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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여성관리자 비율, 더 중요한 이유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영국 정부는 2018년 현재 2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성별임금격차 공개를 의무화하였다. 세계 25대 금융기업 중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의 수익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해 여성임원 비율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정부평등국 자료에 의하면, 영국의 100대 금융기업 중 여성임원은 전체의 29%며, 350대 금융기업 중 여성 CEO는 고작 13명, 의장은 21명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턴트 회사인 맥킨지앤컴퍼니가 2018년 1월 펴낸 ‘Delivering through Diversity’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임원 비율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순수익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체인 여성 비즈니스위원회는 영국 주요 기업 CEO에게 2020년까지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을 최소 33%로 늘리기, 3년 안에 임원이 될 능력이 있는 여성을 1~3명 지원할 것, CEO가 직접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을 위해 조직 내 대화 창구확대 등 요구 사항을 강조했다.한편, 국내 역시 여성정책에서 양성평등정책 전환의 과도기는 ‘제1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2015-2017)’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양성평등정책의 본격적인 패러다임은 ‘제2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2018-2022)’에 반영됐으며, 여성인력 활용정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 변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정치 및 정부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공공부문별 여성 대표성 확대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이행해 왔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여성 고위공무원 목표제, 공공기관 여성임원 목표제 등 정부·공공기관에서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여성관리자 혹은 임원 비율을 향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정부가 시행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차별에 의해 왜곡된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로잡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아울러 소극적인 차별해소를 넘어서서 실질적 양성평등이 이뤄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차별 받은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책을 계획·수립·집행·환류가 단계별로 남녀 비율이 균형 있게 참석해 의견을 개진해 성별 고유특성과 경험, 문화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성별균형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공공 및 민간 여성관리자 비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간부문 여성임원 20% 할당제 도입, 전문성을 갖춘 여성인재 발굴 및 인재DB 구축을 지속가능하게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문화 구성원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여성인력육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CEO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유연근무제 등 일·생활균형 정책이 조직구성원 모두에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캠페인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내 여성고용 및 여성관리직 비율을 향상시키고, 가족친화문화를 조성해 조직내 양성평등실현에 기여하고 있는 우수기업을 선정해 우대하는 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직의 성과는 의사결정시 주요 핵심 역할을 하는 여성 임원의 비율과 많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0-04-07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1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기초는 ‘올바름’입니다. 요즘 생각학교 ASK에서는 플라톤의 ‘국가’를 토론 중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올바름’에 대해 설명합니다. ‘국가’를 정치학에 관한 책으로 오해하지만 실은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아 ‘올바름’에 기초해야 한다는 고찰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정체(politeia)를 비유로 설명합니다.1937년 일본 도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습니다.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자랍니다. 해방이 되자 먹고살 길을 찾아 귀국합니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 머물며 동네 교회에서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인연도 잠시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합니다. 생계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팔고,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 등으로 연명합니다. 다시 안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열아홉 나이에 폐결핵이 악화하여 신장 결핵,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집니다. 수술을 해 준 의사는 잘 관리하면 2년쯤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습니다. 나이 서른살이 되도록 누워서 앓는 것이 일과였던 그는 함께 살던 남동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결혼시켜 내보내고 일자리 하나를 구합니다. 경북 안동의 일직면 조탑교회에서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가지요. 월급 한 푼 없고 단지 방 한 칸 얻어 살며 종을 쳐 주는 조건입니다.여름이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개굴 웁니다. 겨울이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지요. 심지어 추위를 피해 옷 속을 비집고 들어와 겨드랑이까지 파고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생쥐와 친해져 먹이를 준비해 놓고 기다릴 만큼 서로 정이 듭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7

커피에 관한 짧고 얕은 지식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커피가 우리의 일상을 차지한지 오래다. 손에 커피를 들고 식후 시간을 나누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도시의 한 풍경이 되었다.들녁에서도 막걸리로 축이던 목을 커피로 대신하고 있으니 커피제국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커피의 최초 발견은 에디오피아. 염소가 따먹는 열매에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모카커피’는 예멘 모카항을 경유하는 커피의 대명사였다고 한다.오스트리아 빈에 가서는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면 모른다고 한다. 아인슈패너라고 해야 한단다.이슬람 음료였던 커피를 기독교인들은 초기에는 ‘악마의 음료’라고 금지령을 내려 못 마시게 하려했으나 오히려 교황이 맛을 보고 세례를 주었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터키에서는 남녀가 선을 보는 자리에 대접하는 커피 맛으로 혼인을 맺을지 의사표시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미국인들의 커피는 남북전쟁 당시 군용품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각성효과와 잠을 쫒아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미국 커피박물관에는 소형 커피드립기를 장착할 수 있는 소총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커피는 중요한 군용품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커피 이름에는 에스프레소(빠른제조), 카푸치노(머리두건), 마키아토(얼룩진), 아보카도(퐁당 빠진 덩어리) 등등 이탈리아어가 많다.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커피의 원형으로 알고 마신다.미국사람들이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는 것을 보고 아메리카노라 불렀다는데 고증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한 겨울에도 한국 젊은이들의‘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마시기는 또 다른 패기와 발랄함이다.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는 초창기에는 사회적 논쟁과 교류의 장이었다.철학자 사르트르가 카페 드 플뢰르에서 사유하고 볼테르가 하루 40잔씩 마시며 혁명의 이념을 고뇌한 곳도 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 드 프로코프였다.학생들의 공부방이 되어 여유보다는 치열한 삶의 전투장으로 변해가는 오늘날 우리의 카페모습과 대비된다.커피에 대한 느긋한 인문학적 고찰에도 불구하고 아동착취나 문화제국주의와 같은 그늘짐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얼마 전 커피전문점 개업에 대한 규제를 알게 되고부터 마냥 호사를 부리기에는 마음 한 곳에 무거움이 있다.시장점유율이 확장일로에 있는 외국 유명브랜드 커피전문점은 직영체제로 거리제한 없이 개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가맹점 체제인 국내 토종 브랜드 커피전문점은 골목상권 보호차원에서 신규 지점 개점은 기존 점포와 거리제한을 두고 있어 고전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선거철이다. 선량후보자들이 ‘손톱밑가시’, ‘전봇대’라며 규제철폐를 외치는 화려한 수사로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위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커피전문점 개업규제처럼 짧은 지식이지만 알고 나면 단순하게 즐기며 마시는 커피라도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토종 커피브랜드는 어떤 게 있는 거지? 다 외국말인데?”

2020-04-07

선승후전(先勝後戰)

천 번을 읽으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은 빌 게이츠가 극찬한 병법서다. 그는 “오늘날 날 있게 한 책”이라 했다. 난중일기에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이순신 장군도 즐겨 읽었다 한다.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많이 읽힌 병법서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이 처세의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요량을 잘 정리한 책으로 평가 받는다.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출신의 손무가 지었다. 군사운용의 기본 원칙부터 실전에 응용될 수 있는 전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싸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도 이곳에서 나왔다. 세상의 이치를 정확히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현대사회 어느 분야, 어느상황에 적용시켜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인간사회의 근간을 잘 파악하고 있다.특히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 제시로 2천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생의 지침서가 된다. 처세의 어려움을 알 나이에 들면 손자병법을 한번쯤 읽어 보라 권하는 이유다.그러나 손자병법은 병법이라 하지만 의외로 전쟁을 적극 권장치는 않는다. 손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미리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싸우라는 뜻이다. 불가피하게 싸워야 할 상황이라도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는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것이 손자의 핵심 가르침이다.총선 열기가 종반전 들면서 뜨겁다. 선거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 지는 미지수다. 손자는 선승후전(先勝後戰)이라 가르쳤다. 미리 이겨놓을 만큼 준비해 싸우라 했다. 출마 후보자들은 과연 내가 싸울만큼 준비해 싸우고 있는지 지금쯤은 느낄까./우정구(논설위원)

