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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충, 목례, 사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붉은 색 ‘상(賞)’자가 찍힌 띠종이를 두른 국어사전과 꽃묶음을 가슴에 안고 사진 찍던 모습은 197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사전을 졸업선물이나 상품으로 주는 경우를 요즘도 드물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어사전 선물은 ‘라떼는 말이야’의 이야깃거리이다.사전은 지식과 상식의 총합체이자 축약체이다. 백과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낱말 뜻을 풀이해놓은 국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웬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비상식적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4월 연구실 이사를 하면서 천여 권의 책을 버릴 때, 각종 사전은 한 권도 버리지 못했다. 한 때는 베개보다 두껍고 웬만한 보도블록보다 크고 무겁고 딱딱한 사전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연구를 하고 강의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굳이 책장에서 힘들여 사전을 꺼내고 펼쳐서 단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단어 뜻이 주르르 펼쳐진다. 아니, 컴퓨터 앞에 앉는 수고조차 귀찮다면 있는 자리에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된다. 그런 데도 우리들은 잘 모르는 말이 있어도 대충 넘어간다. 듣고 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말하고 쓰는 경우에도 대충대충이다. 말하고 쓰는 전문가인 기자들까지 그렇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공식석상에서의 인사를 대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ㅎ일보 2020년 2월 4일자), “현충탑 앞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할 때…. 황 대표가 손을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것이다. 황 대표는 자신의 왼편에서 참배를 진행하던 양섭 국립서울현충원장이 묵념하듯 목례를 하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으로 향하던 중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있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사진 설명)‘목례’(目禮)와 ‘목인사’는 다르다. 목례는 눈으로 하는 인사이고 목인사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하는 인사이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다시 시선을 교환하는 눈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목례가 고개를 숙이는 인사는 아니다. 위의 기사에서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묵념하듯 목례를’,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쓴 것을 볼 때 목례를 목인사로 혼동한 것이 분명하다. 대충 아는 대로 대충 인식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목례와 목인사를 혼동하고 쓴 글들은 널려 있다. ‘뇌졸증, 산수갑산, 아둥바둥, 양수겹장, 풍지박살’ 등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은 우리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지.대충 알고 대충 말하고 대충 기사 쓰지 말고, 바로 알고 바로 말하고 바로 쓰며 살자. ‘대충언론인’과 ‘대충선생님’이 ‘대충국민’을 만든다. ‘대충국민’이 대충 물건을 만들고 대충 건물을 지으니, 사고는 필연적이다.사전 좀 보며 살자. 몇 초만 시간 내면 ‘대충’이 ‘정확’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2020-05-12

감속 운행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19가 다소 소강상태였는데 갑작스런 유흥업소 전염이 다시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장기간 움츠린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말 근교 나들이 차량들이 도로에 점점 늘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점엔 상습 정체지역이 오히려 차량 속도가 빨라지는 듯했다. 모임 연기 같은 사회적 속도가 느려지니 이동 흐름은 빨라지는 기현상이다. 그 기간 차량속도 변화에 대한 측정 자료가 있으면 코로나 전후 사회적 변화 현상을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경찰이 최고 시속 100㎞의 고속도로 주행속도를 시속 110㎞로 상향조정한 적이 있다. 100㎞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민심을 반영해야 했다. 나날이 성능이 좋아지는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로 달리더라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단속카메라를 벗어나면 울분을 발산이라도 하려는듯 총알처럼 날아간다.그런 광기를 달래기 위해 ‘구간단속’이라는 날렵한 방패를 세웠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규정 속도로 주행 중인 내 차량 앞을 추월하여 쌩 내달리는 차를 본다. ‘×친 놈’이라는 상스런 말이 부지불식간에 툭 튀어나온다. 조금 느리게 가는 차가 내 차 앞을 주행하는 것에는 심한 더딤을 느낀다. ‘남녀가 노닥거리며 가는 것 같다’라는 근거 없는 빈축의 중얼거림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속도 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모든 운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주행속도는 없는 것 같다. 주행속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문제다. 준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이 워낙 빨리 내달리니 뒤처질세라 너도 나도 내달리는 속도전이 가속화돼 왔다. 외국인들이 ‘빨리빨리’라는 말을 한국인의 속성을 대변하는 말로 여길 정도니 우리는 속도전에 강한 민족임은 맞다. 신속성의 무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일 수도 있다. 퀵서비스와 ‘배달의 민족’ 시스템이 신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은 것도 한국인의 신속성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좀 더 빨리’는 모든 경제활동의 구동력이 된 지 오래다. 신속성은 정확성과 충돌하게 된다. 건물붕괴, 다리붕괴, 지하철화재, 세월호사건과 같은 것도 신속성이 정확성을 짓누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도로의 주행속도를 늦추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 앞, 노인보호구역 등 속도가 안전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느림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된다. 바쁜 일상을 당연히 여기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퇴임 후의 일상이 다소 느려진 듯하다. 시속100㎞ 이상으로 내달리던 삶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시속 50㎞ 생활이 되었다. 이렇게 느리게 달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 삶의 속도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닌 것 같다.코로나19로 세상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빨리 회의하고, 빨리 물건 만들고, 빨리 돈 벌고 등등. 모든 일들이 뒤로 미뤄지거나 취소된다. 지구촌이 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느려지면 느려진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벌어지는 탈(脫)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감속운행도 좋은 묘수다. 뒤처진 자에게 희망을 주는 찬스가 될 수 있다. ‘천천히’를 약속하고도 다른 사람이 쌩하고 추월하면 어쩌지?

2020-05-12

살아있는 장례식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정말 화사한 5월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에도 여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떠나는 분들, 남은 가족들 모두 이별의 슬픔과 아쉬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가 지나고 나면 장례식이라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이제 나도 부모님들의 부고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을까?삶과 이별하는 책 중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1998년 번역된 후 2017년 출간 20주년 기념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스포츠 기자였던 미치 앨봄은 우연히 대학 시절 은사였던 모리 교수를 티비에서 보게 된다. 모리 교수는 루 게릭병에 걸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미치와 모리 교수는 다시 만나 매주 화요일 인생의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미치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긴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녹음했다. 미치는 이것을 계기로 성공을 향해 달리던 자신의 삶에 큰 변화를 갖게 된다.20여 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러 대목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모리 교수가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주도한 대목이다. 모리 교수는 죽은 후에 문상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가족들을 불러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있는 장례식’이라고 이름 붙인다.이 책을 읽은 지 15년이 지난 5년 전, 아버지의 살아있는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그때 13년간 투병하시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93세 고령으로 오랜 간병에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실감에 매일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때마침 자치구에서 자서전 쓰기 지원 사업이 있어 자서전 쓰기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부끄럽기만 한 삶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고 망설였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집필을 결정하셨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방문해주는 담당자와 지난날을 회고하는 시간 자체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그러나 그마저도 탈고하시고 나자 삶의 무의미감이 밀려오셨는지 더 쇠약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시는 것이 역력했다. 위태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돌아가신 후 아무리 좋은 말로 애도한들 고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모리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오랜 칩거 생활로 못 만났던 분들을 모실 핑계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점심을 대접했다. 오신 분들도 정말 반가워하시고 아버지도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93세 고령에 거동도 불편하셔서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었으니 그냥 돌아가셨다면 그 한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아버지는 출판기념회 후 바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출판기념회는 ‘살아있는 장례식’이 된 셈이다.우리의 보통 정서로는 장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을 붙이든 ‘살아있는 이별’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이 어렵다면, 언젠가 죽음이 다가올 때 나 자신이라도.

2020-05-11

코로나19와 얀테의 법칙

코로나19가 진정되는가 싶은 순간 이태원클럽 집단감염사태가 터져 방역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31번 확진자가 벌인 집단감염사태의 재연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자기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이들이 문제다. 이와 반대되는 사회적규범이 바로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다. 이 법칙은 노르딕(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다섯나라) 국가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행동 지침으로, 평범함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이 용어는 덴마크계 노르웨이인 작가 악셀 산데모세가 풍자소설 ‘도망자’(1933)에서 가상의 마을 얀테에서 통용되는 사회규범으로 처음 썼다. 산데모세는 10가지 규칙을 언급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당신을 걱정할거라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 이 불문율을 깨려는 자는 마을 공동체의 조화를 깨는 적으로 간주된다.규칙은 산데모세의 창작이 아니며, 덴마크나 노르웨이인들의 정신세계에 수세기동안 박혀있는 것들을 명시한 것이다. 그들은 비슷하게 입고, 비슷하게 생긴 차를 타며, 집집마다 비슷한 물건들을 놓고 산다. 타인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에 ‘얀테의 법칙’은 평등과 겸손, 절제의 미덕에 대한 답을 가르쳐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11

오래된 것들은 기도가 되어… 대구 북지장사(北地藏寺)

