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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스터트롯’과 국민적 문화, 그리고 ‘전통’의 쇄신

온갖 화제를 남기면서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 얼마전 최종 우승자를 가려내면서 성황리에 끝났다. “10년 만에 국민예능의 탄생”이라는 자찬의 말에서 보듯 그것은 ‘국민적’ 수준의 흥행이었고, 특히나 이 경연에서 두드러진 영남출신 참가자들의 약진은 코로나19의 최대 감염지역으로 고통받고 지쳐가는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그나마 흥겨운 시간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듯 새롭게 복권된 대중음악 장르와 취향 뒤에 깔린 사회적 배경도 흥미롭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국민적 ‘문화’와 그에 의한 대중적 취향, 감성의 도야, 그리고 ‘한국적 전통’이 현재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사실 35.7%의 시청률, 최종 문자투표 773만 건은 예전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국민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TV채널이 3∼4개에 불과하고 축구 한일전이나 올림픽, 굵직한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면 모든 채널이 동일한 프로를 방영하는 것도 잦았던 1990년대까지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채널이 200개가 넘는 케이블TV·종편방송의 시대, 그리고 이것마저도 온갖 인터넷 개인방송, 유튜브, 팟캐스트 등이 또한 잠식하고 있는 오늘날 미디어 풍요의 시대에 그 정도의 시청률과 참여율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특히나 이를, 젊은이와 진보적 성향의 인구층의 방송인 것처럼 간주되는 JTBC가 추구해온 음악예능의 방향과 비교해보면 많은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JTBC의 음악예능은 그간 ‘수퍼밴드’나 ‘팬텀싱어’, 그리고 ‘비긴어게인’등에서 보듯 중노년세대를 ‘소외’시키는, 젊은이들의 상당히 서구적이고 ‘글로벌’하면서 세련된, 고급문화적인(크로스오버) 취향에 맞추고 따라올 것을 종용하는 듯한 방향을 의도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추구해왔다. 특히 ‘수퍼밴드’의 경우 해외 교포 출신 참가자들이 두드러지고, 무엇보다 한국말로 된 음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영어와 최신 해외음악에 익숙치않은 중노년세대가 애청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 프로가 불러일으킨 소셜미디어 상의 폭발적인 관심과 대비되게 그 시청률은 ‘미스터트롯’에 비하면 초라했다.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미스터트롯’의 성공에서 특징적인 점은, 과거에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었지만 현재는 ‘전통가요’라고 불리며 주변부 장르가 된 트로트에서 팬덤(fandom), 특히 매우 능동적인 중노년층 팬덤이 형성되고, 젊은 세대에게 이 장르가 감상할 수 있는 음악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형편이 어려운 음악인들이 트로트 장르에 최종적으로 귀착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이 장르가, ‘방송국’과 SNS, 음원차트 같은 중앙집중적 네트워크와는 독립된 수익원을 제공하는 ‘행사’를 활동무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이 장르에서는 노래가 가진 ‘음악성’에 대한 ‘숨죽이고 듣는 감상’보다는 노동과 일상의 피로와 따분함을 날리기 위한 ‘흥겨운 쇼’가 더 결정적이다. ‘발라드 장르의 수호자들’로 구성된 MBC ‘복면가왕’ 판정단의 단골 성원들이 노골적으로 트로트를 음악성이 없는 장르로 비주류, 노인들의 장르로 폄하하곤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하지만 그 판정단(소위 ‘마스터’)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스터트롯’은 트로트 음악도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뿐 아니라 실제 역량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음악성’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하고 즐긴 곡들은 영탁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 김호중의 ‘무정블루스’,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혼합장르적 성격을 가진 무대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데, 우승자인 임영웅의 트로트 또한 사실은 발라드 계열 음악을 통해 다져진 그의 섬세한 감성과 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된다.필자가 여러 음악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이때껏 발표된 곡으로서나 음악인의 저변 층으로서나 한국대중음악이 가진 높은 수준과 다양하고 넓은 역량이다. 하지만 정작 더 놀라운 것은 한국 관객들의 수준이다.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음악성에 대한 이들의 판단은, ‘전문가’로 자처하며 ‘일반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연예인 판정단, 전문음악인보다 훨씬 더 열려 있고 전향적이다. 관객들은 그것이 ‘데스메탈’, ‘사이키델릭’, ‘크로스오버’ 등 낯설은 음악이건 클래식적 감성을 가진 음악이건 해묵고 뻔해 보이는 예전 음악이건 간에 들려지는 음악이 그 완성도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응용과 편곡이 돋보이면 ‘눈물 짜게 하는 데 집중’하는 ‘정통’ 발라드나 ‘정통’ 트로트를 서슴없이 제쳐버리고 그에 높은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미스터트롯’이건 ‘복면가왕’이건 ‘수퍼밴드’건 화석화된 ‘전통’을 고수하고 반복하려는 모습은 오히려 판정단, 심사위원이나 제작진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오히려 관객들은, 자신이 해온 음악의 관성, 그리고 참가자에 대한 애착과 편애에 휩쓸리기 쉬운 이들보다 훨씬 더 공정한 평가를 무대 자체에 대해 내리고 있다.사실 트로트에 대해 가진 반감과 낮은 평가는 그간 ‘우리의 전통’이라 불려왔고 강권하는 것에 대한 그것인 측면도 있다. 음악적인 측면을 빼고 트로트 곡 가사에 담긴 내용만을 본다면 그 주류는, 모든 대중음악에 공통적인 남녀의 사랑과 이별 외에 효도, 고향, 향토 찬양, 해방 이후 한민족의 고난에 대한 강조, 어지럽고 거친 현대화가 휘몰아치는 사회생활 속에서 출세에의 욕구가 좌절되는 등의 감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스터트롯’의 몇몇 무대는 이처럼 ‘꼰대스러운’ 정서와 취향에 대한 온갖 반감과 괴리감을 단숨에 달려버렸는데, 그 중 가장 압권은 김호중이 리드한 ‘패밀리가 떴다’ 팀의 마지막 곡인 ‘희망가’였던 것 같다. 물론 시대를 요약하는 듯 맑은 밤하늘 아래 걸려 있는 달과 벚꽃이 있는 고풍스러운 풍경의 배경 화면은 그 세팅 자체만으로 이미 음악이고 예술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곡과 가사가 10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울림과 공감을 낳게 한 예술적 성취는, 록음악의 고재근, 클래식의 김호중의 음악성이, 시원하고 울림있는 음색과 성량이 돋보이는 이찬원, 그리고 희망을 고대하는 어린 정동원의 쓸쓸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만났을 때 이루어졌다.이제 한국사회는 고도로 개인화되고 개개인의 예술적 취향 또한 다양화되고 ‘현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노년세대의 차에서 ‘뽕짝’음악만이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70년대 통기타 음악, 8∼90년대 발라드와 해외 팝 음악, 임재범, 전인권의 음악을 시끄럽게 틀고 다니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취향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의 변화는 가치와 이념, 생활양식에서의 변화와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우리가 우리의 ‘전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은 외국인에게 내보이기 위해 박제화시켜 놓은 것들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의 모습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호소력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한 단계 더 높고 넓게 승화시켜주는 가치와 의식, 정서, 즉 문화라 불리는 대상들의 모음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통을 찾아가는 일은, BTS나 싸이의 성공에 한껏 고무되어 빌보트차트 1위를 탈환하려 하거나 “100억가치 트롯걸”, “글로벌 수퍼밴드” “한류 트롯스타”를 찾는 일과는 다르며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 /경북대 강사

2020-04-01

포항∼울릉 대형여객선 외면은 해양수산청의 직무유기

김두한경북부코로나 19 사태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울릉군 내 사회단체들이 포항∼울릉도 여객선 문제로 생업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섰다. 울릉도도 코로나 19 사태로 관광객이 감소해 경제가 파탄날 위기다. 그런데 왜 이들이 나섰을까. 지난 1995년 8월15일 취항한 썬플라워호(2천394t·정원 920명)가 지난달 28일 선령 만기로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대책도 없이 울릉도 주민의 생계수단인 대중교통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물론 이 항로 여객선운항사인 (주)대저해운이 엘도라도호(668t·정원414명)를 대체선으로 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는 법 위반 소지가 있다. 과거 해운법에는 “대체선은 기존에 운항하는 선박보다 성능이 우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삭제됐다. 이용객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는 법을 왜 삭제했을까. 세월호 사고 이후 모든 해운법은 강화됐다. 여객선 신규노선 허가는 적치류(승객 증가 등)에 따라 먼저 허가를 신청하는 사업자에게 내줬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사업자가 허가를 신청하면 해당 해양수산청은 공모해야 한다. 공모는 2개 이상의 사업자가 참여해 자본금, 선박의 크기, 속력, 기타 성능 등을 심사해 80점이 넘는 사업자 중 점수가 가장 높은 업체를 선정하도록 했다. 따라서 선박이 우수하고 회사가 탄탄해야 선정이 된다.당연히 기존의 선박보다 성능이 우수한 사업사가 선정될 것이라는 해석에 따라 삭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선박보다 못한 선박의 대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해운법에 따르면 해당 항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수송 안정성 확보에 지장을 줄 우려가 없어야 한다. 특히 여객선의 인허가 시 이용자의 안전과 수송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주)대저해운은 기존의 썬플라워호보다 톤수는 28%, 정원은 45%, 속력은 72% 수준의 엘도라도호 인가를 신청했다. 이는 해상교통의 안전, 이용의 편리를 침해하고 안정적 수송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여객선 인허가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고유 업무다. 이들은 선령 만기가 도래하기 전 울릉도 주민은 물론 울릉도를 찾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불편하지 않도록 지도 감독 및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선사가 썬플라워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선박을 대체하는지,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선령 만기가 되기 전에 지도, 감독해 국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존 선사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법에 따라 처분하면 된다.그런데도 지금까지 방치해 주민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썬플라워호가 운항할 때는 연간 110일 정도 결항하지만 엘도라도호는 150일 정도다. 5개월간 육지와 단절되는 것이다. 주민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25년 전 규모의 선박이라도 운항해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 해운법 제1조가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은 존재 이유임을 명심하고 조속한 시일 내 이를 해결하기 바란다./kimdh@kbmaeil.com

