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마음의 장벽 깨뜨리기

1954년까지는 육상선수들이 1마일(약 1.6km)을 4분 내에 주파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온갖 연구를 통해 4분 장벽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깰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믿음은 깨지지 않았습니다.어느 날 한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장벽을 깨뜨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훈련했고, 마침내 그 장벽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이름은 로저 베니스터입니다. 영국의 아마추어 육상 선수이자 옥스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의대생이었습니다.그는 의대생답게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최대의 고통과 최적화된 마지막 질주(스퍼트)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단거리 경기나 마라톤과는 다르게 1마일 경주를 위해서는 스피드와 스태미너를 잘 조절해야 했습니다. 2년 동안의 도전 끝에 1954년 5월 6일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려면 트랙을 네 번 60초 안에 돌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돌다가 심장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마침내 네 바퀴 완주해냈고, 그의 기록은 3분 59초 4였습니다.4분 장벽이 깨진 후, 불과 6주 후 한 명이 마의 4분을 깼습니다. 최초로 마의 장벽이 깨진 지 체 1년이 지나지 않아 37명의 선수가 그 장벽을 넘어섰습니다.놀랍지 않습니까? 통계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 10년 만에 지구촌 곳곳에서 300명도 넘는 사람이 그 일을 해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장벽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무하마드 알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챔피언은 경기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8

생각이 고통이다

김현욱 시인위빠사나붓다선원장 김열권 법사의 책 ‘보면 사라진다’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거사님, 무엇이 고통입니까?” “생각이 고통입니다.” 생각이 고통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진실을 부정하더라도 인간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마지막 명제가 ‘생각과 존재’라고 여긴 것이다. 반면에 인류의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틱낫한 스님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어느 강연에서 말했다. 생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생각’이란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만 생각이 판단, 인식, 기억, 관심, 마음, 상상, 느낌, 의견, 의지, 분별, 욕구 등으로 두루 쓰이는 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은 조건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면서 존재(想)가 되기도 하고 고통(苦)이 되기도 하고 무아(無我)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누구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전현수 박사의 ‘생각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명상 수행자들은 수행 중에 생각의 정체를 알게 된다고 한다.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이다. 생각은 그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건에 따라 떠올랐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윌리엄 제임스는 ‘비가 온다’를 ‘It rains’, ‘바람이 분다’를 ‘It winds’라고 하듯이 생각도 ‘I think, You think’하면 안 되고 ‘It thinks’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각의 실체를 정리하자면,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생각은 떠오른다, 생각이 난다가 옳다.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떠오를까? 마음수련 단체에서는 마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억’이라고 답한다. 컴퓨터로 치면 저장장치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마음’이고 그것이 조건에 따라 ‘생각’으로 떠오른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저장되어 있지 않으면 떠오를 수가 없다. 전현수 박사는 ‘입력된 것이 우리다’라고 말했다. 눈은 사진기, 귀는 녹음기가 되어 태아 때부터 우리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그것이 ‘나’를 이룬다. 그중에 부정적인 생각은 떠오르는 힘이 가장 강하다. 화, 상처, 미움, 원망, 걱정, 불안,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불꽃처럼 강렬하게 솟구쳐 오르는 특징이 있다. 이런 생각은 대부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것이다.코로나 19 관련 뉴스나 기사를 접할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어떤 생각은 평생 동안 한 인간의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생각이 고통이다’란 말은 생각과 정신적 고통은 깊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생각이 많으면 결코 편안하지 않다. 우울증, 강박증, 불면증도 생각이 많아서 생기는 정신 질환이다. 생각을 줄이거나 멈추면 편안해 진다.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은 한 마디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명상으로 현재에 집중하기 딱 좋은 시절이다.

2020-03-08

안철수 ‘기우제’와 코로나19

코로나 19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오늘로 벌써 확진자가 5천명을 넘어섰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니 조만간 1만명은 채울 것 같다.마스크가 딸려‘금스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판이요, 정부가 마스크 때문에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부가 노력은 안 하는 게 아닌데 정부든 야당이든 너무 세게 ‘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다.이 와중에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는 의사 가운을 입고 대구로 내려가 자원 봉사 활동을 벌였다. 언론에서도 모처럼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네티즌들은 난리들이 났단다. 보기 좋아 보였던 것이리라.사실‘만주 정치 평론가’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안철수 대표의 오랜 부진은 지난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시원치 못한 솜씨를 선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두 개의 이유가 있다.하나는, 안철수‘기우제’를 지내는 세력들의 온갖 ‘술수’와 활약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해서 특히 ‘진보파’ 내 비판 세력들은 안철수의 근본은 보수파요, 그러니 보수대연합의 중요축이 될 것이라 메가폰을 들고 선전들을 했다. 지금은 중도처럼 보이고 진보파와 동거하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내고 우파에, 그러니까 독재세력의 후예들 쪽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그런 입들이 어지간히 많아서 안철수는 미래통합당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들 했다. 반드시 잡을 것이고 아직 안 잡고 있어도 반드시 곧, 잡으리라는 것이다. 잡아라, 잡아라, 하고들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것은 잡을 때까지 지내다보면 잡을 때가 올 것이라는 뜻이다.다른 하나는, 안철수 스스로 호남의 정치기반을 허물어뜨렸다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선거에는 실패했지만 ‘국민의 당’은 호남권 구민주세력과 안철수 연합으로 총선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구민주 세력이란 사분오열되어 있으나 박지원 의원에 의해 대표되는 면이 있고, 민주당에서 빠져나온 안철수로서는 이 세력을 버리고는 호남의 손을 놓아 버렸다는 비난을 덮어쓰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이들과 결별하고 손잡은 세력이 겨우 유승민 등 새누리발 탄핵세력이었다니, 그들은 다시 본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이제 호남 구민주 세력과 결별하고 미래통합당과도 선을 그는 안철수는 ‘외따로’ 존재함으로써 자신이 순수한 중도파임을 일단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위기의 대구를 찾아가 자신의 의사 면허를 ‘밑천 삼아’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과연 그가 쓰러질 때까지 기우제를 지낼 세력들의 마타도어를 이겨내고‘중도’라는 새 길을 위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까?코로나19 덕분에 바보 안철수가 모처럼 쬐그마한 기회를 얻은 것처럼 보여 안쓰러운 마음에 한숨을 쉬어 본다. 세월의 병이 깊으면 의사가 절실한 법이니까 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3-05

박근혜 옥중메시지 파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총선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 터져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메시지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보수통합을 추진해온 범야권, 친박세력끼리 헤쳐모여 하던 태극기세력, 그리고 보수통합을 견제해온 범여권 세 당사자 모두에게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거대야당을 중심으로 보수세력이 힘을 모아 현 정권을 심판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졸지에 보수대통합세력을 대적하게 된 범여권은‘선동정치’라며 날선 비판을 내놨다. 반면 보수통합을 추진해온 야당에서는 ‘애국심에 감동했다’는 반응이다.미래통합당은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반가운 선물로 표현하면서, 내용대로 보수 통합을 마무리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황교안 대표는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 앞에 분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는 통합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줬다”며 “천금과 같은 말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유공화당에서 요구한 공천 작업 중단 요구에 대해선 선을 그어 추후 논란이 예상된다. 어쨌든 통합당과 합류할 것을 요청받은 태극기 세력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 공감했다. 실제로 옥중메시지 발표직후 자유공화당 김문수, 조원진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태극기 우파 세력과 미래통합당 등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탄핵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수대통합에 힘을 보탬으로써 미래통합당 의석확보에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태극기부대의 합류로 ‘도로새누리당’이 됐다는 비판과 함께 중도세력의 이탈이 점쳐져 일방적인 긍정효과는 이르다.옥중 메시지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뭘까 곰곰이 가늠해본다. 우선 미래통합당을 보수통합의 주체로 추인하고, 탄핵 찬성세력에 대해 용서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박 전 대통령이나 태극기 부대는 지금까지 탄핵을 부정하며 탄핵에 참여한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 김무성계, 유승민계 등등에 대해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이제는‘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는 미래통합당의 텃밭인 대구, 경북(TK)·부산 경남(PK)지역 공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에 힘을 실어주고, 향후 자신의 사면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미래통합당은 최근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지역 후보들에 대한 면접은 마쳤지만 아직 공천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컷오프 되는 후보들의 집단 이탈 우려 때문이다. 공천탈락자들이 친박신당 등 새로운 세력을 만들면 야권 분열로 필패국면이 된다.그러나 이번 옥중메시지가 친박진영들의 공천탈락후 반발 등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결과가 돼 공관위의 개혁공천에 힘을 실어주고있다. 어쨌든 보수대통합에 추동력을 보태준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 지는 총선 성적표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데서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2020-03-05