그는 백중날 태어난 크리스천이다. 산사기행을 떠나는 나에게 자기 몫의 기도를 부탁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나는 흘려들었다. 서둘러 떠날 걸 예감조차 못했을 그가 부처님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하고 싶었을까.농담처럼 주고받던 말들이 가끔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북지장사 가는 소나무숲길에 들어서며 그가 무심코 흘린 말들을 나는 또 낚고 있다.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했던 그는 가끔씩 휘파람새가 되어 나타나거나 꿈결에 스쳐가듯 다녀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럴 때마다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레테의 강을 건너는 자는 모든 것을 망각할 텐데, 그와 관련된 것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도. 떠난 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바람결에 떠도는 독백 같은 언어가 되어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다. 북지장사 오르는 소나무숲은 변함없이 평화로운데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북지장사는 동화사보다 8년 먼저인 신라 소지왕 7년(485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 한 때는 절의 밭이 200결이나 되었으며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매우 큰 절이었다. 19세기 초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편입될 만큼 사세가 기울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중창불사와 함께 삼국유사에 기록됐던 ‘공산 지장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이태 전, 그가 희망의 끈을 놓고 이별의 강가에 바투 앉아 있을 때 나는 이곳을 찾아왔다. 나의 작은 기도가 새롭고 청정한 생명의 다리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 대웅전에서 백팔 배를 하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내려오던 그날, 나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 파는 할머니와 잡담을 나누며 웃다가 내려왔다. 삶은 공허하고 부조리한 것이다.계단 위 낡고 소박한 용호문이 흙벽을 지탱하며 서 있다. 변함이 없다. 오래된 시골집 대문간처럼 보이지만 세속을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첫발을 대딛는 천왕문 겸 불이문인 셈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보물 제 805호 지장전은 별천지처럼 찬란하다. 꽃잔디가 숨넘어갈 듯 절정을 토해내고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불자들을 맞는다.관세음보살과 삼보에 귀의하고, 악업을 금하며 탐, 진, 치 삼독을 멸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기원한다는 주문이 오늘도 그날처럼 가슴을 헤젓는다. 익숙하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을 뜻한다. 오래 알아온 사이일수록 자연스레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대웅전에 이어 또 다른 당우가 새롭게 완공되어 규모가 커져 있지만 북지장사는 여전히 편안하다.가까이 있는 지장전보다 대웅전 앞 배롱나무가 나목인 채로 붉은 연등을 달고 먼저 달려 나와 반긴다. 갑자기 내 안에 연등 하나 켜진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에서 삼배의 예를 갖춘다. 백팔 배로 친구의 완쾌를 빌었던 그 작은 법당에는 오월이 길을 잃지도 않고 찾아와 침묵을 다스리고 있다.눈부시도록 화사한 이 봄날, 무언가 허전하다. 두 개의 대웅전 현판을 향한 석탑의 눈빛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한 때의 영화를 떠올리며 감자꽃 같은 눈물을 그렁거리는 석탑 위에는 송홧가루만 날린다.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석가탄신일 행사조차 윤사월로 미뤄진 탓일까. 술렁거릴 거라 여겼던 절간의 풍경은 뜻밖에 차분하다.근처에서 환담을 나누던 젊은 스님이 방으로 들어가신다. 편리함과 바꾼 스님의 정신세계만큼이나 오래된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물결치듯 기울어진 지붕, 마루도 없는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철 지난 털신 한 켤레에 마음이 젖는다. 남루해 보일만큼 낡은 건물은 너와집을 연상시킨다. 운치 있게 기왓장을 올려놓은 키 낮은 지붕 아래 작은 종무소도 있다.아직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따스한 풍경들,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한 처마 낮은 집, 저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탐욕에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허기지듯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느라 늘 지쳐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기도가 되어 발길을 붙드는 곳, 그것이 북지장사가 지닌 매력이다.조낭희 수필가한 차례 마음을 정화시키고 지장전으로 들어선다.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한 지장전의 출입문은 특이하게도 측면의 뒤쪽 편에 붙어 있다. 텅 빈 법당을 석조지장보살좌상이 홀로 지키고 있다. 민머리에 늘어진 두 귀, 왼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계신 부처님은 지장전 뒤뜰 땅 속에 묻혔다가 발견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이다.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준다는 지장보살을 향하여 백팔 배를 시작한다. 그리움만 남기고 서둘러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들, 몇 번의 봄을 보내고 나면 내 늑골에 살점처럼 돋아날, 애잔한 것들이 있어 우리는 겸허함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마음이 가볍다. 지장전을 나오는데 새 한 마리 지붕에 앉았다 날아간다. 잠시 천수경이 출렁, 다시 송홧가루 날린다.

2020-05-11

서양의 화가들이 성서나 신화를 많이 그린 이유?

그림은 그려진 주제에 따라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나눠진다. 이러한 분류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1648년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명에 따라 왕립미술원이 설립됐다. 미술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관(官)이 주도해 체계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왕립미술원은 교육기관의 역할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 예술정책에도 깊이 관여를 했다. 그렇다면 루이 14세는 왜 왕립미술원을 설립했을까?절대왕정의 루이 14세는 국가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했다. 모든 권력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학문과 문화, 심지어 예술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한마디로 루이 14세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고자’했던 인물이며, 정치적 목적과 함께 그의 욕망이 응축된 곳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를 장식하는 화려한 미술작품들은 오직 한 사람,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수단이었다.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하며 태양의 신 아폴론을 자기와 동일시했고, 미술가들은 왕의 욕망을 신화 속 인물에 투영한 그림으로 웅장한 궁전을 장식했다. 루이 14세가 지향했던 미술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이다. 왕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인 내용을 웅장하고 명료하게 그리는 것이 미술가들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왕립미술원의 교수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미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교과과정을 개발했다.몇몇 거장들의 화풍을 모범 답안으로 정해두고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석고상을 기계적으로 모사하는 데생도 왕립미술원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왕립미술원 교수들은 회화작품을 주제에 따라 나누고, 이들 간의 위계질서를 정하게 된다. 학생들이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배우고 따라야할 그림과 그렇지 못한 저급한 수준의 그림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위치한 그림은 역사화이다. 역사화는 신화나 성서 혹은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 웅장하고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두 번째 등급의 그림은 인물화이다. 인물화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 그림에 담겨진다는 것은 이미 높은 사회적 신분과 부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의 그림은 풍경화이다. 화가의 시선이 닿은 자연의 한 단면을 그린 것이 풍경화이다. 가장 낮은 등급으로 여겨졌던 그림은 정물화이다. 꽃이나 과일 등 곧 시들어 버리거나 섞어 버릴 일시적인 대상들을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삶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밖에 등급에 들지 조차 못할 정도로 저급한 그림으로 여겨진 것이 있는데 바로 풍속화이다. 역사화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면, 풍속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다. 시장의 약장수가 등장하고, 젊은 여인에게 연애를 걸거나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 술 마시며 떠들어 대는 게으른 주정뱅이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프랑스 왕립미술원을 모방해 1744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는 마드리드에 왕립미술원을 설립했고, 1768년 조지 3세에 의해 영국의 왕립미술원이 문을 열었다. 왕립미술원의 설립은 미술교육의 경직된 제도화를 가속시켰고, 그 가운데 미술권력이 탄생했으며, 미술을 제도권 그리고 비제도권으로 양분화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이 19세기 중반 파리를 중심으로 극심한 충돌을 일으켰고, 보수적인 미술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진취적인 미술가들에 의해 현대미술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폐쇄성에 대항했던 현대미술 선구자들 대부분이 역사적인 장면 보다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05-11

하늘이 주는 것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는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천수(天壽)다. 천수는 하늘이 정해준 수명, 곧 천명(天命)이다. 천수를 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어 온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였다. 동양의 도교에서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하고자 불로초, 선약 등을 찾아 헤맸고, 서양에서도 17세기 독일 의학자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가 젊은이의 동맥을 늙은이에게 연결해 회춘하려는 실험을 행한 바 있다. 비록 혈액 관계에 대한 무지로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모두 천수를 누리고픈 인간 욕망의 한 단면들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하나는 천운(天運)이다. 천운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이것은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니 바꿀 수 없는 ‘팔자’다. 내가 여자 혹은 남자로 태어난 것, 내 부모, 내 형제, 자매 등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다 하늘에서 이미 결정된 일들인 까닭에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누군가 큰 일을 해내거나 하면 ‘천운을 타고났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하늘이 준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천운을 타고나는 것 또한 인간이 꿈꾸고 바라는 것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것으로는 천복(天福)이 있다. 명심보감 ‘계선편’에는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준다’는 공자의 명언이 등장한다. 이미 고칠 수 없는 타고난 팔자이니 인간사 어쩔 수 없다 한다면 얼마나 한평생이 암울할까. 이런 한탄으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극복하면 하늘은 그러한 사람에게 합당한 복을 주니 좌절하지 말라는 기막힌 의미가 바로 ‘천복’에 담겨 있다. 즉,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선량한 이들에게 언젠가 하늘이 주는 복, 그렇기에 이 또한 누구나 희구하는 욕망 중 하나이다. 하늘이 주는 마지막 하나는 바로 천벌(天罰)이다. 천벌은 누구나 받기를 꺼려 하는 것이고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옛날 사냥꾼들은 잠자는 짐승을 죽이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급해도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뒤에서 공격하고 칼을 꽂는 비열한 짓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 까닭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어진 마음을 저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잃게 되면 하늘로부터 내리는 천벌을 막을 길이 없다. 똑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괜히 질투하고 미워하여 이유 없이 깔아뭉개면 그 화살은 언젠간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남의 등에 칼 꽂으려다 자기 등에 ‘하늘의 칼’이 꽂히는 것을 모르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바야흐로 5월이다. 총선도 끝나고 다들 ‘민심’이 천심이라며 겉으로는 목청 높여 떠들면서 실상은 그들의 ‘진심’을 헤아리는 대신 이미지 관리, ‘표심’ 잡기 등에만 여념 없던 정치인들. 천수, 천운, 천복을 바라며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아는지 모르겠다. 경제가 파탄 나고 분노한 민심이 하늘에 닿아 ‘천벌’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쪼록 누가 권력을 잡든, 다들 천벌 받기 전에 부디 민심을 잘 헤아리는 현명한 정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5-11

위정자의 입

강희룡 서예가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 이 글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의 눌헌명(訥軒銘)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우왕 1년(1375) 간관이었던 이첨은 당시 권신이었던 이인임 등을 탄핵하다가 하동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이첨은 유배지의 한구석에 집을 지어‘눌헌’이라 이름 짓고는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명(銘)을 지었다.‘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옛말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했던 역대의 설화(舌禍)는 굳이 군더더기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올곧고 강직한 말은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당시 이첨은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신을 주살하기를 청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머나먼 남쪽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자신의 집을 눌헌이라 이름 짓고 말하기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언뜻 젊은 혈기에 집권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이첨이 눌헌명의 뒤에 쓰다(題軒銘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명을 지은 것은 평소의 생각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뜻이 좌절되고 기가 꺾인 자신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분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공자의 말은 낮추어서 해야 한다는 뜻을 부연한 것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돈키호테, 황교안 대표를 애마,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을 시종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을 건전한 비판과 해학이었다고 주장하며, 막말과 혐오발언의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정책경쟁이 실종된 지난 4·15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막말은 ‘사이다 성’ 발언으로 지지층 결집을 굳히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3040세대 비하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비꼬는 거친 발언으로 선거에서 실패했다. 막말 논란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의 공천이 부실했다는 방증이며 선거결과는 참담했다. 또한 공천에 탈락하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홍준표, 권성동 의원은 복당도 되기 전에 원내대표와 대권주자로 본인들이 적합하다며 말을 앞세우다 진퇴양난의 입장이 된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더욱 부추길 수 있으며, 정치의 ‘고인 물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오늘의 정치판이다.

