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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떨어진 꽃 보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넘게 피는 꽃은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 10년을 넘기는 권력은 없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권세 역시 10년 넘게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이다.주역의 이치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아침 산책길에 철 보내는 꽃들이 이곳저곳 떨어져 있다. 몇몇은 즈려밟힌 자국들이 선명하다.화려한 날은 가고 사람의 발자국이 주홍글씨처럼 찍혀 있음에 울먹이는 것 같아 산책 내내 떨어진 꽃들이 눈에 밟힌다. 사람의 발에 밟히고 눈길에 외면당한 꽃의 말년이 안타깝기까지 하다.모진 긴 겨울 남몰래 버티고 새봄에 잠시 폼 좀 잡은 날이 겨우 10일이라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 듯하다. 사람들은 꽃이 겪은 지난겨울 인고의 시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화려하게 핀 모습을 즐길 뿐이다. 다가와 향을 맡는다.배경삼아 사진을 찍는다. 고운 자태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 같이 그 가벼운 친근감을 맘껏 즐겼다. 짧은 몇 날이 가고 계절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뚝뚝 떨어져 길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듯 사람들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거려니 받아들이기엔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온다.하지만 이 또한 세상 이치다. 정승집 개가 죽은 경우와 정승이 죽은 경우가 다른 것이 세태다. 명심보감에 ‘주식형제 천개유(酒食兄弟 千個有), 급난지붕 일개무(急難之朋 一個無)’란 말이 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땐 형동생 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는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같이할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잘 나갈 때는 너도 나도 친분을 과시하다가 정작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땐 사람이 썰물처럼 다 밀려가고 없다는 말이다. 세상인심으로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평소 너의 행실도 문제가 있어 그런 것 아니냐고 되받는다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비참함만 느끼게 될 뿐이다.인생살이도 꽃처럼 한 때 만개할 때가 있다. 나의 화려한 날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만개한 꽃이 시들거나 떨어지듯 어느 시점엔 퇴락의 때를 맞이한다. 물론 때가 되어 물러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혜는 자신의 몫이다. 자연스러워야 할 퇴장의 시간이 백세시대를 맞아 때 이른 퇴장그늘로 짙게 드리우고 있다.정신적·육체적 활동 능력이 아직은 청장년같은 사람들이 퇴장의 긴 시간들에 시달리고 있다. 근교 산에 평일 등산객으로 출몰(?)한다. 출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산책로가 붐빈다. 평일 골프장 내장객으로 퇴장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제법 호사를 누리는 부류에 속한다. 아직 자녀들 교육과 독립을 위해 이곳저곳 2진으로 뛰어들어 남은 구간을 뛰는 처지가 되면 말년 삶이 신산함을 넘어 처량해진다.이제 나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맡기 위해 몰려들던 상춘객은 어디에도 없다. 시들고 떨어진 꽃이지만 한 번 더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한 때는 당신들이 좋아하고 열광했던 꽃이었으니 한 번 더 눈길을 줬으면 한다.

2020-05-19

신라왕경

왕경(王京)은 임금이 거주하는 수도다.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역사적 용어라 하겠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왕경이라 했고, 고려사에는 개경을, 조선왕조실록에는 한양을 왕경으로 지칭했다.경주는 신라의 왕경으로 역사적으로는 서라벌 혹은 금성으로 불렸다. 삼국사기 기준으로 보면 약 991년 동안 신라의 수도로 존속했다. 한 나라의 수도가 1천년 가까이 한 곳에 유지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지라는 점에서 경주는 역사문화 도시로서 가치가 특별한 곳이다.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8세기경 최고 번성기를 누렸다. 그 당시 경주에 거주한 가구가 17만9천호에 달했고 인구만 100만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나 당나라 수도 장안성 등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도시였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천년동안 간직했던 신라왕경의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13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신라왕경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지금은 주춧돌 등을 제외하면 당시의 왕경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우여곡절 끝에 신라왕경 발굴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왕경의 발굴복원 사업으로 경주의 문화유물적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풍부해 질거란 기대감은 고무적이다. (재)경주문화엑스포가 경주엑스포공원 경주타워 1층에 설치된 신라왕경 모형을 13년 만에 리뉴얼해 공개했다. 역사문화적 고증까지 거쳤다. 신라시대 유적지와 유물,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공간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감흥이 기대된다. 상상 속에 머물렀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으로 관광도시의 흥미는 더 높아질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5-19

작은 것에 감사하며… 군위 지보사(持寶寺)

해발 437미터의 선방산(船放山)은 마치 배를 띄운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전에 의하면 선방산 꼭대기에 배를 띄우고 놀 만큼 큰 못이 있었지만 당나라 장수들이 그곳에서 뱃놀이를 즐기고는 못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설화를 간직한 그곳에 지보사가 있다.지보사(持寶寺)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할 뿐 그 이후 근대까지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그 옛날에도 그리 큰 절은 아니었던 듯하다. 다만 지보사에는 이름처럼 세 가지 보배가 있었다. 아무리 갈아도 닳지 않는 맷돌과 사람 열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마솥 그리고 청동향로이다. 향로 대신 단청의 물감으로 쓰이는 오색 흙을 꼽는 경우도 있지만 향로만 은해사 성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송홧가루 날리는 오월,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텅 비어 있는 주차장을 두고 극락교 앞 그늘에 차를 세운 후 다리를 건넌다. 큰 나무 그늘이 내 발등을 서늘하게 적셔주고 곧게 뻗은 길은 다시 돌계단으로 이어진다.“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계단 입구에 새겨진 글이 마음 밭을 돌아보게 한다. 첫 느낌이 가지런한 절이다. 계단 위에서 은행나무가 사천왕처럼 내려다볼 뿐 한낮의 풍경은 모든 게 멎어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은행나무 뒤로 아담한 루(樓)가 막아서는 작은 뜰, 한쪽에는 삼층석탑 하나가 투명한 햇살에 몸을 씻고 있다.가지가 휘어지도록 핀 불두화, 막 씻고 나온 듯한 순백의 얼굴빛과 마주하며 나는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무언가로 꽉 찬 절은 비밀의 화원처럼 조심스럽다. 저들만의 따스한 언어들이 두런두런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작고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받은 이 순간조차 우연과 필연으로 예정된 약속이었으리.불두화 한 그루 심고 잠들었던 어제 일을 떠올린다. 이토록 많은 불두화를 만날 운명이었을까. 종자를 맺지 못하는 애잔한 불두화, 그 순결한 아름다움에 빠지노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숨소리 낮춰가며 사진을 찍고 한참을 서성인다. 주지 스님이 어떤 분인지 뵙지 않아도 그려진다.작은 소읍에 위치한, 적요처럼 말간 추억들이 꿈꾸듯 살아가는 절, 어디선가 스님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오월의 품에 안겨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별 기대없이 찾아온 내게 절은 빛바랜 고향처럼 푸근하다.조각미가 뛰어난 고려시대 석탑, 보물 제 682호 삼층석탑의 시선도 부드럽다. 대웅전을 비켜나 두 단 아래 서 있지만 결코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구석구석 시선 닿은 곳마다 부처님의 섬세한 눈길이 머물고 커다란 은행나무는 대웅전만큼이나 든든하다. 섬세함과 고요함, 소박함까지 갖춘 지보사에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향수가 어룽거린다.욕심 없는 평온함이 경내를 가득 메우는 이 시간, 현판도 없는 작은 루에 올라 시집을 읽으며 한껏 여유를 부리고도 싶다. 산 아래 정경도 궁금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조심스럽다. 절은 열린 듯 편안하고 비밀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햇살이 따가운 줄도 모르고 행복에 취해 마당을 거니는 이 소박한 특권은 누가 보내주셨을까. 작은 자갈돌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고 풍경이 간헐적으로 울다 멈추는 처마 아래에서 나는 한량없는 감사함에 젖는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 키 재기를 하며 살아왔던 눈 먼 날들,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있어 지금의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지도 모른다.대웅전 법당에 들어가 석조아미타여래 삼존불 앞에서 백팔 배를 시작한다. ‘비록 적게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종무소 입구에 걸려 있던 글이 법당까지 따라왔다. 손에 잡히지도 않은 것들을 끝없이 좇으며 쉼 없이 달려왔던 가여운 내 육신과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은 언제나 작고 소박한 것들이었다.삼존불 옆으로 보이는 일타 큰스님의 인자한 미소가 빈 법당을 더 푸근하게 밝힌다. 법당 문 앞에 고여 있는 투명한 햇살, 더 이상 울지 않는 풍경, 모두가 숨을 죽이고 참선 중이다. 은행나무 그늘 아래 안기듯 자리 잡은 루(樓)의 처마 끝에는 빛바랜 염원들이 걸려 있다.조낭희 수필가그 아래로 조금 전 내가 들어왔던,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는 출구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면 출구는 다시 입구가 되어 바쁜 시간 속으로 이어지리라. 지보사에서 만난 오월의 말씀들은 까마득히 깊다.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면 아주 낮은 자세로 걸어오던, 작아서 혹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말씀들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해마다 오월이 오면 지보사를 찾으리라. 내 안에 든 영원성을 잊고 만족할 줄 모를 때, 손 안에 움켜쥔 젖은 아픔들이 되살아날 때도 지보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도 나의 기도는 언제나 한결같기를 바란다.“교만하지 않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여름 풀냄새 같은 기도로 살아가게 해 주소서.”