2020-04-07

청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김승옥 작가그래도, 꽃은 피고 있다.서로 반갑지만 그리 반가워하지 못하는 얼굴들 사이로. 새로 학교를 들어간 아이들의 설렘이나 새롭게 만나게 된 인연에 대한 예감을 쉽사리 표현하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고 있다.생각해보면, 형편이 너무 어려워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시기에도, 전쟁을 겪으며 온통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시기에도, 꽃은 어김없이 이맘때가 되면 피었을 것이다. 그 시기 힘들었던 이들은 그 꽃을 보고 잠시나마 위로를 얻었을지, 아니면, 무참한 시간에 오히려 부아가 났을지 가늠하기 어렵다.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에 대해 노래하고 썼던 글들은 그렇게 인간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고됨과 절망에 대비되어, 그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저렇게 ‘저만치’ 놓여 있는 자연의 무심함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의 시간은 그렇게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원리를 따라 흘러가고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보며, 때로는 인생을 그것에 비유하거나, 때로는 훨씬 더 심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에 비교해 그 무심함을 탓한다.우리가 마치 청춘의 상징처럼 생각하고 있는 ‘막막함’이나 ‘무분별함’은 어쩌면, 그러한 사고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서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문학이 인간과 사회의 운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소위 ‘성숙한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에 비해, 봄날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처럼, 가볍고 변덕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젊음을 문학의 형식을 통해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를 필요한 일이었다.문학이 ‘청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고 독자들이 그것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지금은 문학의 가장 커다란 주제 중 하나인 ‘젊음’이나 ‘청춘’의 유동성과 덧없음은 실은 근대 이후에 ‘발굴된’ 것이거나 ‘재발견된’ 것이다.어느 시대에나 ‘막나가는’, 그래서 ‘미성숙한’ 젊은이들은 존재해왔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서사들은 결국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상상해왔다. 무분별했던 아이가 세상의 온갖 쓰디쓴 경험을 하고 나서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서사들은 결국 젊음이 갖는 독자적인 가치보다는 완성된 인간에 대한 미달형의 상태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미숙한 젊음을 예찬한다는 것은 항상 주류 사회의 관점으로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위험한 ‘신드롬’으로 표상되거나 사회의 올바른 기능을 위협하는 반항적 태도로 간주되기 일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예찬할 만한 가치를 갖는 중요한 문학의 주제다. 젊음의 미숙함이란 죄악이 아니라 풍요로운 감정과 감각의 산물인 까닭이다. 진중하지 못하고 끓어 넘치는,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젊음이란, 바로 짧은 순간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일회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물론, 이처럼 ‘청춘’의 아이콘이 된 그들의 반항은 오히려 기성 세대들에게는 청춘의 추억을 자극하는 대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막 힘겹게 그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기억은 언제나 보정되고, 청춘의 고됨은 채색된다.오랜만에 모처럼 서가에서 어떤 세대에게는 청춘을 상징했을 김승옥과 최인호의 책을 하나씩 꺼내본다. 김승옥이 고백하는 부끄러운 어린 시절의 자아상은 어떤 시기에는 독자들에게 바로 청춘의 미숙함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아마 지금 시기에 어린 학생들이 읽으며 위안을 얻고 있을 것들 역시 어떤 시기가 되면, 청춘의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채색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시간은 조금씩 흔들리며 변화해가는 것이다.그래도, 꽃이 피고 있다. 미숙하여 아름다울 이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서로를 위로하자. /홍익대 교수

2020-04-06

그곳에 오래된 사랑 있어… 산청 내원사(內院寺)

지리산의 봄은 물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지리산 가는 길은 온통 봄꽃이 피어 열병을 앓는데 깊은 계곡에 몸담고 있는 내원사는 어쩌면 저토록 차분하기도 할까. 내원계곡과 장당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절의 양쪽으로 지리산의 청정 계곡이 흐르는 까닭만은 아니리라.내원사(內院寺)의 옛 이름은 덕산사(德山寺)였으며 통일신라시대 무염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무염국사는 무열왕의 후손으로 중국 마조 문하의 법맥을 이루었으며 동방의 대보살로 일컬어졌던 분이다. 무염의 법은 충남 보령에 소재하는 성주사의 일맥을 이루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이 되었다.덕산사는 이후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오다 조선 광해군 1년(1609년)에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된 채 수백 년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고 이름을 내원사(內院寺)라 하였다. 내원(內院)은 도량이 느껴지는 불교 용어로 도솔천에 있는 선법당을 말한다. 미륵보살이 살면서 설법을 한다고 하니 절 이름만으로도 깊고 심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찰이다.계곡 건너편 높다란 석축 위에 쌓아올린 담장과 그 위로 고개를 내미는 기와지붕들, 절은 결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아담하고 고요하다. 물소리가 예불 소리를 대신하는 반야교를 건너는 동안 이미 세속의 때는 벗겨진다. 노선비의 곧은 숨결 같은 경내로 들어서는 발걸음만 조심스럽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들떠 있는 봄조차 내원사의 담장을 넘지 못하고 비켜가는 걸까.절은 봄소식에는 무심한 듯 돌아앉아 묵직하다. 무언가에 끌려 들어서는데 검붉은 색을 띤 삼층석탑이 온몸으로 안겨든다. 보물 제 1113호 삼층석탑은 철분이 많은 석재로 만들어진 것인지 온통 붉은 빛깔로 얼룩져 있다. 1609년 큰불이 났을 때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인지도 모른다. 우주와 탱주가 굵게 모각되어 튼튼해 보이지만 비바람에 버텨온 노쇠함은 감출 수가 없다. 안내문에는 무열왕 때인 657년에 세워졌다고 하지만 통일신라 말기에 건립되었다는 설도 있고,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사학자가 아닌 내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단한 역사를 안고 서 있는 탑 앞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던 자아도 닻을 내린다. 불법을 수호하며 나라를 지켜온 고대부터 빨치산과 마지막 토벌전을 벌이던 근래의 아픔까지 탑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응축되어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석탑은 지난한 풍파 속에서도 천년의 기품을 잃지 않는다. 훼손이 심하다. 인적이 없는 내원사, 허리 휜 할미꽃들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탑을 지킨다.대웅전도 단청이 벗겨져 나이보다 깊고 쓸쓸해 보인다. 잎 새 뒤에서 수줍게 꽃을 피우는 연륜 깊은 동백나무와 은목서 한 쌍의 깊은 눈빛, 스님의 법복이 걸려 있는 대웅전 법당에서 느껴지는 훈기와 안온함, 게다가 대부분의 전각들이 작고 소박한 것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가. 향냄새에 몰려나오는 한 때의 가난과 아픔조차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이지 않은가.국보 제 233-1호 동양 최초의 비로자나불이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들어선 비로전 법당에는 삼층석탑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비로자나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앞에 서는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석불, 얼얼한 울음과도 같은 감동이 온몸을 휘감는가 싶더니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단아한 눈, 단정한 코, 작고 예쁜 입, 볼록한 뺨의 양감이 돋보인다는 안내문과 달리 아무리 찾아보아도 석불의 표정은 잡히질 않는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것도 같고 고통으로 힘겨워 하는 것도 같다. 입자가 거친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마멸이 심하다. 세월은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고 또 여전히 많은 것을 남겨 두었다.조각 솜씨는 거칠지만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어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표정 없는 불상 앞에서 어쩌자고 내 가슴은 자꾸 아련해지는가. 지리산 골짜기 인적도 드문 절에 숨어 있듯 살아가는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상의 심한 마멸과 상흔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에 기뻐하며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지를.조낭희 수필가석조비로자나불상과 함께 있었던 국보 제 233-2호 납석사리호는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명문을 통해 혜공왕 2년(766년)에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반야교를 걸어 나오는데 무언가로 가슴이 뿌듯하다. 그런데도 왜 자꾸 뒤가 돌아 보이는 것일까.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싶으면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내원사로 가라. 물소리 홀로 내원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봄조차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비켜가는 스산한 적요 속에 당신의 모든 것 내려놓고 한 떨기 꽃이 되어보라.그리운 사랑 하나, 그대 가슴에 달처럼 차오를 것이니.

2020-04-06

막장정치와 선거보조금

강희룡 서예가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불법 정치자금 축소 등을 명분으로 지난 1980년부터 시행되어온 제도다. 선거보조금은 정당의 보호와 육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 의해 공직선거가 있을 때에 지급한다. 따라서 선거가 있는 해마다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을 대상으로 경상보조금 지급기준에 따라 후보 등록 마감일을 기준으로 지급된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제21대 4·15총선에 여야 12개 정당에 선거보조금 440억7천여 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선관위는 정치자금법 제26조에 따라 전국 253개 지역구의 30%(76명) 이상을 여성 후보로 낸 당에게 지급되는 여성추천보조금을 77명의 여성후보를 낸 국가혁명배당금당에게 보조금으로 8억4천 여 만 원도 지급한다고 밝혔다.이번 4·15 총선에서는 20대 국회에서 여당과 범여 군소정당들이 야합한 4+1협의체라는 정치구조로 선거법인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21대 국회에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제1야당을 뺀 채 통과시켰다. 이 꼼수정치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바로 거대 양당의 2중대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230억 원의 선거보조금과 양당의 위성정당까지 포함하면 무려 300억 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거보조금이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꼼수 위성정당에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위성정당 후보들이 총선 후 통합 혹은 모 정당으로 복귀를 공언하고 있어 거대양당은 위성정당 몫인 85억 원에 달하는 선거보조금을 사실상 편취하고 있는 셈이다.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정지되고 전 국민이 절박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양당은 국민혈세인 선거보조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선 벌써부터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바람이 시작됐고 영세소상공인은 당장 임대료조차 낼 여력이 없어 연쇄폐업 우려까지 나오는 등 당장의 생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이 편법적으로 수십억의 선거보조금을 챙기는 것은 전염병과 사투하며 시름하는 민생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선관위가 법의 취지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법에 명시된 기준만을 적용해 선거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도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남성중심의 정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규정한 정치자금법을 악용한 ‘허경영당’으로 불리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여성추천 보조금 8억4천만 원을 싹쓸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배분자격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선거보조금을 마구 지급한 것이다.국고보조금은 수 만원을 부당수령해도 고발되거나 환수되는 것이 당연한데, 수십억을 편취해 가는 정치행위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치에는 룰과 시스템이 없고, 국민세금은 감사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 결국 그 돈은 당권파의 쌈짓돈이 된다.권한과 권리는 줄이고 싶지 않고, 의무나 책임 그리고 감시는 피하려고 하는 국회의 막장정치에 선관위가 만든 막장선거판이 아수라장을 만든 것이다. 눈 먼 돈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다.