2020-03-31

외모에 대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내각 구성을 위해 각료들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비서관에게서 한 사람을 추천받았습니다. 그 사람 이름을 듣자 링컨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링컨이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소.”비서관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책임이 없지 않습니까? 얼굴이야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링컨이 말했습니다. “아니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겁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서울 강남에만 3천개가 넘는 성형외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가 링컨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은 탓일까요? “부모님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 어느 성형외과 현수막 광고가 한때 우리에게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습니다. 나이 마흔 넘어 얼굴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고스란히 인격의 문제일 텐데, 사람들은 지름길을 원합니다. 쉽게 수술로 해결해 버리고픈 욕망을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세금제도를 논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미남세’ 잘 생긴 남자는 소득세를 2배로 물리자는 의견이었답니다.2012년 일본 유명 경제 평론가인 모리나가 다쿠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제안했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남성에게 세금을 중하게 물리고, 외모가 딸리는 남자들은 세금을 감면해 주면 못생긴 남성이 연애하기 쉬워져 결혼과 출산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지요? 5명의 여성 배심원단에게 심사를 맡겨 1등급은 소득세를 2배, 이하 등급에 따라 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세금제도는 탁상공론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하는군요. 기발한 상상에 박수를 쳐야 할지 웃어야 할지./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31

적자생존 단상

박화진포세이스트·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봄의 모든 일상이 우선멈춤 표지판 앞에 섰다. 화사한 봄꽃 향기도 우울감에 휘청거린다. 부대끼며 정 나누고 살아가기 좋아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거리두기’는 고통 아닌 고통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집안 구석구석 묵은 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참에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해본다.책장 한쪽에 종갓집 된장독마냥 의뭉하게 떡 버티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35년 공직생활 내내 아귀처럼 붙어 다니던 업무수첩 뭉텅이다. 1년에 한두 권 쓰게 되니 줄잡아 50여권이 된다. 입직한 첫 해인 ‘1986년’ 이라고 표시된 빛바랜 업무수첩 한 권을 집어 들고 슬며시 겉장을 넘겨봤다.사회 초년병으로서 다짐의 글을 시작으로 빼곡히 받아쓴 상사들의 지시사항, 처리할 업무, 군데군데 일상의 고단함을 푸념하며 내뱉은 낙서 조각들이 낯설지 않다. 세월의 편린들이 돌탑처럼 하나둘씩 위태롭게 쌓여 있다. 반평생 삶의 찌든 때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전근으로 이사를 다닐 때나 해외근무를 하면서도 귀한 골동품처럼 한 권도 빠짐없이 가지고 다녔다. 구닥다리 같은 짐이라며 폐기하거나 스캔하여 보관하라는 가족들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역사라는 소명의식도 한 몫 했다. 직장인들의 업무수첩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닌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의 치열한 도구다. 상사의 지시나 해야 할 업무를 적지 않고 있다가 깜박하고 놓친다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공직자들은 유난히 열심히 적는 편이다.상사의 입이 구동되면 바로 적기모드에 돌입한다. 적지 않고 머릿속에 저장한다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네가 내 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거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간 큰 부하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의 시선 회피용으로 맹렬한 눈빛을 업무수첩에 쏟아 붇기도 한다. 경쾌하고도 꼼꼼한 손놀림은 당연히 보조 작동한다. 반도 위쪽 땅에서 나이 어린 최고 존엄의 말을 한 단어도 놓치지 않겠다며 메모장을 들고 따라 다니는 노구의 모습이 겹쳐져 괜한 웃음이 돈다.잘 나가던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고위공직자 메모수첩이 형사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되었다. 적자생존 법칙이 적자창살 법칙으로 변질되었다. 이후 공직자들이 업무관련 된 일을 잘 적지 않는다고 한다.머릿속의 기억으로 남기든 적더라도 일을 처리하고는 바로 폐기한다고 한다. 아예 시비 거리를 남겨두지 않으려는 풍조가 된 것이다. 공직자의 업무수첩은 개인사이면서도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다.비록 비공식적 개인기록일지라도 사료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기록을 하지 않는 민족은 역사가 없다고 하는 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막연한 두려운 생각으로 기록을 주저하거나 폐기하는 일은 말았으면 한다.나의 저 의뭉한 뭉텅이들도 이번 기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시대 상황에 맞게 스캔해서 디지털 기록으로 보관해야겠다. ‘한쪽 귀퉁이에 적자망신살만한 흔적들이 보이면 지워야 되나? 문화재 훼손은 처벌받는데….’

2020-03-31

국뽕과 대한민국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지난 3월 초, ‘한국인이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한 중앙 일간지에 실렸다. 칼럼의 필자인 기자는 미국 출장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승객이 마스크를 쓰고 주변을 소독하는 모습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인이어서 미안했다고 적었다. 이 칼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비난의 댓글들이 꼬리를 물었고, SNS에서는 칼럼에 비판적인 글들이 한동안 봇물 터지듯 했다.미안함을 느꼈다는데, 어쩌랴. 그의 미안한 감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개인적 감정의 글이 버젓이 실리는 신문에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3월 31일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https://coronaboard.com/)에 따르면, 확진자가 발생한 203개 국가 중에서 미국은 16만4천253명으로 이탈리아의 10만1천739명을 훌쩍 뛰어넘어 확진자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11위 네덜란드, 12위 터키에 이어 확진자 9천786명으로 13위이다. 14위 오스트리아나, 15위 캐나다의 확진자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은 주춤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순위는 곧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완치율은 55.3%로 93.3%의 중국, 57.3%의 바레인에 이어 3위이고, 치명률(사망률)은 1.7%로 한참 뒤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순위인 82위이다.우리 의료진과 방역당국의 피땀을 보여주는 기록이다.상황이 이렇게 되니 코로나19를 독감바이러스보다 못한 것으로 가벼이 치부하던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지난 3월 24일 코로나 대응의 가장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여 진단키트의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국내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들이 불안한 마음에 자신들의 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오히려 외국에 있는 선수들이 안전한 나라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SK와이번즈 소속의 외국인 선수 로맥은 캐나다에서 아내의 출산을 도운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하고 있고, 사재기도 없다”면서 한국의 안전함을 세계에 알렸다.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유행어로, 극단적인 민족주의 또는 자국우월주의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통계 숫자를 나열하고 외국 언론의 찬사를 언급하며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상황을 미화하거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과도하게 자랑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이 멈춰 선 가운데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초중고에서 대학까지의 교육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힘겹고 심각한데 굳이 국뽕처럼 굴 일은 아니다.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좋다.혹시 기자의 옆자리에 탔던 그 미국인은 미국인이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지금 가지고 있을까? 아직도 기자는 자신이 한국인인 것이 미안할까?

2020-03-31

잃어버린 일상의 행복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일반적으로 우리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족과 기쁨은 극히 추상적인데다 개인적 편차도 커 행복의 무게를 비교해 설명하기 힘들다.행복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서 행복을 말할 때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적으로 이해하기가 용이하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 이런 경우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이 사는 궁극적 목표가 행복이라는데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이 사는 목적은 행복 때문”이라 했으니 행복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속적으로 추구돼야 할 가치다.일본인 작가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에서 작은 행복을 언급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른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의 시작이었다.우리나라도 소확행의 소비 트렌드가 유행한다. 기왕 큰 성취를 못할 바에야 작지만 성취가 쉬운 작은 행복을 추구하자는 소비 트렌드다.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SNS상에는 소소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글들이 자주 등장,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구절만 인용해 보자.“잠깐의 나들이가 그리움인걸, 지하철의 북적임이 그리움인걸….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마주보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네….”그동안 미처 몰랐던 소소한 일상 속의 만남과 나눔이 작은 행복이었음을 깨닫고 그리워하는 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질질 끌면서 어느새 우리 마음의 아픔도 그만큼 커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3-31

코로나19와 선거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부국장 대우)신종 코로나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사태 해결과정에서 등장한 ‘드라이브 스루’는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정치도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하게 변신 중이다. 가장 큰 변화는 우선 유권자를 향한 대면선거라는 기존의 선거문화를 완전히 뒤엎은 비대면선거가 그것이다. 문자메시지와 SNS에 대한 비중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면서 유권자들은 과거와 다른 선거문화에 점차 적응하고 있다.당내 경선에서도 휴대폰을 통한 여론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휴대폰이 이번 선거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선거 대상이 될 정도다. 이러다 보니 각 후보 캠프 측들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홍보전략을 구사하고 1인 방송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서울지역 일부 후보는 AI(인공지능)를 도입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집중공략 방향을 잡는다고 할 정도로 제21대 총선은 과거에 볼 수 없던 비교적 첨단의 선거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각 후보가 비대면 선거운동에 따른 문자메시지 발송비용 역시 과거보다 대폭 증가하면서 선거비용 부족 사태를 우려할 정도다.이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괴소문이 퍼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보수당의 대구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 예비후보가 설치한 착신전화가 문제가 되면서 결국 구속되는 사태와 비슷한 불법 전화사건이 재현했다는 풍문이다. 선거법상 자신의 휴대폰 이외의 전화를 사용하면 불법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한 예비후보는 경선에서 일반전화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안부전화를 겸한 선거운동이 진행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경쟁했던 예비후보가 선관위 측에 고발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현재 대구선거관리위원회와 대구지방경찰청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지만, 일부는 내사 상황임을 암시하는 등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만약 이 같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선거문화로 결코 치부될 수 없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최악의 선거문화로 지적될 뿐이다.아무리 대면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대구·경북지역은 보수당 후보자가 곧 당선이라는 수식이 어느 정도 통했기에 우선 당내경선에서 무조건 이겨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그러나 이제 대구·경북의 유권자들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선거의식을 지니고 있다.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지지에서 벗어나는 조짐이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버려야 할 구습이자 케케묵은 선거문화가 여전히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대한민국은 K-팝과 영화에 이어 코로나 사태 해결에서 창조적 혁신을 이끌며 또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등 최첨단을 걷고 있어 이제 한국정치도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2020-03-31