2020-05-18

여름, 시 읽기를 위한 짧은 제목의 수사학

날이 따뜻해져 완연한 여름이 되면 몸도 마음도 조금씩은 활동적인 상태가 된다. 이번 여름에야말로 책을 좀 읽고자 마음이 동한 분들도 적지 않으시리라. 눈에 띄게 한산해진 서점에 들러 서가를 살펴보면, 이 계절에 읽기에 좋은 시집이며, 소설집들의 제목이 적잖게 눈에 띈다. 요즘 나오는 문학책들은 대부분 한 번 들으면 그야말로 쉽고 재치 있는 제목들을 갖고 있어 선뜻 쉽게 꺼내볼 수 있다.예전 시인들은 분명 시어의 메타포, 즉 은유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여,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에 달라붙어 있는 풍부한 의미들을 살리고자 애썼다. 반면, 요즘 시인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독자의 공감을 부른다. ‘진달래꽃’이라는 단어 하나에 한 인간이 살아온 삶과 그 분위기, 욕망 등이 다 담겨 그 가벼움 속에 둔중하고 두터운 의미들이 들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진달래꽃’이야 그저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 것이라는 시대도 있는 법이니 어느 쪽이 더 낫다거나 더 시의 본질에 가깝다거나 할 수는 없다.최근 일본 정부 환경상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90CE)의 독특한 화법이 여기저기에서 화제였다. 인터넷에는 재밌는 밈(meme)으로 다뤄져 여기저기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편,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그의 화법 중 흥미로운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야말로 일본은 지금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말하고 있는데, 그 원인과 결과가 동어이다. 논리적인 언어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아한 기분이 들 만하다.물론 정부각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겠지만, 시를 좀 읽어보신 독자들이라면 이런 어법이 그리 낯설지 않은 분이 많을 것이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드실 무렵, 남기셨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한 마디의 말은 우리 사회 전반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또한 이 말을 산이 산이며, 물은 물이라는 그대로의 말로 받아들였던 사람이 또 있을까.우리는 하나의 말이 단지 하나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말 속에는 그 말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는 온갖 의미들이 착 달라붙어 있다. 때로는 비꼼 같은 대상에 대한 태도가 언어에 포함되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 반어나 역설 같은 수사법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시를 읽을 때 하나의 단어에서 들려오는 화성과도 같은 울림은 바로 그 시가 펼쳐놓은 은유와 상징의 그물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기형도의 ‘빈집’에서 온갖 종류의 음색을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이처럼 인간의 언어 사용이 고도화된 시대 속에서는 자칫 고색창연한 언어적 전통이 무겁게 내려앉기 쉽다. 윗사람의 한 마디를 이리저리 곱씹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의를 파악해야 했던 사회의 분위기는 얼마나 무거운가. 분명 그런 시대의 시는 그 고도화된 언어를 더 나은 방향으로 풍요롭게 표현하여 방향을 틀거나 오히려 당연한 것은 당연하게 말해버린다. 모두가 하나의 말을 듣고 하나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대에는 하나의 당연한 말이 잔잔한 물 위의 파도가 되는 것이다. 앞서 일본의 환경상은 말의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서 말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니, 그런 어법을 ‘잘못’ 이용했던 셈이고, 웃음거리가 될 만하다.다시,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들의 제목을 쭉 눈으로 훑는다. 어떤 제목은 무언가 풍부한 함의가 담겨 있을 것만 같아서 눈길이 가고. 어떤 제목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어서 눈길이 간다. 시의 언어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때의 내 기분과 계절의 냄새가 있을 뿐이다./홍익대 교수

2020-05-18

부부의 날을 기념하여

고광영국민연금공단 포항지사장국민연금은 1988년 시행 이래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연금수급자 500만명 시대를 열었고, 2025년에는 연금수급자가 70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해 국민연금은 496만명의 수급자에게 약21조원의 연금을 지급했으며, 올해로 33돌을 맞은 국민연금은 제도가 무르익으면서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해 노후에 각자 노령연금을 받는 부부수급자가 35만쌍을 돌파했다.연금액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 개인최고 연금액은 월 220만2천원이고 부부합산의 경우 월 364만4천원에 달해 국민의 행복한 노후를 책임지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국민연금연구원에 의하면, 노후에 부부가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월243만원이 필요하고, 최소 생활비는 월 176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노후대비의 의존도는 결국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하는데 정부가 기초연금 등 노후복지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의존은 10% 미만이며 배우자에 대한 의존은 20%, 자녀는 5%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본인의 책임은 60%가 넘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2.7세를 넘었고, 이는 선진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노후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결론은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령연금을 각자 받기 때문에 노후는 2배로 든든하다. 한편,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므로 부부가 모두 노령연금을 받다가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면, 국민연금 중복급여 조정규정에 따라 둘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의 노령연금을 선택하면 노령연금에다 유족연금의 30%를 추가로 받을 수 있고, 유족연금을 선택하면 유족연금만 받는다.국민연금을 많이 받으려면 가입기간과 납부금액을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업주부, 학생 등 소득활동을 하지 않아 의무가입대상은 아니지만 본인 희망하여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임의가입제도를 활용하거나 반·추납신청 등으로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으니 국민연금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전국 국민연금공단 지사(국번없이 1355)로 문의하면 된다.

2020-05-18

코로나19 이후 세계정치경제의 향방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코로나19의 세계적 팬데믹(pandemic)은 세계정치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가 “폭풍은 지나가고 인류는 살아남을 테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이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세계 각국은 감염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하여 자국 우선주의와 각자도생(各自圖生)전략을 채택하였다. 세계정치질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의 리더십은 크게 실추되었고,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에게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향후 전략적 패권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유럽을 표방했던 EU회원국들 역시 위기상황에서는 국익과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었고, 강대국의 재정지원에 종속되어 있는 WHO는 국제기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코로나는 경제세계화의 상징이었던 물자와 인력의 자유로운 왕래를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진출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을 촉진하고 있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수반되어 온 부작용과 취약성이 반세계화(anti­globalization)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시대의 세계정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코로나의 대처과정에서 글로벌 파워(global power)인 G2의 리더십이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견국(middle power)들의 역할공간이 확대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료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남으로써 선진국들의 신화가 깨어졌고,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의 강압적·음성적 대응방식은 결코 방역모델이 될 수 없다. 반면에 최소한의 통제 속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대응으로 선방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현행 ‘세계화 분업체계’의 위험성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제공급망의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특히 과학기술이 낙후한 후진국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남북문제도 민감한 이슈로 부상될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감염병 확산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정치경제질서의 향방은 상당히 유동적이다.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경을 초월하는 질병·마약·환경·테러 등의 초국가적 인간안보(human security) 이슈들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각자도생 전략은 한계가 있다. 더욱이 우리는 GDP대비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국제교류협력이 생존과 번영의 길이다. 따라서 IT강국으로서 향후 새로이 형성될 세계정치경제질서의 논의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국력과 빈부의 격차를 넘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의 표준, 즉 ‘뉴 노멀(new normal)’은 우리의 국익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2020-05-18

저무는 공인인증서 시대

공인인증서는 인터넷상에서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자정보로, 국가에서 지정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다. 1999년 시행된 ‘전자서명법’에 기반해 도입됐다. 금융결제원·코스콤 등 국가에서 지정한 공인인증기관(CA)에서 실명 확인을 토대로 발급하며, 은행·증권사·우체국 등의 등록대행기관에서도 발급 신청이 가능하다. 사용범위는 인터넷 뱅킹·온라인 증권거래·보험 가입 등의 금융 서비스, 기업 간 전자 입찰·계약·세금계산서 발행 등의 전자상거래 관련, 세금 납부·전자송달·증명서 발급·등기 업무·실적 신고·수출입통관·예비군 등의 정부 민원, 전자문서 전달·전자출원·전자처방전·인터넷 청약 등 다양하다.도입 초기에는 전자상거래 활성화 등에 기여했으나 시장독점을 초래하고, 까다로운 발급절차로 전자서명 기술과 서비스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2018년 9월 정부가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인인증서 폐지를 골자로 한 전자서명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20일 열리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 처리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인인증기관과 공인인증기관에서 발급하는 공인인증서 개념을 삭제하고, 공인·사설 인증서를 모두 전자서명으로 통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공인인증서가 도입된 지 21년만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면 향후 인증플랫폼 시장의 급성장이 전망된다. 생체정보,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다양한 전자서명 기술 경쟁을 활성화해 국민의 생활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는 하루라도 빨리 개선돼야 마땅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18

시민단체 출신들의 ‘정치 먹튀’

강희룡 서예가역사 속에는 수많은 인생을 희생시키며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냥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한 많은 인생이 수도 없이 많다.조선 역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러졌고, 19세기 말 마지막 왕조의 어지럽던 정치상황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한제국으로 고쳤으나 14년을 지탱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5년의 긴 세월 일제강점기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다 1937년 시작된 전쟁이 1945년 원자폭탄의 위력에 무릎 꿇자 해방됐다. 이 기간 중 한반도 백성들은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되기 시작했으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여자근로정신대’도 결성됐다. 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근로정신대라고 모집해 놓고 위안부로 끌려가거나 성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다.1990년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진실규명과 힘들게 사는 생존자 할머니들을 지원하려는 37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가 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다.이 단체는 2015 한일합의무효화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100만 시민들의 참여로 2016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2018년 7월 통합해 현재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되었다.이 시민단체 출신들을 적극 기용하기 시작한 노무현정부부터 이들의 존재감이 급격히 커진 원인은 위안부 단체 활동 자체가 진보진영에서 여성운동의 상징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 출신 간부들이 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인사 등 적잖게 배출되면서 일각에선 시민운동의 순수성에 의심을 둔지도 오래다. 실제로 상당수 피해 할머니들은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자신들을 이용한 정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표시해 왔다.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세계평화무궁화회 소속 할머니 33명은 그해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은 문 닫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미 정치인으로 둔갑한 정대협의 전, 현직 관계자들에게 그들이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관련 의혹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 역시 윤 당선인의 국회입성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을 이용해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윤 당선인을 향한 이용수 할머니의 지적은 2000년대 초부터 고수하고 있는 다른 할머니들 입장과 사실상 판박이다. 허영구 전 민노총 부위원장 말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리인, 거간꾼들이 조직의 고난을 거치며 쌓아 온 성과를 낚아채 정치적 대표가 되는 ‘정치 먹튀’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원이나 후원자들이 그들의 지위를 팔아서 국회의원 배지 달라고 말한 적도 위임한 적도 없다. 참 시민단체는 그냥 순수한 목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단체일 뿐이다.