희망의 봄

봄은 천문학적으로 춘분(春分)과 하지(夏至) 사이다. 사계절 중 봄이 유난히 밝고 긍정적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겨울이라는 긴 동면의 시간을 지낸 뒤 태어난 때문이다.그래서 봄은 새로움과 시작을 의미한다.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로도 적합하다. ‘젊다’라는 청춘의 춘은 봄을 뜻한다.‘봄날이 왔다’는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 된다”는 뜻이다.‘프라하의 봄’이나 ‘서울의 봄’처럼 민주화 운동을 희망을 담은 봄과 비유한 것은 봄의 착한 이미지를 잘 활용한 표현법이다. 봄은 힘찬 희망의 출발을 뜻하는 단어로 충분하다.우리고장의 민족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해 해방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갈망했다. 어떠한 인위적 강탈도 자연 순환적 질서를 깨뜨릴 수 없음을 노래하고, 민족 저항의식을 표출한 작품이다.흔히 이 시기가 오면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서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릴 때면 춘래불사춘만큼 쓰기 좋은 표현도 찾기 어렵다.코로나19 공포가 우리주변의 일상을 위협하며 좀처럼 숙지질 않는다. 국민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로지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춘래불사춘이란 시 한 구절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 처지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괜히 우울해진다.예전 같으면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들의 화사한 몸짓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려야 할 시기에 지금은 봄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다.우리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에도 봄은 어느새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라 벌써 우리 곁에 와 있다. 그 봄이 희망의 봄이었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05

괴질(怪疾)과 면역(免疫)

김병래시조시인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괴질(코로나19)의 불똥이 우리나라에도 튀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전염병은 화제와 같아서 초기진압이 급선무인데 정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원성이 높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감염자가 확산되는 바람에 의료시설의 부족으로 확진자들까지 자가격리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한다. 이미 사스(SARS)와 메르스(MERS)를 겪어보아서 처음이 아닌데도 방역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염병은 인류의 가장 큰 재앙 중 하나였다. 기록에 남은 첫 전염병은 기원전 430년 경 아테네를 휩쓴 역병으로 아테네 인구의 1/4이 사망한 걸로 나와 있다. AD165~180년 사이 로마제국에 유행했던 천연두로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비롯해 500만 명 이상이 숨졌고, 역사상 가장 악명이 높은 전염병은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인데 유럽에서만 7천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돌아 중국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퍼뜨린 천연두로는 2천만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인 에이즈(AIDS)는 세계적으로 3천6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통계다.한반도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삼국사기에도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역질에 관한 기록이 200여 건이나 실려 있다. 특히 영조(英祖)대에는 1733년에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해서 2천81명이 사망했고, 1741년에 관서지방에 역질이 들어 3천700명, 1750년에는 전국에 역질이 유행하여 6천200명이나 죽었다. 현대에 와서는 3·1운동 시기, 2차대잔 말기, 6·25전쟁 때 등 3차에 걸쳐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으며, 근년에는 2003년에 사스(SARS), 2015년에 메르스(MERS), 그리고 지금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등은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이다.치료약이 없는 괴질의 경우 대개는 저절로 낫는다. 몸속의 면역체계가 병원체를 물리치는 것이다. ‘생물이 감염이나 질병에 대항하여 병원균을 죽이거나 무력화 하는 작용, 또는 그 상태’를 면역(免疫)이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쳔면역과 예방접종 등을 통해 얻는 후천면역이 있다. 평소에 건강한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은 감염이 되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괴질이 돌면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동시에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는 것도 면역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몸의 병뿐 아니라 정신의 병에도 면역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아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부단한 자기성찰로 탐욕과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신면역을 키우는 기본일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란 말이 있지만, 정신의 건강이 몸의 면역력을 증진시킨다고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지나친 우려나 두려움 보다는 저마다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는 게 좋을 것이다.

2020-03-05

온라인(On-line) 강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코로나19 때문에 대학가에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졸업식, 입학식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취소되고 있다. 개강도 연기되고 개강이 된다 해도 당분간 온라인 강의로 대치한다고 한다. 사실상 캠퍼스가 마비되고 있는 느낌이다.3월이 오면 신입생 새내기들의 활기찬 모습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개나리 진달래가 피어나는 그런 향기로운 캠퍼스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캠퍼스로 변했다. 강의는 진행되어야 하기에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당분간 실시하는 대학이 대부분이다.새삼 온라인 강의를 위해 녹화를 하느라 교수들이 바빠졌다. 학교의 온 시설을 다 활용해도 모든 수업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새로 장비를 도입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대학들의 모습도 보인다. 코로나19로 빚어진 캠퍼스 대참사로 인하여 새삼 온라인 강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온라인 공개 수업은 원격교육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2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기술은 라디오였는데, 이 시기에 대학들은 발빠르게 자체 방송국을 설치하고, 1922년 뉴욕대학교가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였다.지금 한국에서 중요한 교육기관인 방송통신대학의 시초인 셈이다. 1940년대에는 동영상 촬영 기술이 새롭게 등장하여 몇몇 대학들은 강좌를 동영상으로 방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강좌를 폐쇄회로 방식으로 원격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유학시절 스탠퍼드대학은 인근 실리콘밸리를 대상으로 원격 강좌를 실시하였다.온라인 공개 수업의 등장은 2010년에야 나타난다. 온라인 공개 수업(MOOC)이라는 용어도 이때 등장했다. 2011년 가을 스탠퍼드대학은 온라인으로 세 강좌를 열었고, 각 강좌는 약 10만명이 수강하는 기염을 토했다. 뉴욕타임스는 2012년 ‘올해의 온라인 공개 수업’이라는 제목을 통해 온라인 공개 수업을 교육계의 가장 혁명적인 사건으로 꼽았다. 이 즈음 국내에도 MOOC에 대한 붐이 불기 시작했다 정부는 K-MOOC 를 독려하였고 여러 대학이 참여했다.대학들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표적으로 아주대 경영대학원은 온라인은 물론 모바일에서까지 MOOC식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최근 포스텍은 국내 대학 최초로 코로나19로 개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을 위해 MOOC를 국내외 모든 대학에 공유한다고 한다.흥미로운 질문은 “물리적 캠퍼스는 결국 사라질수 있을까?” 이다.아마도 답은 노(NO)일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삶에 기초한다. 서로 마주보고 말하고 답하고 또 서로 부딪히는 물리적인 삶은 사이버 시대에도 포기할수 없는 기본적인 삶의 기초이다.그런 측면에서 대학의 강의들이 온라인 강의로 많이 전환된다하여도 여전히 캠퍼스의 의미는 강하게 남을 것이다.

2020-03-05

돌멩이의 가치

스승이 한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돌멩이를 시장에 가서 팔려는 척하되 팔지는 마라.” 제자는 시장 어귀에 하얀 보자기를 펴 놓고 돌멩이를 그럴 듯하게 전시했습니다. 돌을 팔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보며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불쌍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오천 원 줄 테니 돌멩이를 팔고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구려.” 제자는 팔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노인은 필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만 원을 줄 테니 팔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점차 그 수가 늘어나 급기야 서로 가까이서 보겠다며 밀고 당기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하얀 보자기 위에 놓인 돌멩이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격 흥정에 사람들이 끼어듭니다.“저 돌을 달여 먹으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복이 굴러들어 온대.” “모양을 보니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보이네.” “어떤 물에라도 저 돌을 넣고 하루를 지나면 정수 능력이 뛰어나고 육각형 물이 된대.” 가격이 점차 높아졌지만, 제자는 조금도 팔 의향이 없었습니다. 안달이 난 사람들이 가격을 계속 올렸습니다.“오만 원” “팔만 원” “이십만 원” “오십만 원” 사람들은 돌멩이가 신비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며 서로 돌을 사려 안간힘을 다했습니다.처음으로 다가온 노인이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고집을 부리지 말고 백만 원에 파시오. 그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오.” 다른 사람들은 한탄하며 물러섰습니다. 젊은이는 주섬주섬 돌을 보자기에 싸서 돌아갔습니다.돌아온 그에게 스승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정하는 가치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겠느냐?”헛된 가치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캐묻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5

플라시도 도밍고의 성공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오페라의 대중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1981년 대중 가수인 존 덴버(John Denver)와 함께 ‘퍼햅스 러브 (Perhaps Love)’를 연주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결과입니다.플라시도 도밍고가 젊은 시절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소프라노마르타와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거의 3년을 머물며 오페라 공연을 했습니다. 파우스트 공연이 있던 날, 도밍고는 마르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몇 가지 자그마한 실수를 범했습니다.하지만, 다음날 신문에는 온통 그의 공연과 성악가로서의 위대함을 칭찬하는 기사가 일색이었습니다.도밍고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공연을 다 마친 날 마르타는 도밍고에게 다가와 이렇게 충고해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알아듣기 어려워요. 당신의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당황한 표정을 짓는 도밍고를 똑바로 보며 마르타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하니 기분 좋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고쳐야 할 부분을 말해 드린 겁니다.”도밍고는 우쭐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텅 빈 극장에 남아 발음을 거듭 고쳐가며 연습했습니다. 2년 후에는 정확한 호흡법으로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발음상의 문제를 고쳤기 때문에 오늘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요즘은 누구나 지적받기를 싫어합니다. 그저 달콤한 위로와 인정만 얻으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마르타처럼 내 부족함을 따끔하게 지적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4

감사합니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보건소 선생님, 모든 의료 종사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질병 본부 선생님, 감염병 조사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앞장서주시는 건물주님 감사합니다. 대구 시장님 감사합니다. 경상북도지사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난 극복의 상징입니다. 대한민국이야말로 희망의 상징입니다. 세계인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하지만, 결코 기적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건 노력의 아이콘인 대한민국 국민이 이루어낸 당연한 결과입니다.힘듦과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시간을 가게 하는 것은 사건입니다. 수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가 지금 모습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겐 최고보다 더 강한 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희망의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뿌리가 죽지 않은 나무는 철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철마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모진 겨울을 이긴 해에는 그 모짊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선명한 나이테를 새깁니다. 선명한 기억은 원망이나 불평의 흔적이 아닙니다. 그 선명함은 극복과 희망의 의지입니다.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선명한 나이테가 새겨지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정말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듯 지금 상황도 원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을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경제는 물론 어느 곳 하나 힘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물리적인 재화들은 어떻게든 다시 이루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국민의 마음속에 불신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가 주저됩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려다 사람들이 있어 머뭇거리는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너무 놀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순간 나라는 끝입니다.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영웅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영웅은 국민의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그 영웅들이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에서 너무도 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그들을 직접 돕지는 못할망정 절대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 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어용 전문가 여러분,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사생팬(私生fan) 여러분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제발 당신들의 이기적인 입을 놀리지 주십시오. 당신들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우리의 영웅과 국민의 마음에 큰 화상을 입힙니다. 불에 덴 곳에는 새살이 돋기가 어렵습니다.대구와 경북, 그리고 전국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는 모든 영웅분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감사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힘이 있기에 곧 더 밝고 찬란한 봄을 맞이할 것입니다.

