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추석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직장에 매인 몸이 아니니 평일이나 휴일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휴일에는 쉬는 편이다.
그동안은 깜냥에 비해 많은 일을 했던지, 아니면 이제 체력이 좀 떨어질 나이가 되었는지 휴식도 일삼아 해주어야 뒤탈이 없다.
이번 추석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했다. 넋 놓고 TV를 보다가 졸리면 잠자고, 잠자다 일어나면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잡초를 뽑기도 하고, 자잘한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공활한 가을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또 있다. 띠 동갑인 막내 동생이 와서 2박3일 동안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도 했고, 마을길을 걸으며 들판의 코스모스도 함께 보았다. 막내는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나를 오빠이자 아버지처럼 따랐는데, 몇 해 전 담낭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생사를 넘나드는 모습을 손수무책,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기억에 더욱 마음이 애틋하다. 막내는 같이 놀자고 보채는 두 마리 키 큰 멍멍이들과 공 던지기 놀이도 했고, 나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막내는 나와 같은 개띠지만 덩치 큰 개 두 마리를 무서워하였으나 그들의 줄기찬 꼬리질에 넘어가서 ‘개 고모’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서 도착 안부도 개안부가 먼저였다. 개보러 자주오라니 대답이 걸작이다. “개 보러 갔다가 오빠도 잠깐 보고.”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라 그동안 허겁지겁 정신없이 사느라 못하던 것들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친 심신의 휴식을 위하여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이라야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하루에 10분 남짓 시간동안 혜민 스님의 명상안내에 따라 가는 것이 고작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명상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함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것이며, 편안하게 숨 쉬며 존재를 자각하는 일이다.
18일차 명상의 주제가 ‘아무것도 안하기’였다. 혜민 스님은 한결같은 편안한 목소리로 오늘은 특별한 일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어가는 날이라며 프랑스의 플럼빌리지 얘기를 하셨다. 플럼빌리지는 명상을 오랫동안 가르친 틱낫한 스님이 만든 수행공동체로, 이곳에 가면 나이나 성별, 종교, 인종 등을 초월하여 다 같이 모여 앉아 명상수행을 한다.
여기서 스님이 인상 깊었던 것은, 스케줄에 맞추어 열심히 명상 수행을 하다가 일주일에 하루는 ‘레이지 데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게으른 날’이다. 그날은 정해진 스케줄 없이 쉬던지 잠을 더 자고 싶으면 자도 되는 날이다. 틱낫한 스님은 내 몸과 마음에 좋은 명상도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너무 열심히 하려고만 하면 중간에 지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게으름의 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현명한 생각이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독으로 변하는 법이니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른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편안하게 숨 쉬고, 편안하게 내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