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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부와 조롱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중국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격언을 인용했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그리고 몇일 후 완전히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니까 중국의 일부 지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14일 격리기간을 요구하고, 한국인을 기피한다고 한다. 오히려 중국이“정치 외교 논리보다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다”라고 했으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탄식이 나온다.상황초기 한국의 의료진들이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입국금지 내지는 입국컨트롤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또 시진핑의 방한계획에 차질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그런 결과 급속도로 한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중국은 상항이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보내 준다고 조롱기 섞인 제의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국민들의 눈에 이 정부는 북한에 대해 비굴할 정도로 아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꾸도 못한다. 온갖 욕을 듣고도 그저 김정은 친서 하나에 감동을 받는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겉도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공공연한 한국 원망과 비난에 길들여지고 있다. 결국 아부하여 돌아온 건 조롱과 멸시뿐이다.적지 않은 국민들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무시한 채 정치적 논리로 정책을 펼치는 현 정부의 정책에 절망한다.탈원전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보았다는 한 편의 영화, 상상력으로 그려진 허구의 픽션으로 과학자들의 줄기찬 주장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추진했다.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논리와 북한과의 관계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무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만의 일방적 화해 조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과학자들은 알지 못한다.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한심한 착각과 중국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올꺼라는 대중국 굴종외교 등 모두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 아니다. 한미 한일 동맹에 금이 가고, 중국에 냉대 받고, 북한에 모욕당하면서 국격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여전히 전문가들 과학자들은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밀렸다. 의사협회·감염학회 등이 ‘중국인 차단’을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정부는 끝내 거부했다. 오히려 중국이 우리 입국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태까지 왔다.‘아부와 조롱’, 이건 붙어 다니는 단어이다. 아부는 당장은 상대가 고마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부를 듣는 상대는 당신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아부하지 않고 정치적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당당히 펼 때에 오히려 상대는 당신을 존중하고 조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우리 정부만 이런 간단한 논리를 모르는 것일까?

2020-03-12

플라시보 효과 vs 노시보 효과

일정기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을 투약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기존의 보통 약’을 투약했습니다. 실험 후 환자의 위장 상태를 검사했습니다.‘새로 개발한 특별 약’을 투약한 집단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문제는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이라는 것이 단순한 영양제였고 기존의 보통 약이란 것도 동일한 영양제였다고 합니다.두 집단이 서로 다른 효과를 낸 것은 환자의 심리적 상태, 즉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던 거죠.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릅니다. 대개 30%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것도 있습니다.노시보란 ‘해를 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혈액응고방지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한 두 그룹에게는 위장관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해 주었고 나머지 한 그룹에게는 주의사항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 그룹의 위 내시경 결과는 차이가 없었으나 부작용 주의를 들은 그룹은 듣지 않은 그룹보다 3배 이상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습니다.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곰 쓸개는 크기가 손바닥 1/5 정도밖에 안 되지만 우리에 30분 정도 가두어 놓고 약을 올리면 쓸개의 크기가 손바닥만큼 커진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곰을 자극하면 즉시 몸이 반응하는 겁니다.사람은 나이 일곱 살 이전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지 거의 프로그래밍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수도회에서는 일곱 살 이전에 아이를 자신들에게 맡기면 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일곱 살 이전에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프로그래밍 받은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자각하고 서로를 일깨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긍정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2

쑥과 냉이

김병래시조시인우수와 경칩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선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형편에다 전염병까지 창궐해 온 나라가 아우성인데, 그런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봄은 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펼쳐 놓을 테니 인간사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자연의 섭리다.봄을 가장 봄답게 하는 것은 무채색의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는 온갖 풀들이다. 그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깊이 닿아있는 풀을 하나만 고르라면, 나이든 사람들 중 대다수는 쑥을 들지 않을까 싶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단군신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쑥은 먹을 수 있는 가장 흔한 풀이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엔 봄이 오기를 기다려 들에 나가 쑥을 뜯어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다.쑥은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일 뿐 아니라 약효도 많다. 동의보감에는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복통치료에 좋고, 피를 맑게 하며 살균, 진통, 소염 등의 작용과 냉·대하, 생리통 등 부인병에도 좋다고 한다. 말린 잎을 비벼서 뜸을 뜨는 데 쓰기도 하고 단오에는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간에 걸어두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약효의 원천은 쑥이 가진 왕성한 생명력에 있는 것 같다. 어디든 빈터가 있으면 선착순 뿌리를 내려 소위 쑥대밭이 된다. 더구나 여린 싹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걸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른 쑥대 하나가 달고 있는 씨앗은 아마 수만에서 수십만은 될 것이다. 늦가을과 초겨울에 하늘 가득 씨앗을 날려 보내니 어느 땅인들 쑥의 영토가 아니겠는가.냉이도 이른 봄에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다. 산과 들에 봄나물이 많지만 쑥과 냉이가 그중 흔하다. 가을에 싹을 틔워 월동을 하는 냉이도 강인한 생명력으로는 쑥에 못지않다. 겨울 혹한에 얼어 죽은 듯하다가도 날이 풀리면 생기를 띠고 돋아난다. 뿌리째 뽑아서 국을 끓이거나 데쳐서 무쳐 먹는 봄의 별미다. 어려운 시절에야 물론 구황식물의 하나였지만. 식용식물이 다 그렇듯 냉이 역시도 ‘본초강목’에 역을 풀고, 풍을 제거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오장을 보하는 등의 약효가 있다고 나와 있다.오늘 들에 나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다 쑥국을 끓이고 냉이무침을 만들었다. 된장을 푼 물에다 멸치를 몇 마리 넣고 끌이다가 쑥을 넣으면 쑥국이 되고, 끓는 물에 데친 냉이를 다진 마늘과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냉이무침이다. 쌉쌀한 쑥의 맛과 달짝지근한 냉이의 맛은 정서를 편하고 담담하게 한다. 식탐이나 과식을 걱정할 필요 없는 소박한 맛이다. 지금 우리에게 쑥과 냉이는 봄철 입맛으로나 먹는 나물이지만, 기근이 들어 끼니를 잇기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지천인 풀이면서 먹을 수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을까. 전염병으로 국경이 차단된 북쪽에서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니, 쑥이나 냉이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인들 없겠는가. 아무쪼록 이봄 북녘 들판에 쑥과 냉이라도 풍성하게 돋아나기를 바란다.

2020-03-12

新 보릿고개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란 노랫말의 유행가가 요즘 뜨고 있다. 먹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삼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모양이다.손자가 뛰는 모습을 보고 행여 배가 빨리 꺼질까봐 뛰지 말라 만류했던 할머니의 애달픈 심정을 담은 이 노랫말은 그들 세대만이 공감할 충분한 소재일 것이다.보릿고개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음력 4∼5월이다. 춘궁기(春窮期) 맥령기(麥嶺期) 등으로도 불렸다. 이때쯤이면 서민층은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도 끼니를 이어갔다 하여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이 생겨났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은 걸식이나 빚으로 연명하고, 그마저 못하는 많은 빈곤층은 굶어 죽었다. 예로부터 하늘을 의지해 농사짓는 우리 민족에게 보릿고개는 어쩌면 숙명적 고난의 시기다.“설마”하고 믿고 싶지 않겠지만 보릿고개는 196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오래 굶어 살이 붓고 누렇게 뜬 부황증 증세의 사람도 그 시절은 흔히 만날 수 있었다.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이젠 우리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 됐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보릿고개는 할머니 이야기 속의 전설처럼 들릴 뿐이다.얼마 전 매스컴에서는 은퇴 후 5∼10년을 연금 없이 버텨야하는 소득공백기를 신보릿고개라 불렀다. 퇴직 연령은 빨라지고 국민연금 수령은 늦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꼬집는 표현으로 사용했다.지금 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산업이 멈춰 섰다. 곳곳에서 생존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판 보릿고개가 대구경북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 대책이 절박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2

공천, 그리고 낙화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대구·경북 지역의 미래통합당 현역의원에 대한 공천 칼날이 피를 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3선의 친박계 핵심 출신 김재원 의원, 비박계 3선 강석호 의원, 초선인 곽대훈·김석기·백승주·정태옥 의원과 재선의 박명재 의원까지 컷오프돼 지역구 의원 20명 중 7명이 낙마했다. 이로써 대구·경북지역에서는 20명의 현역의원 중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5명을 포함해 12명이 물갈이 됐다. 특히 지역에서 중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던 3선이상 정치인 5명 중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4명이 공천에서 모두 교체된 것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선수를 우선시하는 국회의 관례를 생각하면 21대 국회에서 TK지역은 단 한명의 상임위원장도 배출할 수 없는 진용으로 짜여진 셈이다. 3선 이상 정치내공을 쌓아 온 이들 마저 공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컷오프의 수모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텃밭에서 현역의원들을 대거 교체하지 않으면 쇄신이란 모양새를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다 지금 이대로는 정권교체를 이루기 힘들다는 당내 절박감이 컸기 때문일게다. 또한 텃밭에 안주한 정치인의 경쟁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홍준표 전 대표는 수도권 험지출마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후 대구에 무소속 출마하겠다며 선언해 또 다른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홍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선언을 계기로 곽대훈(달서갑) ,정태옥(북구갑), 강효상(달서병)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TK발 무소속연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재선의 포항남·울릉 지역구 박명재 의원이 컷오프이후 무소속 불출마 선언을 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지난 9일 포항KTX역에서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이번 공천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당과 포항, 대한민국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천결과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의 첫 구절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로 말을 맺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 아름다운 시를 진흙탕 싸움이기 쉬운 정치적 현실에 대입하는 일은 무척 민망스럽다. 그러나 봄 한철 격정같던 사랑은 어디 갔을까 자문해보자. 이 계절이 지나면 무성한 녹음과 열매맺는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누군들 모르랴.그렇다해도 꽃잎이 지는 낙화의 아픔은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 듯 싶다.