2020-03-04

늙어감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르크의 지배자 길가메시는 폭정을 일삼다가 신들이 보낸 엔키두의 공격을 받는다. 일주일 넘게 싸우던 두 용사는 싸움의 허망함을 깨닫고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삼나무숲의 수호자 훔바바와 싸우라는 신들의 명령에 따라 훔바바를 퇴치하고, 여신 이슈타르의 구애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 대가(代價)로 엔키두를 잃어버린 길가메시는 영생불사를 염원한다. 우트나피슈팀에게 불로초를 얻지만, 뱀에게 도둑맞고 인생무상을 수용한다.‘길가메시 서사시’의 기둥 줄거리다. 현대의학은 요즘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작동하고 있다. 인간수명 500세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최장수명은 120세 전후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4배로 확대하는 기획이 진행되는 것이다. 어째서 인간은 장구한 세월을 살고자 욕망하는가. 무엇이 그들에게 영생불사를 꿈꾸게 하는가.며칠 전 어머니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 졸였다. 연세를 생각하면 정신이나 육신이 건강한 편이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악화하는 것을 보노라니 속이 찡해온다. 언제부턴지 온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가 삶의 의욕도 입맛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평소의 생동감과 호기심 그리고 잔소리마저 실종되어 다른 사람처럼 돼버린 모친을 보는 것은 아픔이었다.막내는 노인성 우울증 같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모친이 총무로 있는 경로당이 장기간 폐원한 상태여서 말동무도 없고, 마실도 나가시지 않았다는 게다.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다가 삼시 세끼 쓰디쓴 입맛으로 최저수준의 섭생으로 일관한 지 어언 1개월. 그로 인해 육신과 정신건강이 저하된 상태에서 공간 지각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이다.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대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1인 가구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50∼60대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711만에 달하는 중장년 세대를 가리켜 베이비붐 세대라 한다. 전체인구 가운데 14.3%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나라의 중추를 이루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자녀양육과 부모봉양의 무거운 등짐을 진 마지막 세대다.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모친의 노화와 약화에 속수무책으로 두 손만 비비고 있는 형국이니 속이 쓰리다. 그나마 며칠 지난 후 점차 기력을 되찾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도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벼운 실내운동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동네 한 바퀴 도는 여유로운 산책을 권고한다. 형제들에게 잦은 방문과 대화, 유쾌한 소일거리를 함께 찾아보자는 식으로 모친의 안쓰럽고 아슬아슬한 늙어감과 마주한다. 길가메시도 붓다도 진시황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탄생과 죽음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필멸의 존재로 우리는 생로병사의 수인(囚人)이다. 노화와 죽음이라는 필연을 새삼 되새기는 시간이 코로나19와 함께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2020-03-04

팬데믹

팬데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WHO는 감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감염병 경보단계를 1∼6단계까지 나누는데, 팬데믹은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에 해당한다. 팬데믹은 특정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으로, 이를 충족시키려면 전염병이 특정 권역 창궐을 넘어 2개 대륙 이상으로 확산돼야 한다.1단계는 동물에 한정된 전염, 2단계는 동물 간 전염을 넘어 소수의 사람에게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증가된 상태, 4단계는 사람들 간 전염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초기 상태, 5단계는 전염이 널리 확산돼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다. 그리고 6단계인 팬데믹은 5단계를 넘어 다른 대륙의 국가에까지 추가 전염이 발생한 상태로, 인류 역사상 팬데믹에 속하는 질병은 14세기 중세 유럽을 거의 전멸시킨 ‘흑사병(페스트)’, 1918년 전 세계에서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 1968년 100만 명이 사망한 ‘홍콩 독감’등이 있다.특히 WHO가 1948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 등 두 차례뿐이다.코로나19 사태가 팬데믹으로 선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30일 WHO가 코로나19에 대해‘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한 달 간 전세계 확진자는 10배, 사망자는 15배 폭증하고, 감염국가도 22개국에서 74개국으로 3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지구적인 재앙인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되기를 기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04

불편하여 배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많은 것을 집어삼키면서 일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그런 가운데 마음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 교육. 초중고는 사상 처음으로 개학을 3주나 연기했다. 학교의 문이 열리면 ‘사회적 감염’의 위험이 급증할 것이므로 섣불리 개학을 당기기도 어렵게 생겼다. 개원을 미루고 있는 유치원들도 언제 어린이들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새 학기 학생들로 그득했을 대학교정도 쓸쓸하다.대학들은 사정이 그래도 조금 나아서 온라인 강의 등으로 수업결손을 보완하기로 하며 개강을 준비하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대학은 일정은 미루지 않고 이미 개강했다. 강의는 물론 온라인으로.디지털 문명을 좋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교수와 학생들은 온라인 소통이 얼마나 불편하고 제한적인 일인지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강의하는 교수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지 못해 답답하고 학생들도 교수에게 바로바로 응답하지 못해 갑갑하다. 쌍방향 소통을 기대했던 모두는 기대밖에 일방향으로만 이뤄지는 전달이 오히려 낯설다. 더불어 어울리고 대화하며 나누는 ‘교감의 다이나믹’을 잃은 교육은 기대했던 대학교육이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가. 멈출 수 없는 교육의 소명을 수행하는 대학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활용가능한 수단을 최대한 가동해 소기의 교육효과를 거두려는 대학의 노력이 아닐까. 대학이 공을 들이는 만큼, 교수도 학생도 최적의 성과를 거두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교육은 멈춰 설 겨를이 없다. 모든 상황을 통해서 무엇이라도 배운다. 대학뿐 아니라 유초중등 교육을 포함한 모든 텃밭에서 학생들이 이번의 사태를 통하여 배우게 해야 한다. 사회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내는지, 나라와 개인은 역경을 지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치는 무엇이며 전문가는 누구이고 언론은 또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인지. 영국 재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국가와 국민의 진정한 가치는 어려울 때 드러난다’고 했다. 교육의 진정한 가치도 오늘처럼 힘겨울 때 빛이 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불편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이웃의 소중함도 깨우치지 않을까. 눈물겹도록 최선을 던지는 전문가 집단이 있는가 하면 사사건건 시비만 거는 무리들도 있다. 감사와 배려의 뜻을 새기게 되며 차별과 혐오의 의미도 챙기게 된다.불편해 배운다. 손해보며 일깨운다. 온라인 강의가 부족하지만 이해하려는 눈으로 보면 오히려 감사하다. 코로나19로 만나는 온갖 어려움을 배려와 용기로 이겨내야 한다. 결산과 평가는 지나간 후에 매섭게 따지기로 하자. 지금은, 정부와 의료진의 노력에 마음과 행동으로 함께 했으면 싶다. 교육다운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선생도 학생도 함께 배우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2020-03-04

새로운 봄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바람이 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나무는 초록빛을 더 뿜어내고 있다.뜰의 매화나무는 이 찬바람 속에서도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입춘 오기전 한참 전 어느 겨울날 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많은 나무들은 죽은 듯이 있는데, 매화만 홀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날이 푸른빛을 보여주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땅 위에 드러난 가지와 줄기의 무게와 땅속에 들어 있는 뿌리의 생체량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겨울, 매화나무의 꽃망울만큼 땅속의 뿌리는 그만큼 더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긴긴 겨울은 나무에게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요 휴식 중에 열심히 준비하는 때라고 여겨진다.몇 해 전 이곳으로 왔을 때, 큰 화분에 소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그 다음 해 화분 밖으로 뿌리들이 나와 있는 것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에 땅에 옮겨 심었다. 그 겨울에도 그 나무는 푸른 솔잎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분 밖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오는 뿌리의 힘은 이제 땅속에서 자리 잡고 한 해에 한 마디씩 하늘로 쑥쑥 줄기와 가지를 올리고 있었다. 소나무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너는 내면에 깊이 파고들어 가고 있는지 묻는 듯하다. 깊이 파고드는 노력이 있을 때, 변화의 힘이 드러나리라.얼마전 후배 신부님의 서약식에 참여하였다. 서약 청원서를 들으며 외견상 본 귀공자의 모습과 달리 깊은 울림을 주어서 놀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있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박수를 보냈다. “성소의 시작이 가난이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에서 엄동설한에 꽃망울을 키우는 매화나무를 연상하게 되었다. “나눔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삶에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즉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사랑은 누군가가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단순하기에 더 깊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의 삶 주변에 있는 그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삶에는 그 사랑의 열매인 기쁨과 평화와 자비가 함께 따르게 되리라. 한 사람의 호의는 상호유대를 촉진하는 따뜻한 관계를 촉진하게 된다. 청원을 하는 신부님을 통하여 선을 행하려는 몸에 밴 확고한 마음가짐인 덕을 보게 된다.추웠던 겨울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봄을 시작하는 출발점, 쉼표의 겨울. 스스로 휴식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 에너지를 회복하고 내 안에 있는 건강한 나에게 물을 주어 보이지 않는 뿌리에 활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꽃망울에서 매실을 거두어 들이듯 삶에 결실을 보리라.