일상의 재발견 한 편의 시(詩)가 되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버스가 정해진 코스로 정해진 시간을 운행하듯 이 패터슨은 하루 하루 비슷한 일상의 행로를 걷는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들고 출근해 정해진 코스로 버스정류장을 돌며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과 산책을 하고 동네 주점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반복된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이 패터슨의 일상은 버스의 정해진 행로와 같이 흘러간다. 버스의 승객에서부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까지 별다른 변화없이 흘러간다. 단조로운 반복과 사소한 변주만이 존재하는 일상 속에서 패터슨은 시를 쓴다. 졸린 눈을 부비며 양치질을 하는 순간이거나, 신호 대기 중이던 차안이거나, 일상적인 대화의 행간이거나, 포근한 이불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서 잠들 때까지 뒤척이던 그 순간. 큰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작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반복과 변주를 섞으며 시를 완성해 간다. 예술이, 문학이 생의 격변과 경험, 상처가 표출되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큰 변화없는 잔잔한 일상 속에서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는가라는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반복되는 운율을 가진 영화다. 패터슨 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패터슨 시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의 아내 로라가 디자인하는 반복적인 패턴들. 일주일의 생활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운율에 자잘한 변화들이 담긴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속에 낯선 사람들. 매일 아침 조금씩 다른 자세로 자고 있는 아내 로라의 모습들 속에 작지만 섬세한 일상의 변화들이 감지된다. 일상의 반복되는 운율 속에서 조금씩 달리하는 풍경이 섞여 한 편의 시가 된다. 애초에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는 대단하거나 변화무쌍한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시간과 공간의 반복과 변주의 연과 행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시가 존재할 뿐이다. 지루한 것은 지루한대로 나른한 것은 나른한대로, 우리의 하루가 시가 되는 순간을 깨닫게 된다.영화 ‘패터슨’은 한 편의 시와 같은 구조를 가졌다. 반복되며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행간과 자잘한 변화를 포착해 연을 나누는 것으로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한 편의 시를 읽은 느낌을 가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은유와 직유로 표현되는 ‘생활의 재발견’이다.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던 패터슨의 일상은 금요일부터 조금씩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버스가 고장나는가 하면, 매일 저녁 산책길에 들러 맥주 한 잔을 하던 바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토요일 아내와 영화 관람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애완견이 그의 시작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이 발생한다. 그의 축적된 생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일요일 패터슨이 주로 점심을 먹으며 시를 쓰는 공원에서 일본 시인을 만난다. 패터슨 시의 유명한 시인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의 자취를 찾아 패터슨을 찾았다는 그는 “시로 숨을 쉰다”고 말하며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한다. 그리고 “텅 빈 페이지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며 자리를 떠난다.쌓고 다듬던 그의 작업들이 사라진 이후, 다시 되살아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일상의 감각들을 보호하는 그의 자세가 놀랍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은 행간이 되고, 하루는 연이 되어 완성된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다. 예술이 일상이 되는 삶이 아니라,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과정의 영화다. 예술과 일상의 전환 스위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더디게 자라 눈부시게 반짝이는 ‘일상의 재발견’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김규형*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3-30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 날에… 진주 응석사(凝石寺)

십여 년 전 아들이 공군 훈련병으로 있으면서 장문의 편지와 함께 보내온 벚꽃잎만큼 아련했던 꽃이 있을까. 훈련을 마칠 즈음, 꽃은 간 곳이 없고 무성한 나뭇잎처럼 성장해 있던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차는 진주로 달린다.벚꽃이 만개하기에는 조금 이른가 보다. 연둣빛 새싹과 봄꽃들이 수런대는 시골길은 평범한 들판과 촌락을 지나 집현산 아래에서 싱겁게 끝나 버린다. 접근성이 좋은 응석사(凝石寺)는 신라 진흥왕 15년(55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문무왕 2년 의상대사가 강원을 열었고 그 뒤 나옹, 무학 등 이름난 고승들이 거쳐 간 대사찰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불상 밑에 숨겨둔 무기를 발견하고 많은 당우를 불살랐다고 한다.절은 서너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이 육중하고 화려한 다포식 일주문을 붉은 동백꽃이 지키고 담장너머 경내는 온갖 봄꽃들로 생기가 넘친다. 우아한 백목련과 키 작은 수선화까지 시샘하듯 눈길을 사로잡는데 뒷산조차 온통 진달래로 붉다. 다투듯 존재감을 과시하는 청순한 봄꽃무리들, 두견화 향기에 귀촉도 소식이 궁금해서 오늘밤은 응석사도 몸살을 앓을 것만 같다.계곡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탑들의 호위 속에서 봄꽃에 취한 마음 애써 진정시키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금강문 겸 범종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면 계단 위로 멀리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렬로 배치된 구조가 나를 더 경건하게 만든다. 보물이 있는 대웅전보다 바로 앞을 막아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스기나무 두 그루에 위압당하고 말았다.불법을 수호하는 나무답게 큰 키로 낯선 이를 내려보며 점검한다. 잠시 긴장감이 흐른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곧게 뻗은 한 쌍의 스기나무는 큰 행사가 있을 때 괘불을 걸기 위한 용도로 심어졌다고 하니, 절의 당간지주인 셈이다. 처음 보는 이색적인 풍경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셔트를 눌러대다 끝내는 범종루 위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지척에 스님이 계시지만 차담을 청할 처지가 아니라 아쉬운 마음만 가득하다. 이 좋은 봄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까지 눌러쓴 방문객의 모습에 꽃들도 놀라지나 않을까 조심스럽다. 응석사의 보물은 계절에 관계없이 살아 있는 나무들과 돌담이다. 흔한 풀꽃조차 불심으로 가득하다. 불국토에 온 것처럼 구석구석 평화가 흐르고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응석사는 지나친 정갈함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풀꽃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돌담은 햇살에 몸을 말리며 응석사(凝石寺)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분위기와 느낌이 다른 돌담과 돌축대, 청이끼를 두른 돌담에서부터 큰 돌로 만들어진 웅장한 돌축대까지, 모두 예불소리로 다져진 사랑스러운 몸짓이 담겨 있다.산신각과 나한전이 있는 마당에는 냉이꽃이 무리 지어 햇살에 반짝인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돌담 사이로 난 통로로 들어서면 허리 꼿꼿하게 세운 민들레가 씨앗을 품고 바람을 기다린다. 눈물겨운 광경도 잠시, 뒷산을 물들인 진달래가 유년의 기억 속으로 나를 이끈다. 이 모든 풍경에도 독성각은 흐트러짐 없이 홀로 참선 중이다.유서 깊은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잔잔한 평화 그리고 여유로움, 몸과 마음은 절을 둘러보는 사이 깨끗이 정화되었다. 올라 갈 때는 봄의 정취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내려오면서 산신각과 나한전 사이에 서 있는 아름다운 쌍사자 석등을 보았다. 그 아늑한 터전에서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대웅전을 떠올린다. 300년 된 은행나무가 법당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지켜보고, 보물 제 1687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앞에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조낭희 수필가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예상했던 대로 길어지자, 일상을 지배하던 긴장과 불안감도 차츰 둔화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를 좀 더 자중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로 몰고 간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언가로부터 위협받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임을 암시한다. 오늘 처음 법당에서 백팔 배를 한 남편의 행위 역시 그런 의미였으리라.법당에 들어오지도 않던 남편이 삼배의 예를 갖추고 드디어 백팔 배를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우연히 백팔 배를 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해 준 남편이 고맙다. 응석사 대웅전이 그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 우리의 기도는 부처님의 영험함을 기대하기보다 스스로와 삶에 대한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위한 다짐이며 약속이다.백팔 배를 마친 남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말없이 법당을 나오는 우리를 맞아준 것은 관음전 뒤 언덕을 지키는 무환자나무였다. 통일 신라 말 9세기경 도선국사가 무환자 열매를 먹으면 전염병을 예방하고, 가정의 나쁜 일을 쫓아준다하여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심었다고 한다. 무환자 열매로 만든 염주 하나쯤 곁에 두고 싶다.늘 숙제하듯 절을 찾아 나섰던 발걸음에 이제서야 조금씩 힘이 실린다. 매주 절 기행을 하는 동안 백팔 배를 함께 하겠다는 남편의 약속, 고통과 시련도 잘만 다스리면 꽃을 피우기도 한다. 오늘은 봄꽃보다 사랑스런 날이다. 인생은 그런 맛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2020-03-30

디테일을 알아채면 할 수 있는 것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살다 보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때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작품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큰 사건과 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입장에 서서 작품에 접근한다. 그러나 작품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로 불릴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 쓰는 이유는 디테일에서 작품의 의미가 풍부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감상의 두 입장을 소개했다. 아무리 굶어도 양심을 지켰어야 한다는 관점은 보수적 관점이고, 생계형 범죄이니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진보적 관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점만으로 작품에 다가가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이 작품을 학생들과 같이 소리 내어 읽다가 하인이 여드름을 만지는 장면이 네 번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쪽짜리 짧은 단편에서 여드름이 네 번이나 나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읽으며 여드름에 주목하는 독자는 거의 없다. 여러 번 읽으며 참고 문헌을 찾다가 ‘유쾌한 소설로서의 라쇼몽’이라는 논문을 발견했다. 이 어두침침한 소설이 유쾌하다니 깜짝 놀랐지만, 논문의 저자는 이 여드름을 삶의 의지로 보고 그것을 유쾌함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아쿠다카와는 이모 손에서 자랐는데, 이 작품을 쓰던 시기는 당대 규범에 충실했던 이모의 반대로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고 심한 좌절에서 막 벗어나던 시기였다고 한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 속에서나마 더 이상 사회 규범에 짓눌려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는지도 모른다.메시지 전달에는 언어가 7% 차지하고 사소한 행동이나 태도, 표정 등의 비언어적 요소가 93%로 훨씬 더 많이 작용한다는 메라비언 법칙이 있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표정이나 사소한 행동, 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법칙을 작품을 이해할 때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작품 전체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보여줄 테니 말이다.그러니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대사나 사건뿐 아니라 디테일한 설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밤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시간이다. 시체가 늘비한 라쇼몽 누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할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하인은 여드름을 계속 만진다. 이런 디테일을 알아채면 하인의 심리 변화와 행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작품에서 다루는 문제가 무엇인지, 작가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관점이 달라도 그런 발견은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다.하인의 가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은 토론만으로는 작가가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 상황의 디테일을 알아채고 공유하다 보면, ‘너는 어느 편이냐’고 관점을 묻는 것보다 우리는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2020-03-30