2020-03-12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근식 포항침례교회 담임목사암흑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이 산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최초로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고 강영우 박사다. 강 박사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1968년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뒤 아내 석은옥씨와 미국으로 유학해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장애인이 받은 최초의 박사학위였다.그의 어린 시절은 얼룩이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를 하다가 친구가 찬 공에 눈을 맞아 실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셨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누나는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숨진다. 13세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9세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가 갈곳은 없었던 차에 맹인재활센터로 버려지듯 가야 했다.훗날 강 박사는 “제가 살아온 인생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일 때문에 내 삶엔 더 좋은 일이 생겼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 생각으로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남겼다. 강 박사에겐 긍정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거라고 했다.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 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만으론 안 되고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의 230년 전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공부를 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강영우 박사의 기뻐하고 긍정하는 삶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지금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마치 대양에 휘몰아치는 폭풍과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갈 곳을 잃고 떠가는 돛단배의 모습이다. 지금 당장 퇴로가 보이지 않지만 곧 길이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이며 희망이다.어릴 때 동네 구석진 모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가 들리면 모두 술래를 피해 숨었다. 잡히면 술래가 되기 때문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고 목을 조이기도 한다. 요즈음 코로나19와 숨바꼭질하는 기분이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특별히 국가 간 관계가 깨어지고 이웃의 개념이 더 흐려지는 이때 함께 뒤얽혀 즐겁게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20-03-11

언론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엄마가 널 사랑한다고? 그거, 확인해!’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지 본사 복도에 걸린 현수막이다. 누가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저 현수막은 언론이 하는 일 가운데 ‘확인하고 확인하는 일’ 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는 걸 강조한다. 생각 속에 그 어떤 확신이 있다고 해도, 사실로 확인하지 않고는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다.‘확인은 모든 언론행위의 본질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언론 관련 이슈들을 다루는 니먼재단(Nieman Foundation)이 보고서에 적은 한 줄이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런저런 실수들이 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확인’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언론인들에게 요청되는 바이다.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옥스퍼드대학의 언론연구소가 38개국 국민들의 언론신뢰도를 조사했다. 한국은 겨우 22퍼센트의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하여 최하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의 거의 80퍼센트가 언론보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언론을 믿지 못하겠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하는 언론이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날마다 시간마다 보고듣는 언론보도를 시민들이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언론이 누리는 ‘언론자유’지수는 향상되고 있다는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한 영국인 프리랜서 기자는 ‘한국언론이 형편없다’는 혹평을 하면서, 부실한 출처확인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도 확인부실이 보인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겠는가.언론뿐일까. 확인없이 쓰고 읽고 나누고 소통하는 일. 생각없이 받아들인 책임은 독자에게도 있다. 살피지 않고 나누고 마는 대중에게도 책임은 있다.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수동적으로 보도를 수용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언론이 또 다른 권력임에 틀림이 없으므로, 견제와 균형은 언론에도 적용해야 한다. 신문에 났거나 방송에서 보았으므로 그대로 믿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기관이 독자 대중의 눈과 귀를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과 온라인의 도래는 심대한 도전으로 다가와 바뀌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다. 소문과 확신으로 써 내리는 기사는 사라져야 한다. 양심을 빙자하여 진영논리에 갇힌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공정하고 투명하여 사안의 넓은 지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확인에 들인 노력을 확인하고 싶다.길은 본질에 있다. 언론은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산다. 힘있는 자들을 향한 매서운 감시와 분명한 견제를 실행하려면, 언론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며 우리 언론이 보는 시각과 해외 언론이 평하는 바가 어떻게 비교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확인을 생명으로 한 언론 보도와 느낌을 배경으로 한 소설 쓰기는 다를 수 밖에. 확인을 토대로 우리 언론이 시퍼렇게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확인이 사라지면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2020-03-11

유튜브 선거전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주요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로, 사용자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시청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당신(You)과 브라운관(Tube·텔레비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지난 2005년 2월 페이팔(PayPal)의 직원이었던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 캘리포니아 산 브루노에 유튜브사를 설립했다.유튜브의 시초는 세 명의 창립 멤버가 친구들에게 파티 비디오를 배포하기 위해 ‘모두가 쉽게 비디오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낸 데서 시작됐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일종인 유튜브가 선거운동에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천재지변인 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다. 대면접촉 위주의 기존 선거운동이 막히면서 유례가 없는 ‘유튜브 총선전’이 벌어진 것.여야 각 후보들은 유튜브를 통해 출마를 선언하거나, 활동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있다. 또 각당 역시 공식 채널을 통해 표심에 호소하고 있다. 특히 21대 총선 최대 관심사인 서울 종로 선거전은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야를 대표하는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당대표가 맞붙은 이 지역 선거운동 역시 각각 이낙연TV·황교안오피셜을 개설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과거 선거운동은 군중·길거리 연설에서 문자·이메일 홍보로 진화했다. 2010년 전후엔 트위터·페이스북 등이 SNS 선거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7년 대선부터 대선후보 1인에 집중된 유튜브 선거가 치러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최초의 ‘전국 단위 선거’로 평가한다. 환경의 변화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현장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11

코로나19 재난 계기로 지역 회복력을 강화하자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올해 1월 30일을 기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 11일 현재 전세계 80개 국가에서 확진환자수 9만5천24명, 사망자수 3천281명이다. 전염병(epidemic)이 전세계로 퍼질 때 이를 판데믹(pandemic)이라 하는데, 이미 중국, 한국, 이란, 이탈리아, 미국 등 전 대륙으로 퍼지고 있으므로 코로나19 확산은 이제 판데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번 코로나19는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3번째의 중증폐렴 유발 감염병 재난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되었다. 많은 전문가는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가속화로 이러한 대형 바이러스 감염병 재앙은 계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지극히 예외적이어서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일컫는다. 우리 대구·경북지역 시도민 입장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은 블랙스완과 같은 대형재난이며, 앞으로도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블랙스완형 대형재난에 대응력을 높이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Resilience, 회복력) 강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자.△대구·경북지역 감염병 안전지수등급 16개 특·광역시 중 최하위 수준크고 작은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늘날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게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최근 10년간(2008~2017)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 1천97명(사회재난 945, 자연재난 152), 재산피해 12조9천174억원(사회재난 9조3천850억, 자연재난 3조 5천324억)이 발생하였다. 이중 자연재난에 대한 복구액은 총 7조3천658억원 소요되었다. 경상북도는 자연재난 재산피해액이 3천563억원, 피해복구액은 8천45억원으로 전국 4위 수준으로 매우 높으며, 대구광역시는 상대적으로 자연재난 피해가 적은 지역이다.2003년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구지하철사고에 이어 2016년과 2017년 국내관측사상 최고치의 진도를 기록한 경주, 포항 지진 이후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에서는 재난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구경북연구원내에 재난안전연구센터를 개소하는 등 재난재해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지역안전지수등급은 행정안전부가 국민 개개인이 생활주변 위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안전정보들을 통합하여 지도 위에 표현한 서비스인 생활안전지도 홈페이지(http://www.safemap.go.kr/main/smap.do)를 통해서 안내하고 있는 안전수준이다. 이 지도에 제시된 대구광역시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이 5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화재와 자살이 4등급, 교통이 3등급, 범죄와 생활안전은 2등급으로 평가되었다. 경상북도의 지역안전지수 등급 결과를 살펴보면, 감염병과 교통이 4등급으로 가장 나쁘게 평가되었으며, 생활안전과 자살이 3등급, 화재가 2등급, 범죄는 1등급으로 평가되었다. 이 결과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사고 이전에도 우리 대구경북지역이 감염병 안전도가 전국 1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전세계 재난 회복력 증대 캠페인에 4천317개 지자체 참여UN의 재해감소국제전략기구(UNISDR)는 세계 각국의 지방정부가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장려하기 위해 재난에 강한도시 만들기(MCR, Making Cities Resilient)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UNISDR은 MCR 캠페인에 가입한 도시 중 회복력 향상을 위해 모범이 되는 도시를 선정하여 Role Model City 자격을 부여한다. MCR 캠페인은 지방정부만 가입할 수 있고, 추진방법은 UNISDR이 제시하는 10대 핵심사항을 실천하는 것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125개국 4천317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175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으나 전세계 Role Model City로 인증 받은 지자체 49개 중 우리나라 지자체는 인천광역시가 유일하다.이 캠페인의 주된 목적은 지방정부 및 도시 규모에서 그들 각자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하여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요청함으로써 회복력 도시 조성을 장려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도시들 간의 정책 공유 및 협력, 정부 관계자들에서부터 도시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직면한 위험을 인지시킨다.MCR 캠페인에 참가한 지자체는 지역의 회복력을 측정하기 위해 Score Card를 작성해야 한다. Score Card는 재난 회복력을 위한 조직구성 및 이행 준비, 현재와 미래의 위험 시나리오 분석, 이해, 활용, 재난 회복력을 위한 재정적 역량 강화, 회복력에 강한 도시개발과 설계 추구, 자연생태계가 제공하는 보호기능 강화를 위한 자연완충재보존, 회복력을 위한 기관역량강화, 회복력을 위한 사회적 역량이행 및 강화, 사회기반시설의 회복력 강화, 효과적인 재난 대비와 대응력 확보, 신속한 복원과 더 나은 재건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코로나19 대응한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은 지역 회복력 강화의 원동력울산발전연구원 윤영배 부연구위원은 ‘울산시 도시회복력(Resilience) 강화방안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6가지 주요 정책사업을 제안하였다.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안전 최상위 기본계획인 ‘도시안전전략계획’을 조례개정을 통한 5년 단위 계획으로 수립한다. 비상사태나 재난으로 인해 공공기능의 운영이 중단되었을 때 정부의 핵심적인 기능을 보호, 유지하고 연속할 수 있도록 ‘기능연속성계획’을 수립한다. 침수흔적도, 재해정보지도 등 재해관련 공간데이터 구축 및 도시안전도 향상을 위한 재난정보 모니터링 등 재해예방데이터를 구축한다. 과거 피해사례 극복, 방재시설물 설치시 재해 취약성 고려, 피해저감형 토지 이용 등을 위한 회복력 개념을 도입한 도시(재)개발을 추진한다. 협력적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위한 도시안전연구센터를 설립하며, 안전정보 공유, 활동가 육성을 통한 주민활동 유도 및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대회개최 등을 통한 주민참여 소통 활성화사업을 시행한다.이들 사업은 대구경북에 그대로 반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지역특성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여 추가 보완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서울 내러티브연구소 최남희 소장은 ‘재난을 뛰어넘는 지역사회 리질리언스’라는 특집 기고문(열린충남 겨울호, 2016)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 하였다. 그러한 믿음의 밑바닥에는 재난대응이 국가의 책무이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형 참사나 재난은 국가적 차원의 전략만으로는 부족해서 재난에 대한 대응과 책무가 국가나 행정기관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은 여럿이 힘을 모으고 일상적 행동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수월하게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지금 당면한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을 극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국민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한 성공이 우리 지역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큰 동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2020-03-11