2020-05-18

균형발전은 ‘서울화’가 아니다

김주일한동대 교수우리나라 국토계획의 역사는 큰 정책 전시관과 같다. 국토 균형발전과 관련된 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각종 지방경제 진흥 정책에서부터 수도권을 억제하는 정책, 그리고 최근 수도권의 행정기능과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유형의 정책이 동원돼 왔다.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균형발전에 대해 목말라한다. 균형발전은 신기루와 같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인가. 아니면 우리가 뭔가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사실 우리나라에서 균형발전이란 지방의 ‘서울화(Seoulization)’로 이해되어온 듯하다. 지방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 제한된 시간 속에 사업을 따오고 결과도 얻어야 하는 지방의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선택은 다른 곳의 사례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지자체는 항상 인력, 아이디어 부족에 허덕이고, 결국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곳의 사업을 모방하곤 한다. 당연하게, 모방의 대상은 주로 수도권과 대도시들이다. 이런 ‘카피캣’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선거다. 총선, 지선을 막론하고는 대표 공약은 대부분 ‘우리지역에 이런 저런 사업을 도입하겠다’는 것들이다. 마치 지역을 수도권처럼 만들어줄 것 같은 공약이 많다. 이러다 보니 지역 발전 정책은 ‘서울화’ 내지 ‘서울 따라가기’가 돼버리고 만다. 하지만 형태상으로 서울을 따라간다 해도 도시의 활력은 복제될 수 없다. 결국 정책의 효과는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지방은 또 다시 좌절하게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같은 정책에도 함정이 있다. 수도권의 일부를 지방으로 양보하는 통 큰 정책이지만 여기에도 ‘서울화가 곧 균형발전’이라는 코드가 들어 있다. 아무리 좋은 균형발전 정책이라도 지방의 독자적인 노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금싸라기 같은 수도권의 기능이라 해도 그것이 서울의 중력권을 떠나는 순간, 그 효능은 예전과 같지 않다. 지방의 자체적인 혁신이 아닌, 주어진 혁신도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서울화가 균형발전의 방향성이 될 수는 없다. 서울화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그럴듯 해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지방의 자발성, 독자성을 잠재운다. 시간과 노력이 좀 더 들어가더라도 지방 도시들이 스스로의 발전 방향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지방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의 지원사업이 구상되고 있는 점은 의미가 크다. 지방이 독자적으로 정책 사업을 기획·제안하는 가운데, 중앙정부는 장려·후원하는 방식의 균형발전 정책이다. 사업의 형식과 내용, 결과물 모두에 있어 지방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깊고 깊은 지방의 위기를 충분히 살펴보고 고민할 수 있도록 사업기간도 가능하면 제한이 없으면 좋겠다. 인구가 감소하고 지방 소멸의 우려가 나오는 시점에 각 지역의 독자적 생존력은 어차피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으로도 이런 접근을 통해서 탈 중심화, 그리고 지역 자립으로서의 균형발전 정책이 정착돼갔으면 한다.

2020-05-18

가게 문을 다시 열기 전에

이제야 약간이지만 도시가 깨어나 몸을 뒤틀기 시작하는 듯하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마스크를 한 사람들의 표정도 다소 풀린 것 같다. 생활방역체계로 이행한 이후 거리에 사람이 조금 늘어난 것도 같고, 택시기사님 목소리에도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다만, 일찌감치 승강기에 비치한 손 소독제를 없앤 곳이 있고,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좁은 승강기에서 통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에는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국민을 믿고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한 것이지, 우리나라가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님을 모두 마음속에 새겨두어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당장 내년이라도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여하튼 포항 지역에서도 코로나19 이후의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많은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안도하여 안일하게 지금까지 닫아두었던 가게 문을 그저 열기만 해서는 V자 회복이 아닌 L자 회복에 그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만에 하나 코로나19가 아닌 또 다른 전염병-20, 전염병-21이 발생한다면 지금처럼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상황만 반복할 가능성도 크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정부가 있는 자금 없는 자금을 끌어모아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재정자금을 투입할지는 미지수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주 국부적인 어쩌면 국내 한정 나아가 특정 지역에만 한정한 전염병이 있을 수도 있다. 일례로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피해지역이나 대상이 좁혀지겠지만 여전히 전통시장, 골목 정육점, 관련 식육을 취급하는 식당과 마트 매출은 떨어질 것이고, 해당 지역 방역을 위한 출입통제로 관광 관련 업종도 피해에서 벗어날 수는 없게 될 것이다.결국, 어떠한 위기 그중에서도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게 되는 전염병과 관련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소비자의 행동 패턴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당연히 위기 발생과 그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소상공인들은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보여주었던 방식을 답습하기 쉽다. 이와 같은 위기와 대응과정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를 바란다고 해서 굳이 새로운 획기적인 어떠한 경영방침이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신뢰를 쌓는 것뿐이다. 가게와 손님 간의 신뢰. 평소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던 손님들이 이번 코로나19사태로 발길을 끊었다면, 그렇지 않은 가게도 분명히 있었다. 가게 매출이 급감한 원인을 무조건 세계적인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외부에서만 범인을 찾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1%라도 일부 원인이 자신의 가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였으면 한다. 단골손님들이 굳이 말하진 않았으나 평소 자신의 가게가 비위생적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출입구가 너무 좁아 드나들 때 손님들과 부딪치기 쉽다고 여겨 이번 사태에 아예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다. 다른 가게는 평소에도 전화 주문이 가능하여 집으로 배달해준 다음 배달원이 지참한 카드결제기로 결제하고 있었기에 이번 사태로 가게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일부 매출이 있었던 반면, 자기 가게는 신용카드의 사용도, 배달도 불가능하였기에 가게 문을 닫아 피해가 더욱 컸었을 수도 있지는 않았나 근본부터 생각해보아야만 한다.최근 정부는 적어도 1가구당 40만 원 정도의 소비 여력을 만들어 주었다. 일정 지역 범위 내에서만 쓸 수 있고 사용기한도 정해진 특별조치다. 분명히 가게 문을 연다면 이번에 소비자 지갑에 들어간 돈 중 다소 얼마라도 거래해 왔던 인근 소비자를 통해 가게 매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생겨났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을 무작정 바라고 가게 문을 연다고 해서 지금 비상시국 전환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경기회복 조치에 따른 수혜가 자기 가게까지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며, 소비자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 두기와 위생, 최대한의 비접촉, 비대면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어떻게 해야만 할까.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다음과 같이 일부 방향성만큼은 받아들여 앞으로 펼쳐질 비대면, 비접촉의 시대에도 가게를 지켜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더욱 굳건하게 다져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첫째, 그동안 카드수수료가 들고, 당장 현금화하기 어렵다는 등 여러 이유로 오직 현금결제만을 선호하였던 가게라면 최소한 고객이 신용카드 정도는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지원금만 하더라도 현금 지급 대상이 많지 않고 상품권보다는 오히려 신용카드, 체크카드, 선불카드 등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소비자 대부분은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정부지원금을 사용하기 쉬운데 자기 가게만이 현금결제를 고수한다면 가게 문을 열지 않은 것과 별다른 차이가 생겨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가게도 온라인 판매망을 갖춘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러려면 돈도, 시간도 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정 금액 이상을 산 고객에게는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쉽게 도입할 수 있다. 현대 소비자에게 택배, 배달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지금은 ‘신뢰’하는 가게에 전화로 ‘회’까지 주문하여 배달받아 먹고 있는 시대다. 하물며 썩지 않는 공산품을 취급하는 가게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종전까지 찾아가야만 하던 가게에서 전화로 배달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다시 위기가 오더라도 가게가 입는 피해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셋째, 음식점이라면 더욱 앞으로의 변화를 수용할 태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철저하게 자기 가게의 특성에 맞추어 서비스를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 음식점은 상시 방역합니다’라고 적어둘 필요도 있다. 가능하다면 테이블마다 칸막이는 물론이고 아예 자리를 한 방향으로만 배치하는 방법도 좋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명 안면 마스크를 주방은 물론 홀서빙 직원들까지 착용을 의무화해야만 할 것이다. 손님들은 일일이 주인에게 지적하지 않는다. 안가면 그뿐이다. 앞으로 음식점의 성패는 이처럼 적어도 가시적인 위생 수준의 확보가 매출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각자의 수저가 모두 넘나드는 전골류를 서비스하는 가게라면 1인당 뚝배기로 배식하는 방법도 필요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고급음식점이나 직원들에게 모자를 쓰도록 했다면 이제는 골목 식당도 그래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왔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넷째, 전통시장에서는 여전히 모든 손님이 한 번씩은 만져보고 일일이 필요한 무게만큼 저울에 달아야만 전체 가격을 알게 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작은 분량별로 미리 분리 또는 포장해두고, 가격도 킬로그램당이 아니라 소량으로 구분해둔 분량별 가격을 표시해둔 곳일수록 손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옛날처럼 주인과 흥정하고 일일이 가격이나 원산지를 물어야만 하는 곳일수록 비대면 비접촉시대에는 살아남기 힘들다. 신용카드가맹점임을 밝힌 가게일수록 생존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택배까지 된다면 금상첨화다.이상과 같은 가게의 변화는 시청공무원이나 시민들이 도와주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가게의 흥망성쇠를 책임지는 가게 주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17