2020-05-11

두 바퀴 여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처럼의 긴 연휴를 맞아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신록의 물결이 넘실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이나 해변의 자전거길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울~춘천까지의 북한강자전거길, 고성~영덕까지의 동해안자전거길을 4일 동안 약 500km를 달리면서 우리나라의 강과 산, 호수와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껏 눈과 가슴에 담은 유쾌한 여정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새로운 볼거리와 느낌으로 감흥을 더해준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일까? 아니면 알지 못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과 체험일까? 여행에 대한 많은 정의와 관점이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기에서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일상의 삶이건 잠시 집을 떠난 이색적인 만남이건 그 모두가 처해진 거기에서 새로움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여행이고 행복이 아닐 듯 싶다. 그래서 혹자는 삶은 끊임없는 여행이라 했던가. 하루하루 새롭고 달라지는 일상일지라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의 여행에 한 순간 같은 편린이 아닐 수 없으리라.비슷한 여행이라도 당사자의 주관이나 취향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버스나 자동차, 기차여행은 거의 목적지에서의 집중적인 관광만 가능하다. 반면 땅을 직접 밟으며 산천의 초목과 생물을 접하고 듣고 냄새 맡으면서 천천히 이뤄가는 도보여행은 많은 것들을 느끼지만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전거로 떠나는 두 바퀴 여행은 수시로 더디거나 빠르게 주위의 풍경을 담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선 명소나 유적지를 여유롭게 탐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상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삶과 일, 쉼의 균형을 이뤄가듯이 자전거 여행을 애써 즐기는지도 모른다.수 년째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해왔지만, 강 언저리와 바닷가를 연이어서 아들과 함께 누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팔당호에서 의암호까지 이어지는 한적하고 그림같은 풍경들, 간간이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름의 보법으로 도보여행을 하거나, 아들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단체 라이딩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통일전망대에서 영덕까지 이르는 동해안자전거길은 파도와 바람소리,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오르막이 심한 언덕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내리막길의 짜릿한 속도감과 진동은 형언 못할 전율 그 자체라고나 할까?초여름 같은 날씨라서 그런지 동해안 곳곳에는 정말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캠핑족들이 붐볐다. 갑갑했던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루하고 절제된 일상에서의 탈출같은 몸짓이랄까, 움츠러진 삶을 펴고 음울함을 환기(喚起)하려는 마음으로 어쩌면 그들과 나는 잠시나마 집을 나선지도 모른다.어쨌든 여행은 즐겁고 설레며 일상의 쉼표같은 것,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두 바퀴를 굴리면서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며 독서하듯 찬찬히 자연을 읽은 행복한 느낌표였다.

2020-05-10

북한 관련 가짜 뉴스부터 막아야 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해 말 어느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여교수가 식사 중 카톡을 보더니 북한에서 쿠데타가 났다고 전했다. 식사 하던 사람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단번에 그것이 ‘가짜 뉴스’임을 직감했다. 주변에는 북한 관련 이런 식의 ‘가짜 뉴스’가 상당히 많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생시 사망보도는 여러 번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의 CNN까지 김정은의 중병설을 흘려보냈다. 탈북 국회의원 당선자 지성호까지 ‘김정은 99% 사망설’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의 깜짝 등장에 모두가 놀라고 발설자도 언론도 모두 망신을 당했다.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도 북한 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과 접근의 한계 때문이다.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정보를 엄격히 통제한다. 북한당국은 김정은의 출생연도, 자녀 출생여부까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다행히 남한에는 북한관련 연구기관과 정보에 밝은 연구자도 많다. 여러 해 전 박사논문을 쓴다는 어느 폴란드 대학원생이 나를 찾아 왔다. 그의 연구 주제는 ‘북한 일인 체제 장기 유지 배경’이었다. 그는 평양에 1년 체류했어도 북한체제는 도저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이러한 궁금증이 가짜 뉴스의 기본 진원이 되고 있다.또한 북한 관련 가짜 뉴스는 한국정치에서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건국 초기의 용공 조작에서부터 좌익 관련 흑색선전은 아직도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해방 후 대선에서 조봉암의 보안법 위반 사건, 2002년 대선의 ‘병풍사건’은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골동품이 된 맥카시즘이 한국정치에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북한 관련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는 아직도 상대에 대한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이러한 가짜 뉴스가 미치는 폐해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한 우리의 객관적인 시각을 흐트려 놓는다. 북한 관련 허위보도나 추측 보도는 종종 사회적 갈등만 야기한다. 우리 사회에는 민족 통일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북한 정권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람이 상당수다. 분단국의 냉전적 반북적 사고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보수 정당의 참패는 시대에 뒤진 극우 이념의 결과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가짜 뉴스나 추측 보도, 오보 등은 결국 민족의 화해에 역행하고 분단고착화의 수단이 될 뿐이다.이 사회에 수시로 등장하는 북한관련 가짜 뉴스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정파적 이해에 따라 확산되는 가짜 뉴스 전반을 차단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부 보수 언론의 편파보도, 안보 상업주의, 오보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개인이나 언론매체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관련법도 만들고 단속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우리도 가짜 뉴스의 생산자 뿐 아니라 전달자도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가짜 뉴스 방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형법상의 사이버 범죄 수사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번 국회는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한 입법부터 선행되길 바란다.

2020-05-10

‘코로나19’ 군민과 함께 희망으로 이겨내다

전찬걸울진군수코로나19와의 길고 지루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일상은 무너지고, 지역경제는 더욱 어려워져 대한민국 전체가 혹독한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간 울진군은 ‘함께’라는 이름으로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이겨내고 있다.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부터 울진군은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강력한 선제적 대응활동을 벌였다. 실무반으로 구성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 매일 회의를 통해 상황을 점검·체크해나갔다.또한 공무원들을 시외버스터미널에 배치해 열체크 및 경유지, 목적지 등을 조사하여 외부로부터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경로를 철저하게 차단해 나갔다. 마스크품귀 현상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때 울진군은 군민들의 혼선을 덜고자 우체국, 약국, 마트의 마스크 판매시간을 통일 하도록 조치했다. 또한,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면마스크 제작에 나섰고, 많은 분들이 재능기부로 마스크 만들기에 함께 해 주었다.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대구·경북 지역에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울진군은 울릉군과 더불어 ‘확진자 제로’의 청정지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난 3월29일 집으로 돌아온 해외유학생이 확진판정을 받아 울진군에도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사실 그 순간은 절망적이고, 안타까웠다.코로나19로부터 울진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지켜온 지난 시간이 치열했기에 더욱 허무했다.그러나 절망은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확진된 환자의 철저한 자가격리로 더 이상의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범적인 자가격리 사례로 울진군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울진군에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이제 한 달 여...좌절의 순간을 잊지 않고 더욱 철저하게 코로나19와 대응하고 있다.‘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은 없다’ 라는 마음으로 서서히 밀려오는 느슨함을 떨쳐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다.지난 4월19일 울진군은 죽변항·후포항 일원을 코로나19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 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인근 지자체에서 2차 3차 감염 의심자가 많아지고, 외부 관광객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군의 행정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군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무한한 신뢰와 묵묵히 같이 하는 동참이 있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그리고 울진군은 군민과 함께 승리의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직접 구입한 마스크를 본인보다 더 필요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임차인을 위해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착한 임대인이 늘고 있다. 각종 사회단체들은 자발적으로 방역활동에 나서고, 특별모금에도 기부가 끊이지 않았다. 2019년 울진군 태풍 미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서로가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났고, 어려움을 겪으며 더욱 강해졌다.그리고 2020년 코로나19의 위기...아직 그 끝은 보이지 않고, 가야할 길도 멀게만 보이지만 단합된 힘과 지금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울진군은 코로나19의 종식은 물론이고 바이러스와의 기나긴 전쟁으로 침체된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막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이후 군민들이 편안하게 기존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경제 활성화와 군민생활 안정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을 통한 수익창출을 위해 단체관광객 인센티브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우리의 일상과우리의 가족과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울진군과 군민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