착각은 자유

한 여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할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비닐로 포장된 쿠키 한 봉지를 샀습니다. 서점에서 잡지 한 권도 샀지요.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옆 자리에 있던 신사가 옆 좌석에 놓아둔 쿠키 비닐 포장을 뜯고 덥석 하나를 꺼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무척 놀랐지만 태연하게 자신도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가 상황을 깨닫고 무례한 행동을 그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끗 여인을 한 번 바라볼 뿐, 계속 쿠키를 먹는 것 아닙니까?그냥 물러나면 비행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남자가 물러설 때까지 여인은 꿋꿋이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도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쿠키를 먹습니다. 결국, 쿠키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쿠키를 절반으로 쪼개 한쪽을 여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여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여인은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벨트를 맸습니다. 남자의 뻔뻔한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이륙 후 립스틱을 꺼내려고 핸드백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상치도 못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샀던 쿠키가 봉지도 뜯지 않은 채 들어 있었던 겁니다. 대합실에서 정작 뻔뻔스러운 사람은 본인이었던 거지요.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경영학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틀림없이 진실이 믿는 것이 오류일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청의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으로 내 아집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1

교육 백신 6 - 생기부 기재요령 분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입춘, 우수에 이어 경칩이 지났다. 어수선한 인간 세상은 필자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다.마스크가 없으면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금 마스크만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사람들이 희망, 배려, 양보 등의 가치보다 마스크 한 장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스크는 인위적이다. 마스크를 통해 숨을 쉴 때마다 필자는 필자의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숨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필자는 승용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차창을 활짝 연다. 밭일을 열심히 하는 농부를 볼 때면 차의 속도를 줄여 눈으로나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러면 농부의 건강함이 온몸 가득 들어온다. 그들은 절기를 생각하게 한다.“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고 한다.”경칩이 지난 산과 들은 절기를 지키어 만물의 잠을 깨우고 있다. 산은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들은 농부의 부지런함에 봄갈이가 한창이다. 자연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는 자신 일에 열중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사회는 마스크 안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위적인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이다. 학기 초나 말이면 전 교사를 대상으로 생기부 기재요령 연수까지 한다.“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의 표준화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 (기재요령 일러두기 중에서)그런데 아래 유의사항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교육 현실과 거리가 먼지 알 수 있다. “학생의 성장과 학습 과정을 상시 관찰·평가한 누가기록 중심의 종합기록. 학교에서 실시한 각종 교육 활동의 이수상황(활동내용에 따른 개별적 특성이 드러나는 사항 중심)을 기재.”오로지 입시를 위한 시험만이 전부인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구차한 말 다 치우고 생기부 기재요령이 나온 직접적인 이유는 입시 때문이다. 특수목적고등학교나 SKY 등에 입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 궁극적인 목적이다.그런데 고등학교야 일류대학교가 아직 존재하지만, 중학교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 정책으로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들이 지위를 많이 잃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과학고뿐이다. 그런데 과학고 입시를 잡자고 지금과 같은 기재요령을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죽임은 물론 너무도 큰 에너지 낭비다. 중학교에는 이젠 소용없는 생기부 기재요령 때문에 교사들의 힘을 빼서는 안 된다.교원 행정업무 경감이 교육계 화두이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중학교 생기부 기재요령을 없애는 것이다. 띄어쓰기 때문에 몇 번이고 생기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기재요령이 나온 목적은 아닐 것이다. 기재요령이 꼭 필요하다면 춘분이 오기 전에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자!

2020-03-11

문제는 손이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코로나19로 ‘마스크 5부제’가 실행 중이다. 차량 5부제는 익숙하지만, 마스크 5부제는 어색하고 떨떠름하다. 고도의 물질문명 세계에서 마스크를 구하려고 5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기나 가족 몫으로 할당된 마스크를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쓰임새로 본다면 마스크는 나보다는 남을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마스크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서 침의 분말이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타인의 기침이나 재채기가 날아올 수도 있다. 재채기나 기침할 때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라고 보건당국이 권고하는 까닭은 그래서다.그럴 바에는 마스크를 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마스크 대란(大亂)이 일어난 까닭이 거기 있다.청도 화양읍 토평리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고 앞마당을 배회하는 풍경은 다소 비극적인 데가 있다. 한 달 넘게 폐쇄된 경로당에도 못가고, 아낙들이 마실 오는 일도 없어진 마당에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양상은 우울하다. 5일 장에 나가야 구할 수 있는 마스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처(大處)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이 보내줬을 터다. 그것은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한 마스크 ‘사재기 광풍(狂風)’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코로나19가 전염되는 경로 가운데 코보다 치명적인 부위는 손이다. 손은 몸 가운데서 가장 활용도가 높고 가장 더러운 부위다. 손을 묶어버리면 우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손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라. 신발 안에 모셔져 있는 발과는 쓰임새가 천양지차다.영화 ‘컨테이젼’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2020년 코로나19를 빼다 박은 것처럼 닮은 상황도 나온다. 그 가운데서 내가 중시하는 대목은 손이다. 어린 돼지를 다루다가 앞치마에 대충 손을 문지르고 나온 주방장과 악수하는 등장인물. 그녀의 손과 맞닿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간다. 이내 세계 전역으로 감염병이 퍼지고 대혼란이 발생한다.영화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감염병의 근원을 알게 된다. 바나나 서식지를 공격받은 박쥐가 돼지농장에 날아가서 배설한다. 어린 돼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고, 돼지는 주방장에게 전달된다.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宿主)로 지목된 동물이 돼지와 박쥐였으니 족집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인 손이다.주방장의 손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전파경로는 2020년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지는 세상의 온갖 물건을 통해서 바이러스는 전파된다. 우리는 하루에 3천번 정도 얼굴을 만진다고 한다. 손은 얼굴을 만지기 전에 무엇을 만졌을까?! 명심하시라. 마스크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잘 씻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2020-03-11