두꺼비 대이동

두꺼비는 개구리목의 두꺼비과로 분류되는 개구리와 비슷한 양서류다. 몸길이 80∼120㎜정도로 개구리 중에는 가장 크다. 주둥이는 둥글고 둥에는 불규칙한 돌기가 많이 나 있다.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몽골 등지에 주로 분포돼 있다. 저산지대의 밭이나 초원에 서식하는 동물이다. 요즘 같이 도시화한 곳에는 이제 보기 드문 동물이 됐다.두꺼비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뱀을 먹는 사건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선조들은 신령스런 동물로 여겼다. 두꺼비와 연관된 설화나 민담도 많다. 민가에서는 집지킴이 혹은 재복의 상징으로 삼았다.크고 튼실하게 생긴 갓난 아이를 “떡두꺼비 같다”고 한다거나 금두꺼비를 만들어 가정에 재물이 들어오길 바라는 민가의 풍속이 이런데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올해도 대구 수성구 망월지에서 새끼 두꺼비의 대이동이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욱수동 망월지에서 산란을 거쳐 성장한 새끼 두꺼비 수백만 마리가 서식지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새끼 두꺼비의 대이동은 자연생태계의 모습을 그대로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을뿐 아니라 생태 가치 측면에서도 보존할 만한 일이다.매년 2월 성체 두꺼비 수백 마리가 욱수산에서 망월지로 내려와 산란을 하고 돌아간 지 60∼70일 만에 나타나는 이 모습은 매년 전국적 화제를 뿌리고 있다. 201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그러나 이곳도 망월지를 메우자는 일부 지주의 법정소송으로 개발과 보존의 문제로 진통 중이다. 두꺼비의 대이동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0-05-17

‘태종·세종’이 왜 거기서 나와?

안재휘 논설위원정치권이나 정치 논객들이 종종 써먹는 비판 용어 중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비유가 있다. 용비어천가는 원래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6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다. 정치 이야기에서 이 말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이 특정 실세 보스를 향해 비판의식을 거세하고 과장된 수사법으로 칭송만 일컫는 현상을 비꼬기 위해서 주로 동원된다.지난 4·15총선 결과와 관련해 여당의 대승을 진작 예견했다는 반응이 없지는 않지만, 뜻밖이라는 표정도 상당수다. 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라는 탄식이 많다. 그 정서를 타고 일부의 메아리 없는 ‘부정선거’ 주장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선에 육박하는 숫자의 거대한 ‘범여권’ 의석을 당당히 거느리게 됐음은 역연하다.느닷없이, 여당 정치권에서 듣기 민망한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가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지사에서 영어(囹圄)의 신세로 전락했다가 와신상담 끝에 국회로 돌아온 민주당 이광재 당선자가 시작했다. 그는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특별방송에서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그 며칠 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라고 고쳐 말했다. 이광재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노 전 대통령에게 ‘끼워팔기’하듯 표현한 일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는 문 대통령에게 ‘태종+세종’ 이미지의 화려한 포장지를 붙였다.정세균 총리까지 칭송대열에 동참했다. 정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3년은 대통령님의 위기극복 리더십이 빛난 시기”라고 찬사를 띄웠다. 이쯤 되면 정부·여당 내의 작금 분위기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총선 압승 결과를 만들어낸 최대의 공신으로 불가사의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일궈낸 문재인 대통령이 꼽히는 분석은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그 시혜를 풍성히 받아든 여권 인사들이 감탄을 외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태종+세종’은 너무 심했다. 왕권강화로 조선의 기틀을 세운 태종과 백성을 사랑한 불세출의 군주 세종을 함께 묶어 붙이는 찬송가는 좀처럼 소화하기 버겁다. “나라가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는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의 촌평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가 만개한 나라에서 왜 하필이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봉건시대 군주들의 이름을 줄줄이 소환하는지 께름칙하다. 총선 대승이 아무리 흥겹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덕목은 있다. 내리막길에 정말 필요한 것은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 브레이크라는 교훈을 아주 망각하지는 말기를 부탁한다. ‘태종·세종’이 왜 거기서 나오나.

2020-05-17

미래통합당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정당은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승리하는데 기본 목적이 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처절하게 패했다. 선거 참패 원인을 갑작스런 코로나 재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야당의 무능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물론 180대 103이라는 민주당의 승리는 국정운영을 잘해서 얻은 결과는 결코 아니다. 야당의 시대에 뒤진 당의 정체성, 조직과 운영 방식, 총선 전략이 실패한 초래한 결과물이다. 미래통합당은 총체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이러한 보수 야당의 위기는 그 연원이 상당히 오래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파적 이해에 침잠한 당 지배구조, 대통령의 불통의 리더십, 친박의 오만과 부패는 반동의 정당으로 당 위상을 추락시켰다. 대통령과 당 지휘부는 광화문의 수천만 누적된 촛불 함성에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했다. 보수 당내의 친박과 비박이라는 계파적인 갈등은 위기 수습은커녕 책임 전가로 일관하였다. 결국 탄핵에 가담한 비박은 신당을 만들고, 친박은 반성은커녕 탄핵에 동조한 탈당파를 비난하는 형국이 연출되었다.미래통합당은 먼저 당 개혁을 위한 당의 정체성부터 확립하여야 한다. 미래통합당은 합당 후에도 당의 정체성은 오리무중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유승민 의원의 주장은 아직도 당의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내 강보수의 주류는 돌아온 비박을 아직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가두려고 한다. 탄핵당한 대통령 시의 총리가 당 얼굴이 될 때 당의 정체성은 더욱 위기에 봉착했다. 보수 정당은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야당은 ‘개혁 보수’, ‘참 보수’에서 당의 정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주호영 새 원내대표는 당 조직을 개편하여 정당을 역동적으로 운영할 책임이 있다. 세계 선진 보수 정당은 당 조직과 운영을 새롭게 정비하여 보수층의 지지를 회복하였다. 미래통합당은 전통 보수 정당인 미국의 공화당과 독일 기민당의 역동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리의 국가 위상이 G20에 이르고 4차 산업시대 진입했는데도 한국의 보수정당은 아직 ‘개발 독재 시대’의 환상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탈 이념화 시대가 도래한지 오래인데 반공과 냉전적 사고에 갇혀있다. 야당은 영남 지역 당, 노인당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야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미래통합당은 ‘뇌가 없는 무능 정당’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한국 야당의 이러한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역동적인 한국 정치는 급변하는 민심처럼 요동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등락을 반복하는 것도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2022년 지방선거와 대선은 아직 약 2년이 남았다. 미래통합당은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중도 보수 세력의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 위기 시마다 처방전으로 썼던 비상 대책위원회 만으로 병의 근원은 다스릴 수 없다. 김종인 신드롬에 너무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야당은 ‘미래도 통합’도 없는 당명부터 바꾸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2020-05-17

요즘 마음이 어때요?

김현욱시인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문가인 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이 권한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일주일 단위로 실천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떠오른 감정과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 그에 따른 행동을 일주일 동안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딸에게 새 자전거를 사줬다. 기념으로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효자 시장까지 제법 먼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아직 위태위태하지만 제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대견하고 한편으론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우리 딸이 다 컸구나’, ‘함께 자전거를 타니까 참 행복하구나’, ‘그래 이런 게 소확행이지’, ‘딸과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딸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과 행동을 많이 해주었다. 중간에 크게 한 번 넘어졌을 때도 내가 일으켜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려주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 단위로 내 마음을 기록했다. 기록지를 들고 문가인 원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돌이켜보면 우리는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다. 우리의 눈과 귀는 쉴 새 없이 미디어와 스마트폰에 노출되고 잠식당한다. 붓다의 표현으론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것”이고, 메리 파이퍼의 표현으론 “미디어는 우리에게 피상적으로 살라고 부추기고, 우리는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자기 분열에 이르는 교육을 받고 있고, 우리의 문화는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는다.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같은 것은 미디어에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어딘가 아프고 패배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일각에 남아 있다. 정작 진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에는 만나는 사람에게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글을 보고 ‘누가 나에게 요즘 내 마음이 어때요? 라고 물은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었던가!’하는 회한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게 인생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불씨처럼 살아나는 게 인생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모질고 날카로운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나.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집에선 가족에게 말로 입힌 상처가 너무나 크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말의 삶이다. 말이 남는다. 내가 한 말, 당신이 한 말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실천하면서 가끔 지인을 만나면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이 말은 분명 힘이 있다. 분열의 말이 아니라 통합의 말이고 차가운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말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도 그런 말이다. 메리 파이퍼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을 “아름다운 존재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저지할 때”라고 말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존재를 성장시킨다.