2020-05-10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번 주부터 김순희 작가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무엇을 간직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연재한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시간의 추억을 기록하여 이야기로 들려줄 예정이다. 소소한 물건이 유품이 되고,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킨 노포의 유래를 기록하고,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걸음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 해가 지나도 아직 시댁에는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봄이면 만들어주신 콩잎무침 레시피와 낮은 음성으로 들려준 구성진 말들이 떠난 후에도 우리가족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인환 시인의 시구절이 입에 맴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인데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무엇이든 정리란 개념자체가 부족한 나는 그냥 쌓아두기만 할뿐이다.그래서 같은 물건을 또 살 때도 있고 뒤적거리다 장 구석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어머니는 품에 들어온 것은 내다 버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늘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내 나이보다 늙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여 들춰보는 즐거움을 준다. 발견할 때마다 그 물건의 사연을 어머님이나 남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늘 보던 것인 데 자꾸 묻는 내가 더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어머님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느 해, 모내기 새참으로 가자미회와 맥주를 내갔다. 잔을 찾다가 86년생 유리컵을 발견했다. 동국대 마크를 달고 있는 저 녀석은 남편의 물건이었다. 4학년 졸업반 체육대회 기념품인 듯하다. 우유회사나 소주 회사에서도 광고용으로 많이 나눠주는 게 컵이라 대충 사용하다 버리기 쉬운 것이 유리컵이다. 그런데도 저 유리컵은 용케 몇 십 년을 살아남았다니 대견스러웠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끝내고 기차역에서 화물로 짐을 부치고, 손에도 작은 짐을 들고 귀향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깨지지도 버려지지도 않고 투명하게 웃고 있는 유리컵에게 칭찬을 한껏 해주고 싶다.무엇이든 소중히 하니 이젠 정말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댁에 다니러 가면 어머님은 낮에 준비해둔 거라며 유채나물, 시금치, 파, 머위 같은 다듬어진 채소 한 자루와 고추장아찌를 양념해서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표 노란 콩잎 무침도 담아 주셨다.무엇이든 손에 들어오면 버리시지 않고 오래 두고 되새김질 하시는 어머니. 테두리가 하얗게 벗겨졌지만 아직은 파란빛을 간직한 얌전한 찬합에 차곡차곡 많이도 담으셨다.김순희수필가저 그릇은 얼마나 쓰셨나 가만히 살펴보니 ‘신탄진연초제조창’이라고 기념품을 만든 이가 명조체로 써 있고, 1965년 추계 위안회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새겨놓았다. 아버님이 젊은 시절 근무한 곳에서 가을 소풍을 다녀온 모양이다. 글씨나 그려진 꽃무늬나 ‘나 오래 된 물건이요.’하고 말하는 듯하다. 저 도시락은 참 오래도록 어머니 손을 탔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 대부분을 함께 했다. 그동안 아버님의 점심을 담고 회사로 출근을 하고, 어느 날에는 어머님과 건넌들 밭에도 따라갔을 것이다. 누런 호박전을 품고 기름 냄새를 풍기며 새참으로 가족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도 했을 것이다.오래 간직된 그래서 소중해진, 남편보다 한 살 어리고 시동생이 형님이라 부르는 도시락. 어머니가 떠나서 이젠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는 데, 나보다 훨씬 오래 시댁살이 한 저 녀석에게서 오늘은 남편의 어린 시절 코딱지 파먹던 이야기 전해 들어야겠다.안동에서 태어난 김순희 작가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수필부문으로 당선해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작가와 비작가’를 펴냈으며 포항수필사랑 회원이며, 스마트폰 사진전을 하기도 했다.

2020-05-10

‘주호영’과 ‘김종인’

안재휘 논설위원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해마다 시고 떫고 맛없는 과일만 생산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한심한 과수원에 비유된다. 참으로 기막힌 것은, 혁신의 핵심인 과수(果樹)의 품종개량에는 관심이 없고 바보처럼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고대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허접한 고목들마저 용기 있게 베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없다.미래통합당 새 원내대표에 5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이 선출되면서 제1야당의 새로운 길이 주목받고 있다. 제일 큰 관심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도입 여부다. ‘정족수 미달’ 작전이라는 유치한 몽니 수법을 동원해 상임전국위원회를 무산시킨 정치꾼들의 행태는 절망적인 구태였다. 총회 격인 전국위가 김종인 비대위를 용인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더더욱 같잖은 작태 아니었던가.내외부에 산재한 문제들을 톺아보면 통합당은 일부 당내 명망가들의 장난질이 난무할 ‘자강론’ 따위의 대안으론 어림없어 보인다. 주호영과 김종인이 투톱(Two top) 형태로 이끌면서 역할분담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내대표 주호영은 공룡이 돼버린 여당을 상대하는 일만으로도 버겁고 또 버거울 것이다. 시대에 맞는 이념좌표를 설정하여 당을 혁신하고, 미래비전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일은 김종인 비대위에 맡기는 게 옳다.190석을 헤아리는 의석을 거느리고 연일 으르릉거리는 골리앗 여당의 가공할 힘에 맞설 지혜를 양치기 소년 ‘다윗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해 들고 나선 무기는 양을 지킬 때 쓰는 지팡이와 물매, 그리고 돌 몇 개뿐이었다. 물리력으로 민주당을 막아서겠다는 구닥다리 발상일랑 아예 접어야 한다. 철저하게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통합당이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이념좌표 설정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진작부터 ‘중도실용’, ‘진보 우파’ 등의 대안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썩은 고목들이 떠들어대는 ‘꼴통보수’의 퀴퀴한 이론에 함몰돼 자멸의 뻘밭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아니, 지금 못 바꾸면 정말 끝장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더이상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넘겨줘선 안 된다.주호영은 국민을 감동시킬 최고의 정책들을 단단한 조약돌로 들고 나서서 골리앗 민주당의 급소를 정확하게 겨냥해야 한다. 김종인은 지혜의 칼을 움켜쥐고 시장이 진작 퇴출한 맛없는 과일들이나 생산하는 철 지난 과목(果木)들부터 모조리 베어내고, 새로운 이념좌표를 세우는 품종개량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통합당이 비로소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정치지형 속에서, 주호영의 슬기로운 대응과 김종인의 용단이 빈사 상태의 제1야당을 잘 살려내길 기대한다. 많은 이들이 지난 4·15총선 선거운동 마지막 유세장에서 보았던 노정객 김종인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한다.

2020-05-10

‘젊으니까 괜찮다’는 생각

코로나19 확진자는 의외로 젊은층에 많다.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20∼29세 연령 사이가 27.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30∼39세 사이 10.8%를 포함한 2030세대의 확진 비율은 전체의 38%나 됐다.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은 거꾸로다. 사망자는 70∼80대가 35.8%로 가장 많다. 29세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다. 30대는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치명률은 80대가 25%, 70대 10.8%다. 30대 0.17%와 40대 0.21%에 비교하면 고연령층의 치사율은 무서울 만큼 높다.전문가들은 젊은층의 감염률이 높은 것은 자유분방한 사회활동과 느슨한 경계심을 원인으로 본다. 실제로 젊은층은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심하지 않아 해열제를 먹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파자 역할을 한다.“젊으니까 괜찮다”는 젊은 사람의 생각이 가정으로 돌아가 부모나 조부모에게 2차 감염을 일으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WHO 사무총장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젊은이에게 특별한 당부를 했다. “당신은 천하무적이 아니다. 당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한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가을 이후 대유행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생활방역으로 돌아선지 이틀만에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 발생으로 온통 비상이 걸렸다. 전국적 2차 감염 파동도 점쳐진다. 신천지 신도에 이어 클러버(클럽 애호가)가 슈퍼 감염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잠시의 방심도 허용 않는다. 공든 탑이 일시에 허물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0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하자

최근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둘러싸고 전국이 들썩였다. 물론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예선 탈락에 그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선정조건 자체부터 불리’ 등 탈락에 따른 자조적인 탄식과 더불어 과학자와 정치가의 시각차를 다루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낙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굳이 포항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 분야의 기초연구 기반인 가속기라는 하드웨어를 하나 더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들어서더라도 여전히 포항은 3세대 원형(방사광)과 4세대 선형(XFEL)가속기를 보유한 국내 최고의 가속기 집적지다. 경주의 양성자가속기까지 가세한다면 포항 경주 지역은 세계적인 가속기클러스터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포항시를 비롯해 지역 각계가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에 정성을 쏟은 것은 국가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이 가속기 건설에 따른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라는 ‘경제’에 더 주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속기 건설에 따른 경제효과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측면의 경제효과가 있다. 우선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장치의 제작과 설계, 기술 등을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매출이 바로 공급 측면에서 파급되는 경제효과다. 그리고 수요측면에서는 바이오, 의료, 건설, 생활, 철강, 소재금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형에서 가속하며 튀어나오는 빛(방사광)이건, 직선에서 가속하여 X선 자유전자 레이저(XFEL) 빔이건 가속기를 가동하여 나오는 빛의 투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여 산업에 접합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가 있다. 가속기 건설의 경제효과가 여타 다른 사업에 비해 크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공급 또는 수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지만 가속기는 양 측면에서 경제효과가 광범위하게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속기가 국가기초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은 보너스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전혀 부풀려진 수치는 아니다.그렇다면 그동안 포항이 심혈을 기울여 유치하여 건설, 가동하고 있는 3세대 원형가속기와 4세대 선형가속기를 통해 과연 당시 기대만큼 어느 정도 경제효과를 거두었을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대규모 국책건설사업의 유치에 공을 들이지만 기간시설의 건설과정에서 고스란히 경제효과를 지역이 누리려면 반드시 전제가 뒤따른다. 일단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축구장 50배 면적에 국내에서 길이가 가장 긴 1.1킬로미터에 이르는 단층 건물로 만들어진 이른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살펴보자. 과연 그렇게 넓은 면적과 수 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포항에서 지역 건설업체나 철강업체가 가속기 건설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지역산 철강재가 어느 정도 투입되었을까. 아마도 생각만큼 그 비율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경 필자는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이 가속기 건설 당시 주요 장치를 신규개발하고 국산화하였던 업체들이 손 놓고 있지 않도록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소형화, 국산화, 고기능화를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의 주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가속기 대부분이 수입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제공 가능한 의료용 가속기의 국산화 추진 등을 통해 공급 측면에서의 경제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가속기 생태계를 조성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이 성장해왔다면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건설되더라도 최신 기술력과 가속기 건설 경험을 지닌 이들이 당연히 참여하게 될 것이고, 포항에 부가가치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다.수요측면이야말로 가장 기대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항의 가속기를 이용하여 보다 가시적으로 지역 내에 혁신적인 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창업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특허와 연구성과는 적지 않았다. 수천 편에 이르는 연구논문 중에는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 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가속기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포항경제를 윤택하게 할 신제품의 개발과 창업이 이루어져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아직 알고 있는 것이 없다.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어떠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려 하였을 때 외형적인 경제효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총 건설금액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역업체가 참여하지 못하면 그저 공사하는 동안 먼지만 날아오고 지역의 아름다운 산만 없어지고 환경만 훼손시킬 뿐이다. 진정한 경제효과는 사업비의 다과에 있지 않다. 사업 시행에 과연 우리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역량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역량을 키우거나 역량이 되는 업체를 조건부로 끌어들인 다음에 유치하는 꼼수도 필요하다. 지역경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국책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도 있다. 이번 가속기 유치문제도 비슷한 사례다. 주요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동참하여 자괴감에 빠져 마치 포항이 버려진 양 침울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다시 한번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포항이 이바지하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다른 지역에 양보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미 포항은 아름다운 강산을 희생하면서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통해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넘칠 만큼 이바지해 왔다고 자부해도 좋다. 단지 그것을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한 기업들 가운데 포항에 소재한 기업이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여러 가속기를 한곳에 모아두면 분명 시너지효과는 있다. 연구원들이 멀리까지 발품을 팔 필요도 없고, 협업하는데도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기 기반 연구가 24시간 가속기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온라인 화상회의도 있어 연구 활동에 제약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가속기 기반 연구가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의 창업으로 연결될 것인지다. 또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국내외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어 가속기 기반의 신약, 신기술, 신제품을 연구 개발할 것인지다. 이들이 포항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직히 국가 기초과학기술의 진보는 중요하나 굳이 포항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만이다. 가속기가 어디에 건설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속기 기반의 연구 결과가 얼마나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것인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미 포항이 보유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청년, 과학자, 연구원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포항에서 창업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혁신형, 기술형, 고부가가치형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10