2020-04-06

장수 비결

조선 11대 왕 중종은 몸이 약했습니다. 왕의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던 왕실은 순창 지역에 122세의 장수 노인이 있다는 소식이 궁중까지 올라옵니다. 왕실은 예조에서 똑똑하다고 알려진 김시원을 뽑아 순창으로 내려 보냈지요. 노인의 아들 마행곤(馬行坤)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면 장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합니다.첫째 할머니가 아침에 가장 먼저 드시는 것은? 둘째 할머니가 육종(암)에 걸린 적이 있는데 이를 치료한 약은? 셋째 가족들이 매일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는 것은?천재 김시원은 1, 2번 문제를 쉽게 풀어냅니다. 가장 먼저 먹는 것은 맑은 물 한잔. 암 치료제는 지역 발효 식품과 소식(小食)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제가 어렵습니다. 며느리는 떡을, 둘째 아들은 비녀를 갖다 드립니다. 손자는 천자문을 읽어 드리지요.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주는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김시원은 혼란에 빠집니다.며칠 동안 가족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던 김시원은 어느 날 증손자가 아무것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방에서 계속 들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김시원은 마행곤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 비밀은 효(孝)입니다.” 마행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무리 귀하고 몸에 좋은 선물이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효를 다해 부모가 걱정 없다면 어찌 천수를 못 누리겠습니까!”조씨 할머니 장수 비결은 맑은 물을 마시고 발효 식품으로 소식(小食)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효(孝)를 행하는 것으로 김시원이 밝혀냅니다. 중종은 할머니와 일가족에게 상과 음식을 내렸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유전공학 발달로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늘어난 노년을 더 깊고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6

찬란한 슬픔

조현명 시인봄이 되니 지천에 꽃이다. 벚꽃은 벌써 지고 개나리 철쭉이 산천에 잔치를 벌인다. 꽃이 피니 세상이 밝아지고 아름답다. 바람에 꽃잎이 휘날려 밝은 빛이 내린 듯 열기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신천지다. 헉 여기에 신천지가 나오다니.그러고 보니 세상은 양면성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좋은 뜻을 담고 있는 단어가 온 세상의 지탄이 된 사이비종교의 명칭이었다니….코로나19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우한’과 ‘신천지’ 등이다. 우한의 봄에도 꽃이 필 것이고 신천지의 교단에도 꽃을 장식하고 꾸미는 헌화가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 꽃 잔치를 슬픔과 죽음의 상가로 바꾸었다. 바깥 세상에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고 기쁨의 빛이 넘쳐흘러도 코로나19로 집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의 덧없는 풍경일 뿐이다.몇 해 전 젊은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 어찌 되었건 그해 봄날 벚꽃아래에서 웃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누나는 오열하고 만다. 벚꽃아래에서 웃고 떠들던 그 음성조차 잊지 않고 기억나고 지워지지 않는다. 벚꽃만 피면 그 찬란한 슬픔 때문에 꽃구경은커녕 눈물로 적신다고 했다.올해 봄 코로나19로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은 역시 이 꽃 잔치를 슬픔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찬란한 슬픔이라고 이름 지어도 괜찮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꽃이 아름다워 마음속에 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 세상의 꽃은 어린이, 젊은이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에 더러워지고 추해지는 것이 꽃이기도 하다.목련이 필 때의 아름다움보다 목련이 지고 난 뒤 그 시체들의 추함을 나는 주목한다.물론 그것도 곧 바람에 쓸려나가고 말테지만 꽃들은 다 죽음을 안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사람들은 추한 것은 가까이하지 않고 밝고 예쁜 것을 가까이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꽃이 진자리는 주목하지 않는다. 사실은 꽃이 진자리가 진면목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확대한 모습을 보면 마치 꽃 같다. 물론 왕관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코로나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같다. 저들의 사멸과 결국은 똑같을 것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것 말이다.모질지만 사람은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난다.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숙명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꽃들은 다 그 죽음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부터 꽃을 그대로 보지마시길…. 저것들이 저마다의 깊은 슬픔을 안고 아름답게 꾸미고 나와서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을…. 저것들이 짐짓 세상의 슬픔은 혼자서 다 감당하겠다고 찬란하게 폭발하고 있음을…. 미당은 시 ‘봄’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복사꽃 픠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 -‘봄’ 전문

2020-04-06

사회적 거리두기

사회적거리는 원래 동물의 행동분석에서 무리에서 떨어진 개체가 다시 무리로 되돌아오는 행동상의 한계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작은 새 무리는 비교적 많이 흩어져 있으면서 어떤 거리 이상 떨어진 개체는 다시 무리 쪽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무리가 흩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거리 이상 무리에서 떨어지면 불안을 느끼는 거리가 존재하는 데, 이것을 사회적거리라고 한다.사회적 거리는 이런 개념을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인간감정의 친소도에 적용한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R.E.파크가 제창한 개념으로, 공간에서 두 지점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거리의 개념을 친밀감이나 적대감 등의 인간감정에 도입해 친근성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다. 예를 들면 친구 사이가 통근·통학시 버스·지하철에서의 인간관계보다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심리학에서 쓰이던 사회적 거리 개념은 2020년 2월말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코로나19 전염병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간의 거리를 유지하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캠페인을 제안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눈이나 비가 오는 날처럼 집에 머무르고, 재택근무나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예배 등의 집단 행사나 모임을 삼가하자는 내용이 골자다.대한의사협회도 2월 28일 대국민권고안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을 제안했고, 권준욱 중앙방역 대책본부 부본부장도 코로나19의 피해와 유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 위생과 함께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사회적 격리(거리 두기)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06

총선, 유권자가 희망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처럼 기막힌 ‘막장 선거판’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선거 승리만을 위한 꼼수 비례당과 꼼수 공천이 난무한다. 권력밖에 모르는 교활한 정치꾼들은 국민이 고통 받고 있는 코로나사태까지도 선거전략의 하나로 이용하고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기꾼들이 설치고 있는 한국정치의 현실이다.선거법 협상을 거부했던 미래통합당은 하나의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개의 위성정당을 거느리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때 ‘표를 훔치는 도둑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통합당은 바늘도둑’이고 ‘민주당은 소도둑’이 아닌가? 민주당은 스스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의겸·최강욱 등 청와대 참모들과 정봉주·손혜원이 또 하나의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2중대와 3중대를 만들어 놓고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총선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사려는 포퓰리즘(populism)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삶의 토대를 잃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코로나를 빙자하여 지방정부들은 경쟁적으로 현금을 살포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국민의 70%에 가구당 100만원씩 주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더불어시민당은 모든 국민에게 매달 6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중앙선관위에 제출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철회하였다. 재난구호를 명분으로 매표(買票)행위나 다름없는 현금살포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이처럼 총선을 앞둔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개 눈에는 X만 보이고, 정치꾼 눈에는 표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그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다.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혹자는 정치판 돌아가는 꼴이 보기도 싫고, 마음에 드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 유한한데 완벽한 정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 정당, 좋은 후보자를 찾지 못했다면 덜 나쁜 정당, 덜 나쁜 후보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선택에 있어서 유권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특히 경제정책의 성과는 무엇이며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이 있었는가? 조국 일가의 비리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코로나의 확산 원인은 무엇 때문이며 정부의 방역대책에는 문제가 없는가? 후보자는 사익보다 공익을 중시하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인가, 권모술수에 능한 ‘교활한 정치꾼(politician)’인가? 선거 때만 머리를 조아리는 말뿐인 사람인가, 언제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인가?4월 15일은 유권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날이며, 민심이 천심(天心)임을 증명하는 날이다. 오직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죽어가는 한국 민주주의를 회생시킬 수 있다.