2020-05-17

국민을 위한 적극 행정…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곽용환고령군수올해 본격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적극행정 정책’이 공직사회에 자발적 자세와 능동적 사고의 바람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공복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문화를 지칭하는 ‘적극행정’은 공직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나, 아직까지도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스스로 겸허히 반성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렇기에 소극행정 혁파, 적극행정 공무원 책임 면책, 우수 공무원 선발 및 인사상 우대조치를 담고 있는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도록 공직사회 구석구석, 국민의 삶 곳곳에 퍼져 나가야 하며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일이기도 하다.고령군에서도 정부정책 추진을 기회로 삼아 적극행정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보완해 공직사회에 ‘적극행정’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적극행정은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함께 나누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령군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 경제 살리기 비상대책 TF팀을 구성해 군민 생계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비비 등을 포함한 예산 92억원을 신속 투입해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피해업종 긴급지원, 취약계층 긴급 복지 등의 정책을 차질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특집판 대가야소식지 발행, 경제활성화를 위한 긴급 제안 실시 및 선정, 전국 최초 드라이브 스루 농산물 판매, 전 군민에게 마스크 및 손소독제 배부, 대구·경북 최초 제로페이 연계 모바일상품권 도입 등 우리사회에 어둡고 짙게 드리운 코로나19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규제를 개선하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적극행정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단계는 아니지만 인접도시에서 신천지 사태 등으로 확진자가 크게 늘어날 때 집단시설의 신속한 코호트 격리 조치와 관리직 직원 200명 전원에 대해 군비를 투입해 검사를 진행하는 등 선제적 방어망을 구축하고 코로나 확산 차단에 적극 매진한 결과 현재 지난 4월 2일 미국 유학생을 마지막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그동안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방역체계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체계로 일부 완화되고 어느 정도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되는 현 상황에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 국민의 삶을, 그리고 군민 모두의 경제적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며 철저한 방역체계를 유지한 채 경제를 살리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인 방안의 중심에는 적극적인 공직자의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리 마음속 소명의식처럼 공직자 모두가 선봉에 서줄 것을 주문한다.분명,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드리운 지역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은 것이 사실이나 “구내식당 운영을 중단한 채 외부식당을 이용하여 외식업 살리기에 앞장서고 급여 일부를 떼 고령사랑상품권을 구입해 관내 농산물 소비 등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고령군 공무원의 모습은 모범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사례”라는 어느 군민의 고마운 말씀처럼 우리 공직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어두운 터널일수록 그 끝에는 언제나 밝게 빛나는 햇살을 머금고 있기에 고령군정을 책임지는 군수이자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군민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추진의 선두에 서고자 한다.아울러, 오늘 우리가 뿌린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씨앗이 행복의 열매로 다가 올 그날을 위해 600여 고령군청 공직자들과 함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령군의 내일을 위한 약속!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우리 공직자 모두의 삶에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명제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2020-05-17

장기숲의 봄

이윽고 따스한 햇볕 사이로 한 줄기의 바람이 불어온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봄이 몸 안으로 퍼져간다. 소나무들도 새순을 내밀고, 온 마을에 노랑 이불을 덮으러 나서면 이팝나무도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올린다. 이래서 봄은 ‘동사’이다.봄이 한창인 장기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숲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공간이다.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야 하니까 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같으면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두런거렸겠지만 올 해는 햇살만이 교정을 가득 채웠다. 운동장 한편에 200년의 세월 동안 품을 키워온 이팝나무가 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이팝나무라고 선뜻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왜냐면 이렇게 큰 키를 보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록이 무성한 오월, 흰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 밑으로 들어가니 그늘이 넓고 편안해 탄성이 절로 나온다.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인데,‘하얀 눈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늦봄에 핀다 해서 ‘입하(立夏)목’ 또는 ‘이암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그렇지 않은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장기숲에는 활엽수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팝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큰키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밑에 탱자나무, 신나무, 산사나무, 꾸지뽕나무 등 작은 키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도록 했다. 그 밑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면 어찌나 시원한지 발이 시려 오래 담그지 못 했다고 한다. 이처럼 복층 형태로 숲을 가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다니기가 어려워 숲속에 들어가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해 동네 사람들도 길을 잃곤 했다고 기록에 전한다.김순희수필가예부터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 온 장기는 신라 때부터 중요한 군사기지로 자리했다. 장기읍성에 올라서면 지금은 성 아래 논으로 된 장기들판이 보이지만 예전에는 나무들로 가득한 장기숲이 있었다. ‘경상도읍지’에 따르면 숲은 길이가 7리, 너비가 1리 였다고 하며 면적이 지금 단위로 19㏊였다고 하니 규모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에서 내린 왜구 무리들이 거대한 숲의 장벽 앞에서 멈칫한다. 그 순간 요란한 총포 소리와 함께 나무 틈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온다. 당황한 일부 왜구들은 숲속에 뛰어들었지만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오도가도 못 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붙잡힌다. 장기숲에서 벌어졌을 법한 상황이다.하지만 장기숲은 광복 후 장기중학교 건립과 새마을운동으로 농사짓는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숲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교정에 십여 그루의 거목들이 남아 여기가 숲이었던 시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베어진 나무는 입찰을 통해 매각되었다고 하는데, 주로 숯장사들이 사들여 현장에서 바로 나무를 베어다 숯을 만들었다고 한다.몇 해 전부터 장기면 주민들은 장기숲복원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장기숲의 옛 모습이 배경에 있는 ‘추억의 사진전’을 여는 등 숲 복원운동에 적극 나섰다. 숲을 가꾸어 간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또 하나의 마을 숲을 되살린다는 범주가 아니라 지역 문화를 발굴하고 알려 가치를 높여야 다음 세대에도 유효한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니체는 머리가 아프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책밖에 없다고 했다. 나무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 쉴 휴(休)자이니 동·서양이 같은 방법으로 마음을 쉬었다. 뭉싯뭉싯 하얀 구름을 얹은 이팝나무를 바라본다. 왜 바라보기만 해도 기운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200년 동안 지녀온 세월의 기운을 내게 주는 걸까. 코로나, 다 지나간다. 걱정 말아라. 장기숲이 나를 위로한다.

2020-05-17

청출어람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을 공경하자는 뜻에서 지정된 기념일이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으로 선생님과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스승의 날을 맞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제간의 만남조차도 갈라놓은 듯해 고약하다는 생각도 든다.청출어람(靑出於藍)은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한 말이다.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의 권학편에서 유래했다. 순자는 학문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나올 수 있다며 학문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그 사례로 북위(北魏)의 이말과 공번의 관계를 들었다. 원래 이말은 어려서 공번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를 했다. 그의 학문 발전속도가 빨라 몇 년이 지나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되었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 하여 이를 청출어람이라 불렀다.우리 속담에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후배는 장래성이 있으니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뜻이다. 세상의 일은 반드시 순서대로 정해진 것은 없다. 노력하면 선생님이나 선배를 언제든지 뛰어 넘을 수 있다. 그것이 허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청출어람이 가지는 본뜻은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데 있다.철학자 니체는 “제자로만 남으면 스승에게 누를 끼친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스승의 마음은 다를 바 없다. 스승의 날을 맞아 청출어람의 뜻과 스승의 은혜를 한번 새겼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4

조국 방패론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에서 뜨겁다. 심지어 윤미향 당선자는 페이스북에 “딸이 여러 언론의 취재를 받고 있다”면서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적어 ‘조국 방패’를 내세웠다. 조 전 장관 때처럼 해명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인데, 이런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하기보다 일부 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양상이다.한마디로 정치적인 공세라는 주장으로 맞서겠다는 의도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서 위기에 처하면 조국 전 장관을 방패로 소환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해 1월 조국 전 장관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으로 편지글을 띄웠다.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가 큰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의 지원을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정치부 기자로서 오랜 세월 지내온 필자는 정치권이 서로 상대방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만 열을 낼때면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듯한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금횡령이나 비리의혹이 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 지 방법이나 절차는 너무 뻔하다. 객관적인 3자의 검증을 거쳐 의혹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있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대로 처리하면 된다. 그게 상식이다. 다른 길로 빠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판에서 한쪽 당 구성원이 당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을 만한 사고를 쳤을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구성원이 했다는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진상조사나 당사자의 사과 등의 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 오히려 잘못을 부인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예 여러 의원들이 함께 나서서 성명서 등을 통해 상대 당쪽의 주장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이 잘못을 구체적으로 꼬집어 지적해도 거기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지 않고 그런 것은 추후 수사당국 등에서 조사하면 밝혀질 일이니 이러쿵저러쿵 뒤집어 씌우지 말라고 부르짖는다. 그런 공방 와중에 여론이 조금 수그러들면 슬그머니 사고친 당사자에게 가벼운 징계를 먹이고, 수습을 시도한다. 뜨겁던 비난열풍이 식었을 때 쯤이면 언론에서도 새삼스레 악을 쓰며 비난하기 쉽지않다는 걸 노리는 것이다. 이런 물타기 전략은 정치권에서 매우 흔한 반면 유용하다. 윤미향 당선인의 기부금 횡령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역시 이같은 도식에 너무 잘 들어맞는듯 보인다.14일에도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등 16명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야당이 제기한 회계 부정 논란에 대해서는 ‘제도적 개선 대상’이라고 치부했다. 과반을 훨씬 넘어선 여당의 조국 방패가 너무 두껍고 단단해보인다.