2020-03-04

코로나19 위기와 ‘나쁜 정치’, 그리고 ‘사회’의 힘

우리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기 자신이다. 우리의 사고는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이며 우리의 행위는 자신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지배된다. 그런 연유로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와 이익에는 열렬하고 예민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줄 결과에는 무심하기 마련이다. 이런 양상은 자신이 속하거나 분류되는 집단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을 특정집단의 일원으로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일에 격분하지만 타인을 특정집단의 일원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에는 스스럼이 없다. 이렇듯 자기와 타인에 대해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는 대단히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감정이며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최대의 진원지인 신천지교회의 반응 또한 정확히 그런 ‘합리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사태의 발발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을 지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조직의 보전과 면책을 위해 신도들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만을 당국에 마지못해 제공해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 또한 피해자고 협조를 잘 하고 있으니 자신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마녀사냥’을 중단해 달라는 적반하장같은 논평을 아직도 내고 있다.이제 확진자가 3천명을 넘어서고 의료지원이 태부족한 우리 대구 경북민의 불안감과 위기의식은 극에 달해 있지만 이 국가적 위기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대응과 언행은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통합되어 새롭게 탄생했다는 보수세력의 현 사태에 대한 대응은 실망을 넘어 그 구태의연함과 ‘선동성’이 가증맞기까지 하다. 이들의 공세는 먼저 현 정부가 대구 경북에 대한 배제의 감정을 조장한다는 데 집중되었다. 사실 ‘대구코로나’라는 표현은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일명 ‘조중동’ 삼대 일간지와 종편방송이 더 앞장서서 벌인 일이고, 그 성향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선정성과 공포의 상업성에 편승하려는 몰지각한 언론과 누리꾼들에게 한정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부발표에서 유독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라는 말들에 밑줄을 그어 가면서 대구 경북지역이 박해받고 있다는 감정을 부추기고자 하는 이들은 타지역으로부터의 차별과 경원시를 우려하는 대구 경북지역 시민들의 예민해진 마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와 여당이 현 사태를 정쟁에 이용하고 ‘나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지만 정작 나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이들인 것 같다.그에 비해 몇몇 누리꾼들의 논평, 즉 미래통합당 관계자들이 코로나19를 ‘우한폐렴’이라 부르면서 ‘대구코로나’라는 명칭을 문제삼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비판은 좌파적 사고에 특유한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어찌 우한과 대구가 동일하겠는가? 우한과 중국은 외국이지만 대구의 시민은 동일한 정치공동체, 사회 속의 동포요 동료 시민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보수 측은 사태 초기에 중국인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공세를 집중하였다. 그 요체는 꽤나 단순하고 낯설지도 않은 것으로, ‘중국 눈치를 보고 자국민보다는 중국민을 더 생각한다’는 것이다(이 문장에서 중국 대신 ‘북한’을 넣어보면 꽤나 익숙한 논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는 우리네 마음속 가장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감정, 즉 우리끼리 뭉쳐서 이익을 도모하고 손해보는 일은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남에게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오기, 그리고 강대국의 눈치를 안 본다는 원초적인 ‘자존심’을 자극하는데 집중하는 지극히 단순한 선전선동이다.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는 정부가 마스크 300만 개를 중국에 보내줬다는 가짜뉴스를 버젓이 공표하면서 이를 계속 이슈화했고, 이는 박능후 보건장관을 몰아붙여서 그의 실언아닌 실언을 이끌어내어 ‘중국 탓인데 우리 탓을 한다’는 낙인을 찍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그처럼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있어서 무엇이 옳은지 자신 있게 말할 지식은 필자에게 없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과의 교류가 국민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로의 길을 내내 택해왔고 특히나 중국, 일본, 미국은 좋으나 싫으나 우리가 깊이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일본과 미국이 한국인 전면입국금지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러한 상호의존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서울이나 제주에서 마스크도 안한 채 식당에서 식사하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마도 중국인과 중국발 입국자를 초기에 전면 봉쇄했으면 마음도 흔쾌하고 강대국에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미래통합당이 여당이었다 한들 중국인의 전면입국 금지와 같은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는다.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적 위기 규모로 발전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대구신천지교회의 네트웍을 통해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이후이다. 접촉이 제한된 외국인이 아니라 일상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자국민의 관리가 더 결정적이라는 박능후 장관의 발언은 유쾌하지는 않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며 일정 측면에서의 대구경북지역의 봉쇄는 방역에 있어서 결정적이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은 한편에서는 당대변인이 정부가 신천지교회를 매개로 한 대규모 감염 사태의 경로를 아직 규명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집단에 문제를 귀인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평을 당대표가 내고 있고, 종교와 집회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집회강행을 불사하는 전광훈 목사 등의 막무가내 행보도 애써 비판하려 하지는 않는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10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필자는 자신을 아시아인으로 차별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면서도 흑인 등 다른 소수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경멸, 그리고 주류 백인사회에 대한 숭배와 ‘짝사랑’은 대단했던 현지 한국인의 모습이 미국인들과 대비되어 매우 환멸스러웠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그런 부정적인 인상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단번에 바뀌었다. 코로나 전염위험이 아직 강 건너 불구경이던 시기에 TV를 보던 필자는 중국 각지에서 우한으로부터 오는 동포 시민들을 막고 봉쇄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보고 꽤나 놀랬다. 역시나 우리나라에서 감염자가 늘자 중국정부와 중국시민들은 염치고 격의고 상관하지 않고 한국인 격리와 봉쇄로 내달리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 우한교민의 격리 수용지로 결정된 아산의 주민들은 우리 교민들을 따듯하게 환대하였고, 지금 전국의 많은 이들은 대구 경북지역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료진과 공무원들, 그리고 의연히 양심을 지키며 생산에 전념하고 있는 마스크제조업체들에 선물과 격려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사회’가 가진 역량이 이 정도라는 것에 안도감과 함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서두에서 말했듯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과 안녕을 염려하고 도모하면서 타인을 단순화하고 차별, 배제하는 것은 사회 속 인간의, 그들이 만든 집단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강력한 성향이다. 하지만 ‘사회’를 작동시키는 한 사회의 역량은, 증오와 따돌림, 집단적 거부, 무질서와 이기주의의 횡행으로 치닫기 쉬운 그러한 성향을 제도와 도덕의식을 통해 제어하는 정도를 통해 드러난다. 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우리 사회를 마비상태로 몰고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뜻밖에도 어떤 것이 ‘나쁜 사회’이고, ‘나쁜 정치’를 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다른 때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구자혁 경북대 강사

2020-03-04

거리두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국토가 좁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도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나라 땅덩어리 좁은 탓을 하게 된다. 아파트, 백화점, 빌딩, 상가할 것 없이 주차 공간부족으로 웬만해서는 한 번에 주차를 하지 못한다. 다들 바쁜 일상 탓인지 주차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절대 공간이 부족하니 차량 1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필요최소한으로 구획되어 있다. 주차장의 옆 차량과 주차간격이 차문을 열고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협소하다. 짐이라도 가지고 내릴 땐 고도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옆 차량이 운전석 쪽 경계선에 치우쳐 주차되어 있을 경우엔 아예 운전석 출입문 하차를 포기해야한다. 사이드 브레이크 손잡이에 엉덩이가 찔리지 않도록 월담하여 조수석 출입문으로 내릴 때면 온 몸에 땀이 밸 지경이다. ‘체중을 줄여라’는 가족의 애정 어린 충고까지 감수해야한다.옆 차량 운전자의 무사려(無思慮)에 대한 비난을 뱉어본들 갈 길이 바쁘기에 못이긴 척하고 넘어간다. 진짜 낭패는 양쪽 주차경계선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주차하고도 후발 주차 차량의 거리두기 실패의 경우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 차를 빼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네 탓이란 증거 찾기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원흉을 끌어내 한밤의 결투를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침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지 않는 이상 운전자의 양식 있는 주차습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후진으로 자로 재듯이 정중앙에 주차하여 옆 차량과 정확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30년 운전경력에도 후진 주차에 젬병인 나 같은 사람은 늘 전·후진을 몇 번하는 불편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주차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일종의 에티켓이다.‘팔길이(arm-length)’라는 말이 있다. 영화관이나 운동경기장 관람석에서 팔을 함부로 벌려 옆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쓰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내야 된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과 적당한 거리두기는 생활의 지혜이며 때로는 규칙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람사이 거리두기가 관심거리다. 비말(침)로 전파된다는 속성으로 마스크로 예방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대화를 해야 한단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나 의료진들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증상이 있으면 자가에 머물도록 하고 회식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전파를 막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연인들도, 금슬 좋은 부부도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당분간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빨리 종식되기를 갈망한다. 위기 때마다 불굴의 의지와 지혜로 극복했던 한민족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2020-03-03