두 개의 바이러스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해마다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는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해 한해를 되돌아보는 보도를 한다. 2020년은 동일 숫자가 이어지는 인상적인 해인 만큼 ‘올해의 키워드’도 연초부터 드러난다. 한국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과 코로나19의 사태가 2020년 희비(喜悲)의 대표 키워드가 될 것은 분명할 듯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를 긴장하게 하면서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헬라어 ‘kor1E53n0113(κορ03CEνη)’에서 유래한 ‘코로나(corona)’는 ‘크라운(crown·왕관)’의 뜻이다. 바이러스의 모양이 ‘로마 시대의 머리 장식’과 비슷한 데서 지어졌다고 한다. 전파력이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현저히 높은 바이러스다. 신도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종교단체 ‘신천지’의 신도가 감염됨에 따라 코로나19의 전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제는 이것을 인력으로 막는 데 한계를 느끼기까지 한다. 감염 바이러스에 대한 안일함이 지금의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교육계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졸업식과 입학식 등 정례 행사들을 모두 취소하고 개학 일정도 2주~4주 간 연기하였다. 민생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나날이 늘어나는 감염 확진자들로 의료계는 사상 최대의 혼란과 과로를 겪고 있다. 육아 문제나 기업의 업무 차질에 따른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마스크 품귀에 따른 가격 폭등과 부당폭리, 매점매석 등은 ‘나만’, ‘나 먼저’ 살겠다는 이기심을 부추겼고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에는 취약성만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필자도 이른 아침부터 3시간 반을 기다려 정부에서 공급하는 마스크를 겨우 살 수 있었다. 밀집된 장소를 피하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다닥다닥 붙어 늘어선 긴 줄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웃프지 않은가.사회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성금과 기부가 이어지고 있으나 또 한편에서는 마스크 한 장 나누는 것조차 꺼려하며 위기의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까지 한다. 무분별한 혐오와 분노 표출, 별별 가짜 뉴스는 더 큰 공포감을 확산하면서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거짓 감염 확진 신고로 공공기관에 혼란을 주는 행위나 감염 확진자가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 손잡이에 침을 뱉으며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영상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환경이 선한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인가, 환경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인가.그래도 인간의 본성은 선(善)일 것이다. 위기 때마다 공멸(共滅)의 바이러스와 공생(共生)의 바이러스는 공존하였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공생의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분별력으로 차단과 확산의 의지가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바이러스를 만들고 그것이 퍼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공생의 의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

2020-03-10

박수를 치기 위해

지미 듀란테(Jimmy Durante: 1893-1980)가 참전 용사들을 위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단 몇 분밖에 출연할 수 없다고 쇼 기획자에게 말했습니다.쇼 기획자는 당대 미국 최고 연예인인 지미 듀란테를 무대에 세우기만 해도 대성공이라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간 지미 듀란테는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수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지미 듀란테의 열정은 더했습니다.쇼 기획자는 왜 그가 마음을 바꿔 그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서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30분이 지나서야 지미 듀란테가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쇼 기획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몇 분간만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지미 듀란테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럴 계획이었지만 내가 계속 쇼를 한 데는 이유가 있소. 저기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시오.”쇼 기획자는 무대 맨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참전 용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전쟁에서 팔 하나씩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 팔이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팔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채 즐거운 표정으로 한쪽 손바닥들을 서로 부딪치며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내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결핍을 핑계로 자기 합리화하며 현실과 세상을 탓하기 바쁩니다. 손뼉을 치는데 반드시 두 손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이 함께 어울릴 때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고 박수 소리를 크게 울릴 수 있습니다.새벽은 자신을 돌보기 좋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온종일 세파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내 결핍에 대한 원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요한 새벽, 맑은 눈으로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은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름살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나도 보톡스 좀 맞아야겠어요.”(먼 쓸데없는 소리고?)쌩하고 날아오는 아내의 원망어린 말(言)화살을 한번쯤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녀시절 곱디고운 얼굴이 당신하고 살면서 다 망가졌다며 들이대는 고소장 같은 느낌이 든다. 여성의 경우 나이 들고 있음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이 목둘레에 슬며시 찾아드는 주름살이란다. 남자 역시 비갠 날 지렁이 지나간 자국 같은 인생 계급장이 벗겨진 이마 위에 쌓여간다. 남자든 여자든 노화현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할 일인데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특히 영원토록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여성의 경우에는 더 그런 마음일 것이다. 쌓여가는 주름살을 보노라면 ‘그 동안 멀 해놨지?’하는 회한과 자괴감이 밀려오게 된다. 성형 열풍에 부응하여 주름살을 살짝 제거해 볼까하는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기라는 공자님의 지엄한 말씀에 눌려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살았다.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이 땅에서 쌍꺼풀, 코, 입 나아가 원판을 갈아치울 수 있는 호시절에 옆지기의 주름살 정도는 지워줘야 할 것 같다. 2+1원 옵션을 받아 슬쩍 같이하면 더 좋을 듯하다. 부작용으로 그나마 있던 밑천(?)마저 탕진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한번 시도해보자고 마음먹는다. 가정의 무궁한 평화를 위해서 옆지기의 손을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지 다짐해본다. ‘나이 먹으면 얼굴에 주름살 생기고 허리 굽어지는 거 자연스러운 거야.’ 지난 날 어른들의 말씀이 뒷덜미를 잡는다. 오! 자연미, 위대한 철학자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또다시 물러선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좋게 받아들여질 일이다. 얼굴의 주름살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아름답고 값진 훈장으로 여긴다면 굳이 성형으로 제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며칠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주름살을 보게 됐다. 코로나19 전염 차단에 사투를 벌이는 젊은 여성의료인 두 사람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이다.(평소에는 분명 주름살이 없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두 여성 의료인은 장시간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탓인지 방호모자의 끈에 눌린 이마에 주름살이 생긴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마에 강제로 생긴 주름살의 지친모습이었다. 하지만 보톡스를 맞아 어색하게 펴진 세상의 어떤 얼굴보다 아름다고 값진 모습으로 보였다. 대구 경북지역으로 전국의 의료진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갓 임관된 간호장교들이 전부 코로나19 차단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위기 상황에 몸을 던져 희생하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 여성의료진의 이마에 맺힌 땀과 주름살 자국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짝! 짝! 짝! 격려박수를 보내본다.“제 주름살도 만만찮은 것이거든요!” 옆지기의 말이다.

2020-03-10

무탄트 메시지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바이러스가 대구·경북을 강타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자가격리 상태다. 원래 ‘방콕행’(방안에 콕)에는 자신 있는 체질이지만 외출이 제한된, 강제당한 방콕은 갑갑하다.‘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얼마 전 ‘꿈틀로’골목 노점에서 구입한 책 ‘무탄트 메시지’를 읽었다.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이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과연 인간은 지구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고질적인 바이러스가 아닐까?중국 우한에서 비롯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동안 인류의 삶을 위협해왔고, 인간은 아직까지도 감기를 완전히 치료하는 약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백신을 이겨내는 내성을 가지며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오만이 미생물, 그것도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도 어려운 바이러스의 공격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핵무기 등의 대량 살상무기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적이고, 극지방의 빙하를 녹게 하는 환경파괴 행위도 가공할 일이지만 정작 인류의 멸망은 정체모를 바이러스의 공격에 의하여 허무하게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이르니 모골이 송연하다. 바이러스는 도대체 왜 생겼을까?코로나 바이러스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빠르게 변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 야생동물의 식용 등으로 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접근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되고, 자연을 훼손하면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도 파괴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것이다. 박쥐나 뱀 등의 동물이 숙주이던 바이러스가 이를 식용으로 한 인간에게 전이되어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마음으로 미래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무탄트 메시지’는 미국의 의사 말로 모건이 호주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사막대륙을 횡단하며 깨달은 바를 기록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참사람들이라는 것을.“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당신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떠난다. 당신들의 삶의 방식이 물과 동물과 공기에, 그리고 당신들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깨닫기 바란다.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당신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것이 이미 달라졌고, 더위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으며, 동식물의 번식이 줄어드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아직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신비가 세상에 존재한다. 인간은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분명한 것은 참사람 부족이 전한 말이다.“인간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며, 오직 나무와 풀만이 산소를 만들 수 있다.”

2020-03-10

왕따가 된 나라

왕 따돌림에서 나온 ‘왕따’는 인천 어느 여학교에서 처음 유래됐다고 한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이 말은 은어로 시작했던 것이 보통 명사화됐다.유래는 일본의 이지메(집단)다. 일본은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면 집단으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집단이 결정한 일에 반대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집단이 대놓고 따돌림을 한다. 일본의 학교에서 발생하는 이지메 현상은 사회문제화가 여러 차례 됐다. 집단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학생도 나왔다.집단 괴롭힘 현상인 이지메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표현할 용어가 없어 왕따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접두사 왕은 보통 심하다, 강하다 등 낱말을 강조하는 접목어로 많이 사용된다. 왕초보, 왕고집, 왕회장 등이 그런 경우다.그러나 왕따는 그런 의미와는 다르다. 왕따는 강하다는 뜻보다는 집단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왕따를 모방해 ‘개따’(개인적 따돌림), ‘금따’(금방 따돌림), ‘대따’(대놓고 따돌림) 등의 속어들도 뒤이어 만들어졌다. 인터넷상 카톡방에서의 따돌림을 ‘카따’라 부르고 그런 표현을 보고 ‘카티즌’이란 단어도 쓴다.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면 보통 소통이 되지 않고 고립이 된다. 자연 자신감도 상실하게 된다. 학생이면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도 한다.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발생으로 100개국이 넘는 외국 나라로부터 왕따된 처지가 됐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도 무비자 입국제도를 임시 중단했다. 입국하려면 적어도 14일간 격리가 필요하다. 전 세계가 환영하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으로 신세가 몰락했는지 무능한 정부를 탓할까 한심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10