2020-05-14

울릉도 어장 현실 외면한 법령으로 잠수기조업 피해 심각

김윤배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이학박사매년 봄철이면 울릉도(독도)는 마을별 어촌계를 중심으로 청정 울릉도(독도) 바다가 품은 홍해삼, 전복, 소라 등 수산물 채취가 한창이다.통상의 해삼은 양식 혹은 해저의 유기물을 섭취하는 반면에 울릉도(독도)가 특산지인 자연산 홍해삼은 해조류를 주로 섭취하기에 붉은빛이 돌며 맛과 효능이 흑해삼 등에 비교해 월등히 뛰어나다.울릉도 어민들은 동해의 잦은 기상악화를 이기며 해적생물인 성게, 불가사리 구제작업, 해양쓰레기 회수, 수산종묘 방류 등으로 수산자원량 및 어장 관리에 힘쓰고 있다.울릉도 홍해삼은 단순한 홍해삼이 아닌 동해 끝 섬 울릉도(독도) 바다를 일구어 온 어민의 노고와 평생의 삶이 담겨 있는 자식 같은 존재이다.그러나 매년 봄 홍해삼 조업 철이 되면 외지에서 건너온 잠수기 어선의 마구잡이식 불법 조업으로 울릉도 어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현행 수산업법은 울릉도를 포함해 강원, 경북, 제주는 수심 15m보다 깊은 곳에 외지에서 건너온 근해 잠수기어업을 허가하고 있다.하지만, 잠수기어선들은 설령 선박은 15m에 있더라도 잠수부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호스의 길이는 150m 내외이므로 잠수부들은 수시로 15m를 드나들며 주민들이 애써 기른 자식 같은 홍해삼을 불법 채취하고 있으며 수중이기에 단속 또한 쉽지 않다.수산업법에 의한 수심 15m 규정이 마치 송곳처럼 해저지형을 가진 울릉도에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해안에서 수심 15m까지 거리는 울진 죽변의 경우 약 2km, 제주 서귀포는 약 2.5km에 이르지만, 울릉도 현포의 경우 불과 300m만 나가도 15m 수심이며 1km를 나가면 벌써 수심 100m에 이른다.서해안 군산은 무려 15~17km 나가야 수심 15m에 이른다. 수산업법 제정시 조금만 해저지형 특성을 살펴보았더라도 이런 현장 외면의 숫자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특한 해저지형을 가진 울릉도는 수심 규정을 15m에서 200~500m 범위로 변경해야 한다.울릉도 어민들은 울릉도 100여 년의 먹을거리를 지탱해왔던 오징어 어획량 급감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외지 잠수기 어선에 의한 피해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어촌의 희망 만들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어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건강한 마을어장 회복이 출발이다. 자식 같이 기른 홍해삼을 현실 외면한 수산업법에 따라 대부분 강탈당한다면 어느 어민이 어장을 가꾸고 관리하고 싶겠는가.누가 어촌에 살고 싶겠는가. 평생을 거친 바다를 안고 울릉도(독도) 해양영토를 관리해 온 주민들에게 뒤늦게라도 어촌의 희망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

2020-05-14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법

코로나19 ‘이후’는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정치와 경제에 대한 감각과 정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세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나는 한 마디로 말해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포스트콜로니얼’이란 ‘탈식민’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1945년 8·15 이후 겪어와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말을 회복해야 했고, 문화와 전통을 되살려내야 했고, 대일 청구권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어야 했고, 또 일제 말기 강제 동원 노역을 당한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의 대가를 받아내야 했다.코로나19는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변함없는 우열체계라는 모델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허상과 달리 낡았고 무기력했고 뒤져 있었다. 우리는 새롭고 민첩했고 앞서 나가고 있었다. BTS가, ‘기생충’이, 반도체가 앞서 가듯이 방역체계도, 의료보험도, 위기에 대처하는 시민의식도 우리가 ‘앞서’ 있었다.이런 때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를 향해 어떤 매서운 일갈을 하고 나왔다. 그는 말했다. 그 돈 다 어디 갔느냐고. 그리고 지난 30년 투쟁은 증오를 키우는 투쟁이었지 않느냐고. 연이어 구차한 변명들이 줄을 잇고 심지어는 자녀 유학 비용까지 들추자 하고 고발까지 서슴지 않는 사태가 이어진다.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나는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생각한다. 자신은 죄 지은 적 없다 발뺌으로 일관하는 범죄자를 향해 돈으로 죄값음을 하라는 방식이 이제까지 해법이었다면, 새로운 해법은 이런 것이다. 당신들의 범죄를 부인으로 일관하고 근본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좋다. 당신들은 영원히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범인들로 남으라. 우리의 딸들, 우리의 할머니들은 이제 당신들보다 나은 국가를,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이 보살피련다.‘정의기억연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백’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의 포스트콜로니얼을 내려놓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우리가 즉각 식민지의 기억을 끊어버려야 한다. 아베와 그의 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인들과 이 나라의 괴상한 동조자들을 저 어두운 과거 속에 묻고 역사의 새 장을 열어젖혀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5-14

반미와 미국유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오래전 6·25 남침을 ‘통일전쟁’이라 부르고 미국의 참전을 맹비난하며 반미 활동과 친북 활동을 하던 서울의 모 대학 교수가 있었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일인 시위를 하였고 보안법 철폐를 요구하기도 헀다. 사상의 자유가 전혀 없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보안법인데 이를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참으로 모순된 행동으로 생각되었다. 미국을 특히 격렬히 비판했다.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본인 자신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은 물론 두 아들을 모두 미국에 유학을 보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게 하였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최근 한 시민단체가 일제 동원 위안부를 위한 기부금 남용에 관하여 논란을 빚고 있는 사건이 있다. 그런데 해당 시민 단체 대표도 미국의 국내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사사건건 반미를 하였고, 남편은 조총련 관련 단체로부터 돈을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았던 인사이다. 그런데 그분도 딸은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국 대학의 음대에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반미를 부르짖는 분이 어떻게 유학비용을 마련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수 있는지 의아스럽지만 남편 국가 보상금으로 유학 비용을 대었다고만 하고 반미와 관련된 미국유학 동기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사실 북한유화정책을 추구하며 반일, 반미 정서가 강한 진보정당들의 지도자들도 그들 자신도 미국서 공부하고 자녀들도 미국 유학을 보내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유학을 보내는 건 글로벌 교육화 시대에 잘못된 것은 없다. 포스텍도 프랑스, 미국, 독일 학부 교환학생이 들어와 있는 것은 흔한 풍경이고 대학원에서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외국인 학생들이 유학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학부든 대학원이든 거의 10%가 넘어서는 학생들이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필자가 졸업한 일리노이 대학은 영어로 UIUC(U of Illinois at UC)라고 하는데 이를 U of India, U of China로 농담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 정도로 외국인 학생이 많고 이건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미국으로 유학보낸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좌파성향의 인사들은 반미, 반일을 부르짖으며 지속적으로 우방을 폄하하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낸다는 자기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등 교육을 외치는 전교조 교사들이 자녀들 미국 유학을 연구하다 미국 대학 전문가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미국과의 FTA 체결을 그토록 비판하던 그들이었다.물론 미국 유학을 보낸다고 하여 미국을 비판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미국을 비판하면서 막상 자식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을 이용하는, 그러한 자세는 극단적 자기중심적. 자기이익주의적 사고 방식일 뿐이다. 사회운동가들의 내로남불이 아닌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방식을 기대해 본다. 그러한 합리적 사고를 보여야 그들의 사회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5-14

스승과 제자

김병래시조시인인류도 원시시대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가족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학습해야 할 정보와 기술이 많고 다양해서 학교와 교사가 필요해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그만큼 폭증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외나 학원의 수업까지 필수가 될 정도로 태교에서부터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 이르는 입시를 위한 교육에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위한 공부를 또 해야 하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실태이다. 오로지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생존방식인 셈이다. 가장도 꽃다운 시절을 몽땅 그럴싸한 직장을 얻기 위해 바쳐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아닌가.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교육에 있다. 갓난아이를 늑대가 키워서 늑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늑대소년의 일화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온정이 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교사들의 교권이 훼손되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그 하나다. 교육이란 당시 사회에 적당한 구성원이 되도록 다듬고 가꾸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과실나무가 되게 하려면 물과 거름을 제때에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가지를 치고 적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 맘대로 가지 뻗고 열매 맺도록 놓아두어서 바람직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개성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질서와 규칙을 따르도록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고 교권이 존중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바람직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입시나 경쟁을 위주로 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에 불과하다.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자이고 학교는 단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교습소 역할을 할 뿐이라면 인격의 함양이라는 교육의 또 다른 부분은 실종이 되고 만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듯이 지식과 기술의 습득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성을 학습하는 일이다. 상당한 부와 권력과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은 뒷골목 잡배들 수준인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행세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세상도 아니다.교사들의 사고나 언행은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나 섣부른 이념에 경도되어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려는 교수와 교사들이 적지 않은 현실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 않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균형 잡힌 사고와 인격을 가진 스승이 없는, 올바른 교육이 부재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

2020-05-14

교육이 흔들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다시 어렵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이제는 나아지는가 했더니 한 달쯤 전으로 돌아간 모양이 돼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구분도 하기 전에 도로 터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내일 그 어떤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오늘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청년의 욕망이 이번엔 지나쳤다. 집단감염의 위험이 클럽 등 유흥업소에만 있을 것인지 보다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등교개학을 앞두고 있었던 학교들이 일정을 다시 연기했다. 친구들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학생들과 아이들 돌보기에 지쳐가던 부모들은 다시 한번 낙심하는 모습이다. 교육의 필요와 방역의 시급함이 부딛힌다. 개학 일정이 연기되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방역의 목표는 분명하다. 감염병 전파를 막아야 한다. 교육이 하고자 하는 바도 어렵지 않다. 어린 자녀들을 바르게 자라게 하는 일. 방역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면서 교육도 적절하게 일어나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차선이긴 해도 온라인교육을 선택했다. 대통령이 디지털세상에 펼쳐지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참관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그런지가 이제 몇 주나 됐다고 교육당국은 등교개학에 매달리는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새긴다면,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의 진정성과 사제관계의 신실함이 관건이 아닌가. 필자도 온라인 강의를 이어가면서 점차 새로운 전달방식에 익숙해 가고 있던 참이다. 이런 가운데 굳이 학교를 열어 감염의 가능성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정말로 있을까.학생과 부모의 안타까움은 해결해야 한다. 만나지 않고도 사회성의 발달에 지장이 없도록 온라인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교실수업의 내용을 온라인으로 옮겨놓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선생과 학생 간에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있어야 할 교감과 협력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부모들의 상황도 어렵다. 맞벌이 가정에는 더 심각하다. 직장의 배려와 소득수준 유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 겨우 맛보았나 싶은 온라인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거뒀을까. 만나지 않고 시행하던 교육은 만나야 하는 교육을 겨우 때웠다는 정도로 만족할 것인가.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된다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 바뀐 세상을 수용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살리는 철학을 세워야 한다.일주일이 문제인가. 백년을 바라보는 교육이어야 한다. 경제가 큰 문제겠지만, 교육도 작은 과제가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일이며 나라의 미래가 걸려있다. 코로나19의 상황에 하루하루 흔들리는 교육은 국민을 힘들게 한다. 긴 지평을 겨냥하는 교육이길 바란다. 많은 대학들이 전 학기 온라인교육을 선택한 모습도 참고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둘러보아야 한다. 특별히 어려울 때에는 특별히 분명한 소신이 필요하다. 행정적 조급함을 극복하고 교육의 큰 뜻을 살려야 한다. 감염병도 극복하고 경제도 살렸으며 교육에도 든든한 나라가 돼야 한다.