스마트 세상의 구멍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칼럼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를 썼을 때만해도 상황이 달랐다. 이웃나라 상황을 강 건너 불로 여기지 말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쓴 삼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이었다. 반짝 관심이 쏠렸다가 상황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일이 잦으니,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는 노파심이 시킨 글말이다.최근 불과 1주 사이 좋아지는 듯 보였던 상황은 급변했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백수십명씩 늘고, 일상을 함께하던 사람들 중에도 격리 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공장소는 문을 닫았고 거리는 무인지경에다 아파트 주차장은 며칠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차들로 가득하다. 행사, 회의는 물론 사적인 모임들까지 취소되었다.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실제로 닥친 위기, 매일 악몽 속에서 잠이 깨는 공포영화 느낌이랄까.대학원에서 안전공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한 후 안전문제에 관한한 과민반응을 보이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 목숨이 달린 안전문제를 비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어서다.며칠 연속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학계의 엄중한 경고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지만 거리에는 마스크를 벗어던진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유발할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바이러스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너무 빨리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될까 공학자는 불안했다. 치사율이 낮다고는 하나 전염력이 이전에 찾아온 그 어떤 병원체들보다 강하고, 게다가 폐렴을 일으킨다지 않는가?안전공학 이론 중에 리즌(James Reason)의 스위스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란 것이 있다.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 조각을 여러 겹 겹친 것을 예로 들면서, 모든 형태의 사고는 그 여러 겹의 구멍 사이를 용케도 빠져나가버린 화살 같은 거라 설명한다. 그 여러 겹의 치즈는 대비책이 될 만한 사회적 안전망, 위험을 막아줄 조직체계와 제도, 의·약학적 치료제, 그리고 보완수단이 될 기술적 안전장치 등을 말한다. 바이러스 따위에게 들통나버린 스마트 세상의 구멍들을 매워나갈 궁리에 서둘러 해결해내야 할 숙제는 늘어만 간다.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져 쓰레기나 버리자며 챙겨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 버리는 엄마를 따라 킥보드를 끌고 나온 동네 꼬마와 마주쳤다. 여느 때라면 친한 척하며 담소를 한참 나누었을 텐데, 마스크 너머로 눈웃음만 건네는 게 전부라 씁쓸하다.“아…. 오랜만에 밖에 나온다….”아파트 마당으로 나서며 혼잣말하는 꼬마가 짠해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이번 사태로 입학이 연기된 조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이 시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이 몰려와 다음에는 이런 일 다시없게 해주마 다짐해 본다.

2020-03-03

홀로 있을 때

어느 날 셰익스피어가 친구의 집에 방문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습니다. 하인은 따뜻한 홍차와 간단하게 읽을 책 한 권을 건네고 부엌으로 되돌아갔습니다.아무리 기다려도 친구가 오지 않자 무료했던 셰익스피어는 차라도 한 잔 더 마실 생각이었습니다. 주방으로 가던 중에 흥얼흥얼 거리는 콧노래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부엌에서는 아까 자신을 대접했던 하인이 양탄자를 뒤집어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누가 일부러 들춰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더러운지 깨끗한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셰익스피어는 하인이 콧노래를 부르며 양탄자를 뒤집어 닦던 그 순간을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평생 기억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하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혼자 있을 때도 누가 지켜볼 때와 다름 없이 행동에 아무 변화가 없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무슨 일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 이런 경지에 오른 상태를 ‘신독(愼獨)’이라 표현합니다. 남의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간다는 의미지요. 송사·채원정전(宋史·蔡元定傳)에서는 ‘신독’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밤길 홀로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엄격한 자기관리를 뜻하는 ‘행불귀영(行不愧影)’이라는 성어가 여기서 비롯했습니다.시인 윤동주는 노래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진짜 ‘나’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3

입 막은 사람들의 도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그런 말 마시오, 오늘은 당신이 이런 꼴을 당했지만, 내일은 내가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니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요”199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os00E9 Saramago)가 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운전을 하여 집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가, 자신의 차를 대신 운전하여 집으로 데려다 주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표하려 하자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한 말이다. 이렇듯 눈먼 자를 위로하며 친절하게 집에까지 데려다 준 남자는 눈먼 자의 차를 훔치는 도둑으로 전락하고, 머지않아 그도 눈이 멀고야 만다.이 장면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실명하게 되고, 결국은 ‘의사의 아내’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도시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 정부는 이 도시의 눈먼 사람들을 차례차례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격리 수용한다. 소설은 수용소 안에 일어나는 사람들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참혹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눈먼 자들’의 이름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어느 누구도 서로를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이성이 닫히고 윤리의식을 내팽개치는 사람들, 필부필부(匹夫匹婦) 바로 우리들의 본능적이고 추악한 자화상 노출이 있을 뿐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추악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눈을 크게 뜨고 사실을 보아야 한다. 귀를 바로 열고 진실을 들어야 한다.지금 대한민국은 마치 ‘입 막은 자들의 도시’와 같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집밖을 나설 수가 없다. 마스크 몇 장 구하러 수많은 시민들이 황망히 뛰어다니고, 마스크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부단히 애쓰고 있다. 바이러스는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와 농어촌을, 여와 야를,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바이러스의 위세가 잦아들 때까지는 코와 입을 잘 막고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내 이웃을 위해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다.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과도한 비난과 비판의 제어를 위해서도 입을 가려야 한다. 중앙정부의 인식이 안이했다고 비난할 수 있다. 지자체의 부실하고 부적절한 대응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전시 상황에 버금가는 엄혹한 시기이다. 내부의 다툼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 서로를 다독이고 하나된 우리를 세워나가야 할 때 아닌가.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자. 불안과 공포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입을 함부로 벌리지 말자. 차별과 비난의 바이러스가 나에게서 새나가지 않도록 입은 꾹 닫고 마음은 활짝 열자.“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요.”차 도둑의 내일은 불행으로 귀결됐지만, 우리들 내일의 ‘무슨 일’은 부디 좋은 열매이기를!

2020-03-03

근자열 원자래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는 논어에 나오는 글귀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다.2천500년 전 전국시대 공자가 초나라 섭공이라는 제후와 나눈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섭공은 “백성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나라로 떠나니 인구가 줄고 세수도 줄어 걱정”이라며 공자에게 여쭈었다. 그러자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란 여섯 글자를 써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한다.“사람을 소중히 대하라”는 의미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군주가 백성을 잘살게 하면 백성은 기뻐할 것이며 먼 곳에 사는 백성은 그 소문을 듣고 짐을 싸들고 군주한테 모여들 것”이라는 말로 풀이한다.군주의 선정(善政)이 백성을 떠나게도 하고 모이게도 한다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본정신을 당시에 가르쳐 준 대목이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는 군주민수(君舟民水)도 같은 말이다. 백성이 편한 정치를 하면 백성은 배를 띄우고 그렇지 않으면 배를 뒤집는다는 말이다.“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도 가혹한 정치의 폐해를 가르친 교훈이다.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정치는 바로 민주주의다. 헌법 1장 1조에 명시된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표현은 국가 주인이 백성이라는 뜻이다.코로나19 감염증 사태는 국민을 혼란과 불안감으로 몰아넣었다. 정부 정책의 거듭된 실패로 불신감도 팽배하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바랐던 민심을 외면한 정부에 대한 원망이 대통령 탄핵청원으로 이어져 청원수가 140만을 넘었다. 민심이 크게 동요한 결과다. 청와대가 지금 민심을 어떻게 볼까 속내가 궁금해진다. 한차례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는 건 행여 아닐까 해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03

고전 읽기의 괴로움과 즐거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어떤 사람은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플라톤을 한 시간 꼭 읽는다고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요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관찰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고전의 가치를 새삼 깨닫던 참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전을 선뜻 손에 잡기는 힘들다. 어렵게 손에 들었어도 한두 장 읽다가 책장을 덮는 경우도 많다. 저자의 정밀한 사유를 따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지나가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문서를 쓴 오선민 씨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미 아는 내용만 읽고, 낯설거나 불편한 문장은 자기도 모르게 지나쳤다고 한다.고전 읽기가 어려운 것은 나의 사유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 고전이 나온 시대와 문화가 현재와 많이 다르다는 점도 장애 요소가 된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혀 접해보지 않은 문화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고, 아예 읽지도 않고 스쳐지나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고전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괴로움이 먼저 들이닥친다.그럼에도 고전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어쩌다 만난 한 문장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그 괴로움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해질녘 마을 종탑이 석양에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나서 종탑 뒤에 숨은 글자를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 문장을 처음에는 읽기 어렵지만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그 기쁨의 한 조각을 나눠 갖는 듯한 기분이 든다.이렇듯 작가가 묘사한 장면을 눈에 또렷하게 그릴 수 있게 되면 즐거워진다. 어떻게 하면 또렷하게 그릴 수 있을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으면 된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페이지만 읽어도 좋으니 단숨에 읽으려 들지 말고 책갈피를 들어 언제든지 멈출 준비를 하자.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보기도 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오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는 것도 더욱 선명해진다.그러니 고전을 읽을 때는 한 권을 1년을 잡고 천천히 읽어보면 좋겠다. 70세에 하루 영어 한 문장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분이 84세에는 외국인 관광 안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뚝심으로 고전을 읽어가 보자.몇 년 전 동네 주민센터에서 이웃과 함께 논어를 1년 간 읽은 적이 있다.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삶에 적용해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고전을 읽는 것은 괴롭지만, 이렇게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느닷없는 순간에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논어’에 손이 춤추고 발이 뛴다는 말이 있다. 고전에서 얻는 즐거움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