2020-04-06

참정권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다. 17∼18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은 절대주의를 붕괴하고 민주주의를 불러왔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정치 참여권 부여는 한참 뒤에 이뤄진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의 참정권을 막았던 것이다.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다. 이후 1902년 호주, 1906년 핀란드 그리고 미국은 1920년 남녀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주었다. 참정권은 모든 국민이 직·간접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정신에 기초한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 국민심사권, 공무담임권 등이 해당한다.봉건사회에서 일부 돈 많은 부유층이 누렸던 참정권은 시민혁명이란 고난의 역사를 뚫고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돌아 온 권리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다. 그래서 참정권을 정치적 자유권이라고도 부른다. 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은 소급 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을 제한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참정권 보장을 선언하고 있다.총선을 10여일 앞둔 가운데 코로나 예방을 이유로 확진자 일부의 투표권이 제한된다는 소식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코로나로 치료중이거나 자가격리중인자, 해외에서 들어오는 교민과 유학생 등 선거권 제한에 묶인 사람이 줄잡아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국의 무관용 원칙에 따라 그들의 바깥 활동이 일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솔한 선거권 제한이라며 헌법소원도 냈다.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닌가 하는 비판도 쏟아진다.정부의 졸속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국민의 참정권을 짓밟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4-05

‘개돼지’ 딱지 떼기

안재휘 논설위원교육부 정책기획관이던 나향욱 씨는 취중 실언으로 극심한 고초를 겪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6년 7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진보언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 99%에 해당하는 민중은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망언한 것으로 보도돼 파면당했다. 재판에서 겨우 승소해 강등 복직했지만, 여전히 참담한 처지에 놓여 있다.‘개돼지’라는 말이 갖는 모욕적 이미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폭풍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촛불집회 현장의 단골 선동 문구의 하나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4·15총선 선거가 시작된 이래 ‘개돼지’라는 말이 정치권에 또다시 등장했다. 각기 동원하는 용도는 다르지만 이제 정치권에서 ‘개돼지’ 용어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리에 동원되는 일은 흔하다.인천을 방문한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은 코로나19 사태가 블랙홀이 된 선거판을 지적하며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우리 국민은 절대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정치권의 법인세 감면 주장에 대해 “‘개돼지’ 취급당하며 말라버린 낙수에 더 이상 목매지 말자”고 목청을 높였다.정치권이 써먹는 ‘개돼지’는 유권자들을 흥분시키려는 단골 선동언어가 됐으나, 정작 천박한 행태로 보면 정치권의 의식 자체가 더 의심스럽다. 이번 선거전에 나타난 ‘위성 정당’ 논란만 해도 그렇다. 제1야당을 배제하고 만든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1당독재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위성 정당들을 양산했다. 급조된 통발 정치는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 추악한 만행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여당의 막강 대권 주자 이낙연 선관위원장의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문득 떠올랐다. 나향욱이 인용했다는,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사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돼지’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정치꾼들의 진짜 속마음이 대략 이런 수준 아닐까.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편이면 무조건 칭찬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상대편의 언행은 비틀고 물어뜯는 극단적인 내로남불 행태야말로 진짜 ‘개돼지 행각’이다. 국민의 시시비비(是是非非) 정신을 모조리 증발시킨다는 측면에서 이 나라의 정치인 팬덤 현상은 비극이다. 그 폐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4·15총선 양상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의 고통은 모름지기 ‘물고문’ 수준이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에 우리는 지혜로운 ‘개돼지 우리’ 탈출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층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쏟아지는 포퓰리즘의 우박 세례를 이겨내고 이 ‘개돼지’ 굴욕 딱지를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지는’ 하찮은 하등동물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2020-04-05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쟁력

세계적인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유로운 이동, 외출의 제한, 대규모 행사의 취소나 연기 등 조치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는 가계, 기업 각자 나름대로 지금의 환경에서 자신의 활동을 지속하려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 로이터는 ‘코로나가 만연되면서 온라인화하는 세계의 일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자택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 미국 미시건주에서 온라인원격진료를 시작한 의사, 홍콩에서 실시간 채널로 미사를 주재하는 가톨릭 신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라인으로 댄스 레슨을 시작한 안무가, 베네주엘라 카르카스에서 친구들과 오랫동안 지속했던 아유회를 자택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피크닉으로 대체한 주부 등을 소개하였다. 활동이 제한된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온라인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기업까지 등장하였다. 각 경제주체는 그저 곤란하다는 것에서 벗어나 각자 나름의 생존을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모든 경제활동에서 이와 같은 디지털화나 온라인화가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아날로그에 맞추어 형성되었던 기존의 법적 제도적 기반이 그 속도를 실시간으로 뒤따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변화가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리면서 제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졌다.그렇다면 경북지역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그동안 경북지역의 문제 내지는 한계로 지적되었던 것은 저출산 고령화였다. 23개 시군 모두 농어촌지역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기력이 쇠약한 고령의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이었다. 심지어 구미, 포항 등 주력 산업도시의 부진으로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지역의 한계나 약점을 가진 상황에서 디지털시대로 변화하는 최근의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헤쳐나가면서 생존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만은 않다. 하지만 경북의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이 어쩌면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새로운 장점이자 지역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지역 나름대로 최근의 변화에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기 위한 정책을 궁리하고 마음가짐도 다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용이나 노동력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물리적 노동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근력이 쇠하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고령자는 그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여왔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당연한 진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로 불리는 지금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암묵지 등의 지적자산을 지닌 고급인재들이 단지 청년들과 같은 기력을 쓰지 못하고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다고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앞으로 어르신들이 활약할 시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순수하게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만 판단하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을 갖춘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며 그 영역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여건만으로 고령자들의 고용을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론, 로봇, 기타 디지털기기가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분야를 담당하고 어르신들은 이러한 기계나 디지털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청년들보다 더욱 유효하게 발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과 굳이 육체적 요구조건만으로 비교되며 소외되었던 장애판정을 받은 분들도 자신의 신체적 약점은 이러한 디지털 도구에 맡기고 자신만의 전문콘텐츠를 온라인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활용하는 경제활동도 확대될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각 경제활동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상상해보기로 하자. 대부분이 농어촌지역인 경북에서 특히 농림어업분야는 소중한 경제영역이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부진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나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라도 논밭의 상황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집안에서 농사용 로봇이나 드론을 띄워 화상으로 살펴본 다음 논에 물을 대려면 온라인 농업통제시스템을 통해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버튼만 클릭하면 되는 디지털 농업을 실현하면 된다. 지금의 고령자는 과거 60세 이상의 어르신과 달리 386세대로 컴퓨터 온라인에 일찍 노출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서비스 분야는 사이버대학원까지 등장하였을 정도로 비교적 빨리 디지털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특정 재난, 재해로 인해 출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농어촌의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시스템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초중고에서 원격강의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되 특정 사유로 출석하지 못한 학생들은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함께 수업을 받고 이메일로 숙제를 제출하거나 학교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같은 시간대에 시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은 어떠할까.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부의 공공입찰, 행정복지센터의 주요 민원서류발급 등은 전자화된 지 오래되었다. 이제 좀 더 영역을 넓혀 주요 인허가분야도 필요서류를 전자파일로 접수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상세한 질의 사항이 있다면 굳이 생업에 바쁜 민원인이 공무원을 대면하지 않아도 일이 진전될 수 있는 시대가 예상된다. 유통 등의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가게 주변의 주민들은 해당 소상공인의 가게 아이콘을 눌러 필요한 물건을 골라 주문하되 직접 몇 시에 가지러 갈 것인지 아니면 배달을 요청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현관문을 나서 5분 정도만 걸으면 찾을 수 있는 가게라 하더라도 주민 자신은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집 앞의 가게 대신 서울, 대구 등의 지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쇼핑에서 주문하여 택배로 받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결국, 소상공인들도 디지털화에 동참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건설부동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요 건설공사장의 인력충원 담당자는 일일이 사람을 수배할 필요도 없이 그날 필요한 기능공, 인력요건 등을 온라인시스템에 게시하면 되고, 노무자들도 공사판을 찾아다니기거나 인력사무소에서 하염없이 대기할 필요도 없이 시스템에 신청한 후 나중에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공사장소로 찾아가기면 하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토목건설업자라면 비바람이 불건 덥거나 춥건 아랑곳하지 않고 설계대로 프로그램된 건설 로봇에 맡겨 공사 기일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와 함께 찾아왔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경북지역의 영원한 약점은 분명 아니다. 단지 나이 문제만으로 현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전문인력들은 지역에서 충분히 파악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둘 필요가 있다. 전문지식을 지닌 고령자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지역의 미래가 달려있다. 경북지역의 약점이었던 높은 고령화율이 다가오는 디지털 온라인시대에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05