우주의 깊이, 내면의 깊이

1977년 8월 20일 보이저 2호는 미국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를 이륙해 지구를 떠난다.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티켓이다. 목성과 토성,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을 끝으로 2018년 11월 5일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로 진입했다.기약없는 42년의 여정에 이어 인류가 만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것이다.지구로부터 182억km. 빛의 속도로 하루가 걸리는 거리의 어디쯤에서 목적지 없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만약 보이저 2호가 감정을 지닌 유정물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42년의 여정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떠한 감정으로 주어진 임무에 임했을까. 깊어지는 우주의 깊이만큼 그의 고독한 내면의 깊이는 어느 정도였으며 어떻게 바라보았을 것인가.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주의 지적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를 영웅이라 믿으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운 미 육군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가 아버지의 생존을 접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찾아 태양계의 끝자락 해왕성으로 향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벌인 위험한 실험이 인류를 위협할 사태를 유발하면서 그를 막아야 하는 임무를 맡게된다.불의의 사고로 동료들이 모두 죽고 로이는 혼자서 기나긴 여정에 돌입한다. 그 여정 속에서 우주의 빈 공간만큼 넓고 깊은 내면의 고독과 마주한다. 그는 그 깊고 넓은 공허 속에서 자신이 지구에 두고 온 것을 되새기고 지나온 모든 삶을 반추한다. 이와 함께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지 모르는 아득한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들을 느낀다.구조적으로 ‘애드 아스트라’는 프란시스 포드 코풀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한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 특수부대 윌라드 대위는 밀림에서 복귀하지 않는 커츠 대령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고 메콩강을 따라 캄보디아의 길고 깊은 밀림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지옥의 묵시록’의 윌라드 대위는 여정을 따라 참혹한 전쟁의 참상과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사실을 직면한다. 그의 내면에 가득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여정의 끝자락에 당도한다. ‘애드 아스트라’의 로이 소령 또한 두려움과 함께 내면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공허의 공포 속에서 여정의 끝자락에 당도한다.두 영화의 구조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자가 있고, 그 절대자를 무너뜨리고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대령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온 윌라드 대위에게 “공포와 친구가 돼야 한다. 적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커츠 대령 역시 밀림의 여정에서 느꼈던 공포를 어떻게 다스렸는가를 피력하는 말이다. 그리고 “자네가 날 죽일 권리는 있지. 허나 날 심판할 권리는 없네”라고 말하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기까지 두 영화의 구조는 유사하지만 결말은 다르다.“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애드 아스트라’는 절대자였던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의 이면을 본다. ‘아름답고 장엄하며, 경이롭고 신비’롭지만 그 내면이 텅 비어버린 “사랑과 믿음도 빛도 어둠도 없는” 공허의 공간을 목격한 것이다.‘獨樂堂(독락당) 對月樓(대월루)는 /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조정권 시인의 시 ‘獨樂堂(독락당)’ 전문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절대 고독의 경지에 머무를 때, ‘애드 아스트라’는 “이제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 겁니다”라고 먼 길에서 돌아와 일상에 안착하는 결말에 이른다.깊고 먼 우주로 들어서는 용기. 우주의 심연으로 들어가면서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는 용기. 외부의 모든 것들을 차단하고 자신을 고독의 심연으로 밀어넣었을 때 찾아오는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애드 아스트라’는 결말이 다른 ‘지옥의 묵시록’의 SF버전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IPTV와 네이버 구글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3-09

봄은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그럭저럭 보냈다. 하지만 끄트머리에서 만난 복병은 위협적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 저만치서 창백한 모습으로 주춤거리는 봄을 위해 전원의 삼월은 어김없이 분주하다.텃밭 한쪽에는 상추며 파가 얼어붙었던 계절을 견디고 용케도 살아남았다. 여린 잎채소의 겨울나기처럼 모두가 건강하게 기지개를 켰으면 좋겠다. 긴 겨울이 때가 되면 물러나듯 이 어려움도 머지않아 지나가리라.불안함 속에서도 마음의 근력이 생겨 제법 초연해져 온다. 제2 석굴암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팔공산 계곡, 천연 절벽 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은 7세기경에 조성 되었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졌지만 뒤늦게 발견되어 제2 석굴암으로 불린다.신라 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수도전법을 하던 곳이라 ‘아도굴’이라고도 하며, 원효대사가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여 해동 제일의 석굴사원으로서 신라 불교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본존불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석굴은 우연히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주민들의 치성터로 쓰이다, 1962년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 109호로 지정되었다.석굴암에 밀린 두 번째 석굴사원이라는 이미지때문일까. 큰 기대감 없이 들어섰는데 안온한 느낌의 절 풍경이 좋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자 담장너머로 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나무들의 그림자가 담장을 지키고, 절벽의 석굴로 인해 일촌의 역사를 가진 전각조차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불이문을 지나듯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나를 석조비로자나 불자상이 맞은편 마당에서 지켜보고 있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어수선하고 삿된 마음 계곡에 흘려보내면 잠시지만 극락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혼란스럽던 사바의 세계는 더 이상 계곡을 건너지 못한다.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전각과 나무들은 맑고 건강하다.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이 나를 비로전으로 이끌고, 정갈한 마당 위로는 커다란 목련나무 가지가 꽃눈을 밀어 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마당 한쪽에선 특이하게 생긴 모전석탑이 홀로 봄볕에 빛나고, 그 주변을 마스크 쓴 사람들이 느릿느릿 시간을 즐긴다.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봄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화강암 판석으로 만들어진 널찍한 단층기단 위의 4m 높이 모전 석탑은 시간의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크고 작은 상흔들을 이끼 옷으로 감춘, 눈빛 진한 탑이 아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이만큼의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같은 계통으로, 삼존상과 비슷한 시기인 7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을 거라 추정하지만 크게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절벽 동굴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삼존불과 모전 석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수천 년을 함께 해 왔으리라. 훼손을 우려하여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는 삼존불, 나는 지척의 거리에서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둘 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어둠을 안고 있는 동굴 속 삼존불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때문일까. 과거와 현재, 없음과 있음, 묵직함과 가벼움 같은 사유의 공존성이 보인다.목련나무 그늘에 서서 오랫동안 삼존불을 바라본다. 모전석탑은 햇살 속에서 더없이 명랑하고 굴속의 삼존불은 일심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밝음 뒤에 가려진 어둠, 그 묵직한 세계가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힘인지 모른다.문득 빛 읽기의 대가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랄프 깁슨이 떠오른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어둠이 있어 밝음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밝은 쪽으로 쏠리지만 상대적인 어둠은 마음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 아미타삼존불이 내 안에 들어왔다 또 다시 멀어진다.한결 마음이 차분하다. 절을 빠져나오는데 노점상들이 각종 약재와 채소, 과일 들을 풀어놓고 행인을 기다린다. 하얀 마스크에 가려진 그을린 얼굴, 삶은 때때로 별 것 아닌 모습으로 우리를 싸하게 만든다. 사과를 산 손님이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사고 보니 비싼 것 같다며 오천 원을 돌려달라는 요구였다. 근처에 세워둔 승용차의 엔진소리가 쓸쓸하게 쿨럭인다.조낭희 수필가바이러스의 여파로 여유를 잃어가는 사람들, 빗나간 ‘사회적 거리두기’다. 조금 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덤까지 주고받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다. 값으로 셈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은 놓치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어수선할수록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심리는 본능일지 모른다.어쩌면 저 손님도 비로전이나 아미타삼존불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오지는 않았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이나 기도만큼 부끄러운 게 있을까. 절을 나서기가 무섭게 우리는 형이하학적으로 채워진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삶은 우리를 자주 시험에 빠지게 한다. 행여 우리는 이상과 현실을 기도로 오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나는 어제와 오늘이, 지난해와 올해가 조금도 성숙되지 않은 채 절집을 찾아 다닌지도 모르겠다. 봄볕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2020-03-09