가정간편식 전성시대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은 완전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집에서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가리킨다. 가정 음식을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가정대용식’이라고도 불린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HMR 시장규모는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특히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족’이 늘면서 소비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집에서 직접 밥을 차려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직접 조리를 늘리겠다는 소비자도 많아 가정간편식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이같은 사실은 CJ제일제당이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 전국의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에 따른 식소비 변화 조사’를 진행한 결과 나타났다.개학 연기와 재택근무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밥’을 먹는 비중은 83%로 전년보다 23.5%포인트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음식을 직접 조리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답한 사람은 84.2%였고, 가정간편식 소비가 늘었다는 응답도 46.4%였다. 이에 따라 가정간편식 품목 가운데 집밥을 대체하면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즉석밥, 생수, 라면 등과 더불어 국물요리, 상품죽, 냉동만두 등 구입이 늘었다.또 개학 연기로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핫도그와 피자, 돈가스 등 에어프라이어를 활용한 가정간편식 구매도 늘었다. 또한 계란, 김, 두부, 콩나물 등 반찬으로 활용하는 식자재에 대한 구매 역시 증가했다. 단백질과 채소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홈 트레이닝 열풍에 따라 간편하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가정간편식 생선구이 등도 성장할 전망이다.가정간편식 전성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30

2020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며칠 전이었다. 개강 준비를 마치고 연구실에서 나서는 길, 주차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캠퍼스를 잠시 거닐었다.시원한 바람이라도 잠깐 쐬면서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스트레스를 좀 달래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모처럼 햇살이 좋아서 소독이라도 하려는 듯 온몸에 받았다. 하늘과 잔디밭도 푸르게 빛나 눈이 부셨다. 어느 새 봄이 온 모양이었다. 우연히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면 못 알아차릴 뻔했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길이 가르마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학창시절 즐겨 외우던 시구가 떠올랐다.‘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기분이 좀 풀린 듯한 느낌도 잠시, 기억을 되감아 그 시의 첫 구절을 읊조리고는 이내 울컥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흉포한 바이러스의 침략으로 한 달 넘게 지척의 부모님, 가족들과도 화상통화만 하던 설운 내 마음속으로, 빼앗긴 조국의 들에서 피눈물로 그 시를 썼을 시인의 마음이 훅하고 빨려 들어와, 백년의 시간을 넘어 절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새해 들며 슬며시 쳐들어와 저 들을, 거리를 텅 비워버린 바이러스는, 우리에게서 2020년의 첫 두어 달을 ‘순삭’시킨 후 이제 봄까지 빼앗으려 넘보고 있으니, 그 시절 무도한 침략자들과 무엇이 다를까.옷자락을 흔드는 바람,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는 종다리,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 민들레, 제비꽃, 부드러운 흙….봄이 온 기쁨을 만끽할 수조차 없었던 시인은 빼앗긴 들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고맙고 따스한 것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푸른 웃음 푸른 설움으로 뒤범벅된 그 심란한 마음을 달랬으리라.시인의 봄 신령이 옮겨 지폈는지, 평소라면 IT기술과 AI로 코로나와 전쟁에 뛰어든 기업들의 이야기만 찾았을 공학자도 인터넷을 뒤져 불안만 키우는 뉴스들 속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담들을 찾아내며 기뻐한다.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의료진들, 보호구 자국을 얼굴에 훈장처럼 새긴 거인 같은 그들의 미소, 개점휴업 중인 식당의 식재료를 소진해 주고 의료진의 식사를 챙겨 보내는 사람들, 침침한 눈으로 손수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어르신들, 앞 다투어 이어지는 기부행렬, 포항의 드라이브 스루 횟집, 이탈리아의 발코니 음악회, 노인을 비롯해 건강에 취약한 이들이 편안하게 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1시간 먼저 문을 열기로 한 착한 상점들….우리의 그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마음까지 얼려버릴 듯한 팬데믹의 시대를 훈훈하게 덥혀 줄 것이다.그래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의문문은 머지않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구나!’라는 감탄문으로 바뀔 것을 믿는다.

2020-03-30

기가 막힐 일

강희룡 서예가중우(衆愚)정치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를 고찰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국가론과 정치학에서 민주제의 타락한 정체(政體)에 부여한 명칭이다. 폭민 정치라고도 부르며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치를 의미한다. 지성인이나 다수대중이나 똑같이 한 표다.게다가 수적으로 엘리트보다 일반대중이 더 많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가 월등히 많은 대중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이들의 기호에 맞는 정책이나 포퓰리즘을 쏟아낸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판기능을 갖춘 소수 엘리트보다 대중의 수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닌 중우정치 즉 가짜 민주주의로 변질된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양당제 혹은 몇 개의 당이 정치판을 독점하여 야합으로 나눠먹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들이 한 계층을 형성하여 민주주의를 통해서 자신들을 뽑아준 대중을 위하기보다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나 속한 집단을 위한 정치를 강화해 반민주주의로 변질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혹은 비이성적인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보다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지역적으로 편중된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이성보다는 감성, 일시적 충동에 의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하는 행위가 반복됨으로써 중우정치의 현실로 빠져들어 대중의 다양성이 정치의 다양성으로 직결되지 않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엘리트들의 오만정치다. ‘국민들이 원하기 때문에’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는 경우는 그 국민이라는 게 그의 머릿속에 기억된 다수를 잘못 지칭하여 필요충분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작금의 우리 사회는 TV나 신문보다는 유튜브나 SNS를 선호하는 시대흐름에 편승하여 대중들을 선동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민주주의의 운영주체인 시민의 역량과 성숙도가 낮을수록 이런 매스미디어매체의 선전과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세뇌된 대중들은 명백한 진실조차 믿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사회를 둘로 쪼개 놓은 조국사태는 아직까지 정치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다.이런 가짜 민주주의의 근원은 과학과 이성, 진실이 부정된 자리에 궤변과 독선, 거짓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반지성주의가 우리 사회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조국 전 법무장관시절 당시 법무부 인권국장 자리에 있던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는 윤석열 총장을 비롯해 검찰 쿠데타 세력 명단이라며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조국 전 장관을 개혁파로 기묘사화의 피해자인 정암 조광조에 비유하고, 세도를 부리던 대윤, 소윤인 윤임과 윤원형에는 윤석열 총장과 윤대진 부원장을 빗대며, 명단 속 인물들이 아직도 고위직에 남아있기에, ‘2020년에는 기필코,’ 라면서 국민들이 야차(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귀신)들에게 다치지 않도록 널리 퍼뜨려 달라고 주문했다.이단 종교보다 더 무서운 민주주의의 가장 암적인 존재는 바로 이런 이단(異端) 정치인들이 설치는 정치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2020-03-30

나의 이름은

작가들은 때로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클북에서 작년 ‘내 꿈은 퇴사다’라는 책을 출간할 때,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묘사해 대만에 수출 계약을 하는 등 호평을 받은 책입니다.20세기 초 스위스에 한 유명 작가가 활동했습니다. 쓰는 책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전성기에 이른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카를 융의 제자 랑에게 심리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가 내린 처방은 이렇습니다. ‘스스로를 벗어나, 자신을 관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라.’조언을 따르기 위해 작가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 지금 내가 쓴 작품이 작품 자체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명성 덕분에 내용과 무관하게 팔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새로운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책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1919년, 그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놀랍게도 자신의 전작(前作)을 모두 뛰어넘습니다. 이 작가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 그가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발표한 작품은 그 유명한 ‘데미안’입니다.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중 최고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스티븐 킹입니다. 비평가들은 스티븐 킹이 지나치게 다작(多作)을 한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에 발끈한 스티븐 킹이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자 비평가들은 열광합니다. 스티븐 킹을 뛰어넘는 신인 등장! 이런 표현을 쓰면서 말이지요.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스티븐 킹은 비평가들을 골려주었습니다.이름이 갖는 의미와 무게가 있습니다. 작가들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새 이름으로 나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며 새 출발 하는 것은 비단 작가들만의 특권이 아니겠지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30