우리 아이 독해력

김현욱 시인위리안치가 따로 없다.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집과 집,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어른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집콕’했던 것도 억울한데, 이번엔 코로나19로 학교도 못 가고 집에 갇혀 시름시름 앓는 중이다. 그런데다 온라인 개학까지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들어야 한단다. 원격수업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웬만한 동기와 의지가 아니고서는 꾸준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하물며, 아이들이야!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은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곁에서 추임새를 넣어줄 고수나 페이지를 넘겨줄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엄마나 아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곁에서 거들어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담임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초등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는 독서와 글쓰기다. 초등교육의 핵심은 독서와 글쓰기의 기초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중에 한 가지만 고른다면, 단연코, 독서다. 독서를 통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아이의 독해력 수준은 어떨까? 지난주에 초등 3학년 딸과 탈무드의 ‘마법의 사과’를 읽고 토론, 글쓰기를 했다. 원문은 ‘탈무드’를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탈무드’는 초등학생 자녀와 읽고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자녀와 함께 다음 글을 읽어 보자.“어떤 왕에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병에 걸려 위급했다. 왕은 딸의 병을 고쳐주면 딸과 결혼시키고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포했다. 그때 먼 지방에 삼형제가 있었다. 그들 형제는 각자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형은 어느 곳이라도 볼 수 있는 마법의 망원경을, 둘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를, 막내는 어떠한 병도 고칠 수 있는 마법의 사과를 갖고 있었다. 그들 중 첫째가 그 소식을 알고는 공주의 병을 고쳐주자고 말했다. 삼형제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 마법의 사과를 공주에게 먹였다. 공주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왕은 매우 기뻐 삼형제 중 한 사람을 사위로 맞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를 사위로 삼을지 난감했다.만일 여러분이 왕이라면 누구를 사위로 맞을 것인가?”‘마법의 사과’를 읽고 요약할 수 있는가? 모르는 낱말의 뜻을 짐작할 수 있는가? 육하원칙 질문, 만약에 질문, 왜 질문 등에 답할 수 있는가? 우리 아이의 독해력 수준을 가늠해보려면 책 읽어주기를 통해서 점검해야 한다. 독해력은 꾸준한 독서토론, 글쓰기를 통해 향상된다. 딸은 마법의 망원경을 가진 첫째가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가 아니었으면 공주가 아픈 걸 몰랐을 거라며. 책에는 마법의 사과를 가진 셋째와 결혼해야 한다고 나온다. 셋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토론을 통해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왕이 아니라 공주가 삼형제와 각각 데이트를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누구의 공이 더 큰가보다 누가 공주의 취향이나 성격에 잘 맞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코로나 19로 자녀와 독서토론 할 시간이 늘었다. 그건 고맙다.

2020-04-05

사라진 비둘기처럼

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는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30년 넘도록 단순한 삶을 반복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8시 15분까지 출근하죠. 은행 경비원입니다. 중요한 업무는 출근하는 지점장 뢰델씨에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노엘은 단조로움 그 자체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메마른 삶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며 지속하는 것이 노엘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 루틴이 깨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조나단 노엘은 어느 날 출근하려 집을 나섰는데 복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도저히 비둘기가 있는 복도를 지나 출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죠.“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우산을 펴서 비둘기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날 하루 그의 삶은 엉망진창입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안과 공포로 노엘을 이끌지요. 지점장에게 인사하는 일조차 구멍 내고 맙니다. 하루가 송두리째 엎어집니다. 비둘기가 무서워 집을 떠나 호텔 신세를 진 그는 불안 끝에 자살하기로 결론을 내립니다.우여곡절 끝에 노엘은 안정을 찾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비둘기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공포는 착각이었지요.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노엘은 다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코로나19 사태로 무너져내린 우리 일상도 세상을 뒤덮은 공포의 그림자도, 비둘기 사라지듯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비록 우리 일상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엇이라 해도, 그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체험했기에./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5

4·15 총선의 핵심 포인트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코로나19 사태로 힘들지만 총선은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후보 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선거판은 아직도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300석의 의석을 앞에 놓고 여당과 야당은 과연 몇 석을 확보할 것인가. 여야 모두 130+α라고 승리를 장담하지만 예측은 사실상 어렵다. 현재의 여론 조사만으로도 총선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역대 총선의 여론조사는 결과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총선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몇 개의 포인트를 살펴본다.먼저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중간 평가 등 코로나 외의 이슈 부각 여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로서는 ‘문재인 정부 심판론’도 ‘야당 심판론’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은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국민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집중부각하고 있다. 현재는 유권자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이러한 정책 자체가 대립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의 세계적 확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 비판보다는 코로나 수습이 총선 결과에 더욱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후보나 지지 정당을 선택하지 못한 무당층 표심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보수층과 진보층 지기기반은 여야로 선명히 양분화 되어 있다. 그러기에 아직 20∼30%인 중도층이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1야당이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집권여당이 개혁보다는 안정과 책임을 강조하는 정책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선거 막판 중도층의 선택으로 전체 투표율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 21대 총선 투표율 58%를 넘으면 야당에 유리하고 오히려 낮아지면 여당에 유리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투표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선거 운동 과정의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공천 파동이 선거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당시의 진박 감별사의 등장과 김무성 당대표의 잠적은 집권당의 총선 패배로 박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노인 폄훼 발언’은 대선 참패의 요인이 되었다. 지금과 같은 선거 구도에서의 지도부의 ‘말실수’등 돌발 변수는 선거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황교안 대표의 최근 발언을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현재로서 전체 선거 판세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여당이, 영남에서는 야당이 앞선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라는 양극화된 구도는 뚜렷이 보이는데 중도나 제3당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선관위 등록 정당이 50여 개이며 비례 후보를 낸 정당이 35개에 이른다 한다. 준 연동제 비례대표의 선거법 취지와는 달리 이들의 입지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간 이번 총선이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갈등의 해소보다 갈등의 증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10일간 선거 과정을 잘 지켜보자.

2020-04-05

잊기 쉬운 자동차의 어떤 기능에 대해

박근영 공무원“아! 이거 참…. 강사는 뭐 하는 거야!”도로주행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신호가 짧은 교차로 탓에 바짝 붙어 출발하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했다. 짜증이 일었지만 도로주행 시험을 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 모드로 돌아간다.1999년 가을,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기어 변속 후 차를 출발시켰다. 식은땀이 흘렀다. 첫 신호등에 도착하자 긴장이 거의 풀렸다.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코스를 순조롭게 돌고 결승점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무사히 마쳤다. 90점은 가뿐하리라. 천만의 말씀! 감독관은 채점표를 보며 내 실수를 하나하나 짚었다. 출발할 때 형식적으로 차량을 돌아본 것, 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 한 번도 그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평소처럼 탑승 전에 바퀴를 몇 번 톡톡 차고 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알고 보니 차량 주위에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는 없는지, 바퀴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운전석에서는 후방을 살피고 사이드미러로 양옆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거울을 째려보며 카레이서가 정면을 주시하듯 눈을 치켜떴다. 채점표를 보던 감독관에게 내 비장한 눈빛이 보일 리 없었다. 시동 걸고 출발하면 그만인 줄 알았지 이런 절차로 쇳덩이와 내가 세상의 안전을 도모하는 심오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날 내 점수는 70점이었다.저녁 6시, 먼저 집에 가려는 차량들이 무례한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따로 없다. 내 퇴근길은 램프 구간을 몇 번 지나 차선을 여러 차례 변경해야 한다. 차선을 바꿀 때는 옆 차 속도를 계산해 동물적 감각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이때 내가 ‘끼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는 방향지시등으로 한다. 일명 깜박이. 옆 차선에서 누군가 깜박이를 켜고 진입하려 하면 나는 뒤에서 오는 차간 거리와 앞차와의 간격을 가늠해 속력을 살짝 줄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38조1항에 명시된 운전자의 의무다. 차선을 변경할 때나 좌회전, 우회전, 유턴할 때도 반드시 켜야 한다. 깜박이는 여유를 두고 켜는 것이 좋으며 대략 6초면 옆 차선의 차들이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얌전히 가던 옆 차가 깜빡이 없이 칼치기로 들어올 때는 그 운전자의 손가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에 심적 동요는 없다. 대신 화답하는 뜻으로 경적을 기다랗게 울려준다. 상대 운전자는 사과의 뜻으로 비상등을 몇 번 깜박거린다. 비상등을 켜려면 손을 뻗어야 하지만 방향지시등은 손가락만 뻗치면 닿는다. 자동차는 인체공학적으로 효율적이다.그날 도로주행 감독관은 내가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바로 끄고 차선 진입을 했다고 감점의 이유를 말했다(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차선을 바꾼 기억조차 없는데 어찌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끈 기억이 있을까? 두 차례나 그랬으므로 깜빡이 부문에서 내가 대량 실점을 했단다. 그 경험은 각인 효과가 있어 나는 이후로 확실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그 시절은 유난히 초보 운전자에게 가혹했다. 깜박이를 켜면 일부러 끼어들지 못하게 속력을 내는 일이 많다며 절대 깜박이를 쓰지 말라는 말까지 돌았다. 오죽하면 ‘여러분이 몰랐던 차의 기능’이라며 깜박이 켜기에 관한 유튜브 영상까지 나왔을까? ‘깜박이 켜기’ 운동도 있었다.운전자는 차를 흉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깜박이는 남을 배려하고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무례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자를 보며 실력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보복 혹은 난폭 운전을 일으킬 수 있다. 깜박이 사용은 주변 차량에 내 차의 방향 정보를 제공해 양보를 유도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나와 이웃을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동차의 훌륭한 안전장치다. 운전대 왼쪽에 튀어나온 그것을 애용하는 일은 타인을 위한 배려다.