2020-05-13

그림자금융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 system)은 정부의 통제를 넘어 고위험 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얻는 유사 금융을 일컫는다.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많이 활용된다.그림자(shadow)라는 말은 그림자 금융이 금융의 본래 모습과 유사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은 말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투자은행·헤지펀드·구조화투자회사(SIV) 등의 금융기관과 머니마켓펀드(MMF), 환매조건부채권(RP), 신용파생상품,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금융상품,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헤지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그림자금융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중요한 자금 조달 역할을 수행해 은행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그러나 투명성이 낮아 손실의 정확한 파악이 어렵고 자금중개 경로가 복잡해 금융기관 간 위험이 상호 전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림자금융은 투기를 조장하고 자산 거품을 키우는 주범으로 꼽히는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시켰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를 기초로 한 신용파생상품이 대표적인 그림자 금융이다.한국도 그림자 금융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서 280조원 규모로 성장한 부동산 그림자금융을 자본시장 위험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동산 국내 자본시장의 부동산 그림자금융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281조2천억원으로, 2017년 말(230조6천억원)과 비교해 21.9%나 증가했다.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어야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13

가정의 달, 오월

윤영대수필가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고 예수가 부활한 성령의 달이라 해도 코로나에 묶여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다. 시인 엘리엇은 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봄비에 깨어난 뿌리의 힘으로 라일락 꽃향기 퍼드러진 앞뜰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는데….나뭇잎은 어린아이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하늘은 가끔 빗줄기를 뿌려 대지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산강변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초하의 들머리에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라는 입하가 있고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소만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5월에는 윤4월도 덤으로 끼어 있어 결실을 응원하는 태양도 천천히 하늘을 돈다.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을 일대로 다시금 코로나19 확산세가 퍼지는 상황을 묵인할 수는 없지만 계절의 여왕이 화려한 옷자락을 펼치며 우리 국민의 침착하고 현명한 방역 태도에 함빡 미소를 보내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욱 촘촘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서로를 돌보며, 나들이에 나서더라도 긴장의 끈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숫자 5는 다섯, 발음으로는 ‘닫고 서다’ 즉 밝은 세상으로 솟아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오월에는 우리들 마음에도 밝고 아름다운 날들을 가꾸어야 하리라.시골집 작은 텃밭에 상추씨도 뿌리고 고추 모종도 심으니 손바닥 만한 채소밭에도 생기가 돈다. 마을 뒷산 기슭의 하얀 아카시아꽃이 꿀벌을 모으고 하얀 꽃들이 쌀밥을 닮았다는 이팝나무 가로수는 5월에 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하얀 수국, 하얀 찔레꽃, 흰 장미…. 온통 하얀 꽃 잔치다. 지난달 알싸한 향기에 한 소쿠리 따서 삶아 먹었던 가죽나무 순과 엄나무 순도 벌써 새로운 가지를 하늘로 뻗어가고 있다.오월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도 있다. 모두가 감사와 사랑의 의미를 담아 선물을 주고받고 봉사와 기부라는 마음의 가치를 더 높이고 싶은 날들이다.어린이날에는 아직도 학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손을 잡고 푸르른 들과 산으로 또 강과 바닷가로 나들이하며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길러 줬을 테다. 점점 핵가족화되는 사회현상에서 옛과 같은 부모님들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니 어버이날이나마 소담스러운 선물 마련하여 찾아뵙고 가족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40여 년을 교직에 몸을 담고 보니 스승의 날에 대한 감회가 깊다. 학생들은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음료수랑 작은 선물도 책상 위에 놓고 갔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라는 희한한 말 속에 선생님에게는 꽃 한 송이도 드리지 않는다는 서글픈 현실에 교사는 오월이면 우울해지고 교단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제간의 사랑은 부모 사랑만큼이나 소중하다. 참된 가르침과 배움이 진정 사랑인 것이다.성년의 날은 셋째 주 월요일. 만 19세가 됨을 축하하며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해주고 그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날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남자에게는 갓을 씌워주고 여자들에게는 비녀를 꽂아주는 관례와 계례 등의 성인식을 치루었지만 요즘은 몇몇 곳에서만 한다니 되돌아볼 일이다.21일 부부의 날은 화목한 가정을 위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둘(2)이 합쳐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어쨌든 사회의 출발은 가정이니 이혼율이 증가하는 요즘 새로운 사회가정교육이 필요하리라 본다.또 있다. 입양의 날, 11일이다. 한 가정이 한 명의 아동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정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나라’를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고도 미혼모를 보는 사회의 인식 탓인지 해외입양 세계 4위- ‘아동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인권후진국 오명을 빨리 벗어야겠다는 것이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또 다른 바람이기도 하다.감사의 달 오월에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잊고 있었던 지인들에게도 보내고 싶다.

2020-05-13

첫맛

바닷가를 지나다 트럭 행상을 만났습니다. 한 차 그득 쌓아놓고 파는 것도 놀라운데, 그 내용물이 한라봉이라는 데서 더욱 놀랍니다. 감귤이 흔해진 지는 오래지만 업그레이드 된 파생 종류마저 흔하디흔한 세상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한 컷 담겠다는 양해를 구하며 신기해하자, 사장님 왈, 제주 농장과 직거래하기 때문에 신선한 상태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나요.제가 귤을 처음 본 것은 1974년 겨울 무렵이었어요. 삼촌이 귀향길에 사온 것이지요. 깡촌 아이였던 제게 귤이란 어린이 잡지책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과일이었지요. 주황빛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내자 촘촘하게 박힌 과육이 보이고, 그것을 가르면 초승달 모양의 여러 조각이 되는 거예요. 모양부터 이국적이라 경이로웠지요. 조심스레 한 조각 베어 물면 입안으로 퍼지는 달콤함도 잠시, 목구멍을 적시는 새콤함에 온몸이 저릿해졌습니다.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지요. 귤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제게 그건 어디까지나 귤이 흔해지고 난 뒤의 일입니다. 바나나 같은 건 구경도 못할 시절에 귤은 그 첫맛만으로 어린 입맛을 사로잡았더랬지요.귤의 첫맛이 입맛의 로망을 실현시킨 보편적인 예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거예요. 기대한 맛을 충족시킨 추억이 아련함에서 그친다면 실망한 맛을 남긴 추억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틈날 때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봅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지난날에 기대는 몇몇 작품은 제가 지나온 시절들과 아주 닮아 있어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다가 곧장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파인애플 첫맛에 관한 시퀀스 덕분이지 뭡니까.가족 온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5학년 타에코는 보기에도 요상한 파인애플을 보고 졸라서 사게 됩니다. 하지만 식구들은 먹는 방법을 모릅니다. 다음날 큰언니가 배워온 방법대로 엄마는 중간을 잘라 박힌 심을 발라냅니다. 피자조각 같은 노란 파인애플 속살이 드러나고, 할머니를 비롯한 모인 식구들 눈동자가 일제히 파인애플 위에 동그랗게 꽂힙니다. 찰나의 긴장된 침묵이 끝나고 식구들은 저마다 한 조각씩 베어 뭅니다. 천상의 맛을 기대했건만, 그날 파인애플 맛의 진실은 썰어놓은 무맛만도 못합니다. 먹기를 포기한 채, 애써 외면하는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타에코는 꾸역꾸역 파인애플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역시 과일의 왕은 바나나야, 이런 혼잣말을 내뱉어보지만 위로가 될 리 없습니다. 어린 타에코와 제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때까지도 저는 바나나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김살로메소설가비슷한 기억 하나를 소환하지요. 도회로 이사 온 후, 입주 과외를 하던 오빠가 첫 월급을 타서 과일을 사온 적이 있어요. 백화점에서 파는 과일 바구니 속, 구색 맞춰 담기는 것 중 하나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이름도 속도 모르는 과일이었어요. 거친 박처럼 생긴 그것을, 타에코네가 그랬듯이 우리 식구들 역시 먹는 법을 알 리 없었지요. 일차로 엄마가 과도로 자르기를 시도했습니다. 칼끝이 끄떡도 하지 않았지요. 첫 귤을 먹던 그때가 떠올라 저는 자꾸만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어요. 생채기로 얼룩진 채 끄떡도 않던 그 요물은 오빠가 식칼을 들고 힘자랑을 한 뒤에야 실체를 드러냈어요. 어슷하게 잘린 과일 머리 사이로 오줌 줄기 같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식구들 눈빛은 적잖이 당황하고, 새콤달콤한 과육을 기대했던 저는 실망감에 주저앉고 맙니다. 무맛보다 못한 음료 한 잔, 그게 그날 얻은 수확의 전부였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것이 야자열매인 코코넛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확실히 첫맛은 환희에 찬 ‘새콤달콤’보다는 실망으로 소침해진 ‘텁텁밍밍함’이어야 해요. 달콤한 첫맛은 너무 당연한 기억이라 우리의 정서에서 소환될 기회가 후자보다는 못해요. 마치 귤 맛에 익숙해진 제가 더 이상 그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요. 기대했던 첫맛에 아려본 적 있을수록 삶의 소환장에 기록될 확률이 높아요. 때 이른 계절의 파인애플 맛을 만나거나 전혀 엉뚱한 코코넛 내용물의 실체를 알아챌 때, 우리 삶은 풍성해지고 공감 지수가 높아지니까요. 예견된 미감이나 충족된 호기심보다 실패한 환희나 실망했던 기대감이 더 나은 재산이 되는 셈이지요. 기상천외의 짠함으로 버무린 웃거나 울게 하는 온당한 좌절, 누가 뭐래도 그건 그 자체로 진실 된 에피소드가 되는 거예요. 아주 오래된 그 첫맛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누군가를 독려하고 진작시키는 힘이 되니까요. 과일에서 사랑까지, 첫맛이라면 다소 텁텁하거나 호되어도 나쁘지 않아요. 적당히 무너져줘도 괜찮은 거예요.각설하고, 그대들의 첫맛은 안녕하신지요?