지역의 경제대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 경제도 위기상황에 빠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공동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3월 26일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가 개최되었다. G20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각국의 관련 대책을 통해 세계 경제에 5조 달러를 공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번에 G20이 세계 경제 지원을 위해 공급하기로 한 5조 달러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세계 경제를 지지하기 위해 공급하였던 금액과 거의 같은 규모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19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거나 그 이상의 타격을 세계 경제에 입히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화상회의를 개최한 G20정상들은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무역에서 불필요한 간섭을 회피함과 동시에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함께 생명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건강대책을 실시하고 자금을 공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공동성명에서 공통의 위협에 대해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며 이번 대책의 대상이 매우 명확하게 좁혀지고 투명성이 높은 데다 일시적 조치라는 점에서 5조 달러 규모의 재정정책, 경제대책, 보증제도를 더한 대규모의 재정을 집행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은행이 이날 금융사에게 사상 처음 무제한의 유동성 공급을 결정하였다.세계와 국내의 주요 정책당국이 이처럼 코로나19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책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 구미 등 핵심 산업도시와 농수축산업이 대부분인 군지역을 아우르고 있는 경북도는 과연 어떠한 정책을 별도로 시행하여야 할까. 국가가 아닌 이상 지자체가 동원 가능한 재정 여력에 한계도 있을 것이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원대책을 지역에서 실제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는 대구 경북지역에서 더욱 피해가 컸던 점도 맞물리면서 이와 같은 재난이나 위기상황에 지방공무원들은 방역과 진단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경제대책이다. 지역민이 이 지역을 근간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물론 재해와 재난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전 시민, 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적인 정책을 먼저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보건위생 등을 통한 무차별적인 방역과 통제와 같은 정책이 그것이다. 문제는 지역 전체의 경제 상황을 놓고 보면 세부업종별로는 타격을 입은 업종이 있다면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경제정책의 방향도 어떠한 분야를 먼저 챙겨야만 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좀 더 생각해보면 이번 코로나19 쇼크로 인해 일시적인 이동의 제한이나 불편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된 곳, 아예 방역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집객시설 등을 폐쇄함으로써 강제적으로 대상 업종의 경제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 곳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1인당, 1가구당, 1개 업소당, 1개 군당과 같이 똑같은 기준단위로 공평하게 예산을 배분 또는 집행하는 것이 행정상으로는 편할지 모르지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제를 지탱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기에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도 회피해야 마땅하지만, 일반적인 경제순환은 기업의 생산 활동을 통해 나온 제품이 유통을 거쳐 소비자가 최종 소비함으로써 순환되는 것이다. 이때의 공통분모는 오직 하나 가계다. 생산공장의 근로자, 유통산업의 종사자 모두 최종수요를 뒷받침하는 가계소비자다. 결국, 가계 수요의 근원은 소득이고 그 소득의 근원은 고용에 있다. 미국이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괜히 고용 관련 지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다.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타격을 입은 것은 확실하지만, 실제 눈에는 도소매 유통 등의 매출 하락이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보다 근본적인 경제활동의 그리고 소비를 책임지는 가계의 주인인 가장을 고용하는 생산을 담당하는 제조업체의 중요성을 잊게 하는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경북지역의 경우에는 저출산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고용을 책임져 왔던 구미의 전자통신산업과 포항의 철강산업 그리고 경주의 자동차부품제조업 등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고용상황을 볼 수 있는 지표의 하나인 구직급여 신청자 수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다. 2016년 말 시점의 경북지역 구직급여 신청자 수는 9천946명으로 당시 전국의 21만5천675명의 4.61%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물론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국과 경북 모두 구직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은 모두 증가하였다. 문제는 지난 3년간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전국은 22.81%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경북도는 무려 34.45%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2017년 말과 비교한 최근 2년간 증가율에서는 전국이 30.20%를 기록하였으나 경북도는 무려 40.21%가 증가하여 2019년 말 현재 구직급여를 신청한 실업자는 1만3천372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전국 대비 비중도 5.05%로 3년 전 4%대 중반에서 5%대를 넘어섰다. 이와 같은 상황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결국 일자리를 찾아 경북도를 떠나는 인구이동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결론적으로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역 차원의 경제대책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고용에 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구미산업공단이나 포항철강공단, 경주외동공단 등 각 지역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경제에서 최소한의 소득원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지역경제는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순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지금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유통부문의 매출 하락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매우 일시적인 쇼크에 불과하다. 의식주를 담당하는 이들의 경제활동에 일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의 제약하에서 반드시 전방위적으로 누구나 차별하지 않고 집행해야만 하는 방역, 통제 등을 위한 지출이 아닌 한, 그들에 대한 지원은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긴급자금지원 대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적어도 지역경제의 수요원인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실직하는 사태가 확대되면 소상공인의 매출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지역경제의 근간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지역 경제대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사실 구미, 포항, 경주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지리적으로 다소 격리되어 있어 지역민들이 그 영향의 정도를 파악하기 힘든 공단지역 제조업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와 영향에 대해 지자체 당국에서는 철저하게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실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유지가 어려워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까지 몰린 기업이 있다면 최대한의 지원대책을 특별히 마련하여 가장 조기에 지원해야만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29

마음의 방역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밤새 안녕’이 부쩍 실감나는 요즘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듯한 시기에,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인사나 위로해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정겹고 따듯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살가운 마음을 나누듯 다정한 인사와 대화를 건네면 어떨까?세상이 미증유의 감염증으로 요동쳐도 계절은 어김없이 새봄의 바퀴를 부지런히 굴려가고 있다. 메말랐던 땅과 앙상했던 가지에 돋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들이 세상에 다소곳이 인사를 하는 듯하다. 만물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으며 봄 마중도 하고 해마다 그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들에게 눈인사라도 건네야 하는데, 암울한 장막같은 바이러스가 길을 막고 불안감이 발목을 잡으니 속절없을 따름이다.인사는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이다.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를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마무리한다. 인사는 서로가 알아보는 관계의 첫 출발이자 반가움과 공손함을 드러내는 예(禮)이기도 하다. 상대방에게 관심과 친근함을 표현하는 것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상호 간의 소통도 인사를 나눈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일상에서 만나거나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는 감사의 마음이기도 하고 넉넉한 정(情)이기도 하다.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사회적 우울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일상이 움츠러들고 바뀌면서 사회적인 단절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몸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요즘이지만, 이웃과 동료들 간에 주고받는 인사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자연스럽게 이어가야 평온의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불안하고 우울한 마음도 심리적으로 전파된다고 한다. 슬프거나 어려운 일을 당해서 같이 슬픔의 늪에 빠져 힘들어하기 보다는 서로가 마음으로 다독이고 보듬으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장기화 조짐의 코로나 사태에 봉착해서 몸이 지치지 않도록 마음의 방역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른 바 ‘심리 방역’이라고 하는 마음의 방역이란 감염병 유행 시기에 생기는 마음의 고통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처해 있는 상황에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을 실천을 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뜸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나 SNS를 통한 소통과 교감, 긴장을 풀어주는 가벼운 운동, 마음의 휴식을 위한 명상,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온정과 봉사 참여 등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찾고 무력감을 달래 나간다면 그 자체가 방역이고 면역인 것이다.특별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봄 햇살같이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말로 나누는 인사가 지쳐가는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모두가 어려운 때 긍정과 희망, 배려와 격려의 나눔이 마음의 거리를 가까이 하고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이다.

2020-03-29

코로나 정국에 휩쓸린 4·15 총선 이슈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아무도 예견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총선 정국마저 흐트러지게 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상대를 향해 준비했던 전략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학교는 휴교하고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언론마저 하루 종일 온통 코로나로 장식하고 있다. 제일 답답한 사람들은 총선 후보자들이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악수 할 사람도 없다. 어제는 하루 종일 거리에서 방역 소독약만 뿌렸다는 어느 후보의 하소연을 들었다. 코로나 사태 앞에 정치도 선거도 실종되어 버린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만큼 총선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어느 선거나 구도, 인물, 정책이 승리의 관건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정국은 선거판의 기본 구도까지 헝클어 버렸다. 여야 양강이라는 팽팽한 대결구도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 야당이 벼르던 문재인 정부 실정론은 코로나 사태로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그동안 어렵사리 이룩한 보수정당의 통합도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 개혁이나 공수처 신설, 조국사태도 울산 선거 개입도 이번 총선의 이슈는 되지 못한다. 코로나 방역 대책만이 가시적으로 보일 뿐이다. 코로나 재앙이 역설적으로 팽팽하던 대결구도를 뭉개버렸다.이러한 상황 하에서 여야의 총선의 전략도, 정책도 부각되지 못한다. 여당의 급조된 ‘국민을 지킵니다’와 야당의 ‘바꿔야 산다’는 구호만 나부낄 뿐이다. 코로나 사태는 이처럼 선거의 쟁점마저 블랙홀에 삼켜버린다. 미래통합당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문 정권의 ‘소주성’ 정책, 외교 안보 정책의 실종, 대북 정책까지 코로나 ‘방역 정책’에 밀리고 있다. 코로나로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야당 심판론은 먹혀 들 수 없다. 급기야 야당은 김종인 전의원을 총괄 선대위원장으로 모셔왔다. 선거의 달인이라는 그의 선거 메시지가 어떤 효과를 낼지 아직은 미지수다.흔히 총선 선거에서는 후보 당사자의 인물이 선택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후보를 검증할 시간마저 너무 촉박하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되면서 정당투표용지는 48.1㎝ 길이로 제작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준 연동제 선거법에 의해 급조된 위성 정당 이슈도 이제 장군멍군식이 되어 버렸다. 야야 모두 실리 앞에 명분도 원칙도 상실해 버렸다. 이번 지역 총선에서는 야 성향 무소속 후보가 많다. 지역 선거에서 3파전은 제 1야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집권 여당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여러개 보인다.이처럼 코로나 사태는 총선의 구도, 정책, 인물을 알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언론은 이제부터라도 후보와 정책을 유권자들이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언론은 코로나 사태의 방역과 홍보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총선관련 프로그램을 보다 확충해야 한다. 후보도 정책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는 대의 정치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이제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민주 정치의 대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정당이나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30%의 무당층의 표심이 총선 결과를 좌우할 기간이다.