대한민국의 건강을 지키는 국민건강보험

박무근 건강보험공단 대경본부 행정지원부장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환자가 발생한 후 어느덧 3개월 가까이 지났다.7일 기준 대구지역 신규 확진자가 5일 연속 0명을 유지하며 안정세에 접어드는 분위기다. 따뜻해진 봄기운처럼 대구·경북 지역에 조금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코로나19 확산 초기 대구·경북지역은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났고 지역 주민과 공단 근무 직원들의 불안과 동요가 적지 않았다.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행동지침,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그림판 등을 제작해 정기적으로 직원 교육을 하고, 지역 영세사업장과 공공기관에도 그 내용을 함께 공유했다.무엇보다 지사를 찾은 고객과 직원 안전을 위해 유증상자 상담을 위한 선별민원실을 별도 운영하고, 대구 공공기관 최초로 지사 민원대에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해 지역감염 예방에도 앞장섰다.또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된 대구와 청도지역부터 선제적으로 2교대 순환 근무를 시행해 범국민적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이런 노력 덕분인지 직원들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으며, 지사를 찾는 지역 주민들도 발열검사와 손소독제 사용 등 공단의 감염 예방 노력에 안심하고 민원실을 이용하고 있다.국민건강보험은 국민의 평생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이번 코로나19 상황 극복을 위해 이렇듯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무엇보다 코로나19 치료비는 건강보험이 80%를 부담하고, 나머지 20%를 정부가 부담해 중등도 환자의 경우에는 전체 치료비 약 1천만원 중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0원이다. 미국의 코로나19 평균 치료비는 4천300만원 수준에 이르며, 민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면 이 금액을 본인 모두 부담해야 한다.우리나라가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일찍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정부의 빠른 정책 결정과 우수한 의료진, 수준 높은 시민의식과 함께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국민건강보험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앞으로도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19 상황을 대비해 국민의 평생건강 지킴이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5-07

보수가 나아갈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보수야당 미래통합당의 미래가 막막해 보인다. 더구나 4·15총선에서 과반의석도 지키지 못한 통합당을 전폭 지지한 대구·경북민들은 더욱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돈이 될 만한 4차산업 중점사업들은 모조리 호남지역이나 충청지역으로 배정되고 만다.차세대 다목적방사광 가속기 후보지로 신청한 포항지역이 탈락하고, 전남 나주와 충북 청주가 후보지로 선정된 것이 이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호남지역이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니 말할 게 없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자처하는 충청권에도 그럴듯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실적으로 표심을 끌겠다는 복안이 깔려있어 보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방사광가속기와 관련, 경북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긴급 미팅을 갖고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힘써줄 것을 요청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경북지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후보지 탈락 직후 이 지사가 밝힌 입장문에서도 잘 드러난다.우리 지역은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건립된 이후 25년간 가속기 운영에 필요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원 등 가속기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새롭게 유치된다면 명실공히 가속기 클러스터 구축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었다. 정부에서도 오로지 국가 과학기술연구와 산업발전을 고려한다면 경북 포항이 최적지가 될 것이란 점엔 동의했으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러니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결과라는 심증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이 와중에 임기완료를 앞둔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7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당의 가장 큰 패인은 정권의 현금 살포였다고 주장했다. 심 원내대표는“선거 이틀 전부터 아동수당을 40만 원씩 뿌려댔고, 코로나 지원금을 4월 말부터 신청하라며 대통령부터 나서서 100만 원씩 준다고 했고, 기획재정부에서 50%로 잡았던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했다”며 “앞으로는 모든 선거를 앞두고 정책과 제도의 이름으로 공식적인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어 어설픈 세대교체를 앞세운 공천 실패와 막말 파문, 황교안 전 대표의 리더십 등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지난 6일 무소속 윤상현 의원 주최로 열린‘4·15 총선 평가와 야권의 향후 과제’세미나에서 도 보수야권의 패인이 거론됐다.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자유’를 중요시하는 보수 세력이 왜 인권 자유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진보진영의 전유물인 것처럼 넘겨줬느냐고 질타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보수가 나아갈 길은 진보의 가치를 배격하는 게 아니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보수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진보 우파라는 것이다.보수의 참패에는 이유가 있다. 해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시된 해답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게 보수의 가장 큰 딜레마다.

2020-05-07

한국의 食문화

조선시대 때는 양반들이 먹고 남은 잔 밥은 그 집 하인이나 노비들이 물려받아 먹었다. 이를 물림상이라 했다. 왕궁에서도 임금님 수라상에 차려진 음식이 남으면 물림상이라 하여 궁궐 내 하인이나 관리들이 가져간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특히 임금님이 드신 음식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왕의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통했다고 한다.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나눠 먹는 자체를 믿음과 정(情)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상차림도 상이 휘도록 했다. 위생적 측면의 고려는 없다. 밥상 한가운데 반찬을 두고 여러 사람이 젓가락질을 하며 식사하는 것은 오랜 우리의 전통문화다.특히 찌개는 밥상 가운데 놓아두고 여러 사람이 자기가 먹던 숟가락으로 휘저어가며 먹는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런 식문화가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개인별로 밥과 반찬을 따로 주는 일본의 식문화와 비교하면 상차림에서 먹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식문화는 독특하다 할만하다.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난 새로운 변화를 우리는 뉴노멀이라 부른다.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지칭하는 말이다. 향후 우리의 일상에서 많은 변화를 예고한 용어라 하겠다.우리의 식문화도 변화 중 하나로 꼽힌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비위생적 식문화의 개선은 불가피하게 고쳐야 할 관습이다.보건당국은 코로나19가 공기 중 비말뿐 아니라 식사 중에도 전염이 가능해 음식을 각자 접시에 덜어 먹도록 권장하고 있다. 상당수 직장과 요리 집에서도 각자가 반찬을 덜어먹는 방식을 채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종래와 같은 방식의 식문화가 주류다. 우리의 식문화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07

코로나 캠퍼스 풍경

5월 초까지 ‘비대면’수업을 하자던 방침은 이번 학기 내내 비대면을 유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나라들 상황 보면서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5월 첫 날은 메이데이다. 그래도 학교에 나가 뭔가 일을 해보려 한다. 점심 지나 학교 캠퍼스에 당도하니, 녹색 5513번 시내버스 몇 대가 외부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 5월 5일까지는 외부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생활방역으로 옮겨가겠다 하던가?예년 같으면 3월부터 학생들로 붐볐어야 할 캠퍼스다. 그러나 모든 것이 스톱에 가까워졌다. 신입생 환영회도, 개강 모임도, 전체 교수 회의도 생략, 외국인 유학생 심사도 화상으로, 답사 행사도 2학기로 미루었다. 학교에 나와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감돌곤 했다.공휴일의 캠퍼스를 천천히 걸어본다. 오늘은 캠퍼스에 붙은 산 계곡을 올라가 볼 작정이다. 산은 언제라도 좋다. 벚꽃, 목련꽃, 진달래꽃 다 지고, 철쭉 한창인 위에 산복숭아꽃 수줍고도 옅은 빛이 그늘진 산 계곡에 하늘하늘 드리웠다.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비대면 수업은 별로 좋지 않았다. 비대면이란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것이니, 화상 회의 어플을 가지고 수업들을 한다. 내가 사용한 것은‘줌’이라는 것인데, 다들 이걸 쓰는 기색이다. 미국 것인데 뭔가가 중국을 경유한다던가? 위험하다, 보안이 취약하다, 말들 많다.인터넷 인공 세계는 쏠림이 심하다. 한국산 ‘구루미’도 있다지만 한번 밀리면 상황 바꾸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러 ‘스카이프’도 쓰기는 쓰는 모양.산 그늘진 계곡 따라 걷는 길이 호젓해서 좋다. 아직 몹시 가물다. 물 마른 계곡 바위 사이로 건너 건너 오른다. 요즘 일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선거는 끝났고, 그러고도 어딘지 개운치 않고, 코로나19가 확진자 0에까지 다다른 게 천만다행이고, 북한의 수령은 살아 있었다던가? 이천에서 일어난 끔찍한 화재는 이 나라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비대면 수업은 말 이상의 의미 전달이 어려운 방식. 듣고는 있는지, 의사는 통하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다른 친교 표현들, 유머조차 여간해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2,30분만 지나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차는 것이 꼭 요즘 세상 같다고나 할까.계곡을 내려오니 마음은 나아졌건만 하늘은 아직도 잔뜩 찌푸렸다. 비라도 왕창 내리고 다 새로 시작해야 할 테다. 그러면 하늘이 새로 열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천만다행, 코로나19에서 벗어나고 있건만 뭔가 어딘지 석연찮기만 하다. 이 돌아가는 세상이 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5-07