바이러스의 습격과 영화의 시사성

강희룡 서예가조선은 의학수준이나 구료 대책이 역병에 매우 무력했기에 주민 90% 이상이 살기 위해서는 타 지역으로 대피했다. 한양에서 역병이 돌면 한성부가 역병환자나 죽은 주검을 적발해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고 혜민서나 동서활인원에서 역병으로 굶주린 이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후기로 오면서 이 활인원의 의관들은 태만했고 약을 횡령하기 바빴기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다가 결국 1882년에 사라졌다. 당시 극성을 부리던 역병으로는 두창(痘瘡),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으로 가장 피해가 큰 것은 두창과 콜레라였다. 질병사(疾病史)에 따르면 18~19세기 전 세계에서 동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해 조선도 국제교역으로 인한 세계역병유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인구밀집이나 잘 씻지 않고 날것을 즐겨먹는 문화, 관습적 측면에서도 그 원인이 있었다.‘마마(5ABD5ABD))’로 불리는 천연두(두창)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감염되면 대개 죽음에 이르렀고, 살아남는다 해도 얼굴에 흉터가 남아 곰보가 됐다. 전염성도 강해 아즈텍과 잉카문명을 멸망케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 역시 천연두를 하늘이 내린 불가항력의 재앙이라 여기다 종두법의 수입으로 이 병을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콜레라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의료선교사인 에비슨은 1895년에 창궐한 상황을 보고 ‘내가 살면서 본 일 중 가장 절망적이고 무서운 병으로 약도 죽음을 늦출 뿐이고 쓸모가 없다. 독은 단번에 중추신경을 마비시키고 모든 기관을 정지시켰다’고 적고 있다.이로 인해 역병이 한 번 돌면 수많은 사람이 겪고 죽었기에 마을 언덕은 무덤으로 가득 찼다. 중세 유럽사회의 봉건제도를 몰락시킨 흑사병이나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창궐한 20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감염병인 스페인독감 역시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6년의 영국의 미생물학자 피터 피옷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발견한 에볼라바이러스를 비롯해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병한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을 강타한 메르스 등 이런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 코로나19가 또 다시 세계에 확산됐다. 이런 바이러스의 참상과 공포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에볼라의 출현은 세균의 대유행을 의미하는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를 탄생시켰고, 파멸로 가는 진실인 ‘리트릿’은 공기전염을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컨테이젼’은 전염병 확산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이다.한국을 배경으로 한 ‘감기’는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영화로 중국을 발원지로 변종 조류독감이 밀입국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감염원에 의해 급속도로 퍼진다. 100% 치사율을 다룬 영화로 도시폐쇄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바이러스나 곰팡이 등 고대 미 생명체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미래학자들의 의견에 그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런 장르의 영화 역시 인류에게 던지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그 심각성에 대한 메시지는 주목해야 할 시사성이 크다고 보겠다.

2020-03-09

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최미경동화작가하루에도 몇 번씩 감염예방수칙과 확진자 동선 등 코로나19에 관련된 문자가 들어온다. 도서관 연장 휴관, 미술관의 잠정 휴관, 유치·초중고등학교의 개학연기, 행사 취소, 모임 연기….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이 일상의 문밖에서 꽃눈마냥 웅크리고 앉아 초조하게 새봄이 오길 기다리는 듯 하다.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하고 소망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유에서든 정신적인 원인으로든 꼼짝없이 갇히길 꿈꾸었던 것이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화장을 하거나 양말을 신었고 차 안에서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내달렸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땐 3일이 주어지면 대체 무얼 하고 싶었던 거지, 라는 의문이 생겼다.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3일이 아니,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그 하릴없는 시간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처음엔 정말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상을 일상 같지 않게 보냈다.그러다 조금씩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아이들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니 스스로도 신기했다.그랬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챙기며 첫째의 식성이 지아빠와 참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밥 먹기 전에 둘째는 꼭 과일 한 쪽을 먼저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셋째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두 번 이상 씹지 않고 삼킨다는 것을 알았다.정말 그랬다. 일거리가 많은 날이면 집에 와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셋째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오른쪽 다리를 베고 가만히 눕곤 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눈이 그토록 오래오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아챘다. 그리고 매번 아이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니 수면시간도 비슷해져서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가만히 내 왼손을 끌어가 자기 배에 올려두었는데 아이의 들숨과 날숨이 내 손바닥 아래서 따뜻하게 오르내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 나는 참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조금씩 조금씩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려져 있던 것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듯 했다.찬찬히 들여다보자 첫째의 설거지 솜씨가 나보다 더 나았고 4학년에 올라가는 둘째가 아직 두 자리수 나누기 한 자리수 셈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셋째는 나를 부를 때 엄마, 라고 하지 않고 “엄미”라고 부르고 있었다.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잊고 지냈던 소중한 일상을 본래의 일상으로 비춰주었다.그리하여 나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사라지고 그만두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문밖에 세워두기로 한다. 다만 초조하지 않게 다만 지치지 않게, 지금 있는 그대로 품기로 한다.일상, 그 가볍고 소중한 시간 안에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2020-03-09

젠틀맨의 우정

수학자 기쿠치 다이로쿠(菊池大麓: 1855∼1917)는 일본에 근대수학을 도입했고 도쿄대 총장, 문부대신, 교토대 총장, 이화학연구소의 초대 소장 등을 역임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을 때 일입니다.기쿠치는 옥스퍼드대학의 유일한 동양인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항상 1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영국학생들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영국학생 브라운은 언제나 기쿠치를 따라잡지 못하고 2등만 차지했습니다.학기말 시험을 얼마 앞두고 기쿠치가 독감을 앓게 되어 학교를 며칠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학교에 퍼지자 영국 학생들은 브라운이 1등 할 기회가 왔다며 몹시 흥분했습니다.어떤 친구는 다가와 “브라운 잘해, 그 원숭이 같은 작은 녀석을 보기 좋게 꺾어주라고!” 하고 격려까지 했습니다. 기말시험을 치르는 날, 기쿠치는 핼쑥한 얼굴로 학교에 나와 시험을 치렀습니다. 며칠 뒤 학교 게시판에 성적이 발표되었습니다.게시판 앞에 와글거리며 모여 있는 학생들 틈에서 누군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런, 또 기쿠치가 1등이야!” 학생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습니다.기쿠치가 게시판 근처로 걸어와 서툰 영어로 말했습니다. “내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라운 덕분입니다. 그는 매일 내 방에 찾아와 교수님이 하신 강의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브라운은 쉬 뒤집어질 수 있는 1등 자리보다는 2등 자리에 머물지라도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젠틀맨 정신을 발휘한 거지요.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은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현금 보유액수로 정해진다고 하지요? 영국인들은 ‘명예롭고 정정당당한 삶’이 중산층 잣대라고 합니다. 한 수 배우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9

드라이브 스루

드라이브 스루는 차에 탄 채로 쇼핑할 수 있는 상점을 말하며, 우리 말로는 승차 구매(점)으로 불린다. 드라이브 스루는 주차하지 않고도 손님이 상품을 사들이도록 하는 사업적인 서비스의 하나이다.스타벅스나 맥도날드의 상호 이름에 DT가 붙어있는 경우, 승차 구매점임을 가리킨다. 통상 마이크로폰을 이용해 주문을 받는 것이 흔하며, 창가에 있는 사람이 물건을 건넨다. 승차 구매점은 여러 방면에서 드라이브 인과는 다르다.드라이브 스루의 경우 한 방향으로 한 줄을 만들어 지키면서 주차를 하지 않지만, 드라이브 인의 경우 차끼리 맞대며 주차를 할 수 있으며, 직원이 차창을 통하여 음식을 건네면 차를 세운 바로 그 자리에 남아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1930년대에 미국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냈으나 차츰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다. 승차 구매점은 대중 문화 속에서 드라이브인을 대신해 왔으며, 지금은 현대의 수많은 미국 패스트푸드 연쇄점은 물론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최근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면서 대면접촉을 피할 수 있어 전염병 확산방지에 유리한 드라이브 스루방식의 이동진료소가 큰 인기를 끌고있다.드라이브 스루 이동진료소는 차량에 탑승한 채로 검사를 받아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 심지어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이동진료소’ 운영 노하우를 요청하는 가 하면 독일에서도 한국에서 실시하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검진을 받아들인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범람으로 힘겨운 서민들에게 언제나 따사로운 봄소식이 전해질 지 막막하기만 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09

코로나19, TK 그리고 정부·여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온 국민이 ‘멘붕’에 빠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백 명씩 속출한다. 특히 확산의 중심에 있는 TK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구에서는 입원을 기다리던 환자들이 자택에서 숨지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의 연구실 15층 창밖의 시내 거리는 적막하다. 긴급 출동하는 앰뷸런스의 다급한 사이렌이 대구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불안과 공포 속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눈물겹다.그럼에도 위기관리에 책임 있는 정부·여당은 헛발질만 한다. 감염원의 차단은 방역의 기본이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해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국민의 생명보다 대중외교를 중시한 결과이다. 베트남은 환자가 16명일 때 중국인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확산을 막았다. 이스라엘은 예고 없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는데, 정부가 항의하자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인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문 대통령에게 돌아온 중국의 조치는 한국인에 대한 격리와 감금이었다. 정부가 항의하자 “자국민의 생명보호는 당연한 조치”라는 훈계만 돌아왔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무능한 정부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여당대변인은 TK 봉쇄를 말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사퇴했다. 중국은 봉쇄하지 않고 그 피해자인 TK를 봉쇄하겠다는 정치꾼의 발상이 놀랍다. 외교부장관은 “중국인 입국금지는 실효성이 없다”고 했고, 복지부장관은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 온 한국인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은 막지 않고 그 피해자인 우리 국민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 대변인이거나 중국의 장관들이 아닌지 귀를 의심케 한다.정부·여당의 분별없는 언행은 고통 받는 국민의 상처를 더욱 헤집고 있다.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열린 청와대 ‘짜파구리’오찬에서 보여준 대통령 내외의 파안대소(破顔大笑)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국민을 잊은 것 같다. ‘울고 있는 국민과 웃고 있는 대통령’의 대조적 모습은 “이게 나라인가?”를 묻고 있다.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오판은 국민을 더 큰 고통 속에 빠뜨렸다. 대통령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온 동네를 헤매다가 빈 손으로 돌아서는 시민들의 눈물을 아는가? 1회용 마스크를 3일간 써도 괜찮다는 여당대표는 무식한 것인가 용감한 것인가? 국민에게 강요하기 전에 먼저 대통령과 장관들이 3일 사용을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무능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교활한 정치꾼들은 국민을 분노케 한다. 방역전문가는 정치꾼이 아니라 의사와 학자이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 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과로로 쓰러지고 있는데, 정부·여당은 총선의 이해득실 계산에 바쁘다. 국민이 있어야 정치도 있는 것 아닌가? 권력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은 악조건 속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인들의 숭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배우기 바란다.