2020-04-05

봄날을 기다리며

엄태항 봉화군수매년 4월이면 봉화의 ‘띠띠미 마을’(봉성면 동양리)은 고풍스런 고택과 돌담 위로 흐드러진 산수유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봄을 마주한다. 온 천지가 산수유 꽃으로 노랗게 물들면 봄날의 꽃향기만큼이나 감미로운 시와 음악이 흐르는 신춘 시낭송회도 열려 완연한 봄날의 정취를 더한다.상춘객들로 북적여야할 띠띠미 마을은 현재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시로 봄의 향연을 홀로 외로이 뽐내고 있다. 비단 봉화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가 맞고 있는 봄의 풍경일 것이다.최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완치율도 50%를 넘어서며 위험한 순간을 잘 극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봉화군은 지난 2월 27일 양성판정을 받은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4월 1일 기준 총 7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들은 현재 포항·김천·안동의 의료원과 문경의 생활치료센터 등에서 분산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현재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퇴원자는 23명을 기록하고 있다.지난 3월 4일 춘양면 소재 푸른요양원 입소자 2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으면서부터 입소자와 종사자를 포함해 무려 68명이 집단감염 되었지만, 다행히 현재까지 지역 내 2차 추가 감염은 전무하며 70번째 확진자 발생(3월 21일) 이후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점차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이러한 소기의 성과는 공직자의 발 빠른 대응과 빛나는 군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 발생 다음 날 봉화군은 즉시 방역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정부의 심각단계 상향일(2월 23일) 이전인 1월 말부터 봉화군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자가격리 시설 확보, 자가격리 전담팀 운영, 전통시장·공공기관 임시 휴장·휴관, 유동인구 밀집지역 열화상카메라 설치, 관내 노인요양시설 전체 6개소 503명에 대해 예방적 코호트 격리 시행, 다중이용시설 244개소에 대한 집중관리와 시설 방역 소독에도 총력을 기울였다.또한, 봉화군민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위기 앞에 하나 되는 모습을 보였다. 각계각층과 출향인으로부터 구호물품과 성금기부가 줄을 이었으며 각종 단체에서는 격리시설 음식제공, 마스크 제작 보급, 자율방역·소독 활동을 비롯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이제는 빛나는 군민의식과 공직자들의 부단한 노력을 바탕으로 지역경제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민생안정지원 대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달 30일 정부는 소득하위 70%가구에 대해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당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봉화군은 즉시 재난 긴급생활비 TF팀을 구성하고 4월 1일부터 10일까지 10개 읍면사무소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서 재난 긴급생활비를 신청받고 있다. 신청자격은 4월 1일 기준 봉화군에 주민등록상 주소를 둔 자(중위소득 85%이하)로 가구당 50만~80만원 차등 지원되며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는 8월말까지 사용가능한 봉화사랑상품권으로 지급 한다.또한,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한시생활지원금 9억 5천여만원, 아동수당 대상자에게도 3억 8천여만의 특별지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지방세 지원도 추진한다. 올해 부과 예정인 자동차세와 주민세(균등분), 재산세(주택, 건축물)를 100% 면제하고 법인 지방소득세와 주민세(재산분)은 납부기한을 3개월 연장하고 체납처분은 6개월 유예한다. 지역 화폐인 봉화사랑 상품권은 당초 80억원에서 20억원이 증가한 총 100억원 규모로 발행규모를 늘리고 소상공인의 안정적인 경영활동 지원을 위한 특례보증 지원사업으로 5억원의 보증규모를 편성해 소상공인당 1천만원 이내 대출과 이차보전금을 최대 5%까지 지원한다.이밖에도 봉화군은 코로나19 대응해 지역 경기 부양책을 위한 다양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전 부서별로 수립해 농기계임대료 50% 감면, 지적측량수수료 30% 감면, 그린오피스 운동, 관내 농산물 팔아주기, 지방재정 신속집행 등 지속적인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루빨리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다시 활기찬 웃음소리와 미소가 만개하길 기대한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는 없지만 봉화군민의 얼굴에 꽃이 피어야 진정한 올해의 봄이 시작 될 것이다.

2020-04-05

집중과 분산, 가속기는 어디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집중과 분산’은 각종 분야에서 관심이 되고 있는 명제이다.데이터들은 한곳에 집중해 모여 있으면 관리는 쉬우나 보안에 문제가 생기고 분산하면 관리가 어려워지고 집중에서 오는 시너지 효과에 문제가 생긴다. 지역 발전의 의미에서는 분산은 균형발전, 집중은 효율적인 발전을 통한 전체의 경제력 향상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최근 정부가 발표한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 유치를 두고 ‘집중과 분산’의 명제가 다시 등장하는 느낌이다.경북 포항, 전남 나주, 강원 춘천, 충북 오송 등 여러 지자체와 도시가 사업비만 1조원 규모인 방사광 유치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차세대 가속기는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할 경우 7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지역 부가가치, 그리고 10만명이 넘는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고 예측했다고 한다.정확한 예측은 쉽지 않겠지만 엄청난 지역발전과 경제발전의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요즘 코로나 전염병으로 세계가 들썩거릴 때 가속기는 신약이나 백신 개발에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가속기는 단순한 단백질 구조분석 등을 넘어 정밀 나노 소자 분석 등 바이오·헬스·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 활용도가 다양하다. 특히 바이러스 규명에 효율적으로 쓰인다고 한다.분산의 이슈는 호남권에서 뜨겁다. 호남권 시도지사들이 모여 “방사광가속기를 호남에 구축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들은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호남 구축’을 비롯한 3개 항의 호남권 핵심현안에 대한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발표했다.특히 전남 나주는 2022년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가 있어서 포항 포스텍의 3·4 세대 가속기와 대비될 수 있는 한전공대와 방사광가속기가 연계를 원하고 있다.그러나 ‘집중’에 대한 열망도 뜨겁다.3세대 및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하고 있는 포항시가 가속기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포항시는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포항 유치를 위해 지난해 포스텍 내 기존 3·4세대 방사광가속기 인근 부지에 10만㎡ 규모의 가속기 건립 예정지를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해당 부지에 대한 측량과 지반 조사 등을 완료하고, 타당성 연구 용역과 함께 전문가 세미나 개최 등 유치 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이다.포항 포스텍에는 3·4 세대 두 개의 가속기가 있다. 그런데 3세대 가속기는 성능 부족과 시설 포화의 문제가, 4세대 가속기는 가용 용량 한계로 신규 가속기 구축이 필요하다는 논리이다.집중의 이점을 내세우는 포항시는 3·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가속기 건설과 운영을 훨씬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건립비용도 훨씬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집중과 분산. 양측의 논리가 모두 의미를 갖고 있다. 좀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집중과 분산’의 논리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토의되고 선택됐으면 한다. 절대 정치적 논리나 포퓰리즘에 의해 선택되어서는 안 된다.

2020-04-02

뇌는 쉽게 변한다

뇌가 굳어 있지 않고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가 뇌의 가소성(可塑性)입니다. 후천적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은 장애인의 경우에는 시력을 잃은 즉시 청력이나 후각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뇌 가소성 증거로 특히 많이 알려진 내용은 해마의 크기 변화입니다. 런던은 도로가 복잡하기로 유명하지요.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버스 운전사들보다 뇌 기억 저장소인 해마가 월등하게 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정 구간을 반복적으로 운행하는 버스 기사와, 손님이 탈 때마다 가장 빠른 길을 머릿속으로 활발하게 뇌를 사용해 순식간에 노선을 구상하는 택시기사의 뇌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겁니다. 위 연구는 내비게이션 발명 전에 나온 결과입니다.사람의 뇌는 적절한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뇌 가소성 때문입니다. 다음 숫자를 10초 동안 들여다본 후 신문을 덮고 숫자를 한 번 외워 보실 수 있겠습니까? 949874231032292849274124112390231562739064793882921897675452177650902121210873231총 80자리 숫자입니다. 대부분 참여자가 6-7자리를 외우는 한계를 보입니다. 그런데 참여자들에게 숫자 암기법을 30분 정도 훈련시키면 피실험자가 대부분 80자리 숫자를 거의 외울 수 있다고 합니다.고전을 읽을 때 난해한 문장, 철학적 대화 등 두뇌를 지끈지끈 아프게 만드는 내용과 씨름합니다. 무턱대고 고전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고 포기하는 이유는 제대로 훈련받지 않고 덤볐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 없이 덤빌 수 없는 원리와 비슷합니다.뇌가 가소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굳어버린 두뇌를 함께 유연하게 풀어가는 고전읽기 동지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2