건강한 삶, 성인지 관점에서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건강한 삶은 생애주기별, 연령별, 성별에 따른 특수한 요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건강과 관련한 정책을 추진할 때 성별 욕구를 반영하는 성 중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책집행 과정과 결과에서 성별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몰성적인 정책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관련 사업추진시 남성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농어촌 지역이 많은 지역 특성과 남녀간의 생활문화의식의 차이가 한 원인일 것이다. 여성의 경우 가정, 이웃 등 생활문화 적응이 생애주기별로 비교적 유사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남성 특히 장년층 남성들의 생활문화 부적응은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노년층의 여가생활 이용과 관련해서 사회단체나 문화센터 등에서 제공되어지는 건강프로그램 이용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마찬가지로 보건소의 각종 프로그램들의 이용에 있어서도 남성들의 참여는 저조하게 나타나며 실제 생활터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가 쉽지 않게 나타난다.또한 여성이 비만이나 영양사업의 경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반하여 남성은 생활습관의 변화를 쉽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이 남성의 자발적 참여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모두 질병 예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며 성별 특성을 고려한 양성평등 관점에서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여성은 임신, 출산, 수유 등 남성과는 생애주기상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성별 특수성을 반영한 건강정책이 필요하다.성별 특성을 고려한 건강정책을 위해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먼저, 기초적으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분야별 성별 통계를 생산하고 활용, 성별을 고려한 성인지 예산을 배분하여 성별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둘째, 지역별로 건강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성별에 따른 현실과 요구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셋째,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성별 욕구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남성에게는 건강프로그램의 다양성 및 의식 전환, 남성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운동기구 및 의료장비 보완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넷째, 건강프로그램 홍보는 성별을 고려하여 생애주기별, 생활터별로 어느 정도 수혜 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기존 이용자나 주변인의 권유로 건강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수이다. 남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및 인터넷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건강정책 입안에서부터 정책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실무담당자들에 대한 양성평등 및 성인지적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남녀 모두의 참여와 정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정책에 적용 가능한 양성평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인지 정책의 이해도를 증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상이한 경험과 요구가 균형적으로 반영되기 위해 성인지적 관점을 지닌 남녀 전문가의 균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2020-05-07

대학가 커닝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70년대 정치적 데모가 매일 계속 되던 시절 학교 앞 광장에 수백명의 학생이 모였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일어나 “시험시간에 커닝하는 사람은 여기서 나가달라. 우리 자체가 부정 없이 순수해야만 정치권의 부정을 규탄할 수 있다”라고 외쳤다.필자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이다. 그 시절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던 순간이 기억난다. 70년대는 대학가의 시험 커닝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정치적인 부정과 독재에 항거하면서도 그 자신은 커닝으로 시험을 치르는 모순된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그 후 50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대학가의 커닝은 지속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커닝(Cunning)은 원래 “교활하다”는 뜻인데 일본식 영어로 시험부정을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는 통용된다. 미국식 영어는 치팅(Cheating) 이고 커닝이라고 하면 미국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28년 포스텍 재임 기간 중 시험 커닝이 없는 깨끗한 캠퍼스를 경험했다. 포스텍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처럼 어너코드(Honor Code·시험치기전 양심선언)가 있어 커닝없는 시험을 치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학가 커닝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건 확실해 보인다.그런데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온라인 교육으로 시험 커닝 문제가 다시 대학가 이슈로 부상했다. 온라인 시험인 점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려는 학생들이 생기자 학교와 교수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교수들은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커닝자제를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대리 시험을 모의한다는 제보를 받고 제자들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시험만은 감독을 할 수 있도록 강의실에 모여서 치루겠다는 교수들도 많다. 정당하게 시험보는 양심적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일부 교수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고자 ‘스피드퀴즈’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온라인 시험에서 빨리 문제를 풀어 답안지를 제출할수록 가산점을 주기로 하는 것이다.자신이 공부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고 또 그 평가 결과를 토대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시험의 올바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학점이 취업, 진학 등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커닝에 대한 유혹은 계속 될 것이다. 커닝은 불법행위이다. 해서는 안 될 행위이다. 젊은이들은 “공정한 사회”를 늘 주장한다. 그런데 커닝은 공평한 평가를 방해하는 것이며 공정한 사회를 그르치는 것이다.“제도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말도 있다. 따라서 교수들은 공정한 평가가 유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커닝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고 학생들은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명하다.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도 공정한 사회의 꿈은 커닝없는 캠퍼스에서 시작 되어야 한다.

2020-05-07

가정의 달에

김병래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가족은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다.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에서 밝고 안전한 사회가 비롯되는 이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일원이 된다.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성장기간이 긴 사람의 자식은 20년이 넘도록 다른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사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가족과 가정은 사람의 성장환경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길러져야 원만한 인격체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바뀌면서 가족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3, 4대가 한 집안에 모여 살던 대가족에서 소가족 혹은 핵가족의 형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가족 간의 유대나 역할도 적잖이 변했다.특히 요즘 들어서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들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왔다.아예 결혼을 포기하거나 이혼율까지 높아지면서 가정의 붕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상치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물론 인성이나 가치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갈 징조마저 보인다. 시대에 따른 불가피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 같다.20세기에 들어 우리 민족의 가족사에는 크나큰 비극이 있었다.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으로 생이별한 천만 이산가족의 상처와, 헐벗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수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픔이 그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이산의 당사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가족이 많은 것 같다.갑질과 분노조절장애를 대물림한 듯한 행태를 보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재벌가의 가족이나,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는 거짓과 부정도 서슴지 않는 유명 교수 부부의 가족들이 그랬다.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도 모두 일그러진 가족상을 보여주고 있다.가족이기주의를 가족 사랑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자식 내 가족을 위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이나 비리도 불사하겠다는 사고방식이 결국에는 자식들과 가정을 망치게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은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물질만능과 출세지향적인 가족이기주의가 재산문제로 형제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심지어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참극을 빚기도 한다.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가족과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이십여 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은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성장의 조건이기 때문이다.비뚤어진 가족애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야 가정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굳건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20-05-06

BBC가 민족 정론지?!

김규종 경북대 교수한국인들 사이에 ‘BBC가 민족 정론지’라는 말이 유행한다. 코로나19가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외국의 주요언론은 한국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강력한 진단역량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반면에 ‘조중동’ 같은 신문은 ‘우한 코로나’와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후진적인 행태로 일관해 수준 높은 독자들의 질타(叱咤)를 받았다. 아직도 극우 유튜브 수용자들과 낙후지역 독자들은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한국 독자들이 외신을 신속하게 번역하여 SNS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간다. 정보통신 강국의 국민답게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문제와 동향 그리고 사실관계를 판단하면서 더는 보수신문을 믿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강화된 시기는 2019년에 아베 정부가 수출규제를 시작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한국정부가 강력한 대응에 나서자 보수지들이 앞다투어 일본에 고개 숙이라는 논조(論調)를 펼쳤던 그때 국민은 대거 그들을 버렸다.2020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세계 42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31위를 기록했지만,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50위, 2014년 57위, 2015년 60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해 언론자유가 후퇴한 대표국가가 되었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선진국’ 미국과 일본의 순위는 45위와 66위다.언론자유지수가 전임정권과 비교해 현저히 상승하고 있지만, 언론인들의 수준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 듯하다. 그 결과 ‘BBC 민족 정론지’ 주장으로 나타난 것이다. 참 우울한 일이다. MBC 피디 출신인 정길화 아주대 교수는 한국언론의 문제를 조급성, 전문성 부재, 정파성(政派性)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남보다 앞서 기사를 송출해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조급성은 기사의 신뢰도를 낮춘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기사에서 우리는 비문(非文)과 틀린 맞춤법으로 범벅된 경우를 너무도 자주 찾아낸다. 전문성 없이 글을 쓰다 보니 기사의 내용과 질이 저급할 수밖에 없다. 저질 유튜브나 찌라시 수준을 넘지 못하는 기사도 적잖다는 얘기다.정파성은 정당과 인물 그리고 지역을 특정해서 당위론적으로 기사를 제작하는 행태를 말한다. 기자가 속한 집단과 출신에 기초하여 색안경을 끼고 대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나날이 강고해지고 있다. 공정과 신속, 정확성과 무정파성을 전제로 해야 함에도 언론사와 종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소명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가.외신이 늘 옳다는 주장은 당연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모든 나라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족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론마저 해외직구 해야 하나’라는 자조적(自嘲的)인 말이 떠돌고 있음은 우려스럽다.그러하되 한국에도 BBC 같은 정론지가 나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2020-05-06