2020-03-09

‘계륵(鷄肋)’의 저주

안재휘 논설위원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4·15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미묘한 기류에 빠져들었다. 옥중 메시지가 발표될 시점만 하더라도 길조(吉兆)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통합’에 골몰하다가 ‘혁신’을 놓칠 위험성을 해소하지 못한 보수 세력에게 ‘계륵(鷄肋)’으로 붙박인 소위 ‘태극기 부대’라는 친박의 한계는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 딜레마가 불러올 혼돈을 막아내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보수 단일대오를 촉구함으로써 2016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불복하며 세(勢)를 불린 친박계 및 태극기세력의 힘이 빠지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힘을 합치라’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깊이에 대한 차이가 빚어내는 변수는 변함없이 살아있다.태극기세력은 일단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히면서도 미래통합당에 선거연대 및 후보단일화 방안을 내라고 요구해 지분을 탐닉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세력의 지분 요구에는 선을 긋는 동시에 선거연대는 향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통합당 내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원조친박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결정에 불복, 무소속 출마 강행 의지를 밝혔다. 크게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은 결국, 친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몇 년을 질질 끌려온 미래통합당의 핵심 고민거리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증명한다.당장 여권인사들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빨간 딱지를 들고 설치기 시작했다. 중도 민심을 확보하지 않고는 승세를 창출해낼 수 없는 미래통합당에 이 같은 현상은 치명적일 수 있다.‘수구꼴통’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미래를 개척할 수 없는 숙명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이정표를 창출해내지 못해온 통합당의 업보가 적나라하게 노정되고 있는 판이다.총선을 앞두고 공관위가 겉으로라도 혁신 의지를 보이는 척한 덕분으로 중도 표심이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며 서서히 통합당 쪽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판에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통합당에 합류한 한 청년정당마저도 ‘도로 새누리당’ 조짐을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 등 심상치 않은 흐름이 일고 있다.복잡미묘한 상황 속에서 통합당 공관위의 공천 과정도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옥석을 구분하는 기준이 오리무중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중도 표심을 일궈내야 하는 사명에도 충실한지 석연치 않다.‘혁신’을 핑계로 계파정치를 오히려 강화해오던 수상한 구시대적 역학 작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오만(傲慢)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잡 미묘한 새로운 권력 게임은 어쩌면 보수 민심이 그동안 걱정하면서도 삼켜왔던 ‘계륵’의 저주인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2020-03-08

모범적 시민의식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시는 돋보이는 시민정신의 일화로 유명하다. 1347년 영국의 공격에 항복한 칼레시는 굴욕의 시간을 맞는다. 에드워드 3세 영국 왕은 완강히 저항했던 칼레시에 대한 보복으로 귀족 신분을 가진 6명을 교수형에 처할 것을 선포했다. 그 대신 시민의 목숨은 살려두겠다 했다.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칼레시의 최고 부자가 먼저 자청했다. 그러자 칼레시장과 법률가 등 다섯 명의 귀족이 잇따라 동참을 선언했다. 칼레시민을 감동시켰던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칼레시민의 위대한 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다. 시민의식은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의 생활태도나 행동양식이다. 보통 그 지역 사람의 에티켓이나 도덕심을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다.60~70년대 한국인에게 붙여진 ‘코리안 타임’도 시간을 제때 지키지 못한 한국인의 부족한 시민의식을 꼬집은 유행어다. 선진국이라고 시민의식이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부자나라도 시민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칼레시에서 보여준 귀족들의 책임의식과 희생정신이 바로 높은 시민의식이다.시민의식은 위기상황일 때 잘 드러난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사태는 우한시를 초토화 시켰다. 중국정부가 도시봉쇄를 발표하자 외신을 통해 전해진 그곳 현장의 소식은 아비규환과 혼돈 그 자체였다.미국 ABC 방송기자가 코로나19와 싸우는 대구를 방문해 쓴 기사가 화제를 모았다. “이곳은 두려워하는 군중도 없다. 절제심 강한 침착함과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라 전했다. “대구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고 느낀 대로 적었다 한다. 외지인이 보는 성숙한 대구 시민의식이야말로 코로나19 극복의 진정한 힘이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08

어둠에 잠긴 포항관광업의 새로운 도전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기업부터 소상공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의 생산제품을 대구 경북지역 생산품이라고 받지 않겠다고 하는 타 지역업체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주요 유통업자들은 물류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불편을 느끼며, 퇴근길에 눈에 뜨이는 약국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대형이냐 중형이냐를 불문하고 방역 마스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습관적 행동이 되어버렸다. 지역 내 사람의 이동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어느새 포항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며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었던 지역 관광업계의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적어도 관광업계는 중후장대한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여타 산업보다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담은 프로그램을 장착하듯 소프트웨어적인 대응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실제 글로벌 관광사업(tourism)은 항상 변신에 성공해왔다.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해당 국가나 지역마다 문화적 기반과 풍습, 종교사상, 그리고 인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것을 사업으로 하는 관광사업은 그 자체로서 다양성을 지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특정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오감으로 경험한 적 없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굳이 돈을 들이거나 관광상품을 찾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 그저 일상 생활공간과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효과는 나타난다. 모처럼 산을 오르거나 바다를 찾기만 해도 현대인들은 가슴이 트이며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관광사업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 쉬고 존재하고 있는 밀착형 산업의 하나다.그동안 관광사업은 해당 여행상품을 소비하는 주체의 소득수준, 여행 형태, 선호 주제 등에 따라 온갖 신기하고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성장해왔다. 청소년들의 수학여행, 직장인이나 공무원의 산업체 견학, 갓 결혼한 청춘남녀의 신혼여행,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두고 젊을 때 일하느라 미루고 미루었던 은퇴 여행 등 관광 목적과 종류는 무한하다. 이동수단이 어떤가에 따라 도보여행, 배낭여행, 자전거여행, 자동차여행 등은 물론 최근에는 크루즈여행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관광 여행상품이 내세우는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수려한 경치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만 하던 ‘보는’ 관광에서 이제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관광으로 변신한 지도 꽤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아예 호텔 객실에서만 휴식하는 ‘호캉스’라는 것까지 생겨났다.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점차 온천 등지에서 식도락과 함께 힐링, 웰빙 등을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 관광을 추구하고 있다. 관광사업의 주제가 계속 변신해 오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러한 관광사업의 빠른 흐름 속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주제가 주목받고 있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암흑의 관광이나 어두운 관광 정도가 되겠지만, 결국 밝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핵심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관광이라고 하면 어떠한 즐거운 기념일, 축하할만한 일이 있을 때, 직장인이라면 포상을 받았을 때 주로 여행상품권을 받기도 하였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관광이라면 즐겁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은 재해나 전쟁과 같이 인간의 슬픔, 죽음, 절망 등을 강제로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현장을 내세운다. 그것을 통해 평소 잊고 있던 대형 재난과 재해를 경계하고, 전쟁이 주는 잔혹함과 슬픈 희생을 되새기며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정숙하고 숙연한 교육적인 관광이다.가장 유명한 다크투어리즘이라면 역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과거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운영하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라고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철로를 통해 죽음으로 향한다는 ‘죽음의 문’, 벽에 세워두고 유대인을 총살하였던 ‘죽음의 벽’과 함께 당시 유대인들의 수용소 내부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 매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46분과 9시 3분에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민항기가 각각 뉴욕의 109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였다. 9·11테러 사건이다. 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 이후 테러단체와의 기나긴 전쟁을 부르기도 하였다. 무너진 두 건물 자리의 흔적인 그라운드제로에는 지금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날의 긴박했고 참혹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9·11메모리얼플라자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들어간 위령비인 2개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온갖 난관을 헤치고 독립한 미국을 상징하는 104층의 세계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는 미국 독립연도인 1776피트(약 541미터)로 세워졌다. 이 건물 전망대의 관람문의 전화번호의 끝자리도 1776번이다. 지난해 5월 미국의 유명 TV 채널에서 방영된 5부작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이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를 다루고 있다. 체르노빌원전은 지금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는 출입 금지 지역이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 25주년인 2011년부터는 일부를 외부 관광객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연간 7만2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갔고 지난해에는 TV드라마의 유행에 힘입어 약 30% 정도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체르노빌원전 주변을 관광지로 더욱 개발한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하였다. 이처럼 각국이나 지역에서는 어두웠던 역사의 현장마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본마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후쿠시마원전 지역을 이번 도쿄올림픽 개최 기간에 맞추어 개방한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피해자였거나, 사고를 내었던 당사자들이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어둠보다는 더욱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스스로 피를 흘리며 대한민국을 수호한 현장과 관련 기념물들을 도시 곳곳에 수없이 간직하고 있다. 매년 6월에만 군인단체나 국가유공자들이 찾아오는 포항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포항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였던 한국전쟁 당시 기계 안강, 비학산, 형산강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의 최고 격전지였다.포항은 명실상부한 충절, 호국 도시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보다 2개월이나 일찍 성공적으로 끝냈던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 포항출신 학도병 수백 명이 산화하였던 기계 안강전투, 소티재 전투, 삿갓봉고지(93고지, 일명 천마산) 전투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침 2020년은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였던 포항을 찾아 포항지구전투전적비,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전몰학도충혼탑 등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전쟁의 참혹함과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포항만이 가능한 어둠의 관광(dark tourism)을 상품화하여 지금 어둠에 잠긴 지역 관광업계가 활성화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면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08