2020-03-02

퍼펙트 스톰

퍼펙트 스톰은 복수의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위기를 가리킨다.원래 퍼펙트 스톰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자연현상을 의미하며, 위력이 세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을 만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태풍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지난 2000년 개봉한 영화 ‘퍼펙트 스톰’은 1991년 미국 동부 해안을 강타한 태풍에 휘말린 ‘안드레아 게일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알려졌다.경제용어로서는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가 대표적인 비관론자로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할 때 사용했다. 2011년 7월, 그는 미국경제의 이중침체, 유럽의 경제위기, 중국의 경제 경착륙 등 악재들이 겹쳐서 빠르면 2012년, 늦어도 2013년까지 세계경제가 ‘퍼펙트 스톰’을 맞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국가적 차원 또는 세계적 차원에서 직면하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퍼펙트 스톰’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돼왔다. 미국발 퍼펙트 스톰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의미한다.미국은 그 이전 10여 년 동안의 경기호황에 힘입어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주택담보대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부터 급락하기 시작한 주택가격으로 인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하면서 주택을 압류당한 개인은 거리로 나앉고, 대출금 미상환에 따른 금융기관 파산이 이어졌다. 2008년 베어 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AIG 등이 그 피해자였다.이제는 중국 우한지방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번진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온나라가 코로나19가 불러온 퍼펙트 스톰을 이겨내는 데 힘을 합쳐야 할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3-02

남아있는 것으로

네 살 무렵 소아마비를 앓는 바람에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Itzhak Perlman)은 10세에 첫 대중 연주회를 했으며 1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9세에 레빈트릿콩쿨에서 우승해 명성이 절정에 달했는데 이는 보잘것 없는 외모에 장애인이라는 약점을 딛고 일어선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1995년 11월 18일, 뉴욕 링컨센터(Lincoln Center) 에이버리피셔홀(Avery Fisher Hall)에서 열린 이작 펄만의 연주회 때 벌어진 일입니다.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치 총소리처럼 ‘탕’하고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그 순간 예측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바이올린을 바꾸거나 줄을 갈아 끼우지 않고 계속 연주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바이올린 현 세줄로 교향곡 연주가 불가능함을 익히 잘 알았던 이작 펄만은 연주를 진행하는 동안 매 순간 즉석에서 편곡하고 다시 머리 속으로 음표를 그려가면서 작곡해 전에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음을 창조해 나갔습니다.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친 후 애버리피셔홀은 경이에 찬 침묵에 사로잡혔습니다. 한동안 깊은 울림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청중은 오로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긴 침묵이 끝나자 모든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습니다.이작 펄만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땀을 닦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갖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이지요.” 휴스턴 크로니클지가 보도하며 이 일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매일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매 순간 그 자원을 편집하고 재창조하며 집중하는 일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2

새 학기의 낯선 긴장을 넘어가는 방법

조현명 시인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늦추어지긴 하겠지만 전염병은 지나갈 것이다. 사스와 메르스가 그랬다. 그러나 개학이 늦추어진 것은 초유의 사태이다. 개학은 늘 순탄치는 않았다. 꽃샘추위가 그 으름장으로 긴장하게 했다. 낯선 곳으로 등교하는 신입생들은 더더욱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재학생들도 새로운 반과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새 학기가 안정이 되려면 3월말 4월초의 언덕을 넘어야한다. 서열다툼이나 자리매김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넘어가는 언덕이다. 남학생들은 힘겨루기로 심하면 주먹질이 오가기도 한다. 통계적으로 이 시기에 가장 많은 학교폭력과 학교부적응이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교육청에서는 학기 처음에 상담주간을 둘 것을 공문으로 지시하기도 한다.10년도 넘은 일이다. 그날도 3월 말쯤이었다. 학생으로부터 나는 문자를 받았다. ‘K가 계속 맞고 있어요.’ 자세히 알아보니 K를 중간에 놓고 J와 L이 아침부터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일어서려고 하면 발로 차고 협박해서 화장실도 못가고 있었다. 나는 J와 L을 불렀다. 그리고 훈계를 하고 수시로 교실을 살폈다. 그러나 J와 L은 나를 조롱하듯 변함없이 K를 괴롭혔다. 급기야 K의 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문제를 경찰에 신고하고 상위기관에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학생부장에게 알리고 의논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결국 상담이나 지도, 어떤 수고도 무산되었고 폭력은 계속되었다. K는 점점 야위어갔고 정신병원 치료까지 해야 하는 상태로 치달았다. 그래도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든 참아주었고 상위기관까지는 가지 않았다. 나는 여름방학 전 K에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꼭 읽어라”고 당부했다. 케네스 해긴 목사의 ‘믿는 자의 권세’라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자존감의 회복이야말로 모든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책을 다 읽고 K가 생각났다.여름방학 후 돌아온 K에게 물었다. “책 읽었느냐?”, “아니요. 아직”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꼭 읽어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K는 야윈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몇 주 뒤 K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복도에서 만난 K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그 책은 좀 다르던데요.” 라고…. 나는 더 이상 되어 진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K의 부모님이 웃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폭력문제가 해결된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했다. K는 그 책을 읽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K는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험난한 세상에 맞서서 당당히 부딪쳐라’라는 전언을 들었던 것이다. 괴롭히던 J와 L을 향해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죽음까지도 각오한 용기 앞에 J와 L은 피해 달아났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K는 새로운 싸움 짱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새로운 학기 꽃샘추위와 낯선 곳의 긴장감, 드센 친구들의 괴롭힘에도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불안정한 흔들림을 피하지 않는 일이다. 늦추어진 개학을 기다리며 집에서 쉬면서 좋은 책이라도 한 권 읽어볼 것을 권한다.

2020-03-02

역병과 종교의식

강희룡 서예가한반도에서 역병의 최초 기록은 백제 온조왕 4년(BC15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전염병은 조선 후기 이르러 더욱 많이 유행하여 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인구를 감소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역병은 역신(疫神)이 사람에게 붙어 괴롭히다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 귀신을 복숭아 나뭇가지로 때리거나 불을 이용해 겁주어서 쫓아내는 방법인 축귀(逐鬼)와 달래서 귀신을 떼어주는 ‘굿’과 ‘여제(53B2祭)’ 가 시행되었고, 더 큰 신령의 도움을 받아 벗어나는 방법으로 장승이나 성황당 등에 비는 방식이 예방과 치료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여제는 중국 주나라의 제례를 적고 있는 예기(禮記)에 따르면 천자는 일곱, 제후는 다섯, 대부는 세 가지 제사를 지내는데 이들 제사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에는 태종(1400~1418) 때 처음 기록이 보인다. 이 제사는 상시적, 일시적 2가지 형태로 행해졌으며, 왕이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 귀신 섬기기 가장 좋은 날을 택해서 지냈으나, 급하면 길일을 잡지 않고 역병이 난 지역에서 임시적으로 바로 제를 올리었다. 당시의 역병은 이겨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고 삶과 더불어 함께하는 존재로 인식했기에 망자는 저승에서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산 자들은 업을 소멸시켜 극락을 누리게 한다는 법회인 수륙재(水陸齋) 같은 불교의식이 발달해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됐다.지금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단시 되던 신천지교단이 이 역병의 슈퍼전파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신분과 행적까지 감추고 있어 감염원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이만희 교주는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짓’이라며, ‘말씀과 믿음을 지키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의 것이다(요 11:25-27)’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이 교단뿐만 아니고 기성교단의 목사들도 이런 재해를 대개 ‘신의 벌’로 해석해 설교하고 있다. 자연에 신이 직접 개입한다고 믿었던 중세인의 사고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에 프랑스의 천문학자였던 라플라스의 ‘천체역학’ 논문을 통해 신은 과학에서 이미 사라졌다.구약(舊約)의 ‘숨은 신’이 된 것이다. 성경과 우리의식은 엄청난 공간적·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친 말씀을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 메시지로 바꾸는 데는 심오한 해석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식 해석으로 고대인의 세계관이 오늘의 신자들 머리 속을 지배하게 되면 종교적 상징과 비유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어 맹신이나 광신에 빠지기 쉽다. 28년 전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1992년 10월 28일 휴거소동)의 끈을 그대로 잇고 있는 이단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는 이단일수록 숨은 신을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현시하려는 경향이 높다. 이들과 오늘날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공통점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 방역이 ‘심각’ 단계로 올라간 날 한기총 회장은 광화문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토해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코로나여 물러가라!’