2020-03-29

새벽마다 맨발 걷기를 실천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이들은 맨발 걷기의 유익에 대해, 함께 맨발 걷기를 하시는 분들에 대해 특별한 감회를 말합니다. 저는 아직은 겁이 나서 맨발 걷기는 도전하지 못하지만 매일 꾸준히 걸으려 노력합니다. 목표는 하루 2만보.하루 2만보를 걸으려면 여러 번 시간을 쪼개야 합니다. 일정이 들쭉날쭉한 작가의 특성상 저는 유연하게 시간을 만들려 애씁니다. 기상 직후 6천보, 점심 식사 후 4천보, 밤에 1만 보를 걷기도 하고 아침 일정이 여유 있는 날은 아침에 1만5천보 정도 걷고 남은 일과 중 5천보를 채우기도 합니다. 목표를 높게 잡으니 평균 2만 4천보 이상은 늘 걷습니다.주말에는 장거리 원정을 다니곤 합니다.올해 포항에서 시작해 강원도 거진 최북단까지 걸어서 한 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물론 구간을 쪼개 도전해 보는 거지요. 한 번 출정하면 25∼30㎞를 걷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 3만보 넘게 휴대전화에 찍힙니다.꾸준히 운동할 때 제일 큰 복병은 부상입니다. 발바닥이 버텨줘야 하는데, 지난주쯤 물집이 잡혔습니다. 발바닥과 양말, 운동화 사이 미세한 틈이 문제였습니다. 평소 신던 양말 대신 스포츠 양말을 신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틈이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오백원 동전 만한 물집이 잡혀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하루 2만보 목표는 깨지 않으려 불붙는 발바닥을 참으며 걷고 있습니다.작은 틈이 상처를 줍니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적(敵)들은 아주 미세한 틈을 신기하게 파고듭니다. 삶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걷기 고수들은 맨발 걷기를 실천하는 것일까요? 양말도 신발도 훌훌 벗어 던지고 지면에 발바닥을 밀착합니다.상처받을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내딛는 그들이 존경스럽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9

‘몰염치’ 공화국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 전쟁이 시작됐다. 죽기살기식 혈투가 예상되는 이번 총선의 으뜸 화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19’다. 감염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 일상 파괴의 고통에 찌든 국민을 홀리려는 정부와 여야 정당들의 ‘국고 빚 퍼 돌리기’ 경쟁이 가관이다. 40조니 100조니 하고 불러대는, 감도 안 잡히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장판 야바위놀음을 뺨치게 한다. 비극은 그 나랏돈을 메꿀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낯선 이름의 선거제도가 이 나라 정치의 골치아픈 애물단지가 됐다. 우후죽순 급조된 비례대표 전용 정당들은 물고기를 홀리려고 된장 발라 물속에 던진 통발들을 연상케 한다. 투기성 통발 선거야말로 국민을 피라미로 보는 대표적인 국민모독 정치행태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되면서 정당투표용지가 48.1cm 길이가 됐다니, 유권자들은 더욱 헷갈리게 됐다.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온갖 소란스러운 행각들을 보노라면, 이 나라 정치꾼들은 국민을 자기들 잔꾀에 무한히 놀아나는 하등동물 취급하는 게 분명하다. 대놓고 위성 정당을 만든 미래통합당의 행태를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권의 타락한 짬짜미 4+1 다수의 횡포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구경만 하고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항하여 통합당이 위성 정당 ‘미래한국당’을 만든 속내에는 그나마 동정의 여지도 있다.그러나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술수가 뚜렷한 위성 정당 놀음은 역겨움까지 부른다. 통합당의 위성 정당에 대해 오만 험구들을 다 동원하던 민주당은 재야 진보 인사들이 주축인 ‘정치개혁연합’마저 따돌리고 ‘더불어시민당’을 비례대표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항간에는 ‘경찰차를 빼앗아 타고 도둑질 하는 꼴’이라는 풍자까지 나올 지경이다.그런데 그렇게 끝난 게 아니었다. 검찰에 기소된 전 청와대 요인까지 고삐 잡은 ‘열린민주당’은 또 뭔가. 부동산 투기 장난질이 들통나서 여당의 공천마저 보이콧된 전직 청와대대변인에다가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 떼준 혐의를 받아 재판 중인 비서관까지 거기 얼굴 들이밀고 독설을 뿜어대고 있다. 김의겸의 ‘언론개혁’ 주장도 가소롭지만, 현 검찰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 살생부까지 내돌리는 황의석의 행동은 혀를 차게 만든다.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이낙연의 ‘치욕은 잠깐이지만 책임은 4년’이라는 말 속에 민주당의 추접스러운 본심이 다 들어있다. 청와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온갖 정치 장난질은 번번이 허깨비 취급이나 당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과 황교안 대표의 수치이기도 하다. 민심을 갈라치며 국민을 능욕하는 권력자들의 ‘몰염치’ 행태가 목불인견인데도, 야당의 난장 공천까지 겹쳐 대안마저 마땅치 않은 국민은 참으로 고달프게 됐다. 투표할 때만 겨우 잠깐 ‘주인’ 노릇을 한다던가, 유권자들이 그 찰나의 ‘주인’ 행세라도 제대로 할 채비를 갖춰야 할 텐데…. 과연 잘 돼가고 있나.

2020-03-29

‘벚꽃엔딩’

2012년 발표된 ‘벚꽃엔딩’은 오랫동안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유지한 곡이다. 이 노래의 제작 배경은 화려하게 펼쳐진 벚꽃의 만개한 풍경이다. 이 노래는 매년 봄만 되면 크리스마스송처럼 이 시절에 등장해 음원차트에 다시 진입 한다. 그래서 ‘벚꽃좀비’라 부른다.봄이 되면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벚꽃축제장이다. 벚꽃이 군락을 이뤄 피어있는 모습은 화려하면서 장관이다. 피는 것만큼 떨어지는 모습 또한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이 아름답다.만개한 벚꽃은 낭만적이며 인상적이다. 그곳은 추억을 남길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매년 피는 꽃이지만 벚꽃의 화사함과 아름다움은 보는 이에게 늘 새봄의 기쁨을 만끽케 한다.벚꽃의 꽃말은 순결과 절세미인이다. 꽃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담았다. 그러면서 벚꽃의 피고 지는 과정이 너무 순식간이어서 삶의 허무와도 비유한다. 화려한 젊음의 절정기가 순식간에 지나듯 벚꽃의 피고 짐이 삶의 덧없음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올 벚꽃 개화는 평년보다 3∼8일 정도 빨랐다. 봄철의 따뜻한 기온 탓이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이 봄꽃 개화를 앞당기고 있다.벚꽃의 개화 시기는 기상청 표준목을 기준으로 한다. 표준목 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펴야 공식적으로 개화다. 첫눈이 기상관측소에 내린 눈을 기준으로 삼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은 종로구 송월동 기상관측소 왕벚나무가 기준이다. 올해는 99년 만에 가장 빠른 개화였다. 전국의 벚꽃놀이가 코로나19로 망쳐버렸다. 벚꽃축제가 무더기 취소됐다. 축제장 인근에 대한 봉쇄는 물론 벚꽃을 보고자해도 지자체가 방문을 만류한다. 코로나19가 벚꽃을 만끽할 우리의 봄을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벚꽃엔딩’의 노래가 왠지 쓸쓸하게 들린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29

우리 안에 있는 성장의 씨앗

허진욱 회사원셋째 형은 중학생 시절 권투를 했다. 프로 복서였던 아버지는 못 이룬 챔피언에 대한 꿈 때문에 권투를 시켰지만 형은 권투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를 거역하면 혼날까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훈련도 대충, 눈치껏 운동했고 성과도 없었다. 의심을 품은 아버지는 새벽 훈련을 몰래 뒤따라간 일이 있다. 선수 모두가 체육공원을 달리는 훈련이었다. 모두 열심히 뛰는데 형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갔고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장실로 찾아가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린 채 잠들어 있는 형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형을 다그쳤다.형과는 반대로 나는 진심으로 권투를 잘하고 싶었다. 부모님께 떼를 쓰다시피 요청해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간절히 원하던 권투를 시작한 기쁨에 시키지 않아도 새벽부터 알아서 벌떡 일어나 체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성장을 간절히 원했다. 학교 짱이 되고 싶었다. 한참 예민하던 때라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공부보다 싸움 잘하는 모습이 더 멋져 보여 시작한 권투는 내게 기술과 체력만 성장시켜준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력을 덤으로 선물해 주었다. 운동으로 단련한 정신력은 삶의 힘든 시기마다 극복할 힘을 주었다.청소년기에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해도, 지식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일했고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배워 나갔다.항상 배움의 목표를 정하고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시기에는 네 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은 저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다.성장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성장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결국 내 선택이다.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정성껏 가꾸어야 한다.내가 속한 회사에도 성장과 도약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새로운 대표이사 취임을 계기로 회사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이전 경영자와 180도 다른 경영을 한다.소크라테스처럼 팀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리가 아프다.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가 전하고 싶은 진심을 나는 알 수 있다. 스스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회사는 이익추구를 위해 혁신과 변화는 필수다. 결국 직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성장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볼링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 동호회 경기 때 한 번씩 퍼펙트를 칠 정도로 실력이 좋다. 하지만 볼링을 처음 배울 때에도 잘했고 좋아했는지 질문해 보았다. 답은 ‘아니다.’ 였다. 호기심에 몇 번 해보았는데 재미를 느꼈고, 더 잘하기 위해 방법을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연습했다고 했다. 실력이 늘고 볼링이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었다. 그는 볼링 레인과 공을 분석하면서 지금보다 성장하기 위해 주도적인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볼링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은 빛난다. 행복해 보인다.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성장의 씨앗을 스스로 잘 키워 퍼펙트를 치는 경지에 올랐다. 이것이 성장 비결이다.지식근로자에게 일과 삶은 분리하고 싶어도 본질적으로 분리가 어렵다. 삶 속에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일을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 삶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하면 삶도 행복해진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성장본능을 꺼내는 방법이다.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놀이처럼 그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과 전 세계가 마비되어 있다. 심각하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무너져버린 일상을 복구하고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성장을 통한 재도약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온 국민이 단합해 성장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2020-03-29