서버 터지다, 대학 입시 일정만이라도!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봄꽃은 터지는데, 학교에는 학생의 웃음꽃 대신 서버가 터졌다. 그사이 3월이 속절없이 갔다.“선생님, 접속이 잘 안 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안내문 잘 읽어보세요.” “선생님, 다시 해도 잘 안 돼요.” “안내문 잘 읽어보라니까!”붕어빵과 같은 온라인 과제 학습 방침에 서버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터진 것은 서버뿐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분통도 터졌다. 교사들 또한 답답해서 속이 터졌다.사전 설명은커녕 개학 후 검사를 하겠다는 엄포와 함께 제시된 온라인 과제 학습. 만약 필자가 지금의 학생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마 지금 학생들처럼 서버가 터지도록 열심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어쩌면 모르겠다, 지금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했을지도! 그때는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과제를 하명하는 교사들보다 제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당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바이러스와 싸우는 선생님들이 많으셨기 때문이다.온라인 개학 때문에 또 말이 많다. 가정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교사나 교원단체들이 온라인 개학에 대해서 하는 말들은 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그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필자는 3월 19일 칼럼(노트북과 코로나 19, 그리고 학교)에서 이미 낡은 노트북 한 대로 아주 효과적으로 온라인 대면 수업을 하는 산자연중학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또 교육부와 교육청에 화상 수업을 수업일수에 포함해 줄 것을 건의하는 민원(3월 17일)을 제기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답을 3월 22일에 교육부에서 받았다.“(….) 초중등교육법 제64조에 따르면 ‘휴업명령’에 따른 휴업 기간 중에는 수업과 등교가 중지됩니다. 우리 부에서는 현재 휴업 기간 중 학습 공백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의견수렴하여 마련 중에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래도 필자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답글을 보고 속이 터졌다. 3월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원격수업 운영 기준안’을 보고서는 당황스러웠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말을 보면서 반가웠지만, 갑자기 바뀐 교육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 시범학교를 운영하겠다는 말에 3월 둘째 주부터 쌍방향 온라인 대면 화상 수업을 하는 산자연중학교는 존재를 잃어버렸다.화상 수업을 4주째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시범학교 운영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또 어떤 시험의 대상이 될지, 거기서 또 얼마나 큰 혼란을 느낄지 학생들에게 미안해졌다.지금 최고의 혼란 자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말이 고3이다. 아니래도 힘든 고3들에게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붕어빵 과제가 말이나 되나! 개학 일정도 중요하지만, 고3들을 위해 정확한 대입 일정만이라도 먼저 제시하자. 이대로 가다간 서버가 터졌듯이, 고3 유권자들이 터질 날도 멀지 않았다.

2020-04-02

코로나 블랙홀 선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빌게이츠가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 화제다. ‘빌 게이츠의 아름다운 성찰’이란 제목으로 널리 전파된 이 글에서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그는 코로나19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 바이러스는 문화나 종교, 직업, 재정상태 혹은 얼마나 유명한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돼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세워놓은 가짜 국경선이 별 의미가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있다.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병에 걸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인생이 짧다는 것과 우리가 해야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서로 도우며, 노인이나 병자들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변했는 지,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무시해왔는지를 가르치고 있다.아울러 코로나19는 모든 난관이 지나간 뒤에는 평온이 잇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이번 일도 거대한 주기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도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빌 게이츠의 글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너무도 크다. 당장 2주 앞으로 다가온 선거만 해도 그렇다.이런 선거는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모든 이슈나 화제가 사라지고, 정책논쟁도 사라진 ‘코로나 블랙홀’ 선거다. 국민들을 대변한 선량을 뽑는 선거에서 선거가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선거다.보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서 유권자도, 후보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말았다. 비전과 정책이 실종된 탓에 유권자도, 후보자도 서로 할 말이 없어보인다. 유권자를 향한 치열한 공약대결도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 지 누가 무슨 정책을 펼지 판단할 근거를 찾기 어려운 선거다.그나마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규모와 지급 방식에서도 여야가 정치적 계산만 앞세우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여권은 누구한테 지원금을 줄지 기준조차 정하지 않은채 총선을 앞두고 ‘지급방침’만 우선 발표했다. 이에 맞서 통합당은 총선용 현금살포는 안된다고 비판하면서 더 많은 재원을 동원해 240조원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선거열풍은 느끼기 힘들다.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을 판단할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까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할 사람은 바로 유권자인 우리 자신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일수록 유권자 한사람 한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변화의 촛불을 높이 들고 나설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로 빼앗긴 봄에 새로운 봄의 온기를 되살려야 할 때다.

2020-04-02

식목일

산소는 사람과 동식물이 활동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물질이다. 공기의 주성분이지만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다. 맛과 빛깔과 냄새도 없다. 사람 몸에 들어가 영양분을 분해하고 생명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기능을 한다.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 부르는 것은 대규모 수림의 자연적 기능 때문이다. 이곳 밀림에서 생성되는 산소량이 무려 지구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아마존 수림 자체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기후변화까지 완화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자연의 위대함이다.큰 나무 하나가 보통 두 사람이 하루 호흡하는데 필요한 양보다 좀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한다. 나무는 살아 있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반대로 죽은 나무는 대사활동이 중단되면서 생전에 품었던 탄소를 뱉어낸다. 죽은 나무 숲은 탄소 포집원이 아니라 배출원이 된다.코로나 바이러스의 직접 사망원인은 호흡곤란 증세다. 급성 호흡곤란증세를 보이는 환자에 대해 인공호흡기를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몇 시간 안에 숨진다. 우리가 평소 편히 숨 쉬는 것이 산소와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그런 고마움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다.4일은 청명이고 5일은 식목일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 드는 절기다. 하늘이 이때부터 차츰 맑아진다는 날이다. 농사로 보면 지금부터가 본격 영농철이다.식목일이 이맘 때 정해진 것도 계절적으로 나무심기에 적합한 때문이다.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나무심기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식목행사인들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가 않다. 나무 심고 가꾸는 것이 사람 생명 지키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새삼 새겨 봐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4-02

해리리버맨의 새 출발

해리리버맨은 폴란드 사람으로 27세에 미국을 밟았습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으며 가진 것은 6달러와 조그만 손가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덕분에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습니다. 70세가 넘어서야 그는 해 오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노인 학교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체스를 두었습니다.어느 날 해리는 노인 학교에 나갔으나 마침 체스 상대자가 병이 나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리는 그냥 멍하니 햇볕을 쬐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해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어르신 그냥 앉아 계시지 말고 그림이나 그리는 게 어떠세요?” “내가 그림을? 나는 붓 잡을 줄도 모르는데….”70살이 넘은 나이에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미술실을 찾아갔습니다. 등은 굽고 붓을 잡은 손은 떨렸지만, 해리는 매일 거르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해리가 처음 전시회를 열었을 때 평론가들은 그를 가리켜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해리는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으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가 스물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을 때 나이는 백 한 살이었습니다.평균 수명이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유튜브 영상도 떠돌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구 중 노년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초 고령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충분히 교육받은 노년층이 앞으로 많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들이 스스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역은 무궁무진합니다. 후세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노년이 아닌, 날마다 새롭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위해 새롭게 결단하고 출발하는 실천의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1

버들피리

김병래시조시인‘월사금 내지 못해 조회시간에 쫓겨 가면/ 보리밭 김매는 엄마 먼발치로 보이는/ 냇가에 숨어 앉아서 버들피리나 만들었다// 엄마 가슴 에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 버들피리 불며 가는 시오리 보리밭길,/ 말갛게 뜬 낮달처럼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졸시 ‘버들피리’이 시의 배경은 1960년대 초반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불 미만이어서 외국의 원조 없이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절대빈곤의 시절이었다. 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에도 매달 몇 십 원씩 납부금을 내야 했다. 육성회비란 말이 있기 전에는 그걸 월사금이라고도 했다.납부금이 몇 달씩 밀리면 담임은 고육책으로 조회시간에 집으로 돌려보냈다. 성미가 고약한 교사는 매질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아마도 납부금 거두는 실적이 좋지 못하면 담임이 문책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돈을 두고도 일부러 납부금을 안 내는 게 아닐진대 매질을 하고 집으로 돌려 보내봐야 당장은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다그쳐야 우선 급한 불부터 끈다고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닌 아이들에게는 그게 새삼스럽게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넓은 운동장을 지나 교문을 나서는 동안 쫓겨난 아이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텅 빈 집 부엌에서 냉수나 한 사발 들이켜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가 되짚어 학교로 가는 게 고작이었다. 쫓아내면 쫓겨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곧 준다더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위의 시는 그러던 어느 봄날의 추억이다. 시냇가 버들가지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고 파랗게 자란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높이 떠 종알거리는 봄날이었다. 보리밭 고랑에 웅크리고 앉아서 김을 매는 엄마가 저만치 보였지만 엄마 앞에 가서 월사금을 내지 못해 쫓겨 왔다는 소리를 할 만큼 철부지는 아니었다. 냇가에 숨어 앉아서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연필을 깎으려고 산에서 주운 기관총 탄띠를 펴서 만든 주머니칼이 요긴하게 쓰였다. 잘라낸 버들가지를 비틀어 껍질과 분리된 속 줄기를 빼내면 굵은 빨대 같은 껍질이 남는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한쪽 단면의 겉껍질을 조금 벗겨내면 그것이 떨판 구실을 해서 입으로 불면 소리가 난다. 불어보지 않아도 굵고 길면 낮은 소리가 나고 짧고 가늘수록 고음이 난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산모롱이를 돌아와서야 버들피리를 불었다. 버들피리소리는 꼭 울음소리 같다. 버들피리를 마음껏 불어대면 속엣 것이 다 후련하게 뽑혀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느 시인은 이 시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서럽고도 막막한 상황에 대처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이 참 의젓하고 꿋꿋하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거나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에 묻혀 살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리라. 틈만 나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시다. 하루쯤 아이와 함께 가까운 교외로 나가서 버들피리도 만들어 불어보고 이 시도 들려주면 좋을 것이다.”