어머니의 뜰

어머니는 아직도 혼수방에 나가십니다. 그곳에서 당신 노년의 뜰을 가꾸듯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십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에게 바느질은 벅찬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오남매 어느 누구도 애써 그것을 말리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손끝이 평생 바지런함과 친구해왔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소일거리가 있다는 게 당신 여생의 활력과 건강을 위해서도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한창 때의 체력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천성이 밝고 재바른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들 앞에서 당신 건강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지요.그해 봄, 혼수방으로 일 나가시는 어머니의 배웅은 노환과 병색으로 힘든 아버지 차지였어요. 이른 아침을 드신 어머니가 집을 나서 지름길인 방죽계단으로 올라섭니다. 겨울 뜰에 버려진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아버지가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따라 나섭니다. 둑방 아래 금호강에서는 풀어헤친 여인의 속치마처럼 물안개가 솟아올랐지요. 어머니는 물안개에 떠밀리듯 방죽길 속을 잰 걸음으로 걸어가셨지요. 안개 속 희미한 실루엣을 한 어머니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며 아버지를 향해 ‘어여 들어가라’는 손사래를 치곤했지요. 어머니가 먼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연민과 구차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이런 익숙한 아침 풍광을 지켜보던 나는 은밀한 가출을 꿈꾸곤 했어요. 원하던 대로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날 때, 잔정 많은 병든 아버지는 우셨지만 날개를 꿈꾸던 저는 마냥 웃었어요. 남은 밭뙈기까지 팔아 아낌없이 결혼자금을 마련해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같은 건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철없는 탈출이었지요. 그렇게 막내인 저를 마지막으로, 우리 오남매는 콩깍지를 벗어난 콩처럼 통통 분가를 하고 새로운 식솔들을 거느렸지요.어머니가 없는 온 낮을 아버지는 혼자 견뎌내야 했어요. 안방 윗목, 아버지 손끝에서 바스락대선 약봉지들 소리를 신호삼아 천식 앓던 당신의 기침소리가 고요히 퍼져나가곤 했지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아버지는 노구를 이끌고 바로 집 앞 방죽으로 올라갔어요. 그곳은 또 다른 아버지의 뜰이었지요. 아버지는 멀리 강물을 바라보곤 했어요.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강물 위로 종달새가 낮게 날아다녔지요. 아버지는 방죽 위에 쪼그리고 앉아 까불대는 종달새의 생기발랄한 지저귐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했어요.아버지는 그해 마지막 이승의 봄날을 당신만의 뜰에서 그렇게 적요와 쓸쓸함으로 버텨내고 있었지요. 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안부전화조차 자주 하지 않았어요. 칙칙하고 병약한 아버지의 하루가 까닭 없이 설레는 제 신혼생활에 방해가 되는 게 싫었던 거지요.김살로메소설가어스름 저녁, 긴 방죽을 따라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면,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마중하러 둑방 계단을 올라서곤 했지요. 멀리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지고 어머니가 돌아오십니다. 아카시아꽃잎처럼 머리칼에 핀 몽실몽실한 솜먼지가 어머니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또한 아름다웠는지를 말해줬어요. 아버지는 말없이, 풍성한 어머니 머리카락 사이에 피어난 솜꽃을 하나하나 떼어내 주셨지요. 그 모습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에 남아 쓸쓸하게 서로를 보듬는 겨울새 한 쌍 같았지요.아버지는 그해 오월을 넘기지 못했어요. 수선스러움도 없이 너무도 고요하게 돌아가셨어요. 늘어난 약봉지만 남긴 채 쓸쓸하게 떠나신 아버지를 부르며 저는 목 놓아 울었어요. 너무 늦은 후회만큼 쓸 데 없이 큰 울음이었지요.친정집을 둘러봅니다. 어머니 없는 무료한 낮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이 좁은 뜰 곳곳에 보입니다. 담장 밑을 손수 파고 심은 넝쿨장미는 온 담장을 휘감아 지붕까지 뻗어 있습니다. 방죽 위, 당신만의 뜰에서 쪼그리고 앉아 캐내왔던 어린 유도화는 어김없이 여름이면 붉은 꽃잎을 말아 올립니다. 지천에 널려 있던 나팔꽃씨를 받아 화분에 키우던 분도 아버지셨지요. 아버지의 나팔꽃은 지금껏 봄이면 싹을 틔워 가을이 질 때까지 옥상 난간을 휘감곤 하지요. 나팔꽃이 얼마나 순하게 싹을 틔우고 얼마나 부드럽게 꽃을 피우는지 아버지 덕에 알게 되었어요.아버지가 안 계시는 지금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십니다. 당신 신성한 노동의 뜰에서 잠시 지치면 어머니는 가만, 아버지의 시간을 추억해낼지도 모릅니다. 방죽 위, 그 쓸쓸했던 아버지의 그림자와 목소리와 눈빛들. 머리칼에 핀 작은 솜꽃을 떼어내 주던 아버지의 손길을 그리며 말없는 미소를 지으실 거예요.

2020-05-06

같지만 다른 봄

강길수수필가마스크를 쓰고 철길 숲 산보에 나섰다. 봄을 타는지 몸이 나른해서다. 늘 가던 코스 따라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려 열린 문을 들어섰다. 교사(校舍) 앞 화단에 선 매실나무는 열매가 토실토실 도토리만큼이나 컸다. 옆의 능금나무에는 하얀 꽃잎이 자태를 뽐내며 일부 꽃은 지고 있다. 어느새 봄이 매우 짙어졌다.저만치 떨어진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만 외롭다. 사람이라곤 그 앞으로 쓰레기 정리하는 분 한 명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휴일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운동장을 걷거나, 녹지의 쉴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이 교정(校庭)은 주민들의 운동과 휴식, 소통의 공간이었다. 한데, 지금은 텅 비었다.웬일인지 입구 반대편 출구의 문이 잠겨 있다. 전엔 문이 없던 곳인데 최근 설치되었다. 화급하다면 넘어갈 수 있을 높이의 자바라 차단문이다. 하지만, 평상시는 사람이 해선 안 될 행동이다. 철길 숲에 가려면 할 수 없이 돌아가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오늘은 그냥 학교 구내를 몇 바퀴 돌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한적한 봄 교정을 이것저것 바라보며, 그들과 마음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교사 한 바퀴를 돌고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왼쪽 나무 곁 잔디밭을 굴렁쇠 형으로 동그랗게 파 엎어 잔디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잔디 뿌리와 흙이 이랑, 파인 자국은 고랑이 되었다. 클로버의 증식을 막기 위한 조처임을 금방 알아챘다. 클로버는 졸지에 커나갈 자기 땅을 차단당하고 말았다. 이 숨 막히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버는 짙은 녹색 봄옷을 바람에 팔랑이며 나비로 춤추고 있다. 둘러보니 잔디밭 다른 쪽에도 그렇게 차단한 곳이 여러 군데다.저 클로버들은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작업자가 뽑아내거나, 제초제의 공습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곳은 클로버를 뜯거나 캐낸 흔적도 보인다. 자연의 뜻과 사람의 뜻이 상충하는 현장이다. 자연은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한 땅에 사는데, 사람의 눈과 마음은 그 아울림을 용납할 수 없나보다. 잔디와 클로버가 어우러져 사는 모습도 달리 보면 아름다울 수 있을텐데 말이다.문득 우리나라와 지구촌의 지금 모습도 바로 저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의 전염을 막으려 나라 간 사람의 왕래를 차단하고, 국민에게 사회적 격리의 삶을 강제하고 있다. 그 확진자들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격리치료를 받거나, 자택격리를 당하며 산다. 미 감염자도 외출 시 꼭 마스크를 쓰고, 사람 모인 곳 안가기,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씻기 등의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 귀여운 우리 두 손자도 꼼짝없이 자기 엄마들과 집에 갇혀서 이 봄을 지낸다.벚꽃이 피었을 때, 세 살짜리 손자 녀석과 그 아빠와 인근 주택단지에 조성된 벚꽃 길을 처음 드라이브 스루를 한 적이 있다. 차창 밖으로, 예전과 같지만 다른 봄이 와락 달려들었다. 이어, 드라이브 스루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는 장면도 처음 겪었다. 주일예배를 자차 안에서 드리는 교회도 있다. 코로나19 감염검사도 워킹 스루 방법으로 한단다. 분명 자연은 같은데. 사람이 다른 봄이다.잔디밭에 만들어진 클로버 차단 이랑과 고랑이, 꼭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 만들어진 전염 차단 망(網)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코로나19란 괴상한 전염병 확산이 정말 박쥐에서 비롯된 자연현상일까. 만에 하나, 사람이 만든 것이 개입되어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우리가 어찌 살아내야 할지 깊은 걱정이 앞선다.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본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신록에 생명의 오라(aura)가 뿜어 나오고 있다. 첨단과학 시대를 사는 인류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코로나19 격리의 올봄을, 그 불행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방역 당국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좋은 봄날 신록의 교정을 걷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분들이 마냥 고맙다.