공공기관 유치… 행복영양의 지름길이다

오도창영양군수영양군은 전국에서 울릉도 다음으로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열악한 교통·의료·문화 등의 인프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사방으로 막힌 지형은 부단한 노력에도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이제는 지방소멸의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인구를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출산에 따른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지급하는 신생아출산지원금의 성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귀농귀촌민의 유입도 타지자체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 처지이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영양군의 입장에서는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쉽지 않은 방안이다.물론 제일 좋은 것은 일자리도 발생시키고 많은 외부인을 신규로 유입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기업을 유치하면 되지만 농업이 근간인 영양에서 원활한 인력 공급과 교통 인프라 수준 및 대도시와의 접근성으로 봤을 때는 기업들의 매력을 끌만한 요소가 낮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민선 7기에서는 무엇보다 공공기관이나 유관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역시 타 지자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각오해야 하지만, 최근 지역 균형과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한 영양군민들의 권리 보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공기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이미 많은 부분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져왔다.지난 2018년 10월. 청정 자연의 강점을 앞세워 파괴되고 흐트러진 생태계 균형을 찾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개원하는 결실을 거뒀다.특히 고무적인 것은 국립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따른 신규로 유입되는 직원이 100여명이다. 여기에 가족까지 이주하는 직원들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인구 증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또한 지난해 12월에는 3년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영양소방서 신설이 최종 확정됐다. 2022년에 완공이 되면 각종 재난 및 대형사고 발생 시에 영양읍과 입암면에 위치한 119안전센터에 의한 대처에서 벗어나 신속한 골든타임 확보와 함께 체계적인 현장 대응이 가능해져 영양군민의 인명 및 재산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러한 실질적인 군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와 함께 영양군과 함께 할 이웃인 소방서 직원들도 약 100여명 정도 상주하게 되면서 인구 증대와 함께 지역에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지난 1월에는 무려 22년 만에 영양군민의 숙원사업이던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청송·영양 사무소 영양분소가 개소했다. 오랜 시간 울진과 청송에서 영양 고유의 농정업무가 수행됐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청송 영양 사무소가 영양분소로 우선 개소함에 따라 균등한 농정서비스 혜택을 제공받게 됐다. 하지만 영양군에 장밋빛 미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지난해 4월 한국전력 영양지사가 지방조직 개편안에 따른 출장소로 격하되는 결정으로 영양군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는 내홍을 겪었다. 또한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4년간에 걸쳐 전국 우체국 680여 곳을 없애기로 결정하면서 대구·경북지역 88곳의 우체국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다.특히 이번 폐국 검토 대상에 영양군의 청기우체국이 포함됐다. 택배와 우편업무뿐만 아니라 각종 금융 그리고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수행하던 든든한 시골 우체국의 폐국으로 지방소멸 위기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가 되고 있다.지난 시간 영양군에는 발전과 성과의 기쁨보다는 퇴보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아쉬움이 컸던 시기였다. 하지만 조금씩 영양군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 공공기관과 유관기관 유치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공공기관 유치를 마중물로 삼아 교육과 의료·문화·질 높은 삶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활력 있고 살기 좋은 영양을 만들어 모범적인 농촌도시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민선 7기의 목표이자 나의 희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의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많은 군민들의 뜻과 지혜가 우리의 목표가 다 하는 그날까지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0-03-29

코로나19 속 ‘비례대표’ 난리

지난 24일 하루 76명 증가, 확진자는 총 9천37명. 며칠 사이에 코로나19 감염 증가세가 확연히 둔화 되었다.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등 한다 하는 나라들이 다들 나가떨어진 사이에 한국만은 대폭발에서 비껴 난 듯한 느낌이다.천만다행이다. 하루에 몇백 명씩 사망자가 나는 참극은 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우리는 사재기도 없고, 총을 사두려는 사람들도 없고, 종교적 신념만을 내세우는 사람도 없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에서만은 모두들 ‘하나’다.섣부른 전망일지 모르지만 코로나19는 앞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문제를 ‘촛불혁명’에서 ‘코로나19’로 이어지는 ‘삶의 혁명’의 일부로 인식할 것을 생각한다. 삶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보다, 경제보다 삶 자체를, 생명 자체를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혁명이다.촛불혁명 때 고등학생, 노인들이 광장에 많이 나왔는데, 이는 삶의 혁명의 징후였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19가 정치와 경제를 뒤바꾸고 있다. 사람들한테 돈을 공짜로 나눠 줘? 무슨 공산주의 사회야? 하는 식의 논란이 경제 대공황 징후 앞에 쑥 들어가 버렸다.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도 절박한 생존 문제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자영업자들은 대출금 이자 갚을 능력을 잃어가고 있고 월급받는 사람들은 직장을 잃어버리고 있다. 경제, 경제 했지만 그 경제 밑에 생존이라는 삶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천만다행, 이 삶의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의 ‘난장’이 판을 벌리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소수정당 보호?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서로 남 탓 하며 거대 정당들이 자기 몫 챙기려고 별별 수단 다 쓴다. 코로나19 뉴스 밑으로 시민단체들이 위성 비례정당 위헌이라고 들고나왔다 한다.코로나19는 우리들의 삶이 경제며 정치 이전에 삶 그 자체로서 생명이라는 근본적 가치 위에 서 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모두들 여기에 집중하라고 그 바이러스 군단들이 외치고 있다. 그런데, 안 들리는 모양이다. 일단 숫자 싸움에서 이겨보자는 것이다.선거가 끝나면 코로나19도 사그라들려나? 도쿄 올림픽을 물 건너가게 해놓고도 코로나19는 아직 배가 고픈 모양이다. 선거가 끝나고 요즘 벌어지는 일들은 안 잊었으면 좋겠다. 이건 정치 같지 않다. 삶의 경제가 경제 논리를 차버렸듯 삶의 정치는 이런 식 정치를 무효 처리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3-26

울릉군의 아름다운 선택

김두한경북부울릉군에는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물론 격리자가 없는 청정지역이다.물론 나이 많은 어르신을 모신 요양원은 코호트격리시설이다.울릉군이 코로나19 선제 대응을 위해 나이 많은 어르신을 위해 취한 조치일 뿐이다. 김병수 울릉군수는 울릉도가 이 같이 청정지역이 된 것은 의료진들의 땀 흘린 봉사 덕분이라고 했다.말로만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올해 처음 수확한 울릉도 최고 봄철 웰빙나물 명이와 부지갱이 1천400kg으로 정성껏 절임을 만든 2천700통을 대구·경북 코로나19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료진 및 관계자들에게 선물했다. 이 같은 선물은 전국에서 의료봉사를 위해 모여든 의료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김병수 울릉군수의 탁월한 선택을 엿보게 했다.김 군수는 열마 전 전국의 자치단체장 및 향우회 등에게 울릉도산 나물을 구입해 달라는 호소문을 보냈다.울릉도 산채는 지금이 수확 시기고 제철이다. 하지만, 코로나 19사태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뚝 끊어지고 육지소비자들도 인스턴트식품을 주로 이용하고 싱싱한 산채를 먹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울릉도 농가가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봄철에 나는 산채를 가공해서 보관 판매하면 되겠지만 그 맛과 향기를 음미하려면 제철에 먹는 것이 최고다.울릉군은 지역 산채의 품질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참 맛을 제공하고자 가능하면 제철에 판매를 유도해 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군수가 의료진들에게 울릉도 봄철 웰빙산채를 선물하는 것은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앞서겠지만 울릉도 농민들을 염두에 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울릉도 제철 산채의 오묘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광고는 없을 것이다.의료진들의 노고도 위로하고 울릉도 참맛도 알린다면 일거양득이다.전 국민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울릉 주민들의 어려움은 이들의 어려움보다 몇 배나 클 것이다.울릉도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고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는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요즘 울릉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관광객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야말로 울릉 경제가 파산 직전에 처해 있다.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이번 김 군수의 탁월한 선택을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면 울릉도 산채 시장이 한발 더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울릉/kimdh@kbmaeil.com

2020-03-26

가을 학기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코로나19로 각급 학교들의 개학이 한 달 이상 연기되고 있다. 지금쯤이면 벚꽃이 피는 캠퍼스에 새내기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하고 물오르는 젊은이들의 싱그러움이 솟아오를 그런 모습이건만 캠퍼스는 고요하고 적막하기 그지 없다.언제 개학이 될지 모를 상황에서 ‘9월 학기제’ 논의가 불을 지폈다. 어차피 개학이 늦어질 바에는 아예 9월에 학기를 시작하자는 주장이다.코로나 바이러스로 개학이 세 차례나 계속 연기되는 상황에서 이 기회에 차라리 한국도 1학기 자체를 천재지변으로 없어진 것으로 하고 2020년 9월 1일부터 2020년도 학사일정을 시작하자는 논리가 나오고 있다.학기란 한 학년을 나눈 기간이며, 학기의 수에 따라 2학기제, 3학기제, 4학기제 등으로 구분된다. 4학기제는 정말 낯선 제도인데 필자는 첫 유학지인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4학기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학기제를 그렇게 잘게 자르면 짧은 기간 한 과목을 소화하면서 훨씬 학습 진도가 빠르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순효과가 있어 보였다.학년도를 시작하는 달이나 계절에 따라서 학기제라 표현하기도 한다.예를 들어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면 9월 신학기제(또는 가을학기제)라고 하는 식이다. OECD 회원국 중 북반구에서 봄학기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북한까지 포함한다면 북반구의 봄학기제는 세 나라뿐이고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미국은 9월 가을 학기제이다.국가별로 학기제가 어떻게 정해져 있느냐에 따라 한 나라 전체의 교육 행정이 결정되기도 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 일본식 4월 봄학기제가 정착되었고, 해방이 되면서 미군정에 따라 9월 가을학기제로 바뀌었다가 정부 수립 이후 교육법을 제정하면서 1950년부터 다시 일본식 4월 신학기제로 돌아갔다. 사실상 주소체계, 행정 사법 고시 등 많은 제도가 일본식을 따랐기 때문에 일본식 제도라는 비판도 있었다.이후 5·16 군사정권이 4월이던 신학기를 3월로 변경하여 1962년부터 현행 3월 봄학기제가 확립되었다. 겨울인 1, 2월에 방학을 하여 학교 난방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2011년 7월 고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대학이 학칙으로 가을학기제 학년도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을 학기제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다. 이는 대학입시 등 여러 제도가 아직 봄학기제에 맞추어 있기 때문이다.봄학기제는 한국교육의 국제화 관점에서는 매우 불리한 제도이다. 한국 학생이 외국 학교로 전학하거나 진학하면 한 학년을 건너뛰거나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 외국 학생이 한국에 와도 마찬가지다.대학에선 학년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학기제 변경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개학 시기 논의와 연계해 ‘9월 학기제 시행’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현 정부의 기조로 볼 때 가을학기제는 다시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2020-03-26