삼성현과 4차 산업혁명

최영조 경산시장원효·설총·일연은 경산이 낳은 민족의 스승으로 경산은 이들을 삼성현으로 추앙하고 있다.원효는 신라 삼국통일 시기에 대중불교를 널리 전파해 정신적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고 설총은 이두를 집대성하고 유학을 가르쳐 일반국민으로 하여금 문자를 알게 하고 일연은 몽골 침략시기에 삼국유사를 지어 민족자주의식을 확립했다.삼성현은 압독국과 함께 경산의 뿌리이며 정체성이다.경산시가 삼성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분들이 경산지역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적 과제를 혁신적으로 풀어냈던 위대한 인물에게서 이 시대 과제인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문학적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길에 동굴에서 하룻밤 자던 중 해골에 고인 물을 모르고 마신 일화를 남겼다. 이를 계기로 인간의 인식의 불완전성을 크게 깨닫고 많은 저술을 통해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통섭(通攝)의 원리를 설파하였으며 판비량론(判比量論)에서는 초분별의 경지를 제시하는 등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사유구조를 확립했다.설총은 일반의 어문생활을 크게 개선해 ‘세종 이전의 세종’으로 일컬을 만한 분이다. 비로소 우리말로 유학 경전을 읽어 내게 되면서 문화의 기반을 크게 넓혔다. 설총이 유학을 가르치던 ‘석독구결(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문장 사이에 달아 놓은 구결)’ 방식은 고려 때까지 쓰였고 그로 인해 유학의 종주로 추앙받아왔으며 지금도 향교에서 배향할 때 첫 자리를 차지한다.일연선사는 삼국사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역사, 민중의 역사를 처음으로 기록하여 민족 자주의식을 드높였다. 삼국유사는 몽골 침략시기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던 한 승려의 삶이 담긴 치유와 통합을 위한 역사서이기도 하다.경산시는 삼성현의 정신을 기리고 이어받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남산면 인흥리 일원 26만2천462㎡에 총사업비 513억원으로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을 지어 창의문화도시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개장 이래 삼성현에 관한 학술대회를 비롯해 어린이 미술대회, 백일장, 궁도대회, 전시회,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로 주말마다 가족 관람객들이 붐비고 삼성현역사문화관은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었으며 공원은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는 문화의 중심으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경산시가 삼성현을 기리는 뜻은 이 같은 행사나 시설에만 있지 않다. 삼성현은 시대가 나아갈 방향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고 혁신적인 사고로 이를 선도해간 선각자들이었다. 경산시는 4차 산업혁명 선도도시로서 삼성현의 혁신적인 사고와 태도를 이어받겠다는 것이다.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을 ‘물리계, 디지털계, 바이오계 기술의 융합’이라고 정의했다.원효 사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화쟁회통(和諍會通)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갈등과 싸움은 원래 한마음(一心)에서 나온 것이므로 분별하는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통섭에 이르면 모두 해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 융합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원리와 방법상 일맥상통한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력이 도시의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이며 문화적 역량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2015년 유엔총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를 채택하면서 목표11에서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달성‘을 제시하고 그 하위목표로‘문화적 자연적 유산의 보존과 보호 노력의 강화’를 강조하였다. 또한 유네스코는‘문화 : 도시의 미래’라는 관련 보고서에서 도시를 매력적이고 창조적이며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은 문화라고 밝혔다.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인문정신으로부터 해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는 관점으로서 동시에 문제점 극복의 원리로서 우리가 삼성현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경산시는 2017년부터 경산발전 10대전략을 수립하고 4차 산업혁명 선도도시 및 창의문화도시 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으며 그 중심에 삼성현이 있다.

2020-03-08

세 가지 성찰

정현아간호사매주 ‘논어’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학이(學而)편 4장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뜻은 이렇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세 가지 측면에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며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 친구와 교제하며 미덥지 못한 점은 없는가?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히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어느 날 퇴근 후, 증자의 세 가지 성찰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일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진심을 다해 일했을까?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대한 순간은 없었을까? 내 직무를 즐기는가?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을 바꾸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했는가?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마친 건 아닌지 돌아본다.둘째, 친구와 교제하면서 미덥지 못한 점은 없었는가?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변화가 생기면 삐그덕 거리기 마련이다. 서로 적응하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 모난 부분이 부대끼며 동글동글해지는 시간임을 알면서도 들려오는 불협화음이 신경 쓰인다. 억지로 되는 게 있겠나 싶어 시간을 두고 마음을 열어보자고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가 다시 큰 오해를 만들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살피고, 내가 먼저 행하면 통하리라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만난 소중한 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는가? 그들의 소중함을 느꼈는가?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내 기분을 내세워 상대를 이용하진 않았는가? 일방적인 강요로 불편하게 하진 않았는가? 거짓으로 가면을 쓴 채 대하진 않았는가?셋째,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숙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이 부분은 나 자신의 배움에 적용해 본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만난 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 새로운 지식을 하나라도 배우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은 사람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백과사전이라도 들추어 한 가지를 배우고 잠들었다는 대목이 놀라웠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갇혀 뱅뱅 맴돌지 않고 늘 배우려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일상의 모든 부분이 내 스승이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보다 못한 것은 없다.나는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하나를 더해 본다.넷째,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는가? 현대인은 고독한 시간이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할까? 정보의 늪에 빠져 눈이 먼 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에 나를 맡기는 행동을 반복하면 결과는 어떨까?남들이 올리는 화려한 사진에 대리 만족하고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또다시 거짓 가면을 쓰고 멋지게 한 컷 올리는 삶이 진정한 삶일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그 시간 자체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외부 자극 없이 고요한 상태가 필요하다.나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하루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상태를 살피고 내면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을 매일 갖는다. 고독한 시간이다. 조금 익숙해지면 짙은 고독이 찾아와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시작한다. 모든 창조적인 일은 고독이 필요하다. 매일 성찰하는 삶은 ‘선택과 실행’을 돌아보게 한다. 삶에 다가온 변화들, 소중한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성찰을 통해 몰입과 집중할 대상을 정한다. 해야 할 것은 시작하고 계속해야 할 것을 지속해 나간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중단한다.삶을 진하게 살아내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매일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이다. 오늘도 증자는 묻는다.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2020-03-08

‘사회적 거리 두기’와 스스로 돌아보기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직장인 상당수가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대구는 지하철도 버스도 텅텅 비어 있고 사람들이 붐비던 시장마저 철시한 상태다. 방역 당국이 급기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선포했다.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만남부터 자제하자는 것이다.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드물고 상호 경계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국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를 일정 기간 집에 가두는 ‘방콕’ 신세로 만들어 버렸다.이번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개인이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도 벌써 2주째 집안에만 박혀 있다. 내 삶 속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집에서만 머물렀던 경험은 전무하다. 어릴 때인 6·25 전쟁 중에도 동네 친구들과 마을 담 안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두 장기간 집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무기력하다고 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좌절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모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의 삶이 목적보다는 수단적 삶에 치중하지 않았는지 자성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직접적인 만남이 제한된 이 기간, 우리는 자신과 공동체의 관계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혼자서는 살수 없는 공생이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간다. 기본적인 가족 공동체의 고마움마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다. 대구를 향한 마스크와 의료 장비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전라도 광주에서 병실을 제공하고 강원도의 119 구급차까지 도착하였다. 바이러스 공포 앞에 개인은 나약하지만 연대와 연민의 정은 증대되어 다행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 모두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한편 우리 인간은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감염의 근원은 아직 명확하게는 밝혀지지 않았다. 박쥐라는 동물을 매개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만 알려지고 있다. 생태론자들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횡포가 자연의 인간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질 것을 일찍부터 경고하였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이 미세먼지라는 괴물로 현재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스, 메르스, 신종 플루가 지구촌을 괴롭혀 왔다. 차제에 우리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의 방도를 찾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신앙인들도 자신과 절대자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감염의 진원지로 알려진 ‘신천지’에 대한 비난은 격해지고 있다. 신천지라는 사이비 종교의 잘못된 구원관이 비극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가톨릭 피정과정을 통해 신앙의 진리를 묵상해본 적이 있다. 이번 기회를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인간과 절대자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신천지’의 부상에는 잘못된 기성 교회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신천지의 요상한 구원관에 빠진 것도 결국 우리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은 아닐까.

202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