녹음되어 있었다.당시 경남대학 교수로서 마산에서 대학생들의 데모를 현장에서 목도했던 사람으로서 그 감회가 새롭다. 이번 김재규 재판의 재심의 수용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심의 요건인 새로운 증거인 53개의 녹음테이프가 나왔다는 점이다. 더구나 재판과정의 피고 김재규의 당시 발언이 공판시의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점은 재심의 또 다른 주요 요건이 될 것이다. 이번 재심을 통해 10·26의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고, 김재규 전 부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재심의 수용여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역사에는 영원한 은폐도 비밀도 없는 것 같다.

2020-06-02

텃밭을 가꾸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주택가 변두리에 살면서 작은 텃밭과 정원을 가꿔온지 십 수년, 단조로운 일상의 리듬과 소소한 소일거리로 삼으니 넉넉하기만 하다. 텃밭이라야 손바닥만한 두어 평에 불과하고, 뒤뜰 역시 그다지 넓거나 비좁지 않은 둘레지만, 그 나름의 구실을 다해가며 도심 속 전원의 맛을 조금이나마 누리게 해주고 있다. 땅을 밟거나 흙을 만지는 일들이 흔치 않은 도시생활에 미미하지만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고나 해야 할까?‘아지랑이 피어나는 설레임의 한 켠에/땅을 파고 이랑 갈아 씨앗 몇 점 뿌리며/두어 평 일구는 텃밭/작은 행복 심는다//흙의 숨결 느끼며 땅의 말씀 귀담으며/거름을 주고 북돋움도 하면서/쏠쏠히 꿈을 키우듯/애틋하게 보듬네’ -졸(拙)시조 ‘텃밭을 가꾸며’ 중에서-상추, 고추, 배추, 열무, 정구지, 미나리 등 십여 가지 채소를 심어놓은 채전(菜田)에 수시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다 보면, 어느새 말쑥하고 푸르싱싱하게 자라나는 푸성귀들이 새뜻하고 착하게만 보인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농작물은 관심과 보살핌에 따라 튼실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쑥쑥 자라난 푸성귀를 쌈이나 겉절이, 전 따위로 즉석에서 부쳐서 먹거나, 적은 양이지만 이웃에 나누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밥상머리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작은 텃밭의 채소가 큰 인정을 나누는 배려의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과 정원을 거닐다 보면 식물과 나무, 곤충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읽어낼 수 있다. 때가 되면 움과 싹이 트고 잎과 줄기가 돋아나며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익숙하지만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또한 뒤뜰 주위를 즐겨 찾는 새들은 그들만의 지저귐으로 다정한 대화와 사랑노래를 나누며, 물이 고인 작은 돌확에 차례대로 내려앉아 물을 먹는 모습이 앙증스럽기만 하다. 같은 무리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며 지켜가는 일들이 당연시되는 동·식물들의 생장현상 같지만, 가까이서 자주 살펴보면 의외로 보이는 것들이 많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이로운 부분이 있다. 예컨대 꽃을 꺾거나 식물의 줄기를 자르면 그 가냘픈 비명소리를 고양이 따위의 동물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자연계의 천지만물은 어떤 오묘한 법칙이나 질서 속에서 존재하고 생멸을 거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텃밭과 정원은 자연만물이 다 그러하듯이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유지되고 자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일이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事雖小 不作不成)는 말은, 결국 어떤 일의 시도와 움직임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움직임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과 지속성이다. 급하게 빨리 보다는, 제대로 꾸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다. 정성으로 가꾸고 다듬고 손질하려는 끈덕진 노력의 손길이 없다면, 아무리 작은 뜨락과 밭뙈기라도 이내 잡초가 무성해지고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2020-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