2020-04-01

일본의 두 얼굴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0년 동경 올림픽이 1년 연기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일본 정부는 2021년 7월 23일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했다.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강행을 주장한 아베 정권에게 적잖은 타격을 안겨준 결정이라 하겠다.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19가 세계 전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도 일본열도는 무풍지대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대응전략이 얼마나 올발랐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혹자는 예정대로 올림픽 개최를 해보려는 아베 때문에 코로나19 검진 수치가 지나치게 작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일본인들의 거리 두기와 손 씻는 습관 덕에 바이러스 전파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아베 정권의 얄팍한 정치 술수를 경원시하는 한국의 호사가들은 일본의 코로나19 진행이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 적잖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반면에 지난 2월 중순 일본인들의 트윗은 여러 가지를 보여준다. 몇 가지 인용한다.“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격리자에 생활비 지급…. 외국인 포함 = 한국”“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국이 어쩌고’를 해온 일본인과,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 오로지 동조하며 ‘일본 스고이(대단해)’를 해온 일본인. 자기 발밑을 보지 못한 것이다, 라는…. 당연하지만, 누구를 리더로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한국은 여기서 국민을 버려두면 데모 나지요. 일본은 아무리 국민을 버려도 자민당 압승이니까.”외국인까지 포함하여 코로나19 감염자를 찾아내서 치료하되 무상으로 진행한 한국. 그런 한국을 보면서 올림픽이라는 목표 때문에 검진 자체를 포기하다시피 한 일본. 그러면서도 ‘재팬 이스 넘버원’이라는 신화에 매몰돼 일본이 대단한 나라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일본인. 한국인들이 촛불시위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자를 내쫓은 사례를 언급하면서 자민당에 속수무책 끌려가는 일본 국민의 무비판성과 비활동성을 힐난하는 글이다.하지만 일본은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스기야마 마사아키 교수의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유라시아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정치하고도 호쾌한 시각을 보여주는 스기야마 교수의 식견은 놀라운 것이었다.그런데 그의 논거는 거의 일본인들의 저서에 기초한다. 수많은 일본인 연구자들이 유라시아 곳곳을 누비면서 필요한 자료와 문헌을 제공해주는 덕분이다.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에 따르면, 그는 학부에서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프랑스어로 베르그송을, 도이치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었고, 학과 이외 시간에 히브리어로 진행된 구약성서 강독까지 참가했다고 한다.경북대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강의 자체가 아예 없다. 반면에 전남대에서는 30년 가까이 그리스어 원전강의가 이뤄지고 있다니 경하할 일이다.일본은 타산지석이자 놀라운 귀감(龜鑑)의 본보기로 작용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임을 새삼 실감하는 시절이다.

2020-04-01

마음의 면역력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코로나19 물리적 방역만큼이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과거 IMF 외환위기처럼 경제적인 재난과 달리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신체적인 재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합니다.이럴때 일수록 ‘마음의 면역력’을 강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면역력’ 저하는 ‘선명한 판단력’과 연결되어 분별력 또한 저하됨을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은 ‘육신의 병’으로 전이되어 질병과 바이러스에 취약해지고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몸도 점점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 그렇습니다. 마음지킴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약해진 마음으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항하지 못해 마음의 질고를 겪게 됩니다. 단단한 마음을 위한 ‘마음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마음 훈련’. 마음에 사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마음의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사랑의 이타적 속성으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상받을, 돌려받을 사랑이 아닌 그저 또 주는 사랑입니다. ‘Give and Take’ 가 아니라, ‘Give and Give’의 사랑으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울수 있습니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감”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 속에서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기에, 인간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 속에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또한, 마음의 면역력은 자기감정을 읽고 ‘드러내어 표현하기’ 입니다. 감춤은 음지입니다. 양지로 나와야 면역력이 키워지는 것입니다.자기 내면에 요동치는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0초’, 쉼 호흡 후 그 감정을 드러내어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10초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분노조절이 어려워짐을 느끼기 시작했기에, 분노조절장치 작동시간 10초를 다시 켜려고 합니다. 그런 후, 나의 감정을 누군가와 건강하게 나누고 싶습니다.마지막으로, 당신안에 감추어진 갈망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진정한 갈망을 내재화해 보십시오.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리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가는 것입니다.오늘의 시대창문입니다.“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2020-04-01

딥페이크 범죄

‘딥페이크’(Deep Fake)란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이나 사진에 합성한 편집물을 말한다. 딥페이크 범죄란 바로 이런 기술을 이용해 여성의 사진을 포르노 사이트 등에서 보이는 나체와 합성해 집단 성희롱을 벌이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특히 최근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 등 온라인 성착취물 공유방에서 딥페이크 범죄가 판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벌어지는 공간은 텔레그램, 트위터, 라인, 카카오톡 등 국내외 메신저를 아우르며, 모든 여성이 표적이 된다. 단체 대화방 속 남성들은 지인, 인스타그램 등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 여성뿐 아니라 여동생 등 가족의 사진을 건네기도 한다. 딥페이크 범죄는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생겨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딥페이크 범죄가 만연하면서 ‘국회 국민동의 청원 1호 법안’으로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지난달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오는 6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개정안에 따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사람의 얼굴, 신체나 음성을 편집·합성·가공·복제한 촬영·영상물 등을 제작하거나 퍼뜨리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영리 목적으로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다.딥페이크 범죄는 현행법상 성폭력으로 인지되지 않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음란물 제작 등의 혐의만 적용됐는데, 이를 범죄로 적시해 엄벌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이다. 인격살인에 이르는 딥페이크 범죄는 엄벌로 다스려져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4-01

겪으면서 더 많이 배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벗어나고 싶은 시간은 언제나 더디 흐른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지구가 언제쯤 이 수렁같은 터널을 지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용을 써보지만 좀처럼 떠나가지 않는 바이러스의 마수는 집요하리만치 세상을 힘들게 한다. 영문도 모른 채 함께 진창에 빠진 담론의 주제가 ‘교육’이다. 정부와 교육부는 몇 차례 개학연기를 거듭한 끝에 이제는 더 이상 ‘수업일수’ 보전을 위해서도 가르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던가 보다. 곧 온라인으로 개학하고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시행하기로 하며 준비에 들어갔다. 대면수업은 무기한 연기하며 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할 모양이다. ‘공중보건’의 입장에서 적절한 결정으로 보인다.4차산업혁명의 관점에서도 온라인교육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교육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온라인교육이 성취할 수 있을까는 여러 가닥 생각거리를 남긴다. 대학의 전공교육과 기계적인 전달이 주요 학습목표일 때에는 상당히 효율적인 교육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생각의 틀이 아직 어리고 독립적인 판단에 미숙할 초등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에는 선생님의 역할을 절대로 간과할 수가 없다. 선생님과 함께 호흡하고 서로 나누며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생략할 수가 없다. 교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일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해도, 사람답게 자라도록 이끄는 일에 선생님의 손길을 덜어낼 방법이 없다. 오늘 우리가 처한 비상상황을 물론 이해하지만, 당국이 교육의 소임을 온라인수업으로 대체하듯 넘기지 않길 바란다.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운다. 바이러스가 그 어떤 무기보다 무서운 위협을 가져올 수 있음을 배우지 않았는가. 세상에 저렇게 많은 나라들이 있음에도 눈을 뜨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이 선 위치에 대해서도 어린이들은 깨우치지 않았을까. 어른들이 나누는 생각들과 목소리에서도 무엇을 배웠을까. 언론은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이고 의료와 과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챙기고 배울 가닥은 부지기수가 아닌가. 교과목의 이수와 수업일수에만 매달리기 보다 교육의 본질과 소임에 대해서 유연하게 판단하고 융통성있는 결정을 내릴 방법은 혹 없을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을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일이 아닌가. 교육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교육을 날짜 수로만 헤아리지 않았으면 한다.보다 폭넓게 배우게 하자. 나라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로부터 오히려 더 잘 배우게 하자. 교육의 지평이 온 세상으로 향하게 하자. 나만 잘 사는 일로부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자. 아끼고 배려하며 돌아보고 함께 사는 일을 배우게 하자. 코로나19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도 분명히 바라보게 하고 깨우치게 하자. 배움은 살아가면서 확인할 때 힘이 있게 마련이다. 안타깝지만, 다음 세대에겐 코로나19도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교육을 맡은 모든 분들이 힘내시길 바란다.

20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