2020-05-13

코로나 왕따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학생 중에 학교에서 코로나로 확진되면 어떻게 해? 그러면 그 학생은 왕따가 되잖아. 그 학생 잘못이 아니잖아. 그 학생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겠어? 그 학생 어떻게 해?”교육부에서 발표한 등교 개학 뉴스를 보고 아직 교문에 발도 못 들인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보인 첫 반응이다.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순간도 입에서 놓지 않는 아이이다.그런데 반응이 바뀌었다. 아침을 먹다 말고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아이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어떻게든 얼버무려 보려 했지만, 아이의 기다림은 단호했다.“온라인 수업에 늦겠습니다. 빨리 드시고 접속하시죠.”“아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그 학생은 어떻게 하냐니까?”아이의 눈은 간절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아이의 걱정을 덜어 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답이든 해야 할 것 같아 필자의 바람을 이야기했다.“맞아. 그건 그 학생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필자의 말에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는 잘 몰라!”아이는 표정으로 필자가 틀렸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온라인 수업 출석 체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냥 두었다. 아이의 말대로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교육부에서는 등교 개학 후 일어날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학교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까지 실시했다. 물론 꼭 필요한 훈련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감염병 발생에 따른 대응만 나와 있지 발생 후 최초 확진 학생 보호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발병에서 알 수 있듯 지금 일어나는 코로나19 발병 양상은 이전과는 다르다. 무증상자와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확진자가 많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 발병 전까지 한동안 국내 확진자 수는 0이었다. 그래서 방역 체계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축배는 거기까지였다. 역시 바이러스는 예측할 수 없었다.그래서 걱정이다. 많은 학교의 1학기 중간고사 실시 시기가 6월 셋째 주 정도이다. 그 기간에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시험 강행 아니면 연기! 어떤 선택이든 확진 학생은 전교생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될까!다음은 지난주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한 대통령 관련 뉴스에 나온 내용이다. “걱정이 아주 크실 것 같아 점검차 학교를 방문하게 됐다. 와서 보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대통령께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등교 개학 이후 학생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해당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가지지 않도록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라고 청와대 대변인은 말했지만, 과연 학교 현장에는 그 준비가 되어 있을까? 분명한 것은 교육 당국의 매뉴얼에는 ‘코로나 왕따’ 예방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2020-05-13

5·18 광주항쟁 40주년에 부쳐

김규종 경북대 교수해마다 5월이면 조기(弔旗)를 내걸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 동안 조기를 걸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에는 4월에도 조기를 내다 걸었다. 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파견 나가는 바람에, 올해는 코로나19로 정신 놓는 바람에 4월의 조기게양은 무산됐다. 하지만 5월 광주를 어찌 잊을쏜가?! 더욱이 올해는 광주항쟁 40주년 아닌가!작년 5월 17일 저녁에 광주 국립묘지를 찾았다. 25년 만에 찾은 망월동 묘역은 예전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학회에 갔다가 후배들과 함께 김남주 시인 묘지 앞에서 묵념한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으나, 장소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전남대 철학과 김양현 교수께 문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5·18 항쟁으로 산화하신 분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잠들어있는 김남주. 나는 그이가 없는 광주와 5월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그날 밤 광주의 옛 도청과 금남로를 떠돌면서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전남대로 파견 나온 이유는 5.18 광주항쟁 때문이었다.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40년 세월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까닭이다.부산 출신 대학원 선배는 1983년 매운 겨울, 광주와 남도를 떠돌다가 귀환했더랬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으면서도 광주를 찾아갔던 그의 심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를 읽으면서 시대의 비극과 부조리를 깨달아갔던 시절. 60년대 김수영, 70년대 김지하, 80년대 김남주로 이어지는 시대의 저항자들로 희미하게나마 빛났던 시간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 아니라, 3김 시인’이었다. 망월동의 시인은 예전처럼 말이 없었다. 5월 3일 전남대 인문대 1호관에서 있은 ‘김남주 기념홀’ 개관식에서 환하게 웃기만 하고 침묵했던 것처럼.1980년 5월 광주에서 40년 세월이 흘렀다. 내 머리에도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기나긴 세월에 우리는 87항쟁과 직선제 쟁취, 1998년 평화적 정권교체, 2017-18년 촛불항쟁과 탄핵을 넘어서 3050클럽 가입까지 수많은 성취를 해왔다.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를 모욕하는 극우주의자들의 망동을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발포 책임자는 반성하는 기미조차 없다.진정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은 발포 책임자와 그 후예가 광주항쟁에서 산화해간 영령들과 유가족에게 석고대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40년 세월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능욕한 극우주의자들을 정당하고 엄중하게 징벌해야 한다. 광주와 광주항쟁의 역사를 더럽히도록 더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어린것들과 그들이 마주할 미래와 미래기획을 위해서도 광주와 광주항쟁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잘못된 과거와 작별하려면 대낮처럼 깨어있는 정신으로 과거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마 같은 살인자들과 그 후예가 다시는 설레발 치지 못하도록 역사의 관에 ‘탕탕’ 소리 나게 대못을 두들겨 박아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처절한 기억과 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환기에서 비로소 출발한다. 광주항쟁 40주년의 교훈이다.

2020-05-13

광역의회 의장단 선거, 구태의연 털어내야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총선이 끝나고 지역 정가는 광역·기초의회 의장단 선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반기 의장단 구성은 철저히 선수에 따른 투표가 주류를 이룬 것과 달리 후반기 의회 의장단 선거는 거의 인기투표에 가깝다.전반기 의회기간 동료 의원들과 얼마만큼 소통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가져왔느냐가 당선의 관건이 되는 분위기를 보여왔다. 이로 인해 그동안 세간에 거론되는 인사보다는 의외의 인물이 종종 의장을 맡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은 등록 후보자가 없이 실시되는‘교황 선출식 투표’에 그 원인이 있다. 교황 선출 방식은 교황이 선종하거나 사임 후 15∼20일 이내에 전세계 추기경들이 참석하는 비밀투표인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해야 선출되는 방법으로 예상됐던 인물보다는 깜짝 교황이 선출되기도 했다.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러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세간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추기경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분들이다. 이런 방식은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출권자를 추기경들로 제한하는 선언을 했던 1059년에 시작됐으니 역사도 꽤나 깊다.경기도의 한 기초의회 등 일부는 이런 교황선출식 의장단 선거를 후보출마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방법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물론 이 선거방식으로 인해 과거 쇼핑백 등 갖가지 잡음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구태의연한 행실은 통하지 않는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역시 교황 선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광역의회 의장이라는 막중한 지위를 두고 광역의원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욕심을 내볼만하지만 집행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의욕이 앞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어느 정도 선수를 갖추고 동료 의원들과의 친밀도, 집행부 견제력 등이 당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불문가지다.대구시의회는 전반기 선거 당시의 후반기 약속 여부와 선수파괴 등이 이슈가 되고 경북도의회는 이른바 일부 인사의 자질 문제가 대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광역의회에 의장단에 포함될 인사에 대한 하마평에 이어 일부 인사들은 벌써 물밑 작업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과거처럼 상대방을 음해하는 비방과 소문, 카더라식 인신공격은 여전하고 마타도어식 소문까지 등장하고 있어 우려스럽다.이중에는 음주나 폭력 전과 등의 사실에 근거한 내용도 나오면서 일부 인사의 불가론까지 제기되며 본격적인 의장단 선출 시점에는 이전투구식으로 흐를 가능성마저 보인다. 이렇게 되면 소속된 당의 개입 빌미를 제공하고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돼 결국 당에서 지목한 인사를 선출하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사례를 종종 봐왔다. 이는 당장 당 소속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행보로는 비칠지 모르지만 의원들의 뜻과 정반대되는 상황으로 흐를 수 있고 의원들간 선거 앙금으로 남는 등 불신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이런 점을 한꺼번에 털어내 의장단 선거로 진행되길 기대하는 것은 기우일까.

2020-05-12

여름 마스크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생활이 일상화된 지 꽤 되면서 마스크에도 패션이 등장했다. 중국과 홍콩 등지에서는 이미 마스크 패션쇼가 열렸고 국내서도 착용감과 색깔 등이 뛰어난 마스크를 찾는 수요가 차츰 늘고 있다고 한다.아직 마스크 패션이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마스크 착용이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 속에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마스크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특히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마스크 착용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자 통풍력이 좋은 여름용 마스크의 등장도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전문가들은 마스크 착용이 체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마스크가 열 반사를 방해하고 입김에 의해 열기가 유지되면서 체온이 올라간다고 호소한다.등교를 앞둔 학부모 사이에서는 자녀들이 더위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깥활동을 할까 봐 걱정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어쨌거나 여름철에 마스크를 쓰는 일은 애물단지와 같은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착용하자니 더위로 진땀을 흘려야 할 판이다.그렇지만 마스크 사용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스크 착용을 주장한 한국과 대만, 중국에 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미국과 유럽에서 더 많은 감염병이 유행을 했다. 처음에는 마스크 사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미국도 이젠 마스크 사용의 효과를 인정하는 분위기다.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마스크 쓰기가 또 한차례 논란을 일으킬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 개발이 없는 한 이 논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