2020-05-06

터널은 빠져나갈 때가 더 위험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사뭇 긴 터널이었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모두 긴장하였다. 감염위험을 가까이 두고 아슬아슬하게 지낸 몇 달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텅빈 도시와 썰렁한 교실, 손님없는 음식점과 관객없는 극장은 현대 문명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었다. 위기 앞에 유난히 강한 국민은 이번에도 어려움을 극복하는 슬기를 보여 주었다.세계가 놀라는 여러 기록을 남기며 우리는 서서히 위기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학교가 문을 열고 학생들을 맞는다. 장터에 활기가 넘치고 휴가 행렬에 다시 봄기운이 돋는다. 신규확진자 발생이 현저히 줄었으며 뉴노멀(New normal)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세계는 아직 몸살 중이지만, 대한민국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중이다.이래도 되는가 싶다. 북적이는 도심이 돌아오고 사람 많은 공원을 다시 만나지만, 벌써 이래도 되는가 걱정이다. 국내는 진정국면이라 해도 다른 나라들 상황은 아직 어렵다. 감염 추세가 한풀 꺾였던 싱가포르에 코로나19가 다시 무섭게 번지는 걸 보아도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개발도상국가들에 새롭게 번져가는 양상도 또 다른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집안에 웅크렸던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니 반가우면서도 혹시나 싶은 걱정이 마음에 걸린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과제가 보이지만, 모든 문을 활짝 여는 일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여야 할까. 지역의 오일장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들일까. 동굴처럼 길었던 격리된 일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긴 해도, 헤쳐나온 터널 끝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세상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 하지 않는가. 생활 속 거리두기와 상대방 배려하기, 온라인교실과 원격소통방식, 달라질 공연과 스포츠문화,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다가올 세계질서와 판도의 재구성, 사이버와 온라인의 본격적 자리매김, 달라질 소비문화와 변해갈 레저환경, 급변할 경제환경과 이미 달라지는 외교관계, 급변할 의료환경과 질병 간 우선순위, 글로벌 소통과 협력양태의 변화, 시민들이 새롭게 새길 국가의 역할, 변해갈 사람 간 관계형성과 유지방식, 다르게 해석해야 할 과학문명의 의미와 새롭게 평가해야 할 자연환경의 가치, 노동시장과 상거래방식의 변모.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남길 생각거리와 담론과제가 차고도 넘친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양이면 사려깊게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터널은 빠져나갈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총, 균, 쇠’에서 총이 대변하는 전쟁과 쇠가 상징하는 문명과 함께 균으로 표현되는 질병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왔다고 하였다. 겪고 보니 바이러스가 전쟁이나 문명보다 의미심장한 변화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터널을 잘 빠져나가야 한다. 터널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터널 밖 세상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생각깊은 지혜를 가다듬어야 한다.

2020-05-06

뉴노멀(New Normal) 시대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부터 일터, 사회, 국가단위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으며, 이같은 변화는 코로나19 창궐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새로운 표준이란 뜻에서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불린다.경제학에서 뉴노멀이란 용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 모하마드 엘 에리언이 저서‘새로운 부의 탄생’(2008)에서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 미국 시장의 영향력 감소 등을 위기 이후의 ‘뉴 노멀’로 지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뉴노멀로 지칭되는 현상은 경제학적 용어보다는 주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변화를 가리킨다. 언택트 문화, 온라인 시장의 확대, 홈콘텐츠의 부상 등이 특징이다.코로나19로 기업의 비대면 업무와 협업 기회가 늘면서 기업의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학교도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고, 웹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주택분양시장도 유튜브 라이브로 공개되고, 청약 시스템도 온라인에서 가능해졌다. 소비도 온라인으로 대체돼 외식은 줄어들었고, 옥션, 11번가 등의 온라인 판매가 전년에 비해 300% 이상 늘었다.‘집콕’ 시간이 늘어나자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트래픽 폭증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접속장애를 일으킬 정도였다.프로야구 KBO리그 2020시즌이 개막된 5일, 관중석이 텅빈 서울 잠실구장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등 수도권 구장엔 십수명의 외신기자들이 개막전 준비상황과 경기진행 모습을 세계 각국에 전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의 뉴노멀이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방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06

5월에는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바이러스에 봄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로하듯 예년보다 훨씬 진한 아카시 꽃의 향과 꿀이 도로를 따라 흐리기 시작했다. “우정, 즐거움, 깨끗한 마음”과 같은 꽃말 때문인지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이 4월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밝고 경쾌하다. 나무마다 고봉으로 핀 이팝나무꽃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5월의 응원 선물이다.“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계의 화두를 생각했다. 다음 뉴스들에서 코로나 19 이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같이 찾길 바란다. 그 답이 바로 우리 교육계가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코로나19에 지구는 회복 중, 맑아진 ‘중국·인도’ 하늘 눈길” “관광객 줄자, 60년 만에 맑아진 베네치아 운하” “인간에겐 치명적, 자연엔 치유 기회?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이들 뉴스를 한 문장으로 하면 “이기적인 인간이 사라지자 자연이 본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이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코로나19로 인간의 발걸음이 봉쇄된 지구촌 곳곳에 뜻밖의 손님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략) 아르헨티나에서는 인적이 드물어진 해변 자동차 도로에서 바다사자가 누워 자기도 한다. (중략) 울릉도에서는 멸종된 줄 알았던 독도 강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건강에는 치명적이지만, 자연에게는 치유의 기회로 다가오는 역설이다.”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해코지하고 살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 디디고 사는 곳 중에서 자연이 아닌 곳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을 잊고 마치 자연의 주인인 양 염치도 없이 자연을 군림하며 살고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코로나19가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오늘도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오로지 이기심밖에 없다. 배려, 희생, 사랑 따위의 말들은 인간이 자신의 악성(惡性)을 감추기 위해 만든 위장(僞裝)막에 불과하다. 물론 선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행동 또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 없다.치유와 회복의 길에 든 자연과는 달리 교육계의 혼돈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편의에 따라 강행된 온라인 수업 중 일부 수업은 교육계의 인재(人災)이다. 교사 중심의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그나마 있던 학교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이는 재난 수준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을 “숙제 노동자”라고까지 표현한다. 출석 체크를 위한 과제 학습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구조 신호를 학생들은 계속 보내고 있지만, 답을 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자연은 코로나19의 역설로 인해 회복되고 있지만, 학교는 온라인 수업의 역설에 무너지고 있다. 5월에는 교육도 자연처럼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를 전한다.“(….) 피곤하고 산문적인/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 (‘5월의 시’)

2020-05-05

꽃길을 걷게 되거든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완연한 봄, 꽃들이 만개하고 군데군데 꽃길이 눈에 띈다. ‘길’이란 말은 중의적이다.‘꽃길’이란 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려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있는 길이다.비유적으로는 일이 잘 풀리거나 좋은 일을 의미한다.반대되는 말로 가시밭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이다.대중가요의 노랫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꽃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미지가 길이라는 단어에 덧붙여져 참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주변의 크고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산책길을 걷다보면 길 양쪽으로 잘 가꿔 놓은 꽃길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산책하는 기분이 꽤 좋아진다.길에 뿌려진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되는 길은 아니지만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길 어귀에 ‘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글귀라도 마주치게 되면 덩달아 발걸음에 흥겨움이 더해지게 된다.그런데 길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길 단장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관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보인다. 흥겨움에 젖어 걸어가는 꽃길은 그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다.슬쩍 미안함이 밀려온다. 꽃길에는 그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꽃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꽃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꽃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잘 걸어가던 사람이 생각난다.큰 건물에는 건물 내외를 청소하거나 시설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있다.고용조건이 열악함에도 궂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특히 청소일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한다.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하고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 복도 등 구석구석 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노동이다.어느 날 아침, 계단을 오르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계단 끝에 달린 미끄럼 방지 요철물을 닦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이물질이 끼어있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열심히 닦고 광택을 내고 있었다.직원들의 출근길을 상큼하게 해줄 꽃길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무심코 계단 끝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작업한 자리가 다시 더럽혀지곤 했다.그런데 요철부분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아주머니,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아침인사까지 곁들였다.짧은 순간 일어난 일을 보면서 ‘꽃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누구일까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환하게 빛나는 뒷모습만 보았다.계단 끝 요철을 볼 때면 흐뭇한 기억으로 떠오른다.누구나 꽃길을 걷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긴 여정을 가노라면 꽃길만 걷게 되지 않는다.설령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걷게 된 꽃길일지라도 결코 혼자만의 꽃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산책길 가장자리 꽃처럼 누군가 소리 없이 꽃길을 단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면 좋겠다.“딸, 아들아! 꽃길을 걷게 되거든 꼭 꽃길 만든 사람도 생각해라.”“저희 아직 가시밭길 가고 있습니다. 취업도 해야 하고….”

2020-05-05

재기(再起)의 길을 묻는 보수에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보수는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보수가 올바른 혁신의 길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는 통합당으로서는 ‘사즉생(死卽生)’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는 조건들이다.보수의 재기를 위한 혁신의 길은 무엇인가? 혁신의 전제는 총선 참패에 대한 참회와 자성이다. ‘정권심판’을 외쳤던 보수가 오히려 ‘야당심판’을 당했다. 유권자들은 그 원인이 ‘여당이 잘해서’(22%)가 아니라 ‘야당이 못해서’(61%)라고 답했다. 2040세대의 통합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80%를 넘고 있다. 선거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다. 통합당은 진보의 위선과 반칙을 비판했지만 보수의 품격과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핵심당원들의 평균연령이 60세이고, 지역분포는 영남이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낡고 늙은 꼰대당’으로 각인되었고, 강남당·영남당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극우 태극기부대에 휘둘리면서 포용성과 확장성을 잃었다.이러한 사실은 혁신의 주도세력이 ‘수도권의 3040세대’가 되어야하며, 혁신의 방향은 ‘포용성과 실용성의 확대’임을 말해준다. 혁신을 위해서는 경직된 보수가 아니라 수도권에서 격전을 치른 3040세대가 주도해야 민의(民意), 특히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도층의 표심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통합당이 보수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했으니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금수저는 흙수저의 고통을 모른다.”는 비판은 통합당의 대중성과 공감능력이 부족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보수의 가치인 자유·안보·법치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청년실업·서민경제 등 시대적 아픔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 그리고 이념투쟁보다는 국민의 생활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실용성이 크게 확대되어야 한다.더욱 중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을 실천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통합당은 선거패배 때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해 놓고서는 말뿐이었다. 혁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국민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말까지 했으니 총선참패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보수의 재기는 국민이 통합당의 변화와 혁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혁신의 길은 고통의 길’이다.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며 때로는 자기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늙은 보수·웰빙 보수·기득권 보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자 시련이다.정치인으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면 혁신의 고통도 즐거움이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 대의(大義)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혁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혁신할 수 없다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물러나라. 나를 바꾸는 혁신도 싫고 권력도 내려놓지 않겠다면 결국 당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2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