인페르노와 바이러스

지난 2016년,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영화 ‘인페르노’가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이탈리아 원어입니다.이 작품에는 보티첼리의 그림 ‘지옥의 지도’가 등장합니다. 단테가 글로 묘사한 지옥 모습을 보티첼리는 회화의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지옥은 총 9개의 거대한 고리 즉, 9환(環)으로서 지구 아래쪽 지하로 내려가면서 점점 깊어지는 구조를 갖습니다. 지구 중심부에 가장 깊은 고리인 아홉 번째 환이 있고 그곳에는 타락한 천사 루키페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9번 고리까지 내려가는 과정은 음울하고 드라마틱합니다.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유명한 귀절이 적혀 있습니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중략)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편 3곡 1-9행)영화 ‘인페르노’에는 바이러스가 등장합니다. 세계 인구 절반을 줄이겠다고 협박하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거대한 음모와 싸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요즘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입니다.굳이 ‘신곡’을 읽으며 지옥을 여행하지 않아도 요즘 세상은 지옥의 모델 하우스 비슷한 느낌입니다. 본의 아니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모두가 고통을 받지만 약자와 고령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벌이는 중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 작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추게 하고 인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인류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혜를 발휘해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정신세계 또한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더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학습을 반복했음을 믿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6

고요에 대하여

김병래시조시인세상이 시끄럽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전염병이 창궐해서 난리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 당리당략을 위해 불꽃 튀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미세먼지 만큼이나 소음이 가득한 세상이다. 온갖 인공의 소리들이 자연의 소리를 삼켜버린다.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나오는 굉음과 자동차의 엔진소리,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음향 기기들이 내는 소리가 끊임없이 청신경을 자극하는 세상이다.인공의 소음에 쫓겨 고요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사람의 마을에도 고요가 함께 살았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들려도 놀라서 달아나지는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고요가 아니라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리는 게 고요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낙엽 지는 소리 댓잎에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고요다. 방음장치로 막힌 무성(無聲)의 공간에선 고요도 살지 못한다. 이제는 고요를 만나려면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나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아무나 쉽게 고요를 만나지는 못한다. 고요가 사람을 반기지 않는데다 고요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요의 존재를 의식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산골 외딴집에서 태어나서 고요 속에 살았던 나 역시 그 때는 고요를 의식하지 못했다. 매순간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 고요 속에서도 고요를 느끼지 못했다.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힐 때야 맑은 공기가 절실하듯 문명의 온갖 소리들이 유해한 소음이란 걸 깨닫고서야 고요를 그리워하게 되었다.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처럼 고요도 소중한 자연환경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노이즈 마케팅이 유행할 정도로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득이 되는 현실이다. 방송매체의 오락프로그램도 정신없이 찧고 까불어야 관심을 끌고 시청률이 오른다고 한다.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미 소음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고요가 너무 낯설거나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금단현상 같은 거랄까, 늘 도시의 소음에 절어 살던 사람을 갑자기 한적한 산골에 데려다 놓으면 아마도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담배나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이 된다는 건 물론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물이나 공기의 오염이 몸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이듯 소음은 정신의 건강을 해치는 공해다. 소음 가득한 세상에선 마음도 소란하고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상(冥想)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래는 구도자들의 수련법이었지만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심신의 긴장을 풀고 평온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전국 130여 산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고, 도시에는 ‘명상센터’ 같은 곳도 여럿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따로 ‘고요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깊은 산중에 시설을 지어 2박3일 동안이라도 일체의 말을 하지 않고 명상과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소리에만 마음과 귀를 열어 놓는다면, 좁은 일상과 굳은 관념에 갇혀있던 의식이 드넓은 우주로 확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3-26

통합당의 개그공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미래통합당의 공천이 난장판이다. 가장 요지경인 곳이 바로 대구 수성갑과 수성을 지역구다. 대구 수성갑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이 여당 후보로 뛰고 있어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곳이다. 애초에 이 지역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구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크게 퇴조, 김 전 장관의 당선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문제는 김 전 장관의 여당 내에서의 영향력을 지역 득표력으로 과대평가한 통합당 지도부가 수성갑 지역구에서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수성을 지역구에서 4선을 한 주호영 의원을 단수공천한 데서 출발했다. 결국 이에 반발한 이 전 구청장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보수표심을 둘로 가르게 돼 수성갑 선거는 통합당 주호영 후보와 민주당 김부겸 후보, 무소속 이진훈 전 구청장의 3파전으로 번졌다. 1대1의 승부가 아니기에 김부겸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수성을 선거구는 더욱 우습게 됐다. 공관위는 느닷없이 수성갑 선거구 예비후보로 뛰고 있던 정상환 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대구 수성을로 재공모해 옮긴 후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와 경선을 붙였다. 이 전 부지사가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이번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컷오프에 반발해 이 지역구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 격전이 예상된다.경북 경주의 공천 역시 모양새가 우습다. 당초 현역인 김석기 의원이 컷오프되고, 박병훈 전 경북도의원과 김원길 서민경제분과위원장이 경선을 치러 박 전 의원이 공천을 확정짓는 듯 했다. 그러나 통합당 최고위원회가 경주 공천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고, 공관위는 고심끝에 원안을 고수했다. 그러자 최고위가 다음날 새벽 직권으로 박 전 의원의 공천을 무효로 결정했다. 공천결과를 보도한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이 오보를 내게 된 이유다. 이후 공관위는 논의 끝에 김원길 위원장을 단수추천하기로 했으나, 최고위원회는 25일 밤 늦게 이를 다시 뒤집어 컷오프 당한 김석기 의원과 김원길 서민경제분과위원장 두 사람의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키로 했다. 이런 과정에서 통합당 최고위는 당초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자로 결정됐던 박 전 의원의 공천을 무효로 돌린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당사자의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관위가 컷오프한 김석기 의원을 다시 공천대상에 집어넣어 경선에 붙이게 된 이유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 역시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경선을 하게 된 김원길 위원장은 “역사상 최악의 선거판이 됐다”고 질타했다. 성주·고령·칠곡지역구 공천을 신청한 김현기 전 경북도 행정부지사 역시 경선에 배제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막장공천의 폐해를 질타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한 자신을 경선부터 아예 빼버렸고, 재심 청구 역시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개그공천으로 불리는 통합당의 공천,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며 유권자를 우습게 아는 통합당의 행태, 과연 이대로 좋은가.

2020-03-26

포퓰리즘

경제학에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통상적인 상황을 벗어나 1년에 수백% 이상의 물가상승이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초인플레이션이다.상상이 잘 안 되지만 2018년도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1만%를 상회했다. 정부가 빈민구호책을 쓰기 위해 과도하게 돈을 찍어내기 시작해 한달 새 물가가 50% 이상씩 상승했다. 인플레를 수습하기 위해 화폐 단위를 늘리고 또다시 돈을 찍어냈지만 물가상승분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당시 베네수엘라 근로자가 한 달 열심히 일해 봐야 돼지고기 1kg을 사지 못했다. 미국의 블롬버그는 당시 그곳 노동자가 한 달 일해 번 돈으로 커피 두잔 사먹기 힘들다 했다. 의약품을 못 구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인구의 10%는 해외로 탈출했다. 세계 원유매장량 1위인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비극은 1999년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빈민정책이 발단이다. 200만 빈민층에게 무상으로 집을 지어주고 그들이 사용할 생필품을 국가가 통제하면서 지원했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무리한 빈민정책으로 국영석유회사가 망하고 재정은 파탄에 이른다.빈민층 구호라는 차베스의 정책적 선의에 비해 결과는 너무 비참했다. 인기영합에 목적을 둔 포퓰리즘은 대개 경제논리는 뒷전이다. 개혁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의 정치적 편의주의나 기회주의에 매몰되기 때문이다.코로나19 사태가 포퓰리즘을 불러오고 있다. 전국 지자체가 재난수당 지급에 앞다퉈 경쟁이다. 경기도가 불을 붙였다. 명칭도 다르고 재원과 지원대상, 규모 등에서도 중구난방이다. 형평성 논란도 크다. 바이러스를 핑계로 정치꾼의 포퓰리즘이 마치 호기를 만난 것 같다.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3-26

역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 묵시록의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일상의 삶에서 혼자 자급자족하기란 쉽지 않다.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살아가게 된다.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받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오늘 대구가톨릭치매센터에서 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매일 우유 한 통씩과 비타민이 제공된다. 그리고 대노협에서 어르신을 위한 비타민C를 선물 받아 나누어 드리게 되었다. 따뜻한 사랑의 선물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다. 이렇게 된 것은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직원들의 건강이 어르신들의 건강과 직결되기에 서로가 서로를 위한 배려요 돌봄이다.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보면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한 걸음에 달려와 준 많은 의료진들 덕택에 대구경북은 한 줄기 빛을 찾아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의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이 감염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필요할 때 사용하라며 성금을 받았다. 어디에 사용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후배신부님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전달할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를 통해서 마스크를 구입하여 전달해 주었다. 약국을 통해서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일하는 시간이라 그것도 쉽지 않은가보다.코로나19로 인하여 삶의 조건이 말이 아니다. 일상의 삶이 정지된 듯 시내는 고요하다. 이러한 모습에 외국인의 시선은 신선한가보다. 마트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도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하루 빨리 이 상황이 진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위기 상황을 극복 하라고 십시일반의 사랑의 후원금도 많이 모이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훈훈해져 온다.의료진의 희생이 빛나는 때이다. 이들 모두의 수고로움에 하느님께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갚아 주시기를 기도한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역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역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역경은 영혼들을 십자가의 발아래로 인도하고, 십자가는 그 역경을 하늘의 입구로 지고 가서 그분을 만나게 해 줍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역경도 영복의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