2020-03-02

참된 종교인은 일상에서… 경산 불굴사(佛窟寺)

절을 찾아나서는 발걸음이 편하지가 않다. 들리는 소식이라곤 ‘코로나 19’ 확진자 증가수와 그들의 동선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팔공산 뒤편,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불굴사로 향한다.불굴사는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신문왕 10년(690년) 원효대사가 정진하여 득도한 곳에 암자를 세운 게 시초가 되었다. 한 때는 50여 동의 전각과 12개의 부속 암자, 8대의 물레방아로 쌀을 찧어 승려와 신도들의 공양미를 해결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소문난 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절이지만 초행길이다.썰렁한 절집에 혼자 들어설 거라 예상했는데 드문드문 보이는 불자들이 봄꽃처럼 반갑다. 하지만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그들의 표정에서는 봄소식이 멀기만 하다. 모처럼 찾아온 맑은 공기와 햇살이 마당을 서성이며 봄소식을 전하지만, 반기는 이 없는 화창함이 제 그림자와 놀고 있다.침묵에 싸인 풍경들이 서로를 품어주는 경내로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일렁이는 햇살 속에 서 있는 보물 제 429호 삼층석탑 뒤의 극락보전, 조선 후기 건축물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약사보전, 그 옆에 관음전까지, 전각들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서 있다. 활짝 열린 법당 문턱에는 서둘러 나온 봄 햇살이 졸고 있다.나도 모르게 발길이 약사보전으로 향한다. 인자하고 온후해 보이는 약사여래입상은 1736년 큰비로 사찰 전각이 무너질 때 매몰되었다가 순천 송광사 노스님의 현몽으로 발굴된 것이다. 파손이 심한 왼손과 얼굴부분은 보수한 흔적이 보이지만,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같은 시기인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갓을 쓴 갓바위 부처님이 남성적이라면 족두리를 쓴 불굴사 약사여래불은 여성적이다. 양지인 갓바위와 음지인 불굴사의 지형적 특성에 따라 음양의 조화로 안치된 듯하다.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를 한 후 불굴사의 약사여래불에게도 기도를 하면 훨씬 더 영험함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오늘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전국을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서 하루빨리 놓여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다른 날보다 더 넉넉히 불전을 놓고 절을 한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을 비웃다가 결국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더 큰 불안감에 갇혀버린 나를 위한 기도였으리라.북적대던 오일장과 드나들던 금융기관이 폐쇄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조용하고 작은 면소재지 마을은 더 이상 정겹지가 않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부터 거리의 한적함은 공포로 변해 밤낮을 배회한다. 대구로 출퇴근하는 남편은 몇 장뿐인 마스크를 재활용하며 견디고 있다. 어린 손녀까지 있어, 마치 전쟁터로 남편을 보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절벽처럼 높다란 바위굴에 있는 홍주암을 향해 철제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원효대사와 김유신 장군이 치성을 드렸다는 약수터 앞에는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불자 한 분이 기도 중이다. 마치 정화수 앞에서 비는 모습처럼 이색적이다.기도 대신 서둘러 사진만 찍고 독성전으로 오른다. 순수한 아이의 눈빛마냥 무심으로 반짝이는 산 아래 풍경에 취해 있는데 봉사자 한 분이 홍주암의 영험함을 강조하며 초파일 등 달기를 권한다. 난처하다. 가진 것이 많아 가는 절마다 등 하나 달아주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좀 전에 보았던 불자가 올라와 시선은 자연스럽게 옮겨졌다.익숙하게 불전을 넣고 촛불을 켜는 일련의 행동들이 익숙하다. 모든 게 정성스럽다. 기도는 천천히, 안정감 있게 행해졌다. 차분한 눈빛과 자태가 그녀와 기도를 훨씬 돋보이게 했다. 나는 넋을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마음에 묵직한 기운들이 번져오고 온몸이 따뜻해져 왔다.조낭희 수필가어느 순간부터 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무서운 속도의 전파력을 지켜볼 때마다 육신보다 정신이 먼저 병들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녀의 일상은 나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 사재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거나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도 않았으리라. 산사는 그녀에게 좋은 도피처이며 위안처였음이 분명하다.그동안 ‘방역실패’라는 말을 매스컴에서 접할 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오그라들었던가. 무능한 정치인과 재난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들, 이해할 수 없는 이단 종교계로 화살을 쏠 때마다 허탈해지는 건 오히려 나였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분노와 비난보다는 감염병이 하루빨리 종식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며 지킬 수밖에 없다.오늘도 대문간에는 두 주 정도 버틸 분량의 마스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넉넉지 않지만 급한 대로 나눠 쓰자는 친구의 말이 밤새 온기로 남아 나를 다독인다. 작은 것들이 쌓여 얼마나 깊어지는지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위기를 대처할 줄 아는 크리스천 친구에게서 나는 예수님을 본다.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맹목적인 신암심보다는 힘들수록 스스로와 주변을 아름답게 밝힐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이 시대의 참된 종교인이 아닐까?

2020-03-02

화가 윌리엄 터너가 남긴 마지막 유언

미술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던 미술교육이 국가가 설립한 미술학교로 편입되면서부터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1648년 루이 14세의 명으로 세워진 프랑스 왕립미술학교를 꼽을 수 있다. 프랑스를 모범으로 삼아 유럽 각 국가에서 왕립미술학교들이 생겨나는데 1744년에는 스페인 마드리드, 그 보다 조금 늦은 1768년 영국 왕립미술학교가 세워졌다. 왕들이 미술학교를 설립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국가의 정치적 이념과 권력을 찬양하는 미술가들을 체계적으로 길러내기 위해서였다. 국가 권력이 미술교육을 주도하면서 상상력과 창작력은 정해진 규칙과 규범 내에서만 허용되었다. 그림들은 등급에 따라 나누어졌는데 그것이 지금 우리도 알고 있는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그리고 ‘풍속화’ 같은 개념이다. 신화나 성서 혹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역사화는 가장 훌륭한 그림이고, 화가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역사화를 그려야 했다.역사화가 숭상되던 시대에 17세기 프랑스 바로크 화가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은 한 폭의 자연을 담은 풍경화로 최고의 명성을 떨쳤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은 역사화와 풍경화를 절묘하게 조화시킴으로써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분명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인데 그 안에 신화나 성서의 이야기가 눈에 띨 듯 말 듯 전개된다. 푸생과 로랭의 역사적 풍경화 전통은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로 이어졌다.터너는 1775년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터너는 작품 활동을 했던 60여 년 동안 쉼 없이 풍경화를 탐구했고, 추상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 당시 이미 대상성을 배제하고 빛과 색채를 실험했다. 표현이 너무나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시대 미술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너 탁월함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로 런던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고, 스물네 살에는 벌써 왕립미술원 준회원의 자격을 얻었으며, 역대 최연소인 스물여섯에 정회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터너의 실력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화가로 경력을 쌓아가던 초창기에 터너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수채화 또한 유화 못지않게 완결된 구성의 대규모 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픽처레스크한 터너의 풍경화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미술학교를 졸업하던 스무 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유화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1802년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한 것이 터너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래부터 풍경화를 즐겨 그렸던 터너는 유럽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알프스를 방문했다. 파리의 미술관에서 푸생, 루벤스, 티치아노를 포함한 거장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풍경과 사건의 관계, 경험과 재현 그리고 색채에 대한 연구의 깊이를 더했다.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경험한 터너는 회화에 대한 또 다른 경지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림은 평평한 화면에 색을 칠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빛에 의해 드러나는 실재 세계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빛과 색채의 연구가 거듭될수록 그림은 더욱 단순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그려진 터너의 그림을 두고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일평생 독신으로 지낸 터너는 자신의 정신과 열정을 오로지 그림에만 쏟았다. 1845년 왕립미술원의 원장 직에 오른 터너는 1851년 12월 죽음을 맞이해 런던 세이트 폴 대성당에 영원히 잠들었다.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술에 대한 터너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터너는 자신이 초기에 그린 두 점의 풍경화를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 두 점과 나란히 전시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술사 최고의 거장들과 겨루고자 했던 것이다. 터너의 회화적 성취는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을 매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태동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김석모

2020-03-02

코로나19 사태와 전통시장의 미래

이번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COVID-19) 사태가 예상치도 않았던 원인으로 대구, 경북은 물론 포항지역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사실 2월 초만 하더라도 중국발 전염병 사태로 인한 간접적인 경제적 영향이야 어느 정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지역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는 쉽게 말해 3개 부문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알기 쉽다.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 부문이다. 생산 활동에서는 일부 공장의 근로자가 감염되면서 방역 등을 위해 일시 가동을 멈추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가 확장단계에 있는 호황기가 아닌 관계로 급히 납품기일을 지켜야 할 생산자가 아니라면 대체로 연간 전체의 생산물량에서 재고조정 정도에 그치는 기업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유통과 소비 부문이다. 유통을 도매점과 같은 곳으로만 보기 쉽지만 사실상 대부분 서비스업종은 재화가 아닌 용역을 판매한다는 점만 다를 뿐 광의의 유통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동형 점포나 장날이 서는 곳을 찾아다니는 상인 등 일부 특이한 유통 활동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정된 거점에서 소비자를 기다린다. 최근에야 온라인 이용 사례가 늘고 있지만 아직은 소비자들 대부분이 유통 활동의 거점을 찾아가 구매하는 형편이다. 결국, 이번과 같이 전염병이 퍼져 소비자인 시민들의 행동반경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면 유통 공급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평소 소비 활동을 생각해보자. 가족들이 모처럼 외출하여 외부 식당(음식업)에서 식사하는 일이 줄었다. 친구들과 만나 차나 음료(커피전문점, 제과점 등)를 마시면서 보내는 시간도 줄었다. 지인들과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 관람 등과 같은 문화 소비(공연예술업)도 미루었다. 기업체, 동창회 등 각종 단체가 주최할 예정이었던 다양한 행사(행사기획서비스, 인쇄출판업, 호텔숙박업)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굳이 꼭 지금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 한 주요 관광지로 여행(항공사, 여행사, 운수업 등)하는 것도 취소되기 쉽다. 그야말로 물건의 중개와 관련된 유통만이 아니라 서비스를 공급하는 분야의 전 업종에서 이번 전염병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특히 이번 사태로 최대의 피해가 예상되는 곳이 떠오른다. 전통시장이다. 그나마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무시할 수 없기에 대형마트 등에서는 필요한 물품을 평소보다 많이 사는 행위로 인해 일부 제품이 품귀할 정도의 현상까지도 나타났다고 한다. 손님 수는 줄었지만 반대로 전화나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주문하고 택배로 배달을 요청하는 수요는 여전하여 매출 감소 폭은 생각만큼 크게 줄지는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반면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이번처럼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면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니, 받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나.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전통시장도 일부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통시장에서는 외부에 공개된 트인 장소다. 그곳에서 음식을 직접 조리하여 판매하는 곳도 전통시장의 풍경이다. 각종 식자재로 쓰이는 흙이 묻은 자연상태의 신선한 채소들은 전통시장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편하게 만지며 고를 수 있는 이른바 ‘접촉’이 자유로운 점은 이번 사태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 쉽다. 실제 위생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렇게 작용하기 쉽다. 반면 상대적으로 대형마트에서 환경보존에 좋지는 않지만 흰 스티로폼 받침에 투명 랩으로 감싼 식자재들은 위생적으로 매우 깨끗하게 보인다.여기에 그동안 전통시장이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과제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소비자들의 바깥 활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소비자들의 편리 추구는 엄청난 배달서비스업체 성장 속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점은 수없이 많다. 눈이 침침한 어르신까지도 환하게 볼 수 있는 조명에 사시사철 냉난방을 갖춘 상태에서 꼭 필요한 만큼 다양한 부피와 중량으로 가격표를 매겨놓고 있어 가격협상을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근력이 버틸 수 없을 만큼 물건을 고르거나 품목이 전혀 다른 물건들을 구매하는 데도 장바구니에 힘들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바퀴 달린 카트를 밀면 된다. 집에 돌아갈 때 물건을 싣느라 시내버스 기사님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적정 금액 이상만 구매하면 집까지 요구하는 시간대에 배달해주기 때문이다.과연 이번 사태가 진정되었을 때 포항의 전통시장은 원상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도 어떠한 상황이 변화되더라도 전통시장은 지속 가능할 것인가. 적어도 지금 상태의 경영방침 내지는 영업형태를 고수하는 한 생존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행정기관에서 전통시장을 화두로 수많은 정책이 제시되고 시행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아니라, 전통시장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과연 그동안 무엇을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가이다. 이번처럼 전염병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특수한 시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점차 위생, 보건, 웰빙 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포항의 경우에는 점차 인구사회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한 상황이다. 인구 변화는 크지 않은데 가구수는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전통시장에서 1인 가구가 한끼나 두끼 식사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구성은 거의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맞벌이 부부들이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퇴근 이후 장을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대를 전통시장이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전통시장의 서비스는 배달이다. 지금 전국적으로도 전통시장에서는 배달서비스를 개시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전염병 사태에서도 문경시는 지난해 12월부터 개시한 배달서비스로 안전하게 집에서 장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기도 하였다. 과거만을 고집하는 것이 전통시장의 존재가치는 아니다.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전통시장이 되려면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철저하게 자각(自覺)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아케이드를 만들어주고, 정치인이 선거철마다 찾고, 각종 전통시장 전용 상품권이 발행된다고 손님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포항의 전통시장이라면 포항시민들이 굳이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찾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내세울 필요가 있다. 어쩌면 포항의 전통시장에 가면 원산지 표시가 국내산에 그치지 않고 구룡포산 대게, 흥해산 시금치, 장기산 배추, 기계산 소고기 등과 같이 포항지역의 농수산물을 포항 시민이 구매할 수 있는 곳, 말 그대로 ‘지산지소’의 거점이자 지역 농어가를 살리는 곳임을 명확하게 내세운다면 찾아가는 시민의 발걸음도 가벼워질지 모른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3-01

무능하고 뻔뻔한, 그러나 교활한

안재휘 논설위원괴질 바이러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문자 그대로 아작내고 있다. 영남의 핵심 대구와 경상북도가 불행과 혼돈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애먼 희생양들의 숫자에 얼이 빠질 지경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 건너 아득한 중국 땅 한복판 우한(武漢)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영상으로나 보던 비극이 순식간에 이 나라 핵심도시 대구에서 펼쳐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참극이 벌어진 것인가.우리는 오랫동안 피땀으로 경제부흥도 일구고 민주화도 이룩해낸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러나 그 번영의 자존심과 명예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능하고 뻔뻔한, 그러나 교활한 한 정권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집권 이래 ‘촛불혁명’이라는 과장 수사법을 주문처럼 되뇌며 정치보복에만 끈질기게 매달린 문재인 정권은 모든 허물을 ‘남 탓’으로 둘러대 왔다.대통령은 오직 광신적 확증편향에 중독된 비정상 지지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실정(失政)을 거듭해오던 와중이다. ‘우한 폐렴’을 ‘신종 코로나’로, ‘코로나19’로 이름을 거듭 바꿔가며 갈팡질팡할 때부터 이상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의학적 처방인 ‘중국인 입국 전면차단’ 성명을 ‘박사모 회원의 정략’이라며 귀 밖으로 밀어냈다.인터넷에는 소위 ‘문빠’라는 이름의 극성 지지자들이 신천지와 새누리당을 엮어서 ‘코로나19’가 미래통합당의 계략이라고 욱대긴다. 유시민이라는 여권 최고의 궤변가는 대구시장과 경북지사의 등에 흉악한 모략의 비수를 꽂았다. 시종일관 ‘중국인 입국 차단’은 실익이 없다고 버티던 문 대통령은 “초기라면 몰라도”라고 말해 처음으로 ’전면차단’의 정책적 가치를 인정했다.‘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라’는 속담이 있다. 작금 이 나라의 정치 풍속도가 꼭 그 짝이다. ‘무능’보다 100배 더 큰 죄(罪)는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도 사과조차 제대로 안 하는 ‘뻔뻔한’ 죄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 제발 사진 찍고 쇼하자고 대구로 달려오는 짓 하지 마시라. “정부의 힘으로는 확산 못 막는다”고 고백하고 행동수칙을 제시하며 국민의 협조를 호소한 싱가포르 리셴룽(李顯龍) 총리의 정직한 담화가 부럽다.불이 났으니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는 주장 틀린 말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나라 꼴 이렇게 개차반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이 내놓을 언변은 못 된다. 세기적 괴질 바이러스 ‘코로나19’ 퇴치 문제를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라곤 상식 수준밖에 없는 정치꾼들이 정략적으로 주물러 터트린 행위 자체가 악마적 사태다. “사회적 격리를 위한 민주시민의 자율적 통제가 답”이라며 “즉시 과학자 TF팀을 꾸려 전권을 맡기자”는 포스텍 송호근 석좌교수의 제안은 백번 옳다. ‘의학적 처방’을 외면한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신천지 때려잡기’와 ‘대구 모욕하기’라는 교활한 수작으로 ‘정치적 이득’만 탐닉하는 집권세력은 제발 좀 그 흉계부터 접으시라.

2020-03-01

코로나 블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감염증인 코로나와 ‘우울한 마음’을 뜻하는 블루(Blue)가 합쳐진 말이다.자고나면 코로나 확진자 수부터 먼저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돼버린 요즘이라 코로나 블루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국민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이기도 한다.마치 내 스스로가 좀비 영화의 한 장면에 멈춰 서 있는듯한 기분이 들면서 불안감, 무기력, 외로움,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심지어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면서 ‘코로나 블루’ 말고도 ‘코로나 쇼핑’, ‘마스크 퍼스트’ 등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힌 설문조사는 코로나 19 이후 달라진 일상에 대해 물었다. 응답한 사람 10명 중 8명이 “일상이 달라졌다”고 응답했다.“가장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모임과 친목활동’을 36%라 손꼽았다. 만남이나 모임을 자제한다는 말이다. 또 응답자의 80%는 ‘주말이 황폐해졌다’는 대답도 나왔다.우울증은 일종의 감정 질환이다. 일상생활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 한다. 하루 종일 집에 콕 박혀 지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올 증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창살 없는 감옥 같다”, “아이가 바깥 구경을 못해 우울해한다”는 등의 글들이 자주 등장한다.중국 심리학회는 최근 중국인의 42.6%가 ‘코로나 19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를 냈다고 한다.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결코 아니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3-01